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통 사상인 도가 사상에서 중요한 개념이 음양 조화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어야 하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그 둘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태극 문양도 붉은색과 파란색이 서로 소용돌이치듯이 조화를 이루게 디자인된 것이다. - P59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경주 ‘불국사‘에는 ‘다보탑‘과 ‘석가탑‘ 두 개의 탑이 있다. 이 둘은 디자인 스타일이 완전히 반대다. ‘다보탑‘은 화려하게 장식이 많고 ‘석가탑‘은 단순한 미니멀 디자인이다. 이 두 탑은 경내에 들어서면 좌우 대칭으로 놓여 있는데, 이렇게 반대되는 디자인을 병치한 이유는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도가 사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 P60
해체주의 건축은 해체주의라는 현대 철학을 건축에 적용해보려던 노력으로, 거의 폭탄 맞은 것같이 해체된 형태의 디자인을 하는 흐름이다. - P62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생각했다. 20세기 전반기에 산업 혁명이 바꾼 세상을 보면서 성장한 그는 기계가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계를 통해 기능적인 건축을 추구해 왔다. 그렇게 철근 콘크리트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이다. - P67
그런데 누구나 그렇듯 살다 보면 생각이 바뀐다. 살면 살수록 자신이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고, 논리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직관적으로 마음이 가는 경험도 한다. 대표적으로 자연에 대한 느낌이 그렇다. 자연은 인간이 디자인하지 않았다. 자연은 인간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있어 왔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자연의 디자인은 그냥 좋다. 르 코르뷔지에도 말년에 그러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혈기 왕성하게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이 계획한 대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나이가 들어서는 자연의 디자인에 심취했다. - P68
젊어서 파리 시내 중심부의 건물들을 때려 부수고 콘크리트 고층 아파트를 지어 새로운 도시를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는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를 줍고 모래사장의 소라를 주워서 그 모양을 감상하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솔방울도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말년에 자연이 만들어낸 형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 P68
건축가의 감성이 바뀌면 디자인도 바뀐다. 젊어서는 차가운 직육면체의 ‘빌라 사보아‘를 디자인하던 사람이 말년에는직선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곡면의 ‘롱샹 성당‘을 디자인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일혼 가까운 나이가 됐을 때 완공된 ‘롱샹 성당‘은 기존의르 코르뷔지에가 보여 주던 디자인과는 사뭇 다르다. - P68
건물이 땅에 묻히다 보니 땅속의 습기와 물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방수를 위해 콘크리트 옹벽을 만들어야 했다. - P69
예배당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공간적으로 어떻게 정립하느냐다. 어떤 공간에 가면 신이 나를 압도하는 두려운 존재로 느껴지고, 어떤 곳은 신이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차이는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 P71
일반적인 종교 건축 공간은 좌우 대칭으로 구성된다. 좌우 대칭은 권위를 만들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 ‘자금성‘, ‘베르사유궁‘ 모두 좌우 대칭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좌우 대칭은 자연속 유기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하학적 규칙이다. 우리눈에 보이는 자연 풍경에는 좌우 대칭이 거의 없다. 비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풍경은 대체로 좌우 비대칭이다. 하지만 생명체는 다르다. 우리의 몸도 좌우 대칭이고 다른 대부분의 동물도 좌우 대칭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장 쉽게 인지하게 되는 규칙은 좌우 대칭이다. - P71
공간을 좌우 대칭으로 만들면 일단 규칙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규칙은 누군가가 기획하고 만든 공간임을 암시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어떤 권위자의 존재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이때 좌우 대칭을 나누는 축은 그 권위자의 권력을 세워 주는 선이 된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축선상에 위치한 것이다. 반면에 공간을 좌우 비대칭으로 만들면 이러한 권위를 깰 수 있다. - P71
‘롱샹 성당‘은 네 개 입면과 평면도가 모두 좌우 비대칭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심지어 신도들이 앉는 의자도 한쪽으로 치우쳐서 배치되어있다. 기하학적 규칙을 배제한 이러한 비대칭 공간은 나에게 무언가 규칙을 심으려는 강압적인 공간이 아니라 나를 자연스럽게 품어 주는 공간이 된다. ‘롱샹 성당‘을 밖에서 바라볼 때나 실내에 들어와서 경험할 때나 기존의 전통 건축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비대칭성에 있다. 권위적인 종교 공간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 P72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전 ‘지구라트‘는 제단이 50미터 높은 곳에 위치해 일반인들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의 제단을 올려다보게 되어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일반인들에게 제단은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느껴지고, 이는 자연스럽게 종교의 권위를 만든다. 무언가를 올려다보면 자연스럽게 경외심이 든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에서도 인간은 높이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달을 올려다보았다. - P72
원시 시대 사냥꾼이 사냥을 나갔을 때 자신보다 큰 동물을 만나면 올려다보게 된다. 이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서 있으면 죽는다. 올려다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친 자만이 살아남았다. 우리는 그런 도망자의 후예다. 따라서 올려다본다는 것은 경외심과 두려움을 유발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천장에 그림을 그리고 올려다보게 하였다. 고개를 들어서 올려다봐야 하는 미켈란젤로 Buonarroti Michelangelo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가 일반적인 벽화보다 더욱 감동적인 이유도 이것이다. - P72
사제가 서 있는 제단을 멀리서 바라보게 하는 것도 신과 제사장의 권위를 높이는 방법이다. 예배당에서는 직사각형 공간의 좁은 쪽 벽에 제단이 위치한다. 그리고 제단 앞으로 긴 의자를 줄지어 배치한다. 이때 내가 중간이나 뒤에 앉으면 앞에 수많은 사람을 사이에 두고 제단을 바라보게 된다. 그만큼 나와 제단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그 사이에 많은 사람이 가로막는 형세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깊은 공간감은 신과 예배자의 신분 차이를 크게 느끼게 한다. - P73
이런 원리는 ‘경복궁 근정전‘에서도 볼 수 있다. ‘근정전‘의 단 위에는 왕이 앉았고, 왕 바로 앞에는 종1품 관직의 사람부터 순서대로 2품, 3품, 4품이 배치되었다. 직급이 높을수록 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직급이 낮을수록 왕로부터 멀리 선다. 일반적인 사무실 자리배치를 봐도 부장과 말단 사원 사이에는 보통 과장과 대리 등이 배치되어 있다. - P73
이처럼 나와 누구사이에 많은 사람이 있고 공간이 깊게 느껴지면 내가 바라보는 그 대상은 나보다 더 높은 사람으로 느껴지고 경외심이 커진다. 반대로 물리적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면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나와 더욱 가까운 존재로 느껴진다. 건축가는 디자인을 통해 공간을 깊고 멀어 보이게 할 수도 있고, 가깝게 느껴지게 할 수도 있다. - P73
우리는 공간을 바라볼 때 투시도적으로 이해하고 깊이를 가늠한다. 따라서 투시도 기법을 잘 이용하면 공간의 깊이를 조절할 수 있다. 투시도 기법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때부터 그림 안에 소실점이 설정되고 그에 맞추어서 공간의 깊이감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감이 생겨난 것이다. 이 놀라운 기술은 건축에도 적용되어서 경우에 따라 투시도 기법을 이용해 착시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 P73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신은 인간이 범접해서는 안 되는 멀고 위대한 존재여야만 했다. 따라서 공간적으로 제단 역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 P74
때로는 좁은 공간에 교회를 짓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제단이 너무 가까워 보이는 문제가 생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시도를 왜곡해서 공간이 깊어 보이게 디자인한다. 예배당 좌석의 뒤쪽은 폭이 넓고 제단 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만들고, 천장도 제단 쪽으로 갈수록 낮아지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예배당의 뒤에서 쳐다봤을 때 10미터 깊이의 공간도 마치 20미터 깊이의 공간처럼 보인다. 좁은 공간이 넓어보이고, 제단도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만큼 신의 위엄도 높아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가 설계한 밀라노 ‘산 사티로 성당 Santa Maria presso San Satiro‘의 제단이다. - P74
‘롱샹 성당‘에서는 이 기법을 반대로 적용했다. 평면상으로 제단 쪽이 가로로 가장 넓고, 예배자의 좌석은 뒤로 갈수록 좁아진다. 단면상으로 보아도 천장 면이 제단으로 갈수록 높아지게 설계되어 있다. 투시도 기법을 거꾸로 적용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의자에 앉으면 실제 거리보다 제단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그뿐 아니라 의자를 평면상 사선으로 기울어진 벽체를 향해 배치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자에앉아 제단을 바라볼 때 앞사람의 뒤통수 너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왼쪽 10시 반 방향 정도로 틀어진 열린 공간을 통해 제단을 바라볼 수있게 되었다. 나와 제단 사이에 조금이라도 더 적은 수의 사람이 끼어들게 한 설계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 어느 교회보다도 예배자와 신의 관계가 가깝고 친근한 공간이 완성되었다. - P75
일반적으로 서양 건축물은 돌이나 벽돌로 만들기 때문에 비를 맞아도 방수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양 건축물에는 처마가 길게 나와 있지 않다. 반면 동양 건축물은 나무로 짓다 보니 비를 맞으면 나무 기둥이 썩어서 무너진다. 그래서 동양 건축물은 나무 기둥에 비가 들이치지 않게 처마가 길게 나왔다. 게다가 자주 많이 내리는 빗물 배수를 위해서 지붕이 급하게 기울어져 있다. 그렇다 보니 동양의 건축에서는 지붕이 크게 보인다. 서양 건축은 벽이 주인공이고, 동양 건축은 지붕이 주인공이다. 그게 동서양 건축의 외관상 가장 큰 차이점이다. - P79
그런데 ‘롱샹 성당‘은 처마가 캔틸레버 구조로 길게 나와 있어서 외관상 일단 서양에서 수천 년간 지어진 여타 성당과는 크게 달라 보인다. 게다가 두껍고 짙은 회색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지붕은 약간 기울어진 형태다. 덕분에 ‘롱샹 성당‘ 지붕은 동양 건축의 경사진 지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롱샹 성당‘은 일반적인 서양전통 건축과는 달리 지붕이 주인공이 된 건축물이다. 그렇다고 ‘롱샹성당‘이 벽이 없는 동양적인 건축도 아니다. 벽도 두껍고 존재감 있게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롱샹 성당‘의 디자인은 동서양의 조형적 특징이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 P79
캔틸레버(cantilever):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있는 보 - P487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가면 외벽에 괴물 모양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비가 올 때면 이 괴물의 입에서 빗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 토수구 조각을 ‘가고일‘이라고 한다. 번역하면 ‘이무깃돌‘인데, 원어가 느낌을 더 잘 살린다.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나디아>라는 애니메이션을 알 것이다. 여기서 극 중 악당의 이름이 가고일이다. - P81
일반적인 건물은 지붕에 내린 빗물이 건물 외관을 따라서 내려오는 배수구를 통해 땅까지 내려와서 배출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성당 건축에서는 가고일이라는 조각상을 길게 뽑아서 괴물의 입에서 물을 내뿜게 해 건물 외벽에서 멀어지게 물을 배출한다. - P81
수도원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제들이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식사하고 잠자는 장소다. 일종의 작은 집합 주거이자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절과도 비슷하다. - P88
바실리카(basilica) 양식: 고대 로마의 공공 건물에서 유래한 건축 양식, 전체 모양은 직사각형이고 중앙 본당, 측면 복도, 입구 맞은편 벽면의 반원형 구조물 등으로 되어 있다. - P487
처음 가는 도시에서 길을 모를 때나 복잡한 미로 같은 지하 쇼핑몰을 걸을 때 우리는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우리는 위치 파악이 안 되는 미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심한 경우 공포심을 느낀다. 공간 파악이 안 되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의 시기에 사냥이나 채집을 나갔을 때 내 위치가 어딘지 모른다는 것은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생명의 위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수십만 년 동안 누적된 이때의 경험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 P96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시간과 공간을 파악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다. 선사 시대 때 인간은 시간적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하늘의 해와 달을 보았다. 또 공간적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높은 산을 보거나 밤이 되면 별자리를 보았다. 이러한 랜드마크나 기준점이 있어야 나의 시간적·공간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생존할 수 있다. - P96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현대인은 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해나 달 대신 시계를 본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높은 산 대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고층 건물을 보고, 밤에는 하늘의 별자리 대신 불 켜진 건물의 유리창이나 ‘타임스 스퀘어‘의 LED 광고판을 본다. 위치 파악 장치가 잘되어 있는 곳에서는 위험을 덜 느끼고 빠르게 친숙해진다. 많은 사람이 빠르고 쉽게 뉴욕에 친숙해지는 이유는 시공간의 파악이 쉽기 때문이다. - P97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는 복잡한 미로임에도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창문을 통해 ‘자연‘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 투레트 수도원‘은 특별하게 밀폐된 두 개의 예배당을 제외하고는 어느 곳에서나 주변의 숲과 가운데 중정을 바라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어디에 있어도 자연을 기준점으로 나의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공포감을 느끼는 대신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 P97
‘라 투레트 수도원‘의 생활 공간과는 다르게 예배당 공간은 주변의 자연을 차단하고 천창으로 들어오는 철저하게 제한된 빛을 통해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예배당에서는 나의 내면에 있는 신을 만날 수 있고, 예배당을 벗어난 생활 공간에서는 자연 속의 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P97
다양한 공간감을 만들려면 벽과 창문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건물 내부를 걸을 때 열리고 막히는 변화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걷는 공간의 좌우가 벽으로 막혀 있다면 오랫동안 걸어도 공간의 변화를 못 느낀다. 어디를 가나 똑같은 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간에 창문이 뚫려 있으면 바깥 정원을 바라보면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건너편 공간을 보면서 좀 더 복잡한 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 P97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는 복도의 벽이 모두 유리창인 경우가 많은데 특이한 점은 그 창문에 수직 루버처럼 창틀이 있다는 점이다. 이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수직 창틀이 촘촘했다가 넓어지는 식으로 간격이 바뀐다. 이게 뭐가 대단할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을 걸어 보면 그 차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만약에 그냥 크게 열린 창문이라면 유리창 복도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장면의 변화가 별로 없다. 그런데 촘촘한 수직 루버가 있으면 걷는 방향에서는 유리창이 벽처럼 막혀 보인다. 그러다가 수직 루버의 간격이 넓어지면 창문은 투명성을 가진다. - P98
루버(Iouver): 폭이 좁은 판을 수평이나 수직 혹은 격자 모양으로 개구부의 앞면에 설치해 직사광이나 비를 막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함 - P487
게다가 또 하나의 변수가 더 있다. 바로 고개를 돌리느냐 아니면 진행 방향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내가 걷는 진행 방향으로 고개를 고정하고 걸으면 촘촘한 수직 루버 구간에서는 바깥 경치가 안 보인다. 하지만 그런 촘촘한 구간이라고 하더라도 고개를 돌려서 창문을 수직으로 바라보면 루버 사이로 중정 풍경이 보인다. 루버 간격, 고개를 돌리는 각도, 걷는 속도, 그날의 날씨, 해의 각도라는 변수에 따라 그 공간은 늘 다른 공간이 된다. - P99
나는 항상 공간은 절대적인 물리량이 아니라 기억의 총합이라고 말해왔다. 이 공간은 그러한 기억의 총량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공간이 된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사는 사제라고 하더라도 같은 공간을 지루하게 반복적으로 거닌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을 것이다. - P99
모듈러(modular):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최소 단위로, 일반적으로 특정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반복된다. - P487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의 그림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보면 양팔을 벌리고 선 사람의 위아래와 손가락 끝이 정사각형에 맞닿는다. 다빈치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신체의 두 팔 폭은 키와 동일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최소한의 방의 폭은 두팔을 뻗을 수 있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방의 폭이 183센티미터인 것이다. - P103
좌우 대칭 구조는 완전한 규칙의 공간을 만든다. 완전한 규칙의 공간은 거룩한 압박의 공간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의자배치 덕분에 참석자들은 마주 보게 되고 여기서 완전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 P109
영국 현대 미술가 올리버 비어Oliver Beer는 "모든 공간은 특유의 소리가 있다."라고 말한다. 음악을 전공했던 이 예술가는 공간에서 특유의 울림을 듣는 것이다. 이는 건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타당하다. 각각의 공간은 그 자체로 가로, 세로, 높이의 크기를 가진다. 그리고 그 공간의 마감재에 따라서 독특한 소리 반사율과 잔향이 정해진다. 이런 특징들이 모여서 그 공간만의 특별한 소리를 만든다. 우리의 예민한 귀는 특별한 소리 없이 고요 속에서도 그 공간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특징을 느낀다. - P110
‘라 투레트 수도원‘ 예배당은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가로로 긴 직육면체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마주 보는 긴 콘크리트 벽 때문에 소리의 잔향이 길고 마주 울림과 소리 간섭은 크다. 이러한 공간적 환경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더욱 장중하게 들리게 한다. - P110
그레고리오 성가 : 제한된 음역대의 단조 스타일 성가로 반주 없이 독창이나 합창으로 부른다. - P109
‘피르미니 성당‘은 르 코르뷔지에의 유작이다. 프랑스의 소도시인 피르미니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 르 코르뷔지에‘라는 단지가 있다. - P110
이 성당의 외관은 솔직히 조잡하다. 각종 장식 요소들은 일관성이 없고 본당 건물과 진입 경사로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모든 부정적인 생각은 내부에 들어가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 P112
경사로를 사용하는 이유는 방문객들이 자신의 보폭대로 걸으면서 주변 경관을 편안하게 감상하며 건물로 진입하게 하려는 의도다. 경사로는 위로 올라가는데 반대로 경사로 옆의 땅은 내려가는 모양새다. 건축물과 땅이 반대의 멜로디로 합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 P112
천장고: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 - P487
르 코르뷔지에는 창문, 경사로, 천창, 색깔, 공간 나눔, 바닥의 기울기, 제단 제기의 디테일, 음의 잔향, 공간의 형태 등등 건축가가 다룰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현란하게 사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디자인하는 경지에 이른 공간 교향곡의 작곡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진정한 마스터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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