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건축이 기후의 영향을 받는 것과 관련된 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벼와 밀을 재배하는데 있어 강수량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후의 차이가 건축 재료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최종 결과물로 나온 건축물의 형태에도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비가 많이 오는 동아시아 지역과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오는 유럽지역 간의 건축양식에도 커다란 차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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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절을 바꿔서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제15장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이라는 제목으로 된 부분이 나온다. 가장 먼저 ‘성 베네딕트 채플‘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글을 읽다보니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봤다. 개인적으로 몇 달 전에 동 저자의《인문 건축 기행》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거기에서 봤던 내용들과 거의 유사한 내용들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일종의 반복학습이 되어 뭔가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인 핵심메시지는 그 책과 이 책이 비슷했으나 세부적인 텍스트는 약간 수정이 된 듯 하다. 어쨌든 예전에 읽었던 책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다. 참고로《인문 건축 기행》의 p.174에 내가 밑줄쳤던 내용이 있으니 그 부분을 참조하면 될 듯 하다. 독자인 내가 봤을때 이 부분의 핵심은 자연환경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보는 것이 가장 성숙한 디자인의 방식(p.347)이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을 통해 저자가 자연과의 조화 혹은 균형을 중시하는 건축가인 것 같다는 내 나름의 근거있는(?) 추론도 해볼 수 있었다.

이어서 미국의 필립 존슨이 설계한 ‘글라스 하우스‘와 일본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스미요시 주택‘이 소개되는데, 전자는 저자의 다른 책에서 한 번 만나봤던 기억이 났는데 후자인 스미요시 주택은 이 책에서 처음 보는듯 했다. 다만 본문을 읽다보니 동 저자의《인문 건축 기행》에 잠깐 소개되었던 안도 다다오의 ‘아즈마 하우스‘ 와 유사한 건축물처럼 느껴졌다.

부가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하자면, 정말 신기하게도 ‘아즈마 하우스‘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스미요시 주택과 같은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미요시 지역에 위치해서 ‘스미요시 주택‘이라고 지칭했는데, 집 주인의 이름이 아즈마Azuma 여서 ‘아즈마 하우스‘ 라고도 부른다는 것이었다. 왠지 책에 나온 그림이 낯설진 않았는데 이름만 생소했던 터라 궁금증이 하나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소개되는 건축물은 일본 삿포로에 위치한 ‘아사히야마‘ 라는 동물원이다. 이 동물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원과는 달리 좁은 공간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직접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동안 손놓고 있었던 일본어 책을 다시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 였으니 뭐 말 다했다.


이어서 한강 다리 중 하나인 잠수교가 소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잠수교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저자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도 직접 방문해서 저자가 책에서 말해줬던 것들을 느껴보면 더욱 좋을 듯 하다.


다음에는 ‘시간의 이름‘ 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오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절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절기라는 것은 원래 농사일을 위한 목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여기서 시간에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또한 시간외에도 장소나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에 까지도 그 사고를 확장하여 이름을 붙이는 것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갈수록 획일화되어가는 시대에 독창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름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우리가 경사진 지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옹벽에 대한 것이다. 옹벽이 발생하게 된 이유와 이것의 건축적인 의미가 단절이라는 것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옹벽이 단순히 건물들간의 물리적인 단절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사람들 간의 심리적인 단절까지도 유발할 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심리적 단절에 덧붙여 저자는 임대주택공급으로 인한 집값하락을 우려하는 임대주택부지 인근의 집주인들에게서 형성되는 보이지 않는 벽까지도 다루고 있다. 물리적인 벽인 옹벽에서 시작하여 사람들간의 관계단절로 인한 심리적인 벽 그리고 자산 수준에 따른 보이지 않는 벽까지 저자는 유무형의 모든 벽을 섭렵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벽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벽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 같다는 게 느껴졌다.

벽에 이어서 울타리에 대한 얘기도 잠깐 등장한다. 저자는 울타리라는 것도 결국 시대가 변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울타리같이 구획하는 것이 사라지고 가급적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실제 영국의 사례도 하나 소개하고 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건축이 어떤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저자는 그 시대와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본문에서 우리나라 한옥이 지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는데, 각각의 과정들을 보면서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비단 건축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해당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BEST가 아닐까 싶다.

유럽 건축은 벽, 동양 건축은 지붕 - P339

우리가 사는 건축의 대부분의 것들은 절반은 자연환경과 기술력, 건축 재료 등에 의해서 결정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고유의 문화적 가치관이 합쳐져서 독특한 건축물을 만든다. - P339

자연 속에서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건강한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생태계가 변화할 때 한가지로 통일된 체제는 변화에 실패했을 경우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P340

인류를 위해서 다양한 삶의 패턴과 모습이 유지되는 것이 좋다. 같은 이유로 건축 역시 지역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P340

건축은 수천 년간 끊임없이 험악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이 두 집(글라스 하우스와 스미요시 주택)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고안된 디자인이다. - P348

일본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제한된 3차원 공간 안에 보행자 동선을 복잡하게 집어넣어서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10평이라는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면 좁아 보인다. 하지만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한눈에 안 들어오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다른 시점에서 체험하고 바라보게 하고 시간을 지연시키면 더 넓게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전통 건축에서부터 시작해 현대에 와서 안도 다다오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 P350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근처에 ‘아사히야마‘라는 시립 동물원이있다. 이 동물원은 커다란 사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희한한 동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300만 명이 넘게 오는 세계적인 동물원이다. 한겨울에도 꾸준하게 사람들이 찾게 만드는 매력은 동물 축사의 건축 디자인에 있다. - P350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건축 공간이 다르다. 동물을 위한 재미난 건축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 동물원 축사에 가면 첫 번째 드는 느낌은 ‘좁은 공간이지만 동물들이 지루하지 않겠구나‘이다. 마치 일본에서 사람을 위한 건축물에서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려고 다채롭게 이리저리 동선을 파서 공간을 만들 듯이 동물들의 동선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 P351

이 모든 공간은 한 곳에서 다 보이지 않는다. 계속 이동하면서 보고 머릿속에서 재구성올 해 봐야 겨우 이해가 가능한 공간이다. - P352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동물이 다니는 공간은 구석구석 높이와 폭이 다르고 동물의 공간과 인간의 공간이 서로 관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공간이 아주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이렇게 동물의 동선과 사람들의 동선이 꽈배기처럼 교합되어 있어서 동물을 위, 아래, 옆에서 다채로운 형태로 관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들 역시 이전에는 체험해 보지 못한 깊이 있는 동물과의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 P352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는 좋은 건축 디자인이 좁은 공간에서 동물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 P352

한강에는 많은 다리가 있지만 하나같이 너무 높고 길어서 도보로 건너기보다는 자동차나 지하철을 이용해서 건너기 마련이다. 교통수단을 통해서 빠르고 높게 강을 건너다보니 강과의 교류를 체험하기가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 - P353

건축물 중에서 인간의 삶을 가장 크게 변형시키는 건축물을 찾는다면 다리일 것이다. 태초에 땅은 하나였다가 비가 내리면서 시내와 강이 생기고 이들은 땅을 둘로 나누었다. 다리는 이렇게 물이나 골짜기로 나누인 두 땅을 다시 연결하여 땅의 관계와 성격을 바꾼다. 비근한 예로 마포대교가 여의도에 놓이고 아무도 가서 살기 싫어하던 여의도는 서울의 맨해튼이 되었다. - P353

잠수교는 전쟁 시에 폭격으로 다리가 끊어져도 손쉽게 공병대가 연결할 수 있도록 짧은 교각을 자주 놓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한강의 어느 다리보다도 수면에 가깝게 붙어 있다. 장마철에는 물에 잠길 때 저항을 줄이기 위해 난간도 만들지 않았다. - P353

잠수교는 추후 유람선을 위해서 아치 구조를 만들어서 가운데를 들어 올렸다. 이 아치는 사람이 다리를 건널 때 물과의 거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게 해 준다. 이러한 경험은 항상 일정 간격을 유지해서 지루하기만 한 다른 다리보다 더 낭만적이다. 잠수교는 진입부에서 강 건너편이 안 보였다가 아치의 꼭대기기에 서면 높은 데서 내려다보게 되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한다. - P354

잠수교는 한강 수위가 올라가면 끊어진다. 거의 모든 건축은 자연을 극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하지만 잠수교는 자연에 져 주기도 한다. 마치 시골에서 물이 불어나면 없어지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 P354

24절기는 농사일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 P355

시간을 사람의 체험과 연결시킨 절기는 숫자 달력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 P355

절기는 시간의 이름이다. - P355

장소에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그 장소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이름이 없다면 인간과 상관없는 ‘곳‘일 뿐이다. 북위 37도 동경 129도하면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같은 곳에 ‘정동진‘이라는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 바뀌게 된다. (중략) 새해의 일출을 보면서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P356

시간이든 장소든 이름을 붙이는 것은 나와의 관계를 맺는 첫 단추이다. - P356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지명들은 대부분 두 글자의 한자로 되어 있다. 사람 이름을 두 개의 한자로 작명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 장소도 인격이라는 선조의 뜻이 있는 듯하다. - P356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비로소 사람에게 의미가 결정되어지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부터 지어 주고, 연애를 시작하면 자신들만의 애칭을 만들어서 붙이는 것이다. - P356

우리는 보통 발전소와 저수지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있어서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로 도시가 형성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불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원과 마실 물이다. - P357

달동네는 사람이 걸어 다니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래서 더욱 사람에게 정감이 가는 공간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 P359

수십 미터의 건물이 평지에 들어갈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경사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커다란 평지의 땅이 필요해졌다. 당연히 토목기사들은 커다란 계단식 택지 개발을 하였다. 건물을 땅에 맞추지 않고 땅을 기존 건물 스타일에 맞추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땅에 어마어마한 콘크리트 옹벽을 보고 살게 된 배경이다. - P359

경사가 급한 땅일수록 그 옹벽의 높이는 더 높아진다. 달동네가 재개발 되어서 들어가는 지역일수록 더욱 심하다. - P360

건축 요소적으로 보았을 때 벽은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간이었다가 벽이 서면 둘로 나누어지게 된다. 옹벽도 벽이기 때문에 지역의 단절을 의미한다. - P360

사람 사이에 벽이 없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커뮤니티 형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동별로 옹벽이 나누어져 있다. 이들은 전체의 커뮤니티라기보다는 동별로 나누어진 사회이다. - P360

경사 대지와 아파트라는 건축 형식으로 야기된 옹벽은 사람들 간의 단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땅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도 바꾸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이다. - P361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차별화시키고 싶어 한다.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존재로 구별되고 싶어한다. - P363

인간은 끊임없이 신분 계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계층이 만들어지면 시스템에 의해서 자신의 권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의상으로, 말투로, 자동차로, 핸드백으로, 학교로, 사는 동네로 구분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본능이 우리의 발전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 P363

한국 사회에서는 현재 지난 수십 년간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서 형성되었던 주택 시장에 새로운 형태의 임대주택을 융화시켜 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자 기존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옹벽보다도 더 심각한 벽이다. 우리나라에 브랜드를 가진 대형 아파트 단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집단 차별화 의식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 P363

계층 간의 이동을 막는 벽이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 문제가 있어도 그것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고 나 자신의 문제라고 귀결되기 때문이다. - P364

모두가 내 탓이라고 하는 사회도 모두가 시스템 탓이라고만 하는 사회도 바람직하지 않다. 둘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건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계층간의 이동을 막는 벽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 간의 신분 계층을 나누려는 보이지 않는 벽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느냐에 우리 사회 미래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64

너무 많은 울타리와 보호난간은 민주화, 산업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 P365

무단 점유로부터의 소유권 보호가 중요해지면서 각자 울타리를 치게 되고 하나의 자연은 인간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졌다. 도로 역시 빨라진 자동차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난간이 설치되었다. - P365

현대 산업화 사회로 더 발전할수록 땅에 선을 긋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 P365

실제로 자연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연을 나누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국경선, 38선, 이스라엘 가자 지구도 그렇다. 건축에서 울타리는 벽이고, 벽은 단절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자연 속에 너무 많은 단절의 벽을 세운 거다. - P365

수백 년 전 영국 귀족들은 자신의 영토의 영역을 나타낼 때에 담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이 키우는 양들이 자신의 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멀리서는 안 보이는 해자 같은 웅덩이를 파서 울타리를 대신했다. 이를 ‘히호‘라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역은 구획하지만 시각적으로 자연 속에 인공의 경계가 안보이게 했다. 히호 덕에 자신의 영토가 무한하게 더 넓게 느껴지기도 하고 동시에 자연의 모습을 보존할 수도 있었다. - P366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에서 나타나는 기법을 지금 현대의 건축과 도시에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현대 도시의 밀도와 전통 건축의 밀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 P366

정자 건축은 전반적으로 도가의 무위자연에 영향을 받아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자세를 견지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필요에 의해서 자연을 정복하자는 서양식 사고방식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런 사회는 "우리는 불도저를 가지고 있으니 땅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사회이고 건축은 그것에 맞추어서 발전해 왔다. 어찌 보면 둘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다. - P371

한국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은 다르다 - P372

과거를 지나치게 폄하해도 안 되지만 미화해서도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은 현재와 미래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과거의 성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 P372

우리가 좋아하는 전통 건축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비결은 그 시대의 수요와 기술에 가장 맞는 건축을 하는 것이다. 한옥을 예로 들어 보자. 한옥이 훌륭한 것은 그 시대의 재료, 기술적 한계에서 만들어 낸 최선의 답이기 때문이다. - P372

부재: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 - P387

공포 :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 P387

대단한 철학적인 사고 없이도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에서 한옥 디자인의 발생을 설명할 수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한계와 적용 가능한 기술을 최대한 적용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전통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P374

어떠한 것이 되든 재료, 기술, 한계를 적절하게 적용한 것이이 시대를 대표하는 전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데는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는 다름 아닌 ‘시간‘이다. - P375

건축가의 재능과 노력 위에 시간과 적절한 경제적 투자가 합쳐진다면 후대에 자랑스럽게 남겨 줄 한국적인 것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한 가지 형태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대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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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건축물은 자연의 겉모습이 아닌 그 본질을 모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p.316에 밑줄 친 내용 중에 새와 새인형과 비행기의 예시를 통해 저자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내용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본다면, 비단 건축물 뿐만이 아니라 여타 다른 분야의 노하우를 모방하는 것도 결국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를 잘 알아채서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에 기반해서 나만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작업이 좀 더 가치있는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독자들 개개인이 속한 영역에 맞게 잘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어서 저자는 영화《그래비티》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중력에 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여기서의 핵심은 건축이 중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작업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 중력이라는 제약을 극복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론 몇 달 전에 읽었던 동 저자의《인문 건축 기행》이라는 책에서 ‘제약은 창조의 어머니‘ 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읽은 부분이 이와 비슷한 의미가 느껴져서 두 책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는 느낌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건축뿐만 아니라 분야를 막론하고 제약이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여 어떤 성과나 결과물을 얻는다면 그것의 기쁨과 감동이라고 하는 것은 제약이 없을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정도로 클 것이라는 생각도 같이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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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각론 형식으로 하여 바둑과 체스, 한자와 알파벳, 개미집과 벌집, 空間과 space, 한식밥상과 코스요리 등을 비교하면서 글이 전개된다. 처음에는 이러한 것들이 건축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다 읽고나서는 이 챕터의 제목인 ‘동과 서 :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build-up)작업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각각의 사례에서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비교하며 동양은 상대적인 것(대상 간의 관계)에 서양은 절대적인 것에 가치를 둔다는 핵심 메시지를 뽑아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건축의 스타일도 동서양에 차이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낸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과 수학적 개념에 기초한 기하학적인 건축을 중시하는 서양의 건축은 그 이면에 있는 생각이나 사상부터 애초에 달랐기 때문에 서로 다른 양식으로 나타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건축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동서양 문화의 전반적인 특징을 살펴보면서 사람들의 성향이나 특징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동양 사람들이 왜 관계를 중시하는지, 서양사람들은 왜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면이 좀 더 높은지 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다 한 차원 높아진 이해를 통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이 형성된 것 같고, 세상을 볼 때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조금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든다.

무언가가 다른 어떤 것을 모방한다면 모방을 하는 자는 이미 오리지널보다 못한 모조품이 된다. 그래서 짝퉁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 P316

만약에 우리가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건축물에 적용한다면 그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새와 새인형과 비행기가 있다고 하자. 하늘을 나는 새와 모양은 다르지만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새인형보다는 더 새와 비슷하고 새로부터 배운 것이 있는 것이다. - P316

어느 문화평론가는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점을 가까운 거리를 갈 때에 뛰면 어린이, 걸으면 어른이라고 말했다. - P317

중력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한 방향으로 흐른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만 흐른다. 인간은 그것을 거꾸로 거스를 수가 없다. - P317

인간이 하는 작업 중에서 중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작업은 아마도 건축일 것이다. 건축에서 중력은 인간이 건축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극복해야 할 힘든 과제이자 적이다. 하지만 영화 「그래비티」에서 중력이 있었기에 주인공이 걸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중력이 있었기에 건축은 여러 가지 감동을 줄 수 있다. 이런 제약은 다른 산업디자인에서는 찾기 힘든 건축 고유의 제약이다. - P318

다이빙 선수가 다이빙 보드에서 떨어지면서 아름다운 포즈를 취하듯, 건축은 중력을 어떻게 아름답게 극복하느냐를 통해서 다른 예술이 주지 못하는 감동을 전달해 준다. - P318

제약은 언제나 더 큰 감동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 P318

바둑은 검정과 흰색의 돌이 서로 먹고 먹히면서 빈 공간인 집을 짓는 게임이다. 이때 흰 돌과 검은 돌 하나하나의 기능은 모두 같다. 대신에 한 팀의 돌이 상대팀의 돌로 둘러싸여지면 안에 있던 돌을 잃게 된다. 바둑 게임의 규칙은 특정 바둑돌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위치에 의해서 돌의 기능이 정해지는 것이다. 반면에 체스는 하나하나가 다른 기능을 가지고 상대방 말들을 죽여서 결국에는 왕을 죽여야 이기는 게임이다. - P321

체스의 원래 이름은 ‘차투랑가(Chaturanga)‘이다. 이 게임은 서기 600년경에 인도에서 만들어졌는데, 625년경에 페르시아로 건너가게 되었고, 이후 700년경에 무어 이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페르시아인에 의해서 서양에 전파되어 지금의 유럽을 대표하는 게임인 체스가 된 것이다. - P322

체스는 본질적으로 유목 민족의 전쟁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체스와 흡사한 게임으로 중국의 장기가 있는데, 장기는 말과 코끼리, 졸병, 대포 등이 나와서 전쟁을 하는 게임이다. 장기나 체스가 유목 사회의 전쟁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라면, 바둑은 농경 사회의 문화에 기반을 둔 게임이다. 바둑은 마치 화전민이 경작지를 넓혀 나가듯이 빈 땅을 넓히는 땅따먹기 게임이다. - P322

두 게임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둑은 상대적이고 체스는 절대적인 게임이다. 바둑은 빈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게임이고, 체스는 상대편을 죽이는 게임이다. 이러한 게임의 특징은 곧 그들의 문화적인 특징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은 건축 공간에도 투영되어 있다. - P322

동양과 서양 두 문화의 특징은 한자와 알파벳을 비교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한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나무 목(木)자와 하나 일(一)자를 가지고 상대적 위치와 길이의 조합에 따라서 근본 본(本), 끝 말(末), 아닐 미(未)라는 글자가 만들어진다. 반면에 알파벳은 26개의 글자가 있고 이들의 순서를 바꾸어서 글자를 만든다. 한자가 사방으로 글자가 확장되는 반면 영어의 새로운 단어는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 가로 축 한 방향으로 글자의 순서만 바꾸어서 만들어진다. - P323

알파벳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이처럼 기본적인 최소 단위를 추구한다. 그리스 시대의 학자들은 물, 불, 흙, 공기가 세상의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라고 믿었다. 그래서 과학도 그리스 시대부터 근대까지 항상 최소 단위인 원자를 찾고, 원자보다 더 작은 양자의 세계까지 쪼개는 식으로 문명이 발달해 왔다. 알파벳 26자는 마치 화학에서의 원소기호처럼 최소한의 단위인 것이다. - P323

DNA는 생명체의 설계도가 A, G, C, T의 네 가지 염기로 만들어진 암호문으로 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마치 26개의 알파벳이 순서 배열로 다른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원리이다. DNA라는 개념이 동양이 아닌 서양 과학자에게서 먼저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 P323

동양에서는 음과 양의 조화로 세상의 구성을 바라본다. 두 상반된 힘의 조화와 균형이 세상을 만든다고 보는 것이다. - P323

건축의 경우 서양은 기하학적인 형태의 공간을 추구했다. 피라미드는 정사각형과 삼각형으로 만들어졌고, 로마의 판테온의 평면과 단면은 모두 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동양에는 기하학적 모양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상대적 관계성을 더 추구했다. 우리의 풍수지리 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생각의 근본은 상대성 속에서 가치를 찾는 이론이다. - P323

흥미롭게도 중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서양의 문화적 기틀을 잡은 사상가들은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B.C. 400년을 전후로 해서 동양은 노자, 공자, 석가모니 같은 인물이 나왔고 서양에는 피타고라스, 플라톤, 유클리드 같은 사상가들이 출현했다. - P324

농경사회라는 것은 한 번 수확을 해서 다음번 파종할 때까지 먹거리 걱정 없이 빈둥거릴 시간이 많다. 그런 노는 시간에 지능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많이 하게 된 것이다. - P324

인류학적으로 1만~4만 5천년 전 시대인 크로마뇽인 시대에 갑작스럽게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농경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한다. 그러한 비슷한 배경이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어서 비슷한 수준으로 동양과 서양이 각자 성숙해졌을 때 이러한 사상가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 P324

동양은 노자를 비롯해서 상대적인 사고에 기반을 가지고 비어 있는 것에 가치를 두고 발전했고, 서양은 절대적이고 수학적인 논리적 기틀 위에 문화를 발전시켰다. - P324

동양은 비움에 긍정적인 가치를 둔다. 노자의 경우에는 그의 유명한 저서 『도덕경』 11장에서 "그릇이 쓰임을 가지는 것은 찰흙이 단단히 굳어 흙의 성질은 없어지고 그릇의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방이 방으로 쓰임이 있는 것은 창과 문이 있기 때문이다. 벽을 쌓고 창호를 뚫었기 때문에 방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물건의 유용한 기능은 비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325

동양에서는 비워진 상태를 부정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100퍼센트의 긍정적인 상태로 바라보고 있다. - P325

서양의 사상가들은 절대 선을 추구한다. 우리가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플라톤은 ‘이데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배웠다. 이데아라는 것은 절대적인 선을 뜻하는 가치로서, 실존하지만 우리는 직접 볼 수 없는 것이다. - P327

샹그릴라[중국 윈난성 디칭장족 자치주에 있는 현(縣)이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에서 지상에 있는 ‘이상향‘으로 등장한다] - P327

무릉도원은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어서 어느곳에 갔더니 신선들이 죽지 않고 오래 살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는 마을이다. - P327

샹그릴라나 무릉도원은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과 동일한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으로 보지는 않는다. - P328

서양은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세상이 있고, 그 신적인 선(善)을 수학적인 방식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 P328

수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한다 - P328

이래저래 수학은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기하학의 기본이 유클리드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선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수학적인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서양의 많은 종교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기하학적인 공간의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것이 로마의 판테온이다. 이 건물은 평면과 단면에서 모두 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 P328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건물은 좀 더 복잡한 형태로 세 개의 원형 돔이 한 개의 큰 돔을 받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설과 같이 3이라는 성스러운 숫자가 건축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 P328

이같이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건축물에도 반영되었다가 이슬람의 영향으로 더욱 더 증폭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던가. 아마도 이슬람은 예로부터 오랜 유목 생활로 소나 양의 숫자를 세면서 숫자에 대한 개념이 발달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동양과 서양사이의 지리적인 위치에서 중계무역이 발달했을 것이고 당연히 수에 대한 개념이 다른 민족보다 앞섰을 것이다. - P330

어느 개미집이나 그 외부 형태는 중요하지 않고 내부에 네트워크로 구성된 연결망이 중요하다. 방끼리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인 것이다. - P331

벌의 경우에는 벌집 모양이라고 불리는 육각형의 모듈러 구조를 띠고 있다. 육각형 모양의 방이 반복되면서 전체 벌집이 만들어진다. 반복되었을 때 구조적으로도 가장 안정적이면서 벌이 들어가서 살기에 공간의 손실이 적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 P331

개미는 동양처럼 관계 중심의 건축, 벌은 서양처럼 기하학 중심의 건축이다. - P331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교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충(忠)이나 효(孝) 같은 관계를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극동아시아 건축은 땅과 연결된 개미처럼 관계성이 중요시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 P332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사후 세계를 중시했고, 이데아의 세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원칙을 중요시 하였다. 땅에 기초를 두지 않는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 때문에 공중에 집을 짓는 벌처럼 기하학적인 건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서양에서 피라미드, 황금비율, 판테온 같은 건축 문화가 나오게 된 문화적 배경일 것이다. - P332

공자, 노자, 석가모니의 영향으로 동양 문화의 가치 체계는 ‘관계‘와 ‘비움‘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특징지을 수 있다. - P333

동서양의 다른 가치 체계는 공간을 뜻하는 두 개의 단어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서양에서의 공간을 뜻하는 단어는 ‘space‘로, 이 단어는 동시에 우주를 뜻하기도 한다. 우주라는 영어 단어는 universe, cosmos, space 이 세 단어가 혼용되어서 쓰인다. 따라서 ‘space = cosmos‘라는 결론이 나온다. - P333

cosmos라는 단어의 의미는 혼돈이라는 뜻의 chaos의 반대어로 수학적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space = 수학적 규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 P333

단어를 통해서 살펴보면 서양인의 의식 속에는 비어 있는 우주, 공간, 수학적인 규칙을 내재하고 있는 cosmos 등의 의미가 상호 연결되어져 있으며, 공간을 ‘수학적 규칙을 가진 비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 P333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공(空)‘과 사이라는 뜻의 ‘간(間)‘이 합성된 단어이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져 있다. 이렇듯 단어만 살펴보더라도 동양에서는 단순히 비어 있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보는 ‘비움‘과 상대적 가치인 ‘관계‘로서 공간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333

문화의 차이는 게임, 문자, 건축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기본 요소인 먹는 것에서도 차이점이 보인다. - P334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오는 식, 즉 한 번에 모든 음식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쫙 깔려서 차려진다. 반면에 서양 음식은 전식부터 후식까지 순서대로 음식이 나온다. 마치 알파벳으로 단어를 만들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서대로 쓰인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것은 문화적인 차이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음식 문화의 형식일 것이다. - P334

문화라는 것은 그 나라 고유의 민족적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러한 패러다임은 경제적인 활동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P334

구글은 흰색 페이지에 검색어만 찾을 수 있게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네이버는 첫 페이지에 현재 나오는 주요 뉴스가 한 페이지 가득 펼쳐져 있다. 구글이 한 번에 하나씩 나오는 서양 코스 요리 같다면 네이버는 한상 가득 차려 나오는 밥상 같은 구성이다. 한국인들이 네이버를 더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 P334

건축 디자인 역시 그 나라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 P334

서양은 논리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사고방식이 선형적이다. 하나 다음에 둘 그 다음에 세 번째 것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수학의 발달과 기하학적 건축 공간으로 나타난다. - P335

반면에 동양은 상호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대적인 가치 체계를 가진다. 따라서 음식 하나하나의 맛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들과 다른 음식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죽하면 ‘음식의 궁합‘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이렇듯 먹는 사람의 입맛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차려진 음식의 순서가 어찌 보면 뒤죽박죽 섞이게 되어 있다. - P335

한국적이라는 것은 이런 우리의 일상적인 밥상 같은 것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 단순히 처마 곡선의 모양 같은 겉모습을 모방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할 것이다. - P335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승강기의 발명으로 초고밀도의 도시에 살고, 휴대 전화와 인터넷으로 우리의 삶은 실타래보다도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복잡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코스 요리를 먹는 사람보다는 밥상을 먹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보다는 미래가 밝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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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과학(여기선 사회생물학)이 인문학과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저자는 과학이 주는 이러한 점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듯 하다. 독자인 나 또한 이 책을 쭉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이 주는 매력에 조금씩 젖어드는 느낌이다. 처음 밑줄 친 문장에 이러한 것들이 응축된듯 하다.

두번째 밑줄 친 문장에는 사회생물학자인 윌슨이 했던 얘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얼마전에 읽었던 최재천 교수의 책에서 한 번 봤었던 분이라 조금은 생소함이 덜했던 것 같다. 이 글의 소제목이 ‘생물학 패권주의‘ 였는데 인문학 위에 생물학이 있다는 윌슨의 주장을 잘 나타낸 말처럼 느껴졌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가 등장한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능을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으로 가정했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이기적인 본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로 인해 사회주의가 무너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과학적인 사실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역행하여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잠깐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인간 본능에 따라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실패 사례로 명백히 보여준다.

다음에 나오는 핵심 키워드로 ‘ESS모델‘ 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의 줄임말로 한국말로 풀어쓰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델에 기반하여 다양한 사회현상들을 설명한다. 난 개인적으로 어떤 한 가지 모델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모델이 굉장히 파워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오늘 읽은 부분에서 저자가 소개한 이 ‘ESS모델‘이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아마 저자도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 모델 하나로 수많은 사회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책에서 이렇게 자신있게 소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과거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 때의 경험을 토대로 의료서비스와 관련하여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인 환자와 의료서비스의 공급자인 의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자세하고 알기 쉽게 풀어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살펴볼 수 있었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이러한 발상가능한 문제점들을 제어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들(심사평가원 조직을 통한 과잉진료와 부당청구 방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기는 하나 오늘 읽은 부분 중에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생존 기계로 지칭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에 따른 행동의 선택이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저자가 정말 잘 풀어서 설명해준 덕분이다. 저자께 감사드리는 바이다.

아무튼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이 지극히 생존본능에 입각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사회생물학의 질문은 내용과 형식 모두 인문학과 다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문학과 다른 관점으로 다른 각도에서 인간과 사회를 살핀다는 것이 매력이다. - P132

인류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면 우리 종은 신이 아니라 유전적 우연과 환경적 필연의 산물이다. 지난 세기 과학 탐구의 철학적 유산인 이 명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물리학 없는 천문학이나 화학 없는 생물학이 될 것이다. - P133

인간은 분명 유전적 우연과 환경적 필연이 작용한 자연선택의 산물이고, 문명은 우리 종이 진화를 통해 획득한 본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P133

문명의 힘으로 본능을 어느 정도는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지만 본성 그 자체를 역사의 시간에 바꾸지는 못한다. 한종의 본성이 달라지는 데는 역사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긴 진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 P133

(윤리학자 싱어Peter Singer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경향성에 근거를 둔 개혁 정책을 추진하라고 충고했다. 인간 본성과 마찰을 덜 일으키는 과제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 P134

사실은 도덕이 아니다. 자연에 존재한다고 해서 다 아름답고 좋은 건 아니다. 생물은 어디서나 생존경쟁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생존경쟁이 아름답거나 고귀하다고 하는 건 어리석다. - P134

자연선택과 진화는 특정한 방향이 없다. 인간도 생존과 번식을 위해 경쟁하며 인간에게도 보편적인 생물학적 본성이 있다. - P134

마르크스는 이기심 • 소유욕 • 지배욕을 포함해 계급 착취와 대립을 일으키는 모든 종류의 의식을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토대의 산물로 규정했다. 인간을 그렇게 이해하면 폭력혁명과 계급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 P134

마르크스는 인간 본성을 호모 사피엔스의 보편적 생물학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보았다. 사회적 관계를 바꾸면 본성도 달라진다고 믿었다. 공산주의자는 ‘올바른 사상‘을 지녔기 때문에 권력을 잡아도 오직 인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꿈에 홀려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 P135

마르크스 추종자들은 어느 시대 어느 권력자보다 무자비하고 집요하게 권력을 탐했다.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으면서 권력을 독점했다. 고대 황제보다 더 무분별하고 잔인하게 권력을 휘둘렀다. 그것이 변하기 어려운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마르크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반박할 여지가 없게 증명했다. 인류 역사에 이토록 비극적인 역설은 없다. - P136

논리만 보면 윌슨이 옳다. 그러나 옳다고 해서 뭐든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P136

학문은 권력이 아니다. 권력을 쥔 사람이 학문을 탄압할 수는 있지만 어떤 학자의 주장이 다른 학문을 억누르지는 못한다. - P136

사회제도는 변하기 어려운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충돌하면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 P136

‘ESS 모델‘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ESS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을 줄인 말이다. - P137

ESS는 어떤 군집의 대다수 개체가 일단 선택하면 다른 모든 전략을 능가하는 전략이다. 자연선택은 ESS를 벗어나는 전략을 징벌한다. 때로는 둘 이상의 전략이 ‘집단적으로 안정한 전략‘CSS(collectively stable strategy)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항상 배신‘이라는 안정점과 ‘TFT‘ 라는 안정점이 공존하는 쌍안정 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 우연히 먼저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이 일단은 우위를 유지하지만 또 다른 우연으로 우위가 바뀔 수도 있다. - P137

TFT(Tit For Tat)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또는 상대방을 믿고 협력하지만 배신행위는 응징하는 전략이다. - P137

‘전략‘은 인문학의 언어다. 사람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쉬리나 박쥐는 전략을 구사하는 지적 생명체가 아니다. 유전자의 명령 또는 본능에 따라 생존하고 번식할 뿐이다. - P140

ESS 모델에서 개체는 전략을 구상하지 않으며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 P140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개체군 안에서 안정적으로 우세한 지위를 차지한 행동양식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다. ‘자연선택이 ESS에서 벗어난 전략을 징벌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ESS가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는 개체가 생존과 번식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 P140

생물학자들은 주저하는 경향이 있지만 ESS 모델은 인간 군집에도 적용할 수 있는 형태의 게임이론이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데 쓸 수 있다. - P140

소련 정부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범이라고 추켜세웠던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성실‘ 전략을 택한 청년 공산주의자의 운명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열혈 공산주의자들은 과로사하거나 반혁명분자로 몰려 처형당했다. - P142

소련의 권력자들은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다. 인간 심리와 행동의 밑바닥에 생물학적 제약조건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기심과 가족에 대한 집착 같은 성향은 사적 소유를 토대로 한 계급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회구조를 바꾸고 교육을 실시하면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알렉세이 스타하노프라는 광부를 노동영웅으로 내세워 노동자의 사명감을 고취하고 기술혁신을 북돋우려 했다. - P142

국민 대다수가 ‘태만‘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 - P143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다. 그런 행위가 옳은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뇌는 대체로 본업을 앞세운다. 욕망이 이성보다, 이익이 도덕보다 힘이 세다. - P144

전교 1등 출신들이 의과대학에 가서 의사가 되고 병원을 운영하지만 그들의 뇌도 생존이라는 본업에 충실하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심사평가원이라는 전문가 조직을 만들었다. 심사평가원은 진료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과잉‘ 진료와 ‘과잉‘ 청구를 한 징후가 보이는 의료기관을 조사해 부정하게 청구한 보험급여 지급금을 회수하고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린다. 그러나 ‘적정‘ 전략이 공급자 집단의 ESS가 되는 이상적 상태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적정‘이 우세한 가운데 일부 ‘과잉‘이 공존하는 ‘쌍안정 시스템‘을 이루는 것을 현실적인 목표로 삼는다. - P144

경제학은 이 문제를 ‘주인-대리인 principal-agent 모델‘로 설명한다. 정보 비대칭 현상 때문에 소비자 주권이 성립하기 어려운 시장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다. - P145

의료서비스 시장이 대표적이다. 소비자인 환자는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어떤치료가 필요한지, 병원과 의사가 적절한 진료와 치료를 제공했는지, 진료비를 적정하게 청구했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질병과 의학적 치료에 대한 정보는 공급자만 가지고 있다. 이런 시장을 방치하면 필연적으로 공급자가 소비자를 착취한다. 그래서 대리인이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 가입자인 국민의 대리인이 되어 의료서비스 가격을 책정하고 심사평가원은 공급자와 동등한 수준의 의학 정보를 가지고 과잉 진료와 부당 청구를 막는다. - P145

ESS 모델과 ‘주인-대리인 모델‘은 상충하지 않지만 같지도 않다. 같은 대상을 다른 관점에서 다른 개념으로 설명한다. 둘 모두를 알면 하나만 아는 경우보다 인간과 제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P145

수학 · 게임이론 · 동물행동학 · 유전학 등 여러 학문의 도구와 문제의식을 결합한 ESS 모델은 사회제도의 구조와 결함을 진단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을 사회생물학의 하위 분야로 편입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자연선택이 만든 생물학적 기초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간과 사회를 다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147

나는 윌슨의 견해를 온건한 형태로 받아들인다. ‘인문학과 생물학 사이에 차원을 나누는 경계는 없다. 인문학은 인간 의식과 행동에 대한 생물학의 연구 결과를 적극 받아들여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정도만 해도 윌슨 선생은 만족할 것이다. - P147

이기적이라고 유전자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유전자는 ‘몸만들기 매뉴얼‘을 지닌 물질일 뿐이다. 물질은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 P148

분명히 해두자. 유전자는 적어도 100만 년 단위로 나이를 헤아려야 할 정도로 오래 생존하는, 끝없이 자기를 복제하면서 여러 생존기계의 몸을 옮겨 다니는, 네 가지 염기가 특수한 순서로 이어진, 충분히 작아서 잘 흩어지지 않는 염색체 조각이다. 목적의식이나 지향같은 건 없다. 끝없이 자기를 복제하면서 온갖 생존기계를 만들 따름이다. - P148

유전자의 생존기계는 성장해서 짝을 찾아 자손을 낳고 죽으라는 명령을 수행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생존기계는 이기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종의 다른 개체나 다른 종의 개체와 협력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 P148

자연은 오로지 남을 죽여야만 생존하는 검투장이 아니라 공감 · 협력 · 거래 · 공존의 무대이기도 하다. 협력 전략으로 생존하는 데 성공한 사례도 많다. - P148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 말고는 어떤 종 어떤 개체도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특정한 행동방식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협력이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서는 자연선택에 따라 결과적으로 협력 행동을 부추기는 유전자가 퍼졌고, 대결이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서는 결과적으로 대결 행동을 부추기는 유전자가 살아남은 것이다. - P149

인간을 포함해 진화가 빚어낸 모든 종은 의도적 설계가 아니라 자연선택이라는 필연과 유전적 우연의 산물이다. - P149

자연은 경쟁과 협력을 차별하지 않는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이기적 목적을 실현하는 전략이라는 면에서 둘을 평등하게 대한다. - P150

어떤 생존기계는 단순히 협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타 행동을 한다. 생물학 언어로는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고 다른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 인문학 언어로는 ‘자신이 가진 희소한 자원을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행위‘를 한다. - P150

개체의 이타 행동은 자연선택 이론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타 행동을 유발하는 형질을 가진 개체는 자손을 남길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자연선택은 그런 형질을 제거한다. 그런데도 동물의 이타 행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등동물일수록 더 다양한 이타 행동을 한다. 『종의 기원』 출간 이후 100여 년이 지나서야 그럴듯한 이론이 나왔다. 영국 생물학자 해밀턴 Wiliam Hamilton(1936~2000)의 ‘포괄적응도‘包括適應度(inclusive fitness)이론이다. - P150

개미는 암수 결정 방식이 특이하다. 생물은 보통 염색체수가 2개인 ‘두배수체‘ diploid다. 그런데 개미 수컷은 수정되지 않은 난자에서 나오기 때문에 염색체수가 개인 ‘홑배수체‘ haploid다. 어미 염색체 2n개의 절반만 가지고 있다. 반면 수정란에서 태어나는 암컷은 어미와 아비한테서 받은 유전자를 다 지니고 있다. - P151

일꾼 개미가 자신의 번식을 포기하고 여왕개미의 출산과 양육을 돕는 ‘친족이타주의‘ 행동을 함으로써 직접 짝을 찾고 자식을 낳는 경우보다 가족의 고유한 유전자 세트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미가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다. 유전적 우연으로 생긴 본능 행동이 가족의 고유한 유전자 세트의 생존 확률을 높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친족이타주의‘ 행동을 하는 개미 집단이 번성했다는 이야기다. 생물학자는 이것을 ‘개미 집단에서 친족이타주의 행동이 진화했다‘고 표현한다. - P152

해밀턴의 접근법은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의 이타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 이론이다. - P152

호모 사피엔스의 친족이타주의는 개미 못지않게 강력하다. 인간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동물이 자식을 낳는다. 자식을 먹이려 고된 노동을 하고 자식을 보호하려고 죽을 위험도 감수한다. 도대체 왜? 본능이라는 대답은 충분하지 않다. 왜 그런 본능을 가지게 되었는지 해명해야 한다. 열쇠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가 쥐고 있다. - P153

해밀턴 모델은 이타 행동이 가족과 친족 안에서 먼저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를 절반씩 지니고 있다. 자신의 유전자를 자식만큼 많이 가진 개체는세상에 없다. 부모한테는 자식이 자신만큼 소중하다. - P153

형제자매의 유전 연관도는 50퍼센트고 사촌끼리는 12.5퍼센트다. 인간의 이타 행동은 유전 연관도가 높은 부모자식과 형제자매에서 시작해 가까운 친족과 먼 친척으로 퍼져 나간다. 이것이 가족주의 또는 혈연의식이라고 하는 의식과 감정의 생물학적·유전학적 기초다. - P153

친족이타주의가 오로지 유전자 때문에 생긴다는 건 아니다. 생존을 위한 상호 의존, 접촉의 밀도와 빈도, 공동의 경험, 공유하는 기억 등 인문학 이론으로도 친족이타주의가 생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둘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 P153

생물학과 인문학의 이론을 결합하면 친족이타주의가 생긴 이유를 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다. 혈연에 근거를 둔 비합리적 연고주의와 부정부패를 없애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지도 알 수 있다. - P153

해밀턴의 이론은 맹자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보편적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는 이타 행동의 범위는, 가족에서 시작해 이웃으로 넓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이 인정하는 사실일 뿐이다. 사실이라고 해서 훌륭한 건 아니다. - P153

우리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름답다. 우리 삶에는 도덕과 미학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 그대로 알면서 선과 미를 추구하자. 사실을 도덕으로 착각하지도 말고 도덕으로 사실을 덮지도 말자.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맹자는 과학적으로 옳은 견해를 폈지만 묵가와 양주학파를 부적절하고 과도하게 비판했다고 할 수 있다. - P154

오해할까 봐 다시 강조한다. 유전자는 친족이타주의를 설계하지 않았다. 유전자는 그 무엇도 설계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를 복제할 뿐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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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사동 가로수길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저자에 말에 따르면 과거에는 이 거리가 지금처럼 유명하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강 고수부지로 들어가는 토끼굴의 위치가 가로수길과 연결되면서 3호선 신사역과 한강 공원을 이어주게 되었고 이러한 것들이 결국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거리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사례를 통해 소위 ‘뜨는‘ 거리의 법칙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핵심은 자연과 대중교통이라는 두 요소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보스턴의 뉴베리 거리라는 곳의 사례도 책에 소개되는데, 그곳도 가로수길과 비슷하게 전철역과 공원이 멀지 않은 곳에서 접근 가능하도록 이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즐기는 거리가 되었다는 얘기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좋은 것이 있다면 잘 벤치마킹해서 자신이 속한 사회나 조직에 맞게 잘 적용하는 것이 참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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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에서는 종로에 위치한 세운상가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세운상가의 위치가 어떤 중요한 축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뭔가 좋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면 뭔가의 흐름을 막고 있는 건물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저자는 세운상가 맞은 편에 있는 종묘와 세운상가 뒤쪽에 위치한 남산을 하나로 이어주는 길이 있었다면 좀 더 좋았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듣고보니 꽤나 일리가 있는 얘기처럼 들렸다. 이 내용이 나온 챕터의 제목이 ‘뜨는 거리의 법칙‘ 이라는 것인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과 대중교통을 연결하는 측면에서 생각해 봤을 때, 남산과 종묘 그리고 그 중간에 종로4가 혹은 을지로3가 역을 관통하는 지하철까지 하나의 축으로 이어진다면 서울에 뜨는 거리 하나가 새롭게 생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얘기에 독자인 나의 생각을 한 스푼 보태서 상상만 해보았는데도 기대감이 샘솟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에 나오는 글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에 이미지가 하나 나오는데 일본에 있는 전통 찻집인 ‘다도의 집‘ 이라는 곳의 구조였다. 흐름도를 보면 이리저리 꼬불꼬불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같은 평수의 공간이라도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곳에 방문한 사람이 체감하는 공간의 크기는 굉장히 달라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을 지연시키면서 이벤트들을 많이 발생시킬 수록 동일한 공간을 보다 크게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얘기가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이 책의 앞부분에 나왔던 이벤트 밀도와도 연계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 밀도가 높을수록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어 더 걷고싶은 거리가 된다는 것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었다.

뒤이어 덕수궁 돌담길에 대한 얘기가 간단히 나온다. 여기서 저자는 뜨는 거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또다른 요소 중 하나로 ‘안전‘이라는 키위드를 제시하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은 밑줄 친 부분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건축물에 대한 관점을 생각해보게 하는 글들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을 볼 때 밖에서 외부에 드러난 건축물의 표면을 보고 멋있다, 괜찮다 이런 반응들을 보이는 경우들이 많은데, 저자는 이와는 반대로 건물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었다. 이것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동선이 결국 건물 내부에 있다는 생각에서 기반한다. 이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독자인 나만의 문장으로 풀어보자면 ‘건물의 껍데기보다 알맹이에 좀 더 집중해보자‘는 생각처럼 느껴졌다.

물론 외관이 중요한 영역도 분명히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건축물과 자동차의 성질을 비교하며 각자 필요한 요소들이 다르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해준다. 자세한 내용은 p.302부터 밑줄친 부분에 3가지 정도로 살펴볼 수 있으니 참조해보면 좋을 듯 하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나오는데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 가장 중요한 속성은 이동성의 유무였다. 건축물은 이동할 수 없지만 자동차는 이동할 수 있다는 속성에서 파생되는 것들이 외관이 중요한지 아니면 내실이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건축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기서 저자는 건축물도 결국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강력히 피력한다. 이에 부합하는 여러가지 사례들도 함께 살펴 볼 수 있어서 저자의 신념에 힘을 실어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가로수길이 지금의 보행자들이 찾는 거리가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지하철 3호선 신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한강 고수부지 공원이다. 대중교통 정류장과 자연 요소, 이 두 요소를 연결하는 거리는 사람들이 걷기 좋아하는 거리가 된다. - P284

사람들은 지하철을 이용해서 한쪽에서 쏟아져 나오고 그 사람들은 공원을 향해서 걸어가면서 거리를 즐긴다. 일반적으로 가고 싶은 목적지 없이 걷는 사람들은 피곤하다. 하지만 쉴 수 있는 공원을 향해서 걷는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 P285

신사동 가로수길이 변화하게 된 데는 한강 고수부지로 들어가는 토끼굴의 위치가 가로수길과 같은 축선상으로 옮겨 가게 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존의 토끼굴은 미성아파트 뒤편에 있어서 동네 아파트 주민들만 아는 굴이었다. 그런 토끼굴이 가로수길에서 연결된 축선상의 도로로 확장 이동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로수길을 걷던 사람들은 차도 옆으로 난 인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고수부지로 오갈 수 있게 되었다. - P285

신사동 가로수길의 경우처럼 자연과 대중교통, 이 두 가지 요소를 연결하는 거리는 사람들이 찾는 좋은 거리가 된다. 토끼굴의 위치를 몇 십 미터 옮기는 계획은 아주 작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정확한 혈맥에 침을 놓으면 숨넘어가는 환자도 살리는 명의의 침처럼 가로수길의 기의 순환을 살리는 신의 한수였다. - P285

공중 보도가 활성화되면 지상의 도로가 죽게 되고, 지상의 도로가 활성화되면 공중 보도가 죽게 된다. 두 개의 도로를 경쟁하게 만드는 거리의 디자인은 둘 중 하나가 죽은 거리가 되는 문제가 있다. - P286

흔히들 건축가들이 실수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중요한 축을 발견하면 그 축 위를 따라서 선을 긋고, 그 선을 벽으로 만들어서 건물을 짓는 것이다. 세운상가가 그했다. 사실 중요한 축이 있다면 그 축을 따라서 비어 있는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이다. - P287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서 걸으면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과거 왕궁이었던 루브르박물관부터 시작해서 나폴레옹이 만든 개선문과 신도시 라데팡스까지 연결되는 축으로 이어진다. 이 역사의 축을 따라서 비워진 공간을 통해서 사람들은 연결된다. - P287

시각적 연결이 없으면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된다. 관계가 없이는 도시는 단절된 부분만 쌓여 있는 정신없는 건물들의 ‘더미‘가 되는 것이다. - P288

복잡한 진입로의 또 다른 이유는 건축 이론가 건터 니슈케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니슈케에 의하면 미국처럼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시간 거리를 줄이는 쪽으로 건축이 발달하고, 일본같이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는 시간을 지연시켜서 공간을 심리적으로 커 보이게 한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은 시간 거리를 줄이는 고속도로가 발달했고, 일본은 좁은 공간을 넓게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 진입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P290

좁은 집을 좀 더 넓게 느끼게 하려면 전체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게 설계해야 한다. 좁다고 집의 모든 벽을 다 터 버리면 오히려 더 좁게 느껴지게 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머릿속으로 전체 공간을 그려 보게 하면 공간이 실제보다 넓게 느껴진다. - P290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이 같은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져서 기억할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만큼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 P290

반대로 어렸을 때는 기억력이 좋아서 하루만 생각해도 기억할 일이 많고 그만큼 시간이 꽉 찬 느낌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 P290

뇌 연구 과학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뇌 시냅스 사이의 정보 전달 네트워크 기능이 느려지면서 정보를 프로세스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만큼 기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P291

더 많은 이벤트는 심리적으로 기억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더 많은 기억들은 같은 시간을 더 길게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시간이 길게 느껴지면 공간은 더 크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 P291

같은 원리에 의해서 공간을 크게 느끼게 하려면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해야 하고,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하려면 기억할 사건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기억할 사건이 많게 하려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건들을 느낌과 감정으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 P291

기억할 감정이 많다는 것은 인생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벤트가 많이 일어나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성공적인 거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뜨는 거리가 되려면 다양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줄 이벤트들이 필요하다. - P291

건축가는 이런 이벤트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무대장치를 디자인하는 연출가이다. - P291

과거에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유는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이 과거에는 가정법원이었기 때문에 덕수궁 돌담길에 연인이 걸어가면 가정법원에 이혼하러 가는 사람으로 오해를 해서 그런 말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연인들이 진도를 나갈 때 걷는 강북의 대표적인 달달한 데이트 코스이다. - P292

자동차가 인도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볼라드(bollard) - P292

대사관 관련 시설들은 보안이 중요한 공간이라서 담장을 높게 쌓는다. - P294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구경거리를 원하는 사람이 걷는거리라면, 담장 옆을 걷는 사람들은 조용하게 방해받지 않고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연인이 선택하는 거리이다. 특히 담장 옆을 걸으면 연인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벽에 반사되어서 둘의 이야기가 잘 들린다. 특히나 정동길같이 차량이 없는 곳은 더 잘 들린다. - P294

뜨는 거리가 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안전‘이다. 대부분의 거리에서 안전은 쇼윈도의 불빛과 사람들의 눈으로 만들어지지만 정동길처럼 대사관 보안이라는 이유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P294

세상의 디자인은 둘로 나뉜다. 그 기준은 사람이다. 모든 디자인은 디자인하는 대상이 ‘사람보다 큰가‘ 아니면 ‘사람보다 작은가‘로 나누어질 수 있다. - P297

숟가락에 얼굴이 거꾸로 비추이는 원리를 아니쉬 카푸어는 큰 조각으로 만들어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일상의 흔한 원리가 스케일이 큰가, 작은가에 따라서 그냥 숟가락일수도 있고 유명한 조각품이 되기도 한다. 스케일은 이렇게 중요하다. - P297

모든 디자인은 사람의 몸 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내 손 안에서 가지고 노는 휴대 전화를 디자인하는 방식과 여러 명이 들어가서 다양한 행위를 해야 하는, 사람보다 훨씬 크고 사람보다 오래 지속되는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방식은 달라야 한다. - P298

기본적으로 건축은 밖에서만 바라보는 조각품과는 다르다. 건축은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 P298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관점을 중요하게 여긴 건축이다. 병산서원이나 소쇄원 같은 건축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는 마루에 앉아서 바깥경치를 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서 디자인한 건축이다. 이처럼 좋은 건축은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기 때문에 휴대 전화나 옷을 디자인하는 식으로 건축을 디자인해서는 안 된다. - P301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건축은 인간이 안에 들어가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 P301

보통의 제대로 된 건축가라면 웬만한 크기의 건물을 짓기 전에 최소한 50분의 1 스케일의 모형은 만들어본다. 왜냐하면 그래야 실제로 지어지는 건물과 스케일 감의 차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01

건축 공간이 주는 감동은 여러 가지 현상의 조합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 P302

건축은 인간의 몸보다 큰 것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보다 작은 물체를 디자인하는 것과는 다르게,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사용자의 시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디자인해야 한다. - P302

자동차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자동차는 이동을 하는 반면 건축은 이동을 하지 않는다. 이 점은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다시 말해서 자동차는 주변 환경과 별다른 연관성을 맺지 않는다. - P302

건축물은 대지의 주변 환경에 맞는 조건에 맞추어서 디자인되어야 한다 - P303

건물이 들어서는 대지는 전 지구상에서 같은 조건을 가진 장소가 하나도 없다. 땅의 기울기도 다르고 주변의 건물이나 자연환경도 다르다. 게다가 사용자의 프로그램도 제각각이다. 건축은 이러한 다른 조건에 맞추어서 맞춤형으로 디자인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 P303

자동차는 한 장소에 구속을 받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에 주변 환경보다는 사용자의 편의성과 밖에서 바라보는 외관의 수려함이 더 중요하다. 반면, 항상 이동하는 자동차와는 달리 건축물은 한번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따라서 어느 장소에 위치하고 어느 방향으로 건물이 배치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건물을 ‘앉힌다‘라는 표현을 쓴다. - P303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관점이 발전해서 조상들은 풍수지리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풍수는 내가 위치한 곳에서 어떻게 보느냐를 중요시한 ‘일인칭 관점에서 바라본 관계의 미학‘이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인에는 없는 풍수지리가 건축에는 있다. - P304

두 번째로 자동차와 건축의 다른 점은 수명이다. 건축은 보통 다른 어떤 디자인보다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부실 공사가 아닌 이상 대체로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 - P304

앞서 도심의 팰럼시스트에서 설명했듯이 건축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기 때문에 여러 시대에 걸쳐서 다른 사람의 영향들이 누적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건물의 용도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달라진 기능에 맞추어서 건축물에 부분적인 수정이 가해지고 부품이 교체되기도 한다. - P304

오래된 시간의 누적이 하나의 건축물에 중첩되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건축은 한 개인의 창작물이라는 가치를 뛰어넘어 한 사회의 결과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P304

세 번째로 다른 점은 건축물은 환경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을 다시 받는다는 데 있다. 건축물은 빈 땅 위에 지어진다. 빈 공간을 건물로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건축이 되고 나면 그 건축물을 통해서 빈 공간이 프레임되기 시작한다. - P305

건축물은 어느 공간을 점유하게 되면 그 주변 공간을 변형시키고 다시 그 변형된 공간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영향을 받는 순환의 고리가 선순환될수록 좋은 건축물이다. - P305

고층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바람이다. 바람은 고층 건물을 꽈배기처럼 비튼다. 고층 건물에 있는 기둥의 상당수는 이러한 바람의 영향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은 지면에 있는 물체의 저항이 없어지기 때문에 더 빨라진다. 그래서 건물이 높아질수록 바람의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 P306

두 개의 고층 건물 사이 공간에서는 바람이 건물에 부딪힌 후 건물 사이로 모여서 더 빠른 바람이 형성된다. 이러한 현상은 고층 건물이 많은 현대 도시의 부정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바레인에 가면 이 원리를 좋게 이용한 건물(바레인 세계 무역 센터)이 있다. (중략) 이 디자인은 건물에 부딪힌 바람이 모여서 더 세지는 현상을 이용하여 건물을 발전기로 만든 것이다. - P307

좋은 건축은 대지 주변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건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체험자의 입장에서 디자인할 줄 알아야 한다. - P310

건축물이 대지의 환경과 에너지를 잘 이용하는지 못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그 건축물을 그 땅에서 들어서 다른 장소로 옮겨 놓고 보면 알 수 있다. - P310

캔틸레버 : 모자의 차양같이 한쪽만 지지되고 한쪽 끝은 돌출된 구조물 형식의 하나로, 발코니나 처마 등의 돌출부에 구조적으로 채택된다. - P387

진정 훌륭한 건축 디자인은 어느 한 땅에서는 훌륭하게 작동을 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그런 건물이 그 대지가 가진 에너지를 잘 이용한 건축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P312

수학에는 전통적인 유클리드기하학과는 다른 위상기하학이 있다. 고무로 만들어진 A라는 도형을 늘려서 B라는 다른 모양의 도형으로 만들었다고 하자. 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A와 B는 다른 모형이지만, 늘려서 모양을 바꾼 도형은 같은 도형이라고 보는 위상기하학에서는 A와 B를 같은 도형으로 본다. - P313

과거 전통 건축들과 비교해서 현대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고층화를 통해서 고밀화되었다는 점이다. 이 건물들은 1층 위에 2층, 2층 위에 3층이 얹혀 있다. 건축가들은 이러한 형식의 공간 구성을 ‘팬케이크‘ 라고 폄하해서 이야기한다. 그렇게 폄하되는 이유는 각 층간의 공간이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누어진 층간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오직 계단과 승강기를 통한 이동만이 허용될 뿐이다. 한마디로 이런 건물 안에서는 소통이 단절된 사회가 만들어진다. 만약에 우리가 3층에서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2층과 4층의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시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P314

건축물은 자연의 겉모습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 본질을 모방해야 한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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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다윈주의와 관련하여 우파와 좌파에 대해 정의를 내렸었는데 오늘은 그에 관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여러가지 논의들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독자들 개개인의 몫인듯 하다. 다만 글을 읽다보면 저자께서도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다른 한 쪽이 절대적으로 틀리다거나 하기보다는 두 의견이 절충된 어느 중간 지점 정도에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잠깐 접한 후 한동안 접할 일이 없었던 DNA관련 개념들이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쉽진 않았지만 본문 내용의 이해를 위해 최소한의 지식은 제대로 잡고 넘어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마음먹고 읽다보니 그래도 기본적인 이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복잡한 개념들이 나오는데, p.123에 밑줄 친 내용 중에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개인적으로 와닿게 느껴졌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 ‘삶의 의미‘라는 것과 관련된 얘기인데,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삶의 의미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는 것이고 결국 삶의 의미라는 것은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문학이라는 것이 효용을 발휘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생물학과 인문학을 연결해주는 접점이 바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종교에 대한 얘기가 잠깐 등장한다. 여기선 저자가 생각하는 종교와 신에 대한 시각을 간단히 살펴볼 수 있었고, 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 종교라는 것이 ‘적응의 이익‘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얘기도 만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과학(이 챕터에서는 생물학)이라는 것이 기존의 인문학적 시각에선 보지 못했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되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께서도 책 중간중간에 자신이 과학을 공부하면서 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독자인 나도 이제 조금씩 느껴가고 있는 듯 하다.

우파는 진화론을 오남용했다. 영국 철학자 스펜서가 창안한 ‘사회다윈주의‘가 시작이었다. 스펜서의 이론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부자와 권력자는 사회의 환경에 잘 적응한 사람이고 가난과 무지는 적응에 실패했다는 증거다. 약육강식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도덕적으로 바람직하기도 하다.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자가 소멸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스펜서는 『종의 기원』 초판을 읽고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원리를 ‘적자생존‘適者生存(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 P112

예방접종과 구빈법은 생물학적·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이 생존해 자손을 남길 가능성을 높이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질병과 빈곤을 방치하면 잠깐 동안 이익이 조금 생기긴 하겠지만 극도의 죄악을 함께 만들어 문명의 발전을 저해한다. 약자를 도우려는 마음도 자연이 준 인간의 본성이며 길게 보면 이런 훌륭한 덕성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가 번영한다. 인구통계를 보면 성 선택이 인류의 퇴화를 막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하고 열등한 사람은 혼인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후손을 남길 기회도 적다. - P113

개체를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단위로 본 다윈과 달리 스펜서와 골턴은 집단을 자연선택 단위로 설정했다. 인간은 집단 안에서는 개인끼리 경쟁하지만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집단으로 대결한다. 그러나 집단은 유전과 무관하기 때문에 자연선택 단위가 될 수 없다. - P113

진화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 인간이 원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쪽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더 유리한 형질을 지닌 개체가 살아남아 번식한다는 사실을 서술하는 말일 뿐이다. 사실은 도덕이 아니다. 자연스럽다고 해서 훌륭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우파는 진화를 사회 번영과 인류 발전을 추동하는 ‘신의 섭리‘로 포장해 무한경쟁을 조장했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사회적 미덕이라고 찬양했다. - P114

예나 지금이나 우파는 집단을 생존경쟁의 단위로 설정하고 다른 민족 또는 국가의 구성원에 대한 적대의식과 혐오감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 P114

사회복지학계는 좌파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 P115

우파는 진화론을 오독하고 악용해서 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을 만들었다. 좌파는 다윈과 다윈주의를 싸잡아 배척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인문학자가 다윈주의를 혐오한다. - P115

내가 사회복지학과 심포지엄에 굳이 다윈주의를 가져간 것은 인문학의 전통적 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윈주의가 복지정책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P115

다윈주의는 이미 아는 질문을 다르게 해석할 기회를 제공하며 다른 답을 발견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문과 다윈주의자‘를 자처한다. - P116

두 가지만 말하겠다. "모든 동식물의 유전자는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이건 감동이었다.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이건 충격이었다. - P117

모든 생물의 DNA가 똑같이 네 종류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 P117

동식물, 박테리아, 바이러스까지 생물은 모두 생존기계다. - P117

자기 복제자인 DNA deoxyribo nucleic acid (디옥시리보 핵산)는 다양한 기계를 만들었다. - P118

DNA는 우아하게 맞물린 한 쌍의 나선형 뉴클레오티드 사슬이다. ‘불멸의 코일‘을 만드는 뉴클레오티드는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鹽基(base)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생명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연결 순서만 다를 뿐, 모든 동식물의 DNA는 같은 언어로 씌어 있다. - P118

DNA 분자는 복제를 잘한다. 설계도 원본이 든 세포 하나가 각각 설계도 사본 전체를 가진 세포 2개로 분열하고, 두 세포는 4, 8, 16, 32, ・・개로 늘어나 세포 1,000조 개로 이루어진 인간이 된다. - P118

모든 세포에 알파벳 4개로 쓴 ‘몸 만들기 설명서‘ 전체가 들어 있다. DNA의 메시지는 아미노산의 알파벳으로 전환해 특정한 단백질 분자를 만든다. 단백질이 세포 내부의 화학적 과정을 제어하는 과정은 엄격한 일방통행이라서 획득 형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 P118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유전이라는 방법으로는 자식에게 어느 하나 넘겨줄 수 없다. 새로운 개체는 매번 무無에서 시작한다. 유전자는 우리의 몸을 이용해 불변 상태를 유지한다. - P118

모든 생물의 DNA가 동일한 알파벳으로 씌어 있다는 사실은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하는 유전학의 증거다. - P119

두 생물 개체의 유전자를 섞어 각각의 천성을 가진 자손을 만들 수 있으면 같은 종에 속한다. 동물에 한정해서 일상 언어로 말하면, 암수가 교미해 생식 능력이 있는 자식을 낳으면 같은 종이다. 자식을 낳는다해도 그 자식이 번식하지 못하면 같은 종이 아니다. - P119

동물은 세포에서 당을 태워 열을 내지만 식물은 다른 방법으로 추위를 견딘다. 겨울이 다가오면 잎에 보내던 수분과 영양분을 끊는다. 그래서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우리에게 가을의 정취를 선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 P120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 나무도 물을 품고 있다. 물이 얼어 팽창하면 세포가 터진다. 죽지 않으려면 겨울 여행을 잘 해야 한다. - P120

유전자는 ‘오래 존속하는 염색체染色體(chromosome)의 작은 조각‘이다. - P122

염색체의 조각이 오래 존속하려면 잘 흩어지지 않아야 하며, 흩어지지 않으려면 되도록 작아야 한다. - P122

염색체는 무엇인가. 세포핵 안에 있는 유전자 운반 물질이다. 세포를 관찰하려고 사용한 염료에 잘 반응해 염색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미경으로 보면 실 뭉치 비슷하게 생겼다. - P122

생물의 염색체는 n쌍이 보통이다. 드물지만 예외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보통‘ 그렇다고 했다. 예컨대 양파는 염색체가 8쌍, 수박은 11쌍, 초파리는 4쌍, 고양이는 19쌍, 침팬지는 24쌍, 개는 39쌍, 인간은 23쌍이다. - P122

인간 염색체의 한 쌍은 성性염색체라 하고, 나머지 22쌍은 상常염색체 또는 보통염색체라 한다. - P122

인간 염색체는 생식세포에서 절반인 23개로 감수 분열한다. 그런데 존재하는 23쌍의 염색체가 두 세트로 나뉘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책 두 권을 뜯고 붙여 다시 두 권을 만든 다음 그중 하나를 고르는 식이다. 이때 어떤 염색체의 조각들은 시작 표시부터 끝 표시까지 네 종류의 염기가 특정 순서로 이어진 사슬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게 바로 유전자다. - P123

모양과 크기가 같은 한 쌍의 염색체를 ‘상동‘相同 염색체라고 한다. - P123

상동염색체의 같은 위치에는 눈의 색이나 다리의 길이와 같은 형질을 결정할 때 경쟁하는 ‘대립유전자‘가 있다.
대립유전자 가운데 자식에게 바로 발현하는 것을 우성硬性, 잠복하는 것을 열성劣性이라고 한다. 모든 유전자는 가장 먼저 대립유전자와 경쟁한다. - P123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다. 단지 잘 흩어지지 않는 염색체의 조각일 뿐이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123

자연선택은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 어떤 것이 자연선택의 단위가 되려면 진화의 시간을 감당할 만큼 오래 존재해야 한다. 그 정도로 오래 존재하는 생명의 단위는 유전자뿐이다. 유전자의 수명은 최소한 100만 년 단위로 측정한다. 개체는 수명이 너무 짧아서, 집단은 독립한 생물이 아니어서 자연선택의 단위가 될 수 없다. 개체와 집단은 하늘의 구름이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잠깐 존재한다. 이것이 유전자 선택론의 요지다. - P124

유전자는 의식이 없다. 불변 상태로 자신을 유지하면서 되도록 많은 생존기계의 몸에 퍼져 나갈 뿐이다. 그것이 유일한 존재 목적이다. - P124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는 지층의 구조와 지질을 분석하고 방사성 동위원소로 화석과 암석의 나이를 측정해 지구 상태의 변화와 생물 종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 P125

인류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지구생명의 역사를 하루로 환산하면 20만 년은 여름밤 반딧불이가 두어 번 깜박인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 P126

생명의 나이는 곧 유전자의 나이다. 어떤 생물 개체와 동식물의 군집도 유전자처럼 오래 존속하지 않았다. 오직 유전자만이 40억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생존하고 번성했다. 유전자는 다양한 기계를 만들어 생존에 성공했다. - P126

호모 사피엔스는 대단히 복잡한 생존기계다. 우리는 개인으로 그리고 때로는 집단으로 생존경쟁을 한다. 다른 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겉보기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보면 자연선택은 유전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 P126

사실은 도덕이 아니다. 가치도 아니다. 그저 사실일 뿐이다. - P127

자연이 만든 생존기계면 어떻고, 신이 흙으로 빚어 숨을 불어넣은 피조물이면 어떤가. 물질의 증거가 가리키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된다. - P127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한다. - P127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 P127

우리는 대단히 복잡하고 독특하게 발전한 생존기계다. 유전자가 명하는 본능에 따라 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감정을 느끼며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 P128

모든 종에게 유전자는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성장하라. 짝을 찾아라. 자식을 낳아 길러라. 그리고 죽어라. 너의 사멸은 나의 영생이다. 너의 삶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목적을 추구한다. 살아서는 유전자의 굴레를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굴레에 묶여 사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 P128

나는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가 만든 기적‘으로 본다. 내가 기적의 산물임을 뿌듯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내 자존감을 높여 주었다. - P128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직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전자 · 타인 · 사회 · 국가 · 종교 · 신, 그 누구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창틀을 붙잡고 선 채 죽은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 P128

자연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생물학의 특수 분야이고, 역사학·전기·문학은 인간 행태의 관찰 보고이며, 인류학과 사회학은 영장류의 한 종에 대한 사회생물학일 수 있다는 것 - P129

사회생물학은 "사회성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생물학자는 다윈주의를 바탕으로 자연 선택이 동물 사회와 동물의 사회성 행동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설명한다. 인간도 동물이므로 같은 분석도구로 인간사회와 인간의 사회성 행동을 연구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은 그런 관점을 견지하고 인문학의 세계로 건너왔다. - P130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생물학적 기초‘가 있다는 전제를 두고 사회제도와 문화양식을 연구하면 인문학과 다른 각도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인문학과는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 P130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가? 아니다.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인간은 왜 신을 창조했는가? 삶의 유한성을 넘어서려는 욕망을 채우고 싶어서였다. 그렇다면 종교는 무엇인가? 종교는 믿는 자에게 진리이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망상이며 권력자에게는 유용한 통치도구다. - P131

사회생물학의 질문은 인문학과 다르다. ‘어떤 적응의 이익이 있기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군집에서 종교행위가 진화했는가?‘ - P131

신의 숫자와 이름과 교리는 다르지만 모든 문명에 종교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 초월적 존재를 믿고 종교 공동체에 속하려는 성향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보편적 특성으로 인정할 수 있다. 다윈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행위 양식이 인간 사회에서 진화한 것은 ‘적응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적응의 이익‘은 생존과 번식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를 가리킨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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