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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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즐릿은 당대 최고의 (반론이 없는)

형이상학자였다. 단순히 돈 많고 신분 높은

사람들을 멸시하고, 가난하거나 억압받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대중의 행복과는

대조적인 소수 계급의 교만과 권력을

혐오했다. 진정한 도덕적 용기가 있는 그는

도의를 위해. 인간성의 유익을 위해

이득과 명성을 포기했다.

p12

급진적인 이상주의자였던 영어권 최고의 에세이스트 '윌리엄 해즐릿'이 펼친 주장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또 만났다. 그는 오늘날 칼럼, 특집 기사, 논평 같은 글의 형식의 근간을 제공했다.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며 또박또박 단점을 지적한다면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거침없이 생각하고 말하는 대문자 T이지만, 옳은 말을 한다면 할 말 없게 만드는 연설가다. 지금 태어났다면 엄청난 인기와 안티가 있었을 것이며 SNS 팔로워도 많고 유튜브도 탑 계정이었을 것 같다.


대쪽같았던 해즐릿은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사회에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죽을 때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다가 1830년 런던 소호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한 일인가. 해즐럿이 바란 성공은 무엇이었을지, 원하는 바와 같은 삶을 살았는지 묻고 싶었다. 과연 행복했을까.



고상함을 가장하는 태도가 많은 곳에

반드시 두 배로 많은 상스러움이 있다. p95


책 속에는 손에 잡고 싶지만 잡기 힘든 것들이 서술되어 있다. 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지,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패션, 성공의 조건, 아첨꾼과 독재자, 사형에 관하여다. 19세기에 살던 그가 세상 이슈를 논리정연하게 비판한 날카로운 생각이 담겼다.

지금과는 거리가 있는 것도 있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21세기에 그 생각을 다시 읽어본다는 건 편협한 생각,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하고 다양함을 채워보겠다는 의지다. 조금만 늦게 태어나 정치를 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까. 그것도 영국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남북 간의 이데올로기까지 더해 엄청난 추종자가 따랐을 텐데..


아무튼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읽게 되었지만 느끼게 된 바가 많았다. 돈만 있으면 뭐든 가질 수 있는 런던에서 온전히 가질 수 없는 고독을 원했던 해즐릿. 타협 없이 꼿꼿하게 살다간 그의 곁은 아들과 찰스 램 단둘이 지켰다. 진정한 고독, 영원한 고독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제목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는 공간과 크기의 관념에 수반된, 어렴풋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의 색이 덧 입혀진 게 좋다고 생각하는 감정 때문이라 정의한다. 막연한 기대감, 희망, 소원이 매혹적인 공포로 채색된다고 말한다.

반면 '사람은 장소나 사물과는 달리 가까이 있거나 친할수록 더 호의적인 느낌을 주고, 장소와 사물이 멀리 있을수록 좋아 보이는 이유는 그것들을 비방하는 데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즉, 사람은 가까워져야 이롭기에 추측, 편견, 소문만으로 타인을 음해하거나 비판하는 일을 삼가라고 뜻이다.

매우 F적인 사람인 나는 해즐릿과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이런 어렴풋한 상상, 공상, 기대가 삶을 윤택하게 한다고 믿는다. 눈에 보이고 수치화된 이성적인 현상을 믿고 싶지만 때로는 먼 것을 추종하는 낭만을 적절히 결합하는 삶이 팍팍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라고 해석하고 살려 한다. 물론 잘 모르는 타인을 이렇다 저렇다 선입견 두는 일을 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게 21세기 한국에 사는 내가 멀고 가까워서 좋아 보이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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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 수동적으로 공격하는, 보이지 않는 악인들에 대하여
데비 미르자 지음, 김미덕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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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현적 나르시시스트? 생경한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흔히 나르시시스트라 불리는 유형은 자기 멋대로 굴며 자랑하기 바쁜, 흔히 밥맛이라 불리는 사람들인데, 이 책에 의하면 외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오히려 파악하기 쉽다고 한다. 문제는 숨어있는 내현적인(공개적으로 표나지 않음) 성향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길 바라기 때문에 어두운 속성을 숨긴다. 평판이 매우 중요하며 피해자(책에서는 생존자로 불림)들 대부분 여성이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가스라이팅과 트라우마를 겪어왔다. 마음, 정신, 신체를 심하게 파괴하는 유형이다. 피해자이지만 주변인이 그들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질타하기 때문. 눈을 크게 뜬다고 해도 찾기 힘든 유형이라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내 주변에도 에너지 뱀파이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있었던 거다. 지금은 스스로 차단하고 있지만 언제 또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들면서 자신의 피해자로 만들어 다가올지 모른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특정 유형의 사람을 찾는다. 그들은 친절하고, 진실하며, 자기 성찰적이고, 배려심 있고, 다정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그들의 에너지 공급원을 물색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이런 특성이 없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쓸모가 없다. 나르시시스트의 조종 전술이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p28



과대한 자의식, 지배력에 대한 환상, 과도한 존경을 필요로 하나 철저히 감춰 타인이 좋아하도록 만든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스스로 외톨이라며 놀아달라는 유형이 있다. 대화 초반에는 한없이 자신을 낮춘다. 친구가 없으니 내가 놀아줘야 한다는 결론인데, 나로서는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부담스럽다.

하지만 거절 못 하는 성격임을 아는 그 사람을 자기 필요할 때마다 약속을 잡아 자존감을 높인다. 이런 일은 반복되었고 자주 이용당했다. 역시 조종의 달인이다. 바보같이 끌려다니다니, 최근에 만나달라고 애원해서 만났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내 칭찬을 하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늘 자기 일상 업데이트에 시간을 다 할애하는데 내가 상담사도 아니고 시간을 착취 당하면서 커피값까지 낸다. 드디어 얼마 전 손절해야 할 타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학대는 세 패턴을 따른다고 한다. 첫 단계는 애정 공세(또는 이상화 단계), 폄하, 버림이다. 대부분 연애 단계에서 이 패턴이 일어나며 생존자(피해자)는 정신적, 정서적 피폐함을 느낀다. 그러나, 당신 잘못이 아니다. 본인 잘못으로 돌릴 경우 큰 사고를 겪을 수 있다. 그들은 가정, 학교, 직장, 사회 곳곳에 은밀하게 숨어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본인을 갉아먹는 주범을 눈 크게 뜨고 찾길 바란다. 나 또한 긴가민가했던 의심을 확신으로 굳히게 되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특징+


거짓말과 뒤집어씌우기

끊임없는 비판과 지적질

자신의 문제를 타깃에게 투사

행동에 항상 조건이 붙음

사람을 도구로 이용 함

사람 미치게 하는 대화법을 가짐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꾸며냄

통제와 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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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 확장판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지음, 윤태경.조기준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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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시작, 픽사의 어원


책은 저자 '에드 캣멀(Ed Catmull)'의 유년시절부터 시작한다. 그의 인생은 픽사의 출발이라 할만하다. 어릴 적 월트 디즈니를 우상처럼 생각하고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던 한 청년이 유대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애니메이션에 컴퓨터 작업을 접목하게 된 스토리를 근간으로 한다. 이후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사업 부분인 그래픽스 그룹의 부사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친숙한 이름 '픽사(Pixar)'는 앨비 레이 스미스와 로렌 카펜터가 지었다. 스미스는 '그림을 제작하다'라는 가상의 스페인어 동사 '픽서(pixer)'를 만들어 냈다. 일부 영어 명사가 스페인어 동사처럼 보이는 현상을 흥미로워했다. 반면 카펜터는 '레이더(Redar)'라는 이름이 하이테크적인 느낌이 난다고 생각해 둘을 합쳐 픽사라는 이름을 고안했다.

1986년 창업 후 하드웨어 기업에서 출발, 소프트웨어 기업을 거쳐 애니메이션 및 광고 제작사로 자리매김했다. 숱한 어려움에서도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면 관객도 보러 올 것이다'는 신념으로 버텼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란 편견은 깨고 어른들의 팬덤, 키덜트를 형성하게 된다. 일본 지브리 감성의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 말고 컴퓨터를 이용한 제작은 픽사의 성공으로 대세가 되어간다.


픽사의 시초, 토이스토리, 브레인트러스트


스티브 잡스가 픽사 건물을 설계했듯이. 독특한 디자인과 설계는 물론이고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도 독립적인 업무공간을 그렸다. 픽사 직원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작업 공간을 꾸미길 적극 권장하고 명패나 직책 없이 일한다. 창의성의 자유로움에서 시작되는 건지 모르겠다. 픽사는 사람(직원들의 근무 습관, 재능, 가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모든 창조적 핵심이 성공 비결이라 믿는다. 아이디어는 곧 사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재능 있는 인재를 얻는 게 중요하다.

창의적인 환경에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 후 2편에 착수할 때 스토리 수정을 분석할 팀(1세대)을 만들었다. '브레인트러스트'는 작품을 해부해 미진한 장면을 골라내는 집단이다. 이들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부 팀이며 즉 동료 평가다.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솔직하고 심도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영화의 감정 흐름을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분석해야만 한다.

지금은 유명인이 된 피트 닥터(인사이드아웃), 앤드류 스탠튼(월 E)이 멤버였다. (존 래스터, 조 랜프트, 리 언크리치 포함) 또한 1998년 <벅스 라이프> 제작 후 열린 첫 사후분석 회의를 통해 문제점을 알아간다. '노트데이'나 각족 회의를 통에 끝까지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집요함이 있기에 탄탄한 스토리와 성공이 보장되는 듯하다.


<토이 스토리 2>의 경우 작품의 핵심 플롯(집과 인형 박물관 사이를 고민하는 우디)은 같았으나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로 수정해 소포모어 징크스도 해결했다. <토이 스토리>는 당초 비디오용 B급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되었지만 직원들의 열정으로 픽사의 대표 IP가 되었다. 현재는 4편까지 나왔으며 픽사의 인기작이 나올 바탕이 되었다. 실수를 변명으로 돌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펼칠 때 한 뼘 더 성장했다. <토이 스토리 2>의 제작 과정은 큰 교훈을 남겼다.

공간의 힘은 실제로 효과가 크다. <오징어 게임>의 인터뷰를 다녔을 때 참가했던 모든 배우들은 세트장의 위협에 압도되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사람이 죽지 않지만 마치 매일 타인의 죽음으로 자신이 살아남았다며 안도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픽사의 기업문화인 '넉넉한 여유, 발칙한 상상력, 엉뚱한 이탈'은 성공의 핵심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픽사의 창작 원칙


10년여 만에 확장판이 출간된 《창의성을 지휘하라》를 영화 드라마 제작 업계 경영자에게 권하고 싶다. 원본을 수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포스트스크립트'를 삽입해 달라진 반응과 트렌드, 첨부할 이야기를 더했다. 픽사와 디즈니에서 일하며 애니메이션 업계의 미다스 손이 된 '에드 캣멀'의 가르침이다.

최신작 <토이 스토리 4>, <인사이드 아웃>, <주토피아>의 성공 스토리도 수록되었다. 픽사의 기업문화를 구축한 아이디어가 공유되어 있다. 디즈니 애니에이터들은 최정점인 1950년대 새 기술을 도입하고 응용했다. 블루 스크린, 멀티플레인 카메라(다단식 촬영대를 갖춘 애니메이션 촬영기기), 제로 그래피(사무용 복사기 등에 응용된 전자 사진법의 하나, 애니메이션에 도입해 셀을 복사하는 방식으로 작업능률 높임) 등 새 기술을 선보였다.


픽사의 정체성 및 창작 원칙은 이렇다.

1. 스토리가 왕이다.

2. 프로세스를 신뢰하라.

창의성을 발휘할 문화를 형성하는 지속적인 과정, 다양한 경영 전략이 소개되었다. 최고 경영자라도 모른다면 말단 직원에게 배워야 한다는 겸손을 더한 혁신도 논한다. 자신을 성찰하고 직원의 불만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책 표지는 지휘봉을 쥔 '버즈 라이트이어'다. 수많은 작품 캐릭터 중에 버즈를 쓴 이유가 있을 거다. 추측건대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 달 착륙 발자국의 주인공 버즈 올드린에서 따왔다. 영어로 라이트이어는 광년을 뜻하는데 <토이 스토리> 스핀오프인 <버즈 라이트이어>에 자세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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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플레임 2 엠피리언
레베카 야로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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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문학계 대세는 로맨스 판타지다. 20년 전 겨울이면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개봉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방학 & 데이트 무비로 즐거움을 달랬다. 그때 와 달라진 점은 바로 로맨스 첨가다. 어덜트 문학을 지나 최근 레베카 야로스의 은빛 팬덤 《포스 윙》 시리즈까지 왔다.

전편에 이어 더욱 스펙터클과 도파민을 추가해 돌아온 2권은 지도에서 사라진 아레티아에서의 시작한다. 반란 후 드래곤의 화염에 폐허가 된 아레티아의 6년 후 은빛 머리칼을 지닌 바이올렛 소른게일이 합류한다.

계속해서 반란을 도모하던 바이올렛. 이 거대한 전투 속 열세한 수와 모자란 기술력으로 정면 돌파를 택한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해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어 버린다. 결국 어둠의 힘을 무력화하고 드래곤 부화지를 지킬 마법의 장막을 세우기 위해 여섯 라이더가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


2권은 본격적인 전투신이 펼쳐진다. 하지만 제이든과 바이올렛의 감정 각성도 이루어지는데, 집안의 원수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둘의 관계 변화도 드라마틱 하다. 그 속에서 동료애와 가족애까지 함께 피어오른다.

참고로 1편에 이어 이중 커버다. 이랑 작가의 일러스트 버전과 책갈피가 포함되어 있으니 쏠쏠하게 챙겨가길. 소식에 의하면 3편은 내년에 출간된다는 현지 뉴스가 있었다.

저자 '레베카 야로스'의 인지도는 해외에서 역대급인 듯 하다. 네 아이는 주인공 바이올렛처럼 뼈와 관절이 쉽게 부러지는 병을 앓고 있다는 거다. 네 아이를 상징하는 듯한 바이올렛을 통해 실패와 절망, 상실을 겪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얻어내길 응원하고 있다. 작가의 삶과 작품의 연결고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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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여우전 - 구미호, 속임수의 신을 속이다
소피 김 지음, 황성연 외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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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구미호의 이야기는 매혹적인 드라마였다

p569



읽는 순간 '엇,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 싶은 소재와 페이지터너였다. 판타지 소설 유행을 타고 반드시 영상화해야 할 것 같은, 안 한다면 강력히 추천할 소설이다. 영화로는 수많은 캐릭터를 겉핥기 식으로 다룰게 뻔해, 시리즈로 만들길 추천한다. 따지자면 복합장르 소설인데 로맨스 판타지, 크리처, 추리, 코미디 등을 녹여냈다. 가성비를 따지는 요즘 세태에 적합한 가성비 높은  IP다. 한 번에 다양한 장르 변주의 즐거움, 한국 신화를 공부하는 의미, 캐릭터 사이의 관계성을 관찰하는 흥미도 잡을 수 있다.

인간, 저승사자, 귀신, 해태, 이무기, 도깨비, 불가사리, 구미호가 혼재된 기묘한 신신시(新神市, 서울과 수원 어디쯤)를 배경으로 1990년대 일어나는 판타지 세계관이라.. 듣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서사와 캐릭터다. 그중 주인공 석가와 하니의 관계성이 메인인데 속임수의 신을 속이는 구미호의 계략(?), 영리함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약 600년 전 몰락한 타락신 석가가 쿠데타를 일으켜 인류를 위협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제거하고 황제 환인(석가의 형)의 총애를 되찾으려 한다. 그중 배고픈 구미호도 포함인데 1888년 마음껏 먹겠다며 그 해를 뷔페로 삼았다는 전설의 주홍 구미호가 바로 김하니다. 둘은 90년대 신신시에서 운명적으로 만나는 데 석가는 까칠한 형사,  은퇴한 하니는 커피를 싫어하는 바리스타로 살아간다.

반역죄로 천계에서 쫓겨난 석가는 요괴 어둑시니와 주홍여우를 제거해야만 빠르게 복권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 질주를 해야 한다.  하니는 오히려 이를 방해하기 위해 언더커버가 되어 석가의 조수를 자처한다. 그러는 와중 물귀신의 소행으로 보이는 두 명의 익사 사건과 간이 사라진 사건을 쫓게 된다. 석가는 사건을 적극적으로 수사하려 들고 하니는 적극적으로 훼방놓는다. 둘의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상황 속에 로맨스가 피어나고 결국 하니는 여우 구술을 소진해 어둑시니를 퇴치한다. 인간을 잡아먹던 구미호가 인간 세상을 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석가는 형 환인을 찾아가 하니의 환생을 요구한다. 사랑은 인간계, 천상계 할 것 없이 모두를 변화시킨다.

안 그래도 노비 출신에서 마님까지 된 구덕이의 신분 상승 드라마 <옥씨부인전>을 보고 있어서일까. 빠른 전계와 관계성, 도파민 터지는 설정들이 흥미로웠다. 반전의 연속의 짜릿함과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비밀을 품은 전개는 스릴감을 높인다. <신과함께>의 업그레이드 버전, <그리스로마 신화>의 한국판이란 생각이다. 

한국의 전래동화, 신화, 전설 속 크리처가 다수 등장한다. 장산범, 어둑시니가 등장하니 한국영화 <장산범>, <클로젯> 이 떠오르고, 드라마 <도깨비>, <환혼>, <구미호뎐>이 연상되었다. 인연(운명)의 상징인 붉은실이 등장하는 것도 포함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한국의 뿌리를 살려 쓴 이야기가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말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유년 시절 놀이에 이어 한국적인 문화의 확장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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