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전쟁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엔 좀 난해했지만, 굵직한 역사적 사실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내게 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과 더불어 풍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역사에 좀 더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소설이었다. 또한 실제로 최근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도 녹아들어가 있어 좀 더 실감나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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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그렇게 곤란해지기를 무릅쓰는 게 복수지.˝

p.295에 밑줄쳤던 문장을 보면서 예전에 종합병원에 잠깐 다녀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비교적 간단한 검진차 갔었는데 대기하면서 마주치거나 지나쳤던 수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보면서, 그나마 사지 멀쩡하고 어디 크게 아픈데 없이 몸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집안에 몸이 불편하거나 어디가 아픈 환자가 있거나 한 경우 그 당사자도 당연히 힘들겠지만, 그 사람 주위에 있는 가족들 혹은 보호자 역시 여러모로 힘들 수 밖에 없다. 시간적인 것이든 금전적인 것이든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하지만 기타 부수적으로 감당해야하는 것들이 굉장히 크다고 알고 있다.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이런 거 가지고 무슨 감사하기까지 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종합병원에 직접 가서 거기에 계신 수많은 환자분들을 보고나면 건강이라는게 결코 그냥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게 누군가에겐 당연한게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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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는 학교다닐 때 시험본다고 열심히 교과서를 읽어본 이후로 성인이 되서는 따로 깊이 있게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굵직굵직한 사건 외에 각종 풍수 관련된 각종 설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지만, 역사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것들을 보면서 우리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초중반에는 이게 무슨 얘긴가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오늘 읽었던 막판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역사의식이라는 것이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고,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회신령집단축고선淮新嶺摯萬縮高鮮,
중얼거리듯 여덟글자를 뱉어놓고 숨을 고른 그는 곧 또렷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다이아치 백 년 저주를 풀어낸 것을 진심으로 경하드리오."

"본래 후대의 누구도 해내기는커녕 짐작할 수조차 없었을 일이거늘 젊은 사람이 수월하게 풀었으니 이 기미히토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오."
"우연입니다."

"이 기미히토가 평생 수련을 하고도 닿지 못한 일을 우연이라 여기면 이 사람의 삶을 너무 보잘것없이 만드는 것이오!"

이어 기미히토는 법장을 내려놓고 일어서 테이블 옆으로 한 걸음 비켜 물러서더니 급기야는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어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사방의 관심이 쏠릴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바라보는 이 하나 없었고 형연 또한 제지하지 않고 가볍게 합장하며 마주 고요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예, 막혔던 물꼬에 불과합니다. 터져서 새 물길을 만들면 다시 흐르다, 다시 막히면 어떻게든 터지고, 또다시 흐르고."

"물길이 되어 흘러가게 두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흐르든 막히면 또 차고 넘치겠지요."

"사과를 받아 주시오. 이제는 두 나라가 은원을 풀고 함께 할 때도 되었잖소."

"반성, 화해."

모자를 쓰고 탑차에서 내려 짐을 내리고 있는 남자, 좋지않은 화질이나마 크게 당겨서 보여주는 체격과 얼굴은 틀림없이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다.

요녕성의 철령과 신고산의 철령이 번갈아 올라오며 역사학계의 반성을 촉구하는 문구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전부 다 너였어. 어떻게."

오만 감정에 몸서리치던 은하수는급히 핸드폰을 꺼내 형연의 번호를 눌렀다. 전원이 꺼져있다는 답이 들려옴에도 아무 이유 없이 또, 또. 거듭 네다섯 번을 연달아 전화를 걸었던 그녀는 팽개치듯 핸드폰을 내려놓고 양팔에 머리를 묻었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왜 네가." 속았다는 배신감같은 것이 아니었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궁금한 의구심도 아니었다.

그만한 범죄들을 저지르고 잠적해 버렸다는 걱정, 당분간 보지 못할거라고 말하던 목소리, 거기서 오던 이상한 불안감.

머리를 팔에 묻은 채 쥐어뜯던 그녀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뭐라도 해야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라도 있을 거야.

"저를 납치한 그 납치범은 이 나라 교육을 책임지는 그 어느 교육자보다도, 이 나라 역사를 탐구하는 어느 학자보다도, 애국과 조국의 번영을 외치는 그 어느 정치인보다도! 진실되이 이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야 이 개자식아! 이 미친놈아!"
음식 그릇이 아무렇게나 엎어진 가운데 일어선 은하수의 입에서는 욕설이 흘러나왔지만 문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기자와 경찰을 불러 주시겠습니까?"
"예, 예?"
"지금 막,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르려는 참입니다."

메가폰 소리가 깨울 때까지,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듯 그는 과거 일본 전쟁의 상징 아래에서 무의식의 표면에 그저 부유하고 있었다.

"제 이름은 이형연. 한국인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는 방송국들이나 경찰의 비상 데스크를 당연하게 내놓은 극렬 테러리스트라는 예상과 달리 과거 일본의 침략을 꾸짖는 이야기나, 반성을 촉구하는 등의 강경한 어조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옛날이야기들. 조선 철령의 이야기, 다이이치의 이야기, 왜덕산이나 코 무덤이총의 이야기 등.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히 걸터앉은 채로 흥미롭게 짜낸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었다.

그간의 이야기에 더해 한국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며 선동하던 관동대지진의 이야기나, 여러 다른 풍수와 미신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이상한 이야기지요?"
형연은 웃었다.

"말 몇 마디, 글자 몇 개로 실제 있었던 일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그 때문에 의식이 바뀌고. 믿기 어렵겠지만 여러분 조국은 그렇게 한국을 지배했습니다. 잔재, 일제강점기의 잔재. 아마 잔재라는 말을 한국보다 많이 쓰는 나라는 세계에 또 없을 거예요."

잠시 말을 멈춘 형연의 눈길이 흘깃 야스쿠니의 전경을 훑었다. 전쟁에 나가 죽은 말, 개, 하다못해 비둘기까지 동상으로 만들어져 늘어선 침략 전쟁의 기념.
그리고 거기 아무렇지도 않게 선량한 소원을 비는 쪽지들이 붙은 에마라는 이름의 목판.

전범을 기리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위에 덧씌워지는 초상들이 있었다. 철령의 저주를 펼치는 다이이치, 조선사를 써 내려가는 이케다, 관동의 조선인들을 학살하라 외치는 승려들, 왜덕산을 파헤치는 이케마츠.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정신과 의식의 세계에서 한국을 찢고 부수려는 전쟁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었다.

"이웃한 두 나라의 역사에 전쟁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많은 일을 겪고도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한국에 일본은 끊임없이 저주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반드시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 이 시대에."

형연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것은 한국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겪어도 줄곧 잊고, 용서한 적도 없으면서 스스로 용서했다 믿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당하지 않은 척 체면치레를 하며 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내가 야스쿠니를 불태우러온 까닭입니다. 일방향으로만 흐르는 두 나라의 관계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정신과 의식의 침략이 계속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국이 다만 비겁하여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아님을 경고하고자 나는 이곳에 왔습니다."

"일본이 이 광경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내가 여러분의 나라에 내리는 저주입니다."

툭.
손을 떠난 초가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 질끈 눈을 감아버린 형연은 한마디 말을 떠올렸다. 그래도 한 점 아쉬움이 없었을까? 물어오던 다소 촉촉했던 목소리.

감로사 우거진 나무 사이로 내민 얼굴. 그 말을 해 오던 목소리도, 순간의 감정도, 그 감정을 갖도록 살아온 삶도, 나아가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본질의 모든 것도 온전히 떠올렸다. 이렇게, 영원토록 기억 속에 남아 있잖아. 그때 그는 그렇게 답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불길은 오직 형연의 주위만을 일렁이며 야스쿠니의 목조에 옮겨붙지 않은 채 고요하게 춤을 추었다. 불꽃 속 가부좌를 튼 그림자는 당당하게 등을 곧추세운 채 미동도 없었고 지켜보던 모두는 어느순간 움직임을 멈춘 채 굳어있었다.

어째서.
야스쿠니를 불태우지 않고 스스로를 불태운 이유가 무엇일까.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민손을 거두지 않은 한국을 기억하라는 것일까. 그 양심의 빚을 기억하고 살아가라는 이 저주일까. 정신나간 테러리스트의 소행일까, 소신공양燒身供養 으로 화해를 기원하는 공덕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저 야스쿠니의 방화에 실패한 것뿐일까.

수많은 추측이 겹쳐가는 가운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본인은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수사나 추리의 결말도 논리적 귀결도 아닌 그저 마음이 그려낸 그림이었다.

말로만 수없이 회자되던 용서라는 단어, 나아가 화해라는 단어. 이총, 왜덕산, 관동대지진, 야스쿠니, 그런 거북하고 괴로운 키워드들이 모여 기울어진 저울의 반대편에 혼자 조용히 불타오르던 형연의 모습이 올라 있었다.

마치 모든 은원을 사그라 트리듯, 세상에 흩뿌려진 저주와 귀신을 한데 모아 불태워 버리듯, 모든 것이 불로 정화된 정토를 거기 비추어내듯.

야스쿠니에서 불타오르던 한 사람의 모습은 그렇게 세상에 새겨졌다.

나는 이렇게 태어난 사람인가보다. 누군가,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인가보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간 흔적을 더 남기고 싶다.
너와 함께 있었던 증거를 조금 더 남기고 싶다.

"야! 나랑 친구하자 - !"
메아리가 울릴리 없는 곳에서 메아리가 울리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 사이사이 그녀를 바라보는 익숙한 얼굴이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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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인간이 하늘한테 받은 몇 안 되는 선물이 망각인데, ...

처음에 책을 읽을 때 와닿았던 문장들에 밑줄긋기 해놓았던걸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북플에서 알려주는 1년 전 독서기록들을 보면서, 아 내가 이런 문장들에 밑줄을 쳤었었나 싶을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들도 다시금 보게 되고 한편으로는 와 이 문장 진짜 공감된다 싶은 것들도 다시금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뭐 새해라고 해서 특별할 거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어제보다는 더 나은 오늘이 날마다 쌓여가는 올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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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1-0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서곡 2024-01-01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앗 죄송합니다 위에 인사 남기면서 제가 성함을 잘 못 썼었어요 ㄷㄷㄷ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1-01 17:23   좋아요 1 | URL
아 괜찮습니다 ㅎㅎ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신걸요 서곡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전에 이 책의 초중반부까지 읽다가 중간에 다른 책들을 읽느라 이 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는데, 전에 읽을 때도 느꼈었지만 정말 술술 잘 읽히고 덤으로 역사지식과 함께 역사의식도 약간 생기는 듯 하다. 그리고 제목인 ‘풍수전쟁‘ 에서 느껴지듯 풍수지리와 관련된 어떤 기운같은 것들에 대한 호기심도 슬금슬금 올라오게 만드는 책인듯 하다. 또한 사실과 허구가 교묘히 섞여 있어서 좀 더 실감나게 읽히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마무리 되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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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이어지는 이야기 중에 어떤 사람과 교육부 장관 간의 대화장면이 나오는데 양 쪽의 주장이 각각의 측면에서 봤을 때 나름 합당한 주장들이라 쉽사리 어느 한 쪽의 의견만이 옳다고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사람이 어떤 관점을 갖고 세상을 보는가에 따라 똑같은 세상일지라도 완전히 다르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내 주장만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주장에는 어떤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건지 생각해보는 태도가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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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관련해서는 애초에 잘 모르기도 하고 어떤 기운 같은 것들? 이런 것들에 무지한지라 이 소설을 통해 이런 것들을 처음으로 접해보는데, 그냥 일단은 ‘이런 세계도 있나보다‘ 정도로 보고 넘어가는게 맞을 듯 싶다.

무쇠로 만든 방을 내어주고 불을 때 죽이려 했으나 사명당은 빙이라는 글자 하나를 붙여 놓곤 추워 죽겠다며 도리어 호통을 쳤다는일화 등 그 내용을 누구보다 구구절절이 보존한 것이 바로 좌도밀교였으니 그들에게 사명당이라는 이름은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선사, 그 예언에 따르면 사명당은 400년 세월이 흘러 조선이 망국의 기운을 풀어내고 운이 크게 트일 것이라 하였습니다. 망국의 기운을 풀어낸다면 그 풀려난 부정한 기운은 어디로 가겠으며 운이 크게 트인다면 그 운은 어디서 가져오겠습니까?"

"망국의 은원이 한국과 얽힌 나라가 일본 외에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400년 후라고 함은 바로 지금을 가리킵니다. 지금 일본을 보십시오. 세계에 뻗치던 힘이 이 작은 섬에 자꾸만 묶이려 하지 않습니까?"

"어찌 그리 삿된 소리에 얽매여 세상의 이치를 해치려 들어. 한국의 기가 흥하면 흥하는 것이지 일본의 기가 그 때문에 쇠한다니, 너희는 어째서 그렇게 모든 일을 싸워 빼앗고 속여 훔치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이냐!"

"네 놈보다 몇 수 높은 다이이치가 온갖 수를 펼쳐 놓은 것을 내 이미 안다. 조선을 망치겠다고 그리 많은 저주를 다 뿌려댔으면 지금 한국은 완전히 찌그러졌어야지. 네놈은 왜 한국의 기가 다시 뻗을까 걱정하느냐? 그따위 저주 백날 읊어봐야 결국 순리의 흐름에 미치지 못함을 사실은 네 놈도 아는 까닭이 아니더냐!"

"순리가 흐르면 화해를 하고 어깨동무를 하여 함께 누리고, 흐름이 막히면 도와 역경을 함께 넘고, 그리 기를 다스려야 만민이 함께 복을 누림을 어째서 모르느냐."

열을 빼앗아 가지면 셋만 얻고 일곱은 사라지되, 열을 반으로 다섯씩 나누면 그것이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됨을 어째서 모른단 말이냐.

"그 간단한 것을 왜 몰라! 네가 풍작을 거두면 이웃이 함께 배부르고 이웃이 풍작을 거두면 네가 함께 배가 불러야지, 서로 물길을 끊고 불을 질러서 무엇이 남는단 말이야!"

"한국에는 이제 풍수니 기운이니 떠들면 미친놈이나 사기꾼으로 여겨."

"자비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배급해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바쳐 남을 이루어주는 것이지요. 자신을 아래에, 사부대중을 위에 둘 수 있으면 진정한 고승입니다. 네가 부처라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지요. 자신을 바쳐 누군가를 위하겠다는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다."

"산 이름이 특이합니다. 왜덕이란 왜인의 덕을 보았다는 뜻입니까?"
"그 반대입니다. 왜인들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뜻이지요."

"다이이치는 좌도밀교의 인물이고 본디 일본 좌도밀교는 음지에 숨어 성性을 숭배하며 시체와 정을 통하는 수단으로 대수대명을 추구하는 무리였습니다. 유골에 영을 입혀 그 생기를 가져와 삶을 연장한다는 것이지요."

"허나 신통력이 하늘에 닿았다는 다이이치가 나타난 이후 이들은 세상으로 나왔고, 대수대명의 추구에 저주를 섞는 극단적인 집단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경계하던 종교인들과 술법사들이 있었으나 모두가 다이이치의 이름 아래 굴복해 버렸어요."

"혼이 빠진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니까요."

"세상을 감성이 아니라 이성으로 대하면 너무나 간단한 거야."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해. 나는 쉽게 아무 말이나 던지고 번복해도 다 받아주는 사람 아니야."

"소신공양? 그게뭐야?"
"스스로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거야.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해서 뜻을 이루려고 하신 거지."

"어쨌든 이렇게, 영원토록 기억 속에 남았잖아."
왠지 모르게 여운이 남는 말이었다.

"사실 나도 반신반의했는데 이제는 확실해. 사표를 내던질 때, 그 자식한테 파혼을 선언할때 너무 시원하더라. 그렇게 살고 싶던 게 아니었어. 내가 얼마나 성공했고 남보다 얼마나 낫고, 그런걸 즐기는 나는 나 스스로 건 최면이었어."

"네가 그랬지? 세상에는 다른 길이 있다고 한번 그길을 걸어보고 싶어. 지금 난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앞으로의 모든 날이 기대돼. 여행도 갈 거야. 여행 가서 우리나라 산들도 돌아보고 바다도돌아보며 내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어. 내게 세상이 무엇인지, 또 역사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수학은 세상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요. 예술도, 언어도 그렇듯이."

"그러나 예술이나 언어와 달리 수학은 긴 시간 공부를 해야만 그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어요. 너무나 생소하고 많은 개념을 먼저 깨우쳐야 합니다."

"달리 말해 그 과정이 즐겁지 않은 학생은 평생 단 한 번 쓰지도 않을 것들을 억지로 공부하며 낮은 평가를 받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야 해요."

"그럼에도 그 모두를 억지로 수학에 밀어 넣는 것이 폭력이라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수학을 안 가르칠 수는 없어요. 수학을 해야 반도체도 만들고 배터리도 만들고 하니까. 실질적으로 외국과의 경쟁에 가장 중요한 과목이 바로 수학이에요."

"중고생들은 당장 힘든 건 안 하려 들어요. 만약 선택적으로 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금세 대부분의 학생이 수학을 포기하게 되겠지요? 결국 국가는 경쟁력을 잃어요. 적성에 맞고 적성에 맞지 않고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장관은 분명 정책을 위해 희생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학생들의 희생에 대해 교육부는 어떤 보상을 했습니까?"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탈락한 학생을 바라보길 바라요.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야."

"때로는 시간을 알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날 밥을 먹지 않고 시간을 모른 채로 차분히 지내다 보면 과거의 삶이 떠오를 겁니다. 특히 가슴이 아프고 후회되는 일들. 주변인, 나아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왜 조금 더 잘해주지 못했던가 하나씩 마음속으로 사과하고 빌게됩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맑아지면 그때 비로소 자기 자신에 더 가까워지게 되지요.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알게 돼요."

"식물을 키워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없어요."
"제때 가지를 잘쳐내면 남은 가지는 싱싱하게 잘 자라요. 뿌리가 가져올 양분은 정해져있는데 먹어야 할 이파리는 많기 때문이지."

식물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 당연한 이치 였다.

"또 다른 방법은 큰 화분에 흙을 더 담아 분갈이를 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가지를 쳐내지 않아도 더 풍성하게 자랄 수 있으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지금의 휴전선 비슷하게 그어놓은 고려말 국경은 오류 중의 오류입니다."

"모릅니다. 학문이란 논문과 학술토론을 위해 오류를 수정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인데, 주류사학계는 전혀 토론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을 빼앗아간 자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무관심일지 모릅니다. 철령, 철령은 그 진실을 가리키는 키워드입니다."

"끓어 넘치는 귀신의 한으로 두 나라 사이를 막으라.
그리하여 본국의 기를 보전하라."

그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진짜, 세상에는 진짜 귀신의 힘을 다스리는 자들이 있었다.

또다시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풀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마치 사람이 분노와 고통에 떠는 것만 같았다.

"짐승 놈아, 내가 너희 나라에 무서운 저주를 심고 있거늘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냐는 말이다."

"아무것도 못 하지. 한국놈들은 항상 말뿐이야. 저 뒤에 숨어서 말로만 떠들 뿐이다. 억울하다고, 잘못됐다고. 안전한 곳에서 말로만 열심히 떠들다 곧 잊어버리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그런 놈들의 나라가 흥해? 기를 뻗치고 크게 흥한다고? 돈 몇 푼쥐여 주고 잘한다잘한다 쓰다듬어주면 좋아라 누구한테는 알아서 기는 놈들의 나라가? 그따위 나라가 대일본의 기를 거두어간다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풍언을 노려보던 이케마츠는 더 볼 가치도 없다는 듯 눈길을 거두며 독백했다.

"공평하지 않아. 세상에 그런 불공평한 일이 있을 수는 없다. 꿩은 하늘을 날고 돼지는 똥밭에 구르는 것이 올바른 이치다."

흙투성이가 된 몸을 반만 일으킨 노풍언은 이케마츠의 눈을 피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봉투에서 떨어진 고구마 빵, 그리고 일본 손님들과 나눠 먹겠다고 준비한 막걸리 두 병이 데꾸루루 비탈길을 따라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사람이 여기있을 줄 어찌 아셨소?"
"세월이 흘러 건물이 오르고 사람이 번잡할지언정 상서로운 때와 지기가 변하지는 않지요. 있어야 할 곳에 있었더니 거기 대사가 계셨을 뿐입니다."

"본래 본심을 감춰두고 백 마디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지혜를 겨루고 어렴풋이 상대를 짐작하여 새로운 화두를 건넨뒤 이별하는 것이 법사란 자들의 법도요. 그러나 당신은 그리 대할 사람이 아니지."

"배려 감사합니다."
"그 일, 당신이 맞소?"
"맞습니다."
선선히 나온 대답에 기미히토는 짧은 한숨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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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1-01 09:09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루피닷 님도 보람찬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