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서양의 사고 체계에 반해서 동양의 상대주의 사고 체계의 가장 확실한 예제는 중국 고대 철학인 ‘음양설‘에서 찾을 수 있다. 음과 양 두 개의 반대되는 ‘기氣‘는 서로 상충되는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둘이 상호 의존적이면서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고 있다. 상충되는 것을 오히려 상호 의존적이며 하나가 되기 위한 것으로 보려는 시각은 갈등이 있더라도 함께 집단 노동을 해야 했던 벼농사 사회의 시각이다. - P100
「사신도」에서 서쪽에 그려져 있는 거북이와 뱀은 서로 싸우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은 둘이 교미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동양에서는 서양의 절대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상대적 ‘관계‘를 기본으로 한 가치 체계가 만들어졌다. - P100
상대적인 가치관 외에도 동양 문화의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비움‘이다. - P101
인류 역사 최초로 숫자 ‘0‘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사람은 인도인들이다. 서양에서는 ‘0‘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세상은 신에 의해서 완벽하게 창조되었고 진공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0‘은 비움 즉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데, 신에 의해서 창조된 세상에 비움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0‘이라는 개념은 무신론으로 여겼고, 이는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여졌다. - P101
그리스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0‘을 거부한 반면 인도인들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0‘을 쉽게 받아들였다. 인도의 힌두교는 우주가 무無에서 생겨났고 그 크기가 무한하다고 믿는다. 인도인에게 ‘0‘은 창조이자 동시에 파괴이기도 했다. 그들이 믿는 시바신은 무無 자체다. 따라서 인도인들은 신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0‘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인도에서는 ‘0‘이라는 숫자가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만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는 수를 의미한다. - P101
동양에서 비움의 의미는 단순히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그 이상의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양에서 비움은 창조의 시작이다. 비움에 큰 가치를 둔 동양 철학자 노자는 일단 손에 잡히는 물질적 존재가 가득 차게 되면 오히려 성장의 잠재력이 소진된다고 생각했다. - P101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든다. 그러나 그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P101
지게문[戶]과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든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 P102
그런 까닭에 있는 것[有]이 이로움[利]이 된다는 것은 없는 것[無]이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노자 도덕경」 11장, 남만성 역) - P102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빈 공간은 노자의 관점에서 보면 백 퍼센트 가능성의 상태로 해석된다. 이런 노자의 생각은 동양 건축의 공간에서 그대로 반영되는데, ‘선禪의 정원庭園이나 일본의 ‘신사神社‘에 잘 나타나 있다. - P102
‘선의 정원‘은 나무로 가득 채워져 있는 정원이 아닌 비어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된 정원이다. 이 정원에는 텅 빈 직사각형 모래밭에 크고 작은 돌이 열다섯 개 놓여 있을 뿐이다. 정원에서 바라볼 때 열다섯 개의 돌 중 하나는 항상 안 보이게 배치함으로써 완전히 채워지지 않음에 만족하라는 가르침을 주려고 했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비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 P102
일본의 ‘신사‘는 두 개의 동일한 대지를 설정해 놓고, 한쪽의 대지에 건물을 짓고 다른 쪽의 대지는 비워진 상태로 둔다. 그리고 20년이 지나면 반대쪽 비어 있던 땅에 건물을 짓고 이전의 건물은 철거하고 비워 놓는다. 이렇게 건축하고 부수는 것을 20년 주기로 반복한다. 채워지고 비워지는 20년 주기의 순환을 만든 것이다. - P102
일본 신사 건축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건축물 자체보다는 생성하고 소멸하는 생명의 원리를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비움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준비라는 의미가 더 크다. - P102
마음을 비움으로써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 P103
불교는 인생의 모든 고난은 무엇인가를 붙잡으려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유하지 말고 비우라고 가르친다. - P103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과 해탈이다. 열반은 불이 꺼진 상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인 ‘니르바나nirvan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해탈은 벗어났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비목사vimoks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열반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이 모두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내가 죽기 전에도 수양을 하면 이를 수 있는 상태다. 열반에서 더 나아가면 해탈할 수 있다. - P103
불교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서 죽고 나서도 계속해서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계속 반복해서 수레바퀴처럼 도는 ‘윤회의 삶‘을 산다고 봤지만, 해탈의 경지에 이르면 반복적인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해탈은 일종의 자유의 개념이다. 따라서 열반에 이르고 나서야 해탈이 있다고 할수 있다. 불교에서는 열반에 이르고 해탈에 이르는 것은 비움의 수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 P103
공자, 노자, 석가모니의 영향으로 동양 문화의 가치 체계는 ‘관계‘와 ‘비움‘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특징지을 수 있다. - P103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인간 사고를 지배하는 인식 체계 - P107
서양 문화가 사용하는 알파벳 시스템의 기원은 이집트 문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집트 문자 → 시나이 문자 → 페니키아 문자 → 그리스식 알파벳→ 라틴 알파벳순으로 변천되어 내려왔다. - P107
알파벳은 26개의 문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알파벳은 변화되지 않는다. - P107
‘원자‘를 뜻하는 영어 Atom은 고대그리스어 a-tomos에서 온 것으로, ‘부정‘을 뜻하는 ‘일‘와 ‘쪼개다‘는 뜻의 ‘tomos‘가 합쳐진 말이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수 없는 것‘이란 뜻이다. - P107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 학자 탈레스는 모든 물질의 근원은 물이라고 생각했으며, 기원전 5세기경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의 근원이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고, 데모크리토스는 세상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인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전통적인 서양 과학에서는 물질이 분해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인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으며, 외부와 교류가 없는 독립된 단위로 생각했고, 이러한 원자가 모여서 분자를 구성하고 분자가 모여서 우리가 보는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 P108
알파벳의 구성 역시 전통적인 원자 개념과 비슷하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26개의 알파벳이 일정한 순서로 붙어서 단어를 구성하고, 단어가 붙어서 문장을 구성하는 체계다. - P108
알파벳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방식은 알파벳을 하나의 축을 따라서 가로로 배열하되 그 순서만 바꾸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서 D, E, N이라는 세개의 알파벳이 있다면, 그 순서를 END로 하면 ‘끝‘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순서를 바꾸어서 DEN이 되면 ‘동물들이 쉬는 곳‘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 P108
이런 알파벳 문자 체계를 사용했기에 서양에서 유전공학이 먼저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유전공학은 A, G, T, C 네 가지 염기의 서열을 바꾸어서 만들어진 유전자 정보가 생명체의 다양한 모양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각각의 다른 모양의 생명은 네 개의 알파벳으로 만들어진 다른 스토리의 소설책인 것이다. - P108
중국 한자漢字의 경우에는 기존 몇 가지 글자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의미의 글자가 계속 만들어진다. 그런데 서양의 알파벳 체계와는 다르게 글자들 간의 상대적 위치와 획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고 짧은 관계에 따라서 같은 글자 요소들로 다른 의미의 글자가 만들어진다. - P108
한자에서 글자의 뜻은 한 글자를 구성하는 기본 글자의 상호 관계에 따라서 변화된다. 그 외에도 한자의 또 다른 특징은 알파벳의 경우 모든 글자가 한 방향으로 나열되는 반면, 한자는 글자가 상하좌우 어느 쪽으로도 덧붙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 P110
다시 말해서 한자는 자유로운 성장 패턴을 띠게 되는데, 이와 같은 성격은 동양의 건축 평면에서도 나타난다. - P110
서양의 종교 건축이나 왕궁 등을 보면 좌우 대칭성을 가지고서 한 방향의 축을 따라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판테온‘, ‘하기아소피아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베르사유 궁전‘ 모두 좌우대칭에 가운데 축이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많은 경우 주변 환경에 맞추어서 좌우 비대칭성을 가지고 자연 발생적인 형태로 증식하듯 평면이 구성된다. ‘경복궁‘과 일본의 각종 성들이 그렇다. 이렇듯 일방향성과 다방향성은 두 건축 문화가 각기 가지고 있는 다른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P110
서양 문화는 세상을 절대자가 만든 ‘수학적 규칙의 조합‘ 으로 보고, 동양은 세상을 ‘관계의 집합‘으로 보는 시각 차이 - P110
체스는 격자형으로 구획된 정사각형 네모 칸 안쪽에, 여러 종류의 체스 말들이 정해진 위치에 놓인 상태에서 시작된다. 체스는 각자 16개의 말을 가지고 가로 8칸, 세로 8칸의 반상에서 서로 번갈아 가며 말을 움직여서 상대방의 말을 잡아먹는 게임이다. - P111
체스라는 게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특징은 왕, 여왕, 기사, 비숍, 나이트, 룩, 폰 같은 신분 체계가 있다는 점과 각각의 말은 자신만의 고유한 진행 경로 패턴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말은 항상 정해진 위계질서와 기하학적으로 정해진 경로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 P111
바둑의 법칙에서 중요한 점은 상대방 돌을 많이 가진 편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빈(보이드) 공간을 많이 만드는 편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계급 체계를 가지고 있는 체스의 말과 달리 바둑의 돌은 검은색 흰색 두 종류의 편만 나누어져 있을 뿐 같은 편 내에서는 돌들 간에 위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돌은 평등하다만 돌의 위계는 둘러싸였느냐, 아니면 둘러싸고 있느냐의 상대적 위치관계에 의해서 결정 난다. - P112
체스와 바둑의 차이점은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이 차이점은 그대로 두 건축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 P112
첫째, 게임의 규칙과 구성이 전혀 다르다. 체스는 상대편의 말을 죽여서 없애는 힘겨루기 게임이지만, 바둑은 빈 공간을 더 많이 만드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 P112
서양의 건축물은 대부분 외부 공간을 압도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피라미드‘도 그렇고 유럽의 광장에 위치한 여러 성당을 살펴보면 이들 건축물들은 외부 공간을 포용하기보다는 압도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밀라노 대성당‘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 서 있으면 건축물에 압도되어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건물을 높게 지으려고 노력한다. - P113
반면 동양 건축은 건축물을 통해서 외부 공간을 건축물의 일부로 흡수하여 부속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곳을 거닐다 보면 낮은 담장이나 작은 마당, 처마 밑 공간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건축물이 물체가 아닌, 나와 맺는 밀접한 관계로 경험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건축물은 그다지 높지 않으며 여러 개로 나누어진 건물들로 빈 공간 중정과 함께 군집을 이루고 있다. - P113
바둑과 동양 건축물의 배치 모습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만약 바둑돌을 건물이나 담장으로 보고, 바둑돌이 만드는 빈 집을 마당으로 본다면, 바둑판의 돌이 놓인 패턴과 동양 건축물 배치의 패턴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바둑돌들이 둘러싸서 빈공간을 만들 듯이 동양 건축에서는 건물과 담장으로 둘러싸서 마당 같은 빈 공간을 만들면서 건축물이 성장한다. 혹은 검정색 돌이 건축물, 흰색 돌이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보아도 좋다. 둘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패턴이 정해지고 곳곳에 빈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둑과 동양 건축의 공통점이다. - P113
둘째, 체스에서는 말들이 처음부터 정해진 권력의 위계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계급은 서로 다른 형태로 규정된 경로를 통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 반면 바둑의 경우 권력의 위계는 상호 간 상대적인 위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 P113
서양 건축사는 새로운 건축 양식을 만들어 가고 반복하는 행위의 연속이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을 만들어서 기둥에 반복해서 사용했고, 고딕 시대에는 벽을 받치는 지지 구조인 플라잉 버트레스를 이용한 구조 양식을 만들어 그것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 P117
서양의 문화는 양식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반복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이는 마치 체스에서 각각의 말들이 다른 형태의 규칙과 위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양식 혹은 규칙을 만들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것이 서양 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P117
반면 동양의 나무 기둥과 보를 가지는 구조 양식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만 건물은 놓인 대지의 조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반응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변화시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이고 상대적인 공간을 연출해 왔다. 물론 여기에도 풍수지리 같은 보이지 않는 규칙은 존재했지만, 그 풍수지리라는 규칙도 물과 산과 사람의 상대적인 관계에 관심의 초점이 있다. 이렇듯 동양 건축은 양식보다는 상대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왔다. - P117
셋째, 움직임의 패턴을 살펴보면 체스에서는 말이 가로 8칸, 세로 8칸의 게임 보드 내에서 계속해서 움직인다. 이 모습을 사진기의 조리개를 열어놓고 찍는다면 아마도 복잡한 기하학적인 형태의 라인들이 중첩된 모습이 될 것이다. 반면 바둑에서는 바둑판에 바둑돌이 한 번 놓이면 그 위치를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바둑돌이 만드는 패턴은 유기적으로 성장하고 확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 P120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가 디자인한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의 돔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것을 보면 하나의 최종 디자인이 나오기까지 기하학의 중첩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서양 종교 건축에서 대부분의 건축 계획은 기하학적 패턴이 중첩되면서 그 움직임의 선들을 따라서 벽이나 지붕들이 만들어지고 그 벽들에 의해서 보이드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 P120
체스판 위에서 움직이는 말들의 경로를 따라서 선을 그려 보면 기하학적 분석도 같은 그림이 나오는 것처럼, 서양 건축의 빈 공간은 주어진 공간 내에서 기하학, 패턴, 중첩, 시간을 통한 오버랩 같은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반면, 동양 건축은 정해진 규칙이나 반복되는 패턴 없이 땅 위를 뻗어나가는 넝쿨처럼 성장하는 형태를 띤다. - P120
넷째, 체스에서는 말이 격자형으로 만들어진 네모 안에 위치하지만, 바둑에서는 돌이 격자 선의 교차점에 놓인다. - P120
일반적으로 서양 건축은 육중한 벽이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벽‘ 중심의 건축이고, 동양 건축은 ‘기둥‘ 중심의 건축이다. 서양은 벽을 세워서 그 안에 만들어진 방을 사용하는 방식인 반면, 동양은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으면 그곳이 곧 건축 공간이 된다. - P120
바둑에서 자신의 ‘집‘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둑돌로 규정된 꼭짓점들이 연결된 지점의 안쪽을 말하는 것처럼, 건축에서도 꼭짓점 위치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은 것이 자신의 집이 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때 만들어진 지붕 밑의 공간은 때론 벽으로 가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개방되어 있기도 하다. 안방은 지붕 아래에 벽으로 구획된 방이고, 정자는 지붕과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경우이며, 대청마루는 네 개의 벽면 중 두 개만 막히고 두 개는 개방된 경우다. 동양 건축에서는 영역성이 건축 평면도에서 점으로 표현되는 기둥으로 만들어져서 안팎의 경계가 모호하며 빈 공간 자체의 모양이 규정되기 힘든 공간이다. 따라서 빈 공간은 성격상 내외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 P121
반면 서양 건축의 빈 공간은 평면상 선으로 표현되는 벽이 만드는 공간으로, 안과 밖의 공간 경계가 벽에 의해 명확히 구분되는 딱딱한 느낌의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 벽과 기둥이 가지는 공간감의 차이는 훗날 근대 건축에서 공간의 유전적 계보를 구분하는 데 중요한 관찰 포인트가 된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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