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의 완벽한 고백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1
이정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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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라인에 등장해 현재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라인프렌즈 캐릭터. 이제는 글로벌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리지널 캐릭터 브라운앤프렌즈의 친구들이 스토리북 시리즈로 독자와 만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총 다섯 권의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시리즈는 연작소설 형태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웃음을 준다. 그중에서 브라운을 주인공으로 한 《브라운의 완벽한 고백》을 만나보았다.

 

 

 

책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라인프렌즈의 캐릭터 스토리를 알 수 있었다. 생동감 있는 스토리와 개성 뚜렷한 캐릭터들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조화를 이룬다. 노란 표지에 표정이 없어 새초롬한 브라운의 시그니처 얼굴과 하트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특별함이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가슴 따뜻하고 세심한 브라운은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능동적인 캐릭터다. 여자친구 코니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브라운의 진심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스토리를 더 추가해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사랑받을 확실한 콘텐츠다.

 

브라운은 의외로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거절도 잘 못하고, 무섭다고 말도 안 하는 배려심 많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브라운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어른이를 꺼내 보며 함께 웃고 웃을 수 있어 행복했다. 다음 편들도 무척 기대되었다.

 

《샐리의 비밀스러운 밤》, 《코니의 소중한 기억》, 《초코의 달콤한 상상》, 《브라운과 친구들》도 읽어보면 좋겠다. 에코백이나 조금 큰 핸드백에도 들어갈 만한 크기라 부담 없이 이동하면서 읽기 좋다. 라인프렌즈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사랑해마지않는 캐릭터 소설을 사 모으는 쏠쏠한 재미도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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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토머스 린치 외 지음, 김소정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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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주목받는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인체 기관들을 소재로 문학적인 글을 펴냈다. 몸에 대한 탐구 에세이다. 자궁, 콩팥, 갑상샘, 맹장, 담낭, 피부, 코, 폐, 귀, 창자, 눈, 대장, 뇌, 피, 간.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큰일인 각각의 쓰임새를 작가들은 어떻게 표현했을지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여성은 약해 빠진 제2의 성이 아니라 여성이야말로 시(詩)의 언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제1의 성, 가장 맹렬한 성이 아닐까 싶다. (중략)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휘집을 살펴보면 우리 인간이 느끼는 소리와 감각은 무덤(grave)과 임신한 (gravid)이라는 단어가 어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숙함(gravitas)도 중력(gravity)도 은총(grace)도 감사(gratitude)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언어 가운데 가장 문명하게 운율을 맞추고 있는 단어는 자궁(womb)과 무덤(tomb)다.

P246-252

 

그들 각자의 기억은 어떤 몸과 연결되어 있을까? 피부는 대략 한 달에 한 번씩(약 28일) 새로 태어난다. 새롭게 한 달에 한 번씩 표피를 갈아입는 것이다. 어쩌면 한 달 전 피부에 맞추어 산 로션을 한 달 후에 다른 것을 바꿔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궁은 인간이 가장 먼저 만나는 장기다. 작가는 자궁을 집에 비유했다. 집세도 무료에 안락하고 먹을 것도 무한대로 제공하는 엄마 안의 요람. 우리는 요람(자궁)에서 생겨 요람(관)에서 사라진다.

 

 

간은 어떨까? 간은 해독작용을 하는 장기로 서양에서는 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신화 속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사람들은 간이 생명과 지능, 불멸하는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창자는 우리의 불안이 머무는 곳이다. 음식을 계속 먹고 소화하는 행위는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다. 음식물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변으로 만들어져 빠져나가는 장기도 창자다.

 

 

코는 우리가 표정을 지울 수 있게 돕는다. 코가 없다면 예전부터 가짜 코를 만들어 붙여 다녔다. 요즘은 낮은 코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성형으로 충분히 만들어 다닐 수 있다. 코가 없다면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맛도 느낄 수 없다. 먹는 즐거움 맛의 향연을 즐길 수 없다. 때문에 냄새는 기억과 함께 한다.

 

 

눈은 두개골 안에 자리 잡고 뇌의 단독의 시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내가 본 것을 남과 나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눈과 같이 만들어 낸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함께 나누기도 한다. 현대인의 시력은 가상현실과도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반영된 MBC 프로그램 [너를 만났다]는 기술의 진보를 좋은 영역에 대입한 예다. 아이를 병으로 잃은 엄마에게 VR로 만들어 준 상상의 영역은 이제 영화를 떠나 일상에 들어올 준비를 마쳤다.

 

 

이 책은 영국 BBC 라디오 3에서 방송된 ‘몸에 관한 이야기(A Body of Essays)’를 모아 엮은 것이다. 15명의 작가가 어떤 구애 없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구현했다. 질병, 가족, 개인사, 기능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시도이면서 쉽게 잊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건강하게 일하고 쉴 수 있는 내 몸을 소홀히 한 일을 반성하며 좀 더 아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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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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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었을 때는 거부감이 큰 만화 에세이였다. 엽기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진솔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선입견을 단숨에 거두어 버렸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진도 나가기 힘들었다. 나에게도 곧 닥칠 일이니까 말이다.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췌장을 먹는다는 의미는 췌장암에 걸린 소녀를 사랑한다는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죽으면 내 췌장을 먹게 해 줄게", "누가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살 수 있대"라는 아픈 대사가 나온다. 할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내가 대신 아파해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직설적인 표현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사람, 그 사람이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본다.

 

 

 

작가 미야가와 사토시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누적 조회수 500만 뷰를 돌파한 만화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절대 우리 엄마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병이 엄마를 덮친다. 이미 손쓸 수 없는 암 말기 엄마와 투병생활을 겪으며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결국 엄마는 이 세상을 떠나갔지만 언제나 사토시 곁에서 함께 한다.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수십 통의 전화를 귀찮게 하던 엄마. 하지만 이제 그 전화는 오지 않고 전화번호까지 지우지 못한다. 세상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던 엄마표 카레. 이제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지만 아내가 배운 엄마표 카레로 어렴풋이 기억하게 된다.

엄마와 자주 갔던 장소, 엄마의 유품 등 관계된 모든 것이 가까이에서 바늘이 되었지만 사토시는 시간과 함께 성숙해지고 기억하는 법을 차례차례 배워간다. 죽음은 썰물 같아서 서서히 빠져나갈 뿐 막지 못하는 것이다.

 

모자만의 특별함이겠지만 어릴 적 큰 병을 앓았던 사토시를 간호하던 엄마의 의지는 시간이 흘러 엄마의 병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꼭 낳을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미친 자신감. 몰래 회복기원 100일 기도를 다니던 일, 건강에 좋다는 야채주스를 빠지지 않고 해주던 일 등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더 해드리지 못해 아쉬운 게 자식 된 도리다.

 

나도 언젠가는 겪을 일이기 때문에 완벽한 공감은 어렵지만 준비하는 자세로 읽을 수 있었다. 과연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엄마지만 죽은 시체 옆에서 무섭지 않을까?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가져가는 일은 안될까? 어차피 엄마의 몸의 일부인 나는 엄마의 유골을 먹어 영원히 간직하면 안 되는 것일까?

 

 

 

저자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충동적으로 든 생각을 메모했고, 훗날 이 책의 제목으로 정했다.

제목이 다소 충격적이지만 아예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은 아니다. 김윤석 감독이 영화 <미성년>에서는 미숙아로 태어나 죽은 동생의 유골을 우유에 타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생각하지도 못한 그 장면에서 아연질색했지만, 영화관을 빠져나가면서 또 다른 애도의 방법이라고 이해했다. 사람마다 애도하는 방식은 다른 것이다.

 

실제로 파푸아뉴기니 포레족의 경우 장례 풍습 중에 하나였는데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이 책의 내용은 눈물을 쏙 빼는 감동과 사랑,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혹시라도 선입견으로 펼쳐보지 않을 독자를 위해 말하고 싶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고 그 곁을 지켜주는 것만큼 하기 힘든 일도 없다는 것! 나는 부모님과의 추억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해 아쉽고, 한편으로 영원히 책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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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사랑학 수업 -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불안한 당신에게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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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은 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할 때 하는 행동이다.

P128

 

사랑을 책과 미디어(드라마, 영화 등)로 배운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콘텐츠가 추구하는 컨셉에 잘 못 말려들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 종종 사랑 한번 못 해본 주인공이 엉뚱한 행동과 이상한 말로 퇴짜 맞는 장면은 코미디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기도 하다. 이 책을 만났다면 소장하고 있는 연애지침서를 모두 버리길 바란다. 이제부터 좀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자 마리 루티는 하버드대에서 사랑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느낀 선입견, 변화들을 정리했다. 우리 주변에 이미 정설로 통하는 사랑에 관한 정의 잘못된 통념을 부수는 이야기가 많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 화성과 금성에서 와서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배웠는가? 여성이고 남성이고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영혼이 있는 존재인 점을 자각하라 말한다.

 

 

먼저 남성에서 사랑받기 위한 방법, 남성을 조종하고 관계의 우위를 가지는 방법, 밀땅을 해야 성공한다는 말 등. 남성이 원하는 것을 위해 여성이 할 일이란 따로 없다. 서로 동등하게 바라보고 존중해주면 그만이다.

 

 

때론 단순한 공식에 휘말려 관계를 망치기 전에 자존감을 키우라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거절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기 전에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해보자. 당신의 당당함이 빛나면 상대방은 그 빛을 따라온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나를 한 인격체로 대한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그래도 사랑이 어렵다고? 꼭 상대방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할 때,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판타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야말로 제일 버림받기 좋은 방법이다.

P106

 

인간은 모두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랑하고 배신하고 이별한다. 사랑은 느닷없이 빠져들고 사라지기도 한다. 불가항력이란 거다. 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의 실패로 간주해서도 안된다. 이번 사랑을 통해 배운 것을 간직하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가면 된다.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실패한 사랑이 때로는 가장 의미 있는 사랑일 때도 있다.

P213

 

 

내가 너무 쉽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나도 다 겪어봐서 안다. 감상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당신의 몸과 마음만 병날 뿐이다. 이별하면 세상이 모두 끝나버린 것 같고, 밥맛도 없으며, 세상 노래의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같았던 감정도 사랑처럼 식어버린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사랑은 찾아오게 되어 있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대략 3년이라고 한다. 불타올랐던 정열이 점점 식어버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랑 말고 믿음, 행복, 정(情) 등 또 다른 감정을 하나씩 쌓아 올리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 주자.

 

 

 

어제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발견한 영화 <어쩌다 로맨스>는 로코를 믿지 않는 건축가 여주인공이 갑자기 사고로 로코 세상에 갇히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말미에는 사랑을 믿지 않던 여주인공이 증오하던 로코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 그리고 사랑을 쟁취하는 법을 알아가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이 책과 함께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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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박산호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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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과장하지 않은 단순함과 여백이 주는 공허함이 공포로 다가올 때가 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에 무엇을 채워야 할 때의 공포, 사위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의 두려움을 느껴 본 적 있는가. 인간의 탄성 회복력은 제각각이라 감당할 수 없는 우울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기도 하다.

 

맨부커상 그래픽 노블 최초 후보작인 《사브리나》는 사람이 어떻게 미디어와 SNS로 서서히 미쳐가는지를 체험할 수 있다. 되도록이면 기분이 좋을 때 읽기 바란다.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 책장을 덮고 나면 멋모를 찝찝함이 당신을 잠식할지 모른다.

 

 

사브리나는 한 달 전에 실종되었다. 남자친구인 테리는 친구 캘빈을 찾아간다. 실은 둘 사이가 동창이긴 하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다. 아무렴 어떤가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는걸. 누가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테리는 전혀 연고가 없는 친구를 통해 사브리나 실종의 아픔을 극복하고 싶었을지 누가 알까.

 

 

 

 

군인인 캘빈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친구를 위해 최대한 따스한 보살핌을 준다. 하지만 출근을 해야 하는 통에 제대로 끼니를 챙겨주지 못해 안타깝다. 캘빈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내와 딸 씨씨와 재결합을 원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무관심에 몸서리치며 떠났다. 직장에서는 위험한 임무에 1순위 추천서가 들어와 있는 상태다. 캘빈 또한 누구를 위로해줄 처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무력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 사브리나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뜻밖에도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말이다. 그들은 수상한 비디오를 보고 신고한 것이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잔인한 살해 과정이 담겨 있다. 그렇다. 사브리나는 잔혹하게 죽었다. 범인은 다른 곳에서 이 영상을 보냈고, 삽시간에 영상은 퍼진다. 

 

 

 

 

 

 

이 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조용히 잠식하는 분위기에 있다.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가짜 뉴스가 SNS를 통해 퍼진다.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한 언론은 최소한의 윤리조차 지키지 않는다. 왜곡된 사실, 루머, 음모론, 카더라 통신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타고 급속도로 커진다. 이러한 사건 하나하나가 켜켜이 쌓여 확증편향으로 번진다.

 

우리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되묻고 있다. 믿음을 빌미로 누군가를 상처 내고, 자신도 상처받고 있는지를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 정신병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이는 미국 내 뿌리 깊은 불신과 합세하여 마녀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집요하고 괴팍한 행동들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에게 발현될 수 있는지. 악의 평범성도 들여다보게 한다. 익명성이란 커다란 가면은 평범한 사람도 악마로 만들어주는 힘센 존재다.

 

 

 

 

 

《사브리나》는 등장인물들의 무표정, 말을 아끼는 적막, 단순한 그림체, 모노톤, 여백이 주는 무한함을 보여주며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단순히 사브리나를 해친 범인을 찾는 일차적인 방법보다 이를 통해 주변인인 사브리나의 동생 산드라, 애인 테디, 테디의 친구 캘빈까지. 그들의 삶이 서서히 파괴되고 있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과장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과장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서히 상대방의 잠식하는 가운데 고요한 불친절이 기분 나쁘다.

 

 

 

 

예술은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이 아니다. 불편한 일을 굳이 입에 올려 공론화하는 일이 예술이 가진 힘이요. 궁극적인 목적일 수 있다. 때문에 그래픽 노블 최초로 맨부커상 후보에 오를 정도의 통찰력을 그림이라는 매체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영상이나 텍스트가 주는 울림과도 또 다른 상태의 자극을 《사브리나》를 통해 느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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