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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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에 욘 포세의 다른 작품인 ‘내 이름은 알레스‘를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접한 욘 포세의 작품이었어서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조금은 버거운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 책을 통해 욘 포세 작가의 스타일이나 이런저런 배경지식들을 습득하게 되어서였는지 이번에 ‘아침 그리고 저녁‘ 을 읽을 때는 비교적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욘 포세의 작품은 이제 고작 2편 밖에 안되지만, 두 작품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쉼표(,)를 아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관해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번 책의 메시지인 삶과 죽음의 연결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쉼표(,)는 의식의 흐름을 끊어버리지 않고 등장인물들을 지속적으로 연결시켜주기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수시로 접할 수 있는데, 쉼표(,)가 이러한 비현실적인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대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어지는 대화들이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핵심 메시지인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것을 표현하는데 쉼표(,)는 아주 효과적으로 기능한다고 느껴졌다. 한마디로 시공을 초월하는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쉼표(,)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이와 별개로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 중 하나는 바로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는 문장이었다.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은 죽지만 그 사람이 쓰던 사물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 사용하던 물건에 영혼이 담겨있다는 약간은 미신적인(?)생각으로부터 개인적으로는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불멸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인 요한네스가 무덤에 묻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자리에는 요한네스의 딸인 싱네와 가족들 그리고 목사가 함께한다. 목사가 무덤에 흙을 퍼서 던지는 장면이 연이어 나오는데 목사가 등장한 거로 봐서는 어떤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암시한다는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기독교에서 육신은 이세상 떠날때 비록 두고 가지만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서 영생한다는 신앙(?) 혹은 믿음(?) 같은게 있는데 내가 위에서 말한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는 문장에 대입을 해보자면 ‘사람의 육신은 가고 영혼은 남는다‘ 정도로 의역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본인은 목사라는 단서로 인해 기독교로 연결지어 생각을 주관적으로 확장해보았지만, 꼭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여타 다른 종교에서도 사람의 육신이 죽고나서도 영혼은 살아있다는 얘기들을 종종 하기에 특정 종교에 한정해서 생각하기보다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 모든 종교와 사람들에 해당되는 의역이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일수도 있지만, 얼마전에 추석명절도 있었고 또 해가 바뀌면 설날도 있는데 명절 때마다 제사를 지내는 것도 결국 조상님의 어떤 영혼이 함께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기에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영혼불멸이라는 생각에 대해 크게 거부감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듯 하다.

이야기가 살짝 샜는데, 어찌됐건 욘 포세는 이 작품에서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라는 메시지를 통해 내가 위에 적은 것과 같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만드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명확한 메시지를 직접 던지기 보다는 인물들간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 바로 ‘아침 그리고 저녁‘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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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0-13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욘 포세 하나 더 읽으셨군요! 쉼표의 의미와 마지막 문단 인상적입니다 이 분의 작품을 읽게 되면 잘 참고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잘 보내시길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10-13 11:42   좋아요 1 | URL
예 처음에 읽을때는 좀 낯선감이 들어서 쉽지 않았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확실히 좀 수월해진 감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노벨문학상 괜히 받는게 아닌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좋은 하루되세요!

서곡 2023-10-13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윗 댓글에 빠졌는데 영혼불멸도요 ... 네 답글 감사합니다 !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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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죽음과 삶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어지는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가 뭔가 비현실적인듯 하면서도 심오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태어난 후 그리고 심지어 이 세상을 떠난 뒤까지 모든 순간들이 이어져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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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지금하지 않고 나중을 준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그 문제에 대한 답이 바로 우리 눈앞에 매일 전개되는 그런 메시지에 담겨 있거든요. 광고사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나 욕망을 목표로 하면 그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꿰뚫고 있었답니다. 두려움, 욕망을 제대로만 공략하면 특정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요."

경계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매일 접하는 마케팅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흡수해버립니다.
결국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는 방법이 바로 그런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있다고 믿게 되지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고 마는 겁니다.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스스로 볼 줄 아는 눈을 갖춰야 한다는 거지요.

‘다른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삶이라 정의 내린 대로 산다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껴야 만족스러운 삶이 되는 거지요.‘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아까 케이시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바로 그날 밤 이후 제가 그랬어요. 세상이 달라 보였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원하는 일에 깊이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내가 왜 여기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만족시켜주는 일들을 하며 살게 되었어요."

죽음이 두렵습니까?

"그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사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이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메뉴판에 있던 그 질문은 이런 각도에서 보시면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시작한 앤은 나를 쳐다보며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그런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답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주로 무의식 속에 잠재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매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는 않지요.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 더 줄었다고 인식하죠. 그래서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을 아주 못 하게 되는 날이 진짜로 오지 않을까 두려워한답니다. 다시 말해 죽는 날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묻고,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들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이미 원하는 일을 했거나 매일 하고 있다면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죠."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답니다. 사실 이전에 이미 생각해보신 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해도 실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든가, 그런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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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이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조금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몇일 전 읽었던 욘 포세의 또다른 작품인 ‘저 사람은 알레스‘ 라는 책에서 학습된 학습효과(?)가 있어서 그랬는지 이번 작품은 의식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와는 별개로 마지막 부분(p.131~135)에 나오는 문장들은 뭔가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잔잔한 여운이 느껴졌다.

그들은 벌써 몇 시간째 부두에 머물러 있다. 얼마나 오래 더 이러고 기다려야 할까?
여기서 무작정 시간이 가기만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기다리는 것도 정도껏이지, - P85

이제 빨리 잊는 게 상책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그래, 요한네스가 말한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 페테르가 말한다 - P94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어, 싱네가 말한다 그러셨지 아버님은, 레이프가 말한다 - P123

그럼 마음 아픈 일이지, 레이프가 말한다 그래도 닥칠 일은 닥치는 법이야, 그가 말한다 사람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언젠가는 우리 모두 차례가 오는걸, 그가 말한다
그런 거지 뭐, 그가 말한다 - P124

이해하겠나? 페테르가 묻는다 잘 모르겠는걸, 요한네스가 말한다 자네도 이제 죽었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페테르를 바라본다. 그런 말을 하다니. 고약하게도, 그가 죽었다니 내가 죽었다고?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도 이제 죽은 거라네 요한네스 그래, 페테르가 말한다 - P128

그리고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 자네가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야지, 그가 말한다 내가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 요한네스가 묻는다 그리고 페테르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집에 누워 있는 자네는 죽은 거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아하, 내가 그러고 있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래, 페테르가 말한다 자 이제 가게나, 요한네스, 그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페테르에게 다가가 그와 함께 길을 내려간다 - P129

지금 서쪽 만으로 가는 건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그래, 페테르가 말한다 거기서 뭘 하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 이제 떠나는 거야, 자네와 내가, 페테르가 말한다 그렇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내 고깃배를 타고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거지, 페테르가 말한다 그래 자네가 알아서 하게 페테르, 요한네스가 말한다 - P129

그리고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지금 이게 뭐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 오늘 페테르와 밖으로 나가 게망을 끌어올리지 않았나 그리고 꽃게를 팔러 시내에도 갔었는데, 하나도 팔지 못하고, 페테르가 안나 페테르센에게 선물로 꽃게가 가득 든 비닐봉지하나를 넘겨준 게 다지, 그러니까 페테르가 봉지를 부두에 놔두고 왔고, 한참 후 그녀가 와서 가져갔지.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조금 지나서 안나 페테르센이 왔었지, 그 모든 일이 생생한데, 지금 내가 죽었다니

이제 자네도 죽었다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오늘 아침 일찍 숨을 거뒀어, 그가 말한다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여서 나를 이리로 보낸 거라네. 자네를 데려오라고 말이야. 그가 말한다 그러면 게망은 뭐하러 걷어올렸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 삶과의 연결을 끊어야 하니 뭔가는 해야 했지, 페테르가말한다 그런 거로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런 거라네, 페테르가 말한다 - P130

몸을 잠시 되돌려받았어, 자네를 데려올 수 있도록, 페테르가 말한다
이제 고깃배를 타고 떠나자고, 그가 말한다 어디로 가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먼, 페테르가 말한다 - P131

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 P131

아픈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 P132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 P132

이제 그렇게 두리번거려서는 안 된다네 요한네스, 페테르가말한다 이제 하늘만 쳐다보고 파도소리에 귀기울여야 해, 그가 말한다 - P132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 P133

비바람이 불고 파도도 높으니까 그리고 페테르의 고깃배가 파도에 휩쓸려 올라갔다 떨어지더니 그들은 더이상 페테르의 고깃배가 아닌 다른 배에 앉아 바다 위에 떠 있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는 둘이 아닌 하나이고 바다와 구름과 바람이 하나이면서 모든 것, 빛과 물이 하나가 된다 그리고 거기, 에르나가 눈을 반짝이며 서 있다.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빛 역시 다른 모든 것과 같다. 그러고 나서 페테르가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제 길에 접어들었네, 페테르가 말한다 - P134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몸을 돌려 저멀리 뒤편, 저 아래 멀리, 싱네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사랑하는 싱네, 저 아래, 멀리 저 아래 그의 사랑하는 막내딸 싱네가 서 있다. 제일 어린 마그다의 손을 잡고서, 그리고 요한네스는 싱네를 바라보며 벅찬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싱네 곁에는 그의 다른 자식들 모두와 손자들과 이웃들과 사랑하는 지인들과 목사가 둘러서 있다. 목사는 흙을 조금 퍼올린다. 싱네의 눈에도 에르나에게서 본 것 같은 빛이 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어둠과 저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궃은일을 바라본다
저 아래는 궂은일이 생겼구먼, 요한네스가 말한다 - P135

그리고 싱네는 요한네스의 관 위로 목사가 흙을 던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는 독특한 분이었죠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 P135

바다와 바람과 비와 외딴집과 보트하우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사물들은 사람보다 오래 머물며 그들의 삶과 죽음을 담아내고, 흔적을 간직한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 P137

내 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스트라네바름(노르웨이 하르당게르표르 동쪽에 위치한 해변)의 소리들이다.
가을의 어둠, 좁은 마을길을 걸어내려가는 열두 살 소년, 바람과 피오르 위로 쏟아지는 장대비, 불빛이 새어나오는 어둠 속 외딴집, 어쩌면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이러한 것들이다. - P138

나는 줄곧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다. 나는 그 모습들을 사랑하며, 그것은 내 무의식의 감수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P138

어부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순간과 그의 흘러간 삶, 그리고 이제 막 다가오는 죽음을 이야기하는《아침 그리고 저녁》에도 어김없이 피오르의 바람과 파도, 늙은 어부의 기침소리 같은 것들이 있다. 어눌한 구어체와 비문,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문장의 사슬, 동일어의 반복, 대화와 대화 사이의 침묵을 따라가다보면 읽는 사람은 어느 순간 문장과 하나가 되어 그것들이 지어내는 피오르의 리듬을 타게 된다. - P138

‘21세기의 베케트‘라 불리기도 하는 욘 포세의 텍스트에 깃든 침묵과 여백은 사무엘 베케트의 ‘제2의 언어‘로서의 침묵처럼 텅 비어 있으면서 무겁다. 이들의 침묵은 말하지 않은 것을 껴안아 말하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또다른 등장인물들과 독자들은 ‘말하지 않은 것‘을 듣게 된다. 침묵은 ‘이미 다 말해졌으므로 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언어들을 소환하고, 상상과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그의 ‘닫힌 텍스트‘를 열려있게 한다. - P143

마침표를 찍을수 있는 문장, 요한네스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일상이다. - P144

환각과 비슷한 상태에서 다가오는 죽음은 그가 살아오며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확신했던 일들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 P144

작가는 응축된 문장을 쓰는 것만큼, 응축된 삶의 형태를 묘사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사랑하고, 죽어가는 과정을 이보다 더 원형에 가깝게 축약할 수 있을까. 이 짧은 소설을 장편소설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 존재의 반복되는 서사, 삶의 원형에 가까운 것들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 P145

작가는 스스로 말하듯, ‘형식적으로 닫힌 텍스트 안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들어가‘ 바닷물을 담았다 쏟아내는 액자처럼, 근원을 알 수 없으나 끊임없이 생성중인 삶과 죽음의 리듬을 담아내고자 한다. - P145

위험한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위험하지는 않아,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 P148

멜랑콜리커는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불안을 받아들인다. ‘검은담즙‘을 머금고 살아감으로써, 삶을 버팀으로써, 현재 안에 존재하는 과거와 예견된 죽음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만나는 순간, 멜랑콜리는 빛을 발한다. - P147

그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존재의 불안을 끊임없이 사색하는 ‘멜랑콜리커‘들이다. 연구자 주잔 크뤼거에 따르면 멜랑콜리커는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고민하며, 사후세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사람이다.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전진하는 대열에서 멈춰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정서가 우울하고, 모호하게 말하는, 과잉소비사회와 자본주의에 반하는 인성의 사람이다. 문제의 표면이 아닌 핵심을 파고들며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이다. - P147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 포스트모던 시대에 불시착한 요한네스와 같은 멜랑콜리커들은 서늘한 외로움을 감당하며 묻고 또 물을 것이다. 거대한 시공간 앞에 선 존재의 불안과 허무에 대해.
좋은가. 그곳은? - P148

『아침 그리고 저녁』을 발표한 후 욘 포세는 희곡보다 소설 쓰기에 좀더 집중할 것임을 선언했다. 2014년 노르웨이에서 출간된 『트릴로지』( 『불면』 올라브가 꿈을 꾼다』 『저녁의 피로』를 묶은)는 유럽 내 난민의 실상을 통해 인간의 가식과 이중적인 면모 등을 날카롭게 비판함으로써 문단 안팎의 좋은 평을 받았고, 해마다 그가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주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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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방송출연으로 인연이 되어 지속적인 비지니스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한의사. 이전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조금씩 느끼고는 있었으나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없이 쭉 지내고 있었다. 주인공이 사업차 미국으로 1개월에서 3개월 가량 떠나야 한다는 말에 여자 한의사가 순간 속에 있던 감정을 미처 감추지 못하는데, 이에 남자 주인공도 순간적인 판단으로 과감한 선택을 한다.

건강상담, 비지니스 얘기가 쭉 이어지다가 갑작스럽게 로맨스가 전개된다. 물론 주인공의 독백으로 예전부터 조짐이 조금씩은 있긴 했지만...




결코 밀가루가 백미보다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고, 백미는 현미 및 여러 잡곡보다 좋을 수 없다.

"이익은 조금 줄어도 됩니다. 저희 쪽으로 남는 영업 이익은 25%만 맞추면 돼요. 경우에 따라서, 특정 메뉴나 제품에 따라 더 낮아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그리고 남는 돈은 전부 식품과 제품에 쏟을겁니다. 물론, 거기서도 남는 돈이 있긴 하겠죠. 그 부분은 직원들 복지 같은 거에 부을 거고요."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마진을 그렇게 낮춘다고?"
"네. 지금 먹고사는 데 지장없잖아요. 한 달 만에 벌 거 한 1개월 반.... 길면 2개월에 걸쳐서 벌면 되죠. 결국 그게 
기회를 만들고 더 많이 벌게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돈 이전에 저희 음식을 먹고 사람들이 건강한 게 중요하고요."

"그래, 그러자고 시작한 거니까. 언제 지금 같은 삶을 꿈이나 꿨냐. 그냥 빚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만 되면 뭐든 하겠다고, 더 착하게 살겠다고 생각했었지. 그리고 넌 모르겠지만, 네 할아버지가 그런 분이셨어."

"그치, 그렇지. 그 정신을 이어가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권호순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셋이서 의기투합을 하는 게 좋았다.
통장에 늘어나는 잔고보다 더 힘이 됐다.

이미 충분한 돈을 벌고 있어서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긴 했지만.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더니, 나만 봐도 정말 그랬다.

"네, 솔직히 칼국수 면을 매번 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거기다 밀가루면도 아니라서 식감의 차이도 있을거예요. 잡곡이 들어가니 거칠고 쫄깃한 맛도 떨어지겠죠. 차라리 중면 정도로 뽑아서 후루룩 넘기는 게 낫다고 봐요."

예전에는 쉴 때가 가장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일을 할때가 가장 좋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쉬고 싶고, 뒹굴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활기가 넘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일을 할 때였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가능한 즐겁게 하는 것이 좋겠지.

내가 15,000원의 무거움을 아니까. 돈 1만 원이 아쉬워서, 그걸 아끼느라고 고생해 본 적이 있다.

길을 가다가 풍기는 음식 냄새에 걸음을 잠시 멈췄다가 돈 때문에 다시 걸음을 옮기는 설움.
비싼 음식이면 그렇게 서럽지 않았겠지.
돈 몇 푼에 아끼고 또 아끼던 게 어쩔 때는 구질구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허투루 쓰지는 않는다.

매일매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팁을 주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 아깝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비해 큰 액수가 아니었고,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표정이 생생하기 때문이겠지.
나중에 대리기사가 다른 데서는 ‘강건희 보기보다 짜더라‘, ‘겨우 15,000원이 뭐냐‘ 등의 말을 할지도 모르는 거긴 하지만.
아마 그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꼬아서 생각하려면 끝이 없으니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이것도 새로운 버릇이다.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부터 떠올렸던 나였다.
이제는 무슨 상황이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가 있다.
분명히 내 일인데도 신기하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병원이라고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현대의학의 힘으로도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내게 나도혜는 완벽한 사람처럼 보였다. 말 그대로 무결점. 금수저에 빼어난 외모 그리고 자신의 일에 있어서도 성공.
겉으로만 봤을 때 누구나 부러워할 그런 여자였다.
그런데도 속에서는 나름대로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나 고민은 있다더니.
하긴, 재벌 중에서도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나도 이건 안다.
돈을 벌어보니 확실히 알수 있다.
돈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전부는 아니다.
엄청 중요하다는 건 맞지만.

대회에 나가는 게 아닌데도 몸매를 유지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일궈낸 결실이었다.

"또......."
그 한 글자에서 오만 감정이 다 전해졌다.
나도혜는 그 자리에서 한숨을 내쉬고는 가게 문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크게 울리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뒤로 다가서서 팔을 잡아당겼다.
"놓으-"
나도혜가 미간을 찡그리며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나는 입술로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나도혜는 잠시 당황한 듯 굳었다가 내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밀어내려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 이동해서는 내 뒷목을 감쌌다.
길지 않은 키스였다.
천천히 입을 떼고 나도혜와 눈을 마주쳤다. 이번에는 그녀가 나의 뒷목을 확 당겨서 키스했다.
우리는 사춘기 커플처럼 그자리에서 키스만 한참 동안 이어나갔다.

"그게 싫었어요. 원장님이라고 하는게 꼭..... 그냥 계속 그런 호칭이 선을 긋는 거 같아서."

이제야 마음에 확신이 들었다.
손을 꼭 잡고 있는 게 이렇게나 좋을 줄이야.
왜 진작 이러지 않았는지.
좋게 생각했다.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밥도 뜸을 충분히 들여야 더 맛있다.
우리 관계는 기초공사를 튼튼히 했고, 이제 쌓아 올려갈때라고 생각했다.

연애 세포가 다 죽었다느니 그런 소리는 거짓말인 듯하다.
연애 세포라는 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방과 나 사이에서 생기는 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연애 세포가 다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연애 세포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 사업인 미라클 헬스케어만 대박이 나는 게 아니었다.
청춘사업도 대박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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