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왕모의 강림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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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체류했다고 알려진 여러 나라들을 배경으로 하여 거기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소소한 일화도 있고 해당 국가의 도시와 관련된 고유의 문화 같은 것들을 폭넓게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생소한 지명이나 건물 이름 또는 고유한 문화들이 많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해당 키워드들을 인터넷에 검색해가면서 읽었는데, 이 과정이 살짝 번거롭기도 했지만 덕분에 저자가 언급한 내용을 보다 심도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부수적으로는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고 덕분에 해외여행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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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까지 해서 일단 이 책에 나왔던 17개의 스토리는 다 읽었다. 오늘은 옮긴이가 번역을 하면서 생각하거나 느꼈던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앞부분만 잠깐 읽어봤지만 번역이라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어는 장문을 쓰기가 쉽지 않은 언어다. 고종석의 말마따나, 관계대명사를 이용하여 절을 무한히 늘어뜨릴 수 있는 영어와 달리 한국어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절을 연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 P666

영어는 주어 바로 뒤에 동사가 나오고 나머지 문장 성분들은 동사가 미리 지정한 자리에 놓이기에 구조를 분석할 때 인지 부하가 크지 않지만, 맨 뒤의 서술어를 봐야 비로소 문장의 구조를ㅡ심지어 긍정, 부정 여부까지도!ㅡ파악할 수 있는 한국어는 끝까지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으므로 문장이 길어질수록 인지 부하가 커진다. 그런 탓에 주어와 서술어 사이가 너무 멀어지면 미처 서술어에 도달하기도 전에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 P666

영어 문장은 대부분 명사로 끝나고 다음 문장 또한 명사로 시작하기에 두 명사를 똑딱이 단추처럼 결합하여 문장을 연결하는 방법을 쓸 수 있는 반면에, 한국어는 문장이 용언으로 끝나기에 연결 어미를 이용해야 한다. 이런 탓에 영어 복합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순이 뒤죽박죽이 되기 쉽다. - P667

문법에 맞게 문장성분을 배열하면서도 시간적, 논리적 순서와 정보 구조(이미 아는 정보가 먼저 나오고 새로운 정보가 뒤에 나오는 원리)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어 번역가라면 누구나 골머리를 썩이는 과제다. - P667

연결 어미를 써야 한다는 말은 (영어에서는 관계대명사절에서 암묵적으로 전제되는) 문장과 문장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뜻이다. 영어에서 ‘brother‘라고만 썼어도 한국어에서는 ‘형‘인지 ‘동생‘인지 알아내어 구분해줘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 P667

문장들이 대부분 ‘다‘로 끝나는 한국어 문어체는 낭독할 때 딱딱하게 들리며 교착어인 한국어의 풍부한 어미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지만, 만연체를 구사하여 문장들을 연결하면 리듬감을 살리고 연결 어미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 P667

본문을 보면 접속사가 거의 쓰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연결 어미로 절과 절의 시간적·논리적 관계를 표시하기 때문에 접속사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어가 영어에 비해 오히려 만연체의 본령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 P667

번역에서 골머리를 썩인 것 중 하나는 종속절의 주절을 파악하는 문제였다. 영어에서는 종속절이 주절 앞에 올수도 있고 뒤에 올 수도 있는데, 절이 두 개이면 종속절이 아닌 절이 당연히 주절이겠지만 종속절 앞뒤에 둘 다 절이 있으면 그중 어느 것이 주절인지를 문법적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종속절이 언제 끝나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문장의 의미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 P668

영어판에서는 인칭대명사를 특이하게 구사한다. 영어에서는 인칭 대명사의 선행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기에 이를 위한 장치(성, 수, 인칭대명사와 선행사의 거리)에 주목하게 마련이지만, 이 책에서는 선행사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 P668

종속절 문제와 지금의 선행사 문제는 독자에게 더 능동적인 독해를 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명상으로서의 독서‘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글쓰기 전략이지만, 번역자는 자신의 해석을 신뢰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고뇌에 빠지게 된다. - P668

드러남 또는 깨달음으로서의 에피파니(예술적, 종교적 경험)의 순간은 텍스트로부터 독자에게 직접 나타나는 것 - P669

‘가모‘의 한자 ‘鴨(오리 압)‘은 ‘압록강‘의 ‘압‘과 같다. - P669

주인공이 강렬한 햇빛에 눈이 머는 것은 일생일대의 목표에 사로잡혀 일상의 행복을 보지 못하는 현실을 돌이켜 보게 한다. 우리는 일상의 행복을 언제든 손에 쥘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하찮게 여기지만, 한번 놓치면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크로폴리스만이 아니다. - P675

어쩌면 예술가의 임무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존재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것 아닐까? - P679

쉼표의 ‘쉼‘은 잠시 멈추고 휴식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숨을 쉬라는 뜻이기도 하다. 쉼표에는 ‘들이쉼표‘와 ‘내쉼표‘가 있는데, 구를 반복하거나 나열하기 위한 들이쉼표는 독자에게 긴장의 끈을 당겨야 할 때를 알려주는 반면에 하나의 의미 덩어리가 완성되었음을 나타내는 내쉼표는 독자에게 긴장의 끈을 늦추고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를 알려준다. - P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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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인류가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바뀌면서 인간이 한 장소에 머물러 살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집과 가구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특별히 가구 중에 ‘의자‘를 예로 들면서 의자의 본질적인 속성이 ‘노동하지 않는 자‘에게만 필요한 물건이라고 했었는데, 저자는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는 ‘서기‘를 예로 들며 직접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서기 같은 사람들에 의자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저자의 추론이 굉장히 논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현상이나 상황 등을 설명하면서 그에 합당한 이유들을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 추론해내는 저자의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다. 물론 저자가 추론해낸 이유들이 100% 모두 다 맞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딱 읽었을 때 ‘아 그렇구나‘라고 납득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농경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생겨나면서 다양한 직업과 사회 계급이 생겨났다. 새로 생겨난 직업 중에는 소출물의 양을 기록하는 서기가 있었다. 인류 최초의 화이트칼라 직업이다. 문자를 이용해서 소출과 세금을 숫자로 기록하는 일이 서기의 주요 업무다. 그들은 아마도 의자에 앉아서 일했을 것이다. - P201

집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권력자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왕이나 귀족은 행차할 때도 가마 의자에 앉아서 이동했다. 이처럼 의자는 권력자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 P201

의자가 그리스 시대에 와서는 반원형 극장에 객석으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모든 시민이 언제든 앉을 수 있게끔 말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군집할 때는 왕이나 종교 지도자만 앉았고 시민들은 서 있었다. 지구라트 신전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 똑같이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인데도 그리스 반원형 극장에서는 객석 의자에 모두 다 앉는다. 오히려 무대에 있는 사람이 서 있다. 이는 권력이 일반인에게 분산되어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02

공짜로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많은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민주화된 사회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길거리에 벤치가 많은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라 할 수 있다. - P202

무게와 높이는 위치에너지를 만들고, 그것은 부와 권력의 척도가 된다. - P204

‘파르테논 신전‘은 1687년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점령하고 있던 시절에 화약고로 사용하던 중 베네치아의 포격으로 인해 폭발해 지붕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하지만 원래의 디자인은 지붕이 덮여 있는 실내 공간이었고, 내부의 모습은 마치 모세의 성막처럼 어두컴컴한 곳에 횃불이 켜 있고, 그 뒤에 아테네 신상이 놓인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 제사상이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는 공간이었다. - P205

사회가 발전하면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적 여유도 생긴다. 따라서 건축에서는 공공의 공간들이 실내화되는 경향이 생겨난다. 그리스 다음에 나타난 로마 제국의 건축물들이 그렇다. 그리스 반원형 극장은 지붕이 없지만, 로마 ‘콜로세움‘은 천막으로 된 지붕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시장인 아고라는 주로 노천 광장이었지만, 로마는 바실리카라는 거대한 건축물의 실내 공간에서 상거래와 재판을 했다. 우리도 그냥 노천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잘살게 되면서 비를 맞던 재래식 시장에 지붕을 덮었고, 더 잘살게 되자 주차장까지 있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 P206

시대와 지역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도시의 대형 종교 건축물 앞에는 시장이 위치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신사를 가도 신사에 들어가는 입구에 가게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있고, ‘밀라노 대성당 Duomo di Milano‘ 앞 광장 주변으로 상업 시설이 들어서있다. - P207

대형 건축물은 공사 기간이 길다. 그렇다 보니 공사장 주변에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 등의 상업 공간이 생겨난다. 자연스럽게 대형 종교 건축물 앞에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건물이 완성된 후에도 종교 건축물에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그 시설은 유지된다. 아테네의 시장 아고라가 신전과 극장근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P207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연극을 본다는 것은 관객 모두가 같은 감정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면 서로 이해하기 쉬워지고 집단의 결속력이 강해진다. - P207

문학 연구가 브라이언 보이드는 "이야기는 사회에 대한 친밀감을 유도하고, 사회의 규모를 확장한다."라고 말했다. - P208

책이란 이렇게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는 지성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도구다. 이것이 책이 만드는 창의적 시너지 효과다. - P212

문자는 정보를 책에 기록하고, 책은 정보의 수명 한계를 연장해주었다. - P213

책을 통해 독자는 다른 지역, 다른 시간대에 있는 사람과 문자를 통해서 소통하게 된다. 저자와 독자의 뇌가 링크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들이 모이면 시너지 효과를 통해 스파크처럼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진다. - P213

책이 한 곳에 모여 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책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다녀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소모되고, 평생의 시간 동안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된다. 이는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만큼 인류의 발전은 늦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책을 만든 후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많은 책을 한곳에 모아 놓았고, 덕분에 도서관에 들어가는 사람은 짧은 시간에 수많은 저자와 연결될 수 있었으며, 정보와 지식은계속해서 재생산되고 발전하게 되었다. - P213

자연이 진화의 과정에서 두 개의 다른 성(性)을 만든 이유는 암수 다른 유전자의 우연한 조합을 통해서 더 다양한 유전자를 만들고, 이를 통해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 P213

서로 다른 유전자를 섞기 위한 방법이 수정 혹은 교미다. 책을 읽는 것은 교미와 비슷하다. 책에는 저자의 뇌가 만든 각기 다른 종류의 정보들이 담겨 있다. 책 속 정보는 저자의 ‘생각의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 그 생각의 유전자들이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와 섞여서 새로운 변종 정보를 만들어 낸다. 도서관은 이렇게 독자와 저자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라는 유전자의 조합과 재생산을 가속하는 건축물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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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미 한 번 읽어본 작품도 있고, 읽고 있는 작품도 있으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도 있다.

오늘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요근래에 출간되어 아직 읽어보지 못했었는데, 우연히 좋은 기회가 되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문장인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도 희망은 긍정적인 의미이지만 실수는 뭔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느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통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시작해본다.

희망은 실수다.
A remény hiba.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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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의 소제목은 <사적인 열정> 이라는 것인데, 여기선 어떤 강연자가 나와서 청중들을 상대로 바로크 음악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끊임없이 표출한다. 본문을 읽다보면 강연자의 열정이 조금은 과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개인적인 생각과는 별개로 본문에 나온 강연자의 강한 열정으로 인해 바로크 음악에 대해 조금이나마 호기심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 바로크 시대를 주름잡았던 굵직굵직한 음악가들의 이름을 살펴보면서 그들에 대해서도 추가로 관심이 생겼다. 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이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그들의 음악도 한 번 감상해보는 것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음악 전공하신 분들이야 이런 것들에 그닥 감동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나같이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이렇게 사소해보이는 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환상적으로 다채롭던 당시 유럽 음악계을 상상해보십시오, 음악의 본질이 백 가지 방법으로 울려퍼졌고 우리의 관점에서 동시에 울려퍼진 것은, 음악의 본질이 바로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누가 언제 그랬는지 나열하며 이름을 하나하나 읊었으니, 라인켄, 포르포라, 푹스, 그다음에는 샤르팡티에, 파이시엘로, 뵘, 쉬츠, 그다음에는 북스테후데, 콘티, 그리고 가장 위대한 이름들, 비발디, 다음은 헨델, 다음은 퍼셀, 다음은 제수알도, 다음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아니겠습니까?! - P514

제가 바로크 시대로 돌아갔다고 상상해보면, 오케스트라가 깔리면서 <마태 수난곡>의 첫 몇 마디가 울려퍼질 때 저는눈물로 목이 멥니다, 심지어 후대의 작곡가가 <마태 수난곡>의 연주를 듣고서 눈물을 참지 못하고 며칠 동안 고통스러운 황홀함 속에 빠져 살았던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해합니다, 그래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저 또한 매번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인도의 여왕>이나 대작 <메시아>의 훼손되지 않은 연주를 듣는다면 말입니다, - P514

‘훼손되지 않은‘이라고 제가 말씀드렸는데요, 강연자가 말하길, 여기서 이 단어가 쓰인 것은 우연이 아닌바, 그것은 카를 리히터 부류가, 그 조잡한 딜레탕트 중 하나가 자신의 추한 주둥이를 바로크에 들이밀면 저는 지독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바로크적인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이요, 이해가 일천하여 바로크적인 모든 것을 모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먹잇감이 된 작품을 망치는 것은 끔찍합니다만, 더욱 끔찍한 것은 그들이 어떻게 망치는가입니다, - P515

여기서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바흐를 마치 베토벤 연주하듯 연주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결국 진정한 추문이요 이런 자들은 바로크 교향악 연주계에서 추방하거나 감옥에 처넣어야 합니다, 그게 가장 합당한 처사인 것은, 그렇게 하면 이론상 그들이 어떤 종류의 음악에도 접근할 수 없을 테고 자신들의 더러운 손과 무감각한 영혼으로 바로크를 괴롭힐 수는 더더욱 없을 테기 때문입니다, - P515

연주는, 한마디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며, 훼손되지 않은 연주에서만 바로크의 정신이 드러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정신이 나타나고, 울려퍼지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슴을 조각조각 찢고, 듣는 이를 거꾸러뜨리니,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휘자를 고를 때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오늘날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투박한 아르농쿠르는 노, 크리스티는 예스, 경박한 바르톨리는 노, 하지만 커크비는 예스, 그런가 하면 노쇠한 마그달레나 코제나는 노, 하지만 돈 업소는 예스, 추그도르프의 이른바 바로크 카머오르헤스터는 노, 하지만 레 자르 플로리상은 예스, 한마디로, 흠잡을 데 없이 선택해야만 바로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는 수준까지, 바로크 자체가 들릴 수 있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이조차도 그다지 자명하지 않기 때문으로, - P516

음악의 본질이 바로크라면, 바로크의 본질은 바흐이기 때문으로, 그의 안에는 비발디, 젤렌카, 라모, 쉬츠, 헨델, 퍼셀에게 띄엄띄엄 존재할 뿐 아니라 캄파나, 치마로사, 알비노니, 포르포라, 뵘, 라인켄에게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로 구현되어 있으나, 오로지 바로크의 이 독보적 천재에게서만 모든 것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존재하며, 그 총체성 속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ㅡ<마태 수난곡>의 이 첫 마디들에서 합창이 풍부하고 격정적인 힘으로 울려퍼지며 모든 것을 휩쓸며 솟아올라, 점점 정교해지고 점점풍성하게 엮이는 것을 들으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나타내는 모든 것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는지는 상상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말하자면 기적 같습니다 - P522

우리는 이 풍경 속에 있으며, 경탄합니다, 우리는 표현할 말이 없으며 우리의 가슴은 그 모든 것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고통을 느낍니다, 그것은 바로크가 고통의 예술이기 때문이요, 바로크의 깊은 내면에는 깊은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크에 의해 창조된 모든 음악 작품 하나하나의 모든 화음 하나하나에는 모든 아리아 하나하나에는, 모든 레치타티보 하나하나에는, 모든 코랄과 마드리갈 하나하나에는, 모든 푸가와 카논과 모테트와 모든 바이올린, 비올라, 바순과 첼로, 오보에와 호른의 소리 하나하나에는 이 고통이 들어 있기 때문이며, 표면상으로는 승리나 평정, 숭고, 기쁨, 찬양이 표현되고 있더라도 각각의 소리 하나하나는 고통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이 고통은 그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완벽으로부터, 신으로부터, 거룩한 것으로부터 분리하며 우리를 그로부터 분리하는바, 말하자면 바로크는 죽음의 예술이요, 우리가 죽어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예술 형태이되, 바로크가 음악 속에 울려퍼지는 바로 그 순간에 죽음이 찾아왔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서, 정점에서 끝났어야 했고, 모든 것이 일어날 법한 그대로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말았어야 했기 때문으로, 우리는 거짓말하지 말았어야 했고, 이 소름 끼치는 거짓말을 내뱉고 이 모차르트나 저 베토벤이나 그 누구이든 저 모든 평범해져만 가는 재능들이, 저 흔해져만 가는 인물들이 모자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던 음악에 열광하는 법을 배우지 말았어야 했고, <마술 피리>의 구성이나 저 끔찍한 5번이나 9번에 열광적 환호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고, 지독한 <파우스트>를, 저 천박한 <환상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경탄하지 말았어야 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혐오스러운 것, 바그너라는 이름의 이 제국주의적 범죄자와 그의 광적인 추종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는바, 우리가 언급도 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제가 그에 대해 생각만 해도 불신의 표시로 강연자가 고개를 저으며 저를 짓누르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요, 타락에 대한 인식이 아니요, 살인의 음습한 욕망인 것은 이 전례 없는 무능력의 병적 과대망상증이 바로크와 그 바로크의 위대한 인물 바흐가 활동한 바로 그 땅에서 음악의 질을 떨어뜨렸기 때문으로, 음습한 욕망에 대해, 제가 이것에 대해 생각하면 말입니다, - P524

다음에 와야 할 것을 그저 기다린 것은, 그 뒤에 희망이 또한 찾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으로 - P524

이제 숭고한 것 중 가장 숭고한 것 중에서 신속하지만 다소 마구잡이로 선택하여,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 "너 시온아, 준비하라"로 시작하는 알토를 위한 아리아와, <마니피카트> BWV 243에 들어 있는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또한 널리 회자되는 <마태 수난곡>의 그 아리아, 마찬가지로 알토를 위한 「나의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불러낼 때가 되었으나, - P525

어쩌면 모든 것이 정확히 똑같이 일어날지도 몰라ㅡ킨츨이 마침내 줄에서 한 칸 앞으로 내디디며ㅡ모든 이야기가 스스로를, 삶에 삶을, 물론 끝에 가서는 죽음에 죽음을 반복하니까, - P538

이것은 너의 우주다, 이것은, 킨츨에게서 왔으며 대략 열두색깔로 이루어진, 완벽이요, 전체요, 모든 것이다ㅡ그리고 이제ㅡ그가 줄 선 채 무게를 이쪽 발에서 저쪽 발로 옮기며—이것은 네 것이다. - P539

한마디로 그는 그들을 모욕하려고 일부러 불친절하게 행동했으며, 조금 위협적으로 응대하되,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로울 것이고 그들이 계속해서 부탁해봐야 죄다 거절당할 것이고 공식 신청서를 제출해도 소용없음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응대했는데, - P550

이세신궁 식년천궁 : 신사神社에서 일정한 해에 새 신전을 짓고 제신祭神을 옮기는 일. - P551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 : 일본 신화에서 해의 여신으로 일본 황실의 조상이라고 한다. - P553

도요우케 오미카미豐受大神宮 : 일본 신화에서 먹을 것과 작물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 P553

황제의 세 가지 보물 야타노가가미, 구사나기노쓰루기, 야사카니노마가타마는 어디 있는가, 전부 현재의 이세에 있는가, 하긴 그곳은 모든 신사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대신사이며 모든 신사에는 거울, 칼, 보석의 세 가지 보물이 있어야 하니까, 이것들은 승전에 보관되지, 아닌가? - P565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겁니다, 연습을 그렇게 많이 했다면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 P575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누가 구지인지, 네기인지, 구조인지, 누가 조인지, 메이인지, 세이인지, 조쿠인지, 아니면 여기 있는 모두가 참여 명령을 받은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으니, 모두가 참여할 수 있을 리 없어서, 기자들은 전부 우왕좌왕하며서로에게 물어보았으나, 누구든 질문을 받으면 그저 웃으며고개를 저을 뿐 한마디로 누구도 무엇 하나 알지 못했으며, - P577

*순서대로 구지는 신사의 제사를 맡은 신관으로 최고위이며 네기는 그다음, 구조는 다다음이다. 조, 메이, 세이, 조쿠는 일반 신관들의 계급을 순서대로 나타낸다. - P577

순전한 안간힘, 이것이 모든 동작과 제의적 몸짓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었고 의식 자체는 어디에도 없어서, 구경꾼들을, 내빈들을, 틀림없이 두둑한 후원 약정과 함께 왔을 저 후원자들을 특징지은 이 분위기 또한 긴장된 조마조마함이었던바, 따라서 동작과 몸짓들은 믿음과 헌신이 아니라 두려움의 동작과 몸짓이었으니, 이 두려움은 이곳에서 무엇 하나 참되지 않음을, 참되지 않고 진실하지 않고 개방적이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음을 드러내는 두려움으로, 여기서 찾아볼수 없는 것은 신도의 본질 바로 그것이었으며, 이것이 그들이 생각한 것이었고, 이것이 그들이 기자들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수군거린 것이었는데, - P580

"노리토祝詞" : 신주神主가 신 앞에서 고하며 비는 고대어의 축문. - P583

다카마하라 니 가미 쓰마리 마스, 가무로기 가무로기 노 미코토 오 모치테, 스메미오야 가무 이자나기 노 미코토, 쓰쿠시 노 히무카 노다치하나 노 오도 노, 하나기 하라 니 미소기 하라이 다마우 도키니, 나리마세루 하라이도노 오오가미 다치, 모로모로 노마가고토 쓰미 게가레 오, 하라이 다마에 기요메 다마에 도 모우스 고토 노 요시 오, 다마쓰 가미 구니쓰 가미 야오요료즈 노 가미타치 도모미, 아메노 후치코마 노 미미 후리타테테 기코시메세 토, 가시코미 가시코미 모 마오스, - P584

기도문에 나오는 가미(신)가 자비를 베풀고 의식을 받아줄 것인지는 전적으로 낭송ㅡ즉, 낭송되는 모든 것이 흠 없이낭송되는가ㅡ에 달렸으니, - P585

노리토는 발음되는 단어에 힘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과 연관되어 있으나, 오로지 정확하게 흠 없이 아름답게 발음되는 단어만이 복을 가져다줄 힘이 있으며,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날 때마다 단어는 오히려 마을에 액운의 징조가 되는바, - P586

시간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새 흘러갔고 그들은 어느새 교토에 도착했는데, - P586

당장 대화를 끝내야 해, 시간 오래 끌면 안 돼, - P594

니니기노 미코토 :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손자다. - P595

미코시神與 : 제례 때 신위를 모시고 메는 가마를 뜻한다. - P596

그에게서 식년천궁에 대해, 준비 작업, 나무, 작업 과정에 대해 듣고 싶은 것일 뿐이었던바ㅡ그가 유쾌하게 눈을 반짝이며 말하기 시작하자, 말들이 재빨리 쏟아져 나오되, 그는 위대한 것들의 열정적 그림자에서 살아가며, 이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으나 다시 돌아가야, 자신의 열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쏟아져 나왔으니, 그의 이런 면이 대화 전체를 규정한바, 그는 이제 참으로 위대한 임무속에서 불타고 있었고, 다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었거니와, 그는 임무를 부여받은 뒤로 오로지 이것, 제62회 식년천궁에 대해서만 생각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신상이 대화주제가 되지 않도록 애를 쓴 것은ㅡ그것이 그들이 맨 처음 던진 질문이었는데ㅡ그가 뭐라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그저 목수, 미야다이쿠이고 쭉 그래왔다고, 그가 방문객들에게 설명하길, 다만 신궁사청이 그를 도료로 임명하여 그에게 영예를 내려주었으며, 도료로서 이제 그는 신궁사청에, 내궁과 외궁에, 하지만 무엇보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크나큰, 매우 크나큰 책임을 지게 되었던바,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이 소박한 사람이 말하며, 그들을 향해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들이 묻는 모든 질문에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대답을 해주었으며, 그들이 무언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듯해 보인다거나 지금 설명하는 주제가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문장을 반복하되 몇 번이고 반복했으며, 그럴 때면 이마가 어두워진 채 한 번은 첫 번째 방문객의 눈을, 또 한 번은 두 번째 방문객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다, 자신이 한 말을 그들이 이해했다는 확신이 들고서야 다시 웃으며 다음 질문을, 또 다음 질문을 기다렸으나, 얼마 뒤에 그는, 질문을 받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옆길로 샜으니, 그들은 식년천궁을 왜 20년마다 하느냐고 물었는데, 이에 대해 그가 대답하길, 그건 신궁이 재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의 말씀에 따라 그 시기는 정확히 20년마다 찾아오죠, 신궁은 인간과 함께 시간을 헤쳐 나아가고 신도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게 영원토록 젊은 신궁에는 영원토록 젊은 신들을 위한 장소가 있는 것이죠, 이것이 그 이유에 대해 그가 할수 있는 모든 말로, 그가 그들에게 미소 짓자, 그렇다면 도료는 어떻게 임명되는 것인가요, - P599

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번드르르하게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하느냐 뿐입니다, 물론 나이와 실무 경험도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직업적 경험뿐 아니라 인간적 경험도 포함됩니다, 거기서 출발합니다만 - P600

중요한 것은 가슴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입니다, 신들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보고 아십니다, 신들께서는요, - P600

이해하기가 무척 쉽습니다, 왜냐면 여기서, 그들이 태어난 일본에서, 하지만 무엇보다 여기 신궁에서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자가 스승을 관찰하는 것이 관례이니까요, 그 또한 자신의 스승에게서 그런 식으로 배운바, 그는 자신의 스승이 자신의 오야카타가 이 일을 하는 모습을 관찰했고, 모든 동작을 면밀히 뜯어보았고, 그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따라했으니, 우리는 이걸, 그가 설명하길, ‘메데마나부‘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가 가르치려 들면 그 사람에게서는 무엇 하나 배울 수 없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P600

메데마나부 : ‘눈으로 배운다‘라는 뜻이다. - P600

모든 것이 작도에서 시작되고 작도로 종결되니, 작도는 도료의 활동 전체의 핵심이고, - P601

책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책은 남들의 경험이니까요, 애석하게도 남들의 경험은 도료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직 자신의 경험만이 도움이 되는바, 실제로 도료가 되기 전에, 물론 모든 것을 언제나 스스로 시도해봐야 하는 것은, 도료가 된 다음에는 더는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기 때문으로, 생각해보세요, 도료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통나무에 작도가 정확하게 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그러면 나무를 통째로 내다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편백을 그런 식으로 그냥 내다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미 미소마하지메사이에서, 나무가 여기 오기까지 어떤 일을 겪는지 보셨을 겁니다, 그런 나무를 그냥 내다버릴 수는 없습니다, 편백 한 그루 한그루에는 영혼이 있고 이 영혼은 매우 조심스럽게, 확실하게, 매우 조심스럽게 대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도료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 P602

도료는 대단한, 아주 대단한 책임을 맡고 있기에, 낮에도 도료일뿐 아니라 밤에도, 잠들었을 때에도, 심지어 그때에도 도료여야 하니, 식년천궁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에게는 가족도 없고 오락거리도 없고 휴식도 없고 질병도 없고 휴일도 없다고, - P603

저는 작도를 들여다봅니다, 끊임없이 들여다보죠, 그 바탕에서만 작도합니다, 도면 없이 다짜고짜 그리지 않는 것은 그랬다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수를 저지르면 고칠 수가 없게 됩니다, - P603

생각건대 저는 모든 것이 똑같다고 느낍니다, - P605

선한 심성이 없으면 일할 수 없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신의 일이기에, 그의 최고 임무는 다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오직 작업에만 매달리는 것,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작업만 생각하는 것이기에, 그는 정확하게 생각해야 했고 그는 정확하게 작업해야 했는데, 방문객들이 도료의 지식이 그의 영혼 안에 숨겨져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 마지막 질문을 잠시 곱씹더니ㅡ무슨 질문을 받았는지 잊어버린 사람처럼ㅡ말하길, 좋은 나무, 그게 기본입니다, - P607

가와모토가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절이나 신도 성지가 아니라 교토의 전부였으니, 서양인 친구가 이것을 감지한 것은 마침내 그들이 다이몬지산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로, 가와모토 상이 옆으로 비켜서서 그는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저 아래에는ㅡ지평선을 완전히 품은 채ㅡ실제로 도시 전체가 있었으며, 이즈음 어둠이 완전히 깔려 저 멀리 아래에서는 이미 불빛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는 이 광경에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었고, - P614

그때조차 그에게 여러 차례 떠오른 생각은 어느 날 이것이 끝날 것이고 운명은 그에게 다정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던바, 실로 운명은 그에게 다정하지 않아서 자신의 판결을 그에게 무정하게 집행하여, 이제 마지막 판결이 그를 낡아빠진 배에 태워 떠나 보내고 있었으니, 그의 앞에도 그의 뒤에도 그어디에도 무엇 하나 보이지 않고 그저 물과 끝없는 물뿐이었으니, - P626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것으로 충분해, - P647

우리가 용들에게 요구할 것도 없고,
용들 또한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 없소.
_자산子産 - P653

"마침표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속한 것이다."
_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P661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끝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침표는 신만이 찍을 수 있다. 그렇다면 글도 ‘문장들‘이 아니라 하나의 기다란 ‘문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P663

만연체는 모든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 책의 장 번호가 피보나치 수열인 데는 그런 까닭도 있을 것이다. 각 장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에서 펼쳐지지만 예술적·종교적 경험에 대한 저자의 일관된 관점에 의해 하나로 엮인다. 앞의 이야기는 독자가 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동시에 뒤의 이야기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얻어 더욱 풍성해진다. 열일곱 개의 이야기를 더한 숫자는, 그러므로 17이 아니라 2584다. - P663

만연체를 읽는 것은 어떤 면에서 명상과 비슷한 행위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글의 느린 흐름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 문장을 꼭꼭 씹지 않고 주어, 동사, 목적어만 후루룩들이켜며 허겁지겁 진도를 나가려다가는 체하기 십상이다. - P664

(현대의 지배적 글 형식인) SNS의 단문은 당과 같아서 즉각적인 쾌감을 선사하지만, 만족은 이내 결핍이 되어 또 다른 자극을 갈구하게 만든다. 마침표에 농축되어 있는 당을 한번 맛보면 다음번에는 더 일찍 맛보고 싶어진다. 한번 맛보면. 다음번에는. 더 일찍. - P665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가 말한다. "저자의 의식과 독자의 의식 사이에 진정으로 온전한 인간적 관계가 맺어지려면 독자는 자기 몫의 언어적 노력을 들여야 한다." - P665

까다로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문장의 표면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텍스트 속 세상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이렇게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감으로써 저자와의 관계를 유일무이한 "진정으로 온전한 인간적 관계"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 P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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