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숙론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다양한 노하우들이 나왔었는데 오늘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

오늘은 가장 먼저 숙론 진행자의 적절한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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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비단 이 책에 나온 숙론 진행자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인간관계를 할 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p.200)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독자들에게 경청의 자세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진행자의 반응은 거의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한다. 반응이 긍정적 효과를 얻으려면 우선 신뢰가 쌓여야 한다. 참여자가 어떤 발언을 하더라도 핀잔을 주거나 무관심 혹은 언짢은 표정을 짓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긍정적 보상은 즉각적일수록 좋다. - P195

숙론 중에 무얼 잘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때로 다시 한번 얘기할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P195

실제 상황에서는 결과에 대한 긍정 평가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을 긍정적으로 독려하는 일이다. - P196

한두 참여자의 탁월한 발언을 칭송하기보다 대부분이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궁극적으로 집단지성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 P196

숙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면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전환해야 한다. 주제에서 빗나간 발언이나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은 가능한 한 빨리 대응하되, 절대 질책하지 말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 P196

분위기 전환을 위한 몇 가지 대안 주제와 전략을 미리 준비해두는 것은 탁월한 진행중재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 P196

숙론 반응의 기저를 떠받치는 것은 무엇보다 진행중재자의 열정이다. 하품만 전염성이 있는 게 아니다. 열정도 전염된다. 진행자가 하품하면 모둠 전체가 졸음에 빠진다. - P196

탁월한 숙론 진행을 원한다면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훈련해야 한다. 열정도 가장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연기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첫사랑을 대하듯" 숙론 모둠을 대하라고 가르친다. - P197

‘이를 악물고 들어라‘ - P197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한다. 책임을 맡은 지도자로서 설명하고 지시하려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어찌 보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윗사람이 입을 열면 아랫사람들은 곧바로 입을 닫아버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 P197

생활 환경 못지않게 숙론 현장에서도 경청은 더할수 없이 중요하다. 사회자가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는 것처럼 더한 꼴불견은 없다. 사회자가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되도록 간결하게 꼭 해야 할 말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 - P198

‘경청의 1:2:3 법칙‘이라고 알려진 조언은 충분히 곱씹어볼 만하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쳐라." - P198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몽매하게 밀어붙이는 회의가 아니라면 숙론은 완벽하게 계획한 대로 흘러갈 리 만무하다. 진행자가 참여자들의 발언을 얼마나 잘 경청하고 부드럽게 이어주느냐가 숙론의 성공을 좌우한다. - P198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라는 속담이있다. 상대의 발언이 아무리 난해해도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은 일상적 인간관계에도 중요한 기술이지만 숙론을 이끄는 진행중재자가 갖춰야 할 덕목 중 단연 으뜸이다. - P199

대담이나 숙론이나 자신이 말을 잘하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느냐가 중요하다. - P199

"당신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들도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 P200

이청득심以聽得心, 즉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다. - P200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Gordon Allport는 오랫동안 편견의 원인과 예방에 관한 연구 끝에 기적적인 치유법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놀라운 치유법은 다름 아닌 접촉 contact 이었다. 접촉 부족이 편견, 혐오, 차별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 P201

"알면 사랑한다." - P202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는 1945년에 출간한 《영원의 철학 The Perennial Philosophy》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만 사랑할 수 있다"라고 단언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을 완벽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며 사랑을 지식의 한 유형으로 규정했다. - P202

성공학의 대가 카네기Dale Carnegie는 "알면 용서한다" 라고 관찰했다. - P202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 자연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착취하고 파괴한다. - P202

우리 인간은 상대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본성을 타고났다. 사랑하려면 우선 알아야 한다. 올포트가 말하는 접촉이 바로 앎의 시작이다. - P203

접촉으로 촉발된 앎의 과정이 사회적 움직임으로 이어지려면 시민들이 한데 모여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 P203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에서 시민 참여형 정치가 고사 직전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 P203

시민 참여형 정치 형태는 우선 거의 모든 민주국가에 만연한 냉소주의를 해소해준다. - P203

시민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양극화에서 신뢰로, 배제 exclusion가 포함inclusion으로, 안주에서 벗어나 시민권 확립으로, 부패가 투명성으로, 이기심이 연대로, 그리고 불평등이 자존감으로 변해갔다. - P204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일수록 만나서 얘기해야한다. - P204

베네수엘라의 소도시 토레스와 브라질의 대도시 포르투알레그리는 엄청난 규모의 시 예산을 시민 자율에 맡긴다. 토레스는 해마다 연초에 1만 5,000명의 시민이 시내 560곳에서 위원회를 열고 예산 배정에 대해 숙론한다. 1989년 포르투알레그리시는 예산의 4분의 1을 시민 참여 방식으로 집행했다. - P203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와 아널드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의 음악,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의 미술,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의 문학,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의 철학,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Friedrich Hayek와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경제학, 그리고 카를 폰 로키탄스키 Karl von Rokitansky와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의학 - P204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두뇌에서 심장까지의 거리"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앎과 실행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 P206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두뇌와 심장 간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 P207

제대로 된 숙론 문화만 정착되면 우리 사회는 모두가 원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 P207

주어진 숙제는 협치인데 대치로 답을 내고 있다. 이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300명 국회의원 한 분 한 분에게 일일이 사인해서 선물하고 싶다. 부끄럽지만 서로 마주 앉아 얘기하는 법을 제일 먼저 배워야 할 사람들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아니라 이 땅의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 P208

어느덧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당당한 선진국이 되었건만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단 한 분야가 바로 우리 정치다. 그러나 이걸 이대로 그냥 둘 우리 국민이 아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국민은 반드시 정치도 다른 모든 분야처럼 세계가 칭송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말리라 나는 확신한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우리 모두 새로이 습득할 숙론의 힘이 있을 것이다. - P209

조만간 대한민국은 어린이집에서 국회까지 언쟁이나 논쟁을 멈추고 기껏해야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 수준을 넘어 깊이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숙론의 꽃이 만개할 것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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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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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번의 포스팅에서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함께 뇌과학과 생물학에 대한 내용과 관련된 리뷰를 했었다. 오늘은 화학파트에 대한 리뷰를 써본다.

화학관련된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저자는 학창시절에 물질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그닥 없었기에 과학과목(특별히 여기선 화학)에 관심이 안 생겼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운명적 문과‘일 수 밖에 없었음을 고백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자의 이 고백은 비단 저자만의 고백이 아닌 독자인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나도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 시간이 되면 과학에 대한 어떤 학문적인 호기심이 발동하기보다는 이런게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는 회의감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과학 과목에서 호기심이나 흥미를 느끼기보다는 그냥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쪽팔리지 않을 정도의 점수만 맞았으면 좋겠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어리석었던) 생각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과거에 시험본다고 꾸역꾸역 머리에 욱여넣었던 지식들이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과거에 이해없이 단순 암기만 했던 것들이 많았던지라 읽으면서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많아서 제대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저자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이제 겨우겨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정도까지는 된 것 같다. 과학쪽에 무지몽매했다는 표현이 딱 나에게 해당되는 표현이었는데 이제는 이 책을 읽고나서는 조금이나마 기초과학, 교양과학 수준정도로는 올라갈 수 있는 레벨로 접근하기 시작한 듯 하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내용과 그에 관련된 나만의 생각들을 덧붙여보면서 리뷰를 해보겠다.

화학파트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원소는 바로 탄소였다. 본문에는 탄소와 결합하여 생성되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나와있는데 이 부분에서 특별히 독자인 나는 ‘살충제‘ 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이유인즉,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 이 ‘살충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살균제‘ 에 대한 얘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몇 년도인지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다들 기억하실 거다. 내가 읽었던 책이 바로 이 사건에 대해 분석하고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던《가습기 살균제 리포트》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다보면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지 않고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원래 리뷰하고 있던 책인《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로 잠시 돌아와서 본문에 나온 내용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안다. 화학이 ‘돈 되는 과학‘이란 걸. 화학의 이미지가 나빠도 사람들은 ‘화학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p.166)

화학이 이렇듯 돈이 되는 과학이다보니, 소비자들의 안전을 무시한 채 눈앞의 이익만을 좇은 비도덕적인 기업들과 이러한 기업들로부터 연구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대학교수들 및 연구자들이 서로 짜고쳐서 사용자들에게 유해할 수 물질을 마치 별 문제 없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둔갑시키고, 이를 감시감독해야할 관련 분야의 정부부처들은 신종 화학물질에 대한 전문성 부족 밎 규제와 관련된 별도의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기업과 전문가들이 만든 유해성있는 화학제품을 시중에 유통될 수 있도록 허락한 결과물이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가습기 살균제‘ 로 인한 사망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의 주요 피해자들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들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이들 대다수가 가습기의 유해물질을 제거해준다는 생각에 기반하여 우리 아이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선의로 화학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당했다고 한다.

화학제품과 관련된 이러한 끔찍한 사례를 보면서 우리 일상 생활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화학제품들에 들어있는 화학성분들에 대한 지식을 일정수준 이상으로는 갖추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종 화학물질들도 마구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모든 것을 다 알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의 기본적인 화학관련 지식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본다면 이것(기초 화학에 대한 지식)은 자신이 문과이든 이과이든 관계없이 모든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일일이 다 느끼진 못하지만 문과 남자인 저자가 본문에 언급한 화학제품들의 목록들을 보다보면 화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본문에 나온 몇 가지만 나열해보면 립스틱, 주름방지화장품, 자외선 차단제, 미백크림, 살균제, 소독약, 항생제, 일회용기저귀 등을 비롯해 농축산물 생산에 쓰이는 비료, 농약 등 분야를 막론하고 참으로 다양하다. 저자는 이러한 화학의 영향력을 다음의 문장으로 표현한다.

‘현대인의 삶은 화학에서 시작해 화학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167)

이렇듯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바로 화학인데 단지 문과라는 이유로 화학을 등한시 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듯하다.

요즘도 이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줄여서 ‘문송합니다‘ 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근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과학과 관련된 얘기가 나올때 단지 자기가 문과라는 이유로 ‘문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끝나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깊이있는 수준까지야 힘들겠지만 적어도 우리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관련된 과학지식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읽었던《가습기 살균제 리포트》와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연계하여 생각해보면서 과학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과 그 이유를 보다 명확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가장 먼저 화학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화학은 물질의 조성과 구조, 성질, 관계,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p.167)이라고 한다. 앞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화학과 관련된 위험한 일들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적어도 이 정의만 놓고 봤을 때 화학은 우리가 속한 세계에 있는 물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초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더해 독자인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화학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화학은 천연의 반대말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 존재하든 사람이 만들었든, 물질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화학의 연구 대상이다.‘(p.167)

여기서 독자인 나는 앞에 나온 첫 번째 문장이 좀 의외라고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화학이라고 하면 뭔가 혼합되어 있는 물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었는데,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꼭 혼합물이 아니더라도 자연 상태에 있는 순수한 물질자체도 화학의 연구 대상이라는 것을 이번 독서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이어지는 문장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화학은 생명을 해치는 사악한 마법이 아니다. 좋지 않은 물질을 만들어 잘못 사용한 책임은 화학이 아니라 사람한테 있다.‘(p.168)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화학 자체보다는 화학을 오남용한 사람들의 잘못이 화학에 대한 오해를 키워왔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화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저자가 탄소에 대한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전지구적인 기후 위기의 원인이 탄소라고 지적하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을 때 독자인 나는 요즘 전지구적인 기후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탄소 중립을 실천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많이 들은 바가 있는데 도대체 저자께서 왜 저렇게까지 탄소를 감싸시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문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그 많은 탄소는 다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서 온 게 아니다. 원래 지구에 있었다.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탄소가 풀려나 산소, 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위기가 생겼다. 오로지 인간 탓인 건 아니다. 화산 폭발과 자연발화 산불도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p.187)

‘인간이 집을 데우고 자동차를 굴리고 비행기를 띄울 때마다 거기 들어있던 탄소가 풀려났다.
...(중략)... 숲을 훼손해 도시와 경작지를 만든 탓에 나무가 광합성으로 흡수 고정하는 탄소량이 줄었다.(p.188)


위에 나온 문장들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탄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탄소 자체의 잘못보다는 원래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탄소를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해 우리 인간들이 오남용한 결과가 지금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후로 대변되는 기후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탄소에 대한 오해는 마치 살인범이 칼을 비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p.188) 는 비유를 들며 사람들의 탄소에 대한 오해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이는 마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느껴졌다. 탄소사례에 적용해서 위의 문장을 풀어 써보면 ‘탄소 배출로 인해 기후에 악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화합물(이산화탄소, 메탄 등)은 미워하되 탄소 자체는 미워하지 말라‘ 라는 문장 정도로 바꿔 써볼 수 있을 듯하다.


이 탄소 사례와 관련해 추가적으로 사고를 확장시켜 생각해보자면 비단 탄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도 본질과 비본질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본질적인 것보다는 가급적 본질적인 것들에 좀 더 집중해서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섣부른 오해를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의식이 깨어있어야 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뒤이어 읽다가 눈에 띄었던 개념 중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환원還元(reduction)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크고 복잡한 것을 작고 단순한 것으로 쪼개는 것(p.169)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대상을 이런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을 ‘환원주의‘ (p.169)라고 하는데, 여기 나오는 화학 뿐만 아니라 과학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환원주의에 기반하여 연구를 한다고 하니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시 화학 얘기로 돌아와서 저자는 이러한 환원주의에 입각하여 대다수의 독자들이 그래도 비교적 이해하기 용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소금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 대해 여기서 일일이 자세한 얘기를 다 하기는 힘들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이 사례를 통해 원소와 원자, 분자, 전자 등 기초화학에 나오는 개념들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원소들을 원자번호와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한 주기율표를 읽는 방법이라든지 화학에 나오는 각종 결합 방법 등 기초적인 개념들을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과학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나같은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주기율표의 경우 본문의 내용을 통해 각각의 원소, 원자들의 특성이 마치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같은 걸 보면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16가지로 사람의 유형을 분류하는 것과 비슷하게 주기율표에서도 각각의 원소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에 따라 원소가 위치하는 자리가 달라지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과 출신 독자들의 경우 위에서 언급했던 소금물의 결합과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오히려 복잡하다거나 혹은 식은죽 먹기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같이 과학에 상대적으로 무지한 문과 출신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설명이 어둔 밤길의 등불처럼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저자의 이러한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나는 소금물 사례에 나오는 개념과 과정들이 빠르게 이해되기보다는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들을 보면서 도대체 학창시절에 과학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 친구들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또한 기초 개념들에 대한 설명을 이미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몇일이 지난 뒤 다시 이어 읽으려 할 때 개념들이 헷갈리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런 개념들을 헷갈리지 않고 그 과정들을 잘 따라나갔던 친구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나도 저자와 같은 ‘운명적 문과‘ 일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뒤이어 나온 내용 중에서 저자가 탄소의 화학적 성질을 정치학 언어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 예로 탄소는 ‘유능한 중도‘여서 성공했다.(p.188)라는 문장과 함께 탄소의 성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런 식으로 과학을 배우면 문과출신들도 과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복잡한 수식이나 산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의미로 딱 와닿는 게 좋았다. 이런 식의 설명은 아마도 저자가 과거에 정치에 몸담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화학 파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환원주의의 위험 요소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의 핵심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쪼개서 설명하다가 원래의 목적이었던 복잡한 것을 설명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p.199)는 것이었다. 본문에 나왔던 예를 들자면, 우주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단순한 수소의 원자 구조를 파악하는 데, 여기서 단지 수소의 원자 구조만 파악하고 보다 복잡한 우주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설명하지 못할 경우 환원주의에 따른 연구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를 습득하고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를 ‘통섭‘ 이라 지칭한다. 본문에서는 통섭을 ‘환원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지식을 통합하는 것‘(p.201) 이라는 정의와 함께 ‘분석은 과학적 방법으로 하지만 통섭은 언어로 해야 하기에 과학과 인문학이 모두 필요하다‘(p.201) 고 말하는데 독자인 나는 이것을 단순한 지식의 통합을 넘어 해당 분야 사람들끼리 활발한 교류를 하는 것 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또한 이 ‘통섭‘이라는 용어는 개인적으로 예전에 읽었던 최재천 교수의 책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데,《문과 남자의 과학공부》에 나온 환원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해결책으로 ‘통섭‘이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전보다 그 중요성을 한층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화학 파트에 대한 리뷰를 마치고 다음 포스팅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읽어나가기 힘들었던 물리 파트에 대한 리뷰를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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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술과 전략의 차이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었다. 둘의 차이를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전술은 이미 짜여 있는 판에서 움직이는 것을 지칭하는 반면, 전략은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저자는 이 둘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우리나라가 전술국가를 넘어 전략국가로 도약해야 한다(p.137) 고 말하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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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인 ‘숙론‘ 을 잘하기 위한 각종 노하우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조율하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데 유익할만한 내용들이 나온다.

물론 이러한 숙론의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겠지만 저자가 직접 경험했던 것들에 기반하여 서로간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조금이라도 수월할 수 있게 만드는 세부적인 팁들이 독자들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변화를 일으키고 누군가는 변화를 수용한다. - P144

전략국가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고유한 어젠다agenda 인데 우리는 아직 이걸 세우지 못했다. 우리와 이웃하는 일본과 중국은 확고한 어젠다를 갖고 있다. 일본은 아베 총리의 목표인 보통 국가, 즉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회귀하는 어젠다를 받들고 있었고, 중국은 ‘중국 中國夢을 실현하겠다는 어젠다를 세우고 달려가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제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새로운 어젠다를 수립해야 한다 - P144

나는 진화생물학자다. 그래서인지 무슨 일을 하든 전체 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짜고 계획에 따라 빈틈없이 밀고 나가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물론 이루고자 하는 비전과 그에 걸맞은 게임의 룰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은 세우지만 확고한 목표는 설정하지 않는 편이다. - P145

나는 사회란 정해진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 organism라고 생각한다. - P145

상황은 거의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 P145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아야 했다. - P145

모든 문제의 기저에 인구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 P146

몽플뢰르 콘퍼런스는 우리에게 아무리 이질적이고 심지어는 적대적인 상대들이라도 고민과 상상력을 공유하고 동행하면 민주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던져주었다.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하려 서두르거나 동의를 강요하지 않고 자기 입장과 시각을 뛰어넘어 함께 대화하며 공동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중립적인 제3의 조정자 역할이 중요하다. - P158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 P160

코로나19는 기본적으로 바이러스와 인간이 서로 밀고 당기며 벌이는 공진화 coevolution 현상이다. - P164

상대의 발언이 아무리 난해해도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은 일상적 인간관계에도 중요한 기술이지만 숙론을 이끄는 진행중재자가 갖춰야할 덕목 중 단연 으뜸이다. 대담이나 숙론이나 자신이 말을 잘하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느냐가 중요하다. - P170

우리가 숙론을 하는 데는 다양한 목적이 있다. 각각의 내용이 완벽히 나뉘지는 않겠지만 줄잡아 열 가지 목적을 생각할 수 있다. - P173

① 우리 모두에게 공동으로 주어진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 - P173

② 해결책을 찾기 전에 우선 함께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공유하기 위해서 - P173

③ 개인이나 조직 간의 우려와 견해차를 드러내고 함께 인지하기 위해서 - P173

④ 전략적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 - P173

⑤ 조직 간의 협업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 - P173

⑥ 조직 또는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 P173

⑦ 서로 돈독히 협력하기 위해서 - P173

⑧ 정책을 수립하거나 변경하기 위해서 - P173

⑨ 정책이나 법안, 개발 계획 등을 공표하기 전에 주민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 P173

⑩ 함께 협업 공동체를 결성하기 위해서 - P173

"질문에는 순진한 질문, 지루한 질문, 부적절하게 들리는 질문, 지나친 자기비판을 앞세운 질문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란 없다." - P180

"진짜 멍청한 질문은 묻지 않은 질문이다." - P180

"시도하지 않은 골은 100퍼센트 실패한다." - P180

언뜻 이상하게 들리는 아이디어가 결국 정곡을 찌르거나 우연치 않게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숙론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180

숙론의 목표와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표를 만들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숙론 흐름표flow chart는 일렬로 나열된 도표linear chart가 아니라 가지처럼 뻗은 분지형 branching chart 이어야 한다. - P183

숙론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주제의 속성과 참여자들의 성향에 따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 P183

진행의 유연함은 철저한 준비성에서 나온다. - P184

개방성과 포용성을 담보한 민주적 절차를 함께 마련하면 《협력의 역설》에서 카헤인이 경고한 ‘적화 증후군enemyfying syndrome‘에 빠지는 걸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다. - P186

적화 증후군은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행동하는 현상이다. - P186

적화가 심해지면 이렇게 비약한다. "나는 관점이 다른 것이고 당신은 틀렸고 그 사람은 적이다." "똑같이 단호해도 내 경우는 신념이고 당신은 아집에 빠진 것이고 그 사람은 독선적이다." - P186

적화는 요사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정치계와 소셜 미디어에서 두드러진다. 협력의 최대 난제가 바로 적화다. 관점도 다르고 신뢰도 호감도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숙론하려면 우선적으로 적화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명확한 수칙에 합의하고 함께 지켜야 한다. - P187

한때 미국 ABC의 뉴스 프로그램 <나이트라인>을 진행하던 테드 카펄을 보며 나는 탁월한 진행자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 대담이나 숙론의 목표가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누군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느 참여자가 갑작스러운 예상 밖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매끄럽게 잘 빠져나가는지를 찾아내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어떤 질문이 주어져도 짧은 시간 내에 자기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만 잘하는 사람을 가려내려는 것도 물론 아니라는 것을. - P188

대담이나 숙론의 목적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보다 많이 이끌어내 주어진 이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공감대를 넓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 P188

참여자들이 자기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 여유를 마련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카펄은 아무리 그 분야의 전문가라도 그냥 불쑥 들이대지않고 곧 이러이러한 질문을 하겠다고 언질을 준 다음 다른 참여자에게 가벼운 질문을 던지며 잠시라도 시간을 확보해줘 발언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 P188

거듭 강조하건대 숙론의 목적은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 - P189

"조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치사하게" - P189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 리더는 때로 약간의 치사함과 비굴함을 기꺼이 감수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 P189

조직에 유리한 일이라면 리더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는 말이다. - P189

자칫 침체될 조짐이 보이는 숙론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진행자의 악마 연기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두고 흔히 ‘선의의 악마devil‘s advocate‘라고 부른다. - P190

반전 효과는 진행자의 ‘연기력‘에 달려 있다. 너무 정색하고 악마로 돌변하면 발언자를 당황하게 할 수 있고 자칫하면 편파적 진행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진행자 자신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견해도 있다는 식으로 제시하면 거의 어김없이 지극히 형식적이고 방어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발언자의 관점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진지하게 반론을 이어가는 기술은 진행중재자의 연륜과 함께 온다. - P190

숙론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과도 같다. 숙론은 성공의 각본이 아니라 차라리 모험에 가깝다. - P190

매력적인 선의의 악마가 되려면 몇 가지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 있다.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아이디어를 공격하되 사람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의의 악마를 가장하는 목적이 어느 개인의 품성이나 신뢰도에 흠집을 내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인신공격 Ad bominem은절대 금물이다. - P191

생각을 달리하는 여럿의 뜻을 반영하되 개인의 견해를 관철하려는 듯한 의도가 드러나면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 P191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는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탄탄한 논리와 근거에 바탕을 둔 반론이어야 숙론을 북돋울 수 있다. - P191

시작 못지않게 멈출 시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선의로 시작한 반전이 숙론 분위기를 망치는 악마의 사도로 추락하지 않도록 적절한 시점에서 거둬들이는게 현명하다. - P191

숙론이 생각만큼 잘 굴러가지 않으면 무조건 작은 모둠으로 쪼개라 - P194

왠지 모르게 겉도는 숙론 모둠을 너댓 명 단위의 작은 모둠으로 나눠 단 10~30분이라도 따로 모였다가 다시 모이면 거짓말처럼 분위기가 살아난다. 작은 모둠으로 나누면 거의 모든 참여자가 발언 기회를 얻고 일단 한번 얘기해본 주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참여자 수가 늘어나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게 된다. - P194

작은 모둠에서는 대개 전체로 다시 모였을 때 자신들을 대표해 숙론 내용을 발표할 대표보고자 rapporteur를 선임한다. 이런 ‘헤쳐 모여‘ 식 숙론을 해보면 물론 대표보고자가 보고를 하더라도 다른 참여자들도 놀랍도록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한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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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케냐 니에리 레드 마운틴 AA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3월
평점 :
품절


뜨겁게도 마셔보고 얼음을 넣어서 차갑게도 마셔봤는데 개인적으로 겉포장에 나온 자몽, 체리, 초콜릿 향을 느끼기에는 뜨겁게 마시는 게 훨씬 더 좋았습니다. 달달하면서도 산미가 은은하게 느껴져서 입안이 행복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추석 연휴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나눠 마셔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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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에만 유현준 저자의 책을 무려 5권이나 읽었다. 책들간에 서로 겹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오늘 읽는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약간 느낌이 다른 책이다. 알라딘 분류 기준으로 내가 앞서 읽었던 책들이 교양 인문학의 범주에 속해있었다면 오늘 시작하는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한 다른 분들의 리뷰를 잠깐 봤었는데 이 책도 저자가 저자의 다른 책들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공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얘기에 근거해 책의 목차를 살짝 훑어봤는데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공간들도 물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공간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여행을 떠나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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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p.100, 101에 밑줄친 문장에서 저자의 깨달음을 엿볼 수 있었는데, 여기 일일이 적지는 않았지만 본문에 나오는 간단한 일화들을 통해 저자가 쓴 책에 나왔던 생각들이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쓴 글은 결국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쓰고보니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문득 이런 속담도 생각났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즉,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다. 이를 조금 달리 말하면 내가 경험한대로 내 말이나 생각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 가급적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느끼려나보다.


p.109에 밑줄 친 이중 벽에 대한 설명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이 디자인 한 ‘MIT 채플‘이라는 교회의 독특한 벽 구조에 대한 것인데, 이를 통해 소리가 증폭되는 원리에 대해 잠시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 P13

책, 영화, 음악, 미술 등 예술도 한 사람을 이루는 모태가 된다. 이런 모든 경험이 모여 한 명의 사람을 만든다. - P13

시간을 보낸 공간도 그 사람을 만든다. 이 책은 나를 만든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 P13

우리가 소개팅에 나가서 할 말이 없으면 가족과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본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P13

내가 지내온 공간들과 좋아하는 공간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마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P13

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 - P14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된다. - P14

‘아는 만큼 보인다‘ - P14

버려진 장난감은 그대로는 별 가치가 없지만,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장난감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나만의 가치,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첫걸음이었다. - P16

우리의 도시는 부서진 장난감 더미와도 같다. 곳곳에 쓸모없는 공간들, 버려진 공간들, 쓰레기 같은 건축물들뿐이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도시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 P16

공간에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배운다면 이 도시는 새롭게 재창조될 수 있다. 해외로만 여행을 갈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일어나는 여기서도 당신만의 새로운 공간을 ‘발명‘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 P16

이 책을 읽고 여러분만의 공간을 찾고 주변에 나누기를 바란다. 남들이 정한 ‘핫 플레이스‘만 찾아다니는 것은 기성품만을 소비하는 것과 같다. - P17

골목길 계단처럼 별 볼 일 없는 도시의 요소도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바라보면 특별한 공간이 된다. - P25

동화 속에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파랑새 - P28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의 마지막 주택 건축물, 카사 밀라Casa Mila. - P31

나는 여전히 보라색을 좋아한다. - P31

계단참은 계단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평탄한 공간을 말한다. - P55

과거 학교에서처럼 지금도 계단실은 도시 속에서도 숨겨진 공간이다. 계단실은 주로 창문이 없다. 창문이 없는 공간은 비밀스럽다.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실은 때로는 방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계단실은 연인들의 연애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 P58

나는 공간을 감정과 연관시켜 기억한다. 다양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한의원 약초 서랍처럼 여러 개 있다. - P87

디자인을 할 때는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떠한 느낌을 받기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한 후 그 서랍에서 필요한 공간을 찾아 대입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 P87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억들이 나를 먹고살게 한다. - P87

이곳(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의 특징은 인도의 한 자리에서 두 개의 가게를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 P99

이 거리(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를 통해 가게 입구의 수가 걷고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5년에 출간한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쓴 이벤트 밀도 개념은 뉴베리 스트리트 Newbury Street 덕분에 구상하게 된 것이다. - P99

바라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불쾌할 수 있다는 것 - P100

보는 것은 권력 및 인간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 P101

내가 즐겨 가던 가게가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수몰지역 난민이 되는 기분이다. 가게가 사라지면 나의 추억과 그 시절 그 시간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 P101

홍대나 가로수길의 임대료가 비싸서 원주민 가게가 떠나는 것이 안 좋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타벅스나 유니클로 같은 다국적 기업만이 앵커 테넌트 Anchor Tenant가 아니다. 그 지역에 오래된 가게도 앵커테넌트다. 우리의 기억과 함께 묶여있는 장소가 앵커 테넌트다. - P101

요즘은 우리의 기억들이 각종 홈페이지와 연결되어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내 사진을 올리면 그 공간이 나의 추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추억이 연결된 장소가 고향이다. 그런 홈페이지가 내 고향이다. 그래서 싸이월드가 폐쇄되었을 때 우리는 일종의 ‘디지털 난민‘이 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 P102

지금 싸이월드가 다시 회복하려고 하지만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싸이월드로 사람이 돌아오게 하는 것은 마치 안 좋게 헤어진 연인이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 P102

벽을 이렇듯 이중으로 만든 것은 음향적인 이유가 크다. 우선 구불구불한 벽은 음을 난반사하고, 바깥쪽 원형 벽과 안쪽의 물결치는 듯한 벽 사이의 빈 공간이 음향적 공명을 만들어낸다. 물결치는 듯한 벽돌 벽은 벽돌 사이에 공간을 두고 쌓아서 벽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소리가 들어가 빈 공간에서 음이 증폭되어 나온다. 그래서 공간이 좁아도 깊이 있는 음향이 연출된다. 우리가 휴대폰의 작은 스피커를 종이컵에 넣으면 괜찮은 스피커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 P109

공간이 어떠한 시퀀스를 가지고 진입했을 때 최종 공간에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 - P112

버려진 공간은 소중하다. 이 공간들은 모두 여러분이 써주기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버려진 공간이 여러분의 상상력과 만나면 대단한 장소가 된다. - P113

공간은 인간관계를 규정한다. - P114

누군가가 내 방을 통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뭐랄까, 회장 비서실에서 잠을 자는 듯한 느낌이다. 공간은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는 묘한 힘이 있다 - P115

부부가 같은 방을 사용하다가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방의 냄새가 달라진다. 남녀가 다른 체취를 가지는데 두 체취가 섞인 것과 혼자만의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좀 그로테스크하지만 좁은 기숙사 방의 두 남자는 그렇게 각자의 체취로 공간을 함께 채색하는 밀접한 사이인 것이다. - P116

권력자의 공간은 원래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하다. 회장님 방은 비서실을 거쳐서 들어간다. - P116

1994년 스물다섯 살 때 내 별명은 ‘포틴 아워 fourteen hour‘였는데, 이유는 하루에 열네 시간을 스튜디오에 계속 앉아 있어서였다. 사실 거의 종일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들었다. - P119

건축과 학생에게는 기숙사 방보다는 스튜디오 자리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매 학기가 시작되면 스튜디오의 의자와 책상을 꾸미는 데 돈을 아낌없이 썼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 P119

고산병은 산소가 부족해 온몸이 쑤시면서 아픈 증상이 생기는데, - P127

누구나 머릿속에 가장 멋진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그것을 실제로 만났을 때는 그 감동이 더 클 것이다. - P129

엑스터 도서관은 거장 루이스 칸Louis Kahn이 미국의 명문 사립고 필립스 엑스터에 설계한 학생 도서관이다. - P131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이 예상하지 못하고 그냥 일상적인 건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안에 있는 반전의 공간에 감동과 충격이 더 컸다. 인생도 그렇다. - P132

전 세계 곳곳에 여러 가지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티칼은 가장 경사가 급한 피라미드다. 그리고 색상도 가장 어둡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밝은 모래색이고 멕시코의 마야문명 피라미드들은 밝은 회색을 띤다. 그런데 티칼의 피라미드는 거의 검정색에 가까운 느낌이다. 어두운 톤의 색상 때문에 그 어느 건축물보다도 무게감이 느껴지고 급한 경사도 때문에 그 앞에 서면 압도되는 느낌이 있다. - P135

나중에 <아포칼립토Apocalypto, 2006>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건축물(티칼)의 계단으로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목이 굴러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계단을 기어 올라가서 높은 제단 위에 앉아본 느낌은 대단했다.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이 위에 올라선 제사장은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느껴졌다. 수천 수만명의 사람이 쳐다보는 그 정점에 선 느낌이다. 요즘 세상 같으면 수만 명의 시선 집중을 받는 공연장의 가수나 TV 카메라 앞에 섰을때의 느낌과도 같을 것이다. - P135

건축은 일상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나는 건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도시에 가서 한 달 이상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건축을 하나의 체험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36

호텔에 묵으면서 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서는 안 되고, 그 동네 시장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을 때 비로소 현지인의 마음으로 그도시를 느낄 수 있다. - P136

도시의 주요 장소가 걸어서 연결되어야 하며 다양한 크기의 외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한 달동안 로마에 있으면서 배울 수 있었다. - P137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면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P138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는 어디가 좋은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여행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가서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온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어 이스탄불까지 고생해서 갔는데 정말 스펙터클한 지하 저수조인 ‘예레바탄 사라이Basilica Cistern‘를 못보고 오는 것 같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 P138

때로는 예상치 못한 나만의 경험을 얻기 때문에 무계획 여행의 매력을 거부하기 어렵다. 무계획 여행 덕분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로마의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Church of St. Ignatius‘에 있는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의 그림을 본 것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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