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라는 용어를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본문 내용에 나온 얘기들을 통해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언어의 온도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만만치 않은 힘을 발휘합니다. 정열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의 컨셉은 듣는 이에게 남다른 울림을 줍니다. 듣는 사람은 그 말이 진짜인지,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와 같은 내용보다도 말하는 사람의 열정을 먼저 알아보기 마련이니까요. - P62

만약 열정을 담아 이야기할 수 없다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 P62

컨셉은 선전 문구가 아니다 - P63

‘실체를 근사하게 전달하는 말‘인가 ‘실체를 만드는 말‘인가. 이것이 선전 문구와 컨셉의 큰 차이입니다. - P64

때로는 컨셉으로 태어난 말이 그대로 선전 문구가 되기도 합니다. - P65

컨셉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비즈니스에서 아이디어란 ‘장사를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대로 ‘고객이 돈을 지불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지요. - P65

아이디어를 고객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 컨셉입니다. - P66

컨셉은 테마가 아니다

테마에는 ‘통일감을 주는 주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 P66

테마가 마주해야 할 ‘과제‘를 가리킨다면, 컨셉은 ‘고유한 답‘을 가리킵니다. - P67

비즈니스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존재하는 의미‘여야한다. - P68

컨셉 만들기란 ‘새로운 의미의 창조‘다 - P68

‘존재하는 의미‘가 정해지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여러 요소가 결정된다. - P68

좋은 컨셉을 이끌어내려면 조리 있는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기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던 대전제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 개인이 만든 시장

주어진 기존의 문제보다 더 가치 있는 문제로 바꿔치기 하는 것.

인간의 창의성이 발전하는 과정은 ‘질문‘과 ‘답‘을 변수로 삼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P75

<창의성의 5단계>
Level 0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낸다.
→ 시키는 대로 말을 보살핀다.

Level 1 주어진 일을 궁리하여 더욱 훌륭하게 해낸다.
→ 말의 상태에 따라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Level 2 주어진 질문에 대해 여러 답을 떠올린다.
→어떻게 하면 말을 빨리 달리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듣고 답을 생각한다.

Level 3 전제 조건을 의심하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다.
→등에 앉는 것보다 편안하게 말을 타는 방법은?

Level 4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만든다.
→수레바퀴를 달아 마차를 만든다.

Level 5 사회나 업계의 전제를 뒤집는 큰 질문을 제시하고 답을 만든다.
→역과 역으로 이어진 교통 시스템을 제안한다. - P76

LEVEL O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낸다

다른 사람이 시킨 일을 그대로 할 때는 창의성이 크게 요구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매뉴얼에 적힌 절차대로 말을 돌보는 일은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요. 로봇으로 대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영역입니다. - P76

LEVEL 1 주어진 일을 궁리하여 더욱 훌륭하게 해낸다

말을 돌보는 데 익숙해지면, 누구나 더 좋은 방법이 없나 궁리하기 마련입니다. 매뉴얼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말의 몸 상태에 맞춰 먹이의 양이나 시간을 바꾸어보기도 하고, 말과 소통하는 방법을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지혜를 이용해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주어진 규칙 안에서 떠올리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창의성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 P76

LEVEL 2 주어진 질문에 대해 여러 답을 떠올린다

나날이 말을 보살피면서 말이라는 동물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때로는 주인에게 매뉴얼에 없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말을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 말이지요. 그럴 때 근육을 형성하는 영양소를 고려해 식사법을 제안하거나, 소통의 관점에서 말과 호흡 맞추는 방법을 제안하는 등 자기 나름대로 답을 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 P77

LEVEL 3 전제 조건을 의심하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다

말을 더 빨리 달리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던 어느 날, 당신은 문득 의문이 듭니다. "더 편안하게 말을 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질문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궁금증을 가진 당신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가슴 떨림을 느낍니다. 바로 이 의문과 마주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자, 자신만의 답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 들떴을 겁니다. 이처럼 레벨3부터는 자기 자신이 질문의 주체가 됩니다. - P77

LEVEL 4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만든다

말의 힘을 빌려 편안하게 이동할 방법을 찾던 당신은 어느 날 이웃 마을 사람이 손수레로 농작물을 운반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때 번뜩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말에게 수레를 끌게 하면 되겠다!" 그렇게 마침내 최초의 ‘마차‘가 탄생했습니다.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질문‘이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답‘을 이끌어내 컨셉이 탄생한 겁니다. - P78

LEVEL 5 사회나 업계의 전제를 뒤집는 큰 질문을 제시하고 답을 만든다

마차를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고 마차를 중계하는 역을 만들어지역 구석구석을 순회하는 ‘교통 시스템‘을 구상하는 레벨입니다. 획기적인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구조까지 바꿉니다. 그러려면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을 움직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의 생활과 관련된 사회 시스템을 새로이 꾸리는 일은 실무자에게 가장 큰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P78

과거에는 창의성을 레벨2의 범위 안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질문에 대해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해 내는 사람을 창의적이라고 칭찬했지요. 세간의 아이디어 관련 도서들에는 대부분 질문을 의심하지 않고 다양한 단면에서 답을 양산하는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 P78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컨셉 만들기와 창의적 발상이란 레벨3이후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상식적인 질문에 의문을 제기하는데서부터 컨셉 설계가 시작된다는 뜻이지요. - P79

조리 있는 질문은 축구 경기의 절묘한 패스와 같습니다. - P80

패스를 잘하는 선수는 먼저 상대 팀 선수를 자기 곁으로 끌어당깁니다. 그사이 같은 편 선수를 수비가 허술한 쪽으로 달리게 한 다음 그쪽으로 공을 패스합니다. 그러면 이 팀은 공과 함께 2가지를 손에 넣게됩니다. 어떤 동작이든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과 골을 노릴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 말이지요. - P80

좋은 질문도 완전히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받는 사람에게 자유로운 공간과 결정적인 기회가 생기도록 질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 P80

조리 있는 질문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곱셈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자유도 X 임팩트 - P81

자유도自由度란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뜻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런 방법이 있고, 저런 방법도 있지, 하고 계속해서 생각이 떠오른다면 ‘자유도‘가 높은 질문이라는 뜻입니다. - P81

반대로 앞뒤가 맞지 않는 질문은 선택지를 극단적으로 좁혀버립니다. 동료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해봐도 아이디어가 확장되지 않지요. 아무런 상상도 떠오르지 않거나 동료들과 논의하는 동안 침묵이 흐른다면 자유도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봅시다. - P81

‘임팩트‘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넓은 임팩트와 깊은 임팩트입니다. 넓은 임팩트란 많은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 P81

컴퓨터가 생기기 훨씬 전인 1808년. 이탈리아인 펠레그리노 투리 Pellegrino Turri는 "앞을 볼 수 없는 연인이 쉽게 편지를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맞닥뜨렸습니다. 투리의 도전은 넓은 임팩트를 목표로 하지 않았지만, 그 질문에 답하면 연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넓지는 않지만 ‘깊은‘ 임팩트를 불러올 물음이었지요. 그렇게 타자기의 원형 중 하나가 탄생했고, 시각 장애인이 글을 쓸 때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 P82

어리석은 질문: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

자유도가 낮은 데다 답을 해도 임팩트가 작은 질문. 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분명 시간 낭비이지요. 지금 당장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 P82

처음엔 의미 있었던 질문도 시간이 지나고 주위 환경이 바뀌면서 어리석은 질문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 P83

질문에 답했을 때 목표대로 임팩트를 얻을 수 있는가. 그 질문이 논의를 활발하게 만들고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가. 이러한 2가지 관점을 통해 질문의 질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정기적으로 검증하면 좋습니다. - P83

퀴즈: 재미있지만 의미는 없다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큰 임팩트는 기대할 수 없는 질문. - P83

쉽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재미있으니까, 즉 자유도만 고려해 질문을 던지면 주객이 전도되어 버립니다. 그저 비즈니스 퀴즈 대회가 될 뿐이지요. - P84

나쁜 질문: 일본의 승리 공식이었던 ‘근성‘ 싸움

전통적 기업들이 전설처럼 이야기해 온 역사적 성공 사례는 우측 상단의 ‘나쁜 질문‘에 유독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만은 반드시 돌파해야 한다‘는 꽉 막힌 질문과 맞닥뜨리면 대부분은 실패하지만, 어떤 기업은 현장의 기술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해 내기도 하지요. 이런 기적과 같은 성공 사례가 일본의 국민적 자부심을 형성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P84

시련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자세는 물론 훌륭합니다. 끝까지 매달린 끝에 기술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이미 모든 분야의 기술이 성숙했으며, 일본의 특기라 자부하는 제작 방면에서도 신흥국에 추월당하는 상황입니다. 지금껏 의미 있는 난제라고 믿었던 것들은 대부분 세계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쓸데없이 사사로운 부분에만 집중하는 나쁜 질문이 되고 있지요. 앞으로는 나쁜 질문을 상대하는 것 이외에 다른 승리 공식을 하나 더 손에 넣어야 합니다. - P85

바로 질문의 방향 자체를 크게 바꾸는 방식입니다. 완벽에 가까운 품질의 자동차를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완성품을 이용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생각하는 것. 고장나지 않는 튼튼한 컴퓨터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음악과 동영상의 ‘사용 환경‘을 고민하는 것. 꽉 막힌 상황이 아니라 자유 속에서 질문을 마주하는 것 또한 훌륭한 ‘도전‘이니까요. - P85

좋은 질문: 지금 이 시대에 의미 있는 물음을

좋은 질문 앞에서는 자연히 다양한 대답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모든 답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요. 창의적인 질문은 답을 하려고 몰두하는 이들을 독려합니다. 이렇게 ‘좋은 질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은 컨셉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질문이 근성으로 승부하는 ‘나쁜 질문‘이나 즐겁기만한 ‘퀴즈‘라면, 과감히 질문을 ‘바꾸는‘ 방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 P86

좀 더 자유도가 높은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 좋은 방법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질문으로 바꿔치기하는 작전도 가능

엘리베이터 속도를 ‘물리적‘으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속도를 ‘심리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자유도와 임팩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입니다.

재구성, 질문을 바꾸면 발상이 달라진다

질문을 바꿈으로써 관점을 바꾸고 시야를 넓혀 생각을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이끄는 것을 ‘재구성 reframing‘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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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밑줄 친 글은 ‘어릴 때 살던 동네‘ 라는 제목의 글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예전에 다녔던 초등학교에 성인이 되고 난 뒤 갔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초등학생일 때는 그 학교 운동장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성인이 되고 난 뒤 가서 본 그 학교의 운동장은 예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난 세월동안 내 몸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별도로 공사를 하지 않는 이상 운동장의 크기가 급격히 작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공간은 항상 사람의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살던 곳에 가서 커져버린 나의 몸을 끼워 넣어보는 것은 마치 성장기에 작년에 입던 옷을 입고서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03

같은 크기의 몸이라도 마음이 커져서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지금의 내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 - P203

조만간 시간을 내서 옛 동네 혹은 첫 키스를 했던 장소를 혼자 찾아가보라. 달라진 몸과 마음으로 다른 공간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내가 보일 것이다. - P203

도시에서 데이트하기 좋은 공간을 꼽으라면 단연 계단이다. 계단은 관계를 쌓는다. - P204

계단은 권력의 공간이기도 하고 미묘한 관계를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고 센슈얼한 공간이기도 하다. - P205

연인과 키스를 할 때 가능한 한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하라고 권하고 싶다. - P206

같은 인물도 조명에 따라서 다르게 나온다는 것은 셀카를 찍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 P206

기둥이라는 건축요소는 참 묘하다. 아무것도 없으면 더 좋을 것 같지만 어떤 때에는 빈 공간에 기둥이 하나 박혀 있으면 그 공간이 내 영역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 P208

벤치는 두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해준다. - P209

벤치도 등받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른 공간을 연출한다. 등받이가 없으면 잠시 앉았다가 금방 일어나서 가야 하는 벤치이고, 등받이가 있는 벤치는 느긋하게 서로에게 기대어 앉을 수 있는 벤치다. 연인은 등받이가 있는 벤치에 앉아야 한다. - P209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의 공간들을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채색을 해야 한다. 채색을 하는 붓은 전봇대 같은 기둥이 될 수도 있고, 가로등일 수도 있고, 의자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정도의 변화는 여러분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 P209

현대인이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둥근 천장을 종종 경험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우산 속이다. 우산 속은 둥그런 돔 건축의 천장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우산 속에서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 P211

연인 사이에서는 우산을 같이 써야 더 가까워진다. 같은 집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기 전까지 같은 공간 안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우산을 쓰는 것이다. 연애의 진도를 뽑고 싶다면 비오는 날 우산을 하나만 들고 가라, 연인과 일반인의 경계는 비 오는 날 우산을 하나로 쓰고 가느냐 둘이 따로 쓰고 가느냐의 차이다. - P211

건축에서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감시를 받는 공간은 안전한 공간‘이 된다는 점이다. - P215

한강시민공원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2초 텐트를 사는 것이다. 2초 텐트는 주머니에서 꺼내던지면 2초 만에 펴지면서 완성되는 텐트를 말한다. 이 시대에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이 텐트를 치면 이 도시 속에 나만의 집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드래곤볼> 만화에 나오는 캡슐 주택 같은 느낌이다. - P216

공원 운영자는 텐트 벽면의 2분의 1만 개방하면 그림자막 용도로 텐트를 허용해준다. - P217

텐트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재료다. - P218

우리의 몸을 감싸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옷과 자동차와 건축물이다. 이들은 재료상으로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 옷은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져 우리 몸을 부드럽게 감싸지만, 자동차는 주로 금속으로, 건축물은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들어진다. 모두 딱딱한 재료다. 그래서 공간도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다. - P218

텐트는 옷과 비슷한 천으로 만들어진다. 손으로 밀면 모양이 변하는 변형 가능한 부드러운 재료다. 빛도 어느 정도 투과된다. - P218

텐트는 자동차나 건축물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변형 가능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바람이 불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텐트가 부풀어 오르거나 휘는 모양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텐트는 다른 딱딱한 건축과는 다르게 자연 속에 안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 P218

어디에 펼쳐도 텐트는 평온한 공간을 만든다. 비결은 둥그런 천장에 있다. 일상의 건축에서 경험하는 모든 천장은 평평하다. 둥근 천장은 대성당 돔 밑에 가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 P219

둥그런 곡선이 있다면 곡선의 중심점이 있는 쪽에 있느냐, 반대편에 있느냐에 따라서 경험하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곡면 안쪽에 있으면 더욱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가 우리를 안아줄 때는 팔을 펴서 둥그런 형태를 만든다. 곡면 안쪽에 서게 되면 팔에 안긴 것처럼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 P219

애석하게도 현대인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직선이고 평평하다. 건물의 벽면도 평평하고, 천장도 평평하다. 그러니 도시가 무표정의 차가운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 P219

연애에 성공하려면 상대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라는 말이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흥분이 돼서 사랑할 때 심장이 뛰는 것과 비슷한 심장 상태가 되어 뇌가 옆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 P223

구불구불한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걸어도 계속해서 장면이 바뀐다. 변화가 많으니 걸어도 지겹지가 않다. - P228

덕수궁 담장은 양면성을 가진다. 안쪽에서 보면 담장은 주변의 자동차를 가리는 가림막이다. 그런데 반대편 쪽에서 덕수궁 담장을 따라 걸을 때에는 나를 가려주는 안전장치가 된다. 오히려 궁궐은 하나도 안 보이고 왼편의 근대 건축물들과 정원들이 연속적으로 보인다. 같은 담장이지만 담장의 어느 쪽에 서 있느냐, 담장을 멀리서 보느냐, 담장을 따라서 걷느냐 등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담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 P231

건축은 나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 P231

엑스라지XL 사이즈를 느끼길 원한다면 테헤란로, 라지L는 도산대로, 미디엄M은 정동, 스몰S은 인사동, 엑스스몰XS을 느끼려면 익선동을 추천한다. - P233

공장은 거대한 기계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기둥 구조로 되어 있고 천장이 높다. - P235

공장 건물은 뭐든지 변형해서 쓰기에 편리하다. - P235

젊은이들이 클럽에 가는 건축적 이유 중 하나는 어두운 데서 나를 적당히 은폐하고 다른 이성을 훔쳐볼 수 있어서다. - P236

클럽은 노출을 할 수 있는 곳이면서 관음증을 만족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 P236

클럽이 붐빌수록 단위 면적당 인구밀도가 높아진다. 다른 말로 이성과의 거리를 더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 P236

클럽은 사람이 인테리어다. 클럽 입구에서 들어오는 손님을 고르는 문지기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할 수도 있겠다. - P239

클럽에서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도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귓속말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나 하는 것이니, 클럽에서는 누구든 순식간에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다. - P239

건축에서 물은 경계의 의미가 강하다. 보통 구분된 공간을 만들고 싶을 때 건축에서는 경계에 물을 넣는다. - P248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공간은 구분된 특별한 공간이다. 연결이 단속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P249

계단은 벤치 없는 이 도시 속에서 또 하나의 의자다. - P251

같은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 다른 장소로 돌변한다.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은 우리의 일상에 배경음악을 깔아주어 평범한 공간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만든다. - P254

같은 노래를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듣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시각적 경험과 청각적 경험을 같이하게 되는 이 사건은 두 사람의 마음을 같은 주파수로 공명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 P255

요즘은 휴대폰에 플레이리스트를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플레이리스트를 교환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와 댄처럼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도시를 걷는 것은 두 사람의 마음과 역사를 교환하는 것이다. 물론 서로 호감이 가는 사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아무에게나 그러자고 하면 뒷감당은 본인 몫이다. - P255

지금의 현대 도시민은 상어와 같다. 부레가 없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계속 헤엄을 치고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우리는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계속 움직여야 한다. - P257

인도 위를 걷거나 차를 타거나 산을 가거나 도시 속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는 두 곳이다. 도서관과 벤치, 그중 벤치는 야외 공간에서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한다. - P257

꽃꽂이가 되어 있는 공간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고 준비된 공간이다.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누군가가 옷을 열심히 골라서 입고 화장도 하고 기다려준 것 같은 느낌이다. 꽃꽂이를 한 공간은 나를 위해 단장을 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 P260

누군가가 나에게 잘보이고 싶어 한다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 P260

보통 동그란 테이블은 위계가 없다. 반면 직사각형 테이블에서는 좁은 쪽에 앉은 사람이 더 권력을 갖는다. 그래서 아더왕의 원탁의 기사들은 서로간에 위계가 없이 평등함을 상징하기 위해 원탁에서 모였다. - P263

동그란 테이블의 또 다른 장점은 인원수를 가변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페에서 동그란 테이블에 네 명이 앉아 있다가 한 명 더 오면 의자를 테이블에서 조금 뒤로 빼서 원의 지름을 키워 한명 의자를 더 끼워 넣기만 하면 된다. - P263

네모난 테이블에서 가장 대화가 많이 일어나는 자리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은 사람 사이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테이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으면 좋다. - P263

사람 간의 친밀함을 만드는 거리는 45센티미터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 P263

모서리에 앉을 때도 왼쪽 얼굴을 보여주면 더 좋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왼쪽 얼굴이 오른쪽 얼굴보다 더 멋지다고 한다. 양정무 미술사 교수에 따르면 그런 이유에서 초상화는 모두 왼쪽 얼굴을 그린다고 한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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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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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출신 사람(이하 문과인)들에게 과학은 자신과 딱히 관련 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결코 적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다른 과목들과는 다르게 과학은 과목자체에 대한 어떤 호기심보다는 단지 그냥 시험에 나오니까 공부해야 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바보같은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우주에 갈 일도 없는데 왜 우주를 알아야 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은 도대체 왜 알아야 하며, 각종 물리법칙들은 실생활에서 어떤 쓸모가 있는건가 하는 회의감, 그리고 생물학 용어들은 왜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는지... 진짜 과학의 세부분야들에 대한 필요성과 흥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게 과거의 나였다. 이렇듯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 였는데,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가 우연히 지난 5월에 《최재천의 곤충사회》 라는 책을 읽고 과학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연관된 책을 찾다가 읽게 된 책이 바로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 다.

일반적으로 과학 관련 책들의 저자는 보통 이과 출신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문과 출신이라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 출신 독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책이 쓰여졌다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후기 부분을 보면서 저자가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순서로 목차를 정한 것이 그냥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문과인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여 호기심을 서서히 키워가는 방식으로 목차를 배열했다는 말을 보며 저자가 얼마나 목차에 신경썼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및 개략적인 책에 대한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에서 독자인 내가 느꼈던 내용들 중 핵심적인 것들 위주로 리뷰를 시작해보겠다.

가장 먼저 저자는 과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인문학의 토대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자아를 두 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하는데, 하나는 과학에서 말하는 물질로 존재하는 ‘나‘ 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 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로 존재하는 ‘나‘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이것을 물질로 이루어진 외형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툭 튀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느냐‘(p.30) 는 문장을 통해 독자인 내가 제대로 이해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추가로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문장 하나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p.32)

어쨌든 이 얘기를 통해 과학적인 시각과 인문학적인 시각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과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반쪽만 알고 나머지 반쪽은 전혀 모른채 살아왔다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통일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문장들이 나오는데 몇 가지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있다.‘(p.32)

이 두 문장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어떤 하나의 물체에서 모든 것이 진화했다는 일원론의 생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각기 다를 수 있어도 속에 내재된 근원의 물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통해 우주를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universe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universal이 ‘보편적인‘ , ‘일반적인‘ 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p.32) 는 말을 하는데, 이는 인문학의 성격이 다소 주관적인 반면 과학은 지극히 사실에 입각하여 말하는 객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떤 추론이나 추측보다는 명백하고 확실하게 드러난 증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설령 인문학자라 하더라도 과학이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인문학자이다보니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는다. 저자는 과학이 객관성 측면에서 힘이 센 것은 맞지만,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는 점을 근거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학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어느 한 쪽이 힘이 쎄더라도 힘이 약한 쪽도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 관계의 모습과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인간의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뇌는 단지 기계일뿐 이 기계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앞에서 언급했던 과학에서 말하는 물질적인 ‘나‘ 와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나‘ 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p.39)는 얘기로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뒤이어 저자는 물질적 실체에 대한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 에 대한 답으로 ‘나는 뇌다‘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대답을 사실을 기술한 문장이 아닌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p.47)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p.48) 였다고 말한다. 또한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독자인 나는 물질인 뇌와 물질이 아닌 철학적 자아가 서로 얽히고 설켜서 나온 대답인 ‘나는 뇌다‘ 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 깊이 와닿게 느껴졌다. 얼핏 보면 단순한 대답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부분이 나온다. 과학자는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만 인문학자는 잘 몰라도 일단 아는 것처럼 둘러댄다는 것이었다(p.68).

이러한 과학자와 인문학자 간의 시각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로 ‘사람은 변한다‘ 라는 말과 함께 ‘전향‘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향이라고 하면 ‘무슨 사상을 전향했다‘ 뭐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전향'이라는 행동을 인문학과 과학 이렇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인문학에서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자유의지'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현상을 설명하는 것임에 반해 과학에서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특정한 행동이 발생되는 것(p.94)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좀 더 설명하자면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로 생긴 현상(p.96)을 전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인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인문학의 설명 방식과는 달리 물질의 움직임에 기반하여 설명하였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부분을 통해 독자인 나는 인문학과 과학이 세상을 보는 관점 혹은 패러다임이 아예 뿌리부터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전향‘ 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과학적 시각과 인문학적 시각을 비교 분석해보면서 둘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 중에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패턴에 영향을 준다‘(p.99) 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 쓰자면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p.99)는 말인데, 이 글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단지 과학에서 말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우리의 자아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의 생각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야 신경전달물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인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의 과학적 근거를 알고나자 그동안 알고 있던 생각들에 대한 믿음이 좀 더 확고해졌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데이터도 자아에 영향을 준다(p.97) 는 말과 함께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p.100)는 말도 덧붙인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자아에 데이터를 공급함으로써 자아가 어리석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애쓰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독자인 나 또한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는 뇌과학 파트를 마무리하면서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자신의 행동이 변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닌 단지 뇌라는 하드웨어가 퇴화된 것이라 여겨달라(p.100) 는 말과 함께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p.101) 는 말이었다. 독자인 나는 저자의 이 말을 보면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었다. 또한 뇌라는 하드웨어의 퇴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일단은 저자의 말처럼 악과 누추함을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p.101)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을 듯하다.


뒤이어지는 생물학 파트에서 저자는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p.123)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앞에 나왔던 뇌와 비슷한 느낌으로 여기는 듯하다. 즉, 뇌과학에서 말하는 뇌와 생물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 둘 다 과학의 관점에서는 단지 물리적 실체일 뿐 어떤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의미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결국 삶의 의미라는 것은 과학에서 찾을 수 없기에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이 효용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이것을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는 말로 멋지게 표현한다. 즉, 인문학이 각 사람의 어떤 철학적인 삶의 의미를 찾는데 유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는 보완재 성격으로 인문학을 생각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 부분을 통해 인문학의 쓸모 혹은 유용성에 대해 보다 더 깊이있게 알 수 있었다.


뒤이어지는 내용 중에 저자가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꽤나 눈길을 끄는 내용이었다. 이유인즉, 진보 성향의 저자가 진보적 성격에 가까운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점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본문에서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바로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능을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이기적인 본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로 인해 사회주의가 무너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솔직히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이상대로만 현실 사회가 구현되었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없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인문학적 지식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에 대한 과학적 사실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실패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과학적인 사실(여기서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을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역행하여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잠깐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인간 본능에 따라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실패 사례가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

‘국민 대다수가 ‘태만‘ 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 (p.143)

위에서 내가 주저리주저리 적어놓은 말들보다 p.143에 나온 이 문장이 훨씬 임팩트 있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뒤이어서 흥미를 느꼈던 사례 중 하나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심사평가원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저자가 과거 참여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서술한 것인데, 이 사례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독자들이 보다 잘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사례를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의료서비스 시장에는 수요자인 환자와 공급자인 의사가 있다. 여기서 공급자인 의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픈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결국 의사들의 뇌 또한 다른 사람들의 뇌와 동일하게 생존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나머지, 자신의 병원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지 가벼운 처방만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과잉진료를 하고 공단에 과다한 금액을 청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들의 이기적인 본능으로 인해 과잉청구된 금액을 적정한 금액으로 바로잡고 이외의 추가적인 감시감독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 바로 건강보험공단의 심사평가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감시감독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기관이 있음으로 해서 의사들의 과잉진료로 인한 부담금 과잉청구 같은 불합리한 일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생존 본능과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임팩트 있는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욕망이 이성보다, 이익이 도덕보다 힘이 세다.‘ (p.144)

이 문장과 위의 심사평가원 사례를 통해 독자인 나는 본능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어떠한 제도나 기구를 만들 때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에 역행하지 않도록 과학적인 지식에 기반을 두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뒤이어지는 화학파트에서는 먼저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저자가 본문에 언급한 화학제품들의 목록들을 보다보면 화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본문에 나온 몇 가지 나열해보면 립스틱, 화장품, 선크림, 미백크림, 살균제, 소독약, 항생제, 일회용기저귀 등을 비롯해 농축산물 생산에 쓰이는 비료, 농약 등 분야를 막론하고 참으로 다양하다. 저자는 ‘현대인의 삶은 화학에서 시작해 화학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167) 라는 말로 화학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많음을 독자들에게 말해준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바로 화학인만큼 단지 문과라는 이유로 화학에 무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화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화학은 생명을 해치는 사악한 마법이 아니다. 좋지 않은 물질을 만들어 잘못 사용한 책임은 화학이 아니라 사람한테 있다.‘(p.168)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화학 자체보다는 화학을 오남용한 사람들의 잘못이 화학에 대한 오해를 키워왔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화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저자가 탄소에 대한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전지구적인 기후 위기의 원인이 탄소라고 지적하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을 때 독자인 나는 요즘 전지구적인 기후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탄소 중립을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저자께서 왜 저렇게 탄소를 감싸려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문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그 많은 탄소는 다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서 온 게 아니다. 원래 지구에 있었다.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탄소가 풀려나 산소, 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위기가 생겼다. 오로지 인간 탓인 건 아니다. 화산 폭발과 자연발화 산불도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p.187)

‘인간이 집을 데우고 자동차를 굴리고 비행기를 띄울 때마다 거기 들어있던 탄소가 풀려났다.
...(중략)... 숲을 훼손해 도시와 경작지를 만든 탓에 나무가 광합성으로 흡수 고정하는 탄소량이 줄었다.(p.188)

윗 문장들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탄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탄소 자체의 잘못보다는 원래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탄소를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해 우리 인간들이 오남용한 결과가 지금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후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탄소에 대한 오해는 마치 살인범이 칼을 비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p.188)는 비유를 들며 탄소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에 대한 제대로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읽다가 눈에 띈 개념 중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환원還元(reduction)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크고 복잡한 것을 작고 단순한 것으로 쪼개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대상을 이런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을 ‘환원주의‘ 라고 하는데, 여기 나오는 화학 뿐만 아니라 과학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환원주의에 기반하여 연구를 한다고 하니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자는 이러한 환원주의에 입각하여 문과인 독자들이 그래도 비교적 이해하기 용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소금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를 통해 원소와 원자, 분자, 전자 등 기초화학에 나오는 개념들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원소들을 원자번호와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한 주기율표를 읽는 방법이라든지 화학에 나오는 각종 결합 방법 등 기초적인 개념들을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과학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나같은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주기율표의 경우 본문의 내용을 통해 각각의 원소, 원자들의 특성이 마치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같은 걸 보면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16가지로 사람의 유형을 분류하는 것과 비슷하게 주기율표에서도 각각의 원소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에 따라 원소가 위치하는 자리가 달라지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뒤이어 나온 내용 중에서 저자가 탄소의 화학적 성질을 정치학 언어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한 예로 탄소는 ‘유능한 중도‘여서 성공했다.(p.188)라는 문장과 함께 탄소의 성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런 식으로 과학을 배우면 '문과출신들도 과학을 조금이나마 덜 낯설게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복잡한 수식이나 산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의미로 딱 와닿는 게 좋았다. 이런 식의 설명은 아마도 저자가 과거에 정치에 몸담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어지는 물리학 파트는 개인적으로 가장 읽기가 어려웠던 부분이다. 불확정성 원리를 비롯해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나마 물리학 파트에서 독자인 내가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생각한 내용인 원자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겠다. 먼저 원자의 상대적인 위치에 대해 이해하기 좋은 문장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물의 몸은 세포의 집합이다. 세포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원자의 결합이다.‘(p.228)

이 문장을 좀 더 쉽게 풀어보자면 먼저 생물을 인간이라고 봤을 때, ‘인간의 몸은 세포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세포들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또한 그 분자 하나하나는 원자들이 모여서 이루어져있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 저자는 그렇다면 ‘우리 몸의 원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p.228) 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환원주의(큰 것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분석하는 과학의 연구 방법)와도 일맥상통하는 질문이었다.

본문에서 저자는 문과적 감성을 덧입혀 위의 질문을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p.228)라는 좀 더 직관적인 말로 변환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는데 이 질문에 물리학은 ‘별에서 왔지‘(p.228)라는 말로 대답한다.

아니 갑자기 난데없이 ‘별에서 왔다‘니... 독자인 나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뒷 부분에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 ‘별에서 왔다‘ 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론만 보면 원자 제조법은 간단하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좁은 공간에 집어넣고 전자를 양성자 수만큼 오비탈에 뿌리면 된다. 양성자와 전자의 수가 같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달리 고려할 게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간단하지 않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가까워지면 서로 강하게 당기거나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핵에 욱여넣으려면 엄청나게 높은 온도에서 엄청나게 강한 압력을 가해야 한다. 지구에는 그런 일을 할 만큼 온도가 높은 곳이 없고 그 정도로 강한 압력을 만들 방법도 없다. 그러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지구 밖에서 왔다.‘(p.228)

위에 나온 말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지구에는 원자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온도와 압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지구 밖, 즉 별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이어서 별에 대한 얘기를 읽던 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별의 이름은 인간의 시선을 반영한다. 신성新星(nova)은 갑자기 밝아진 별이고 그중에도 유난히 밝아진 별이 초신성超新星(supernova)이다. 초신성은 하루 사이에 몇 만배 밝아지기도 한다. 육안으로 우주를 관측하던 시대에 그 별이 새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p.231)

여기서 독자인 나는 특별히 초신성超新星이라는 뜻을 가진 supernova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이 단어는 인기 아이돌 그룹인 에스파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데, 독자인 나는 이 노래 후렴부분의 멜로디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문득 노래의 구체적인 가사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가사 중에 ‘우린 어디서 왔나‘ , ‘불러낸 내 우주를 봐봐‘ , ‘내 모든 세포 별로부터 만들어져‘ 등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 가사들 중 특별히 ‘내 모든 세포 별로부터 만들어져‘ 라는 가사의 경우 위에서 언급했던 '별에서 왔지'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는 좀 놀랐다. 아이돌 노래의 가사들이 그냥 아무런 근거없이 쓰여지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노래를 작사하신 분도 우주에 존재하는 별에 대한 배경지식들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기에 이러한 가사들을 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사소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책에서 읽어봤던 내용들을 실생활에 나오는 것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우주나 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좀 더 샘솟는 듯하다.


다음은 수학 파트인데, 가장 먼저 독자인 나는 수학 파트를 읽기 전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것은 ‘책 제목이 엄연히《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인데 왜 수학에 대한 얘기를 책에서 다루지?‘ 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본문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풀릴 수 있었다.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과학자는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선호한다.‘(p.262)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왜 수학 파트가 과학을 주로 다루는 이 책에 함께 수록되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수학은 이 책의 앞선 파트에서 다뤘던 물리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저자가 책의 순서를 물리학 바로 다음에 수학으로 배치한 것도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저자는 수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직전 파트였던 물리학의 물리적 실재(reality)에 대해 간략히 정리한 후에 이어서 수학적 실재 및 수학의 정리(theorem)에 대해 말한다. 본문에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해와 달이 번갈아 뜨고 계절이 돌고 화산이 터지고 땅이 갈라지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물리 세계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물리학은 그런 물리적 실재實在(reality)를 설명한다.‘ (p.261)

‘수학도 물리학처럼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수학적 실재를 서술하는 학문이라면 수학의 정리定理(theorem)는 수학적 실재에 대한 관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p.261)

독자인 내가 위의 두 문장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키워드 2개는 바로 ‘인간‘ 과 ‘무관하게‘ 였다. 물론 두 번째 문장에서는 의식이라는 말이 생략되었지만 문맥상의 의미로 봤을 때 물리학과 수학 모두 인간의 의식과는 무관하며 단지 그 실재實在(reality), 즉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만을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리뷰의 앞부분에 썼던 내용 중에 인간의 의식을 나타내는 철학적인 자아에 대한 설명은 인문학의 영역이지만, 인간의 의식이 아닌 존재하는 실재에 대한 설명은 과학의 영역이라고 했던 말이 있었는데 물리학과 수학도 결국에는 이러한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과학을 공부하는 데 수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과학과 수학은 용어가 다르기에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과학자와 수학자의 차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먼저 과학자는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주로 선호하지만, 수학자는 과학자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물리 세계와는 관계없이 그저 수학 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며(p.262) 수학을 기호와 논리로 하는 지적 유희로 삼는다(p.261)고 한다.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이 부분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수학이 ‘순수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반해 과학은 순수한 것을 다양한 분야에 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뒤이어지는 내용을 읽다가 독자인 나는 수학이 새로운 언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는데,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수학자는 논문을 쓸 때 인간의 언어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수학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p.262)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언어‘ 는 소위 문자로 이루어져있는 한글 혹은 알파벳 등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문자로 이루어진 언어‘ 정도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의에 근거해서 생각해본다면 독자인 내 생각에 수학은 ‘기호로 이루어져있는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기호들을 생각나는대로 떠올려보면, 집합, 함수, 삼각함수, 지수, 로그, 행렬, 시그마, 극한, 적분, 순열과 조합 등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호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수학자들은 수학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기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각종 원리들을 증명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 기호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언어‘와는 다르다보니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수학이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소위 말하는 ‘수학을 포기한 자들‘ 이라는 뜻의 ‘수포자‘ 같은 말들이 나오는 것도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호와 수식이 가득한 언어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다음에 나오는 내용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수학의 매력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 데 여기서 몇 문장을 간단히 소개해보겠다.

‘인간은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영원한 그 무엇을 추구한다.‘(p.269)

‘수학의 성과는 다른 무엇보다 오래간다. 문명과 언어와 권력은 사멸해도 수학의 아이디어는 불멸한다.‘(p.269)

‘수학은 한 번 진리로 판명되기만 하면 영원히 진리로 남는다. 이것이 수학의 매력이다.‘(p.270)

‘수학자는 산을 오르거나 사막을 헤매거나 지하동굴을 탐험하지 않는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만으로 영원불멸의 진리를 선포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p.270)

위에 나온 문장들을 통해 독자인 나는 수학이 가진 매력이라는 것이 결국 ‘영원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대리만족 시켜줄 수 있는 도구로써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좋게 남기고 싶어하는 일종의 ‘명예욕‘ 있는데, 어떤 수학적인 진리를 입증하게 될 경우 앞서 언급한 ‘영원성‘과 ‘명예욕‘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기에 수학의 매력이 그만큼 커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수학자는 어떤 육체적인 수고보다는 단지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는 행위만으로도 ‘영원성‘과 ‘명예욕‘을 추구할 수 있기에 육체적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도 반反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매력이 있는 수학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수학적인 재능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수학이라는 것이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저자는 수학 파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선망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과 함께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수학자의 삶을 너무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본문을 읽다보면 유명한 수학자들 중에 평범하게 살다간 사람보다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정신병에 걸려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걸 보다보면 어느 한 쪽에 재능이 극도로 쏠려있는 경우 나머지 영역에 있어서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도 독자들에게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듯하다.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이 다르므로 남 부러워할 것 없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행복하면 된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이어서 후기 부분에 나온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과학자는 현상을 관찰하는데서 출발해 실험과 분석과 추론으로 대상의 실체에 다가선다. 그렇지만 연구결과를 이야기할 때는 반대로 한다. 자신이 알아낸 대상의 본질을 먼저 밝히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인지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p.290)

윗 문장을 독자인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 풀어보자면 과학 연구를 할 때는 어떤 ‘현상‘을 보고 ‘본질‘을 탐구한다면, 연구된 결과를 이야기할 때(이것을 ‘과학의 스토리텔링‘이라 지칭함)는 탐구한 ‘본질‘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한 뒤 거기에 살을 붙여서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는 말이다.

문맥상 여기서 좀 더 중요한 것은 연구된 결과를 이야기하는 ‘과학의 스토리텔링‘이었는데, 저자는 본문에서 소개했던 소금물 이야기(소금물이 결합되고 용해되는 과정을 서술한 것)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이는 원자로 대변되는 ‘본질‘에서 출발해 다른 각종 물질들이 결합했다가 다시 그 결합이 해체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식의 패턴이다. 독자인 나는 이 사례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과학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추후에 다른 과학 관련 책을 읽을 때도 이런 '과학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과학을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중간중간 복잡하고 난해한 부분들이 있었기에 완독하는 것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저자의 설명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노력하면서 이렇게 리뷰까지 쓰고나니 확실히 과학에 대한 앎의 깊이가 조금이나마 깊어졌음을 실감한다.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과학 분야를 조금이나마 친숙한 분야로 바꿔주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게 도와준 저자께 감사드린다. 이 책을 계기로 하여 과학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관련 분야의 독서도 병행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특별히 저자가 본문 하단에 주석으로 달아놓은 책들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읽어보면 여러 모로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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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4-09-26 16: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과학책을 읽고 공모까지 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저는 마음공부에 관한 책을 읽고 관련 유튜브를 듣다가 뇌와
마음이 양자와 관련 있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접하고 읽게 되었어요.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유튜브에서 듣게 되면 정말 반갑더군요.
자꾸만 접하다 보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인용하신

‘욕망이 이성보다, 이익이 도덕보다 힘이 세다.‘라는 말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의대생 정원 문제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군요. 기가 막힌 문장같아요.ㅎ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9-26 18:53   좋아요 2 | URL
예 리뷰를 쓰다가 이 책이 우주리뷰상 도서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 도전해보게 되었습니다. 모나리자님이 말씀해주신 유튜브 내용을 제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써주신 글을 읽다보니 제가 이 리뷰에는 별도로 쓰진 않았지만 본문에 나왔던 내용 중에 불교의 연기법과 양자역학이 비슷한 점이 있다는 내용을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얼핏 생각나는 것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런 말도 떠오르구요. ‘비었지만 차있는 것이고 차있지만 비어있는 것이다‘ 라는 다소 철학적인 내용이 양자역학에 나오는 원자의 성질과 비슷하다고 해서 나왔던 얘기로 기억합니다. 다만 저도 그냥 대략적인 느낌정도만 느꼈을 뿐 어떤 심도있는 얘기까지 하기는 힘든 수준입니다. 저도 모나리자님 말씀처럼 자주 접하면서 앎의 깊이가 깊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용한 문장으로 써주신 문장같은 경우 말씀주신것처럼 최근 의대 정원 문제에 정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님 덕분에 저도 하나 배웠습니다.^^ 추가로 이 사례 외에도 저 문장이 적용되는 영역들이 사회곳곳에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제가 쓴 리뷰도 관심갖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곡 2024-09-27 14: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공모 제출 축하드리고 응원합니다! 9월 건강히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9-27 15:12   좋아요 2 | URL
예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환절기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qualizer 2024-09-27 1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과학은 과학일 뿐, 그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나 종교 분야에서 아전인수격 해석과 터무니없는 참견을 일삼아 왔습니다.
평생을 ‘말빨‘로만 살아온 저자 유시민이 ‘수식‘과 ‘실험‘과 ‘현장‘에서 평생을 버텨온 이과생들의 애환과 고충을 어찌 알까요.
이과 출신의 관점에서 볼 때는 맥스웰 방정식이나 중력장 방정식의 의미조차 알지 못할 문외한인 저자가 수박 겉핥기로 과학을 넘겨짚을 뿐, 평소 과학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이나 두려움을 가져왔던 문과생들을 위한 위로문에 불과해 보입니다.

과학적 사고방식의 탁월함이 여타 인문학적 사고방식과 다른 점은 기존에 정립된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현상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하는 지적 겸허함과 개방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정치관이나 역사관에 평생동안 고착되어왔고, 지금도 상대진영을 향해 독설을 내뱉고 있는 저자 유시민이 과학의 이같은 가치중립적 포용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넌센스요 독자 기만이 아닌지. 서울대 문과를 나오면 세계적 과학 석학들의 사고를 평가할 레벨은 충분히 된다는 것인지, 혹은 기타대 이과쯤은 휘어잡을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를 오만이 글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를 쓴 유시민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건 어떤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주장인지도 궁금합니다. 그에게 여전히 과학은 필요할 때만 써먹는 ‘정치의 시녀‘일까, ‘책팔이‘ 수단일까 의심됩니다.

2024-09-27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로마의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Church of St. Ignatius에 있는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의 그림(천장화)을 봤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밑줄친 첫 문장에서 저자는 이 그림을 보면서 깨달았던 것을 독자들에게 고백한다. 특별히 공간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연산해내는 정보‘ 라는 표현이 새롭게 느껴졌다.

여기에 천장화 그림을 넣을 수 없어서 본문에 나온 그림을 간단히 글로 설명하자면 그냥 일반적인 평면에 갖가지 구조물들과 사람들의 크기를 미세하게 조정하여 마치 하늘로 뻥 뚫려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지금 페이퍼를 쓰는 이 책뿐만 아니라 동 저자의 다른 책인《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도 나와있다고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책을 찾아서 보셔도 괜찮을 듯 하다.

사람이 느끼는 공간이라는 개념은 물질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연산해내는 정보라는 것 - P140

산토리니섬에 가면 바위섬에 만들어진 어촌이 있다. 산토리니가 아름다운 이유는 우선 집들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섬에서 거대한 토목 기계도 없이 사람의 손으로 흙을 퍼 날라 지은 집이다 보니 땅의 모양을 바꾸지 못하고 대신 건물의 모양을 땅에 맞추어 만들었다. - P142

김정운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리스펙트는 ‘당신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고 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상태‘라고 한다. - P147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은 즐겁다. - P147

월급이 적고 야근이 많아도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리처드 마이어 Richard Meier 사무실에서 경력을 쌓는 시간은 즐거웠다. - P147

자신의 일터가 동료를 리스펙트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 P147

조각보는 옛 어른들이 옷을 만들다 남은 천 조각들을 하나하나 바느질해 붙여 콜라주처럼 만든 보자기다. - P153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필연적인 이유에서 나올 때 아름답다. - P155

아름다운 디자인은 필연적인 이유에 앞서 아름다운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 P155

건축만이 주는 유일한 감동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중력을 이기려는 노력이 보여서다. - P157

아치는 중력을 이기는 모습이 우아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곡선으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 P166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칸은 이런 이야기로 아치를 설명하기도 했다. "벽돌은 아치가 되고 싶었다. 그러자 건축가가 아치는 비싸서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벽돌은 슬퍼졌다." 그만큼 아치는 만들기 어려운 건축양식이기도 하다. - P166

아치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로마시대의 건축이다. 로마인들은 기후가 각기 다른 전 유럽에 건축물을 지으면서 벽돌 아치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통일감을 만들었다.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아퀴덕트 같은 교량이나 콜로세움은 아치 구조로 만들어졌다. - P167

아쉽게도 현대건축에서는 대부분 철근콘크리트나 철골 기둥에 수평으로 얹힌 직선의 보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곡선의 아치 구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 P167

서울에서 아름다운 아치 구조를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옥수동, 금호동 한강변에 있는 두무개길이다. 두무개길은 2층으로 만들어져 있는 강변에 위치한 도로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지붕이 없고, 동쪽으로 가는 길은 서쪽으로 가는 길이 위에 지붕처럼 올라가 있다. 그리고 이 길은 수십 개의 콘크리트 아치 구조로 받쳐져 있다. - P167

가장 좋아하는 달은 6월이다. 대학의 방학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고, 날씨가 아직 더워지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춥지도 않아 옷차림이 가벼워진다. - P171

주말의 여의도를 추천한다. 사무 시설이 밀집한 여의도 거리는 주말이 되면 텅 빈다. 여의도는 대형 건물을 위한 공간이어서 인도 폭도 넓다. 그곳에 의자를 놓고 있는 가게에 초여름 주말 저녁에 들어가면 텅 빈 여의도를 내 것처럼 즐길 수 있다. - P171

터널에서 후진은 불가능하다. 시간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간을 뒤로 갈 수도 옆으로 갈 수도 없다. 항상 그 흐름에 몸을 맡겨 앞으로만 가야 한다. - P175

터널은 뒤로 들어와서 앞으로만 간다.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공간에 있지만 시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P175

우리는 배꼽을 보면서 배 안에 복잡한 내장 기관을 상상하곤 한다. - P176

도시의 배꼽은 맨홀이다. 맨홀 뚜껑 아래는 복잡한 상하수도 시설과 전기 라인이 들어가 있다. 도시라는 생명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모든 혈관과 내장기관은 땅속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을 상상하게 하는 것은 맨홀 뚜껑이다. 우리가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맨홀은 보이지 않는 공간과 보이는 공간의 경계를 나누는 또 하나의 웜홀이다. - P176

건축에서 내려다보는 공간은 권력을 갖는 공간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고 나만 그 사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공간이다. 그래서 펜트하우스가 비싸고, 회장실은 높은 곳에 있고, 우리는 상관을 높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P178

한옥 마당이 특별한 것은 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청마루, 툇마루, 처마 같은 중간층의 공간이 있어서다. 그래서 옥상이 특별해지려면 ‘옥탑방‘이 있어야 한다. 옥탑방이 들어설 때 비로소 옥상은 한옥의 마당이 된다. - P180

방이 옆에 있는 옥상은 마당이 되고, 평상은 대청마루 대용이다. 현대 도시에서 한옥과 가장 비슷한 공간은 옥탑방이다. - P180

다른 식물과는 다르게 이끼가 자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끼는 곧 시간이다. 이끼는 나무나 풀보다 더 척박한 곳에서 자란다. 자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면에서 이끼는 쇠의 녹과 비슷하다. - P184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작품은 거대한 철판이 아름다운 곡면으로 휘어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백미는 철판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철판 표면에 슨 녹에 있다. 그 작품이 전시된 환경에 따라서 그 녹의 종류가 다르다. - P184

세라의 작품에서 녹슨 철은 시간과 기후가 만든 결과다.
마찬가지로 이끼도 시간과 기후가 만든 결과다. - P185

이끼는 햇볕이 너무 들어도, 습도가 낮아도 자라지 못한다. 적절한 그늘과 습도에서 천천히 자라는 식물이 이끼다. - P185

어느 곳이 되었건 이끼가 많은 곳은 특별하다. 이끼가 있는 공간은 이끼의 양만큼 소외되고 조용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 P185

그리스 산토리니를 갈 여건이 안 되면 부산 감천마을에 가면 된다. - P186

산토리니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형태는 다양하나 재료가 통일되어서다. - P186

감천마을은 지형에 맞춰 건축된 작은 건물들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형태가 다양하다. 그런데 백색으로 통일된 산토리니와 달리 감천마을은 색상도 다양해서 언뜻 보면 오색찬란해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강렬한 색상은 회색 도시에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환기시키기도 한다. - P186

우리나라는 티베트 민족과 더불어 파랑, 빨강, 노랑 같은 원색 계열을 전통적으로 선호한다. - P187

감천마을은 산토리니와 공간 구성이 닮았고, 색상이 다채로운 한국식 산토리니라고 할 만하다. 감천마을은 ‘컬러의 도시‘다. - P187

스위스를 갈 여건이 안 되면 산정호수를 가면 된다. - P188

우리나라에는 호수가 많지 않다. 북유럽은 빙하가파고 나간 자리에 눈이 녹은 물이 담겨져 호수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보다는 남쪽이어서 빙하가 없었다. 노년기 지형이다 보니 호수가 많지 않다. 그런데도 특이하게 커다란 호수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산정호수다. - P188

나는 건축가가 최고로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어떤 때는 배우가 부럽다. 누구나 한 번의 인생을 살지만 배우는 영화 속 배역에 따라서 여러 개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 P190

우리가 배우가 아니라서 여러 인생을 살지는 못하지만 비슷하게나마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된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살아보면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P191

완전히 다른 사람의 공간에 들어가 살면서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하는 것 - P191

두 개의 다른 사람 집에서 지내다가 오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인생을 짧게 체험해보고 오는 경험일 것이다. 그것이 에어비앤비의 매력이 아닐까. - P191

텅 빈 공항 대합실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처럼 넓은 체적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 P192

우리가 어디서 이런 체적의 공간을 즐겨 보겠는가? 여기는 에어컨도 잘 나온다. 21세기 땅끝 마을은 해남이 아니라 국제공항이다. - P193

나는 쇼핑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공항 면세점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 공간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공간처럼 느껴져서다. - P194

보통 해외에 나가려면 여권을 들고 국내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한다. 그리고 내가 여행하는 나라의 여권 검색대를 통과해야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론적으로는 인천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서 다른 나라의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의 공항 면세점 공간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이다. - P194

건축적으로 왠지 공항은 정치적 국경과 국경 사이의 미지의 세계라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는 외국인들과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밥을 먹고, 쇼핑을 하며 보낼 때는 뭔가 어느 국가도 아닌 존 레넌이 <이매진 Imagine>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국경도 종교도 초월한 세상에 있는 듯하다. 건물 안에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큰 자유를 느끼게 되는 공간이다. - P195

누군가와 손을 잡으면 같은 공간도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바뀐다. 시간도 바뀐다. - P199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을 가까운 사람과 함께 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만날 때 마주하는 모습은, 자신도 상대방도 이미 성장통을 겪으며 변화한 상像이다. 나를 만나기 전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려서 살던 동네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과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P201

조각가는 청동상을 만들 때 틀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조각상을 만든다. 우리가 조각상을 보지 못하더라도 조각상의 틀만 보아도 만들어진 조각상을 상상해볼 수 있다. 과거 내가 살던 공간은 ‘나‘라는 조각상을 찍어낸 거푸집 틀과 같다. - P201

누군가의 어릴 적 공간을 보면 그 시절의 그 사람을 상상해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공간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를 보는 것이다. 그 공간은 공룡의 화석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조금 더 알게 해줄 것이다. - P201

예전에 살던 동네를 혼자서 가보는 것도 좋다. 그곳에 가면 물리적으로는 예전과 같은 공간이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내 몸이 커져서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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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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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책의 마지막 파트인 수학 파트 및 후기 부분에 대해 독자인 나의 생각을 곁들여 리뷰해보겠다.


수학 파트를 읽기 전 과학에 무지한 독자인 나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것은 ‘책 제목이 엄연히《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인데 왜 수학에 대한 얘기를 책에서 다루지?‘ 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본문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풀릴 수 있었다.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과학자는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선호한다.‘(p.262)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왜 수학 파트가 과학을 주로 다루는 이 책에 함께 수록되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수학은 이 책의 앞선 파트에서 다뤘던 물리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저자가 책의 순서를 물리학 바로 다음에 수학으로 배치한 것도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저자는 수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직전 파트였던 물리학의 물리적 실재(reality)에 대해 간략히 정리한 후에 이어서 수학적 실재 및 수학의 정리(theorem)에 대해 말한다. 본문에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해와 달이 번갈아 뜨고 계절이 돌고 화산이 터지고 땅이 갈라지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물리 세계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물리학은 그런 물리적 실재實在(reality)를 설명한다.‘ (p.261)

‘수학도 물리학처럼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수학적 실재를 서술하는 학문이라면 수학의 정리定理(theorem)는 수학적 실재에 대한 관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p.261)


독자인 내가 위의 두 문장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키워드 2개는 바로 ‘인간‘ 과 ‘무관하게‘ 였다. 물론 두 번째 문장에서는 의식이라는 말이 생략되었지만 문맥상의 의미로 봤을 때 물리학과 수학 모두 인간의 의식과는 무관하며 단지 그 실재實在(reality), 즉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만을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선 리뷰에서 썼던 내용들 중에 인간의 의식을 나타내는 철학적인 자아에 대한 설명은 인문학의 영역이지만, 인간의 의식이 아닌 존재하는 실재에 대한 설명은 과학의 영역이라고 했던 말이 있었다. 이 말에 근거하여 생각하면 물리학과 더불어 수학도 결국에는 존재하는 실재를 파악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과학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손해가 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과학을 공부하는 데 수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과학과 수학은 용어가 다르기에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과학자와 수학자의 차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먼저 과학자는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주로 선호하지만, 수학자는 과학자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물리 세계와는 관계없이 그저 수학 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며(p.262) 수학을 기호와 논리로 하는 지적 유희로 삼는다(p.261)고 한다.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이 부분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수학이 ‘순수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수학자들이 이러한 내 생각에 동의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본문 내용들에 근거해 생각해보면 어떤 다른 분야에 응용될 것을 의식하기보다는 수학 그 자체에 집중하며, 기호와 논리를 이용하여 지적 유희로 삼는 태도들을 종합해볼 때 순수함을 간직한 학문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학문이 바로 수학이 아닐까 싶다.


뒤이어지는 내용을 읽다가 독자인 나는 수학이 새로운 언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는데,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수학자는 논문을 쓸 때 인간의 언어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수학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p.262)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언어‘ 는 소위 문자로 이루어져있는 한글 혹은 알파벳 등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문자로 이루어진 언어‘ 정도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의에 근거해서 생각해본다면 독자인 내 생각에 수학은 ‘기호로 이루어져있는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수학시간에 배웠던 기호들을 생각나는대로 떠올려보면, 집합, 함수, 삼각함수, 지수, 로그, 행렬, 시그마, 극한, 적분, 순열과 조합 등 여기 그 기호를 다 그리기는 힘들지만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호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수학자들은 수학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기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각종 원리들을 증명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 기호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언어‘와는 다르다보니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수학이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소위 말하는 ‘수학을 포기한 자들‘ 이라는 뜻의 ‘수포자‘ 같은 말들이 나오는 것도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호와 수식이 가득한 언어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있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다음에 나오는 내용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수학의 매력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 데 여기서 몇 문장을 간단히 소개해보겠다.

‘인간은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영원한 그 무엇을 추구한다.‘(p.269)

‘수학의 성과는 다른 무엇보다 오래간다. 문명과 언어와 권력은 사멸해도 수학의 아이디어는 불멸한다.‘(p.269)

‘수학은 한 번 진리로 판명되기만 하면 영원히 진리로 남는다. 이것이 수학의 매력이다.‘(p.270)

‘수학자는 산을 오르거나 사막을 헤매거나 지하동굴을 탐험하지 않는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만으로 영원불멸의 진리를 선포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p.270)

위에 나온 문장들을 통해 독자인 나는 수학이 가진 매력이라는 것이 결국 ‘영원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대리만족 시켜줄 수 있는 도구로써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좋게 남기고 싶어하는 일종의 ‘명예욕‘ 있는데, 어떤 수학적인 진리를 입증하게 될 경우 앞서 언급한 ‘영원성‘과 ‘명예욕‘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기에 수학의 매력이 그만큼 배가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수학자는 어떤 육체적인 수고보다는 단지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는 행위만으로도 ‘영원성‘과 ‘명예욕‘을 추구할 수 있기에 육체적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과도 배치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매력이 있는 수학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수학적인 재능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수학이라는 것이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위에서 수학의 매력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수학적 재능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일거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얘기를 뒷받침하는 문장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수학자 중에 ‘노력형‘은 없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수학 천재는 천재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노력할 수도 없는 학문이 수학이다. 수학 천재는 ‘발명왕‘과 달리 ‘99퍼센트의 노력‘으로 만들 수 없다.‘(p.279)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개인적인 솔직한 심정으로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노력으로 안되는 분야도 간혹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유현준 교수가 쓴 책에서도 99%의 노력보다 1%의 영감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읽은《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셔서 독자인 내가 알지 못하는 재능의 영역들이 분명히 있기는 한 가 보다 하고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추가로 리뷰를 쓰다가 문득 든 생각은 애초에 어떤 일이든 간에 내가 과연 99%의 노력이라도 해본적이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그렇지 못했던 경우들이 훨씬 많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재능의 유무를 떠나 일단 최선의 노력이라도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자면 이 부분을 통해 내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가 혹여나 나태해져 있지는 않았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흐트러진 삶의 고삐를 조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예전부터 이름을 들어 알고 있던 유클리드, 가우스, 피타고라스, 페르마 등과 같은 수학자들 외에도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수학자인 하디, 디오판토스, 힐베르트, 괴델 등 다양한 수학자들과 관련된 얘기들이 여기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만큼 나온다. 이 부분은 수학자들이 만들어낸 산식이나 공식이 나오게 된 배경 스토리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언급하기에는 세부적인 내용들이 많은 관계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구해서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저자는 수학 파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선망하는 경향이 있다(p.285)는 말과 함께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수학자의 삶을 너무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p.286)는 말도 덧붙인다. 여기 일일이 서술하기는 힘들지만 실제로 본문을 읽다보면 유명한 수학자들 중에 평범하게 살다간 사람보다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거나 혹은 정신병에 걸려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걸 보다보면 어느 한 쪽에 재능이 극도로 쏠려있는 경우 그외의 다른 영역에 있어서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저자도 독자들에게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듯하다.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이 다르므로 남을 부러워할 거 없이 자기 분야에서 행복을 찾고 살면 그만이라는 게 저자가 이 수학 파트에서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수학 파트에 대한 리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책의 전체 후기에 대한 얘기를 추가로 한 뒤 이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책의 후기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과학과 인문학의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이 다르다는 것(p.290)이었다. 관련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나온다.

‘과학자는 현상을 관찰하는데서 출발해 실험과 분석과 추론으로 대상의 실체에 다가선다. 그렇지만 연구결과를 이야기할 때는 반대로 한다. 자신이 알아낸 대상의 본질을 먼저 밝히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인지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p.290)

윗 문장을 독자인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 풀어보자면 과학 연구를 할 때는 어떤 ‘현상‘을 보고 ‘본질‘을 탐구한다면, 연구된 결과를 이야기할 때(저자는 이것을 ‘과학의 스토리텔링‘이라고 지칭함)는 탐구한 ‘본질‘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한 뒤 거기에 살을 붙여서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는 말이다.

문맥상 여기서 좀 더 중요한 것은 연구된 결과를 이야기하는 ‘과학의 스토리텔링‘이었는데, 저자는 본문에서 소개했던 소금물 이야기(소금물이 결합되고 용해되는 과정을 서술한 것)가 여기에 해당된다(p.290)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략적인 얘기를 하자면 원자로 대변되는 ‘본질‘에서 출발해 다른 각종 물질들이 결합했다가 다시 그 결합이 해체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식의 패턴이다. 독자인 나는 이 사례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과학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추후에 다른 과학 관련 책을 읽을 때도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보면서 읽어보면 과학을 좀 더 심도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배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뒤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문과의 고충을 알고 있다(p.290)는 말로 문과 출신 독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 책의 목차를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의 순서로 배치하게 된 이유에 대해 밝힌다. 저자가 밝힌 이유를 읽다보면 책의 목차가 그냥 아무렇게나 막 나열된 것이 결코 아님을 느끼게 된다. 또한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문과 출신 독자들을 저자 나름대로 배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연이어 저자는 문과 독자들에게 일단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부터 읽을 것(p.291)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에 더해 부끄러움은 잠시지만 행복은 오래간다(p.291)는 말과 함께 바보인줄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자신이 바보였음을 알고 바보를 면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바보를 면하겠다는 결심(p.291)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추가로 저자는 독자들 가운데 혹시라도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과학에 상대적으로 무지한 독자들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향후에 책을 쓸 때 참고해주면 좋겠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저자는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분인데, 후기를 읽다보니 과학에 대해 어릴때부터 공부했다면 자신을 이해하는데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독자인 나 또한 이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고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을 읽어나갈 때 복잡하고 난해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꾸역꾸역 천천히라도 이해하면서 읽고 나니 과학에 무지했던 내 자신에게 살짝 미안한 감정도 생기고, 한편으로는 지금부터라도 과학관련 지식들의 범위를 조금씩이라도 넓혀나간다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인문학의 가치와 한계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인문학의 한계를 넓히려면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를 키우려면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 더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과학과 인문학을 다 공부해야 우리 자신을 더욱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독자인 나도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과학 분야를 조금이나마 친숙한 분야로 바꿔준 저자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책을 계기로 하여 과학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관련 분야의 독서도 병행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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