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진심이 담긴 미소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오늘은 그 얘기와 관련하여 독자들의 뇌리에 아주 분명히 각인될만한 사례가 하나 나온다. 글을 쓰면서 문득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생각났다.

또한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단지 책에 소개되는 사례들 뿐만 아니라 그냥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을 함께 떠올리면서 책을 읽다보니 본문의 내용이 좀 더 와닿게 느껴졌다.

그리고 앞선 포스팅에서도 나왔었지만 오늘 포스팅에서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는 느낌‘ 이라는 말은 계속 반복된다. 독자인 나는 이 말이 반복되는 이유가 저자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우리의 언행을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평소에 중요하지 않은데 했던 말을 또 반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머릿속에 중요하다고 각인되어 있는 가치나 생각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아직 이 책의 1/3정도 밖에 읽진 않았지만, 여기까지 읽은 시점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는 느낌‘ 이라는 말은 저자의 머릿속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의 머릿속에도 이제 어느정도는 새겨진 것 같다. 이 느낌은 나 자신에게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기에 되도록이면 이 느낌을 서로간에 잘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다만 독자인 나도 사람이다보니 나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에게는 일단 처음엔 잘해주다가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게 되는 것 같다. 뭐 어쩌겠나. 나도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인 것을. 그래서 나는 서로 간에 존중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느 한 쪽만 일방통행하는 식의 존중은 그냥 짝사랑이거나 혹은 괜시리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들수도 있기에 조심스럽다.

뉴욕 대형 백화점의 인사 담당자는 심각한 얼굴을 한 철학박사보다는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못했더라도 사랑스런 미소를 가지고 있는 소녀를 채용하겠다고 말했다.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당신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겨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제 미소를 받고 다시 제게 미소를 돌려준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저는 불평불만이 있어 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유쾌하게 대해요. 미소를 띤 채 이야기를 들어 주면, 일이 훨씬 쉽게 풀리더라구요. 미소가 돈을, 매일같이 많은 돈을 벌어다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저는 비판도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이젠 비판 대신 인정과 칭찬을 해 주죠. 저는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아요. 이젠 다른 사람의 관점을 알아내려고 노력하죠. 이런 것들이 저의 삶을 진정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저는 전혀 다른 사람, 행복한 사람, 부자가 되었어요. 우정과 행복이 많은 부자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셈이죠.

웃고 싶지 않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억지로라도 웃어라. 혼자 있다면 휘파람을 불든가 콧노래, 아니면 노래라도 불러라. 둘째, 이미 행복한 사람인 척 굴어라.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의 윌리엄 제임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행동이 감정을 따르는 것 같지만 사실 행동과 감정은 같이 간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행동을 조절하면 직접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감정도 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즐거움을 잃었다면, 자발적인 즐거움으로 가는 최고의 길은 즐거운 자세를 가지고 이미 즐거운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행복을 찾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당신의 생각을 통제하면 된다. 행복은 외적 상황에 달려 있지 않다. 행복은 내적 조건에 달려 있다.

당신이 돈이 얼마나 많은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두는 당신의 행복과 불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당신의 행복을 결정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본질적으로 좋고 나쁜 건 없다. 우리의 생각이 어떤 것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만든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행복해지겠다고 마음먹는 만큼만 행복하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링컨은 옳았다.

철학자 엘버트 허버드Elbert Hubbard 의 현명한 충고를 꼼꼼히 읽어보라. 하지만 기억하라. 읽기만 하고 충고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문 밖에 나설 때마다 턱은 당기고 머리는 높이 세우고 가슴을 최대한 부풀려라. 햇살을 들이키고, 미소로 친구들을 반기고, 영혼을 담아 악수를 나눠라. 사람들이 당신을 오해할까 두려워 말고, 적들을 생각하느라 일 분 일 초도 낭비하지 마라. 하고픈 일을 확실히 정하려 노력하고, 그 다음에는 한눈팔지 말고 곧바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당신이 하고픈 위대하고 빛나는 일에 집중하라. 그러면 하루하루가 지나며, 산호가 흐르는 조류에서 자양분을 얻듯이 무의식적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기회들을 포착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되고픈 유능하고, 진실되고 유용한 사람을 마음에 그려라. 그러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생각이 매시간 당신을 그 특정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올바른 정신적 태도를 가져라. 용기 있는 태도, 솔직한 태도, 유쾌한 태도 말이다. 올바르게 생각하면 없는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모든 것은 욕망에서 나오고, 모든 신실한 기도는 응답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간절히 바라는 그런 사람이 된다. 턱을 당기고, 머리는 높이 들어라. 우리는 신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웃는 얼굴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상점을 열어선 안 된다."

미소는 한 푼도 들지 않아요. 하지만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내죠.

미소는 받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줘요. 하지만 그걸 받는다고 해서 그만큼 가난해지는 게 아니죠.

미소는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 기억은 평생 지속되기도 해요.

미소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부자인 사람은 세상에 없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미소가 주는 기쁨으로 부자가 될 수 있어요.

미소는 집에서는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일에서는 호의를 낳고, 친구들 간에는 우정의 징표가 되지요.

미소는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안식, 실망한 사람에게는 빛, 슬픈 사람들에게는 햇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해독제죠.

하지만 미소는 돈 주고 살 수도, 구걸할 수도, 빌릴 수도, 훔칠 수도 없어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냥 주기 전까지는 이 세상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 직원들이 너무 피곤해 미소를 짓지 못하면, 미소를 남겨 주시겠어요? 더 이상 미소를 짓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미소를 가장 필요로 하거든요!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두 번째 규칙은 다음과 같다.

규칙 2 : 웃어라.

Smile.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이름을 다 합친 것보다 자신의 이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어렵지 않게 불러준다면 그 사람에게 미묘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칭찬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하지만 이름을 잊거나 이름의 철자를 잘못 쓴다면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이름을 놀라울 정도로 중시한다

친구와 사업 동료의 이름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카네기의 방침이야말로 리더십의 비결 중 하나다. 카네기는 많은 노동자들의 이름을 기억해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공장을 운영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파업 때문에 철강 공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름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2백 년 전 부자들은 작가들을 후원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이 헌정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박물관에 있는 많은 책과 유물들은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까 두려워했던 사람들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다른 사람들의 이름에 집중하고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반복해서 자신의 마음에 새기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너무 바쁜 일이 많다고 변명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호의를 얻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자명하고,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이름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중 몇 명이나 루스벨트처럼 하고 있을까?

낯선 사람을 소개 받고 몇 분간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다음에 우리는 절반 정도는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치인이 처음으로 배우게 되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유권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게 정치인이 해야 할 도리이다. 이름을 잊는 정치인은 잊힐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은 정치에서뿐 아니라, 일이나 사회적 만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훌륭한 예절은 사소한 것을 희생할 때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세 번째 규칙은 다음과 같다.

규칙 3 : 상대방의 이름은 그에게 있어서 모든 말 중에서 가장 달콤하고 중요한 말로 들린다는 점을 명심하라.

Remember that a man‘s name is to him the sweetest and most important sound in the English language.

그녀가 원했던 것은 관심있게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몰입해서 들어주는 묵시적인 아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심으로 칭찬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공적인 사업상 교제의 비결이란 없다. 지금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다른 그 어떤 것도 그만큼 그 사람이 자신을 중요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지 못한다."

아무리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도, 심지어 가장 격렬한 비판을 가하는 사람이라도 인내심있게 공감하며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아무리 사람들이 격분하여 킹코브라처럼 주변에 독을 뿌리더라도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는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그가 원했던 것은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불평과 고발을 통해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하지만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으로부터 그러한 느낌을 받게 된 순간, 그의 실체 없던 불평은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저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인내심 있게 들어 주었습니다. 말허리를 자르고 싶은 충동도 느꼈죠. 하지만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하고픈 말을 다 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죠.

제가 싸우려 들지 않고 오히려 고맙다고 하니

당신의 기분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당신 입장이라도 틀림없이 당신처럼 생각했을 것이라고도 했죠.

유명 인사 인터뷰 분야에서는 세상에 따라올 사람이 없는 아이작 마커슨Issac Marcosson은,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열심히 듣지 않아서라고 못 박았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다음에 해야할 말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귀를 열어놓지 않죠... 저명인사들은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하죠. 하지만 잘 듣는 능력은 모든 능력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능력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제, 어제, 오늘 3일 연속으로 지난 달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책의 주석에서 인용되었던 책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는 과학 관련 책에 그닥 관심이 없었는데, 유시민 작가의 책이 독자인 나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유시민 작가의 책을 결코 적지않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읽었던 것이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될 듯 하다. 그 책을 통해 과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어떻게 하다보니 칼 세이건 저자의《코스모스》에 손을 대는 순간이 드디어 오게 되었다. 이 책에 대한 알라딘 유저들의 서평은 대체로 좋았다는 평들이 많았기에 나 또한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기대가 되고《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읽었던 미약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배경지식들을 바탕으로 이《코스모스》를 잘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
.
아직 초반부일 뿐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코스모스(우주)가 너무나도 광대해서 마치 장님이 코끼리 코만 만지고 코끼리의 형상을 짐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정말 어마어마한 세계에서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독자인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세계, 엄청난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 우주의 많은 행성들 중에서도 지구라는 행성안에 속한 미미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하면서 만약 이러한 우주만물을 만든 누군가(God)가 있다고 한다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신같은 건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들일지라도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깨닫는 데는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관계없이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우주에서 미미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존재를 자각할 수밖에 없는 본문의 내용이었다.

태양 돛 계획은, 둘이 바람을 받아 배가 전진하듯이, 큰 날개로 태양의 빛을 모아 생기는 광압의 힘을 빌려 우주여행을 하자는 것이다. - P10

칼은 평소에, 첨단 과학 기술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이 건전한 시민으로 성숙하는 데에는 효율적인 과학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곤 했다. - P13

우회로야말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편이 아닌가. - P16

자연의 신비는 단 한 번에 한꺼번에 밝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 P20

대중은 불확실성을 못 견디게 싫어한다. - P23

인간 사고의 저변에는 자신의 기원에 관한 관심이 두껍게 깔려 있게 마련이다. - P23

과학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가 우리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과학은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인류가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자연을 좀 더 잘 이해한 자들이 생존에 그만큼 더 유리하다. - P25

과학도 인간의 여타 문화 활동과 마찬가지로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총체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논의해야 한다. 과학과 과학 이외의 문화 활동이 서로 격리돼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7

과학의 발달 경로가 어떤 시기에는 다른 분야의 발달 경로와 살짝 스치기도 하고, 때로는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한다.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철학적 문제와의 관계가 특히 그러했다. - P27

한마디로 과학의 성공은 자정 능력에 있다. 과학은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다. 과학에서는 새로운 실험 결과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때마다 그 전에는 신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던 미지의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는 합리적 현상으로 바뀌어 간다. - P29

우리가 기억해 둬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대담한 기획에서는 이미 제시된 지혜에 대한 재평가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과학하기의 위력이며 과학하기의 요체인 것이다. - P30

나의 위엄을 찾을 곳은 우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사고의 제어 기제에서 찾아져야 합니다. 내가 세상들을 차지했다면 더 가질 것이 없습니다. 우주는 공간을 온통 둘러싸서, 나를 원자 알갱이 하나 삼키듯이 먹어 버립니다. 나는 생각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합니다. - 블레즈 파스칼,《팡세》 - P36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 토머스 헉슬리, 1887년 - P36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 P36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젊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하며 용기 또한 대단해서 ‘될 성 싶은 떡잎‘임에 틀림이 없는 특별한 생물 종이다. - P37

진화는 인류로 하여금 삼라만상에 대하여 의문을 품도록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을 잘 짜놓았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사람에게 기쁨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 P37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코스모스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P37

우리가 이제 떠나려는 탐험에는 회의懷疑의 정신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에만 의존한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로 빠져 버리는 우愚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탐험은 상상력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여정의 연속일 것이다. 회의의 정신은 공상과 실제를 분간할 줄 알게 하여 억측의 실현성 여부를 검증해 준다. - P37

코스모스는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보물 창고로서 그 우아한 실제, 절묘한 상관관계 그리고 기묘한 작동 원리를 그 안에 모두 품고 있다. - P37

코스모스는 너무 거대하여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길이 단위인 미터나 마일로는 도무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미터나 마일은 지상에서 쓰기에 편리하도록 고안된 단위일 뿐이다. 천문학에서는 그 대신 빛의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거리를 잰다. - P38

빛은 1초에 약 18만 6000마일 또는 거의 30만 킬로미터, 즉 지구 7바퀴를 돈다. 빛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8분이면 온다. 그러므로 태양은 지구에서 약 8광분光分만큼 떨어져 있다. 빛은 1년이면 10조 킬로미터, 약 6조 마일을 간다. - P38

천문학자들은 빛이 1년 동안 지나간 거리를 하나의 단위로 삼아 1광년光年이라고 부른다. 광년은 시간을 재는 단위가 아니라 거리를, 그것도 엄청나게 먼 거리를 재는 단위이다. - P38

행성이나 별이나 은하를 전형적인 곳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은 코스모스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에서 일반적인 곳이라 할 만한 곳은 저 광대하고 냉랭하고 어디로 가나 텅 비어 있으며 끝없는 밤으로 채워진 은하 사이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참으로 괴이하고 외로운 곳이라서 그곳에 있는 행성과 별과 은하 들이 가슴 시리도록 귀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 P40

코스모스의 어느 한구석을 무작위로 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 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일 확률은 10^-33이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날 확률이 그렇게 낮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일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 P40

10^33이라는 숫자는, 1 다음에 0이 33개나 붙는 큰 수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 10^-33, 즉 1/10^33이란, 10^33번 시도해야 그런 일을 한 번 정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40

은하는 기체와 티끌과 별로 이루어져 있다. 수십억 개에 이르는 별들이 무더기로 모여 은하를 이룬다. 별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태양일 수 있다. - P40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 (10^11) 개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모든 은하를 다 합치면 별의 수는 10^11×10^11=10^22개나 된다. 게다가 각 은하에는 적어도 별의 수만큼의 행성들이 있을 것이다. - P41

거대 숫자를 부르는 데 우리는 미국식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다. 즉, 미국에서 billion이란 10억을 의미하는 수로서 과학에서는 10^9으로 표기하며, trillion은 1조, 10^12을 뜻한다. 과학적 표기법에서 위첨자로 쓴 지수가 1 뒤에 오는 0의 개수를 나타낸다. - P41

지구는 암석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바위덩어리에 불과하다. 간신히 태양 빛을 반사하고 있기에 조금만 멀리떨어져도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없다. - P41

국부 은하군Local Group of galaxies은 지름이 몇 백만 광년 정도 되고 10~20개의 은하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 유별나지 않은 아주 소박한 은하단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M31이라는 은하가 있는데, 지구에서는 안드로메다자리에서 관측된다. - P42

M31은 별과 티끌과 기체가 모여서 거대한 바람개비 모양을 하고 있는 나선 은하로서 작은 위성 은하를 둘 거느리고 있다. 이 두 개의 왜소 타원 은하를 붙들고 있는 힘이 중력인데, 나를 의자에 앉아 있도록 붙들어 주는 힘도 중력이다. 우주 어디에서나 똑같은 자연 법칙이 성립하는 것이다. - P42

별들은 주로 두 별이 서로 상대방 주위를 도는 하나의 쌍성계雙星系를 이룬다. 그리고 겨우 별 셋으로 이루어진 항성계에서 시작하여, 여남은 별들이 엉성하게 모여 있는 성단, 수백만 개의 구성원을 뽐내는 거대한 구상성단球狀星團까지 천차만별의 항성계들이 은하에 있다. - P43

쌍성계들 중에는 두 구성 별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 상대방 ‘별의 물질‘을 서로 주고받는 근접 쌍성계들도 있다. 대부분의 쌍성계에서는 두 별이 태양과 목성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 P43

초신성超新星같이 저 혼자 내는 빛이 은하 전체가 내는 빛과 맞먹을 만큼 밝은 천체가 있는가 하면, 블랙홀 black hole과 같이 겨우 몇 킬로미터만 떨어져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별이 있다. 밝기만 보더라도 일정한 빛을 내는 별이 있는가 하면 불규칙하게 가물거리는 별이 있고 틀림없는 주기로 깜빡이는 별도 있다. 우아하고 장중하게 자전하는 별이 있는 반면, 팽이같이 지나치게 빨리 돌다가 제 형체마저 찌부러뜨린 별도 있다. 대개의 별들은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내지만, 어떤 별은 하도 뜨거워서 엑스선이나 전파를 내기도 한다. 푸른색의 별은 뜨거운 젊은 별이고, 노란색의 별은 평범한 중년기의 별이다. 붉은 별은 나이가 들어 죽어 가는 별이며 작고 하얀 별이나 검은 별은 아예 죽음의 문턱에 이른 별이다. 이렇게 다양한 성격의 별들이 우리 은하 안에 4000억 개 정도 있다. 이 별들이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하고 우아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 많은 별들 중에서 지구인들이 가까이 알고 지내는 별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태양 하나뿐이다. - P43

명왕성은 메탄 얼음으로 덮여 있는 행성으로 카론이라는 대형 위성을 하나 거느리고 있다. 태양 광선을 멀찍이서 받는 명왕성에서는 태양이 칠흑의 어둠 속에서 작게 빛나는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P45

해왕성, 천왕성, 태양계의 보석인 토성 그리고 목성은 거대한 기체 덩어리들이다. 이 목성형 행성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얼어붙은 위성들을 주르르 거느리고 있다. - P45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모든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이다. 태양의 중심에는 수소와 헬륨 기체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용광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용광로가 태양계를 두루 비추는 빛의 원천인 것이다. - P45

오늘날 3년은 보이저 우주선이 지구에서 토성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 P51

별은 탐험가의 벗이다. 별은 예전에 지구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지금도 우주의 바다로 나선 우주선에 힘이 되어 준다. - P51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인 파로스 Pharos 등대 - P56

박물관 muscum 이란 사실 이름을 그대로 옮기면 뮤즈 muse라고 불리던 아홉 여신의 전공 분야에 각각 바쳐진 연구소였다. - P56

코스모스 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며 카오스 Chaos에 대응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그리고 우주가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敬畏心이 이 단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P56

전 세계의 천재들이 몰려와서 함께 용약勇躍하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모든 지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집대성하려던 곳이었다. - P57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 P57

페르가 Perga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타원, 포물선, 쌍곡선이 원추곡선임을 밝힌 수학자였다.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행성, 혜성, 별들의 궤도는 원추곡선으로 기술된다. - P57

원추곡선이란 이름이 붙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원추를 원추의 축과 어떤 각도에서 자르느냐에 따라서 생기는 단면이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모습을 모두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폴로니우스가 원추곡선에 관한 저작물을 남긴 지 18세기가 지난 후에 케플러가 이 이론을 행성의 운동을 기술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 P57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Ptolemaeos는 오늘날의 사이비 과학이라 할 점성술을 수집하여 정리했다. 그가 주창한 지구 중심 우주관인 천동설이 1,500년 동안 맹위를 떨쳤다. 지성적 역량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형편없이 틀릴 수가 있음을 상기케 하는 인류사의 좋은 예였다. - P58

무엇보다도 도서관의 생명은 모아 놓은 책들에 있다. - P58

인류는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점 티끌 위에 살고 있고 그 티끌은 그저 그렇고 그런 별의 주변을 돌며 또 그 별은 보잘 것 없는 어느 은하의 외진 한 귀퉁이에 틀어 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 P60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 P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엉덩이즘 -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엉덩이와 관련된 생물학, 인류학,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와 문화를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인종차별이라는 키워드에 기반하여 백인과 흑인 사이에 일어난 다양한 일들이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잘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에 따르면 많은 대중문화 매체에서 엉덩이가 대세로 떠오른 2014년을 ‘엉덩이의 해‘ 로 명명했다고 하는데, 이 당시 BBL이라고 불리는 미용 성형수술 회수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p.338에 밑줄친 내용에 따르면 이 수술이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러한 리스크를 과감히 감수할 정도로 미용 목적의 엉덩이 성형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고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런 현상들을 보다보면 최신 유행에 올라타려는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된 어떤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미국같은 서양이든 우리나라같은 동양이든 문화권을 불문하고 다 비슷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독자인 나는 개인적으로 트렌드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편이라 이러한 얼리 어답터(early adapter, 초기 수용자)들의 사고방식을 온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이런 분들이 있기에 어떤 유행이 잠깐 반짝하고 끝나든 혹은 끊임없이 지속되든 관계없이 나는 그냥 대세로 어느정도 굳어진 것들에 편승하는 정도로 살고 있다. 언제나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대체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검증된 것들을 추구하려는 게 나의 성향인 것 같다.

초기 수용자든 후기 수용자든 혹은 그 사이에 있는 어떤 딘계든 간에 각각의 단계별로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자신의 포지션을 정하고 행동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이 책에서 엉덩이 수술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이러한 것도 마찬가지다. 엉덩이 성형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목표나 가치를 획득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남들의 시선이나 위험같은 것들과는 별개로 성형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것이고, 엉덩이 성형에 관심은 있지만 위에 언급한 리스크같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시간이 지난 뒤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어느정도 확보된 시점에 성형을 선택하면 그만인 것이다.

독자인 나는 여기 본문에 나온 엉덩이 성형 같은 것을 직접 한다는 등의 일에는 딱히 관심이 없지만, 제시된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어떤 성향의 소비자인지를 자각해볼 수 있었다는 것에 소소하게나마 의미를 두고 싶다.
.
.
.
뒤이어 읽다가 ‘아나콘다Anaconda‘라는 곡으로 유명한 니키 미나즈Nicki Minaj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가 쓴 아나콘다라는 곡도 과거의 ‘베이비 갓 백‘처럼 엉덩이라는 소재를 똑같이 다루지만, ‘베이비 갓 백‘ 과의 차이점은 엉덩이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쥐고 있느냐의 여부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엉덩이라는 이미지를 통제하면서 돈을 버는 것인지 아니면 이 책의 앞부분에서 소개되었던 과거의 세라 바트먼 혹은 ‘베이비 갓 백‘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엉덩이 큰 흑인 여성처럼 자신의 통제권은 일체 없이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착취당하며 소비되는 대상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엉덩이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는지의 유무라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 어떤 것을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다.

독자인 내 생각을 좀 더 부연해보자면, 엉덩이를 소재로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콘텐츠 안에서도 그 이면에 숨겨진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람과 자신은 그닥 원하지 않지만 타인에 의해 강요된 결과물로 만들어진 콘텐츠는 설사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있어서는 비슷할지 몰라도 그 근본자체는 엄연히 다르다는 얘기를 니키 미나즈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글을 쓰다가 문득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유명 유튜버와 관련된 뉴스들이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그 뉴스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사건의 내막까지는 알지 못하기에 별도로 자세히 얘기하진 않겠다. 다만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유튜버든 어떤 다른 유튜버든 간에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영상을 업로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일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영상의 이면에 숨겨진 외부적인 요인(예를 들면 금전적인 채무관계 같은 것)들로 인해 자신의 의사와는 별개로 착취당하는 목적으로 영상을 찍는 유튜버들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일이 가급적 없기를 바라지만 세상이 마냥 순수하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그리고 이 책《엉덩이즘》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18세기 세라 바트먼 같은 사람이 지금 21세기에도 아예 없으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비단 이 책에 나온 엉덩이 뿐만 아니라 작게는 어떤 사소한 일부터 좀 더 넓게는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지 유무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
.
.
이어서 p.343에 밑줄친 니키 미나즈의 말은 똑같은 행동을 해도 백인이 할 때와 흑인이 할 때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본문을 읽다보면 이것은 단순히 사고방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금전적인 보상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었는데, 참 이런 걸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생각들 까지도 잠시 해보게 된다. 원래 세상이라는 게 이런거다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과거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무슨 혁명적인 수단같은 것을 동원하여 뒤엎어야 하는 건지 등과 같은 생각들이다. 소위 말하는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적인 얘기는 이정도의 원론적인 선에서 끝내겠다. 이 책은《엉덩이즘》 이지 정치서적이 아니니 말이다. 정치얘기는 정치서적에서 하는게 맞다고 본다.

뒤이어서 이 책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선택적 글래머‘ 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 글의 핵심 인물은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트워킹 강사 중 하나인 켈레치 오카포Kelechi Okafor라는 사람이다. 지금은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원래 태생은 나이지리아 였기에 백인이 아닌 흑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다양한 얘기들이 나오지만, 앞서 니키 미나즈가 말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의 말을 오카포도 한다. p.349에 밑줄친 문장이 바로 그와 관련된 것인데 요지는 백인들이 흑인의 문화를 전유하여 그것의 단물(금전적 이익)만 쏙 빼먹고 흑인들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오카포는 백인 여성들의 질투심에 기반하여 흑인 문화를 이용하는 행태라든지 단지 흑인 문화를 자신들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써만 이용하는 한 연예인의 행태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흑인 문화를 단지 특정 수단으로만 보기보다는 그 문화의 뿌리와 동기를 이해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한다.

잠시 위에서 언급했던 이 글의 제목인 ‘선택적 글래머‘ 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면, 이는 백인 여성들이 성적으로 섹시하게 느껴지는 흑인 여성들에 대한 질투심으로 인해 백인 남성들로부터 섹시하다고 느껴지는 흑인 문화를 선택적으로 차용하는 행태를 살짝 비꼬는 듯한 뉘앙스라고 느껴졌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 책의 뒷부분에 나왔던 마일리 사이러스였다. 그는 청순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섹시한 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해 대표적인 흑인 문화로 알려진 트워킹을 큰 무대에서 시전했다. 그러다가 섹시한 이미지가 더이상 대중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자마자 또다른 페르소나를 찾아나서는 행태를 보인다. 이러한 행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선택적 글래머‘ 였다고 독자인 나는 느껴졌다. 흑인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같은 건 생략한 채 단지 보여지는 이미지를 위해 잠시 들렀다 가는 임시 정류장 정도로 흑인 문화를 대했던 백인 여성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6글자로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나온 오카포의 얘기까지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백인들이 단지 흑인 문화의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행태에서 벗어나 기본적으로 흑인 문화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역사가 어떠했든 간에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났고, 인종차별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생각에 널리 퍼져있기에 어떤 백인 우월주의같은 생각에 기반한 행동보다는 인종에 관계없이 각각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통해 어떠한 우열이 없는 건강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어떤 문화든 간에 선입견이나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약어로 흔히 BBL(Brazilian Butt Lift, 브라질 엉덩이 리프트) 이라고 불리는 엉덩이 확대 수술은 환자의 배·허리· 허벅지에서 지방을 흡입해서 엉덩이에 주입하는 지방이식 수술로서, 1990년대에 엉덩이를 확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실리콘 삽입술의 대안으로 개발되었다. BBL은 실리콘 삽입술보다 더 자연스러운 결과를 내긴 하지만, 미숙한 의사가 집도한다면 심각한 위험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지방을 다리에서 상체와 폐까지 이어지는 주요 혈관에 실수로 주입하면 치명적인 색전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38

이렇듯 엉덩이를 둘러싸고 여러 해결책이 쏟아져 나온 이유는, 알고 보면 발행 부수가 높은 여성 잡지가 마주하고 있는 본질적 난문제 때문이다. 몇십 년 동안 여성 잡지는 지방 공포증을 조장함으로써 쏠쏠한 이득을 봐왔지만, 이제는 좀더 살이 붙은 새로운 이상적 신체 이미지의 출현에 대처해야 했다. 그토록 여러 해 동안 지방을 녹여 없애는 것에 수많은 지면과 잉크를 할애해 온 잡지 편집자들은 큰 엉덩이에 관한 욕망을 다룰 방법도 하나밖엔 몰랐다. 바람직한 엉덩이란 끝없는 운동과 식이요법, 노력과 자기희생과 건강한 수준의 수치심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살과 근육의 조합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 P339

"베이비 갓 백" 샘플링을 통해 미나즈는 주류 힙합에서 엉덩이를 다뤄온 역사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엉덩이 큰 흑인 여성의 서사에서 이제 스스로 통제권을 쥐겠노라 주장한다. 미나즈는 "베이비 갓 백"의 여성들과 달리 머리 없이 회전하는 몸이 아니라, 음악을 창조하고 이미지를 통제하며 돈을 버는 장본인이다. 착취가 일어났다면, 그건 자기착취이자 미나즈 본인이 내린 선택이다. - P342

이제 하나의 하위 장르로 자리매김한 엉덩이 노래는 참여한 이들에게 돈깨나 만지게 해주었지만 뉴올리언스의 원조 바운스 공연자인 케이티 레드와 빅 프리디아(마일리 사이러스와 다른 이들이 상업화하기 전, 처음으로 트워킹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상업적 성공과 인정은 더 늦게 찾아왔으며 그 크기도 남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 P342

여기서 2013년 9월에 사이러스의 공연 여파에 니키 미나즈가 한 말이 떠오른다. "백인 여자애가 흑인스러운 뭔가를 하면 흑인들은 생각하죠. 아, 저 사람 우리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네. 그래서 같이 동참하죠. 그 다음 백인들은 생각해요. 오, 멋진데! 흑인스러운 걸 하고 있잖아. 웃기죠! 그렇지만 흑인이 흑인스러운 걸 하면요? 뭐 그냥저냥 심드렁한 일이죠." - P343

"제가 춤출 때 일어나는 일의 역학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 그걸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게 쪼개는 것, 음악과 섹슈얼리티의 언어와 관계를 사람들에게 몸으로 표현하게끔 가르치는 것, 이 모든 게 마냥 좋았어요." - P348

백인이었던 스튜디오 원장은 이렇게 답장했다. "나는 당신의 트워킹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너무 기초적이에요. 나랑내 수강생들은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거의 넘어질 정도로 동작을 하거든요" - P348

오카포가 원장의 답장을 공유한 트위터 글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특히 미국에서 반응이 격렬했다. "미국의 흑인여성들이 격노했죠.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에겐 몇 세기째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뭔가를 백인이 전유해가고, 새로 포장해서 주류에게 소개해 그걸로 돈을 벌어들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폄하되어버려요." - P349

수많은 백인 여성이 그의 트워킹 수업을 수강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오카포는 설명한다. "서양의 여성성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백인 우월주의가 자라나고 있던 과거에 그들에겐 뭔가 쟁취할 것이 필요했죠. 여성스러움·여성성·백인 여성의 순수함이 그 대상이 되어주었어요. 그렇게 백인 여성들은 그 서사의 덫에 빠져버렸죠." - P349

오카포는 백인 남성들이 이렇듯 신화적인 순수한 백인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을, 특히 그들이 비백인 남성에게서 온다고 인식하는 신체적·성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여긴다는 것 역시 주목한다. "그게 백인 여성들이 트워킹에 끌리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백인 여성의 순수함이라는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내적이고 외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 P350

오카포는 이어 설명한다. "노예제가 있던 시대에 흑인 여성의 신체가 백인 남성들에게 욕망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대를 이은 질투도 빼놓을 수 없죠." 백인 남성들이 흑인 여성을 욕망하며 그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을 보고, 백인 여성들이 의문을 품었을 거라는 가설이다. - P350

"왜 내 남자가 저 여자를 원하는 거지? 내가 어떻게든 저 여자를 모방한다면, 그 욕망이 나를 향할 수 있을 텐데." - P350

흑인 여성의 전유물로 취급되는, 성적 능력에 갖는 질투에는 물론 오랜 역사가 있다. 그 역사는 적어도 세라 바트먼과 버슬 그리고 1814년에 나온 희극 <호텐토트 비너스 혹은 프랑스 여자에 대한 혐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P350

순수에 관한 광범위한 신화에서 탈출하기 위해 백인 여성들은 자주 흑인 여성을 따라 하고, 섹슈얼한 고정관념을 연기하기도 한다. 이는 이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Christina Aguilera, 브리트니 스피어스 그리고 두말할 것 없이 마일리 사이러스 같은 젊은 스타들이 몸소 실천해온 것이기도 하다. - P350

"더 자율적인 여성성에 다다르려면 그들은 우선 더러운 단계를 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흑인 여성의 거의 조악하리라 할 만한 모습을 모방합니다. 그렇게 드디어 자유를 얻고 나면, 흑인을 따라 했던 과거는 내팽개치죠." - P351

오카포는 흑인성이 "어떤 방식, 모양, 형태로든 외면당한 모든 사람을 수용하도록" 구성된다고 본다. 백인 여성도 그 모든 사람에 포함된다. 오카포는 말한다. "하지만 그건 공정치 않아요. 그 사람들은 떠날 수 있지만, 흑인 여성들은 떠날 수 없으니까요." - P351

2016년에 오카포는 런던에 직접 스튜디오를 열었고, 지금까지 트워킹과 폴댄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댄스의 역사와 생체 역학을 학술적으로 알려주는 한편 그들이 동작과 직관적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 바탕에는 성학대 생존자인 그가 살면서 겪은 경험이 있다. 오카포는 학대당한 개인사에 대해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으나 이제는 트워킹을 침묵을 깨고 자신의 몸과 소통하고 몸을 되찾는 방식으로 여긴다. - P351

"춤을 추면서 저는 제 몸을 되찾고 있어요. 상처받고 약해진 사람들에게도 춤을 권할 수 있죠. 엉덩이와 골반 부위는 여성들에게 항상 많은 폭력과 트라우마가 일어나는 장소니까요." - P351

오카포는 트워킹이 엉덩이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고, 트워킹을 잘하기 위해 큰 엉덩이는 필요 없다고 가르친다.  - P351

"트워킹은 발에서 시작해서 위로 올라옵니다. 서아프리카 문화와 춤에서 말하는, 땅에 뿌리내리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세네갈을 보면, 나이지리아를 보면, 발을 많이 쓰는 걸알 수 있죠." - P352

그(오카포)가 보기에 트워킹을 하는 다른 유럽인들은 (온라인에는 러시아와 동유럽 트워킹 강사들이 놀랄 만큼 많다) 흉추를 과도하게 사용한다. "묵직한 경련이 너무 많아요." - P352

오카포는 수강생들이 수업을 들을 때,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댄스의 역사에서 다양한 동작이 사용된 방식들에 관해 이해하길 소망한다. - P352

"트워킹과 그 역사에 대해 아주 철저히 이해하길 바라요. 저는 이 동작들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려줍니다. 발을 휙 움직이는 동작이 어떻게 모양을 바꿔가며 뉴올리언스까지 도착했는지를요." - P352

"공간과 커뮤니티를 활용해 교육하면, 사람들이 나가도 교육은 계속 퍼져나갈 수 있잖아요?" - P352

세계 문화는 타인의 문화를 빌려오고, 자신의 문화와 섞고, 다시 섞는 행위에서 만들어진다. 음악·댄스·예술·패션은 대체로 창조자의 정체성과 문화를 넘어서는 전통과 경험에기대어 형성된다. 이런 문화적 혼합이 없다면 로큰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요, 트워킹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P353

하지만 타인의 것을 빌려오는 일에 무의식적이거나, 소유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거나, 역사를 고려하지 않으면 이는 쉽게 해로워진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문화적 전유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자신의 아이 같은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트워킹을 대놓고 착취했다. 그러다가 커다란 가짜 엉덩이를 단 섹시한 페르소나가 더는 알맞지 않다고 느껴지자 손쉽게 벗어던진 다음 커리어의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해서 조안 제트 Joan Jett와 스티비 닉스Stevie Nicks 같은 고전적 록의 히로인을 따라 이미지를 꾸미기 시작했다. 공연으로 떼돈을 벌었음에도, 트워킹이 흑인과 퀴어 공동체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공적으로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뱅어즈> 앨범 활동을 마친 다음에는 트워킹을 빠르게 포기했다. - P353

사이러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히 못되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 건 우리의 동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 처음 든 생각 아래에서 끓고 있는 욕망을 의식하고 밝혀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 P353

나는 2010년대에 트워킹 수업을 듣지도, 벨피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라지고, 주류 문화에서 큰 엉덩이의 의미와 그 가치가 달라지며 얻은 변화의 결실을 (이게 맞는 단어인지조차 모르겠지만) 즐기긴 했다. 모두 1990년대 말과는 다른 시각으로 내 몸을 봐주었다. 2010년대 초 일하던 박물관에서 회의를 마치고 계단을 올라가던 중, 몇 미터 뒤에서 걷던 동료가 말을 걸었다. 엉덩이 한 번 끝내주네요! 그 말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살짝 전율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내 몸에 주목했다는 것에, 내가 섹시해보인다는 것에. - P354

엉덩이의 해가 왔을 때쯤엔 웬만한 데이트에서 위스키 세 잔이면 함께하는 사람이 (어떤 젠더든 어떤 인종이든) 내 엉덩이를 쥐고 그에 관해 뭔가를 속삭이곤 했다. 사람들이 ‘큰 엉덩이를 좋아한다는‘ 속마음을 풀어놓자, 내 몸은 남들이 탐내는 대상이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즐겼다. 엉덩이를 드러내는 딱 붙는 드레스를 입을 때면, 그 힘을 느낄수 있었다. - P354

하지만 한계 역시 분명히 느꼈다. 십대 시절에 나는 내 엉덩이가 크고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엉덩이는 갑자기 크고 섹시한 것으로 변했다. 그러니까 형편이 나아지긴 했어도 내 엉덩이의 존재감은 여전히 두드러졌다. 때론 엉덩이를 숨기고 싶었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내 엉덩이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를, 내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발표하러 강단에 올라갈 때, 마이크로 다가가는 나를 보며 사람들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를지 더는 상상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 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했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메시지를,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었다. - P355

흑인 문화로 손을 뻗을 때 백인 여성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오카포의 이야기가 좋은 시작점이 되어준다. 섹시함에 관한 접근권, 반항할기회, 백인 여성성의 엄격한 기준 너머로 밀고 나갈 방법. 하지만 이런 욕구들을 면밀하게 살피고 표현하는 건 쉽지 않아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그 욕구를 해소하고 끝내버린다. - P355

백인성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흑인성에 손을 뻗을 때, 백인여성들은 많은 것을 외면한다. 우리가 몸에 갖는 수치, 백인성의 구성에서 기인하는 수치, 어떤 몸은 순수하고 다른 몸은 성적이라는 발상을 강요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치, 어떤 몸이 다른 몸보다 낫다는 수치. 그 모든 수치심의 근원에서 고개를 돌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남들에게 해를 입힌다. 그리고 우리의 수치심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영영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 자신에게도 해를 입힌다. - P355

나는 내 몸에 대한 불안을 사소하거나 얄팍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인종과 젠더의 정치는 몸의 정치다. 우리가 우리 자신 그리고 타인의 몸에 대해 지니는 생각과 가정들을 탐구하는 건 중요하면서도 심오하다. - P359

엉덩이의 역사에 관해 조사하며 나는 내가 품은 수치심을 이해하고 그 배경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아가 나의 사고방식과 전제로 품은 가정들에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제는 거대한 구조적 힘이 덜 막연하게 느껴진다.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느끼는지 정확히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희망을 품는다. - P361

내 머릿속 목소리가 속삭인다. 네 엉덩이는 너무 커. 그러면 다른 목소리가 나선다. 뭐가 너무 크다는 거야? 누가 너무 크대? 큰 게 어디가 어때서? - P361

우리를 이루는 부분들을 (신체 부위이든 감정이든 욕망이든) 면밀하게 관찰하는 일은 물론 버겁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수치심의 근원을 궁금해하고 그 배경을 알아보는 건, 단순히 변명하거나 어물쩍넘어가려는 태도와 다르다. 외면하는 대신 직시하기를 선택할 때 새로운 가능성과 지식이 열린다. - P361

과거의 사람들이 현재를 빚어낸 방식을 이해하는 건,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가 미래를 빚어나갈 방법을 알아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과거의 인간들이 우리의 다양한 몸이 지니는 의미를 만들었다면, 오늘날 우리도 의미를 새로 만들거나 없앨수 있다. 우리가 과거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받는 위대한 선물은, 한때 영영 피하지도, 바뀌지도 않을 듯 보였던 것을 극복하고 변화하게 만든다. 일시적으로 달리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 P361

수치심의 의미를 만들어낸 건 사람들이다. 그렇다는 건 다른 사람들, 즉 로젤라 캔티-레트섬, 뎁 버가드, 켈레치 오카포, 비니 쿠치아, 알렉스 바틀릿 같은 사람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의미가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 P362

우리 몸은 타고나길 통제에 저항한다. 나는 이 사실을 체감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승리감에 젖는다. 우리는 버슬과 거들과 운동 비디오와 양배추 다이어트와 치수 체계를 발명했지만, 우리 몸은 제 나름의 뜻이 있어서 우리에게 복종하는일이 드물다. - P362

물론 엉덩이가 커지고 싶은 사람도 있고 작아지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엉덩이는 어쨌거나 자기 모습을 그대로 지켜낼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몸을 억지로 복종시키려 할 때, 의미를 부여하고 형태와 외양을 바꾸고 변화를 일으키려 시도할 때, 인간의 몸은 고집스럽게 굴복을 거부한다. - P362

나는 몸과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주도권 다툼을 느낀다.
통제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망과 어쨌거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몸이 존재하리라는 현실 사이에서 밀고 당기기가 일어난다. 청바지를 입을 때, 나는 그 사실을 온몸으로 환기한다. - P362

내 엉덩이는 문제도 축복도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그건 그냥, 엉덩이일 뿐이니까. - P363

사르치 Saartjie는 바트만이 생전에 불린 아프리칸스어 이름이다. - P370

‘치‘라는 접미사는 두 가지 의미를 지녔는데, 친구들 사이에 애정을 담아 부르는 애칭인 동시에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축소하고 노예 상태 · 예속 · 복종을 의미하는 기능도 있다. 남아프리카 역사를 통틀어 이 접미사는 백인들이 흑인에게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인종차별적으로 사용되었다. 바트먼이 불렸던 이름에도 조롱의 의미가 내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풍만한 몸매로 알려진 그가, 막상 이름에는 언제나 작다는 의미를 담고 산 것이다. - P370

아르메니아인들은 1925년 카르토지안 소송에서 법적으로 백인이라고 판결 받았다. 당시 다양한 아시아 민족 집단의 백인성을 법적으로 결정하려는 소송이 연달아 벌어졌는데, 이는 법적으로 미국에 이민할 권리가 백인에게만 주어졌기때문이었다. 카르토지안 판결에서 아르메니아인이 백인이라고 결론지은 근거는 미심쩍은 19세기의 인종 과학, 역사적으로 "투르크인과 섞이길" 꺼려온 경향, 러시아 코카서스인과의 관련성이었다. 그러나 인종은 법적 분류뿐 아니라 문화적 분류이기도 하므로, 오늘날 많은 아르메니아인이 스스로 백인으로 여기지 않으며 아르메니아인에게 결부되는 고정관념과 차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 P390

콩고 광장의 전성기로부터 몇 세기가 지난 지금, 마푸카와 그로부터 파생된 춤들은 갈수록 성적으로만 해석되고 있으며 영적인 면모는 섹슈얼리티의 전시를 둘러싼 염려에 가려졌다. 20세기 말에 이 댄스는 신앙심 깊은 국가인 코트디부아르에서 음란하다는 이유로 잠시 금지되었다. 토고, 나이지리아, 부르키나파소, 카메룬에서는 여전히 규제 대상이다. - P393

킴블이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낸 이유, 아이들에게 베이비돌즈 공연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이유는 이런 저항에 있다. 베이비 돌즈에 섹슈얼리티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을 오로지 성적으로만 해석한다면, 뉴올리언스 문화에서 엉덩이를 중심으로 하는 춤과 세컨드 라인이 맡은 역할을 오해하는 셈이다. 베이비돌즈가 의상을 차려입고, 춤을 추고, 엉덩이를 과시하는 것은 과거 뉴올리언스의 여성들을 기념하고 그들과 연결하는 방식이다. - P393

1960년대에 BBL의 한 유형을 개발한 이보 피탕기 No Pitanguy는 브라질에 세계 최초의 성형외과 수련 센터를 연 사람이자 BBL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러나 BBL의 초기 버전은 처짐을 개선하기 위해 잉여의 피부를 잘라내는 ‘리프트‘ 수술이었지, 확대술이 아니었다. 오늘날 BBL은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흡입한 지방을 엉덩이에 주입하는 수술이다. - P3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번 포스팅에서 흑인들로부터 유래한 힙합 문화에 대한 얘기를 했었는데, 오늘은 홉슨이라는 문화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힙합 문화를 이 책의 주요 소재인 엉덩이와 연결지어 설명한다. 이제껏 백인들에게 그닥 어떤 관심이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엉덩이라는 것이 흑인 문화에서 유래한 춤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리고 본문에 나온 홉슨의 말에 따르면 그 기저에는 흑인 남성의 본능적 욕망이 깔려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인간의 본능에 의해 시작된다는 사실을 흑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본문의 내용과는 별개로 독자인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혹은 어쩌면 섣부른 관점일 수도 있는데 hip-hop에서 hip이 엉덩이를 지칭하는 단어와 철자가 동일한 거로 봐서 hip-hop문화의 근본이 어쩌면 엉덩이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이나마 해보게 되었다. 이건 단지 그냥 엉뚱한 생각일 수도 있고, 어쩌면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뒷발로 벌레를 눌러 잡는 것과 같은, 소위 말하는 제대로 얻어걸린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인문학이라는게 원래 이야기를 얼마나 그럴싸하게 잘 꾸며내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절에서는 과거 비욘세가 속했던 그룹인 데스티니스 차일드라는 그룹의 히트곡 제목이기도 한 ˝부틸리셔스Bootylicious˝ 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이 단어는 나중에 권위적이라고 소문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될 만큼 유명한 단어가 되는데, 이는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한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유의미한 역할도 했다고 한다.

뒤이어서 패리스 힐튼과 그의 조수로 일했던 킴 카다시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다만 본문에서 힐튼은 카다시안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촉매 역할 정도로만 언급되고 있고, 저자가 주로 언급하는 인물은 엉덩이로 굉장히 유명세를 떨쳤고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킴 카다시안이다.

독자인 나는 개인적으로 킴 카다시안이 단지 일반인들에 비해 굉장히 큰 엉덩이를 가진 모델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었는데, 본문을 읽으면서 나의 이러한 인식이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모든 걸 다 말하긴 힘들지만 킴 카다시안은 철저하게 기획된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본문을 읽다보면 카다시안의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 그녀의 온 가족이 카다시안을 전략적으로 마케팅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독자인 나는 본문을 읽다가 카다시안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도 자연스럽게 검색해보게 되었는데,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뒤에서 얼마나 잔머리(?)를 썼는지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카다시안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들을 추가적으로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여기서 단순히 카다시안에 대해 좀 더 아는 정도에서 그치면 조금 아쉬울 것 같고,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사용했던 전략적인 행동들과 그것의 동기를 잘 분석해보는 게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방식이 어떠했든간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큰 돈을 벌게 되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보여진다.

우리가 살다보면 그냥 흘러가는대로 별 특별한 생각없이 하루하루 사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러한 삶보다는 어떤 목표나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거나 쟁취하기 위한 전략을 잘 세워놓고 거기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과정 하나하나가 정말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미 그렇게 잘 살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카다시안 가족처럼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다가올 미래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
.
.
이 책의 마지막 장인 7장에서는 ‘움직임의 시대Motion‘ 라는 제목의 글이 이어지는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트워킹twerking이다. 이 부분을 읽기 전에 독자인 나는 트워킹을 단순히 엉덩이를 앞뒤로 흔드는 행위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본문을 읽고난 뒤 트워킹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알게 되면서 트워킹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약간은 바뀌게 되었다. 트워킹은 18세기에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노예들을 사고 팔던 노예제가 성행하던 시기에 흑인 노예들이 주중의 고된 노동을 마친 뒤 주말마다 뉴올리언스의 콩고 광장이라는 곳에 모여서 췄던 춤으로써 유순함과 얌전함이라는 유럽식 개념에 반발하여 일어났던 일종의 예술적 저항의 일부였다고 한다.
이 얘기 외에도 트워킹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본문에 소개되어 있는데, 트워킹을 단순히 1차원적인 춤으로만 바라봤던 나 자신의 시각을 보다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 어떤 문화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살펴보는 게 왜 흥미로운 일인지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마일리의 몸짓‘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백인인 마일리라는 10대 소녀가 처음에는 청순한 역할로 나와서 대중들의 인기를 끌다가 성인이 되는 시점을 전후로 해서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청순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순수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보이는 문화를 좇아 가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일리는 위에서 언급했던 흑인 문화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트워킹 춤을 추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급격한 마일리의 이미지 변신은 각종 백인성 짙은 매체들로부터 엉덩이에 대한 급격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에 밑줄 친 문장은 엉덩이에 대한 백인들의 뒤늦은 관심을 아주 적절히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 역사학자 자넬 홉슨은 이렇듯 힙합 문화가 더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여성의 엉덩이에 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홉슨에 의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토속 춤에서 엉덩이는 항상 중요한 요소였는데, 이것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상적 아름다움에서 엉덩이가 주요 대상이 된 동시에 힙합의 미학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 P289

"흑인 문화에서 추는 춤의 표현을 살펴보면 엉덩이와 골반을 흔드는 동작이 많은 편인데, 그게 확실히 시선을 끕니다." - P289

"큰 엉덩이에 대한 선호는 사실 흑인 남성의 욕망에서 오는 겁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봅시다. 흑인 남성과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 백인 남성들은 비로소 엉덩이를 알아차리기 시작한 거죠." - P289

물론 욕망은 복잡하다. 백인 남성들이 너나할 것 없이 큰 엉덩이를 욕망하기 시작한 게, 혹은 공개적으로 그 욕망을 인정한 게 힙합 문화를 소비하고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단순화일지도 모른다. - P290

욕망은 사회적 힘이자 개인의 경험으로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빚어내는 것이며 동시에 개인만이 소유하는 고유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 중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직접 결정할 수 있고, 전에는 인정하지 않고 탐험하지 않던 욕망들에 다가가 이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P290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대규모로 힙합을 소비하기 시작한 현상은 없던 욕망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고, 원래 있던 욕망의 고삐를 풀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여성의 엉덩이가 백인 남성의 욕망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 P291

제니퍼 로페즈가 인기를 얻은 뒤 몇 년 동안 미디어에서는 갈수록 굴곡있는 몸매에 대해 열광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여성의 몸을 조각조각 뜯어보고 평가하는 새로운 방법이었을 뿐, 인간 외양의 넓은 스펙트럼을 전부 끌어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1920년대에 코르셋이 양배추 다이어트로 대체되었듯, 1990년대에 더 크고 풍만한 엉덩이에 열광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여성들이 갑자기 다이어트·체중· 건강에 관한 압박에서 해방된 건 절대 아니었다. - P293

"부틸리셔스"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세 번째 앨범 <서바이버 Survivor>의 세 번째 싱글로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대중에게도 인기를 끌었는데, 굴곡 있는 몸매와 큰 몸집을 찬양하는 가사가 이유 중 하나였다. 혹자는 "전체 관람가의 재미"와 성인의 섹슈얼리티를 한데 섞은 이 앨범이 젊은 팬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는 섹시한 여성의 모습을 내세워, 2000년대 초 페미니즘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려 한 앨범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 P294

"부틸리셔스"는 앨범의 의도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담아낸 곡이다. 이 노래는 클럽에 놀러가서 (아마도) 남성을 유혹하는 중인 여성의 관점을 취한다. 여성은 자신의 섹시함과 자신감을 남성이 다룰 수 있을지 의심한다. 여성이 가진 힘의 원천은 (적어도 원천 중 하나는) 엉덩이와 ‘젤리‘(데스티니스 차일드는 처음엔 젤리가 엉덩이를 뜻한다고 얘기했지만 다른 설명에서는 특정 신체 부위가 아닌 어느 부분이든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옮긴이)다. - P294

"부틸리셔스"가 발매된 뒤,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신체를 긍정하는 페미니즘의 주제가로서 떠받들어 왔다. "부틸리셔스"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해. 두말할 필요 없이 당신도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거나, 적어도 나를 섹시하게 느껴야 해. 누군가는 내 몸에, 내 젤리에, 내 엉덩이에, 수치심을 주려고 하지만 지금 여기서 선언하건대 그것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자 자신감의 원천이야. - P295

데스티니스 차일드 멤버들은 풍만한 엉덩이로 주목받긴 했어도 대체로 날씬하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핵심일지도 모른다. 비욘세가 당대의 이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몸을 지니고서도 언론으로부터 조롱당했다는 것. 여성의 몸에거는 기대는 이처럼 엄격하고 까다롭기에, 몸을 향하는 비판에서 여성이 자유로워질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욘세는 참신하고 생기 넘치는 답변을 내놓았다. 엉망이라고, 틀렸다고 평가받는 자기 몸을 스스로 찬양하며 섹시하다고 선언한다. - P295

지난 20년 동안 학자들과 기자들은 비욘세가 진정한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또한 만일 페미니스트라면 어떤 유형의페미니스트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 비욘세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데 있어 공범인가, 아니면 대상화를 비틀고 있는가? 본인의 성 주체성을 주장하고 자기 몸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 학자가 표현했듯 "자신의 몸을 상품 페티시로 제공하고" 있는가? 가부장제를 전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2016년에 벨 훅스Bell Hooks가 주장했듯 흑인 여성성의 "관습적 고정관념의 틀" 안에 머물러 있는가? - P296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서 믹스어랏은 똑같이 엉덩이와 굴곡을 찬양했지만, "부틸리셔스"가 "베이비 갓백"
과 달랐던 건 논란의 엉덩이를 가진 당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공연되었다는 점이다. 흑인 여성 셋은 직접 노래를 작곡했고, 노래의 소유권을 지녔고, 비욘세의 어머니 티나 로슨Tina Lawson이 주로 디자인한 의상을 포함해 본인들의 이미지를 직접 구축할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제니퍼 로페즈처럼 그들은 자기 몸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안달복달하는 기자들의 끝없는 질문을 힘겹게 피해 다니던 로페즈와 달리, 신체에 관한 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 P296

설령 비욘세의 페미니즘이 아름다움과 섹스의 영역에만 해당하는 무기력한 유형의 페미니즘이라 해도(여성의 몸에 지방이 얼마나 있어야 매력적이고 적당한지에만 집중하는 건, 엄밀히 말해 가부장제를 뒤엎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 P297

"부틸리셔스"에 쏟아진 미디어의 관심은 ‘bootylicious‘라는 단어로도 향했다.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일까? ‘Bootylicious‘가 처음 등장한 곳은 1992년에 발표된 스눕 독의 노래였는데, 이때는 비하의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이 단어가 정말로 일상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건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곡이 발매된 뒤였다. 이 단어는 반드시 엉덩이만 의미하진 않았다. 그보다 더 넓고 모호한 용법으로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단어였다. - P297

어쨌든 ‘booty‘는 구체적으로는 엉덩이, 넓은 의미에서는 섹스, 둘 다를 의미했기에 ‘bootylicious‘는 엉덩이 또는 섹스할 능력과 관련될 수 있다. 2003년에 오프라 윈프리 Oprah Winfrey에게 이 단어를 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비욘세는 그것이 "아름답고, 풍만하고, 아찔하게 흔들 수 있다beautiful, bountiful, and bounceable"는 의미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 P297

이듬해 ‘bootylicious‘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정의는 "특히 여성에 대해, 주로 엉덩이와 관련하여: 성적으로 매력적인, 섹시한 맵시 있는" 으로 기술되었다. 이런 공식적 정의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대중들이 긍정적 의미로 엉덩이를 일컬을 단어가 기록되었다. - P297

맵시 있는 엉덩이를 지니는 것은 바람직했다. ‘Bootylicious‘는 같은 뜻을 지닌 예스러운 단어 ‘callipygian‘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잘난 척한다는 느낌도 덜했다. 이 단어가 최첨단과는 거리가 멀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실릴만큼 널리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변화를 방증했다. "부틸리셔스"는 노래와 단어와 개념 모두 문화적으로 힘을 얻고 있었다. - P298

케이트 모스가 빈곤과 중독을 미화했다면, 힐턴의 몸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리는 막대한 부를 체화한 것과 같았다. - P300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셀러브리티의 지형에서 가장 유명하고 문화적 영향력이 큰 엉덩이는 패리스 힐턴과 그의 친구들의 인기를 발판으로 등장했다.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은 원래 패리스 힐턴이 거느리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Britney Spears와 린지 로한 Lindsay Lohan 등이 속한 부유하고 제멋대로인 시녀단의 덜 중요한 구성원이었다. 카다시안 본인도 힐턴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대단한 특권층 출신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올 비벌리힐즈 호텔과 같은 거리에 있는 대저택에서 자랐다. - P300

미국 내외에서 오랜 차별을 받아온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은 오늘날 대다수가 스스로 백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커리어 내내 카다시안은 혼혈 정체성(어머니 크리스 제너Kris Jenner는 백인이다)을 내세워 백인인 동시에 비백인이라는 지위를 누렸다. 백인의 특권은 누리되 필요할 때엔 전략적으로 짙은 색 머리카락, 올리브색 피부, 커다란 엉덩이, 사람들이 이국적이거나 여우같다고들 하는 외모를 활용해 이는 아르메니아 혈통에서 얻은것이라며 비백인의 입장을 취했다. - P301

2009년에 카다시안은 <뉴스 오브 더 월드 News of the World>와의 인터뷰에서 노출과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발언은 10년 전 제니퍼 로페즈의 말을 연상시켰다. "제 엉덩이에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주시더군요. 파파라치는 항상 ‘엉덩이 샷‘을 찍으려고 하고요. 여자들이 와서 엉덩이를 만져 보기도 하고, 한번 꽉 쥐어봐도 되냐고 묻기도 해요. 가끔 생각하죠. ‘엉덩이는 누구한테나 있는데, 왜 내 엉덩이를 두고 이렇게 난리지?‘" - P305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에 다들 그토록 열광한 데엔 또 다른이유가 있다. 그가 쉼 없이 자기 엉덩이 얘기를 하고, 엉덩이를 보여주고, 엉덩이로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카다시안 가족전체가 몸매를 홍보하는 가내수공업으로 일가를 이루었지만 그중에서도 킴은 독보적이었다. - P307

특정한 외모를 홍보한 다음 (가느다란 허리일 수도 있었고, 벌에게 쏘인 듯한 입술일수도 있었다) 비슷한 효과를 내겠다고 약속하는 화장, 보디 케어, 보정 속옷 제품을 카다시안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게 그들의 단골 장사법이었다. 카다시안 가족은 유행을 정했고, 얼굴과 몸을 최고의 광고 표지로 삼아서 시장을 휩쓸었다. - P309

<페이퍼>는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잡지가 발매된 다음날, <페이퍼> 온라인 기사에 미국 웹 트래픽 전체의 1퍼센트가 몰렸다. 이미지는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카다시안의 옆모습 사진은, 많은 논평가에게 1810년 세라 바트먼의포스터와 그가 남긴 유산을 연상시켰다. 어떤 면에서는 기묘한 비교였다. 큰 엉덩이를 강조한 카다시안의 실루엣은 바트먼의 실루엣을 닮긴 했지만, 두 여성의 개인사와 그들이 처한 상황은 극명하게 달랐다. 바로 그런 거리감으로 인해 이미지는 매우 불편했다. 특권층인 비흑인 여성이 엉덩이를 이용해 흑인성을 연기함으로써 인터넷을 뒤집어놓았다(그리고 그로써 통장이 두둑해졌다). - P310

도발적인 인종적 퍼포먼스는 카다시안 브랜드 마케팅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카다시안은 자주 비판을 받았고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종종 자기 선택을 바꾸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사과를 하거나 커리어에서 현실적인 심판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카다시안 가족은 흑인의 미학을 끊임없이 차용해 브랜드를 만들고 유지하는 전략을 암시적이면서도 명시적으로 합리화해왔다. 어떤 이들은 카다시안 자매가 흑인 여성들을 친구로 사귀고 흑인 남성들과 관계를 가지는 것이 (그리고 혼혈 아이를 낳는 것이) 비평가 앨리슨 P. 데이비스Allison P. Davis가 "전유를 감추는 문화적 은폐"라고 말한, 요긴한 전략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 P311

어떻게 보면 "베이비 갓 백"이 발매되고 20년이 지나서 믹스어랏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큰 엉덩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 눈에 잘 띄는 존재이며, 공공연한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킴 카다시안은 어떤 진보든 심한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 P311

엉덩이가 커야만 섹스 심벌이 될 수 있는 세상은 모든 몸이 수용되는 장소가 아니며, 흑인 여성들이 더 큰 힘과 인정을 누리거나 심지어 스스로 아름다움의 상징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소도 확실히 아니다. - P312

엉덩이가 크기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은 백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인도 아닌 대단히 부유한 사람으로서, 모호한 인종 정체성을 이용해 이득을 누렸다. 이어지는 10년 동안 카다시안은 엉덩이를 내세워서 흑인 문화의 여러 요소를 꾸준히 뻔뻔하게 전유하면서 계속 큰돈을 벌었다. 그런 선택을 내린 건 카다시안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 P312

빅 프리디아는 단순한 트워킹 전도사가 아니다. 그는 바운스의 역사와 트워킹의 뜻, 역사와 유래에 대한 정보를 퍼뜨리며 지난 10년 동안 퍼져나간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으려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프리디아의 작업을 보면, 지금 유행하는 대중적인 트워킹이 이 춤의 역사를 부인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다. 트워킹은 본디 저항, 즐거움, 섹스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유행이나 노골적인 성적 표현, 단순한 움직임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 P317

여자들은 관객을 등지고 엉덩이를 양옆으로 움직였는데, 이는 코트디부아르에서 무언가를 기념할 때 추는 축제 춤이었다. 이는 입말로는 "라 당스 뒤 페시에 la danse du fessier", 즉 뒤로 추는 춤이라고 불리는 마푸카mapouka에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춤은 영적인 수행 중 일부로서 신을 만나고 찬양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 P319

콩고 광장은 식민주의가 억압하려던 문화 정체성을 지속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유대감의 힘을 키워주었다. 노예들이 모여서 춤을 출 수 있다면, 모여서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을 터였다. 어쩌면 뉴올리언스 밖으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춤과 의식은 콩고광장뿐 아니라 여러 식민지에서 유순함과 얌전함이라는 유럽식 개념에 반발하여 일어나던 예술적 저항의 일부였다. - P319

"즉, 몸이 기억한다는 것을." - P320

아프리카 정체성과 관능성을 표면에 두른 엉덩이 중심의 춤은 노예주와 그들이 대표하는 문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세기가 바뀌어도 엉덩이를 중심으로 하는 춤에서는 똑같은 저항을 느낄 수 있다. - P320

마디 그라mardi gras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인 참회 화요일-옮긴이) - P320

루이지애나 제이비어 대학에서 교육을 가르치는 교수 킴마리 바즈Kim Maric Yaz에 의하면, 의상을 입거나 가면을 쓰는 전통은 뉴올리언스의 흑인들에게 사회 질서를 위반하고, 집단정체성을 형성하고, 계속된 핍박과 소외와 벗어날 수 없는 극심한 빈곤에 맞서 인간성을 주장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 P320

베이비 돌즈는 당시 허용되던 것보다 훨씬 짧은 드레스 차림으로 퍼레이드에서 시미 shimmy, 셰이크shake, 버킹bucking처럼 인기있고 도발적인 춤을 추었다. 전부 엉덩이를 중심으로 하는 춤이었다. 베이비 돌즈로 활동했던 한 여성의 증손녀인 멀린 킴블Merline Kimble은 훗날 파격적인 의상 선택과 "춤을 추겠다는" 고집이 "당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것들"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을 들어 베이비 돌즈의 춤이 사회 운동이었다고 주장했다. - P321

트워킹이 진화한 역사의 또 다른 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자메이카에서 유래한다. 이때 레게 음악은 빠르게진화를 거듭하여 덥dub 같은 새로운 형식을 낳았고, 덥은 이윽고 댄스홀dancehall(‘무도장‘이라는 뜻-옮긴이)을 낳았다. 이런 장르들은 킹스턴 무도장의 DJ들이 조립한 엄청난 음향 시스템을 활용했다. - P322

무도장은 도시의 근사한 나이트클럽에서 박대당하는 가난한 노동계급 자메이카인들이 찾아와서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비공식적 공간이었다. - P322

레게, 덥, 일렉트로닉을 조합한 음악 장르인 댄스홀 역시 자메이카인으로서의 삶을 반영했다. 가사는 지역 사투리로 쓰이는 게 흔했고, 부당함의 문제를 다루었다. - P322

댄스홀 음악과 여기서 영감을 얻은 엉덩이 중심의 댄스 동작들은 60년대와 70년대에 자메이카인 이민자들의 물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힙합을 탄생시킨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자 힙합은 이미 미국전역으로 퍼져 있었으며 뉴올리언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시의 문화적 역사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있던 뉴올리언스 지역의 음악가와 댄서들은 묵직한 베이스와 빠른 비트를 특징으로 높은 에너지를 담은 힙합 기반의 콜 앤드 리스폰스 음악인 바운스를 만들어냈다. - P322

모르긴 해도 입말로는 한참 전부터 쓰였겠지만, 트워크twerk가 공적인 언어에서 동사로 사용된 첫 번째 사례는 바운스 장르 최초의 히트곡 "두 더 주빌리 올Do the Jubilee All" 의 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322

"두 더 주빌리 올" 이후 트워킹은 잉양 트윈스 Ying Yang Twins의 "휘슬 휘슬 와일 유트워크 Whistle While You Twurk"와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점핑 점핑Jumpin, Jumpin‘" 같은 주류 팝의 히트곡 가사에 불쑥불쑥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트워킹은 아직 뉴올리언스에 국한된 현상으로서, 도시 내의 많은 하위문화와 공동체를 통해 빠르게 진화하고 확장해나갔다. - P323

케이티 레드Katey Red라는 이름의 드래그 퀸이 1998년에 지역 클럽에서 바운스 공연을 펼친 뒤 특히 퀴어 공동체에서 트워킹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000년대 초에 케이티 레드와 빅 프리디아는 퀴어와 관련된 주제를 공개적으로 다루는 선정적이고 스타일리시한 가사로 뉴올리언스 음악 신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들은 공연에서 트워킹을 열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며 시시 바운스sissy bounce(‘sissy‘는 여성스러운 남성이나 게이를 일컫는 멸칭이다-옮긴이)라는 바운스의 하위 장르를 낳기에 이르렀다. - P324

"많은 사람이 바운스가 그냥 게토에서 유래한 엉덩이 흔드는 춤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바운스는 원하는 만큼 얕아질 수도, 깊어질 수도 있어요. 사타구니에는 범상치 않은 힘이 있거든요. 여길 재빠르게 움직이는 데에는 성적인 것 이상의 의미가 있죠. 이 움직임은 아주 개인적이면서 변혁적이기도 해요. 폭력과 빈곤과 호모포비아 같은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살아온 우리 ‘시시‘들에게, 바운스는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우리만의 방법이에요." 빅 프리디아가 말한다. - P324

바운스가 주요 음악 장르로 부상한 건 2005년에 이르러서다. 그해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해서 인정사정없이참혹한 여파를 남기고 떠났다. 1,800명 이상이 사망했고, 도시의 80퍼센트가 물에 잠겼으며, 120만 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그 결과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도시를 떠나 이동하면서 뉴올리언스의 하위문화가 미국의 다른 지역들에 소개되었다. 케이티 레드와 빅 프리디아를 비롯한 바운스 공연자들은 곧 휴스턴, 내시빌, 애틀랜타의 클럽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새로운 관객들이 처음으로 바운스와 트워킹에 노출되었고,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가 생기면서 바운스와 트워킹은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P324

트워킹은 그렇게 미국 전국에 알려졌지만, 인기의 정점을 찍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날은 10년 가까이 더 흘러, 프랑스인들이 뉴올리언스에 처음 노예를 데려오고 거의 3세기가 지난 뒤, 온 세상에 자기가 더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했던 젊은 백인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불을 댕겨 대중문화에 한바탕 광란이 일어난 시기, 그게 바로 트워킹의 시대가 시작된 때다. - P325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그랬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들어나보자"). - P330

19세기에 버슬을 착용한 여성들과 똑같이, 사이러스는 언제든지 흑인성과 결합하거나 결합하지 않기로 선택할 권리를 쥐고 있었다. 흑인성을 연기하기 위해 소품을 사용했고, 자기 목적을 위해 흑인성을 조작할 수 있었다. 사이러스는 빈곤한 노동계급 흑인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인기 있었던 댄스 형식을 차용하고 착취했으며 동시에 섹슈얼한 흑인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의 장단에 맞춘 몸짓을 선보였다. 단지 온 세상 앞에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선언하기 위해. - P335

앨리슨 P. 데이비스 같은 작가들이 지적했듯 엉덩이를 "발견"했다는 건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엉덩이는 언제나 존재했다. 백인들이 오랫동안 주목하지 않았을 뿐. - P3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