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이사할까 해." 나의 한마디에 나도혜의 눈빛이 흔들렸다. 영화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지만, 더 이상 어떠한 내용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도혜의 영향도 컸다. 나도혜 역시 나를 만나고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혹은 서로에게 숨겨져 있던 모습을 서로 끄집어내줬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조심스럽게 깎아내고 키워간 셈이다. 그렇게 두 톱니바퀴가 맞물리도록.
내가 함께 놀 때 가장 즐거운 사람이, 휴식할 때 가장 편한 사람이 나도혜였다.
하지만 생각 외로 혼자 돌아오는 길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조금 전까지 좋았던 모든 것들을 곱씹을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 시간마저 길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한다. 그래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다. 살다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내일은 정말 끝내주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멋진 일들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나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도 항상 건강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당연히 모르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정말 큰 죄인들은 빼고. 내 마음이 아직 그 정도로 넓지는 않아서인지 가끔 세상에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병에 걸리라고 저주할 마음은 없다. 그런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 법의 심판을 받길 바라지. 그리고 무병장수를 기원하지는 못한다. 그런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불면증에 대한 민간요법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다양한 방법들이 있긴 했다. 먹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개선을 기대해 볼 수도 있었다. 재료도 구하기 쉬웠고. 사과식초와 꿀을 물에 타서 마시기만 해도 효과가 있었다. 아니면 바나나 껍질과 계피를 우린 물을 마셔도 좋았고. 갈초근 차, 상추 차, 캐모마일 차도 효과가 있었다. 심지어 따뜻한 우유 한 잔조차 도움이 됐다.
하지만 불면증은 대개 심리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게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완화는 조금 기대해 볼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조심스럽다. 특정 가맹점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거기서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를 망친다. 무엇을 하든 이미지는 중요하다. 이미지가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동일한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이미지가 좋으면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달라진다.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냥 하라고.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놔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책 하나, 기사 하나를 보고는 갑작스레 인생의 목표를 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파급력이 커서가 아니다. 좋은 면만 보고 뛰어드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한때 오지로 여행을 다니는게 유행한 적이 있다. 국가에서 여행 자제를 권고한 국가임에도 떠나는 것이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며. 실제로 그 말만 믿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하거나, 실제로 사고가 난 경우들이 있다.
영향력이라는 게 별거 없었다. 내가 퍼뜨린 건강 정보가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이미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셈이었다. 나는 다양한 형태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사업을 벌이고 있는 식품을 먹든지, 건강상담을 받든지, 홈페이지나 SNS 등을 통해 정보를 보게 되든지, 나로 인해 퍼진 정보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든지. 전부 의미가 깊은 일이었다.
편하다고 해서 무례하게 굴지는 않는다. 서로 선을 지키고 존중한다.
여유라는 게 생기고 바뀐 점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생긴 좋은 일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배를 아파하거나 질투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전부터 그랬다. 부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심으로 축하해줬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은수저, 금수저. 그런 사람들을 보면 툴툴거리기 일쑤였다. 인생 참 편하게 산다고. 누구는 없는 집에서 태어나 개고생하는데.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금전적인 부분만큼 와닿는게 많지 않다.
매번 애써 외면하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나랑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그냥 떫은 감을 씹은 양 적당히 불쾌한 기분을 퉤퉤 뱉어내며 내게 집중했다.
건강. 잃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이다. 사람에게 전부라고 할 수있다. 불공평한 점은 대체로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들이 건강도 안 좋은 경우가 많다.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건지, 여유가 없어 마음의 병이 몸의 병까지 키우는 건지 그냥 운인지. 여러가지가 복합적인 거겠지.
건강은 잃기 전에는 소중함을 모른다. 그래서 무섭다. 돈은 없어서 불편한 게 바로 티가 난다. 하지만 건강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면서도 평소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다. 공기와 같다. 인지하기가 어렵다.
금전적인 여유 그리고 건강. 둘 다 가졌으니 세상 전부를 가진 기분이다. 굳이 하나를 더하자면 좋은 사람이겠지. 어느 한 90대 노인이 임종을 앞두고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공감한다.
인생의 즐거움에서 절반은 먹는 것에 있다고 한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 고통 외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게 식욕이 떨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화려한 삶, 명예, 권력, 막대한 부 등등. 가져서 나쁠 건 없다. 사람마다 인생의 중심이 되는 목적은 다른 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혼자라면 그 빛이 바래게 마련이다.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게 나쁘지는 않다. 단지 이미 누릴 수 있는 행복마저 저버리면서, 그 행복을 모르고 나아가서는 안 된다. 심지어 그걸 잃어서는 더더욱 안 되고.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게 인생이다.
매일 맛있는 것만 먹고 살고, 웃기만 하며, 행복하기만 해도 마지막에는 아쉬움이 남을 것이 삶이다. 그러니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충분히 누려야 되지 않겠는가. 눈앞의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넓은 숲을 보다가 눈앞의 나무를 지나치기도 한다. 그 아래 피어있는 꽃과 풀, 떨어져 있는 열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멀리 내다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있으면, 주위를 둘러보면서, 때로는 발밑을 살피고 뒤를 돌아봐야 할 때도 있다.
나는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행복하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면, 분명히 더 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짐을 뜻한다. 원효대사 해골물 이야기가 괜히 있겠는가. 그렇다고 진짜 해골물을 들이킬 필요까진 없겠지만.
날이 맑으면 날씨가 좋아서 좋은 거고, 흐리면 흐린 대로 선선해서 좋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밤새 굳어 있는 몸을 풀어주는 게 중요했다.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가 쌓여서 건강을 결정짓는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가글을한 뒤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자는 내내 입안에 생겼을 세균들을 충분히 없애주고, 부족한 수분을 보충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 가글, 미지근한 물 섭취. 이 세가지만 꾸준히 지켜도 체감할 정도로 건강이 달라진다.
결혼식 사회를 본 적이 없는지라 괜히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나름대로 식순과 대본이 전부 정해져 있어서 조금 놀라웠다.
"하하하하, 억지로 요즘 애들 말 따라하고 그러면 더 나이 들어 보여요."
돈을 보고 발을 빼버리면 그 순간 내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들의 의미가 퇴색된다.
직원들은 어찌할 줄 모르며 눈치만을 살폈다. 나는 먼저 착즙기와 중탕기 등 기계들을 쭉 훑어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찡그렸다. 언제나 새것 같던 기계들에 이리저리 즙이 묻은 채 굳은게 보였다. "하...... 이런......" 뒤에 쌍시옷이 붙으려는 걸 겨우 참았다.
"제가 말씀드렸죠? 절대 섞어서 쓰면 안 된다고. 사과에는 사과, 포도에는 포도, 석류에는 석류, 그렇게 써야 된다고요. 착즙기는 그나마 세척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괜찮았을건데, 중탕기에는 무조건 그향이 뱁니다. 맛에 영향을 준다고요."
"가장 기본적인 거 아니었습니까! 제가 그렇게 못 해드렸어요? 일하시면서 당연한거였잖아요!" 주방에 내 목소리가 울렸고, 직원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와중에 정말 놀라운 게 하나 있었다. 화를 낸다고 화가 풀리지는 않았다. 문득 과거에 할머니가 말했던 게 떠올랐다.
화를 내서 바뀌는게 있으면 화를 내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내지 마라. 화를 내봤자 좋을 게 없다. 오히려 화는 화를 부른다.
그런데 정직함이 결여되면 누가 믿고 먹겠는가. 누가 내게 건강상담을 받으려 하겠는가. 그렇기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모두가 행복한 답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정도의 대처가 그나마 제일 합리적이라 여겼다.
다행이었다. 내게 소중한 가족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이런 건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었다. 꼭 이런 준비를 해두면, 보험을 들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험의 덕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보험이 없거나, 해지를 하면 그 순간 꼭 일이 터진다.
신뢰라는 게 그렇다. 쌓아올리는 것은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나도 물렁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며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과 호구처럼 당하고 사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고 무조건 채찍만 휘두르지는 않았다. 적절하게 당근도 주고 있었다. 일일이 계산을 하면서 사람을 굴리는 것은 아니었다. 지적이 필요한 부분은 가차 없었지만, 칭찬을 할 부분 또한 아끼지 않았다. 그만한 보상도 따르게 했고.
혹자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고 할지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하나하나가 전부 특별하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행복의기준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져있는지, 아니면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인지, 한 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이 건강한 정신을 가져야 건강한 몸도 가질 수 있다. 정신의 건강이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그런 관점에서 명품을 구입하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행복이 아니라 허영심일 뿐이니까.
단순히 허영만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명품만 밝히다 보면, 물질로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물질이 기준이 되게 마련이다. 이건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명품에도 급이 있듯이 사람에도 등급을 매기고 만다. 나보다 더 좋은 명품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자신도 모르게 기준에 맞춰서 행동한다. 빌빌거리고 움츠러들고 마는 것이다.
물질이 기준이 되면 행복하기 어렵다. 절대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없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 많으니까. 쉽게 고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계속해서 그러한 생각을 갖고 살아왔고, 잘못된 점을 느낄 수 없으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중요한 건 당연한 일이기에, 그러한 기준의 잘못된 점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는데도 계속해서 억압되어 불행하게 지낸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물질적 풍요로움에 다다른다고 해도, 또 위가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더 위로 가기 위해, 자신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잠깐의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불행하게 보낸다.
설사 전 세계에서 최고 부자가 된다고 해도 그게 끝일까. 정말로 행복할까. 물질적인 풍요 하나만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
실제로 통계도 있다. 한화기준 연봉 1억600만 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도가 높았다. 이보다 더 높은 소득을 가진 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소득과 별개이거나, 오히려 행복도가 감소하는 경우를 보였다. 결국 행복을 위해서는,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스스로가 주체여야 한다. 이미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서, 그걸 놓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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