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에서 출발하여 철학적 자아에 대해 물어보는 인문학적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물어보는 과학의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까지 저자의 사고(思考)의 깊이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 나온다.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나는 뇌다‘ 라는 것이었는데,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밑줄친 문장들을 읽다보니 독자인 나의 고개도 절로 끄덕여질만큼 근거가 꽤나 설득력있게 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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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경제학에서 유명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과학에 나오는 신경세포의 성질과 유사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경제학의 법칙이라는 것이 과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경세포와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예 상상조차 하기 힘들법한 생각이었다.

또한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한계생산력분배 이론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특별히 한계생산력분배 이론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한 부분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이 또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생각하기 힘들었을 법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의 오류를 지적한 스라파 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스라파 논쟁‘ 역시도 개인적으로는 다른 책에서 보지 못했던 내용이었기에 관심을 갖고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하다.

개인적으로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정도의 내용은 어느정도 한두번씩은 들어봤기에 그나마 익숙했지만 경제학과에 심화과정으로 나오는 경제 사상사 같은 과목들은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이러한 논쟁들이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비교적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칸트 철학에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저자께서도 본문에 밝히셨듯이 칸트가 사용한 용어들이 굉장히 난해하게 느껴짐을 일부 발췌된 문단의 글 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내용들이 등장하는데, 특별히 공간과 시간에 관련된 글은 참 오묘하다고나할까? 무슨 형식이 어떻네 저렇네 얘기들이 나오는데 저자는 그냥 칸트도 잘 몰랐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며 나를 포함한 독자들의 답답했던 마음을 속 시원하게 긁어준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철학자들이라는게 원래 모르는 것도 무언가 아는 것처럼 말한다는 속성이 있음을 저자의 얘기를 통해 추가적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나는 뇌다.‘ 이것은 사실을 기술한 과학의 문장이 아니라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이다. - P47

뇌는 물질이지만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내가 뇌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말한 것은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 P48

소유욕부터 경쟁심, 구애 행동,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예술적 창조, 낯선 것에 대한 경계, 자존감, 불안, 공포, 외로움, 복수심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 - P48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모르고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이해할 수가 없고,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을 모르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뇌다‘ - P48

MRI(자기공명영상) · PET(양전자단층촬영) · CT(전산화단층촬영) - P48

주름진 뇌의 안쪽은 밝고 바깥쪽은 어두워서 각각 ‘백색질‘과 ‘회색질‘(또는 대뇌피질)이라고 한다. 회색질에는 신경세포(뉴런neuron)의 중심인 세포체가 밀집했고 백색질에는 축삭돌기가 퍼져 있다. - P49

뇌는 부위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예컨대 귀 안쪽의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고 이마 쪽 전전두엽은 의사 결정에 관여한다. 뒤통수 쪽 후두엽은 시각정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측두엽 안쪽에 있는 편도체는 공포 반응과 주의 집중에 관련된 여러 부위에 신호를 보낸다. - P51

이것(경제학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은 법칙‘이 아니라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과 특성을 드러내는 ‘현상‘일 뿐이다. - P53

헬름홀츠는 열역학·전기역학·열화학·유체역학 등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 물리학을 본격 연구하기 전에 시각과 청각을 연구하는 신경생리학 분야를 개척했다. - P54

같은 종류 같은 강도의 자극을 계속 가하면 신경세포가 점점 둔감하게 반응한다 - P54

신경세포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생존에 유리해서다. 이 현상은 우리의 뇌가 생존을 위해 조합한 기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해 준다. - P54

생물은 외부 환경의 변화를 신속·정확하게 인지해 최적대응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도 그렇다. - P54

우리의 감각기관은 외부 환경 변화를 담은 정보를 매순간 뇌에 전송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혀로 느끼고 피부로 접촉하는 모든 것에 관한 데이터는 엄청나게 양이 많다. 데이터를 최대한 신속하게 접수하고 분류하고 평가해 신체기관이 적절한 행동을 하게 하려면 효율적으로 일해야 한다. 대응이 느리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뇌는 선택하고 집중한다. 이미 아는 정보가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중시한다. - P54

뇌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 적절한 결정을 내린다. - P55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한계효용 균등의 법칙‘을 낳았다. - P56

화폐한 단위로 구입할 수 있는 가지 재화의 한계효용이 모두 같도록 소비량을 조합하면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 효용을 얻을 수 있다. - P56

소비자행동이론을 이해하면 생산자행동이론도 쉽게 알 수 있다. 소비자를 생산자로 바꾸고, 두 재화를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생산요소로 대체하며, 한계효용 자리에 한계생산력을 넣고, 효용 극대화를 이윤 극대화로 바꾸면 된다. - P57

소비자는 효용 극대화 자동기계, 생산자는 이윤 극대화 자동기계다. 소비자는 두 재화의 소비량을 최적화해 효용을 극대화하고, 생산자는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을 최적화해 이윤을 극대화한다. - P57

생산자가 노동 투입량을 고정하고 자본투입량을 계속 늘리면 마지막으로 투입한 자본 한 단위로 인해 증가한 생산물은 점차 감소한다. 자본 투입량을 고정하고 노동 투입량을 늘려 나가는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투입한 노동 한 단위로 인해 증가한 생산물이 점차 감소한다. 이것이 ‘한계생산력 체감의 법칙‘이다. - P57

경제학자들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서 상품의 수요곡선을 도출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한계생산력 체감의 법칙‘ 에서 상품의 공급곡선을 유도했다. - P57

소비자행동이론의 중심 개념인 무차별곡선 · 예산제약선 · 한계대체율은 생산자행동이론의 중심 개념인 등량선 · 등비용선 · 한계기술대체율과 수학적으로 완전히 같다. - P58

사회의 생산물은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 그 누군가는 생산요소를 제공한 사람이다. 자본가는 자본을,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한다. - P58

그 이론(한계생산력분배이론)에 따르면 노동의 가격인 임금과 자본의 가격인 이자율은 생산에 들어간 노동과 자본의 한계생산력과 일치한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노동과 자본이 생산에 기여한 만큼 생산물을 나누어 받는다. - P58

스라파 논쟁의 경위와 결과를 상세히 알고 싶으면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E. K. 헌트·마크 라우첸하이저 지음, 홍기빈 옮김, 시대의 창, 2015) 11장과 16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 P59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담고 있다. 재화와 서비스의 ‘한 단위‘를 물리량으로 확정할 수 있고 신경세포의 반응 강도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생산력체감의 법칙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 P60

생산은 물질과 노동력을 결합하는 과정이다. 거기에는 신경세포 같은 것이 없다. 생산량은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이다. 투입 노동력도 굳이 하자면 물리량으로 측정할 수는 있다. 일정한 열량을 소모하면서 일정 시간 동안 투여하는 노동을 ‘한 단위‘로 설정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어렵지만 이론으로는 가능하다. - P60

자본은 물리량이 아니다. 실제로든 이론으로든 ‘자본 한 단위‘를 특정할 방법이 없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력과 결합하는 자본은 화폐가 아니라 물질이다. 조그만 나사부터 원료와 중간재와 거대한 기계장치까지 물질은 성질과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 P60

자본의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화폐 액수로는 ‘자본 한 단위‘를 규정하지 못한다. 이것이 소비자이론과 다른 점이다. ‘화폐 한 단위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 A‘는 물리량으로 확정할 수 있지만 ‘화폐 한 단위로 구입할 수 있는 자본‘은 확정할 수 있는 물리량이 아니라는 말이다. - P60

생산 과정에 투입하는 자본의 단위를 확정하지 못하면 한계생산력을 측정할 수 없다. 자본의 한계생산력이 이자율을 결정한다는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 P60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을 계승했다.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 중에서 임금으로 지급한 것을 뺀 ‘잉여가치‘를, 생산수단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근거로 자본가 계급이 착취한다고 규탄했다. - P61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도서관 직원이자 경제학 강사였던 이탈리아 사람 스라파Piero Sraffa(1898~1983)는 1960년 발표한 소책자《상품에 의한 상품생산》Production of Commodities by Means of Commodities에서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이 수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경제학자와 수학자가 참전했던 그 논쟁은 스라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 P59

‘기술재전환‘을 두고 벌였던 수학 논쟁 - P59

‘스라파 논쟁‘ 전에도 경제학자들은 자본 한 단위를 확정하는 방법을 두고 기나긴 논쟁을 벌였다. 자본 한 단위를 물리량으로 확정하지 못하면 이윤과 이자의 원천을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그런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P62

소득분배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개인과 집단의 세력 관계,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제도, 갈등을 대하는 태도, 협상과타협을 받아들이는 문화 같은 여러 요소에 달려 있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일을 자연법칙의 몫으로 돌린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 P62

어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원 평균 연봉의 1,000배를 가져가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연봉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지 생산에 1,000배 더 기여해서가 아니다. - P62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똑같은 작업을 하는 원청 소속 노동자의 절반 수준 시급을 받는 것은 중간착취와 불평등을 허용하는 제도 때문이지 생산 기여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 P62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의 오류는 신경세포의 작동 원리를 물리법칙 형식으로 만들어 신경세포와는 무관한 경제현상에 적용한 데서 생겼다. - P62

아름다운 수학을 썼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을 강단에서 가르치고 대중에게 전파한다. 부자가 좋아하는 우화를 퍼뜨리면 보상이 따라온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 P63

따뜻한 심성과 훌륭한 인격을 가진 학자도 있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앨프리드 마셜 교수가 그런 사람이었다. 걸출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온화한 휴머니스트였던 그는 제자들한테 "찬 이성 더운 가슴"cool head warm heart을 주문하곤 했다. 냉철한 이성으로 합리적 경제정책을 추진하되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연민을 가지라는 말이었다. - P63

두뇌는 계산하고 심장이 느낀다는 관념 - P63

심장은 그저 뛰기만 하는 근육 덩어리임을, 냉철한 손익계산도 따뜻한 연민도 모두 뇌가 하는 일임을 - P63

칸트 철학의 핵심 개념 몇 가지 (중략) 정언명령定言命令(Kategorischer Imperativ), 아 프리오리a priori(先驗的), 아 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經驗的), 사물 자체事物自體(Ding an sich) 같은 것 - P64

난해함을 기준으로 철학의 최고봉을 정한다면 칸트는 헤겔, 니체와 함께 단연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 P64

칸트의 책은 어느 하나도 수월하지 않다. 어휘는 독특하고 내용은 추상적이다. 뜻이 한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거의 없다. - P64

정언명령이라는 것을 다들 들어 보았으리라.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게 하라‘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라.‘ 실천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말 자체야 어려울 게 없다. - P65

그(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 이렇게 썼다. "순수이성은 그 자체만으로 실천적이고, 우리가 도덕법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법칙을 (인간에게) 준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람은 배우지 않아도 도덕법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정말일까? 칸트는 그렇게 주장했을 뿐 증명하지 않았다.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 P65

칸트의 철학에는 과학이 깔려 있다.『순수이성비판』에는 서론부터 물리학 · 기하학 · 대수학 · 생물학 용어가 출몰한다. - P66

공간은 외적 감각기관이 가지고 있는 모든 현상들을 수용할 수 있는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바꾸어 말하면 감성의 주관적 조건인데, 우리는 이 조건 하에서만 외적 직관이 가능하다. - P67

시간은 내적 감각기관의 형식, 즉 우리 직관과 내적 상태를 감각하는 형식이다. - P67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과 시간은 우리의 외적 · 내적 감각기관이 현상을 수용하는 형식이지 사물 자체는 아니라는 말은, 표현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공간과 시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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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에선 개인적으로 예전에 읽었던 동 저자의 책인《인문 건축 기행》에 나왔던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베트남 전쟁 기념관에 대한 얘기를 만날 수 있었다. 내용적으로 거의 비슷한 부분이라 처음 봤을 때 만큼의 신선함은 덜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저자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건축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언급되는 법이니 말이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각 종교별 건축 스타일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불교의 절, 기독교의 교회, 천주교의 성당, 이슬람의 사원 등 다양한 스타일의 건축물을 비교해보면서 단순히 건축물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종교적인 특색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 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저자의 글과 함께 살펴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마치 여행지에 와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듯한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직접 방문한 건 아니지만 저자의 설명이 굉장히 그럴싸하고 흥미롭게 느껴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간 것 같다. 직접 해당 장소에 방문하더라도 아마 비슷한 느낌일듯 하다. 직관한다면 좀 더 실감이 나긴 하겠지만 책으로 이렇게 보는 것도 간접 경험으로 나쁘지 않은 듯 하다. 금전적으로 세이브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물론 돈이 많고 시간도 여유가 있다면 직접 가서 보는게 베스트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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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선 도시의 공원과 더불어 마당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먼저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런던의 하이드 파크는 과거 급속한 산업화로 도시의 환경이 점점 삭막해지자 ‘도심 속에 자연을 심어넣자‘는 생각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도심 속 공원이다. 저자는 공원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과거 저자의 어릴 적 시절이었던 마당이 있는 집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넓디넓은 마당과 함께 최근 급속히 증가한 아파트를 비교하며 마당의 장점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면서 저자의 얘기에 점점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우리가 TV를 많이 보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는데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의 본능때문인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사례들이 꽤나 흥미롭게 읽혔다.

현상설계 : 설계안(案)을 경쟁을 통해서 결정하기 위하여 설계안을 모집하는 것. - P386

성공적인 현상 설계는 49퍼센트의 뛰어난 건축가와 51퍼센트의 훌륭한 심사위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P155

물갈기: 칠면 혹은 곱게 다듬은 돌면을 물 묻힌 연마지 또는 숫돌 등으로 곱게 갈아 마무리하는 것. - P386

훌륭한 건축은 대지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잘 이용하는 건축이고, 더 훌륭한 건축은 좋지 못한 에너지까지도 좋게 이용할 줄 아는 건축이다. - P158

절은 교회의 주일 예배와는 달리 정해진 시간에 한꺼번에 모이는 집회 중심이 아니다. 대신에 혼자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찾아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 P161

다른 건축물에 비유를 하자면 절은 미술관이고 교회는 경기장에 비유할 수 있겠다. 미술관은 특정 시간에 사람이 몰리지 않고 분산되어서 사용되지만, 경기장은 몇 시간의 경기 시간 전후로 사람의 이동이 많은 시설이다. 이러한 운영상의 차이점이 일단 두 종교 시설의 공간적인 특징을 규정한다. - P163

재미난 것은 절은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전통 건축의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단일 대형 건축물보다는 중소 규모의 건축물들이 마당, 조경과 함께 군집된 형태를 띠고 있다. - P163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대부분 단층으로 되어 있고 지붕이 중시되는 건축적 특징이 있다. 따라서 절의 건축은 기와지붕이 길게 나오고 그 아래에 많은 처마 공간들이 있다. - P163

유럽의 대형 성당들의 돔도 결국에는 대형 내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했던 건축 기술이다. - P164

같은 브랜드의 의류 매장이라도 백화점에 위치한 매장이 독립된 상점보다 매상이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문이 달리지 않은 백화점 매장은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독립된 상점보다 손님이 편하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 P165

절의 대부분의 공간은 외부 공간으로 구성되어져서 외부 사람이 들어와도 그저 정원 마당에 들어가는 느낌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마치 백화점 매장에서 옷걸이 사이의 빈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절은 점원이 와서 조금만 부담을 주면 그냥 슬쩍 나가 버리면 그만인 부담 적은 백화점 같다. - P165

반면에 들어가고 나오기가 편안한 외부 공간 없이 내부 공간 중심으로 구성된 교회 건축물의 공간은 비신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마치 독립된 옷가게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뭔가를 사야할 것 같은 부담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 P165

대부분의 경우 대예배당은 주중에는 문이 잠겨 있다. 이렇듯 전도를 중시하는 교회가 건축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 더 폐쇄적이다. 교회가 문턱을 낮추고 전도를 원한다면 교회의 건축 공간 디자인부터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P165

모든 건축은 그 건물을 사용하는 기능에 맞추어서 디자인이 결정된다. 종교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 P166

하나의 평평한 공간을 나눈다는 것은 함께하는 공간에 거하는 사람들이 같은 신분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커다란 운동 경기장이나 영화관 같은 공간은 민주화된 현대 사회를 잘 보여 주는 건축형식이다. - P170

신약시대에 와서 가장 큰 변화는 제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예수가 희생양이 되어서 한 번의 십자가형으로 제사를 대신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기독교가 된 것이다. 이는 건축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 P172

과거의 성전은 동물을 잡고 제단에 피를 뿌리고 고기를 태우는 제사의 행위가 주된 예배의 행위였는데, 예수가 전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다 수행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사 행위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대신에 그 자리에는 제사를 대신하는 예수님의 업적과 교리, 스토리들이 전파되어지는 설교가 대신하게 되었다. - P172

프로그램이 바뀌게 되면 건축이 외형도 바뀌는 법이다. - P172

공간의 구성으로 보면 교회의 원형은 대형 집회를 할 수 있는 바실리카의 평면에 로마 시대 때 모든 신을 섬기는 공간으로 디자인된 판테온의 돔이 합쳐져서 나온 건축 공간이다. - P173

‘플라잉버트레스‘라는 장치를 만들어서 지붕의 하중을 옆으로 전달 - P174

유리는 불순물이 들어가면 색을 띠게 된다. 예를 들어서 철분이 많이 들어가면 녹색을 띤다. 이렇듯 여러 가지 불순물이 들어간 다양한 색의 작은 조각 유리를 밀랍으로 이어붙이면서 스테인드글라스가 창조된 것이다. - P176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책은 모두 수도원에서 필사본으로 만들어져야 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책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이렇듯 수도원은 일종의 출판사 역할을 했고, 책이 집중된 수도원은 지식의 집중으로 인해 막대한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였다. - P176

성경을 구경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는 우매한 대중은 종교 지도자가 말씀으로 전파하는 이야기를 듣는 길 외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감동적인 교회 건축물,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음악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이들의 권력을 증강시키는 시청각 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 P176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더 많은 헌금이 모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의 대형화는 신앙심뿐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더 많이 진행되었던 부분도 있을 것이다. - P176

중세, 르네상스, 근대를 거치면서 교회의 평면도도 미세하게 변화해 왔다. 특히 재미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교회의 평면도에 나타난 변화이다. 과거 르네상스 시절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사제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제단 쪽이 멀어 보이게 디자인했다. - P177

르네상스 시절에 처음으로 투시도 기법이 정착되었고 이를 역이용하여 실제보다 멀어 보이게끔 디자인한 것 - P177

근대에 와서는 반대로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가까운 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반영한 교회가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롱샹 성당‘이다. - P177

기독교는 초기의 제사 중심의 예배에서 군중 설교 체제로 예배의 형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교회 건축은 더욱더 대형 건축물화 되어 갔다. - P177

불교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수양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법회를 드리는 절도 있지만, 예전부터 우리에게 인식된 불교는 마치 교회의 기도원처럼 개인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혼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오는 좀 더 개별적인 느낌의 종교이다. 같은 시간에 한 번에 모이는 것이 주가 되는 형식이 아니다. - P179

사용자가 흩어져서 골고루 오다 보니 대형 실내 공간은 필요가 없었다. 석가탄신일 같은 특별한 절기에는 날씨가 좋은 때여서 외부 공간에 모여서 집회를 해도 무방하기 때문에 더욱더 실내 공간 위주로 발달하지 않았다. - P180

이슬람은 중동 지역에 주로 퍼져 있는 종교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최근까지도 유목 사회 기반이었다. (중략) 유목 사회는 건축과 거리가 멀다. 항상 이동을 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건축을 발전시킬 기회가 없었다. - P180

로마제국이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지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 - P181

이들(이슬람 민족)이 처음이자 유일하게 접한 종교 건축물이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었기에 훗날 이슬람 사원을 지을때에도 하기아 소피아를 원형으로 해서 지금까지 지어 왔다.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도 역시 하기아 소피아처럼 돔 건축 모양을 띠고 있다. - P181

이슬람은 기독교보다도 더 심하게 상징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조각상과 성화들을 배제하고 대신 글자와 문양을 통해서 장식하게 되어 있다. 아라베스크 문양들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 P181

지금은 개조가 되어서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는 사람이 올라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소리쳐 알리는 ‘미나레트‘라는 탑 몇 개가 추가되었을 뿐 건축적으로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 바로 옆에 새로 지어진 ‘블루 모스크‘라는 건물은 하기아 소피아와 모양에서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흡사하다. - P181

교회 건축과 이슬람 사원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느냐 신고 들어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막 지대인 이슬람에서는 성스러운 공간에 들어갈 때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 P181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떨기나무가 불타는 곳에 다다르게 되는데, 여호와가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중동 유목 문화의 특징인 것이다. - P182

사막과 광야에서는 모래가 많았을테니 깨끗해야 하는 공간에는 흙이 가득 들어간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문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에 들어갈 때는 그들이 예전에 자신의 텐트에 신을 벗고 들어가듯이 신발을 벗고 카펫 위에서 기도를 드리게 되어 있다. - P182

종교 건축물들은 다른 건축물이 그러하듯이 그 지역의 기후, 풍토, 문화 그리고 예배의 형식에 맞추어서 기능적으로 결정된다. 또한 신앙의 성격에 따라 사제와 신자의 공간을 구분하기도 하고 섞어놓기도 한다. - P183

지난 2천 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를 가진 나라가 그 시대를 이끌어 갔다. 그리고 그 도시들은 각각 자신만의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해 낸 도시들이다. - P187

런던의 경우에는 세계 최초로 도심 공원을 만들어서 새로운 도시의 유형을 만들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했다. 세계 최초의 도심 공원 하이드 파크 - P187

도심 속에 자연을 도입하는 도심 공원 - P189

런던을 많이 흉내 낸 도시 보스턴에서는 프레더릭 옴스테드라는 조경설계자가 ‘보스턴 코먼‘이라는 작은 규모의 하이드파크 아류작을 만들었고, 이어서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빌딩숲을 배경으로 한 공원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물가 옆 잔디밭에서쉬는 모습은 선진국의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 P189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 P190

자동차는 우리로 하여금 멀리 있는 공원에는 갈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가까이 있던 마당과 거실 같던 골목길을 빼앗아 갔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말해 왔지만 사실 우리는 주변의 질 좋은 공간을 팔아서 물건을 산 것일 뿐이었다. - P193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는 마당 대신 넓은 주차장을 얻었다. 하지만 마당이 없어지니 발코니까지 확장해서 집을 더 넓히려고 안달이었다. 마당과 골목길의 부재는 고스란히 더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구하는 갈급함이 된 것이다. - P193

다양한 이벤트와 날씨가 마당의 얼굴을 항상 바꿔 준다. 마치 마당은 매일매일 벽지와 가구가 바뀌는 거실이라고나 할까? - P194

여러 가지 색깔의 공간은 우리의 기억 속에 다르게 저장된다. 우리는 기억 속에 변화가 없는 집에 살기 때문에 더 TV를 바라보는 것이다. 적어도 TV 속에는 드라마 속에서 이벤트가 일어나고, 장면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화면의 TV를 사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벽면 크기만 한 TV가 나올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 P194

발코니와 마당은 다르다. 정방형의 마당과는 다르게 아파트의 발코니는 폭이 1.5미터도 안 되는 직사각형이다. 폭이 1.5미터도 안 되는 발코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동은 제한적이다. 그저 화분을 놓고, 빨래를 널거나, 바깥 경치를 바라보는 정도의 한 방향성을 갖는 행위들이다.  - P194

어느 공간이 한쪽으로 좁고 한쪽으로 길면 사람의 행위는 그것에 맞게 조정된다. 그래서 건축이 무서운 통제 방식이 되는 것이다. 좁고 긴 발코니에서는 바깥을 바라보는 일밖에는 못하는 반면, 정방형의 마당에서는 둥그렇게 마주보고 앉을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는 사람 간의 관계성이 쌍방향을 띠게 되면서 더욱 다채로워진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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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먹고난 뒤에 살짝 느껴지는 쌉쌀한 맛과 초콜릿의 쓰디쓴 달콤함, 카라멜의 은은한 단 맛이 어우러져 있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드립백 커피입니다. 이러한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차갑게 마시는 것보다 뜨겁게 마시는 게 개인적으로 좀 더 나았습니다. 적정량의 물 조절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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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최재천의 곤충사회》라는 책을 읽으면서 과학 관련 분야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기회가 되어 이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인문학 분야에 집중해왔던 문과 출신 저자의 시각에서 과학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살펴보면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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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저자의 깨달음 같은 게 느껴졌다.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 저자는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꾸준히 공부해온 인문학이라는 것의 토대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 듯 하다. 물질로 존재하는 ‘나‘와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 , 이렇게 두 가지로 자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로 존재하는 ‘나‘ 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았다. 물질로 이루어진 외형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툭 튀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개 독자인 내 나름대로 저자의 글을 읽고 거기에 대한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끄적여봤는데, 이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러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심오한 영역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진다. 머리가 지끈지끈 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의미를 찾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예 이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텐데, 생각의 폭을 조금이라도 확장시켜보는 시도를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공부를 온전하게 하려면 당연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 - P8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 - P8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과 자연과 우주를 대하는 태도 - P11

토론회에는 거만한 바보가 많았고, 그들이 나를 궁지에 몰았다. 바보는 나쁘지 않다. 대화할 수 있고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는 거만한 바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정직한 바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직하지 않은 바보는 골칫거리다! 나는 토론회에서 거만한 바보를 무더기로 만났고 아주 낭패했다. - P16

파인만은 1970년대에 과학자들이 잘 하지 않는 활동을 했다.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라든가 핵폭탄의 윤리적 쟁점 같은 문제를 연구하면서 강연회와 토론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공개한 것이다. - P17

‘학제적‘이란 평소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인문학자와 과학자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뜻이다. - P18

파인만은 솔직하게 의견을 말했다. ‘평등의 윤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자기 관점에만 집착했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를 한 게 아니라 혼돈을 만들었다고 했다. - P18

"그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믿는 거만한 바보였다." - P18

내가 바로 ‘거만한 바보‘였다. 나는 물질세계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무지했다. 우주 · 은하 · 별 · 행성 · 물질 · 생명 · 진화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문과니까. - P19

과학자는 수학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수학으로 대화한다. - P21

수학을 ‘우주의 언어‘라고 한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1564~1642) - P21

과학자가 되려면 물질 현상에 대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우주의 언어인 수학을 익힐 재능도 있어야 한다. - P22

인문학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 욕망을 충족하려면 누구나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단 하나의 인문학 지식도 유전으로 물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인문학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27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 P27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하고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한다. - P28

인문학에는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가르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매우 그럴법하거나 그럴 것 같기도 한 주장과, 별로 그럴듯하지 않거나 아주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 그럴법한 견해끼리 충돌하면 승패를 가리지 못한다. 어느 쪽도 사실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 P28

인문학에는 과학과 달리 영원한 진리가 없다. 한때 진리로 통하는 이론도 100년을 견디지 못한다. 스미스 Adam Smith(1723~1790)의 ‘보이지 않는 손‘,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의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의 역사이론이 다 그랬다. - P28

성벽을 쌓고 안주하는 학문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오래된 울타리 안에 머물면서 오래된 것에 집착하면, 과학이 새로 찾아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학과 소통하고 교류하기를 거부하면, 대학의 인문학은 존재의 근거를 잃을 것이다. - P29

‘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전통적인 문학과 맞지 않는 형식이다. 인문학의 익숙한 질문 형식은 ‘나는 누구인가?‘다. 인문학의 위기는 질문을 제때 수정하지 못한 데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본성을 무슨 수로 밝히겠는가? 인간이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 P30

파인만은 인문학자를 비난하지 않았다. 과학을 알려고하지 않는, 과학의 연구 방법을 거부하는, 과학을 배척하는,
그러면서도 스스로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했을 뿐이다. 직업이 인문학자든 아니든 상관없다. - P30

‘거만한 바보‘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다. 문명의 역사는 세속권력이나 종교권력을 거머쥔 ‘거만한 바보‘들이 자연과 인간에 관한 사실을 탐구하고 밝혀낸 과학자를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책을 불태운 사건으로 얼룩졌다. 과학자는 ‘거만한 바보‘들에게 화를 낼 권리가 있다. - P30

과학자는 인간의 언어와 우주의 언어 둘 모두를 쓴다. 큰 어려움 없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인문학의 질문에 자기네 방식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만 아는 나는 방정식으로 가득한 물리학 논문을 읽지 못한다. 과학커뮤니케이터의 도움을 받아 까치발을 해야 담장 너머 과학의 세계를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 - P31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 P31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 - P31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의 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 P32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 P32

‘자아는 뇌세포에 깃든 인지 제어 시스템이다.‘ - P32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 - 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 P32

‘태양이 별의 생애를 마칠 때 지구 행성의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 P32

‘모든 천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주 전체가 종말을 맞는다.‘ - P32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 P32

둘 이상의 세대가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분업의 일환으로 이타 행동을 하는 동물을 진사회성眞社會性(eusociality) 동물이라고 한다. 개미, 꿀벌, 말벌 같은 ‘막시류‘ 곤충과 호모 사피엔스가 여기에 들어간다. - P35

특정한 질서를 가진 사회를 형성하고 존엄 · 인권·정의·평등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지만 유전자에 새겨진 생물학적 본능을 바꾸거나 없애지는 못한다. - P36

과학혁명은 생산기술을 혁신함으로써 생산조직의 형태와 운영방식, 대중의 생활방식, 정치제도와 법률, 사회적 계급의 성격, 국가의 기능, 가족제도와 문화양식까지 세상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런 변화의 원인을 찾고 양상을 분석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인문학의 과제다. - P36

모든 변화의 추동력을 제공하는 과학에 관심이 없다면,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서 발견한 중대한 사실을 외면한다면, 과학의 사실과 이론을 연구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인문학은 현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든 적응에 실패하면 위기에 봉착한다. 인문학이라고 예외겠는가? - P36

과학자는 물리법칙에 입각해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한다. 인간의 몸은 입자의 집합이니 당연히 물리법칙을 따른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다. - P36

과학으로 인간과 사회를 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 사람은 유전자가 만든 생존기계인데도 때로 본능을 거스른다. 본성을 알고 욕망을 제어하며 스스로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도 필요하다. 과학이 더 발전해도 인문학은 인문학의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형식과 내용 그대로는 아니다. - P37

인문학은 생존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고 만든 학문이다. 생산력 발전을 도모하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인문학과 관계가 없다. - P38

진화와 정신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다. 그런데 그 기계가 자신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생각하고 고민한다. 인문학의 어려움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니 잘되기가 어렵다. - P38

우리의 뇌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밝게 비춰 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객관적 진리보다는 신화와 자기기만과 부족의 정체성처럼 ‘적응의 이익‘이있는 것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 채 수천 세대를 이어가며 번식했다.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의 마음은 세계를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에드워드 윌슨) - P38

윌슨의 말은 과학의 토대 위에 서야 인문학이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39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어 한다. - P43

사람이 남을 모르는 거야 당연하다. 문제는 자기도 자신을 모르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 P43

‘나는 물리적 실체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 나는 물리적 실체인 내가 아니다. 그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또 다른 내가 있다.‘ - P44

나를 온전히 알려면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물질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우주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입자가 어떻게 생명과 의식을 만들어내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왜 이런 방식으로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안다‘고 할 수 있다. - P46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질문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 P47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아‘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반 명제로 확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 P47

물질인 내 몸을 지휘하는 제어 센터는 단단한 머리뼈 안에 들어 있는 주름진 회백색 세포 덩어리다. 나를 나로 알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우리가 뇌라고 하는 세포 덩어리에 깃들어 있다. - P47

옳다고 여기던 것이 그렇지 않음을 알아내는 데 과학의 매력이 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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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부탁해 - 세상을 움직이는 데이터의 힘 한빛 리얼타임 Hanbit Realtime 149
전익진 지음 / 한빛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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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통계와 관련된 기본 개념들부터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AI와 관련된 빅데이터, 자연어 처리, 데이터 마이닝 등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알기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전공자분들께는 좀 쉽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데이터에 관심있는 비전공자분들께 유익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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