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탄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탄소의 화학적 성질을 정치학 언어로 표현한 저자의 비유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과학을 배우면 문과출신들도 과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어떤 복잡한 수식이나 산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의미로 딱 와닿는 게 좋았다.
.
.
.
읽다가 ‘환원주의‘라는 키워드가 나오는데 이것이 굉장히 폭넓게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분야를 막론하고 학문의 세부분야가 굉장히 잘게 쪼개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
.
p.210에 밑줄 친 문장 중에 ‘단어의 뜻이 문맥에 따라 달라지고 문장의 의미와 느낌이 언어의 장벽을 넘을 때마다 미묘하게 바뀐다‘는 말은 읽으면서 굉장히 공감이 갔던 구절이었다. 이 책에 나온 사례는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데, 꼭 여기 나온 단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들 중에서도 ‘아‘다르고 ‘어‘다른 것처럼 미묘한 차이가 문맥 속에서 점점 증폭되어 의미에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참 말이라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에 관한 얘기들이 잠깐 등장한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저자는 양자역학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양자역학이라는 것을 이해해보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물리학자 김상욱 님이 쓰신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독자들에게 양자역학 관련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한 가지 실험이 나오다가 끝나는데 이어지는 부분은 다음 포스팅에서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탄소는 왜 생명의 중심이 되었을까? 과학자들이 찾은 답을 정치학 언어로 번역하면, 탄소는 ‘유능한 중도‘여서 성공했다. - P188

중도는 좌우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가끔 치우치는 경우에도 슬쩍 편을 드는 정도에 그칠 뿐 극단으로 가지는 않는다. 열정이 있어도 몰입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녔지만 독선에 빠지지 않는다. 싸움을 먼저 걸지는 않아도 누가 싸움을 걸면 피하지 않는다. 무능한 중도는 극단에 휘둘리지만 유능한 중도는 좌우를 통합한다. 탄소는 유능한 중도의 대표 사례다. 사람으로 치면 성격이 온화하고 태도가 유연하다. 남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지만 필요할 때는 원만한 관계를 맺는다. 남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무엇이든 되는 쪽으로 일을 만들어 나간다. - P188

탄소는 전자를 공유할 기회가 오면 거부하지 않지만 남의 전자를 함부로 탐하지는 않는다. 원자핵과 전자가 비교적 가까이 있어서 잘 깨지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경우에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것은 아니다. 모든 면에서 어중간하다. 바로 그런 성격 덕분에 탄소는 생명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 P189

생명이 존재하려면 DNA처럼 안정한 분자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분자의 안정성이 지나치면 안 된다. 때로는 분자를 쪼개어 새 분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는 그런 분자를 만들기에 딱 좋다. 탄소는 신중하다. 다른 원자가 달란다고 해서 너무 쉽게 전자를 내어주면 생명을 이루는데 적합한 원자들을 만나도 결합하지 못한다. 욕심이 지나쳐 아무 원자하고나 함부로 결합해도 마찬가지 위험이 있다. 그렇지만 인색한 것은 아니다. 전자에 대한 탐욕이 아주 강한 수소가 다가오면 너그럽게 안아준다. 그렇게 해서 탄소와 수소결합이 생명체의 분자를 이루게 되었다. - P189

탄소는 ‘리버럴‘하다. ‘부족본능‘ 따위는 없다. 자기네끼리도 잘 뭉치고 다른 원소와도 잘 어울린다. ‘우리‘와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탄소끼리 뭉칠 때나 황·인·산소·질소와 결합할 때나 껴안는 힘이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도 서로 다른 여러 원자 사이를 오간다. 종류가 다른 여러 원소와 이중·삼중으로 결합하기도 한다.
탄소를 함유한 분자는 탄소 원자 하나가 수소 원자 4개와 단순하게 결합한 메탄부터 놀랍도록 긴 인체 DNA까지 구조와 종류가 무한히 다양하다. 생명을 빚어낼 원소로 탄소만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없다. 우주의 다른 행성에 생명이 있다면, 거기서도 탄소가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다. - P190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순수한 탄소결합물인데 결합 방식이 살짝 다르다. 그것이 둘의 운명을 갈랐다. - P190

탄소 원자 하나가 다른 탄소 원자 3개와 같은 평면에서 손잡으면 흑연이 된다. 어떤 탄소 원자도 아래나 위로 입체구조를 만들지 않아서 조금만 힘을 주면 층과 층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이런 성질 덕분에 흑연은 연필심으로 만들어져 화가와 작가와 과학자들이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고 다듬고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미술과 문학과 과학의 발전에 흑연만큼 큰 기여를 한 물질이 또 있을까? - P191

탄소 원자 하나가 다른 탄소 원자 4개와 결합해 3차원 구조를 만들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가 상하좌우 모든 방향으로 뭉쳐 균질한 결정을 이루고 있어서 다른 물질로는 자를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시야를 흐리는 불순물이 전혀 없어서 굴절된 빛을 영롱하게 내뿜는다. 사람들은 그 단단함과 영롱함에 영원한 사랑에 대한 소망을 투사했다. - P191

똑같은 탄소인데도 결혼 예물이 된 다이아몬드가 부여받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는 증거는 없다. 남자가 보유한 권력과 재산의 크기를 증명하는 수단으로는 훌륭했지만 그 영롱함으로 사랑의 환희를 북돋운 건 짧은 순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책임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사랑을 빛바래게 만든 시간에게 물어야 한다. - P191

‘중도 성향‘ 원소는 탄소 말고도 많다. 그런데 왜 하필 탄소였을까? 주기율표의 탄소 바로 아래에 규소(Si)가 있다. 규소는 탄소와 마찬가지로 최외곽 껍질에 전자 4개가 있다. 지구에 산소 다음으로 많아서 생명 탄생의 주역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만하다. 그러나 규소는 최외곽 껍질이 3층이라서 전자와 핵의 거리가 탄소보다 멀기 때문에 자기네끼리 결합하는 강도가 탄소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복잡하고 긴 사슬을 만들지 못하며 다른 원자와 안정된 결합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규소 원자 하나가 수소 원자 4개와 결합한 실란(SiH4)은 상온에서 자연발화하고 만다. 게다가 탄소보다 덩치가 커서 산소와 이중결합을 이루기 힘들다. 산소를 이용해 다른 규소 원자와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유리 재료로 쓰는 규산염이다. 규소는 한 번 규산염 구조에 들어가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주기율표의 중간에 있지만 규소보다 더 크고 무거운 게르마늄·주석·납이 생명을 빚을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 P192

내 몸은 탄소가 중용의 도를 지킨 덕분에 존재한다. 탄소를 함유한 물질은 검은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탄소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알고 나자 검은색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다. - P192

나는 과학의 사실에서 별 근거 없는 감상을 함부로 끌어내는 습관이 있다. 과학 공부를 해도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문과다. - P192

과학자는 과학의 사실을 그저 사실로만 대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원자의 결합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을 품지 않는다. - P193

화학자와 물리학자는 ‘환원주의‘還元主義(reductionism) 논쟁을 하지 않는다. 화학자가 양자역학을 원래 자기네 것인 듯 가져다 쓰고 물리학자가 거리낌 없이 화학 책을 쓴다. 하지만 누구나 환원주의를 환영하는 건 아니다. 인문학자와 사회생물학자들은 감정을 불태우면서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 P193

화학이 환원이라는 연구 방법의 필요성과 장점을 잘 보여준다고 판단 - P193

환원은 분야를 불문하고 널리 사용하는 연구 방법이다. 특별히 내세우진 않지만, 인문학자도 널리 쓴다. - P193

환원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나누어 단순한 것의 실체와 운동법칙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환원주의는 이러한연구 방법을 모든 대상에 적용하려는 경향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 P193

복잡함과 단순함은 상대적 개념이라는 데 주의하자.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으로 나눌 수 있고, 단순한 것은 더 단순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 P193

예컨대 소금이 물에 녹는 것은 ‘비교적 복잡한‘ 현상이다. 물의 산소 원자가 음전하를 띠고 수소 원자가 양전하를 띤다는 것과 소금 결정을 구성하는 나트륨 원자와 염소 원자가 각각 전자 하나씩을 방출하거나 영입해 전하를 띠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현상이다. - P194

비교적 단순한 현상으로 비교적 복잡한 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원은 강력한 연구 방법이다. 그 방법을 널리 적용하는 연구방법론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 P194

인문학은 인문학이고 과학은 과학일 뿐이다. - P197

우리는 과학혁명의 문을 연 과학자의 이름과 생애를 안다. 코페르니쿠스, 튀코 브라헤Tycho Brahe(1546~1601), 케플러, 갈릴레이 같은 이들이다. 뉴턴은 그들이 발견한 모든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학을 정립해 과학혁명을 궤도에 올렸다. 그 혁명을 이끈 연구방법론이 바로 환원주의였다. - P197

과학자들은 흔히 호모 사피엔스가 찾아낸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로 원자론을 꼽는다.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각해낸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발견을 이끌어낸 질문이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답을 찾으려면 크고 복잡한 세계를 작고 단순한 것으로 끝없이 쪼개야 한다. 과학의 역사는 환원주의 연구방법론의 위력을 결과로 증명했다. - P198

학문이 끝없이 작은 단위로 갈라진 것도 환원주의 연구방법론과 관계가 있다. 생물학·화학·물리학은 과학의 큰 갈래다. 분야마다 다양한 세부 학문이 있다. 예컨대 생물학에는 동물학·식물학 · 미생물학 · 분자생물학 · 세포생물학·유전학·진화생물학·사회생물학 등이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유전학 내부로 들어가면 생물학자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전문분야가 있다. 인문학도 그렇다. 경제학·정치학·사회학 인류학·철학·역사학 · 언론학 등은 큰 갈래일 뿐이다.
경제학 안에 미시경제학 · 거시경제학· 재정학· 경제통계학·수리경제학·노동경제학 · 금융경제학 · 무역학 · 보건경제학·환경경제학·경제지리학 등 여러 분야가 있고, 분야마다 경제학자도 잘 모를 세부 전공이 펼쳐진다. 모두가 복잡한 대상을 단순한 것으로 쪼갠 탓에 생긴 현상이다. - P198

환원주의가 추동한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 현상은 인문학과 과학을 가리지 않았다. - P199

만사가 그렇듯 환원주의도 위험 요소가 있다. 가장 중대한위험은 복잡한 것을 설명한다는 원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한 것을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가장단순한 수소의 원자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우주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설명할 수 있어야 수소의 원자 구조를 아는 것이 온전한 의미를가진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 P199

복잡한 것을 설명하는 임무를 수행하려면 연구자가 자신이 몸담은 세부 학문의 경계를 넘어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를 습득하고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소통해야 한다. 설명하려는 대상이 우주든 사회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그래야 환원주의가 훌륭한 연구방법론이 될 수 있다. 윌슨은 그런 노력을 가리켜 ‘통섭‘統攝(consilience)이라고 하면서 - P200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것은 지성의 가장 위대한 과업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지식의 파편화와 철학의 혼란은 실제 세계의 반영이 아니라 학자들이 만든 것이다. 통섭은 통일統一(unification)의 열쇠다.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을 둔 이론을 연결해 지식을 ‘통합‘해야 한다. - P200

학문의 갈래를 가로지르는 통섭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소수의 과학자와 철학자가 공유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지나지 않지만 과학이 지속적으로 성공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지지해 준다. 인문학에서도 힘을 발휘한다면 더 확실한 지지의 증거가 될 것이다. 통섭은 지적 모험의 전망을 열어 주고 인간의 조건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 P200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 ‘consilience‘는 철학자 윌리엄 휴얼 William Whewell(1794~1866)이 1840년에 출간한 『귀납적 과학의 철학』에서 처음 사용했다. 망각의 운명을 선고받고 역사의 심연에 가라앉고 있던 그 말을 윌슨이 건져 올렸다. - P200

통섭은 환원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지식을 통합하는 것이다. - P201

분석은 과학적 방법으로 하지만, 통섭은 언어로 해야 하기에 과학과 인문학이 모두 필요하다. 진리를 따라 과감하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어야 한다. 진리는 철새처럼 어느 정도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생물학에서 나온 문제가 경제학과 정치학을 거쳐 심리학과 수학에 정착한다. 사회학의 문제가 행정학 · 법학 · 기상학·화학·음악의 영역까지 뻗어 간다. - P201

지난날의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는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저마다 자기영역의 목소리를 보탠 ‘다학문적multidisciplinary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통섭은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전체를 꿰는 ‘범학문적transdisciplinary 접근‘을 요구한다. - P201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문학에 과학의 토대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1장에서 만났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그랬고, 우주와 생명과 인간을 하나로 묶은 TV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제작하고 같은 제목의 책을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도 그랬다. 『엔드 오브 타임』의 절반을 인문학에 할애한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물리학자 슈뢰딩거를 만나게 된다.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물학을 물리학으로 환원하려고 했다. ‘통섭‘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윌슨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 P202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전문분야를 넘어 세계를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 P202

윌슨은 인문학을 사회생물학의 하위 분야로 통합하자고 하지 않았다. 인문학의 명제를 과학이 밝혀낸 생명과 인간에 관한 사실에 비추어 보고 과학의 토대 위에 인문학을 재구축하자고 했을 뿐이다. - P206

영어 ‘uncertainty‘는 여러 의미로 쓰는 단어다.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1901~1976)가 제안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Unbestimmtheit을 영어권 학자들이 이 단어로 옮겼다. - P210

인간의 언어로는 양자역학을 서술하기 어렵다. 단어의 뜻이 문맥에 따라 달라지고 문장의 의미와 느낌이 언어의 장벽을 넘을 때마다 미묘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 P210

독일어 ‘Unbestimmtheit‘ (발음은 운-베슈팀트-하이트)는 동사 ‘bestimmen‘(베슈팀멘, 확정하다)에서 나왔다. 수동형 ‘bestimmt‘ (베슈팀트, 확정된)에 명사형 어미 ‘heit‘를 붙이면 ‘Bestimmtheit‘ (베슈팀트-하이트, 확정됨), 여기에 반대말을 만드는 전철 ‘un‘을 더하면 ‘Unbestimmtheit‘ (확정되지 않음)가 된다. ‘uncertainty‘는 가장 비슷한 영어 단어이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아서 물리학에서는 ‘불확정성‘으로 옮기고 인문학에서는 ‘불확실성‘으로 번역한다. 같은 단어인데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옮기는 것이다. - P210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의 유행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관련이 있었던 듯하다. - P210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다. - P211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의심해서 나쁠 건 없다. 낡은 것을 의심해야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다. - P211

불확정성 원리는 인간 인식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다. 거꾸로 말해야 맞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시세계의 운동법칙까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P211

수소 원자는 핵에 양성자가 하나 있고 그 바깥에 전자가 하나 있는 게 전부다. 전자는 원자핵 주변을 둘러싼 구름형태로 분포한다. 구름의 밀도는 그 위치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을 나타낸다. 핵에서 멀어질수록 구름 밀도는 낮아진다. 전자가 이런 식으로 분포한 것을 오비탈이라고 한다. 오비탈은 행성의 공전 궤도처럼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전자의 궤적이 부정확하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지점의 전자구름 밀도를 계산해서 특정 전자를 특정 위치에서 발견할 확률을 알아낼 수 있다. 전자를 정말 그곳에서 발견할 것이라고 할 수 없어서 정확하지 않다고 할 뿐이다. - P212

양자역학은 우리가 사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반대가 진실이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진정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 P212

불확정성 원리는 인문학에 ‘불확실성‘ 개념이 퍼지는데 영향을 주었다. - P212

물리학자들은 인문학자와 달랐다. 그들은 불확정성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물리학 자체가 지진 난 땅처럼 흔들렸다. 고전역학은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는 데서 출발한다. 중력이 왜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어떤 물질의 위치와 낙하 속도를 알면 몇 초 후에 그것이 어디에 있을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총알처럼 수평으로 날아가는 물체의 운동도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서술하고 예측한다. - P213

고전역학의 세계는 결정론이 지배한다. 모든 것이 물리법칙으로 확실하게 결정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안다. 그런데 입자들이 활동하는 미시세계에서는 고전역학의 결정론이 통하지 않는다. 경악스러운 사태였다. - P213

슬릿(좁고 긴 직사각형 구멍) - P213

입자인 전자가 접착제 바른 야구공처럼 날아간다고 생각하자. 두 슬릿 가운데 하나를 통과한 전자는 스크린에 달라붙어 세로 줄무늬를 두 개 만들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엉뚱했다. 스크린에 세로 줄무늬가 여럿 생겼다. 고전물리학 실험에서 나타나는 파동의 간섭무늬 비슷했다. 하나의 전자가 파동처럼 두 슬릿을 다 통과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였다. 실험 결과에 대한 논리적 해석은 하나밖에 없었다.
‘전자는 입자이고 파동이다.‘ -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내용입니다.
.
.
.
읽다보면 ‘계획적인 놀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자신이 하는 것을 다양하게 변화를 줘가면서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열정과 집중력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실제 생활에서도 적용해볼만한 점으로 간혹 너무 단조로운 패턴으로 일이나 공부 등을 하고 있는 경우에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큰 목표라는 범위 안에서 하는 일에 변화를 줘가며 집중력을 유지한다면 목표로 하는 결과물을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그것도 힘들인다는 느낌없이 보다 즐겁게 성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큰 바운더리 안에서 자유롭게‘

이 말이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말은 아니지만, 책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독자인 내 나름대로 얻은 결론이다.

또한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는데,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자신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 성과도 더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자기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장시간 일하지만 동료들보다 업무 수행 성과가 전혀 낫지 않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지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계획적인 연습은 무료하므로 심신을 소진할(그리고 따분해서 의욕을 상실할)위험에 처한다.

심신 소진(burnout)이 과부하가 됐을 때 축적되는 감정적 소진이라면, 의욕상실(boreout)은 제대로 자극을 받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지는 상태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려면 계획적인 연습이 필요하지만, 너무 무리해서 연습한 나머지 자기가 하는 활동에서 즐거움을 못 느끼고 강박적으로 하는 악전고투로 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연습한 까닭은 자기가 하는 일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스승과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일류 음악가들의 경우 집착적인 강박관념이 추진력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대부분 심리학자가 조화로운 열정(harmonious passion)이라 일컫는 과정을 통해 동기를 부여받는다.

조화로운 열정이란 원하는 결과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보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공부해야 해‘ , ‘연습해야 해‘ 등 의무감의 망령에 사로잡혀 연습하지 않는다. ‘공부하고 싶어‘ , ‘연습하는 게 신이 나‘ 등 하고 싶다는 느낌에 이끌린다. 그러면 흐름을 찾기가 쉬워진다. 완전히 몰입하는 상태에 빨리 진입한다.

완전히 몰입하면 세상이 사라지고 악기와 자신이 하나가 된다. 연습이 여러분의 삶을 장악하지 않고 오히려 풍요롭게 한다.

4만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127개 연구에서 끈기는 열정이 있을 때 훌륭한 수행 능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답은 계획적인 놀이(deliberate play)라고 일컫는다.

장시간 연습하면 어떤 대가를 치를지는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들이 강박적인 집착 때문에 밤을 새워가며 무리하면 우울증, 불면증, 고혈압 등의 위험이 커진다. 그러나 열정 때문에 긴 시간을 노력하면 그렇지 않다.

일을 삶으로부터 분리하려고 애쓰면 심신이 소진되기 쉽다. 한편 조화로운 열정은 만족감과 일과 삶의 균형감을 준다. 늘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면 여러 우선순위 간의 조화를 이루기가 훨씬 쉽다.

계획적인 놀이는 기량을 개발하는 일이 즐겁도록 설계된, 구조가 잘 짜인 행위를 뜻한다. 계획적인 놀이는 계획적인 연습과 자유로운 놀이의 요소들을 혼합한다. 자유로운 놀이와 마찬가지로 계획적인 놀이도 재미있지만, 놀이와 더불어 학습과 터득에 도움이 되도록 짜여져 있다. 복잡한 과제들을 훨씬 단순한 부분들로 나누어 구체적인 기량을 연마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로 다른 악기를 뒤섞으면 무료함이 가시고 열정을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다.

"내가 인질처럼 묶여 있는 일상이란 절대로 없다"

계획적인 놀이를 하려면 연습에 참신함과 다양함을 도입해야 한다. 다양성은 여러분이 배우는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사용하는 도구, 또는 설정한 목표, 여러분이 교감하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여러분이 익히고자 하는 기량에 따라서 계획적인 놀이는 게임, 역할극, 또는 즉흥적인 연습의 형태를 띨지 모른다.

몇 시간 연습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따진다. 여러분의 점수는 승리의 표상이 아니다. 진전을 가늠하는 척도다.

계획적인 놀이는 조화로운 열정을 촉진해 심신이 소진되거나 따분해서 의욕을 상실하지 않도록 해준다.

계획적인 놀이에서 여러분은 실제로 과제 자체를 다시 설계해 동기를 유발하고 진전도 이루게 된다.

실내에서 걷거나 뛰는데 사용하는 트레드밀(treadmill)이 처음에는 고문하는 장치로 발명되었다는 사실

1800년대 초 영국의 죄수들은 물을 퍼 올려 방아가 돌아가도록 하는 커다란 바퀴의 바큇살에 올라가 여섯 시간 동안 걸어야 했다. 한 교도관은 "끔찍한 점은 ‘혹사‘가 아니라 ‘무료함‘"이라고 기록했다.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는데 가망이 없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는 것보다 끔찍한 느낌은 없다."

한 가지 과제에 대한 열정은 그보다 덜 흥미로운 과제들을 게을리하게 만들 수 있다.

자기 일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제를 좋아하는 강도가 강할수록 가장 덜 좋아하는 과제의 수행 결과가 나쁘다

연습을 통해 기르는 기량은 여러 가지 이고 그런 기량들을 하나같이 전부 좋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연습에서 고통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 즐거움을 추가할 수는 있었다.

가장 자제력이 강한 사람들이 실제로 자제력을 가장 덜 이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런 사람들(자제력이 강한 사람들)은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기위해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고 상황을 덜 힘들게 바꾼다.

자기 나름대로 일종의 계획적인 놀이를 즉흥으로 만들었다.

"우리 훈련에서 따분함이란 없다."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경쟁하는 상황의 단점은 자기 기량을 개선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하는 상대는 과거의 자신이다. 그리고 한층 높아진 목표는 미래의 자신을 위한 목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과거보다 나은 자신을 추구한다. 성장만이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한 가지 효과에서 진전을 이룰 때까지 연습하고 난 뒤에야 다른 기량 연습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페인은 똑같은 기량을 되풀이해서 연습하기보다 서로 다른 기량들을 섞는다.

이처럼 다양한 기량을 연습하면 동기 유발이 될 뿐 아니라 학습 효과도 훨씬 낫다. 서로 다른 기량들을 번갈아 배우면 사람들이 훨씬 빨리 진전을 이룬다는 수많은 실험 결과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서로 엮기(interleaving)라 일컫는데, 이는 미술에서부터 수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특히 개발하려는 기량들이 유사하거나 복잡할 때 쓰인다.

계획적인 놀이에 대해 "압박감이 수반되는 게임같은 상황을 조성하므로 빠져나갈 생각 말고 집중해야 한다" 라고 전했다.

"일상적인 훈련이 있지만 매일 훈련을 즐기면 열정도 따라온다. 시간이 흐르면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게 바로 열정이다. 내 선수들처럼 뭔가를 좋아하면 잘하려 애쓰고, 그러면 실력이 나아지고, 실력이 나아지면 계속해서 하고 싶어진다."

계획적인 놀이가 (중략) 동기 유발을 북돋아주고 진전에 속도를 더해준다.

고역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규칙적으로 휴식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휴식하면 적어도 세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 연습을 쉬면 조화로운 열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5~10분 정도 짬을 내 휴식을 취해도 피로감을 덜고 체력을 향상하기에 충분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휴식은 심신 소진을 예방하는 효과만 있는 게 아니다. 밤이고 주말이고 쉬지 않고 일하면 해당 과제에 대한 우리의 흥미와 즐거움이 줄어든다.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만 해도 내재적인 동기 유발이 줄어들기에 충분하다. 긴장을 풀고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휴식을 취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중략) 휴식을 취할 경우 과제에 대한 조화로운 열정이 느껴져 창의력이 촉진된다.

과제에 대한 흥미를 유지하면 과제가 계속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으므로 그 과제를 새로운 틀로 바라보는 방법을 창출하고 뜻밖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휴식하면 배움에 깊이가 생긴다.

연습 사이사이에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시간 간격을 두고 연습을 반복하면 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한 시간에 한 번 연습하고, 하루에 한 번 연습하게 될 때까지 더 긴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다.

강박증이 생기면 휴식을 취할 때 진전이 멈춘다고 여기게 된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지칠 때까지 자신을 밀어붙인다. 탁월함에 도달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여긴다.

조화로운 열정이 있으면 휴식이 연료를 공급하는 행위라고 인식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하면 체력을 유지하고 심신 소진을 예방하게 된다.

휴식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자신의 안위에 투자하는 행위다. 휴식은 딴청 부리는 행위가 아니다. 주의를 환기하고 아이디어를 창출할 기회다. 놀이는 하찮은 활동이 아니다. 즐거움의 원천이자 과제를 터득하는 길이다.

흥미를 잃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면 연주를 완전히 멈춘다

"진전을 이뤄야 연습이 가치가 있다.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변화를 느껴야 한다. 연습실을 나설 때 뭔가 달라졌다고 느껴야 한다."

‘진정한 결과는 본인이 느끼는 즐거움‘

즐겁지 않으면 잠재력은 발현되지 않고 잠복해 있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자가 자신이 다이빙을 배웠던 이야기를 통해 완벽주의를 추구하기보다는 단지 자신의 현재 상태보다 좀 더 나아지는 것에 가치를 더 두고 훈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완벽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분명한 높은 목표를 겨냥하면 되었다.

제대로 된 자세에 근접하려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자책했다고 더 강해지지 않는다. 상처만 입는다.

자신을 아끼라는 말은 여러분의 단점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실망스러운 결과에서 교훈을 얻도록 자신에게 여지를 주라는 말이다. 우리는 단점이 있다고 벌을 주기보다 단점을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한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아들여라.

사람들이 여러분의 기량을 평가할 때는 여러분의 최저점보다 최고점에 훨씬 큰 비중을 둔다.

사람들은 여러분의 잠재력을 여러분이 겪은 최악의 순간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룬 최고의 순간으로 판단한다.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우면 어떨까?

성공은 여러분이 얼마나 완벽함에 가까이 근접했는지가 아니라 성공을 향한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극복했는지로 가늠한다

스포츠에서 탁월함은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게 상당히 가능하다.

그러나 수많은 분야에서 성공은 훨씬 주관적이다. 한 사람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는 게 또 다른 사람의 눈에는 추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어떤 불완전함을 받아들일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방향 전환은 실리콘밸리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시도해보는 게 낫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가치를 매기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평가들이 서로 수렴하는 부분을 찾는 일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문제마다 완벽한 해결책은 필요 없었다. 시행 가능한 해결책이 절실했다. 그런 해결책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바로잡아야 할 불완전함을 규명하는 일을 꼭 막판에 서둘러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영구 구조물이 아니라 임시 구조물이다. 나는 그들은 팝업(pop-up)작업장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프로젝트의 경우 나는 두 가지 점수를 목표로 세웠다. 하나는 희망하는 목표(9점), 다른 하나는 받아들일 만한 결과(8점)다.

분명한 점수는 정보에 그치지 않고 동기 유발이 된다.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완벽주의자들은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탁월함을 정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가 많이 있다.

다른 이들 보기에 완벽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하면 우울증, 불안감, 심신 소진, 그 밖에 정신 건강상의 각종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7만명을 대상으로 한 105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성장과 교감 같은 내재적 목표보다 인기나 겉모습 같은 외재적 목표에 더 가치를 두면 덜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는 끝도 한도 없다. 지위를 추구하게 되면 결코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외적 평가가 성장의 도구로 소용이 있다면 이용할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결국 탁월함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여러분 자신이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 누굴 실망하게 해도 괜찮은지 판단하는 게 관건이다. 여러분 자신이 실망하기 보다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게 낫다.

세상에 뭔가를 공개하기 전에 최후의 심판관에게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이다. 여러분의 작품들 가운데 이 작품이 유일하게 사람들이 본 작품이라면 여러분은 이 작품이 자랑스럽겠는가?

안도 다다오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다. 나 자신을 만족시키고 싶은 욕구, 나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싶은 욕구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인생은 풋풋한 게 낫다. 풋풋할수록 좋다."

"풋사과는 젊음을 상징한다."

풋풋한 상태에 머물고자하는 열망은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결의, 미완성으로 남고자 하는 결의다. 여물지 않은 사과는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다. 바로 그렇기에 아름답다.

심리학자들이 회복력을 증강해준다고 주장하는 임시구조물은 테트리스 게임이었다.

기하학적인 벽돌을 돌리고 옮기고 떨어뜨리는 행동이 우리의 생각을 침투하는 장면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 셈이다.

테트리스 효과는 임시 구조물이 지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핵심적 특징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임시 구조물은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우리를 압도하려고 위협할 때는 시선을 안으로 향하기보다 멘토, 교사, 코치, 역할 모델, 동료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들이 제공하는 임시 구조물은 우리가 직면한 난관의 유형에 따라 달리 보이고 달리 느껴지지만, 효과는 동일하다. 우리에게 비빌 언덕을 만들어 준다.

둘째, 임시 구조물은 여러분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심리학자들이 테트리스를 제안하는 이유는 구체적인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테트리스는 여러분의 뇌가 정신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식을 바꾼다. 테트리스를 하는 사람의 뇌 스캔을 살펴보면 테트리스는 우리의 시각적-공간적 회로를 활성화함으로써 뇌를 침투하는 이미지를 차단한다. 화면 위에서 떨어지는 벽돌을 처리하느라 바빠서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미지의 위협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테트리스가 효과적인 임시 구조물인 까닭은 특정한 난관을 우회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셋째, 임시 구조물은 결정적 시점에 등장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테트리스를 해도 소용없다. 아직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임시 구조물은 심란한 장면을 보고 난 후에 쓸모가 있는데, 보통 결정적 기간은 장면을 보고난 후 24시간이다. 더 오래 기다리면 이미 기억이 공고해져서 테트리스가 그 장면을 차단하기 전에 그 장면에 대한 기억부터 비활성화해야 한다.

넷째, 임시 구조물은 일시적이다. 공포 영화의 잔상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 테트리스 치료 요법이 필요하지는 않다. (중략) 여러분에게 필요한 지원을 임시 구조물로부터 얻고 나면 더는 임시 구조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임시 구조물 없이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임시 구조물의 유형은 날마다 달라진다. 시기에 따라, 부딪친 난관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임시 구조물로부터 지원을 구하게 된다.

제때 적절한 지원을 받으면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임시 구조물은 우리가 임시 구조물 없이는 보지 못했을 길을 개척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숨은 잠재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임시 구조물은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동기를 부여해주고, 정체기를 맞으면 추진력을 얻게 해주고, 난관과 회의를 강인함의 원천으로 바꿔준다.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은 일도 놀이도 아니고 목적도 무목적성도 아니다.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은 그 사이사이에 추는 춤이다.

끊임없이 과제를 바꾸고 목표를 높이니 배우는 게 즐거웠다.

"재미와 힘든 일이 별개였던 적이 없었다. 나는 스펀지 같았다."

우리가 지닌 기량을 개발하려면 오랜 시간동안 지루하고 따분한 연습을 견뎌내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숨은 잠재력을 끌어내는 최고의 방법은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기보다 일상적인 반복을 일상적인 즐거움의 원천으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음악에서 연습할 때 사용하는 어휘인 ‘연주하다(play)‘라는 단어가 ‘놀다(play)‘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되고 싶으면 타고난 뛰어난 재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중략) 연습해야 기량을 터득하게 된다.

계획적인 연습이란 분명한 목표와 즉각적인 피드백을 토대로 수행능력을 개선하는 과제를 반복하는 방법이다.

계획적인 연습은 반복적인 행위가 수반되는 예측 가능한 과제에서 기량을 개선하는 데 특히 유용함은 분명하다.

재능을 타고난 신동들도 계획적인 연습에 긴 시간을 투자한다고 알려져왔다.

광적인 연습에는 대가가 따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100자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3년전에 썼던 100자평을 다시 보면서 인생은 결국 자기가 하기나름이라는 단순하지만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이어지는 얘기로 저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들은 뒤 그에 대한 깨달음으로 시작한다. 제시된 사례에서 저자는 강연을 시작할 때 청중들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고 하는데, 그 농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앞으로의 강연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고백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청중을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애썼지만, 청중과 교감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청중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초보자는 비판보다 칭찬을 구하고 경청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전문가들은 정반대다. 전문가는 격려보다 개선 방법에 대한 제안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러분이 행동하게 만드는 상황은 여러분이 바라는 만큼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다. 여러분은 희망과 현실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어진다.

조언은 하나같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이는 조언을 많이 구할수록 여과기 성능도 훨씬 중요해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비판을 받고 마음이 상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징표다. 마음이 상한다는 사실이 나약하거나 방어적이라는 징표는 아니다. 자존심이 학습을 방해하지 않는 한 말이다.

스펀지가 되는 비결은 어떤 정보를 흡수하고 어떤 정보를 걸러낼지 판단하는 역량이다. 어느 코치의 조언을 신뢰할지의 문제다.

신뢰를 세 구성요소인 아낌, 신용, 친밀로 나눠보자.

여러분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그 사람의 반응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특정 과업을 판단할 자격이 없거나 여러분의 잠재력을 알 만큼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견해는 무시하고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면 된다.

여러분을 아끼고 해당 분야와 여러분의 기량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분 자신을 개선할 정보를 제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건설적인 비판을 모조리 수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조언으로부터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그 조언에 동의할 필요도 없다. 다만 무엇이 그들의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다음 번에는 어떻게 하면 다른 반응을 이끌어낼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공을 독차지 하는 욕심쟁이 농구선수를 뜻하는) 볼 호그(ball hog)

많은 이들이 건설적 비판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과잉 반응을 하고 제대로 잘못을 수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챔피언은 적응한다고

과거 어느 시점에 해면은 진화 경로에서 벗어나 갈라져나갔다. 우리는 해면의 후손이 아니다. 그러나 해면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훌륭한 조상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해면에 대해 폭넓게 알아보면서 나는 해면에게 흡수하는 역량보다 훨씬 더 놀라운 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뻤다. 바로 창조하는 역량이다. 해면은 단순히 독소를 배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항암, 항균, 항바이러스, 항염 작용을 지닌 생화학 물질을 생산해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한다.

카리브해 지역의 해면에서 추출한 물질은 HIV, 포진, 백혈병 치료에 돌파구를 제공했다. 일본 해면에서 추출한 물질은 화학요법 약품 개발에 쓰여 말기 유방암 환자들의 세포분열을 막아 생명을 연장해왔다. 남극 해면에서 추출한 펩티드는 말라리아 치료에 전도유망한 물질로 여겨지고 있다.

스펀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주도적 역량만 갖추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친화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스펀지가 되려면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는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영양분을 배출해 다른 이들도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모든 것에는 빈틈이 있다. 그 빈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나가야(長屋, 목재로 지은 작은 단층 연립주택 또는 다세대주택)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건축가가 되려면 타협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완벽주의를 철저히 거부

그는 어떤 부분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려면 다른 부분에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최고를 지향해야 할 때와 그만하면 만족해야 할 때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자제력을 발휘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자신의 철학을 희생할 의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게 숨은 잠재력을 실현하는 비결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결함을 감내하는 태도는 초보자에게만 필요한 태도는 아니다. 전문가가 되고 계속 실력을 연마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다. 성장할수록 어떤 결함이 수용 가능한지 잘 알게 된다.

완벽주의는 흠잡을 구석이 없고 싶은 욕구다. 결함 제로가 목표다. 잘못도 결함도 실패도 없어야 한다.

실제 세상은 훨씬 모호하다. 예측 가능한 것들, 시험이라는 내 힘으로 통제가능한 보호막을 떠나면 ‘정답‘을 찾으려는 욕구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자기 분야에서 장인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들은 처음에 학교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무결점 결과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완벽주의자들은 세 가지를 잘못한다. 첫째,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에 집착한다. 사소한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을 찾느라 분주해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아내는 자제력이 없다.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한다.

둘째, 실패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어려운 과제를 회피한다. 따라서 새로운 기량을 개발하려 노력하지 않고 이미 자신이 지닌 협소한 기량의 묶음만 정교하게 다듬으려 한다.

셋째, 실수하면 자신을 비하하고 그러면 실수에서 배우기가 어려워진다. 실수를 점검하는 목적은 과거의 자신에게 창피를 주려는 게 아니라 미래의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완벽주의의 나선

새로운 시도를 한다 > 실수를 한다 > 다시는 안 한다 > 편안하게 느끼는 영역이 축소된다

이 패턴이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새로운 시도는 아예 하지 말자‘ 라는 생각이 들고 ‘이제 꼼짝 못하게 됐다‘ 는 결론에 이른다.

완벽주의가 약품이라면 흔한 부작용에 대한 경고문을 붙여야 한다. ‘주의 : 성장 부진을 야기할 수 있음.‘

완벽주의는 우리를 점점 좁아지는 시야에 가두고 실수를 회피하게 만든다. 넓은 문제를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점점 협소해지는 기량을 갈고닦는 데만 집착하게 만든다.

장족의 발전을 하려면 완벽함은 신기루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불완전함을 감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불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냄으로써 스스로 장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입증했다.

와비사비는 불완전함에 내재하는 아름다움을 기리는 기법이다. 일부러 불완전함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결함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리고 결함이 있어도 숭고해지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안도가 불완전함을 편안하게 느끼는 성향은 권투 링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흠잡을 데 없는 경기같은 것은 없다. 상대방에게 맞게 되어 있다. 이기고 싶다면 사소한 데 목숨 걸지 말고, 약점으로부터 숨지 말고, 난관을 피하지 말아야 했다. 자책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경쟁자들이 수없이 타격을 가할 테니까. 얼굴과 머리를 보호하고 싶으면 몸이 노출되도록 놔두고 몇 대 맞아야 했다.

"권투에서는 내가 가진 기량을 십분 발휘하고 결국 경기에서 이기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똑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반드시 미지의 영역으로 한 발 더 내디뎌야 한다."

완벽함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정도‘를 추구한다.

"콘크리트가 버터처럼 보일 때까지 다듬기를 바랐다."

콘크리트라는 재료는 여전히 불완전해 보이지만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질 정도가 되면 받아들일 만해진다.

와비사비는 품성 기량이다. 불가능한 이상에서 도달 가능한 표준으로 관심을 전환하는 자제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표준을 조정한다.

파이크(pike,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뻗는 자세)

완벽주의자는 생각이 막힐 위험도 크다. (중략) 체조선수와 다이빙선수는 이를 트위스티(twisties)라고 일컫는데, 뇌가 자동으로 주도하곤 하던 익숙한 동작을 몸이 갑자기 못하게 되는 현상이다. 스포츠 종목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현상이기도 하다. 트램폴린에서는 동작 상실 증후군, 골프와 야구에서는 입스(yips)라고 한다.

한 예비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정신적 작동이 중지되는 현상은 완벽주의자들 사이에서 훨씬 흔하게 나타난다. 압박감과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동주행기능을 꺼버리고 근육의 기억을 왜곡하는데 훨씬 취약하기 때문이다.

성장의 원동력은 완벽 추구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높은 기준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많이 있다.

최선을 다하기는 완벽주의를 바로 잡지 못한다. 목표가 너무 애매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추진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목표가 뭔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완벽주의를 타파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난관을 제시하는 정밀한 목표를 추구하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행동에 집중하게 해주고 언제 그만하면 충분한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