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라든가 찡그림이라든가 얼굴 표정을 나타내는 말이 여럿 있지만, 본디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다운 삶을 살면 자신만의 표정이 나타납니다. 기본을 지니고 마음의 안정을 이루고 지혜롭게 살 때 진정한 자기 얼굴, 얼의 꼴을 이룰 수 있습니다. - P46
자기답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생활 규범 없이 무질서하게 살기 때문에 마음은 안정되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니 자기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도 깨우지 못합니다. 그냥 허둥지둥 그렇게 사는 겁니다. - P47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너그러움과 선량함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움이 내면에서 발산되어 밝아질 때 아름다운 얼굴이 됩니다. - P47
자기 얼굴은 자기가 만들어 가야 하고, 동시에 자기 얼굴에 대한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합니다. 아름다운 얼굴이니, 선량한 얼굴이니 하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추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 P47
광대뼈가 튀어나왔다고 해서 허물이 될 것 하나 없습니다. 얼굴에 기미가 끼었다고 해서 흉이 되지도 않습니다. 자기다운 생활에서 자기다운 얼굴을 지닐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것이 좋은 얼굴입니다. - P47
굳은 표정을 한 얼굴은 좋은 얼굴이 아닙니다. 찡그리고 있는 얼굴도 좋은 얼굴이 아닙니다. 항상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 좋은 얼굴입니다. - P47
닫힌 얼굴도 좋은 얼굴이 아닙니다.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얼굴이 좋은 얼굴입니다. 열린 얼굴은 짙은 화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짙은 화장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지 마세요. 탐욕을 버린 얼굴, 너그럽고 덕스러운 얼굴이 되도록 하세요. 그렇게 할 때 진정 아름다운, 그리고 자신만의 얼굴을 가질 수 있습니다. - P48
또 지혜로 빛나는 얼굴이어야 합니다. 지혜는 어려운 일을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지혜는 다른 이들을 평온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 P48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가짐과 행동입니다. 얼굴은 마음의 창窓입니다. 선량함과 너그러움을 지닌 얼굴은 주위 사람들에게 영감과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모두 함께 아름다움을 발산할 수 있도록 합니다. - P48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얼굴, 탐욕을 버린 얼굴, 너그럽고 덕스러운 얼굴, 지혜로 빛나는 얼굴, 이러한 얼굴들이 진정 아름다운 내면입니다. - P48
어떤 사람이든 그 얼굴에는 그의 내면이 반영됩니다. 그래서 얼굴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성품과 내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얼굴은 그 사람의 선량한 마음가짐과 지혜로움 그리고 인내와 이해심을 모두 나타냅니다. - P48
우리는 언제나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외면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수 있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너그러움과 선량함을 지니고 지혜롭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향한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P49
모두가 자기다운 모습을 지니고 자기 인생을 거듭거듭 새롭게 꽃피울 수 있기를 - P49
나는 너로 인해 내가 되고 또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에 있습니다. 만남을 통해 눈이 뜨이고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 P50
불립문자不立文字란,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뜻하는 말입니다. - P52
근본을 알기 위해서는 역시 말씀과 지혜를 담고 있는 경전을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52
진짜 부처라면, 참으로 눈뜬 사람이라면, 진실로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무엇 하나라도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무엇하나라도 버릴 게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진짜 불법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무수한 선의 기록들이 있으니 음미하며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 P52
외국에서는 선종의 스님들도 독경을 일상적인 일과로 삼고 있습니다. 선사들의 어록 읽기 또한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경전에 대한 이해가 넓고 깊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는 독경을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해 왔습니다. 불립문자를 편한 대로 해석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P53
길잡이를 따라 길을 가는 것과 제멋대로 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전을 읽지 않으면 저마다 자기 방식의 불교에 갇히게 됩니다. 바로 알아야 바로 행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신해행증信解行證라고 합니다. 먼저 교리를 믿고 그 뜻을 잘 살핀 뒤 그에 따라 실천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말합니다. - P53
뜻을 잘 살피려면 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불교의 참된 교리를 깨치기 위해서는 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이미 모든 법이 잘 말하여졌고 또한 준비되어 있으니 오직법에만 기대어 자신을 수련하면 충분하다."라고 하셨습니다. - P53
『화엄경』의 한 부분 중에 보현보살의 법문을 살핀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있습니다. 여기에서 행원行願 이란 행동과 소원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를 이룬 것을 말하는데, 행동은 소원에 뿌리를 두고 있고, 소원은 곧 행동으로 드러나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 P53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선재동자라는 젊은 구도자가 등장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 진리를 묻고 배우는 긴 여정을 한 끝에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 진리의 세계에 들어갔습니다. - P53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이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로부터 출발하여 온갖 덕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에 이르러 마치게 되는 것은 불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 실증입니다. 선재동자의 선지식 구도는 존재에 대한 자각을 통해 여러 계층의 이웃을 만나고, 눈뜨고, 거듭 이루어짐으로써 자유와 평화에 도달하는 참된 자아실현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 P54
이름만 붙인다고 하여 보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태어났다고 하여 부처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 행동으로 순간순간 그렇게 살아야 보살이고 부처인 것입니다. - P54
보현보살께서는 "부처님과 같은 공덕을 이루려면 열 가지 크나큰 행과 원을 쌓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 P54
첫째 행원은 예경제불禮敬諸佛입니다.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을 드리는 것입니다. - P54
"온 법계, 허공계, 시방삼세의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 보현의 행과 원의 힘으로 깊은 신심을 내어 청정한 몸과 말과 뜻으로 항상 예배하고 공경한다. 허공계가 다해야 나의 예배와공경도 다하겠지만, 허공계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예배와 공경도 다함이 있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해야 나의 예배와 공경도 다하겠지만, 중생계의 그 업과 번뇌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예배와 공경도 다함이 있을 수 없다." - P55
부처님은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법에게 의지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예禮가 없기 때문입니다. 배拜를 통해 예절을 지키는 것은 일상에 닳은 자신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 P55
단순히 절을 몇 배 채우기 위해 몸을 굽히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직 간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스스로를 예배해야 합니다. - P55
예배는 헌신이자 귀의를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집에서는 가족 간에 예절을 지켜야 하고, 공공장소에서는 모르는 사람간에 서로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예절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절이 그 사람의 품위를 말해 줍니다. 나의 가족을, 나의 이웃을 부처님처럼 대하십시오. 그래야 나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 P55
둘째 행원은 칭찬여래稱讀如來입니다. 곧 부처님의 덕행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 P56
하지만 이웃의 덕행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헐뜯고 흉보기는 쉬워도 칭찬하기는 어려운일입니다. 마음이 열려 있어야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우리 스스로가 그런 경지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P56
불교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일입니다. 자기를 배우는 일은 곧 자기를 비우는 일과 같습니다. 자기를 온전히비울 때 비로소 자기가 됩니다. 이것이 ‘개체인 나‘로부터 ‘전체인 나‘로 깊어지고 승화되는 일입니다. 남의 일이 곧 내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십시오. - P56
셋째 행원은 광수공양廣修供養입니다. 여러 가지를 공양하는 일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행하는 공양, 이웃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 이웃을 거두는 공양, 이웃의 고통을 대신 받는 공양, 착한 일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을 떠나지 않는 공양 등을 말합니다. - P57
여러 공양 중에서 으뜸은 법공양입니다. 법공양은 불경을 남에게 읽어 들려주거나 불경 따위를 보시하는 일을 말합니다. - P57
보현보살께서는 "온갖 물건으로 공양한 공덕일지라도 법공양에 미치지 못한다. 부처님은 법을 존중하기 때문이며, 부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곧 부처님을 이 세상에 출현케하는 일이고, 보살이 법공양을 행하면 곧 부처님께 공양하는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것이 참다운 공양이다."라고 하셨습니다. - P57
법공양의 기본 정신은 인간과 함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P57
마르틴 부버는《나와 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인 나는 ‘나‘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나와 너‘의 나이거나, ‘나와 그것‘의 나이지, 이 밖의 나란 있을 수 없다." - P57
‘나와 너‘는 내가 내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비로소 말할 수 있는데, ‘나와 그것‘은 내 온 존재를 기울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그것‘의 관계는 인간의 객체적인 경험, 즉 지식의 세계이지만, ‘나와 너‘의 관계는 인간의 주체적인 체험, 즉 인격의 세계이고 지혜의 세계이다. - P57
나는 너로 인해 내가 되고 또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에 있습니다. 만남을 통해 눈이 뜨이고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거듭 형성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보다 넓고, 보다 크고, 보다 깊게 가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 P58
자기 하나만을 위해서 산다면,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산다면 그 인생은 너무 보잘것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짐승의 삶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P58
우리는 종교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종교란 끝없는 개선과 개혁을 가르칩니다. 개선과 개혁이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이웃이 기쁘면 나도 기뻐하고, 이웃이 슬프면 나도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게 공동선共同善이고 다른 나로의 변화입니다. - P58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저마다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 일과 남의일이 결코 무연無緣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같은 뿌리에서 자란 나무이고, 그 나무에서 나뉘어 뻗은 가지들입니다. 이웃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일입니다. - P58
넷째 행원은 참회업장懺悔業障으로, 자신이 지은 허물을 참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참회는 자기반성을 통해 흐려진 마음을 맑게 해 빛을 얻는 일입니다. 진리를 실현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정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 P59
나 자신이 빛을 지니고 있어야 이웃을 비출 수 있고, 세상을밝힐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어두우면 아무리 밝은 세상이라도 암흑이나 다름없습니다. - P59
"내가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두고 살아오면서 탐내고 성내고 미워하고 어리석은 탓에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악업이 한량없을 것이다. 만약 그 악업에 어떤 형체가 있다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그것을 다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몸과 말과 뜻의 청정한 업으로 법계에 두루 계시는 부처님과 보살 앞에 지성으로 참회하고,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계율의 모든 공덕에 머물겠다." - P59
참懺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는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즉 참회는 거듭 태어나고 싶은 몸부림입니다. - P59
진정한 참회는 변화하는 삶을 뜻합니다. 참회를 거치지 않은 발원은 메아리가 없는 헛된 소망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회로써 묵은 짐을 버릴 때에야 비로소 발원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P59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 혹은 병을 낫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바라기 위해 기도하고 염불한다면 그것은 진짜 불심이 아닙니다. 이기심이고 공리심입니다. 종교는 달마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본래 무공덕無功德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60
달마는 자신을 내세우거나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비록 선행을 했더라도 참다운 공덕이 아니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아무 공덕도 없는 데에서 비로소 참공덕이 움트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진정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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