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옥희를 위해 조금이라도 나은 남자가 되고자 노력했는데 정작 옥희는 무슨 정비공 따위와 사랑에 빠져 있다니, 정호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는 혼란스럽다 못해 허탈한 웃음을 흘렸고, 옥희는 그 웃음을 그들 사이의 긴장감이 다 풀어졌다는 의미로, 다시 좋은 친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내 취향은 가난하고 불쌍한 남자들인가봐." 옥희는 농담을 건넸다.

살아가다 보니 그 무엇도 옛 친구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게 점점 더 절실히 느껴지거든.

"봐, 그 옛날 네가 와서 우리 집 담장 너머로 던졌던 바다 유리야. 나는 이걸 계속 보관하고 있었어."
정호는 그 매끈한 녹색 조약돌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서로를 간직하려 하는 그 모든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방식들 - 단어, 기억, 몸짓, 감정을 담뿍 담은 소중한 무언가가 되었다가 다시 아무 의미 없는 물건으로 돌아가는 것들 - 이 그의 손바닥에 평온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웠고, 동시에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며, 대다수는 그 중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성공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을 합리화하고 그 자리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는 시점은 놀랍도록 일러서, 대체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도달한다.

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 또한 서른에서 마흔 살 사이에는 같은 결론에 이른다. 일부 사람들은 출생 환경이나 그 자신의 야망, 그리고 재능에 힘입어 대략 쉰 전후에 비슷한 깨달음을 얻는데, 그 정도 나이에 이르면 이러한 소강도 그렇게 끔찍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아의 상승과 확장을 조금도 포기하지않아도 되는 사람들 말이다.

김성수는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도내 네 개 군에 걸쳐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비옥한 논밭을 상속받을 부잣집 장손 신분을 타고났을 뿐아니라, 어느 장관의 외동딸을 아내로 맞으면서 바로 이 범주에 속한 남자가 되었다.

"이것 보렴, 코스모스야. 원래는 첫서리가 내릴 즈음 죽는 것들인데 올해는 너를 위해 계속 꽃을 피우고 있었구나."

"내가 늘 얘기했지? 월향이에게 어울리는 꽃은 코스모스라고 말이야. 정말 애틋하고, 또 보기보다 훨씬 강하니까."

자신의 스승을 대놓고 모욕하고 무시하는 모습은 정호에게 차마 참아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명보가 그간 귀가 닳도록 강조했던 모든 조언과 경고의 말들이 한순간에 떠나버렸고, 그의 마음속엔 이제 오직 맹목적인 격분 뿐이었다.

정호로서는 가능한 한 빨리 저택에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당장이라도 몸에서 빠져나올 것처럼 정신없이 두근거렸다. 경찰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첫번째 큰 임무를 무참하게 망쳐버렸다는 굴욕감과 실망감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스스로를 희생할만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정호는 생각했고,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서 옥희와 명보의 얼굴이 환하게 떠올랐다.

"환하게 뜬 달을 보는 것 같아・・・・・ 월향 언니 이름처럼 말이야." 옥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옥희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가 옥희를 사랑하는 것처럼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인내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그러한 자각이 그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에게 진한 행복감을 주었다.

모든 결혼식은 신부와 신랑의 이상적인 행복과 견주어 하객들의 인간관계에 더 깊은 명암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결혼식은 사랑하는 두 사람을 영원토록 함께 이어주는 예식이다. 하지만 그 이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다투고, 절망하고, 결국은 헤어지기를 결심하는가?

하지만 옥희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제 이 남자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이었다.

"아니야, 우리 할 얘기 다했잖아? 모든 건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어. 안녕." 이렇게 인사를 건넨 뒤, 옥희는 검은 하늘이 하얀 땅과 만나는 지평선을 향해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꿈을 꾸지만, 그중 몽상가는 일부에 불과하다. 몽상가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보이는 대로 세상을 본다. 소수의 몽상가들은 그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달, 강, 기차역, 빗소리, 따스한 죽 한 그릇처럼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도, 몽상가들은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닌 신비로운 무엇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세상은 사진이라기보단 유화여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바깥쪽에 있는 색깔만을 바라볼 때 이들은 영원히 그 아래 감춰진 색깔을 바라본다. 몽상가가 아닌 사람이 유리를 통해 보는 풍경을, 몽상가들은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셈이다.

이는 결코 지능이나 열정의 차이로 결정되는 자질이 아니다.
이 두 가지는 몽상가의 타고난 자질과 가장 자주 혼동되는 것들이다.

다들 새로운 것이라면 뭐든 열광하잖아.

그에게 실패란 마치 올이 나간 스타킹과 같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남들에게 눈치채이는 건 당사자의 잘못이라는 식이었다.

실패를 감추고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양 폐기하려는 노력은 단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인 동시에 예의의 문제였다. 이는 일종의 멋지고 귀족적인 감성이었으나, 단이의 역할을 다정하고 친밀한 친구보다는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한정 짓는 것이기도 했다.

연화만이 옥희의 곤경을 이해해 줄 터였다. 비록 몇 달 동안이나 서로를 보지 못했지만, 옥희는 자신의 오랜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을 막막하고 위험한 바다, 혹은 어느 살벌한 전쟁터로 여겼다면, 연화는 그 모든 것이 일종의 유희나 한 묶음의 신선한 과일 바구니와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그에게 세상은 상대와 겨루는 놀이이거나, 그저 즐겁고 향기로운 것들을 실컷 음미할 기회였다.

그날 무엇보다 옥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한쪽 입술만 살짝들린 상태로 지어 보이던 연화의 절망적이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어린 시절 연화는 어머니와 언니의 경멸을 받으면서도 틈만나면 양쪽 입꼬리를 늘이며 밝게 웃곤 했다. 그런 명랑함이 바로 그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이었다는 걸, 옥희는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편은 술과 담배만큼이나 흔하게 남용되는 악습이었다. 유행의 첨단을 걷는 가장 세련된 여성과 남성, 그리고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모여 꿈의 세계를 방문하는 의식을 치른다는 얘기는 비밀도 아니었다.

"누가 다른 이를 강제로 머물게 하거나 떠나라고 할 수 있나요?"

"아니, 옥희 씨. 그게 바로 진정한 사치죠. 화려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 말입니다."

나는 무너지지 않을 거야. 적어도 여기서는 안 돼. 옥희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생각과 표정을 다잡았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그런 금이 난 곳으로만 내뿜어져 발산되는 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것 같았다.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많을수록, 그렇게 포기하고 싶어지지가 않더라." 정호가 말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 누구도 내 빈자리를 그리워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사는 게 죽는 것보다는 여전히 나은 거야."

이번에는 옥희가 멈춰 서서 정호를 빤히 노려볼 차례였다.
"네가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럼 나는 뭐니?"

"너만 신경 써준다면, 나한테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와, 그럼 난 절대 죽지 않을지도 몰라!" 정호가 씩 웃어 보였다. 옥희도 그와 함께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었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지."

주변의 모든 곳에서 삶은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계속 나아가는 중이었고, 그들의 삶 역시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세상 안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모든 존재가 공기처럼 가볍게 서로에 가 닿으며 투명하게 반짝이는 지문을 남겼다.

인간들은 늘 거짓말을 하고, 서로를 속이며, 자신의 친구와 가족과 나라를 배신했다. 그렇게 배신을 하며 달라붙은 상대를 또 배신하였으며, 자신의 얄팍한 안위를 위해서는 그 어떤 신의도 없었다.

모든 한국인은 일본식으로 성명을 바꾸라는 창씨개명령이 내렸을 때, 나라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그 부모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이름을 헌신짝처럼 버리기 위해 헐레벌떡 줄을 섰다. 자신이 타고난 이름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그 어떤 신념도 명예도 남아 있지 않으리라고 정호는 생각했다.

평온한 시기보다 혼란스러운 시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며 잠재력을 표출하고 그동안 뭉툭하게만 느껴졌던 삶의 각도를 더 날카롭고 신선하게 인지하는 몇몇 사람들처럼, 영구 역시 명확한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 애매한 공간에서 더 활발하게 깨어났다.

정호는 무의식적으로 이 모든 풍경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았다. 과거 자신에게 깊은 굴욕을 안긴 누군가에게 모욕을 대갚음하는 이 행복의 순간을 나중에 실컷 곱씹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의 귀에서 맥박이 터질 듯 고동쳤고,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혈관에 한꺼번에 피가 돌며 진동하는 것 같았다. 정호가 지금껏 경험해 본 중 이보다 짜릿하고 감미로운 감각은 없었다.

마치 오만함을 슬픔으로 바꿔주는 해독제라도 되는 양, 옥희의 이름은 한철의 낯빛을 일순간에 확 바꾸었다.

정호는 적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자기도취의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만족스레 지켜보았다. 이 남자의 약점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옳은 쪽인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구 말이다.

한철은 자신이 언제나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부류의 남자였다. 지금 한철의 얼굴을 가득 뒤덮은 비통과 애수의 표정도 결국은 제 자존심을 보호하는 방법에 불과하다는 걸 정호는 잘 알고 있었다.

한철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다름 아닌 그의 자만심을 뒤흔드는 것이었고, 그건 단순한 주먹질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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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친 부분 중에 특별히 뒷부분에 밑줄쳤던 프라이밍 효과, 일명 ‘점화효과‘ 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좀 많이 와닿게 느껴졌다. 뭔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내용이 이와 관련하여 서술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편향(bias)
편견을 갖게 되는 태도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 그 자체.
인간의 인지와 감정에서부터 사회 제도, 인공지능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경향성.

이 책은 우리 시대를 위협하는 난제중의 하나인 무의식적인 편향과 차별에 돌파구를 제시하는 혁신적이면서도 심층적인 탐구의 결과물이다.

‘bias‘와 ‘prejudice‘ 두 단어 모두 편견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bias‘는 편견을 낳는 태도 혹은 한쪽으로 쏠리는 성향, 그런 쏠림이나 기울어짐 그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인 ‘편향‘으로, ‘prejudice‘는 한쪽으로 쏠린 견해나 기울어진 의견인 ‘편견‘으로 구분하여 정리했다.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차적인 대책은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지만, 근본적 원인인 ‘편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편견을 어떻게 줄여야 하고, 편향의 부정적 영향을 어떤 식으로 통제할 것인지, 이 까다로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더 깊은 책임감을 요구한다.《뉴욕타임스》

편향의 종말은 곧 희망의 시작이다

"그저 내가 그걸보지 못했던 거지요."

일부 사람들은 특정그룹에 속한다는 이유로 타인을 의도적으로 저평가하거나 비열하게 대한다.

적나라한 잔혹 행위가 현실로 존재한다. 2020년 여름에 일어난 미네아폴리스 경찰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슬로모션 살인*에서는 일상적인 야만성이 전 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소름 끼치는 수준으로 드러났다.

*미네아폴리스의 경찰 데릭 쇼빈이 무릎으로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8분 46초간 눌러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이 타인을 해치거나 차별적으로 대우하기 위해서 직업을 갖지 않고, 공정성을 추구하거나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차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공정성의 평가와 실제 현실의 상충은 ‘무의식적 편향‘, ‘암묵적(묵시적) 편향‘ 또는 ‘비의도적 편향‘ 혹은 ‘무비판적 편향‘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처신을 가리킨다.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 그것을 끝내는지가 이 책의 초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본인의 경험이 열어준 문을 통해 정의에 관련한 이슈를 접하게 된다. 내게는 그 문을 깨뜨려 열어준 것이 젠더 편향이었다. 그것이 거대하고 다차원적인 현상 속에 자리 잡은 것임을 채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편향의 맥락과 심각성 정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편향 형태들 간의 연관성을 간과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한 인간의 삶이 어떤 억압에 깊이 영향받을 때 ‘그를 위축시키려고 위협하는 재앙과 그 재앙은 단지 가장 분명한 보기일 뿐 더 넓은 맥락과 여건‘ 간의 관련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쉽다.

편향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은 현실이 아니라 기대치에 따라 행동한다. 그 기대치는 문화의 부산물을 모은 조합이다.

편향이 있는 사람은 인간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인간 형상을 한 백일몽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편향을 영혼에 가해지는 일종의 폭력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의 물질적 여건-그 사람의 선택과 가능성-에 대한 공격만이 아니라 그의 자아감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저널리즘은 대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발견하고  파헤치는 데 관심이 있다.

낙관주의는 홍보 회사와 자기계발 도서가 담당할 몫이다.

편향은 단순한 덧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푸른색 유리와 노란색 유리가 겹쳐서 완전히 새로운 색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서로 겹쳐서 완전히 고유한 것이 된다.

어떤 편견이든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행동만이 아니라 누락된 부분까지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

고려 대상이나 인지 대상이 아닌 것은 관심과 보살핌의 범주 밖에 방치된다.

‘발견‘은 도구와 제도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는 "모든 침묵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편향은 옷감에 섞어 짠 은실처럼 문화 속에 짜 넣어져 있다. 어떤 빛 아래에서는 환하게 보이지만 다른 빛아래에서는 알아보기 힘들다. 그처럼 반짝이는 실에 대한 당신의 상대적 위치가 당신이 그것을 보는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물론 차별은 개인의 순간적 왜곡을 넘어서는 문제다. 제도적인 것이며 구조적인 것이고, 과거는 현재와 섞인다. 일부 집단을 적대시하는 억압과 편견을 합법화하고 다른 집단에게 유리하도록 부와 자원을 조합하는 것이다.

각각의 편향적 행동은 빛을 렌즈로 집중시켜 하나의 화점에 모은 것처럼 방대하고 산만한 유산이 집중된 형태다.

민권 법률가 코니 라이스Connie Rice의 말처럼 법률은 차별의 한계만 설정한다. 법률은 더 미묘하고 덧없는 인간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바꾸지 않는다. 법률은 바닥을 만들어낸다. 천장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편향은 개인에게서 미래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인재가 활약할 현장을, 아이디어가 넘치는 기업을, 진보의 문화를 말살하고 만다.

그것(편향)은 예술과 과학의 돌파구를, 문학의 지혜를, 통찰력이 넘치는 정치를 사람들로부터 앗아간다. 또 질문자가 어떤 성격인지를 미리 제한하여 어떤 질문이 던져질지를 규정하고, 인간 지식의 범위를 축소시킨다. 그것은 개인의 잠재력을 줄이고 사회의 재능과 자원을 훼손하는 습관이다.

생태학의 분야에는 ‘경계edge‘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2개의 서로 다른 생태계가 만나는 지형을 가리킨다. 바다가 육지와 만나는 염수습지 강물이 언덕사면을 깎아나가는 하천부지 같은 곳이 그런 예다.
이 경계는 대개 모든 지형 가운데서도 가장 비옥하고 생산성이 큰 지역으로, 어류 배란지나 철새 체류지가 되곤 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는 곳도 일종의 경계다. 그곳은 편향이 드러나는 곳이며, 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편향에 간섭한다면 서로를 보고 반응하고 관계 맺는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하다. 그 경계에서 부글거리며 일어나는 발효 과정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자라날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 손에 잡히지 않던 통찰, 존경, 호혜성 같은 것들 말이다. 위험도는 높고 반향도 막중하지만 해결 가능한 문제다.

"어떤 감정이 그 사람의 무의식에 깊이 잠복해 있고
예속되어 있어 그 존재조차 모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적절한 자극이 가해지면 그것은 전면에 나설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듣는 것이 정의의 소리라고 믿지만 기만당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편견으로, 그가 모든 정의와 공정성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다."

-레나 올리브 스미스(미네소타주 최초의 흑인 여성 변호사)

심리학자들은 이런 언행 불일치가 개인적 차원에서도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백인 개인은 편견을 갖지 않는다고 부정하지만 그들의 행동에서는 온갖 차별적 행동이 현저하게는 아니더라도 나타난다.

타인에 대한 사람들의 지각이 항상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드바인은 편견의 패러독스 때문에 당혹스러워졌다. 모든 백인이 자신들의 인종주의적 태도를 숨기기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론은 인종주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해명이 되지 못했다.

프라이밍(priming)

점화 효과라고도 한다. 특정한 정서와 관련된 정보가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한가지 정보가 자극을 받으면 관련된 기억이 함께 떠오르는 것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지각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촉진현상을 나타내는 인지심리학 용어

프라이밍은 잠재의식적으로 시행되었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누군가에게 1000분의 1초 동안만이라도 ‘적대적‘이라는 단어를 노출한다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모호한 행동을 더 적대적인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 단어를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렇다.

그 단어는 홍채에 접촉할 것이고, 시각신경을 거쳐 두뇌에 도달해, 적대적이라는 개념을 활성화한 다음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된다.

프라이밍은 사람들의 반응을 은근히 부추기는 것만이 아니라 지식이 마음속에서 어떻게 조직되는지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도 보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빵‘이라는 단어에 프라이밍된 다음, 단어 목록에서 단어를 골라보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그들은 ‘의자‘보다는 ‘버터‘라는 단어를 더 빠르게 알아볼 것이다. 이는 ‘빵‘과 ‘버터‘가 마음속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지식은 네트워크로 조직되어 있고, 각 개념은 무수히 많은 다른 개념들과 거미줄처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한단어를 건드리면 그 네트워크 속 다른 단어도 함께 건드리게 된다. 거미줄 중 하나만 건드려도 거미줄 전체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

드바인은 프라이밍에 대해 읽어나가면서 그것이 인종주의에 대한 백인들의 진짜 마음을 평가하는 수단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빵과 같은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흰색‘이나 ‘검정‘같은 사회적 범주에 프라이밍을 할수도 있는 일이다. 백인들이 진짜 이 인종주의자라면 그들 마음속에 있는 ‘검정‘이라는 범주는 인종주의적 신조와 고정관념의 네트워크 전체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범주만으로 그들을 프라이밍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인종주의적 개념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시나리오를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해석할 것이다. 잠재의식 차원에서 사람들을 프라이밍할 수 있으므로 그들의 해석은 그들이 지닌 신조 네트워크의 진정한 반영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종적 태도가 시험당하고 있는 줄 모를 것이다. 그들은 거짓말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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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일이 밑줄 치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시대적 배경인 일제시대 때 만주나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간의 무력충돌이 문득 생각 났다. 솔직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앎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과 맞서 싸우는 태세만 놓고 본다면, 일제시대 때의 독립군과 일본군 간의 대립구도와 얼추 비슷하게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기도 하고 해서 평소에 그닥 관심이 없었는데, 독립군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관련된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문득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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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내용 이외에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 간에 오가는 대화 속에서 은은히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작가의 묘사와 표현들이 많은 부분에서 공감되었다. 표현이 참 섬세하다는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려주고, 또 연화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지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는 말 아닌가. 이게 바로 사랑받는다는 거구나. 연화는 생각했다. 지금껏 자신에게 그토록 큰 관심을 보여준 이는 없었기에 연화는 마 사장이 자기 애인이 되어달라고 청하기도 전에 이미 그를 향한 사랑에 빠져버렸다.

혁명가입네 떠들어대는 이 작자들 모두 계급 폐지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다녔지만, 정작 여기 있는 정호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동등한 존중심을 보이는 자는 딘 한 사람, 바로 명보였다.

"동지의 필체에서는 아주 강인한 힘이 느껴져요. 꼭 동지의 성격이 드러나 있는 것 같군요." 글자가 지나치게 큼직하고 균형도 맞지않는 데다 꼭 어린아이가 쓴듯 울퉁불퉁한 모양새였지만, 정호는 명보의 말이 자기를 놀리려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칭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정호는 앞으로 명보가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삶을 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 전까지는 그저 옥희에게 걸맞은 남자가 되기 위한 자기계발을 원했을 뿐이었다. 명보는 정호와 혈연으로도 애정으로도 연결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을 하나의 운명체로 묶어준 것은 다름 아닌 명예였다. 이것을 깨닫자, 정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끝까지 안전하게 지킬 사람들의 목록에 명보를 추가했다.

명보와의 유대가 깊어질수록, 옥희를 향한 정호의 간절한 사랑과 그리움도 조금씩 옅어져 가는 듯했다.

언젠가 옥희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자 현재 해야 하는 모든 일에 온 정신과 육체를 쏟다 보니, 정작 옥희와 함께 보내는 데 쓸 시간이나 활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한동안 정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옥희의 집에 들렀지만, 곧 보름에 한 번, 이어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제일 맘에 들지 않는 건, 전과 달리 정호가 이처럼 거리를 두어도 옥희가 더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는 점이었다. 옥희는 언제나 연극 연습과 공연, 미용실 예약, 사진 촬영, 인터뷰, 쇼핑, 영화, 그 외의 다른 수백 가지 할 일들과 오락거리에 몰두해 있었다.

굶주림을 버티느라 구부정한 자세로 있는 것은 인력거를 타려는 손님들을 잡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철은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이 취하는 사무적인 태도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어떤 발전이라도 이루어내려면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었다. 밤낮없이 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첫째 성공이었고, 한참 다음에 중요시하는 것은 의무였다.

사랑에 대해서 말하자면, 한철은 그게 자신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사랑은 머나먼 곳에 자리한 신비로운 산처럼 느껴졌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경건함과 확신에 찬 태도로 저기 어디쯤 그런 산이 있다고들 하기에 간접적으로 의식하게 되는 산. 그 자신이 직접 그 산을 보고 싶다는 충동은 전혀 들지 않았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관념만큼이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의 현실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

그렇다. 처음의 끌림은 단지 육체적인 욕망과 호기심이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고 한철은 확신했다.

한철에게 있어 모든 사람은 각자 속한 범주대로 구분되었다. 가족, 학교의 동기들, 친한 친구들, 동료 인력거꾼들, 알고 지내면 이익이 될 것 같은 사람들, 그런 식이었다. 한철은 어떤 편파성도 없이 상대가 속한 범주에 따라 적절한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

옥희는 그 모든 범주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모든 범주에 있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고 또 다르게 행동했다. 그는 옥희를 그저 옥희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 마침 딱 10전밖에 없는 걸 깜빡했네. 이거 미안하게 됐어, 젊은 친구!" 한철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신사는 10 전짜리 지폐를 얼른 건네고는 냅다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철은 역겨움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손안의 지폐를 꽉 구겨 쥐었다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인간들이란!

"제 사는 얘기 중에 아씨께 흥미로울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소쩍새는 커다랗고 둥근 눈에 갈색 깃털을 가진 올빼미예요."

나중에서야 그는 소쩍새가 철새이고, 가을엔 남해를 건너 이동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옥희는 가슴에서 시작되어 몸 전체로 뻗어나가는, 마치 무엇인가에 취한 듯한 신비로운 떨림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사랑은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동시에 단계적으로 번져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첫눈에 한철을 사랑하게 된 옥희는 한 여자가 자신의 연인이 어떤 영혼을 가졌는지 깨닫는 바로 그 계시적인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는 그 남자가 아주 특별하고 부드러운 영혼을 지녔다고 느꼈다. 그리고 남들에겐 들키지 않게 잘 감춰진 여린 모습을 오직 옥희에게만 드러낼수 있으며, 옥희 자신이 한철의 내면에서 그걸 끌어낸 장본인이라는 것까지도 말이다.

옥희는 이 젊은 남자의 처지를 애처롭게 여겼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훌륭한 능력을 갖췄음에도, 한철은 자신의 가족과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옥희는 이 남자가 지고 있는때 이른 책임감을 조금 덜어줌으로써 그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지고 밝아지는 걸 보고 싶었다.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책이나 셈이나 돈벌이에 관심을 쏟게 되는 사람들이 있듯이, 옥희는 늘 안타깝고 가엾은 이들을 사랑하는 데 마음을 기울이곤 했다. 그 마음은 이미 눈앞에있는 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욕구로 달음질치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그저 나란히 걸었는데, 그 또한 함께하는 서로의 존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걷는다는 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알고 싶다는 진정한 욕망이 없어도 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대화를 많이 나누든 아예 하지 않든, 서로가 완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밖에 없다.

연화는 마 사장이 보통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몇 달에 걸쳐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확연히 드러냈다.

늘 그래왔듯이, 단이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열정적인 도취와 그런 감상에 빠져들기를 자제하려는 의지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전자는 그의 본성이었고 후자는 그의 원칙이었다. 이는 결코 슬픔과 공허한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법이 없었으니, 가장 예리한 관찰자만이 그의 확고한 침착성에 미세한 변화가 찾아왔음을 감지할 수 있을 터였다.

"극장 밖에서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요. 왜냐고요? 그냥, 당신은 당신으로 거기 서 있었고, 나도 거기 함께 서 있었으니까……. 그렇게 단순하고 그렇게 복잡한 거예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그날 이후, 한철을 사랑하고 한철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옥희에게 더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옥희는 연화와의 사이가 멀어진 것이나 공연 무대의 성공 여부에 대한 생각에 거의 시간을 쏟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 매우 순수하고 희귀한 것을 이미 가졌음을 알았다.

변화의 대부분은 내부에서 일어났지만, 종종 지진이 일어나면 지층의 안과 밖이 모두 뒤집히듯이 옥희의 겉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 옥희는 너무나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기에 그의 영혼자체가 변화했고, 그의 이목구비 또한 그 변화를 반영하여 새롭게 모양을 잡아가는 것 같았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사랑을 온전히 주는 것, 혹은 받기만 하는 것으로 양극화하기 마련이다.

사랑을 철저하게 이타적인 보살핌으로 이해하는 여자들과 사랑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든 혜택을 얻지 못하면 이를 견디지 못하는 여자들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존재한다. 옥희에게는 한철을 통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얻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그들의 사랑을 더럽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동안 옥희가 후원자들과 구애자들에게 받아온 그 어떤 선물이나 쌈짓돈도, 어떻게 하면 한철을 도울 수있을지 생각에 잠겨 있을 때만큼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살다보면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더 나은 상황에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어. 그렇게 도움을 받아서 성공하고 나면, 호의에 보답하고 다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같은 자리에서 쳇바퀴만 돌리며 계속 시간을 허비할 순 없잖아! 지금의 진흙탕에서 빠져나갈 수단이 필요한데, 내가 바로 그 수단이 되고 싶다고."

옥희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순수한 눈으로 한철을 바라보았다. 그의 제안은 온전히 이타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대가로 그가 한철에게서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철은 옥희의 손에 입을 맞춘 뒤 말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가 그토록 감격한 것은 바로 두 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먼저, 나락과 성공의 보루 사이에 걸쳐 있던 자신의 삶이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을 맞아 후자로 돌아섰다는 점. 그리고 둘째로, 결국에는 자신이 이 모든 것을 혼자만의 힘으로 해냈다는 점이었다.

시간은 모든 감정의 진폭을 납작하게 눌러버리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진짜로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지울 수는 없었다.

"옥희야, 너, 아이가 없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를거다." 방에 자리를 잡고 앉자, 연화가 예전처럼 친근하고 솔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내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고말고. 그렇지만…...그 이전의 삶이 그립기도 해. 무대, 공연……."

두 동생들과 달리, 월향은 혼자만의 생활에 꽤 만족하는 듯 보였다. 고독은 그를 감싸는 아름다운 외투 같았다.

하지만 이토에게 그 볼품없는 친구는 가짜 골동품을 훑어볼 때만큼의 관심도 기울일 만한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기 있는 여자들 중 당신과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들 중 하나가 아닙니다."

옥희는 친구를 포옹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지만, 그들 사이의 장벽이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그 벽이 이제는 전보다 더 단단해져 결코 뚫을 수 없이 굳어진 것만 같았다.

이토가 경멸적인 미소를 지었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사랑 같은 게 있을 것 같아? 남자와 여자 사이에 유일하게 중요한 건 서로가 필요로 하는 걸 적절히 교환하느냐야………. 물론, 약간의 미움이 오히려 열정을 더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지, 내 생각에는 말이야."

"당신한테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옥희는 이렇게 말하며 있는 힘껏 그를 밀쳐냈다.

옥희는 정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그저 자신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무슨 짓이든 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옥희 네가 보고 싶었어." 정호가 말했다. "난 언제나 네가 보고 싶어."

"그래, 하지만 가끔은 너도 날 찾아주길 바랐어." 정호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너한테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

우리가 어린아이였을때부터 나는 항상 너를 동경했어. 왠지 알아? 넌 아무것도 겁내지 않으니까. 가진게 아무것도 없을 때조차 그 당당하고 두려움 없는 모습이 나는 그저 놀랍고 존경스러웠어.

옥희는 작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정말 미안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그 말을 듣자 정호는 내면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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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에 두번째 밑줄친 부분에서 ‘나‘(소설 속 화자)와 크누텐의 생각이 서로 교차하는 장면이 있는데 얼핏 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지적 작가시점인 작가가 ‘나‘와 크누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일상에서는 말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데, 각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아주 교묘하게 잘 표현해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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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에 첫번째 밑줄친 부분에서는 크누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묘사하다가 갑자기 마지막 부분에서 주어가 갑작스럽게 ‘나‘로 전환되는데, 개인적으로 욘 포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런 갑작스런 주어의 전환이 빈번하게 나오는 것을 봤던지라, 이런 미세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잘 따라가는 것이 욘 포세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욘 포세의 다른 작품을 처음봤을 때는 이러한 것들을 그냥 무심코 아무 느낌없이 넘겼었는데, 이제 한 4권 째 읽다보니 기존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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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에 밑줄 친 부분은 읽다가 갑자기 번뜩 전율이 느껴졌다. 뒷 부분을 좀 더 읽어봐야 겠지만, 이 세상 사람인줄 알았던 크누텐이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 속에서 크누텐이 마치 현생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느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러한 상상에 이르게 된 것은 욘 포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결과 욘 포세만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느낌을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이거는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직관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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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 첫 번째 밑줄 친 부분에서 뜬금없이 노란 우비를 입은 크누텐의 아내가 어머니(?) 라고 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갑자기 이게 뭔가 싶다.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 여름이었다. - P8

난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 불안감이 그치질 않는다. 아마 내가 글을 쓴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 P8

나는 서른 살을 넘겼고, 내 삶에 이룬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곳에서 어머니와 같이 산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여름이었다. - P9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고, 그 불안은 너무나 거대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아주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것은 그 불안감이 엄습해 온 이후였다.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고, 그 불안을 떨쳐 내야만 했다. 사실 이전까지는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전까지는 내가 글을 쓰게 될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불안감은 특히 해질 무렵이면 계속해서 엄습해 온다. 하루 중 가장 좋은 때였지만, 이제 해질 무렵은 아주 불안하다. 아주 끔찍하게 불안하다. - P10

어쩔 수 없이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글쓰기가 불안을 떨쳐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 떨쳐낼 수 없는 불안은 내가 글을 쓰면 줄어들지 모른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어쨌든, 글쓰기가 한두 시간이라도 불안감을 떨치게 해주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 불안감을 견딜 수 없는 까닭에 나는 이 소설을 쓰고 있다. - P10

나는 내 삶에 이룬 것이 별로 없다. 어쩌면 그것이 어머니를 걱정스럽게 만드는지도,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를 걱정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일례로 그녀는 나에게 이제 너도 직장을 알아봐야지, 기타를 퉁기며 다락방에 앉아있을 순 없잖니, 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에 그녀가 엷은 미소를 지으니, 난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 P11

나는 크누텐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게 내가 두려워해 왔던 거지,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어날 일이었다는 걸, 옛 친구를 마주치는 건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다는 걸 난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난 예전과 다름없는 것처럼 보여,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무슨 말을 꺼낼까를 생각하는데, 우리가 많은 걸 함께했던 건 아주 오래전 일이야. 무슨 말을 꺼낼까 우린 더 이상 공통점이 없을 텐데, 그렇지만 뭐든 말을 꺼내야 해, 이야기를 나누는 거 그게 바로 내가 두려워해 왔던 일이야,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 P11

무슨 말을 꺼낼까, 뭐든 말을 꺼내야 하는데, 이 순간을 두려워해 왔지, 일어날 일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 P14

나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은 일이 어렵진 않을거라고 느낀다. 잘 풀릴 거야, 아이들이 잘 풀리게 만들어 줄테지, - P15

그녀는 크누텐이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며, 내 이름이 보드가 아니냐고 말한다. - P15

그 보트하우스가 저쪽에 있어, 내가 말한다.
그래, 저기서 우린 많은 시간을 보냈지, 크루텐이 말한다. - P16

그나저나 레이테에 살던 스베이넨이 죽었다며, 크누텐이 말한다.
몇 년 되었지, 내가 말한다.
스베이넨도 참 별난 사람이었어, 크루텐이 말한다. - P16

그리고 크누텐은 물론, 늘 그런 식이지, 아내는 그 친구를 그런 식으로 바라봐야 했겠지. 그 친구를 다시 보는 눈빛이 이상했단 말이야, 하고 생각한다, - P18

그 친구를 다시 만나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걸 두려워해 왔지,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하지만 우린 긴 여름휴가에 어딘가 가야 했으니, 쓸 돈은 얼마 없는데,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있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니까, 부득이하게 옛 친구들을 다시 마주쳐야만 했지, 그걸 두려워해 왔어, 아내는, 왜 그 친구를 그렇게, 그런 식으로 쳐다보아야 했을까,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몸을 돌려 크누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 P19

그리고 나는 그가 날 만나서 반가워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반가웠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 P19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것은 우리 둘 다 원한 바였다. - P20

끌낚시 : 배로 낚싯줄을 수평으로 끌면서 수면 가까이의 고기를 낚는 일 - P21

나는 끌낚시를 하며 크누텐과 내가 어릴적에 함께 놀곤 했던, 페인트칠이 되지 않은 낡은 보트하우스를 지나친다. 그러자 크누텐이 살던 언덕 위의 하얀 집이 눈에 들어온다. - P21

그 작은 섬 외곽에서 낚시한다면 내륙에선 누구도 목격할 수 없어서, 그것이 내가 그 작은 섬에서 낚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인 듯싶다, 난 사람들이 날 보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코 그랬던 적이 없다, - P22

지깅`을 하는데 입질이 없다. 아마 오늘 저녁엔 물고기를 낚지 못하지 싶다. 그렇지만 멋진 저녁이다. 나는 불안한 기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무언가가 날 덮쳐 오는데,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불안한 기미가 느껴진다. 멋진 저녁이다. 부드럽고, 따스하다. 불안감이 느껴진다. 불안이 날 엄습해 오고 있다.

`지깅(jigging) : 낚싯줄이나 미끼를 문 바늘을 낚아채고 가라앉히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 - P23

저기 멀리 두 대의 배가 있고, 둘은 서로 몇 미터 떨어져 있다. 그 보트들은 가만히 떠 있다. 나는 지깅을 한다. 배들 중 하나가 내 쪽으로 향한다.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배들 중 하나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지깅을 하고, 다른 쪽을 쳐다본다. 불안감이 강력해지고 있다. 나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선외 모터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들린다. 나는 돌아보아야 한다. - P23

내가 몸을 돌리자, 그녀가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 크누텐의 아내가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 크누텐의 아내가 플라스틱 배의 선미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 P23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한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뭔가 평범한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 P24

나는 그녀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순 없다, - P26

이건 역겨워 보여요, 그녀가 말한다 저는 익숙합니다, 내가 말한다 - P31

당신은 말이 별로 없군요. 그녀가 말한다.
그래요.
여기 출신 사람들은 다 그런가보네요. 그녀가 말한다.
뭐, 일종의 규칙인 모양이죠.
난 여름 내내 여기 머물 것 같아요, 그녀가 말한다.
당신은 여기 이제 막 온 겁니까?

그녀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당신들‘이 아닌
‘당신‘이라고 말하고 그녀는 ‘우리‘가 아닌 ‘난‘이라고 말한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그녀에게 크누텐이 저기 해안가에 서 있은 지 오래되었다고, 어쩌면 그가 우리에게 합류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고, 잘은 모르겠지만, 말해야 할 것만 같다. - P36

대구는 떼를 지어 다니지 않으니까, 내가 말한다.
자녀와 대구 둘 다 그렇지, 크루텐이 말한다.
당신 짓궂어, 크누텐의 아내가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린다. - P40

그녀의 눈이, 그녀의 눈이 이제는 어디에나 있다, 하늘 위에, 피오르 너머에, 이 불안감,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은 것을 결코 느껴본 적이 없다. 그녀의 눈. - P41

크누텐과 나는 늘 함께였다. 매일 그랬다. 크누텐은 떠났고, 내가 그를 쫓아가며 불렀지만 그는 떠나 버렸다. 나는 크누텐의 아내와 마주쳤다. 그것은 내가 크누텐과 다시 마주한 바로 그날이었다. - P42

청재킷에 노란 우비를 입은, 크누텐의 아내. 어머니가 아래층을 서성거리고 있다.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고, 장을 본다. 어머니. 그녀는 장을 본다. 전에 장을 보던 것은 나였는데, 이제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 P43

대체 무슨 일이니, 라고 어머니는 말한다. 그렇게 틀어박혀 앉아 있을 수만은 없잖니, 라고 그녀가 말한다. - P43

기타. 내 기타가 보인다. 내가 장만한 첫번째 기타가 떠오른다. - P43

그렇지만 우선은 우리가 ‘우리 보트하우스‘라고 이르던 곳에서 연습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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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100자평] 스키마와라시

이 책은 읽을 당시에 일본 특유의 향(?)이 느껴지는 묘한 느낌의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든다는 얘기를 보니 얼마전 읽었던 욘 포세의 작품 <아침 그리고 저녁> 과 <3부작> 이 생각났다. 스키마와라시와 욘 포세의 작품들은 전반적인 분위기에 있어서 약간은 결(?)이 다른 느낌이지만, 현재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과 저 세상으로 이미 가 있는 영혼이 만나서 대화를 하는 듯한 모습만큼은 이 책과 욘 포세 작품의 유사한 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이러한 방식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이든 유럽이든 국적을 불문하고 작가들이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설정을 할 때 종종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는 듯 하다. 이로 인해 이야기의 시공간적 확장성을 훨씬 더 키워서 작품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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