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역사학자 자넬 홉슨은 이렇듯 힙합 문화가 더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여성의 엉덩이에 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홉슨에 의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토속 춤에서 엉덩이는 항상 중요한 요소였는데, 이것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상적 아름다움에서 엉덩이가 주요 대상이 된 동시에 힙합의 미학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 P289
"흑인 문화에서 추는 춤의 표현을 살펴보면 엉덩이와 골반을 흔드는 동작이 많은 편인데, 그게 확실히 시선을 끕니다." - P289
"큰 엉덩이에 대한 선호는 사실 흑인 남성의 욕망에서 오는 겁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봅시다. 흑인 남성과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 백인 남성들은 비로소 엉덩이를 알아차리기 시작한 거죠." - P289
물론 욕망은 복잡하다. 백인 남성들이 너나할 것 없이 큰 엉덩이를 욕망하기 시작한 게, 혹은 공개적으로 그 욕망을 인정한 게 힙합 문화를 소비하고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단순화일지도 모른다. - P290
욕망은 사회적 힘이자 개인의 경험으로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빚어내는 것이며 동시에 개인만이 소유하는 고유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 중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직접 결정할 수 있고, 전에는 인정하지 않고 탐험하지 않던 욕망들에 다가가 이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P290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대규모로 힙합을 소비하기 시작한 현상은 없던 욕망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고, 원래 있던 욕망의 고삐를 풀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여성의 엉덩이가 백인 남성의 욕망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 P291
제니퍼 로페즈가 인기를 얻은 뒤 몇 년 동안 미디어에서는 갈수록 굴곡있는 몸매에 대해 열광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여성의 몸을 조각조각 뜯어보고 평가하는 새로운 방법이었을 뿐, 인간 외양의 넓은 스펙트럼을 전부 끌어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1920년대에 코르셋이 양배추 다이어트로 대체되었듯, 1990년대에 더 크고 풍만한 엉덩이에 열광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여성들이 갑자기 다이어트·체중· 건강에 관한 압박에서 해방된 건 절대 아니었다. - P293
"부틸리셔스"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세 번째 앨범 <서바이버 Survivor>의 세 번째 싱글로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대중에게도 인기를 끌었는데, 굴곡 있는 몸매와 큰 몸집을 찬양하는 가사가 이유 중 하나였다. 혹자는 "전체 관람가의 재미"와 성인의 섹슈얼리티를 한데 섞은 이 앨범이 젊은 팬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는 섹시한 여성의 모습을 내세워, 2000년대 초 페미니즘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려 한 앨범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 P294
"부틸리셔스"는 앨범의 의도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담아낸 곡이다. 이 노래는 클럽에 놀러가서 (아마도) 남성을 유혹하는 중인 여성의 관점을 취한다. 여성은 자신의 섹시함과 자신감을 남성이 다룰 수 있을지 의심한다. 여성이 가진 힘의 원천은 (적어도 원천 중 하나는) 엉덩이와 ‘젤리‘(데스티니스 차일드는 처음엔 젤리가 엉덩이를 뜻한다고 얘기했지만 다른 설명에서는 특정 신체 부위가 아닌 어느 부분이든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옮긴이)다. - P294
"부틸리셔스"가 발매된 뒤,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신체를 긍정하는 페미니즘의 주제가로서 떠받들어 왔다. "부틸리셔스"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해. 두말할 필요 없이 당신도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거나, 적어도 나를 섹시하게 느껴야 해. 누군가는 내 몸에, 내 젤리에, 내 엉덩이에, 수치심을 주려고 하지만 지금 여기서 선언하건대 그것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자 자신감의 원천이야. - P295
데스티니스 차일드 멤버들은 풍만한 엉덩이로 주목받긴 했어도 대체로 날씬하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핵심일지도 모른다. 비욘세가 당대의 이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몸을 지니고서도 언론으로부터 조롱당했다는 것. 여성의 몸에거는 기대는 이처럼 엄격하고 까다롭기에, 몸을 향하는 비판에서 여성이 자유로워질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욘세는 참신하고 생기 넘치는 답변을 내놓았다. 엉망이라고, 틀렸다고 평가받는 자기 몸을 스스로 찬양하며 섹시하다고 선언한다. - P295
지난 20년 동안 학자들과 기자들은 비욘세가 진정한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또한 만일 페미니스트라면 어떤 유형의페미니스트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 비욘세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데 있어 공범인가, 아니면 대상화를 비틀고 있는가? 본인의 성 주체성을 주장하고 자기 몸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 학자가 표현했듯 "자신의 몸을 상품 페티시로 제공하고" 있는가? 가부장제를 전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2016년에 벨 훅스Bell Hooks가 주장했듯 흑인 여성성의 "관습적 고정관념의 틀" 안에 머물러 있는가? - P296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서 믹스어랏은 똑같이 엉덩이와 굴곡을 찬양했지만, "부틸리셔스"가 "베이비 갓백" 과 달랐던 건 논란의 엉덩이를 가진 당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공연되었다는 점이다. 흑인 여성 셋은 직접 노래를 작곡했고, 노래의 소유권을 지녔고, 비욘세의 어머니 티나 로슨Tina Lawson이 주로 디자인한 의상을 포함해 본인들의 이미지를 직접 구축할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제니퍼 로페즈처럼 그들은 자기 몸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안달복달하는 기자들의 끝없는 질문을 힘겹게 피해 다니던 로페즈와 달리, 신체에 관한 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 P296
설령 비욘세의 페미니즘이 아름다움과 섹스의 영역에만 해당하는 무기력한 유형의 페미니즘이라 해도(여성의 몸에 지방이 얼마나 있어야 매력적이고 적당한지에만 집중하는 건, 엄밀히 말해 가부장제를 뒤엎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 P297
"부틸리셔스"에 쏟아진 미디어의 관심은 ‘bootylicious‘라는 단어로도 향했다.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일까? ‘Bootylicious‘가 처음 등장한 곳은 1992년에 발표된 스눕 독의 노래였는데, 이때는 비하의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이 단어가 정말로 일상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건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곡이 발매된 뒤였다. 이 단어는 반드시 엉덩이만 의미하진 않았다. 그보다 더 넓고 모호한 용법으로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단어였다. - P297
어쨌든 ‘booty‘는 구체적으로는 엉덩이, 넓은 의미에서는 섹스, 둘 다를 의미했기에 ‘bootylicious‘는 엉덩이 또는 섹스할 능력과 관련될 수 있다. 2003년에 오프라 윈프리 Oprah Winfrey에게 이 단어를 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비욘세는 그것이 "아름답고, 풍만하고, 아찔하게 흔들 수 있다beautiful, bountiful, and bounceable"는 의미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 P297
이듬해 ‘bootylicious‘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정의는 "특히 여성에 대해, 주로 엉덩이와 관련하여: 성적으로 매력적인, 섹시한 맵시 있는" 으로 기술되었다. 이런 공식적 정의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대중들이 긍정적 의미로 엉덩이를 일컬을 단어가 기록되었다. - P297
맵시 있는 엉덩이를 지니는 것은 바람직했다. ‘Bootylicious‘는 같은 뜻을 지닌 예스러운 단어 ‘callipygian‘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잘난 척한다는 느낌도 덜했다. 이 단어가 최첨단과는 거리가 멀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실릴만큼 널리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변화를 방증했다. "부틸리셔스"는 노래와 단어와 개념 모두 문화적으로 힘을 얻고 있었다. - P298
케이트 모스가 빈곤과 중독을 미화했다면, 힐턴의 몸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리는 막대한 부를 체화한 것과 같았다. - P300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셀러브리티의 지형에서 가장 유명하고 문화적 영향력이 큰 엉덩이는 패리스 힐턴과 그의 친구들의 인기를 발판으로 등장했다.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은 원래 패리스 힐턴이 거느리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Britney Spears와 린지 로한 Lindsay Lohan 등이 속한 부유하고 제멋대로인 시녀단의 덜 중요한 구성원이었다. 카다시안 본인도 힐턴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대단한 특권층 출신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올 비벌리힐즈 호텔과 같은 거리에 있는 대저택에서 자랐다. - P300
미국 내외에서 오랜 차별을 받아온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은 오늘날 대다수가 스스로 백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커리어 내내 카다시안은 혼혈 정체성(어머니 크리스 제너Kris Jenner는 백인이다)을 내세워 백인인 동시에 비백인이라는 지위를 누렸다. 백인의 특권은 누리되 필요할 때엔 전략적으로 짙은 색 머리카락, 올리브색 피부, 커다란 엉덩이, 사람들이 이국적이거나 여우같다고들 하는 외모를 활용해 이는 아르메니아 혈통에서 얻은것이라며 비백인의 입장을 취했다. - P301
2009년에 카다시안은 <뉴스 오브 더 월드 News of the World>와의 인터뷰에서 노출과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발언은 10년 전 제니퍼 로페즈의 말을 연상시켰다. "제 엉덩이에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주시더군요. 파파라치는 항상 ‘엉덩이 샷‘을 찍으려고 하고요. 여자들이 와서 엉덩이를 만져 보기도 하고, 한번 꽉 쥐어봐도 되냐고 묻기도 해요. 가끔 생각하죠. ‘엉덩이는 누구한테나 있는데, 왜 내 엉덩이를 두고 이렇게 난리지?‘" - P305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에 다들 그토록 열광한 데엔 또 다른이유가 있다. 그가 쉼 없이 자기 엉덩이 얘기를 하고, 엉덩이를 보여주고, 엉덩이로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카다시안 가족전체가 몸매를 홍보하는 가내수공업으로 일가를 이루었지만 그중에서도 킴은 독보적이었다. - P307
특정한 외모를 홍보한 다음 (가느다란 허리일 수도 있었고, 벌에게 쏘인 듯한 입술일수도 있었다) 비슷한 효과를 내겠다고 약속하는 화장, 보디 케어, 보정 속옷 제품을 카다시안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게 그들의 단골 장사법이었다. 카다시안 가족은 유행을 정했고, 얼굴과 몸을 최고의 광고 표지로 삼아서 시장을 휩쓸었다. - P309
<페이퍼>는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잡지가 발매된 다음날, <페이퍼> 온라인 기사에 미국 웹 트래픽 전체의 1퍼센트가 몰렸다. 이미지는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카다시안의 옆모습 사진은, 많은 논평가에게 1810년 세라 바트먼의포스터와 그가 남긴 유산을 연상시켰다. 어떤 면에서는 기묘한 비교였다. 큰 엉덩이를 강조한 카다시안의 실루엣은 바트먼의 실루엣을 닮긴 했지만, 두 여성의 개인사와 그들이 처한 상황은 극명하게 달랐다. 바로 그런 거리감으로 인해 이미지는 매우 불편했다. 특권층인 비흑인 여성이 엉덩이를 이용해 흑인성을 연기함으로써 인터넷을 뒤집어놓았다(그리고 그로써 통장이 두둑해졌다). - P310
도발적인 인종적 퍼포먼스는 카다시안 브랜드 마케팅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카다시안은 자주 비판을 받았고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종종 자기 선택을 바꾸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사과를 하거나 커리어에서 현실적인 심판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카다시안 가족은 흑인의 미학을 끊임없이 차용해 브랜드를 만들고 유지하는 전략을 암시적이면서도 명시적으로 합리화해왔다. 어떤 이들은 카다시안 자매가 흑인 여성들을 친구로 사귀고 흑인 남성들과 관계를 가지는 것이 (그리고 혼혈 아이를 낳는 것이) 비평가 앨리슨 P. 데이비스Allison P. Davis가 "전유를 감추는 문화적 은폐"라고 말한, 요긴한 전략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 P311
어떻게 보면 "베이비 갓 백"이 발매되고 20년이 지나서 믹스어랏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큰 엉덩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 눈에 잘 띄는 존재이며, 공공연한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킴 카다시안은 어떤 진보든 심한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 P311
엉덩이가 커야만 섹스 심벌이 될 수 있는 세상은 모든 몸이 수용되는 장소가 아니며, 흑인 여성들이 더 큰 힘과 인정을 누리거나 심지어 스스로 아름다움의 상징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소도 확실히 아니다. - P312
엉덩이가 크기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은 백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인도 아닌 대단히 부유한 사람으로서, 모호한 인종 정체성을 이용해 이득을 누렸다. 이어지는 10년 동안 카다시안은 엉덩이를 내세워서 흑인 문화의 여러 요소를 꾸준히 뻔뻔하게 전유하면서 계속 큰돈을 벌었다. 그런 선택을 내린 건 카다시안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 P312
빅 프리디아는 단순한 트워킹 전도사가 아니다. 그는 바운스의 역사와 트워킹의 뜻, 역사와 유래에 대한 정보를 퍼뜨리며 지난 10년 동안 퍼져나간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으려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프리디아의 작업을 보면, 지금 유행하는 대중적인 트워킹이 이 춤의 역사를 부인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다. 트워킹은 본디 저항, 즐거움, 섹스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유행이나 노골적인 성적 표현, 단순한 움직임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 P317
여자들은 관객을 등지고 엉덩이를 양옆으로 움직였는데, 이는 코트디부아르에서 무언가를 기념할 때 추는 축제 춤이었다. 이는 입말로는 "라 당스 뒤 페시에 la danse du fessier", 즉 뒤로 추는 춤이라고 불리는 마푸카mapouka에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춤은 영적인 수행 중 일부로서 신을 만나고 찬양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 P319
콩고 광장은 식민주의가 억압하려던 문화 정체성을 지속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유대감의 힘을 키워주었다. 노예들이 모여서 춤을 출 수 있다면, 모여서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을 터였다. 어쩌면 뉴올리언스 밖으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춤과 의식은 콩고광장뿐 아니라 여러 식민지에서 유순함과 얌전함이라는 유럽식 개념에 반발하여 일어나던 예술적 저항의 일부였다. - P319
아프리카 정체성과 관능성을 표면에 두른 엉덩이 중심의 춤은 노예주와 그들이 대표하는 문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세기가 바뀌어도 엉덩이를 중심으로 하는 춤에서는 똑같은 저항을 느낄 수 있다. - P320
마디 그라mardi gras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인 참회 화요일-옮긴이) - P320
루이지애나 제이비어 대학에서 교육을 가르치는 교수 킴마리 바즈Kim Maric Yaz에 의하면, 의상을 입거나 가면을 쓰는 전통은 뉴올리언스의 흑인들에게 사회 질서를 위반하고, 집단정체성을 형성하고, 계속된 핍박과 소외와 벗어날 수 없는 극심한 빈곤에 맞서 인간성을 주장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 P320
베이비 돌즈는 당시 허용되던 것보다 훨씬 짧은 드레스 차림으로 퍼레이드에서 시미 shimmy, 셰이크shake, 버킹bucking처럼 인기있고 도발적인 춤을 추었다. 전부 엉덩이를 중심으로 하는 춤이었다. 베이비 돌즈로 활동했던 한 여성의 증손녀인 멀린 킴블Merline Kimble은 훗날 파격적인 의상 선택과 "춤을 추겠다는" 고집이 "당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것들"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을 들어 베이비 돌즈의 춤이 사회 운동이었다고 주장했다. - P321
트워킹이 진화한 역사의 또 다른 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자메이카에서 유래한다. 이때 레게 음악은 빠르게진화를 거듭하여 덥dub 같은 새로운 형식을 낳았고, 덥은 이윽고 댄스홀dancehall(‘무도장‘이라는 뜻-옮긴이)을 낳았다. 이런 장르들은 킹스턴 무도장의 DJ들이 조립한 엄청난 음향 시스템을 활용했다. - P322
무도장은 도시의 근사한 나이트클럽에서 박대당하는 가난한 노동계급 자메이카인들이 찾아와서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비공식적 공간이었다. - P322
레게, 덥, 일렉트로닉을 조합한 음악 장르인 댄스홀 역시 자메이카인으로서의 삶을 반영했다. 가사는 지역 사투리로 쓰이는 게 흔했고, 부당함의 문제를 다루었다. - P322
댄스홀 음악과 여기서 영감을 얻은 엉덩이 중심의 댄스 동작들은 60년대와 70년대에 자메이카인 이민자들의 물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힙합을 탄생시킨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자 힙합은 이미 미국전역으로 퍼져 있었으며 뉴올리언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시의 문화적 역사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있던 뉴올리언스 지역의 음악가와 댄서들은 묵직한 베이스와 빠른 비트를 특징으로 높은 에너지를 담은 힙합 기반의 콜 앤드 리스폰스 음악인 바운스를 만들어냈다. - P322
모르긴 해도 입말로는 한참 전부터 쓰였겠지만, 트워크twerk가 공적인 언어에서 동사로 사용된 첫 번째 사례는 바운스 장르 최초의 히트곡 "두 더 주빌리 올Do the Jubilee All" 의 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322
"두 더 주빌리 올" 이후 트워킹은 잉양 트윈스 Ying Yang Twins의 "휘슬 휘슬 와일 유트워크 Whistle While You Twurk"와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점핑 점핑Jumpin, Jumpin‘" 같은 주류 팝의 히트곡 가사에 불쑥불쑥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트워킹은 아직 뉴올리언스에 국한된 현상으로서, 도시 내의 많은 하위문화와 공동체를 통해 빠르게 진화하고 확장해나갔다. - P323
케이티 레드Katey Red라는 이름의 드래그 퀸이 1998년에 지역 클럽에서 바운스 공연을 펼친 뒤 특히 퀴어 공동체에서 트워킹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000년대 초에 케이티 레드와 빅 프리디아는 퀴어와 관련된 주제를 공개적으로 다루는 선정적이고 스타일리시한 가사로 뉴올리언스 음악 신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들은 공연에서 트워킹을 열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며 시시 바운스sissy bounce(‘sissy‘는 여성스러운 남성이나 게이를 일컫는 멸칭이다-옮긴이)라는 바운스의 하위 장르를 낳기에 이르렀다. - P324
"많은 사람이 바운스가 그냥 게토에서 유래한 엉덩이 흔드는 춤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바운스는 원하는 만큼 얕아질 수도, 깊어질 수도 있어요. 사타구니에는 범상치 않은 힘이 있거든요. 여길 재빠르게 움직이는 데에는 성적인 것 이상의 의미가 있죠. 이 움직임은 아주 개인적이면서 변혁적이기도 해요. 폭력과 빈곤과 호모포비아 같은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살아온 우리 ‘시시‘들에게, 바운스는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우리만의 방법이에요." 빅 프리디아가 말한다. - P324
바운스가 주요 음악 장르로 부상한 건 2005년에 이르러서다. 그해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해서 인정사정없이참혹한 여파를 남기고 떠났다. 1,800명 이상이 사망했고, 도시의 80퍼센트가 물에 잠겼으며, 120만 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그 결과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도시를 떠나 이동하면서 뉴올리언스의 하위문화가 미국의 다른 지역들에 소개되었다. 케이티 레드와 빅 프리디아를 비롯한 바운스 공연자들은 곧 휴스턴, 내시빌, 애틀랜타의 클럽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새로운 관객들이 처음으로 바운스와 트워킹에 노출되었고,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가 생기면서 바운스와 트워킹은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P324
트워킹은 그렇게 미국 전국에 알려졌지만, 인기의 정점을 찍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날은 10년 가까이 더 흘러, 프랑스인들이 뉴올리언스에 처음 노예를 데려오고 거의 3세기가 지난 뒤, 온 세상에 자기가 더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했던 젊은 백인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불을 댕겨 대중문화에 한바탕 광란이 일어난 시기, 그게 바로 트워킹의 시대가 시작된 때다. - P325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그랬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들어나보자"). - P330
19세기에 버슬을 착용한 여성들과 똑같이, 사이러스는 언제든지 흑인성과 결합하거나 결합하지 않기로 선택할 권리를 쥐고 있었다. 흑인성을 연기하기 위해 소품을 사용했고, 자기 목적을 위해 흑인성을 조작할 수 있었다. 사이러스는 빈곤한 노동계급 흑인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인기 있었던 댄스 형식을 차용하고 착취했으며 동시에 섹슈얼한 흑인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의 장단에 맞춘 몸짓을 선보였다. 단지 온 세상 앞에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선언하기 위해. - P335
앨리슨 P. 데이비스 같은 작가들이 지적했듯 엉덩이를 "발견"했다는 건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엉덩이는 언제나 존재했다. 백인들이 오랫동안 주목하지 않았을 뿐.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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