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존 기계가 다른 생존 기계의 행동 또는 신경계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때, 그 생존 기계는 그의 상대와 의사소통했다고 할 수 있다. - P145
영향이라는 것은 직접적인 인과적 영향을 말한다. - P145
생존 기계의 수많은 동작은 다른 생존 기계의 행동에 영향을 줌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 유전자의 번영을 증진시킨다. - P145
동물행동학자의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의사소통 신호는 송신자와 수신자 쌍방이 서로 이익을 얻도록 진화한다. - P145
먹어도 독이 없는 많은 곤충은 앞 장에서 말한 나비처럼 다른 맛없는 곤충이나 침을 쏘는 곤충의 모습을 흉내 내 자신의 몸을 지킨다. - P147
아귀는 꿈틀거리는 지렁이와 같은 물체에 접근하는 작은 물고기들의 습성을 이용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아귀는 ‘여기 지렁이가 있다‘라는 거짓말을 하고, 이를 ‘믿는‘ 작은 물고기는 즉시 잡아먹히는 것이다. - P147
어떤 생존 기계는 다른 생존 기계의 성적 욕망을 이용한다. 벌난초는 벌에게 암벌과 꼭 닮은 자기의 꽃과 교미하도록 한다. 벌난초가 벌을 속여서 얻는 것은 수분 (꽃가루받이) 인데, 이는 두 개의 벌난초에게 속은 벌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꽃가루를 옮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 P147
의사소통 시스템이 진화할 때는 누군가 그 시스템을 악용할 위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 P148
유전자들의 이해관계가 개체들마다 달라진다면 언제나 거짓이나 속임수 등 개체들이 의사소통 체계를 이기적으로 이용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같은 종의 개체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자식이 부모를 속이고 남편이 아내를 속이고 형제끼리 거짓말을 하는 것조차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148
동물의 의사소통 신호는 본래 서로의 이익을 증진시키도록 진화되었고 그런 뒤 나쁜 동물들이 이 신호를 악용하게 되었다고 믿는것도 너무나 순진한 믿음이다. 모든 동물의 의사소통에는 처음부터 사기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의 상호 작용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 이해의 충돌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 P149
한 생존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아이 또는 가까운 친척이 아닌 다른 생존 기계는 바위나 냇물이나 한 조각의 먹이 같은 환경의 일부다. 그것은 방해물일 수도 있고 이용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위나 냇물과 다른 점은 반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또한 미래를 책임질 불멸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생존 기계이며, 그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53
자연선택은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를 선호한다. 이것은 같은 종이거나 다른 종이거나 상관없이 다른 생존기계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 P153
여러 종의 생존 기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생존 기계에 영향을 준다. 그들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일 수도 있고, 기생자와 숙주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희소 자원을 놓고 싸우는 경쟁 관계일 수도 있다. 또 벌이 꽃가루 운반자로서 꽃에게 이용당하는 경우와 같이 특수한 방법으로 이용당할 수도 있다. - P154
같은 종의 생존 기계끼리는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자기 종에 속하는 개체군의 반은 잠재적으로 교미 상대이며, 또한 잠재적으로 자기의 자손을 낳고 열심히 길러 줄, 착취 대상인 부모가 될 수 있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같은 종의 구성원이 서로 매우 닮아 있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활 수단으로 유전자를 지키는 기계이므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에 대해서 직접적인 경쟁 상대가 되기 때문이다. - P154
일반적으로 수컷들이 암컷을 놓고 싸우는데, 이것은 한 수컷이 경쟁 상대의 수컷에게 해로운 짓을 함으로써 자신의 유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 P154
앞뒤 재지 않고 싸우는 것에는 이익(이득)과 동시에 대가(손실)가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뿐만이 아니다. - P156
함부로 경쟁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에는 뚜렷한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크고 복잡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는 눈앞의 경쟁자를 없애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 경쟁자의 죽음으로 당사자보다 다른 경쟁자가 이득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156
‘전략‘이라는 것은 미리 프로그램된 행동 방침이다. - P158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즉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는 개체군에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일단 그 전략을 채택하면 다른 대체 전략이 그 전략을 능가할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이것은 미묘하고도 중요한 개념이다. 바꿔 말하면, 어떤 개체에게 가장 좋은 전략은 개체군 대부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 개체를 제외한 나머지 개체들도 각각 자기의 성공을 최대화하려는 개체들이므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일단 그 전략이 진화하면 다른 어떤 전략도 그 전략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없는 그런 전략이다. - P158
나는 지금은 오히려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ESS의 기본 개념을 다음과 같이 더 간략하게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즉 ESS란 자신의 복사본에 대해 잘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성공적인 전략이란 개체군 내에서 그 수가 지배적이 되는 전략이다. 따라서 그 전략은 자신의 복사본과 만나게 될 것이며, 자신의 복사본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상태에 머물 수 없을 것이다. - P522
ESS는 안정한 것이다. 이는 ESS에 참여하는 개체에게 딱히 유리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배신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 P163
의식적으로 예견하는 재능을 가진 인간에서도 장기적 이익을 기반으로 한 협정 또는 공모는 내부로부터의 배신 때문에 늘 붕괴할 위험이 있다. - P164
어떤 다툼에서도 경쟁자는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취할지 추정할 수단이 없으므로 그 결정은 무작위여야 한다 - P165
모델은 이처럼 극히 단순하나 어떤 현상을 이해하거나 어떤 아이디어를 얻는 데 유용할 수 있다. 단순한 모델은 보다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도 있고 점점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잘만 만들면 모델은 복잡해질수록 현실 세계를 보다 잘 묘사할 수 있다. - P165
보복자는 모든 싸움에서 처음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즉 매파처럼 철저하게 심한 공격을 하지 않고 전통적인 위협 행동을 한다. 그러나 상대가 공격해 오면 보복한다. 바꿔 말하면 보복자는 매파에게 공격당했을 때는 매파처럼 행동하고 비둘기파를 만났을 때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또 다른 보복자를 만났을 때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보복자는 조건부 전략자다. 그의 행동은 상대의 행동에 따라 정해진다. - P166
또 하나의 조건부 전략은 불량배다. 불량배는 누군가가 반격해올 때까지는 누구에게나 매파처럼 행동하지만, 반격당하면 즉시 도망친다. - P166
또 다른 조건부 전략은 시험 보복자다. 시험 보복자는 기본적으로는 보복자와 같으나 가끔 시험 삼아 싸움의 강도를 높인다. 상대가 반격하지 않으면 계속 매파처럼 행동하지만, 상대방이 반격하면 다시 비둘기파의 전통적인 위협 행동으로 되돌아간다. 공격을 받은 경우에는 보통의 보복자와 똑같이 보복한다. - P166
보복자와 시험 보복자 사이에서 약간씩 왔다 갔다 하는 혼합 전략이 개체군 내에서 우세할 것이며, 그 변동에 따라 소수인 비둘기파도 수적 변동을 보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경우 개체들이 항상 고정된 전략을 택한다는 다형성을 상정할 필요는 없다. 각 개체는 보복자, 시험 보복자, 비둘기파가 복잡하게 뒤섞인 혼합 전략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 P167
우리는 우리가 임의로 정한 수치에서 단순히 얻어지는 결과를 가지고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결론은 ESS가 진화할 것이라는 것, ESS는 집단 공모에 의해 얻어지는 최적 상태와는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상식은 사실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P168
싸움은 항상 어느 편이든 물러서면 끝난다.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가 등을 돌릴때까지 자기 진지에 버티고 서서 적을 노려보기만 하면 된다. - P168
위협하는데 무한한 시간을 쓸 정도로 여유 있는 동물은 없다.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그가 다투고 있는 자원은 가치있는 것일지 모르지만 무한한 가치가 있을 리는 없다. 그것은 시간가치가 어느 정도 있을 뿐이고, 경매에서 그렇듯 각 개체는 그 자원에 어느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려고 한다. 이 두 입찰자의 경매, 즉 소모전에서는 시간이 통화인 것이다. - P168
제인 브록만Jane Brockmann 박사는 말벌 연구의 제인 구달이라고 불리는 여성이다. - P524
시간은 경제 상품이다. 어떤 부분에 시간을 쓰면 쓸수록 다른 부분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 P524
만약 한 개체군 내에서 이미 만들어진 굴에 들어가는 개체들이 너무 많으면 사용할 수 있는 굴이 적어져 동거의 확률이 증가하므로, 굴을 파는 것이 이득이 된다. 반대로 만약 많은 조롱박벌이 굴을 판다면 이용할 굴이 많기 때문에 굴을 파는 대신 만들어진 굴에 들어가는 것이 더 이득이 된다. - P525
개체군 내에서 굴에 들어가는 것의 임계 빈도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 빈도에서는 굴을 파는 것과 들어가는 것의 이득이 같다. 만약 실제의 빈도가 임계 빈도 이하라면, 이용 가능한 버려진 굴이 많으므로 자연선택은 이러한 굴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만약 실제 빈도가 임계 빈도 이상이라면, 이용 가능한 버려진 굴이 부족하므로 자연선택은 굴을 파는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개체군 내에서 균형이 유지된다. 구체적인 정량적 증거에 따르면 이것은 진정한 혼합 ESS로서, 개개의 조롱박벌이 굴 파기와 굴 들어가기를 일정한 비율로 행하고 있는 것이지, 개체군 전체가 굴 파기 전문가와 굴에 들어가는 전문가로 나뉘는 것은 아니었다. - P525
가령 암컷에 대하여 정확히 어느 정도 시간 가치가 있는가를 미리 계산해 놓았다고 가정하자. 계산한 ‘경매가‘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투자하려고 각오한 돌연변이 개체는 항상 이길 것이다. 따라서 마음먹은 경매가를 유지한다는 전략은 안정한 전략이 아니다. - P169
설령 자원의 가치에 대한 추정이 아주 정확해서 모든 개체가 그 값을 불렀다고 해도 이 전략은 안정한 것이 아니다. 이 가장 오래 버티기 전략에 따라 경매를 하는 두 개체는 똑같은 순간에 포기할 것이며 어느 편도 자원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 경우 개체에게는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권리를 포기하는 편이 상책이다. - P169
소모전과 실제 경매의 커다란 차이는 소모전에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두 경쟁자 모두이지만 이익을 얻는 것은 한 개체라는 점이다. 따라서 가장 오래 버티기 전략을 취하는 개체군 내에서는 처음부터 포기하는 전략이 성공하여 개체군 내에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포기하지 않고 몇 초 기다렸다가 포기하는 개체에게 이익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전략은 현재 개체군 내에서 우세를 점하는 ‘즉시 포기파‘에 대하여 유리할 것이다. 이때 자연선택은 포기 시간을 점점 연장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결국 다투는 자원의 참된 경제적 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최대 버티기 시간에 다시 접근할 것이다. - P169
각 개체가 버티는 시간은 예측 불가능하다. 특정 싸움에서 개체가 버티는 시간은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 평균은 자원의 진가와 같다. 예를 들어 자원이 실제로는 5분의 가치가 있다고 하자. ESS에서 어떤 개체는 5분 이상 버틸지도 모르고, 5분도 버티지 못할지 모르고, 또 꼭 5분간만 버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경우 그가 얼마나 버틸지 상대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P169
소모전에서는 내가 포기하려는 것을 상대가 눈치채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염을 조금 움직이든지 하여 포기하려는 것이 들키면 즉시 불리한 입장에 놓인다. 가령 수염을 움직이는 것이 1분 내에 포기한다는 확실한 징조라면 다음과 같은 지극히 단순한 승리의 전략이 존재할 수 있다. ‘상대의 수염이 움직이면 당신의 처음 계획이 무엇이었든 1분만 더 참아라. 상대의 수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게다가 당신이 포기하려고 했던 시간까지 이제 1분도 안 남았다면, 즉시 포기하고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수염은 결코 움직이지 마라‘ 이런 이유로 자연선택은 수염을 움직이는 행위나 그 밖의 속마음을 표출하는 행위를 즉시 벌할 것이다. 그리하여 무표정한 얼굴, 즉 포커페이스가 진화하는 것이다. - P170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포커페이스가 더 나은 것은 왜일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안정한 전략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70
대부분의 개체들이 정말로 장시간 버틸 작정일 때에만 목덜미 털을 세운다고 해 보자. 상대방의 대응 전략, 즉 상대가 목털을 세우면 즉시 포기하는 전략이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거짓말이 진화하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장시간 버틸 작정이 아닌 개체가 어떤 소모전에서나 목털을 세워 손쉽게 승리의 이익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해서 거짓말쟁이의 유전자가 퍼져 나갈 것이다. 거짓말쟁이가 대세를 차지하면 선택은 이제 그 속임수를 감지하는 개체를 선호할 것이다. 이 때문에 거짓말쟁이는 다시 그 수가 감소할 것이다. - P170
무표정한 얼굴은 진화적으로 안정하다. 결국 항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해야 한다. - P170
‘영역 방어‘란 두 개체와 한 뙈기의 땅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 도착 시간의 차이, 즉 도착 시간의 비대칭성 때문에 생기는 하나의 ESS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P174
스키너 상자라는 것은 동물이 레버를 눌러서 스스로 먹이를 얻는 것을 학습하는 장치로, 레버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먹이가 떨어진다. - P527
순위가 낮은 개체는 순위가 높은 개체에게 항복하는 경향이 있다. 개체끼리 서로를 알아본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벌어지는 것은 이기는데 익숙해진 개체는 계속해서 이기고 지는 데 익숙해진 개체는 정해 놓고 지기만 하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개체들이 완전히 무작위로 이기고 지다가 자연히 개체들 사이에 어떤 순위가 매겨진다. 이것은 부수적으로 집단 내의 심한 다툼을 점차 줄이는 효과가 있다. - P177
순위가 정해져 있어 심한 싸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암탉의 무리가 끊임없이 구성원이 바뀌어 항상 싸움이 일어나는 무리보다 산란율이 훨씬 높다 - P178
생물학자들은 흔히 순위제의 생물학적 이점 또는 ‘기능‘은 집단 내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공격을 줄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옳지 않다. 순위제 그 자체는 집단의 특성이지 개체의 특성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적 의미에서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집단 수준에서 볼 때 순위제의 형태로 나타나는 개체의 행동 패턴에는 기능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기능‘이라는 말 대신에 개체 인식과 기억이라는 두 기작이 존재하는 비대칭적 싸움에서의 ESS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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