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가 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뭔가 새로운 배움과 통찰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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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레이징 룩스‘라는 체스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자가 그들에게서 발견한 지속적인 성공과 성장의 요인들을 되짚어보고 여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그러한 요인들이 타당한지 여부를 확인해본다.

저자는 서문에서 엄청난 성과를 낸 사람과 보통 사람들의 차이는 어떤 재능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적절한 기회의 유무와 배우고자 하는 동기유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야망과 열망이라는 단어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소개하는데 야망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결과인 반면 열망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뒤이어지는 글에서 저자는 [주도력, 친화력, 자제력, 결의] 라는 4가지 키워드를 소개하면서 이 4가지가 제대로 갖추어져야 자신의 열망을 제대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여기서 이 4가지 요소들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것은 아이들이 어릴 때 다니는 유치원에서 부터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여기서의 전제조건은 충분히 훈련된 선생님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뒤에서 저자가 고백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잘 훈련된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기에 어릴 때 위에 언급한 4가지 품성요인들을 온전히 기르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선천적 재능이라는 것을 ‘인지적 기량‘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비슷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4가지의 ‘품성 기량‘은 그렇지 않다. 이 4가지의 품성 기량은 후천적인 상황과 환경에 의해 길러질 수 있는 것이고,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포텐(잠재력)을 지속적으로 터트리고 발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뒤이어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과 함께 이러한 뜻을 이루기 위한 보조 장치로서 ‘임시 구조물‘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원래 이 단어는 건설 현장에서 어떤 작업을 할 때 사람이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이나 위치에 도달해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때 임시적으로 설치하여 작업했다가 작업이 끝나면 다시 해체시키는 구조물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저자는 이 책에서 이 단어를 어떤 사람이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임시적인 장치의 의미로 사용한다. 책에 나온 표현으로 하자면 목표달성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임시 구조물‘의 역할을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가 제시한 답을 독자인 내가 나만의 문장으로 풀어자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그저 추상적이고 막연한 목표만을 던지기 보다는 단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책에 나온 사례를 보면 여기에는 어떤 재미나 자극 이런 것들이 양념처럼 가미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동기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서 상황에 맞는 행동들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해서 길러진 품성 기량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공에 가까워져가는데 선천적인 재능보다 훨씬 더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오로지 판단만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결과는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체스는 천재들의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의 젊은 선수들은 수열을 암기하고 신속하게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여러 수를 미리 내다보는 두뇌를 지닌 신동들이다.

누구든 숨은 잠재력이 있다. 이 책은 그 잠재력을 실현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위대함은 대개 타고나는 것이지 길러지는 게 아니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신동이 아니어도 대단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우리 모두 어떻게 하면 대단한 성과를 올리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내가 이 책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다.

남다른 재능이 아니라 남다른 동기 유발

"이 세상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다. 적절한 학습 조건만 조성된다면..."

수학, 과학, 또는 외국어의 새로운 개념을 터득하려면 보통 7~8차례 연습이 필요하다. 이 횟수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학생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타고난 능력의 차이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기회와 동기 유발의 차이인 경우가 흔했다.

우리는 잠재력을 가늠할 때 출발점(바로 눈에 보이는 능력) 에 집중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한다. 타고난 재능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전도 유망한 이들은 첫눈에 두드러지는 이들이라고 넘겨짚는다.

성취도가 높은 이들이 어릴 때 보이는 재능은 천차만별이다. 아주 어렸을 때 보인 재능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많은 이들의 잠재력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게 된다.

출발점을 토대로 종착점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적절한 기회와 배우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면 누구든 대단한 성취를 이룰 기량을 지니게 된다.

잠재력은 출발점이 아니라 얼마나 멀리까지 가느냐다. 따라서 출발점보다는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했는지에 좀 더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는 특이한 재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대체로 성장 환경과 양육의 산물로서 길러진다.

양육의 중요성을 무시하면 처참한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영역과 터득 가능한 재능의 범위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제약을 가하게 된다. 안락한 지대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보다 폭넓은 가능성을 타진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다른 이들에게서 밝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된다. 그들이 위대한 성취를 누릴 기회를 세상이 박탈해버리게 된다.

자신이 지닌 장점을 초월해야 잠재력을 실현하고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발전은 탁월함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지는 것 자체가 가치있는 성취다.

이 책은 야망이 아니라 열망을 논하는 책이다.

야망은 당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결과다. 열망은 당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얼마나 많은 직함을 얻고, 얼마나 많은 상을 받는지가 관건이 아니다. 그처럼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들은 개개인의 발전을 가늠하기에는 형편없는 대용품이다.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관건이다.

성장하려면 마음가짐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성장은 우리가 보통 간과하는 기량의 묶음과 더불어 시작된다.

탁월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보다 훨씬 타고난 재능에 덜 의존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주도력, 친화력, 자제력, 결의 등의 행동 유형을 타고나는 자질로 보지만, 사실 이러한 행동은 유치원에서 배운다. 학생의 출발점이 어디든 상관없이, 수 십 년 후 학생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행동을 학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아리스토텔레스)는 품성을 사람들이 순전히 의지력을 통해 습득하고 실천하는 원칙의 묶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나는 품성을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기량의 묶음으로 간주한다.

품성은 원칙을 지니는 상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지닌 원칙을 실천하는 학습된 역량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통달하는 교훈

기회가 저절로 굴러오진 않는다

기회가 두드릴 문은 본인이 직접 만들어야 했다.

품성이 재능보다 훨씬 중요하다

어릴 때 인지적 기량이 주는 장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

체스 마스터가 되려면 평균 2만 시간 이상, 그랜드 마스터 (Grand Master)가 되려면 3만 시간 이상을 연습해야 한다. 계속 실력을 향상하려면 과거의 게임을 복기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주도력, 절제력, 결의가 필요하다.

품성 기량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최고 기량의 수준을 한층 더 올려준다.

품성 기량은 "삶에서 성공할지를 예측하고 성공을 실현한다."

그러나 품성 기량은 무에서 창조되지는 않는다. 그런 기량들을 기를 기회와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멍석을 깔아주면 알아서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길이 보이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꿈을 접는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에 불을 붙이려면 길을 보여줘야 한다. 바로 그게 임시 구조물이 하는 역할이다.

거꾸로 가르침

이길 방법이 생기자 배우려는 의지가 생겼다.

"아이들에게 ‘인내심과 결의와 강인함을 터득하게 된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런 말을 하자마자 아이들은 꾸벅꾸벅 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게임 재미있다. 한 판 하자. 내가 너를 묵사발 낼 작정이다.‘ 그래서 투지를 불러일으키고 승부욕에 불을 지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차분히 앉아서 게임을 배우기 시작한다. 일단 게임에 꽂히고 난 후 게임에서 지면 이기고 싶게 된다."

경험적으로 볼 때, 품성 기량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구조적 문화적 억압 때문에 품성의 구축을 통해 이러한 기량을 터득할 필요가 더욱더 증폭된다. 수 세대에 걸쳐 당신 목을 짓누르는 억압을 받아왔다면 강해야 한다."

강한 품성 기량을 갖췄다고 해도, 심신이 지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가 생기거나 정체기를 겪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없다. 그러나 상당한 결과를 얻기 위해 일벌레가 될 필요도 없고 지칠 때까지 밀어붙일 필요도 없다.

놀이가 아닌 연습은 불완전하고,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게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 일지도 모르며, 자력으로 해낸다는 게 혼자 한다는 뜻이 아닌 이유를 알게 된다.

잠재력이 큰 사람들에게 사회가 열어주어야 하는 기회의 문은 가장 큰 장애물에 직면해온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닫혀있는 경우가 흔하다. 간과되거나 과소평가되어 왔지만 오랜 세월 끝에 돌파구를 찾게 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기회도 얻지 못한다.

행동이 아니라 당신이 터득하는 교훈이 차이를 낳는다. (중략) "성취는 성장에 있다"

근시안적인 수를 두려는 유혹을 뿌리치는 자제력은 갱단과 마약의 유혹을 뿌리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패턴을 암기하고 상대방의 수를 예측하는 결의와 주도력은 시험을 준비할 때도 적용되었다.

함께 연습하고 서로 비판해주면서 습득한 친화력은 그들이 뛰어난 협력자이자 스스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스승이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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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건축이 기후의 영향을 받는 것과 관련된 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벼와 밀을 재배하는데 있어 강수량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후의 차이가 건축 재료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최종 결과물로 나온 건축물의 형태에도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비가 많이 오는 동아시아 지역과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오는 유럽지역 간의 건축양식에도 커다란 차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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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절을 바꿔서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제15장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이라는 제목으로 된 부분이 나온다. 가장 먼저 ‘성 베네딕트 채플‘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글을 읽다보니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봤다. 개인적으로 몇 달 전에 동 저자의《인문 건축 기행》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거기에서 봤던 내용들과 거의 유사한 내용들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일종의 반복학습이 되어 뭔가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인 핵심메시지는 그 책과 이 책이 비슷했으나 세부적인 텍스트는 약간 수정이 된 듯 하다. 어쨌든 예전에 읽었던 책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다. 참고로《인문 건축 기행》의 p.174에 내가 밑줄쳤던 내용이 있으니 그 부분을 참조하면 될 듯 하다. 독자인 내가 봤을때 이 부분의 핵심은 자연환경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보는 것이 가장 성숙한 디자인의 방식(p.347)이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을 통해 저자가 자연과의 조화 혹은 균형을 중시하는 건축가인 것 같다는 내 나름의 근거있는(?) 추론도 해볼 수 있었다.

이어서 미국의 필립 존슨이 설계한 ‘글라스 하우스‘와 일본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스미요시 주택‘이 소개되는데, 전자는 저자의 다른 책에서 한 번 만나봤던 기억이 났는데 후자인 스미요시 주택은 이 책에서 처음 보는듯 했다. 다만 본문을 읽다보니 동 저자의《인문 건축 기행》에 잠깐 소개되었던 안도 다다오의 ‘아즈마 하우스‘ 와 유사한 건축물처럼 느껴졌다.

부가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하자면, 정말 신기하게도 ‘아즈마 하우스‘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스미요시 주택과 같은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미요시 지역에 위치해서 ‘스미요시 주택‘이라고 지칭했는데, 집 주인의 이름이 아즈마Azuma 여서 ‘아즈마 하우스‘ 라고도 부른다는 것이었다. 왠지 책에 나온 그림이 낯설진 않았는데 이름만 생소했던 터라 궁금증이 하나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소개되는 건축물은 일본 삿포로에 위치한 ‘아사히야마‘ 라는 동물원이다. 이 동물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원과는 달리 좁은 공간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직접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동안 손놓고 있었던 일본어 책을 다시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 였으니 뭐 말 다했다.


이어서 한강 다리 중 하나인 잠수교가 소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잠수교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저자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도 직접 방문해서 저자가 책에서 말해줬던 것들을 느껴보면 더욱 좋을 듯 하다.


다음에는 ‘시간의 이름‘ 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오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절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절기라는 것은 원래 농사일을 위한 목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여기서 시간에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또한 시간외에도 장소나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에 까지도 그 사고를 확장하여 이름을 붙이는 것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갈수록 획일화되어가는 시대에 독창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름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우리가 경사진 지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옹벽에 대한 것이다. 옹벽이 발생하게 된 이유와 이것의 건축적인 의미가 단절이라는 것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옹벽이 단순히 건물들간의 물리적인 단절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사람들 간의 심리적인 단절까지도 유발할 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심리적 단절에 덧붙여 저자는 임대주택공급으로 인한 집값하락을 우려하는 임대주택부지 인근의 집주인들에게서 형성되는 보이지 않는 벽까지도 다루고 있다. 물리적인 벽인 옹벽에서 시작하여 사람들간의 관계단절로 인한 심리적인 벽 그리고 자산 수준에 따른 보이지 않는 벽까지 저자는 유무형의 모든 벽을 섭렵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벽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벽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 같다는 게 느껴졌다.

벽에 이어서 울타리에 대한 얘기도 잠깐 등장한다. 저자는 울타리라는 것도 결국 시대가 변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울타리같이 구획하는 것이 사라지고 가급적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실제 영국의 사례도 하나 소개하고 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건축이 어떤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저자는 그 시대와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본문에서 우리나라 한옥이 지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는데, 각각의 과정들을 보면서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비단 건축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해당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BEST가 아닐까 싶다.

유럽 건축은 벽, 동양 건축은 지붕 - P339

우리가 사는 건축의 대부분의 것들은 절반은 자연환경과 기술력, 건축 재료 등에 의해서 결정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고유의 문화적 가치관이 합쳐져서 독특한 건축물을 만든다. - P339

자연 속에서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건강한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생태계가 변화할 때 한가지로 통일된 체제는 변화에 실패했을 경우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P340

인류를 위해서 다양한 삶의 패턴과 모습이 유지되는 것이 좋다. 같은 이유로 건축 역시 지역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P340

건축은 수천 년간 끊임없이 험악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이 두 집(글라스 하우스와 스미요시 주택)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고안된 디자인이다. - P348

일본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제한된 3차원 공간 안에 보행자 동선을 복잡하게 집어넣어서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10평이라는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면 좁아 보인다. 하지만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한눈에 안 들어오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다른 시점에서 체험하고 바라보게 하고 시간을 지연시키면 더 넓게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전통 건축에서부터 시작해 현대에 와서 안도 다다오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 P350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근처에 ‘아사히야마‘라는 시립 동물원이있다. 이 동물원은 커다란 사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희한한 동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300만 명이 넘게 오는 세계적인 동물원이다. 한겨울에도 꾸준하게 사람들이 찾게 만드는 매력은 동물 축사의 건축 디자인에 있다. - P350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건축 공간이 다르다. 동물을 위한 재미난 건축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 동물원 축사에 가면 첫 번째 드는 느낌은 ‘좁은 공간이지만 동물들이 지루하지 않겠구나‘이다. 마치 일본에서 사람을 위한 건축물에서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려고 다채롭게 이리저리 동선을 파서 공간을 만들 듯이 동물들의 동선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 P351

이 모든 공간은 한 곳에서 다 보이지 않는다. 계속 이동하면서 보고 머릿속에서 재구성올 해 봐야 겨우 이해가 가능한 공간이다. - P352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동물이 다니는 공간은 구석구석 높이와 폭이 다르고 동물의 공간과 인간의 공간이 서로 관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공간이 아주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이렇게 동물의 동선과 사람들의 동선이 꽈배기처럼 교합되어 있어서 동물을 위, 아래, 옆에서 다채로운 형태로 관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들 역시 이전에는 체험해 보지 못한 깊이 있는 동물과의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 P352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는 좋은 건축 디자인이 좁은 공간에서 동물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 P352

한강에는 많은 다리가 있지만 하나같이 너무 높고 길어서 도보로 건너기보다는 자동차나 지하철을 이용해서 건너기 마련이다. 교통수단을 통해서 빠르고 높게 강을 건너다보니 강과의 교류를 체험하기가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 - P353

건축물 중에서 인간의 삶을 가장 크게 변형시키는 건축물을 찾는다면 다리일 것이다. 태초에 땅은 하나였다가 비가 내리면서 시내와 강이 생기고 이들은 땅을 둘로 나누었다. 다리는 이렇게 물이나 골짜기로 나누인 두 땅을 다시 연결하여 땅의 관계와 성격을 바꾼다. 비근한 예로 마포대교가 여의도에 놓이고 아무도 가서 살기 싫어하던 여의도는 서울의 맨해튼이 되었다. - P353

잠수교는 전쟁 시에 폭격으로 다리가 끊어져도 손쉽게 공병대가 연결할 수 있도록 짧은 교각을 자주 놓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한강의 어느 다리보다도 수면에 가깝게 붙어 있다. 장마철에는 물에 잠길 때 저항을 줄이기 위해 난간도 만들지 않았다. - P353

잠수교는 추후 유람선을 위해서 아치 구조를 만들어서 가운데를 들어 올렸다. 이 아치는 사람이 다리를 건널 때 물과의 거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게 해 준다. 이러한 경험은 항상 일정 간격을 유지해서 지루하기만 한 다른 다리보다 더 낭만적이다. 잠수교는 진입부에서 강 건너편이 안 보였다가 아치의 꼭대기기에 서면 높은 데서 내려다보게 되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한다. - P354

잠수교는 한강 수위가 올라가면 끊어진다. 거의 모든 건축은 자연을 극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하지만 잠수교는 자연에 져 주기도 한다. 마치 시골에서 물이 불어나면 없어지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 P354

24절기는 농사일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 P355

시간을 사람의 체험과 연결시킨 절기는 숫자 달력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 P355

절기는 시간의 이름이다. - P355

장소에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그 장소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이름이 없다면 인간과 상관없는 ‘곳‘일 뿐이다. 북위 37도 동경 129도하면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같은 곳에 ‘정동진‘이라는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 바뀌게 된다. (중략) 새해의 일출을 보면서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P356

시간이든 장소든 이름을 붙이는 것은 나와의 관계를 맺는 첫 단추이다. - P356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지명들은 대부분 두 글자의 한자로 되어 있다. 사람 이름을 두 개의 한자로 작명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 장소도 인격이라는 선조의 뜻이 있는 듯하다. - P356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비로소 사람에게 의미가 결정되어지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부터 지어 주고, 연애를 시작하면 자신들만의 애칭을 만들어서 붙이는 것이다. - P356

우리는 보통 발전소와 저수지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있어서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로 도시가 형성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불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원과 마실 물이다. - P357

달동네는 사람이 걸어 다니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래서 더욱 사람에게 정감이 가는 공간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 P359

수십 미터의 건물이 평지에 들어갈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경사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커다란 평지의 땅이 필요해졌다. 당연히 토목기사들은 커다란 계단식 택지 개발을 하였다. 건물을 땅에 맞추지 않고 땅을 기존 건물 스타일에 맞추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땅에 어마어마한 콘크리트 옹벽을 보고 살게 된 배경이다. - P359

경사가 급한 땅일수록 그 옹벽의 높이는 더 높아진다. 달동네가 재개발 되어서 들어가는 지역일수록 더욱 심하다. - P360

건축 요소적으로 보았을 때 벽은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간이었다가 벽이 서면 둘로 나누어지게 된다. 옹벽도 벽이기 때문에 지역의 단절을 의미한다. - P360

사람 사이에 벽이 없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커뮤니티 형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동별로 옹벽이 나누어져 있다. 이들은 전체의 커뮤니티라기보다는 동별로 나누어진 사회이다. - P360

경사 대지와 아파트라는 건축 형식으로 야기된 옹벽은 사람들 간의 단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땅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도 바꾸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이다. - P361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차별화시키고 싶어 한다.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존재로 구별되고 싶어한다. - P363

인간은 끊임없이 신분 계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계층이 만들어지면 시스템에 의해서 자신의 권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의상으로, 말투로, 자동차로, 핸드백으로, 학교로, 사는 동네로 구분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본능이 우리의 발전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 P363

한국 사회에서는 현재 지난 수십 년간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서 형성되었던 주택 시장에 새로운 형태의 임대주택을 융화시켜 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자 기존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옹벽보다도 더 심각한 벽이다. 우리나라에 브랜드를 가진 대형 아파트 단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집단 차별화 의식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 P363

계층 간의 이동을 막는 벽이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 문제가 있어도 그것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고 나 자신의 문제라고 귀결되기 때문이다. - P364

모두가 내 탓이라고 하는 사회도 모두가 시스템 탓이라고만 하는 사회도 바람직하지 않다. 둘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건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계층간의 이동을 막는 벽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 간의 신분 계층을 나누려는 보이지 않는 벽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느냐에 우리 사회 미래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64

너무 많은 울타리와 보호난간은 민주화, 산업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 P365

무단 점유로부터의 소유권 보호가 중요해지면서 각자 울타리를 치게 되고 하나의 자연은 인간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졌다. 도로 역시 빨라진 자동차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난간이 설치되었다. - P365

현대 산업화 사회로 더 발전할수록 땅에 선을 긋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 P365

실제로 자연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연을 나누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국경선, 38선, 이스라엘 가자 지구도 그렇다. 건축에서 울타리는 벽이고, 벽은 단절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자연 속에 너무 많은 단절의 벽을 세운 거다. - P365

수백 년 전 영국 귀족들은 자신의 영토의 영역을 나타낼 때에 담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이 키우는 양들이 자신의 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멀리서는 안 보이는 해자 같은 웅덩이를 파서 울타리를 대신했다. 이를 ‘히호‘라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역은 구획하지만 시각적으로 자연 속에 인공의 경계가 안보이게 했다. 히호 덕에 자신의 영토가 무한하게 더 넓게 느껴지기도 하고 동시에 자연의 모습을 보존할 수도 있었다. - P366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에서 나타나는 기법을 지금 현대의 건축과 도시에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현대 도시의 밀도와 전통 건축의 밀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 P366

정자 건축은 전반적으로 도가의 무위자연에 영향을 받아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자세를 견지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필요에 의해서 자연을 정복하자는 서양식 사고방식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런 사회는 "우리는 불도저를 가지고 있으니 땅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사회이고 건축은 그것에 맞추어서 발전해 왔다. 어찌 보면 둘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다. - P371

한국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은 다르다 - P372

과거를 지나치게 폄하해도 안 되지만 미화해서도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은 현재와 미래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과거의 성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 P372

우리가 좋아하는 전통 건축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비결은 그 시대의 수요와 기술에 가장 맞는 건축을 하는 것이다. 한옥을 예로 들어 보자. 한옥이 훌륭한 것은 그 시대의 재료, 기술적 한계에서 만들어 낸 최선의 답이기 때문이다. - P372

부재: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 - P387

공포 :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 P387

대단한 철학적인 사고 없이도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에서 한옥 디자인의 발생을 설명할 수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한계와 적용 가능한 기술을 최대한 적용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전통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P374

어떠한 것이 되든 재료, 기술, 한계를 적절하게 적용한 것이이 시대를 대표하는 전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데는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는 다름 아닌 ‘시간‘이다. - P375

건축가의 재능과 노력 위에 시간과 적절한 경제적 투자가 합쳐진다면 후대에 자랑스럽게 남겨 줄 한국적인 것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한 가지 형태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대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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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밑줄친 문장은 지난번 포스팅 막바지에 다뤘던 재독의 중요성에 관한 글이다. 재독을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처음 읽을 때 미처 느끼지 못한채 지나갔던 것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책의 내용을 좀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함이다. 오늘 밑줄친 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학교시험범위에 나오는 내용을 암기하기 위해 책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세세한 부분들까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때 외웠던 일부 지식들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경우들을 보다보면 재독의 힘이라는 게 확실히 있기는 한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을 좀 덧붙이자면 요 근래에 읽었던 책들의 경우 처음부터 일일이 다시 읽기보다는 처음 읽을 때 밑줄쳤던 내용들을 위주로 읽어보는 경우들이 있는데, 한동안 잊고 있다가도 다시 보면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책 내용을 다시금 상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재독의 힘이라는 게 그 회독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비례해서 강력해지는 속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말하는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될 듯 하다.

근데 또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책을 처음에 한 번 완독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한동안은 그 책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바로 재독하기 보다는 일정기간 텀을 두고 재독하는 게 적어도 나한테는 맞는 것 같다. 이건 물론 사람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기에 성급하게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는 말이다. 즉, 처음 읽을 때 뜨거워졌던 머리가 어느 정도 식혀진 상태에서 재독을 하는게 현실적으로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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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책에서 배운 것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것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책의 내용을 보다 체계적이고 논리정연하게 머릿속에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이런 표현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독서토론 모임을 하는 것도 권장하고 있다. 알라딘 서재의 글들을 보다보면 이미 이러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계신분들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게 다 독서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활동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것이다. 독서토론의 본래 목적은 내가 읽은 책을 더 깊이 있게 읽기위한 것인데, 내가 그다지 관심도 없고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책을 독서토론 모임에서 선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참여하게 되는 경우 그 효과가 현저히 감소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어떤 모임에 참여할 때 그 모임의 본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주객전도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스스로에게 책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방법도 제안한다. 독서토론처럼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고 생각하고 실천해본다면 독서토론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얘기다.

참고로 이는 단순히 어떤 책뿐만이 아니라, 학습한 내용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데도 도움이 될만한 방법이기에 학교나 학원의 선생님들도 종종 학생들에게 권장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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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오감을 활용하여 독서활동을 할 것을 권한다. 소리내어 읽기, 각종 체험활동 등 단순히 시각만에 의존하지 않고 청각, 촉각 등도 겸하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독서가 될 것이라고 한다.

뒤이어 독후감을 쓰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단순히 중요성 언급에 그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노하우들에 대해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내가 기존에 하고 있는 독후활동들을 재점검하면서 잘하고 있는 것과 보완해야 할 것들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선 ‘대충 읽기‘ 또는 ‘훑어 읽기‘라는 것이 나오는데, 문자 그대로 대충 훑어 읽기만 하고 끝낸다는 의미보다는 독서의 단계를 두 단계로 나누어 처음 읽을 때 전반적으로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정도만 파악하고 두 번째 읽을 때 처음 읽었던 배경지식들을 토대로 하여 책의 내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독서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인 고미야 가즈요시가 자신의 책에 소개한 것을 저자가 인용하고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여 이 책에 적은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독서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정독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오늘 읽은 부분에 소개된 2단계 통독법을 잘 익혀서 실제로 독서할 때 한 번 적용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오늘 배운 2단계 통독법이라는 게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정독 방식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1단계에 적용하는 ‘대강 읽기‘ 혹은 ‘훑어 읽기‘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나무를 보기 전에 커다란 숲을 먼저 보는 방법인데 이를 통해 2회독시에 세부적인 나무들(책의 내용들)의 경중을 보다 잘 분별할 수 있을 거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좋은 노하우들을 잘 체득하여서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독서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책 내용을 더해서 오랫동안 기억하려면 재독(중독)을 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몇 년 동안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은 이유도 경험과 지식을 더해서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 P137

책에서 배운 것을 표현할 때 독서 효과는 배가 된다 - P138

독서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활동이다. 책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간접 경험을 하면서 저자의 노하우가 전달된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서 지식이 더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독서토론이 필요하다. 책의 내용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서 이야기하는 동안 지식의 깊이는 더해진다. - P138

독서토론은 여러사람이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이건데 독서토론을 위해서 관심 없는 책을 읽는다면, 오로지 독서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의욕은 반감될 것이다. - P138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지 않아도 독서토론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험공부 할 때,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기억에 새기기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 공부한 내용을 가르치는 방법이 있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공부하면 공부의 효과가 훨씬 높은 것처럼 독서도 책을 읽고 자기 자신에게 소리 내서 가르치면 효과가 배가 된다. - P139

읽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자기 자신에게 가르치듯 말해 보자. 책 내용도 오래 기억되고 머릿속에서 지식도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 P139

책을 읽고 자기 자신에게 가르치듯 말하는 게 분명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 방법 대신 권하는 것이 소리 내서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가능하면 여러 가지 감각기관을 동원하는 것이 좋다. 소리 내서 책을 읽으면 눈, 입, 귀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 P139

독서지도사들은 책을 읽을 때 오감을 활용할 것을 권한다. 사람은 의사소통을 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 (오감)을 발동하여 정보를 받아들인다. - P139

정보를 받아들이기 가장 쉬운 수단이 책이다. 강의를 듣거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면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책은 눈으로만 읽는다. 강의와 세미나에 참석하면 눈과 귀,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면서 손도 사용하게 된다. - P140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눈, 입, 귀, 손, 동작을 사용해서 정보를 교환한다. 대화할 때는 여러 감각을 사용해서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할 수 있다. - P140

강의와 세미나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메모한 내용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대화나 강의에서 받아들인 정보에 비해서 눈으로만 읽은 책 내용은 기억에 오래남지 않는다. - P140

요즘 학교에서 체험활동과 수행평가를 강화하고 있다. 직접 체험해보면 기억에 더 오래 남고 자기만의 노하우도 생긴다. - P140

책을 읽을 때 여러 가지 감각을 많이 활용할수록 더 오래 기억하고 자기만의 지식으로 체계화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시험을 준비하거나 암기할 때도 소리를 내서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자기 목소리를 들으면서 귀로 외우면 효과가 있다. 영어회화를 공부할 때 문장을 반복해서 듣는 것도 이런 암기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 P140

소리 내서 읽는 것을 음독이라고 하는데 음독은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문장을 암기할 때 효과가 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눈으로만 공부하지 말고 직접 말해보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 P140

소리 내서 읽으면 저절로 외워지기도 한다. 책을 소리 내서 읽었을 때 얻어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기억력과 집중력을 증진시키는 것 외에 책을 소리 내서 읽으면 말하는 능력도 향상된다. 소리 내서 책을 읽는 동안 글의 의미, 앞에 오는 말과 뒤에 오는 말, 강조해야 할 단어 등을 인식한다. - P141

책에 수록된 글은 여러 번 교정을 거쳤다. 문맥이 논리적이고 단어의 조합에도 오류가 없기 때문에 소리 내서 책을 읽으면 이해력과 분석력이 향상되는 동시에 말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 P141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책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소리 내서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 감각기관에서 책의 내용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여기에 책의 내용을 표현하는 방법을 한가지 더 보태면 글을 써보는 것이다. - P141

책을 읽고 기억할만한 문장, 느낌, 자신이 겪었던 일 등을 정리해서 남겨두면 책의 내용이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 - P142

기억에 남는 문장을 블로그에 옮겨 적으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문장의 조각들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 완전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때 책을 한 번 더 펼쳐보고 어렴풋한 기억을 완성시키면 머릿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확실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 P142

블로그에 서평을 남기거나 독후감을 쓰려면 책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읽어볼만한 책‘이라든지 ‘내용이 좋았다‘라는 독후감 보다는 기억에 남는 문장과 느낌, 책을 읽는 동안 했던 생각들을 적어두면 나중에 책을 읽고 써둔 몇 줄의 글만 읽고도 전체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 - P142

독후감은 장점이 많지만 독후감 쓰기를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다. 책을 여러 권 쓴 저자들에게도 글을 쓰는 일은 힘들다. 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만큼 독후감을 써보면 남는 것도 많다. 책의 내용을 자기만의 논리로 정리해서 글을 쓰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독후감을 쓰면 저자의 경험과 생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나중에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을 읽을 때 공감할 수 있는 범위도 더 넓어진다. - P142

눈으로만 읽은 독서보다는 오감을 이용한 독서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독서지도사들은 독서활동만큼 독후활동도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독후감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 P142

시간과 공간, 지식의 한계 때문에 책의 내용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독후감을 쓰면서 저자의 경험과 생각에 공감하면 책을 읽은 효과는 배가 된다. - P143

독후감 쓰기는 꼭 실천해야 하는 독후활동 - P143

독후감에는 일정한 형식이 없다. 독후감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쓰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쓰면 독후감상문이고 줄거리를 중심으로 쓰면 독서기록, 비평을 쓰면 독서평론이 된다. - P143

사람의 기억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책을 읽고 하루만 지나도 책 내용의 절반 정도는 기억에서 사라진다. 책을 읽은 뒤의 느낀 점과 줄거리를 글로 쓰는 습관을 들이면 생각을 넓고 깊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책의 내용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 부수적으로 글을 쓰는 능력도 향상된다. - P143

독후감의 제목은 책제목을 그대로 쓰는 것보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함축해서 제목으로 쓰고 책제목은 독후감 제목 아래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 P143

독후감을 쓰는 형식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책을 읽게 된 동기,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의 느낌, 책을 고른 이유,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또는 표지의 느낌 등으로 시작해서 전체적인 줄거리 요약, 감동을 받은 문장, 읽고 난 뒤의 기억에 남는 내용,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줄거리나 감동받은 문장, 기억에 남는 내용 등을 모두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느낀 점이 중요하다면 느낌을 위주로, 줄거리를 기억하고 싶다면 줄거리 요약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쓰면 된다. - P144

유의할 점은 독후감에는 느낌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줄거리만 지나치게 길게 쓰는 것은 좋지 않다. 줄거리는 요약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내용만 발췌해서 적고 자신의 느낌을 써야 한다. - P144

줄거리와 느낌을 어느 정도 비율로 써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줄거리와 느낌을 쓰는 방법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독후감을 쓸 때는 생각과 의견, 느낌을 자유롭게 적는다. 여러 번 읽은 책이라면 줄거리 요약을 생략하고 느낌만 쓰기도 한다. - P144

독후감을 쓰면서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학교에서 배운 문단 나누기와 중심 내용 정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 독후감을 다 쓴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듣거나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이 쓴 독후감을 읽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 P144

여러 번 훑어보는 것도 독서법이다 - P145

어떤 내용이 나올지 예상하면서 책을 훑어보면 내용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있다. 인간의 뇌는 한 번 훑어보는 동안에도 어디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지심리학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론이다. - P145

책을 대충 읽으면서 예상한 내용이 나오는지 살펴본다. 예상한 대로 내용이 전개되면 ‘그럴 줄 알았어‘라고 생각하면서 기억하고 예상 밖의 내용으로 전개되면 ‘어! 어떻게 이렇게 되지?‘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내용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 - P146

가설을 세우고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의문을 가지면서 책을 읽는 방법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책의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가설을 세우고 자기 생각이 옳은지 확인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다. - P146

책을 대충 읽는 방법은 다시 읽을 때, 즉 재독(두 번 읽기)할 때 그 효과가 나타난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서법인 통독을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대충 읽고 다시 읽으면 효과적이다. - P146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 고미야 가즈요시는《선택적 책읽기》에서 통독을 두 개의 단계로 구분하면서 1단계 통독과 2단계 통독이 가진 의미가 다르다고 했다. - P146

즐기기 위해서 읽고 지식을 얻기 위해 다시 읽고 - P146

고미야 가즈요시가 말하는 1단계 통독은 대충 읽는 것이고 목적은 독서를 즐기기 위함이다. 2단계 통독은 두 번째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 P146

1단계 통독은 읽기를 즐기는 것이다. 대충 읽기를 속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대충 읽기와 속독은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 속독을 배웠다면 대충 읽는 과정에서 핵심을 더 잘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1단계의 통독인 대충 읽기를 잘 하려고 속독을 할 필요는 없다. 1단계 통독은 대강의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다. 여기서 ‘대강의 지식‘을 얻는다는 의미는 나에게 필요한 지식을 선별하기 위해 읽는 과정을 말한다. - P147

한 권의 책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을 골라내는 것도 숙련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다. 통독通讀은 말 그대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는 것이다. 차례를 훑어 본 후 소제목과 내용을 읽으면서 문단의 주제를 파악하며 읽는 동안 전체적인 맥락과 글의 흐름을 파악하고 필요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 P147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 훑어보는 과정을 1차 통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점에서는 1차 통독만큼 세밀하게 훑어보지는 못한다. 눈으로 대충 끝까지 읽는다고 해서 통독이 아니다. 이것이 통독이 속독과 다른 점이다. - P147

• 1단계 통독은 전체 내용을 대충 읽으면서 독서를 즐기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으면서 큰 테두리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 P147

• 2단계 통독은 정보의 획득과 더불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 P147

• 1단계 통독과 2단계 통독은 책의 내용인 논리의 무게에 따라 나누어 사용한다. - P148

• 2단계 통독에서는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고 자기 생각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 P148

• 2단계 통독 수준의 책을 많이 읽으면 1단계 통독이나 속독으로도 많은 양의 정보를 이해할 수 있고 1단계 통독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 P148

1단계 통독을 하면서 책의 차례와 구성을 확인하고 필요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했다면 2단계 통독을 해야 한다. 만약 1단계 통독에서 필요한 내용이 없다고 판단되면 2단계 통독을 할 필요는 없다. - P148

2단계 통독은 공부를 위한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다. 밑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으로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고 필요하다면 책의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면서 읽는다. - P148

2단계 통독을 할 때는 책상에 앉아서 일정 시간 동안 몰입해서 책을 읽는다. 책의 내용이 논리에 맞는지 확인하면서 읽거나 중요한 부분을 요약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2단계 통독은 책을 읽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린다. 학생들이 공부할때도 1,2단계 통독을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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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건축물은 자연의 겉모습이 아닌 그 본질을 모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p.316에 밑줄 친 내용 중에 새와 새인형과 비행기의 예시를 통해 저자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내용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본다면, 비단 건축물 뿐만이 아니라 여타 다른 분야의 노하우를 모방하는 것도 결국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를 잘 알아채서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에 기반해서 나만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작업이 좀 더 가치있는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독자들 개개인이 속한 영역에 맞게 잘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어서 저자는 영화《그래비티》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중력에 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여기서의 핵심은 건축이 중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작업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 중력이라는 제약을 극복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론 몇 달 전에 읽었던 동 저자의《인문 건축 기행》이라는 책에서 ‘제약은 창조의 어머니‘ 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읽은 부분이 이와 비슷한 의미가 느껴져서 두 책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는 느낌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건축뿐만 아니라 분야를 막론하고 제약이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여 어떤 성과나 결과물을 얻는다면 그것의 기쁨과 감동이라고 하는 것은 제약이 없을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정도로 클 것이라는 생각도 같이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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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각론 형식으로 하여 바둑과 체스, 한자와 알파벳, 개미집과 벌집, 空間과 space, 한식밥상과 코스요리 등을 비교하면서 글이 전개된다. 처음에는 이러한 것들이 건축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다 읽고나서는 이 챕터의 제목인 ‘동과 서 :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build-up)작업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각각의 사례에서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비교하며 동양은 상대적인 것(대상 간의 관계)에 서양은 절대적인 것에 가치를 둔다는 핵심 메시지를 뽑아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건축의 스타일도 동서양에 차이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낸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과 수학적 개념에 기초한 기하학적인 건축을 중시하는 서양의 건축은 그 이면에 있는 생각이나 사상부터 애초에 달랐기 때문에 서로 다른 양식으로 나타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건축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동서양 문화의 전반적인 특징을 살펴보면서 사람들의 성향이나 특징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동양 사람들이 왜 관계를 중시하는지, 서양사람들은 왜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면이 좀 더 높은지 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다 한 차원 높아진 이해를 통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이 형성된 것 같고, 세상을 볼 때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조금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든다.

무언가가 다른 어떤 것을 모방한다면 모방을 하는 자는 이미 오리지널보다 못한 모조품이 된다. 그래서 짝퉁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 P316

만약에 우리가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건축물에 적용한다면 그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새와 새인형과 비행기가 있다고 하자. 하늘을 나는 새와 모양은 다르지만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새인형보다는 더 새와 비슷하고 새로부터 배운 것이 있는 것이다. - P316

어느 문화평론가는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점을 가까운 거리를 갈 때에 뛰면 어린이, 걸으면 어른이라고 말했다. - P317

중력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한 방향으로 흐른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만 흐른다. 인간은 그것을 거꾸로 거스를 수가 없다. - P317

인간이 하는 작업 중에서 중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작업은 아마도 건축일 것이다. 건축에서 중력은 인간이 건축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극복해야 할 힘든 과제이자 적이다. 하지만 영화 「그래비티」에서 중력이 있었기에 주인공이 걸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중력이 있었기에 건축은 여러 가지 감동을 줄 수 있다. 이런 제약은 다른 산업디자인에서는 찾기 힘든 건축 고유의 제약이다. - P318

다이빙 선수가 다이빙 보드에서 떨어지면서 아름다운 포즈를 취하듯, 건축은 중력을 어떻게 아름답게 극복하느냐를 통해서 다른 예술이 주지 못하는 감동을 전달해 준다. - P318

제약은 언제나 더 큰 감동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 P318

바둑은 검정과 흰색의 돌이 서로 먹고 먹히면서 빈 공간인 집을 짓는 게임이다. 이때 흰 돌과 검은 돌 하나하나의 기능은 모두 같다. 대신에 한 팀의 돌이 상대팀의 돌로 둘러싸여지면 안에 있던 돌을 잃게 된다. 바둑 게임의 규칙은 특정 바둑돌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위치에 의해서 돌의 기능이 정해지는 것이다. 반면에 체스는 하나하나가 다른 기능을 가지고 상대방 말들을 죽여서 결국에는 왕을 죽여야 이기는 게임이다. - P321

체스의 원래 이름은 ‘차투랑가(Chaturanga)‘이다. 이 게임은 서기 600년경에 인도에서 만들어졌는데, 625년경에 페르시아로 건너가게 되었고, 이후 700년경에 무어 이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페르시아인에 의해서 서양에 전파되어 지금의 유럽을 대표하는 게임인 체스가 된 것이다. - P322

체스는 본질적으로 유목 민족의 전쟁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체스와 흡사한 게임으로 중국의 장기가 있는데, 장기는 말과 코끼리, 졸병, 대포 등이 나와서 전쟁을 하는 게임이다. 장기나 체스가 유목 사회의 전쟁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라면, 바둑은 농경 사회의 문화에 기반을 둔 게임이다. 바둑은 마치 화전민이 경작지를 넓혀 나가듯이 빈 땅을 넓히는 땅따먹기 게임이다. - P322

두 게임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둑은 상대적이고 체스는 절대적인 게임이다. 바둑은 빈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게임이고, 체스는 상대편을 죽이는 게임이다. 이러한 게임의 특징은 곧 그들의 문화적인 특징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은 건축 공간에도 투영되어 있다. - P322

동양과 서양 두 문화의 특징은 한자와 알파벳을 비교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한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나무 목(木)자와 하나 일(一)자를 가지고 상대적 위치와 길이의 조합에 따라서 근본 본(本), 끝 말(末), 아닐 미(未)라는 글자가 만들어진다. 반면에 알파벳은 26개의 글자가 있고 이들의 순서를 바꾸어서 글자를 만든다. 한자가 사방으로 글자가 확장되는 반면 영어의 새로운 단어는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 가로 축 한 방향으로 글자의 순서만 바꾸어서 만들어진다. - P323

알파벳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이처럼 기본적인 최소 단위를 추구한다. 그리스 시대의 학자들은 물, 불, 흙, 공기가 세상의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라고 믿었다. 그래서 과학도 그리스 시대부터 근대까지 항상 최소 단위인 원자를 찾고, 원자보다 더 작은 양자의 세계까지 쪼개는 식으로 문명이 발달해 왔다. 알파벳 26자는 마치 화학에서의 원소기호처럼 최소한의 단위인 것이다. - P323

DNA는 생명체의 설계도가 A, G, C, T의 네 가지 염기로 만들어진 암호문으로 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마치 26개의 알파벳이 순서 배열로 다른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원리이다. DNA라는 개념이 동양이 아닌 서양 과학자에게서 먼저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 P323

동양에서는 음과 양의 조화로 세상의 구성을 바라본다. 두 상반된 힘의 조화와 균형이 세상을 만든다고 보는 것이다. - P323

건축의 경우 서양은 기하학적인 형태의 공간을 추구했다. 피라미드는 정사각형과 삼각형으로 만들어졌고, 로마의 판테온의 평면과 단면은 모두 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동양에는 기하학적 모양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상대적 관계성을 더 추구했다. 우리의 풍수지리 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생각의 근본은 상대성 속에서 가치를 찾는 이론이다. - P323

흥미롭게도 중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서양의 문화적 기틀을 잡은 사상가들은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B.C. 400년을 전후로 해서 동양은 노자, 공자, 석가모니 같은 인물이 나왔고 서양에는 피타고라스, 플라톤, 유클리드 같은 사상가들이 출현했다. - P324

농경사회라는 것은 한 번 수확을 해서 다음번 파종할 때까지 먹거리 걱정 없이 빈둥거릴 시간이 많다. 그런 노는 시간에 지능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많이 하게 된 것이다. - P324

인류학적으로 1만~4만 5천년 전 시대인 크로마뇽인 시대에 갑작스럽게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농경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한다. 그러한 비슷한 배경이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어서 비슷한 수준으로 동양과 서양이 각자 성숙해졌을 때 이러한 사상가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 P324

동양은 노자를 비롯해서 상대적인 사고에 기반을 가지고 비어 있는 것에 가치를 두고 발전했고, 서양은 절대적이고 수학적인 논리적 기틀 위에 문화를 발전시켰다. - P324

동양은 비움에 긍정적인 가치를 둔다. 노자의 경우에는 그의 유명한 저서 『도덕경』 11장에서 "그릇이 쓰임을 가지는 것은 찰흙이 단단히 굳어 흙의 성질은 없어지고 그릇의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방이 방으로 쓰임이 있는 것은 창과 문이 있기 때문이다. 벽을 쌓고 창호를 뚫었기 때문에 방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물건의 유용한 기능은 비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325

동양에서는 비워진 상태를 부정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100퍼센트의 긍정적인 상태로 바라보고 있다. - P325

서양의 사상가들은 절대 선을 추구한다. 우리가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플라톤은 ‘이데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배웠다. 이데아라는 것은 절대적인 선을 뜻하는 가치로서, 실존하지만 우리는 직접 볼 수 없는 것이다. - P327

샹그릴라[중국 윈난성 디칭장족 자치주에 있는 현(縣)이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에서 지상에 있는 ‘이상향‘으로 등장한다] - P327

무릉도원은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어서 어느곳에 갔더니 신선들이 죽지 않고 오래 살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는 마을이다. - P327

샹그릴라나 무릉도원은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과 동일한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으로 보지는 않는다. - P328

서양은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세상이 있고, 그 신적인 선(善)을 수학적인 방식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 P328

수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한다 - P328

이래저래 수학은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기하학의 기본이 유클리드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선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수학적인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서양의 많은 종교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기하학적인 공간의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것이 로마의 판테온이다. 이 건물은 평면과 단면에서 모두 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 P328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건물은 좀 더 복잡한 형태로 세 개의 원형 돔이 한 개의 큰 돔을 받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설과 같이 3이라는 성스러운 숫자가 건축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 P328

이같이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건축물에도 반영되었다가 이슬람의 영향으로 더욱 더 증폭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던가. 아마도 이슬람은 예로부터 오랜 유목 생활로 소나 양의 숫자를 세면서 숫자에 대한 개념이 발달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동양과 서양사이의 지리적인 위치에서 중계무역이 발달했을 것이고 당연히 수에 대한 개념이 다른 민족보다 앞섰을 것이다. - P330

어느 개미집이나 그 외부 형태는 중요하지 않고 내부에 네트워크로 구성된 연결망이 중요하다. 방끼리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인 것이다. - P331

벌의 경우에는 벌집 모양이라고 불리는 육각형의 모듈러 구조를 띠고 있다. 육각형 모양의 방이 반복되면서 전체 벌집이 만들어진다. 반복되었을 때 구조적으로도 가장 안정적이면서 벌이 들어가서 살기에 공간의 손실이 적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 P331

개미는 동양처럼 관계 중심의 건축, 벌은 서양처럼 기하학 중심의 건축이다. - P331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교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충(忠)이나 효(孝) 같은 관계를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극동아시아 건축은 땅과 연결된 개미처럼 관계성이 중요시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 P332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사후 세계를 중시했고, 이데아의 세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원칙을 중요시 하였다. 땅에 기초를 두지 않는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 때문에 공중에 집을 짓는 벌처럼 기하학적인 건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서양에서 피라미드, 황금비율, 판테온 같은 건축 문화가 나오게 된 문화적 배경일 것이다. - P332

공자, 노자, 석가모니의 영향으로 동양 문화의 가치 체계는 ‘관계‘와 ‘비움‘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특징지을 수 있다. - P333

동서양의 다른 가치 체계는 공간을 뜻하는 두 개의 단어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서양에서의 공간을 뜻하는 단어는 ‘space‘로, 이 단어는 동시에 우주를 뜻하기도 한다. 우주라는 영어 단어는 universe, cosmos, space 이 세 단어가 혼용되어서 쓰인다. 따라서 ‘space = cosmos‘라는 결론이 나온다. - P333

cosmos라는 단어의 의미는 혼돈이라는 뜻의 chaos의 반대어로 수학적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space = 수학적 규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 P333

단어를 통해서 살펴보면 서양인의 의식 속에는 비어 있는 우주, 공간, 수학적인 규칙을 내재하고 있는 cosmos 등의 의미가 상호 연결되어져 있으며, 공간을 ‘수학적 규칙을 가진 비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 P333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공(空)‘과 사이라는 뜻의 ‘간(間)‘이 합성된 단어이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져 있다. 이렇듯 단어만 살펴보더라도 동양에서는 단순히 비어 있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보는 ‘비움‘과 상대적 가치인 ‘관계‘로서 공간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333

문화의 차이는 게임, 문자, 건축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기본 요소인 먹는 것에서도 차이점이 보인다. - P334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오는 식, 즉 한 번에 모든 음식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쫙 깔려서 차려진다. 반면에 서양 음식은 전식부터 후식까지 순서대로 음식이 나온다. 마치 알파벳으로 단어를 만들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서대로 쓰인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것은 문화적인 차이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음식 문화의 형식일 것이다. - P334

문화라는 것은 그 나라 고유의 민족적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러한 패러다임은 경제적인 활동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P334

구글은 흰색 페이지에 검색어만 찾을 수 있게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네이버는 첫 페이지에 현재 나오는 주요 뉴스가 한 페이지 가득 펼쳐져 있다. 구글이 한 번에 하나씩 나오는 서양 코스 요리 같다면 네이버는 한상 가득 차려 나오는 밥상 같은 구성이다. 한국인들이 네이버를 더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 P334

건축 디자인 역시 그 나라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 P334

서양은 논리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사고방식이 선형적이다. 하나 다음에 둘 그 다음에 세 번째 것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수학의 발달과 기하학적 건축 공간으로 나타난다. - P335

반면에 동양은 상호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대적인 가치 체계를 가진다. 따라서 음식 하나하나의 맛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들과 다른 음식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죽하면 ‘음식의 궁합‘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이렇듯 먹는 사람의 입맛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차려진 음식의 순서가 어찌 보면 뒤죽박죽 섞이게 되어 있다. - P335

한국적이라는 것은 이런 우리의 일상적인 밥상 같은 것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 단순히 처마 곡선의 모양 같은 겉모습을 모방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할 것이다. - P335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승강기의 발명으로 초고밀도의 도시에 살고, 휴대 전화와 인터넷으로 우리의 삶은 실타래보다도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복잡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코스 요리를 먹는 사람보다는 밥상을 먹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보다는 미래가 밝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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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과학(여기선 사회생물학)이 인문학과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저자는 과학이 주는 이러한 점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듯 하다. 독자인 나 또한 이 책을 쭉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이 주는 매력에 조금씩 젖어드는 느낌이다. 처음 밑줄 친 문장에 이러한 것들이 응축된듯 하다.

두번째 밑줄 친 문장에는 사회생물학자인 윌슨이 했던 얘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얼마전에 읽었던 최재천 교수의 책에서 한 번 봤었던 분이라 조금은 생소함이 덜했던 것 같다. 이 글의 소제목이 ‘생물학 패권주의‘ 였는데 인문학 위에 생물학이 있다는 윌슨의 주장을 잘 나타낸 말처럼 느껴졌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가 등장한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능을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으로 가정했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이기적인 본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로 인해 사회주의가 무너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과학적인 사실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역행하여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잠깐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인간 본능에 따라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실패 사례로 명백히 보여준다.

다음에 나오는 핵심 키워드로 ‘ESS모델‘ 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의 줄임말로 한국말로 풀어쓰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델에 기반하여 다양한 사회현상들을 설명한다. 난 개인적으로 어떤 한 가지 모델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모델이 굉장히 파워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오늘 읽은 부분에서 저자가 소개한 이 ‘ESS모델‘이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아마 저자도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 모델 하나로 수많은 사회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책에서 이렇게 자신있게 소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과거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 때의 경험을 토대로 의료서비스와 관련하여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인 환자와 의료서비스의 공급자인 의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자세하고 알기 쉽게 풀어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살펴볼 수 있었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이러한 발상가능한 문제점들을 제어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들(심사평가원 조직을 통한 과잉진료와 부당청구 방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기는 하나 오늘 읽은 부분 중에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생존 기계로 지칭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에 따른 행동의 선택이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저자가 정말 잘 풀어서 설명해준 덕분이다. 저자께 감사드리는 바이다.

아무튼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이 지극히 생존본능에 입각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사회생물학의 질문은 내용과 형식 모두 인문학과 다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문학과 다른 관점으로 다른 각도에서 인간과 사회를 살핀다는 것이 매력이다. - P132

인류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면 우리 종은 신이 아니라 유전적 우연과 환경적 필연의 산물이다. 지난 세기 과학 탐구의 철학적 유산인 이 명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물리학 없는 천문학이나 화학 없는 생물학이 될 것이다. - P133

인간은 분명 유전적 우연과 환경적 필연이 작용한 자연선택의 산물이고, 문명은 우리 종이 진화를 통해 획득한 본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P133

문명의 힘으로 본능을 어느 정도는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지만 본성 그 자체를 역사의 시간에 바꾸지는 못한다. 한종의 본성이 달라지는 데는 역사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긴 진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 P133

(윤리학자 싱어Peter Singer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경향성에 근거를 둔 개혁 정책을 추진하라고 충고했다. 인간 본성과 마찰을 덜 일으키는 과제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 P134

사실은 도덕이 아니다. 자연에 존재한다고 해서 다 아름답고 좋은 건 아니다. 생물은 어디서나 생존경쟁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생존경쟁이 아름답거나 고귀하다고 하는 건 어리석다. - P134

자연선택과 진화는 특정한 방향이 없다. 인간도 생존과 번식을 위해 경쟁하며 인간에게도 보편적인 생물학적 본성이 있다. - P134

마르크스는 이기심 • 소유욕 • 지배욕을 포함해 계급 착취와 대립을 일으키는 모든 종류의 의식을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토대의 산물로 규정했다. 인간을 그렇게 이해하면 폭력혁명과 계급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 P134

마르크스는 인간 본성을 호모 사피엔스의 보편적 생물학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보았다. 사회적 관계를 바꾸면 본성도 달라진다고 믿었다. 공산주의자는 ‘올바른 사상‘을 지녔기 때문에 권력을 잡아도 오직 인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꿈에 홀려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 P135

마르크스 추종자들은 어느 시대 어느 권력자보다 무자비하고 집요하게 권력을 탐했다.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으면서 권력을 독점했다. 고대 황제보다 더 무분별하고 잔인하게 권력을 휘둘렀다. 그것이 변하기 어려운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마르크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반박할 여지가 없게 증명했다. 인류 역사에 이토록 비극적인 역설은 없다. - P136

논리만 보면 윌슨이 옳다. 그러나 옳다고 해서 뭐든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P136

학문은 권력이 아니다. 권력을 쥔 사람이 학문을 탄압할 수는 있지만 어떤 학자의 주장이 다른 학문을 억누르지는 못한다. - P136

사회제도는 변하기 어려운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충돌하면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 P136

‘ESS 모델‘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ESS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을 줄인 말이다. - P137

ESS는 어떤 군집의 대다수 개체가 일단 선택하면 다른 모든 전략을 능가하는 전략이다. 자연선택은 ESS를 벗어나는 전략을 징벌한다. 때로는 둘 이상의 전략이 ‘집단적으로 안정한 전략‘CSS(collectively stable strategy)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항상 배신‘이라는 안정점과 ‘TFT‘ 라는 안정점이 공존하는 쌍안정 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 우연히 먼저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이 일단은 우위를 유지하지만 또 다른 우연으로 우위가 바뀔 수도 있다. - P137

TFT(Tit For Tat)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또는 상대방을 믿고 협력하지만 배신행위는 응징하는 전략이다. - P137

‘전략‘은 인문학의 언어다. 사람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쉬리나 박쥐는 전략을 구사하는 지적 생명체가 아니다. 유전자의 명령 또는 본능에 따라 생존하고 번식할 뿐이다. - P140

ESS 모델에서 개체는 전략을 구상하지 않으며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 P140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개체군 안에서 안정적으로 우세한 지위를 차지한 행동양식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다. ‘자연선택이 ESS에서 벗어난 전략을 징벌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ESS가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는 개체가 생존과 번식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 P140

생물학자들은 주저하는 경향이 있지만 ESS 모델은 인간 군집에도 적용할 수 있는 형태의 게임이론이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데 쓸 수 있다. - P140

소련 정부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범이라고 추켜세웠던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성실‘ 전략을 택한 청년 공산주의자의 운명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열혈 공산주의자들은 과로사하거나 반혁명분자로 몰려 처형당했다. - P142

소련의 권력자들은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다. 인간 심리와 행동의 밑바닥에 생물학적 제약조건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기심과 가족에 대한 집착 같은 성향은 사적 소유를 토대로 한 계급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회구조를 바꾸고 교육을 실시하면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알렉세이 스타하노프라는 광부를 노동영웅으로 내세워 노동자의 사명감을 고취하고 기술혁신을 북돋우려 했다. - P142

국민 대다수가 ‘태만‘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 - P143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다. 그런 행위가 옳은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뇌는 대체로 본업을 앞세운다. 욕망이 이성보다, 이익이 도덕보다 힘이 세다. - P144

전교 1등 출신들이 의과대학에 가서 의사가 되고 병원을 운영하지만 그들의 뇌도 생존이라는 본업에 충실하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심사평가원이라는 전문가 조직을 만들었다. 심사평가원은 진료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과잉‘ 진료와 ‘과잉‘ 청구를 한 징후가 보이는 의료기관을 조사해 부정하게 청구한 보험급여 지급금을 회수하고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린다. 그러나 ‘적정‘ 전략이 공급자 집단의 ESS가 되는 이상적 상태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적정‘이 우세한 가운데 일부 ‘과잉‘이 공존하는 ‘쌍안정 시스템‘을 이루는 것을 현실적인 목표로 삼는다. - P144

경제학은 이 문제를 ‘주인-대리인 principal-agent 모델‘로 설명한다. 정보 비대칭 현상 때문에 소비자 주권이 성립하기 어려운 시장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다. - P145

의료서비스 시장이 대표적이다. 소비자인 환자는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어떤치료가 필요한지, 병원과 의사가 적절한 진료와 치료를 제공했는지, 진료비를 적정하게 청구했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질병과 의학적 치료에 대한 정보는 공급자만 가지고 있다. 이런 시장을 방치하면 필연적으로 공급자가 소비자를 착취한다. 그래서 대리인이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 가입자인 국민의 대리인이 되어 의료서비스 가격을 책정하고 심사평가원은 공급자와 동등한 수준의 의학 정보를 가지고 과잉 진료와 부당 청구를 막는다. - P145

ESS 모델과 ‘주인-대리인 모델‘은 상충하지 않지만 같지도 않다. 같은 대상을 다른 관점에서 다른 개념으로 설명한다. 둘 모두를 알면 하나만 아는 경우보다 인간과 제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P145

수학 · 게임이론 · 동물행동학 · 유전학 등 여러 학문의 도구와 문제의식을 결합한 ESS 모델은 사회제도의 구조와 결함을 진단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을 사회생물학의 하위 분야로 편입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자연선택이 만든 생물학적 기초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간과 사회를 다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147

나는 윌슨의 견해를 온건한 형태로 받아들인다. ‘인문학과 생물학 사이에 차원을 나누는 경계는 없다. 인문학은 인간 의식과 행동에 대한 생물학의 연구 결과를 적극 받아들여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정도만 해도 윌슨 선생은 만족할 것이다. - P147

이기적이라고 유전자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유전자는 ‘몸만들기 매뉴얼‘을 지닌 물질일 뿐이다. 물질은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 P148

분명히 해두자. 유전자는 적어도 100만 년 단위로 나이를 헤아려야 할 정도로 오래 생존하는, 끝없이 자기를 복제하면서 여러 생존기계의 몸을 옮겨 다니는, 네 가지 염기가 특수한 순서로 이어진, 충분히 작아서 잘 흩어지지 않는 염색체 조각이다. 목적의식이나 지향같은 건 없다. 끝없이 자기를 복제하면서 온갖 생존기계를 만들 따름이다. - P148

유전자의 생존기계는 성장해서 짝을 찾아 자손을 낳고 죽으라는 명령을 수행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생존기계는 이기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종의 다른 개체나 다른 종의 개체와 협력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 P148

자연은 오로지 남을 죽여야만 생존하는 검투장이 아니라 공감 · 협력 · 거래 · 공존의 무대이기도 하다. 협력 전략으로 생존하는 데 성공한 사례도 많다. - P148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 말고는 어떤 종 어떤 개체도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특정한 행동방식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협력이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서는 자연선택에 따라 결과적으로 협력 행동을 부추기는 유전자가 퍼졌고, 대결이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서는 결과적으로 대결 행동을 부추기는 유전자가 살아남은 것이다. - P149

인간을 포함해 진화가 빚어낸 모든 종은 의도적 설계가 아니라 자연선택이라는 필연과 유전적 우연의 산물이다. - P149

자연은 경쟁과 협력을 차별하지 않는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이기적 목적을 실현하는 전략이라는 면에서 둘을 평등하게 대한다. - P150

어떤 생존기계는 단순히 협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타 행동을 한다. 생물학 언어로는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고 다른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 인문학 언어로는 ‘자신이 가진 희소한 자원을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행위‘를 한다. - P150

개체의 이타 행동은 자연선택 이론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타 행동을 유발하는 형질을 가진 개체는 자손을 남길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자연선택은 그런 형질을 제거한다. 그런데도 동물의 이타 행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등동물일수록 더 다양한 이타 행동을 한다. 『종의 기원』 출간 이후 100여 년이 지나서야 그럴듯한 이론이 나왔다. 영국 생물학자 해밀턴 Wiliam Hamilton(1936~2000)의 ‘포괄적응도‘包括適應度(inclusive fitness)이론이다. - P150

개미는 암수 결정 방식이 특이하다. 생물은 보통 염색체수가 2개인 ‘두배수체‘ diploid다. 그런데 개미 수컷은 수정되지 않은 난자에서 나오기 때문에 염색체수가 개인 ‘홑배수체‘ haploid다. 어미 염색체 2n개의 절반만 가지고 있다. 반면 수정란에서 태어나는 암컷은 어미와 아비한테서 받은 유전자를 다 지니고 있다. - P151

일꾼 개미가 자신의 번식을 포기하고 여왕개미의 출산과 양육을 돕는 ‘친족이타주의‘ 행동을 함으로써 직접 짝을 찾고 자식을 낳는 경우보다 가족의 고유한 유전자 세트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미가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다. 유전적 우연으로 생긴 본능 행동이 가족의 고유한 유전자 세트의 생존 확률을 높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친족이타주의‘ 행동을 하는 개미 집단이 번성했다는 이야기다. 생물학자는 이것을 ‘개미 집단에서 친족이타주의 행동이 진화했다‘고 표현한다. - P152

해밀턴의 접근법은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의 이타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 이론이다. - P152

호모 사피엔스의 친족이타주의는 개미 못지않게 강력하다. 인간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동물이 자식을 낳는다. 자식을 먹이려 고된 노동을 하고 자식을 보호하려고 죽을 위험도 감수한다. 도대체 왜? 본능이라는 대답은 충분하지 않다. 왜 그런 본능을 가지게 되었는지 해명해야 한다. 열쇠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가 쥐고 있다. - P153

해밀턴 모델은 이타 행동이 가족과 친족 안에서 먼저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를 절반씩 지니고 있다. 자신의 유전자를 자식만큼 많이 가진 개체는세상에 없다. 부모한테는 자식이 자신만큼 소중하다. - P153

형제자매의 유전 연관도는 50퍼센트고 사촌끼리는 12.5퍼센트다. 인간의 이타 행동은 유전 연관도가 높은 부모자식과 형제자매에서 시작해 가까운 친족과 먼 친척으로 퍼져 나간다. 이것이 가족주의 또는 혈연의식이라고 하는 의식과 감정의 생물학적·유전학적 기초다. - P153

친족이타주의가 오로지 유전자 때문에 생긴다는 건 아니다. 생존을 위한 상호 의존, 접촉의 밀도와 빈도, 공동의 경험, 공유하는 기억 등 인문학 이론으로도 친족이타주의가 생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둘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 P153

생물학과 인문학의 이론을 결합하면 친족이타주의가 생긴 이유를 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다. 혈연에 근거를 둔 비합리적 연고주의와 부정부패를 없애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지도 알 수 있다. - P153

해밀턴의 이론은 맹자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보편적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는 이타 행동의 범위는, 가족에서 시작해 이웃으로 넓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이 인정하는 사실일 뿐이다. 사실이라고 해서 훌륭한 건 아니다. - P153

우리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름답다. 우리 삶에는 도덕과 미학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 그대로 알면서 선과 미를 추구하자. 사실을 도덕으로 착각하지도 말고 도덕으로 사실을 덮지도 말자.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맹자는 과학적으로 옳은 견해를 폈지만 묵가와 양주학파를 부적절하고 과도하게 비판했다고 할 수 있다. - P154

오해할까 봐 다시 강조한다. 유전자는 친족이타주의를 설계하지 않았다. 유전자는 그 무엇도 설계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를 복제할 뿐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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