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들었을 때는 거부감이 큰 만화 에세이였다. 엽기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진솔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선입견을 단숨에 거두어 버렸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진도 나가기 힘들었다. 나에게도 곧 닥칠 일이니까 말이다.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췌장을 먹는다는 의미는 췌장암에 걸린 소녀를 사랑한다는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죽으면 내 췌장을 먹게 해 줄게", "누가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살 수 있대"라는 아픈 대사가 나온다. 할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내가 대신 아파해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직설적인 표현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사람, 그 사람이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본다.

 

 

 

작가 미야가와 사토시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누적 조회수 500만 뷰를 돌파한 만화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절대 우리 엄마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병이 엄마를 덮친다. 이미 손쓸 수 없는 암 말기 엄마와 투병생활을 겪으며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결국 엄마는 이 세상을 떠나갔지만 언제나 사토시 곁에서 함께 한다.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수십 통의 전화를 귀찮게 하던 엄마. 하지만 이제 그 전화는 오지 않고 전화번호까지 지우지 못한다. 세상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던 엄마표 카레. 이제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지만 아내가 배운 엄마표 카레로 어렴풋이 기억하게 된다.

엄마와 자주 갔던 장소, 엄마의 유품 등 관계된 모든 것이 가까이에서 바늘이 되었지만 사토시는 시간과 함께 성숙해지고 기억하는 법을 차례차례 배워간다. 죽음은 썰물 같아서 서서히 빠져나갈 뿐 막지 못하는 것이다.

 

모자만의 특별함이겠지만 어릴 적 큰 병을 앓았던 사토시를 간호하던 엄마의 의지는 시간이 흘러 엄마의 병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꼭 낳을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미친 자신감. 몰래 회복기원 100일 기도를 다니던 일, 건강에 좋다는 야채주스를 빠지지 않고 해주던 일 등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더 해드리지 못해 아쉬운 게 자식 된 도리다.

 

나도 언젠가는 겪을 일이기 때문에 완벽한 공감은 어렵지만 준비하는 자세로 읽을 수 있었다. 과연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엄마지만 죽은 시체 옆에서 무섭지 않을까?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가져가는 일은 안될까? 어차피 엄마의 몸의 일부인 나는 엄마의 유골을 먹어 영원히 간직하면 안 되는 것일까?

 

 

 

저자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충동적으로 든 생각을 메모했고, 훗날 이 책의 제목으로 정했다.

제목이 다소 충격적이지만 아예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은 아니다. 김윤석 감독이 영화 <미성년>에서는 미숙아로 태어나 죽은 동생의 유골을 우유에 타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생각하지도 못한 그 장면에서 아연질색했지만, 영화관을 빠져나가면서 또 다른 애도의 방법이라고 이해했다. 사람마다 애도하는 방식은 다른 것이다.

 

실제로 파푸아뉴기니 포레족의 경우 장례 풍습 중에 하나였는데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이 책의 내용은 눈물을 쏙 빼는 감동과 사랑,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혹시라도 선입견으로 펼쳐보지 않을 독자를 위해 말하고 싶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고 그 곁을 지켜주는 것만큼 하기 힘든 일도 없다는 것! 나는 부모님과의 추억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해 아쉽고, 한편으로 영원히 책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부럽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버드 사랑학 수업 -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불안한 당신에게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밀당은 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할 때 하는 행동이다.

P128

 

사랑을 책과 미디어(드라마, 영화 등)로 배운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콘텐츠가 추구하는 컨셉에 잘 못 말려들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 종종 사랑 한번 못 해본 주인공이 엉뚱한 행동과 이상한 말로 퇴짜 맞는 장면은 코미디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기도 하다. 이 책을 만났다면 소장하고 있는 연애지침서를 모두 버리길 바란다. 이제부터 좀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자 마리 루티는 하버드대에서 사랑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느낀 선입견, 변화들을 정리했다. 우리 주변에 이미 정설로 통하는 사랑에 관한 정의 잘못된 통념을 부수는 이야기가 많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 화성과 금성에서 와서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배웠는가? 여성이고 남성이고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영혼이 있는 존재인 점을 자각하라 말한다.

 

 

먼저 남성에서 사랑받기 위한 방법, 남성을 조종하고 관계의 우위를 가지는 방법, 밀땅을 해야 성공한다는 말 등. 남성이 원하는 것을 위해 여성이 할 일이란 따로 없다. 서로 동등하게 바라보고 존중해주면 그만이다.

 

 

때론 단순한 공식에 휘말려 관계를 망치기 전에 자존감을 키우라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거절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기 전에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해보자. 당신의 당당함이 빛나면 상대방은 그 빛을 따라온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나를 한 인격체로 대한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그래도 사랑이 어렵다고? 꼭 상대방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할 때,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판타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야말로 제일 버림받기 좋은 방법이다.

P106

 

인간은 모두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랑하고 배신하고 이별한다. 사랑은 느닷없이 빠져들고 사라지기도 한다. 불가항력이란 거다. 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의 실패로 간주해서도 안된다. 이번 사랑을 통해 배운 것을 간직하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가면 된다.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실패한 사랑이 때로는 가장 의미 있는 사랑일 때도 있다.

P213

 

 

내가 너무 쉽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나도 다 겪어봐서 안다. 감상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당신의 몸과 마음만 병날 뿐이다. 이별하면 세상이 모두 끝나버린 것 같고, 밥맛도 없으며, 세상 노래의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같았던 감정도 사랑처럼 식어버린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사랑은 찾아오게 되어 있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대략 3년이라고 한다. 불타올랐던 정열이 점점 식어버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랑 말고 믿음, 행복, 정(情) 등 또 다른 감정을 하나씩 쌓아 올리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 주자.

 

 

 

어제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발견한 영화 <어쩌다 로맨스>는 로코를 믿지 않는 건축가 여주인공이 갑자기 사고로 로코 세상에 갇히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말미에는 사랑을 믿지 않던 여주인공이 증오하던 로코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 그리고 사랑을 쟁취하는 법을 알아가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이 책과 함께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박산호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때로 과장하지 않은 단순함과 여백이 주는 공허함이 공포로 다가올 때가 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에 무엇을 채워야 할 때의 공포, 사위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의 두려움을 느껴 본 적 있는가. 인간의 탄성 회복력은 제각각이라 감당할 수 없는 우울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기도 하다.

 

맨부커상 그래픽 노블 최초 후보작인 《사브리나》는 사람이 어떻게 미디어와 SNS로 서서히 미쳐가는지를 체험할 수 있다. 되도록이면 기분이 좋을 때 읽기 바란다.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 책장을 덮고 나면 멋모를 찝찝함이 당신을 잠식할지 모른다.

 

 

사브리나는 한 달 전에 실종되었다. 남자친구인 테리는 친구 캘빈을 찾아간다. 실은 둘 사이가 동창이긴 하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다. 아무렴 어떤가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는걸. 누가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테리는 전혀 연고가 없는 친구를 통해 사브리나 실종의 아픔을 극복하고 싶었을지 누가 알까.

 

 

 

 

군인인 캘빈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친구를 위해 최대한 따스한 보살핌을 준다. 하지만 출근을 해야 하는 통에 제대로 끼니를 챙겨주지 못해 안타깝다. 캘빈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내와 딸 씨씨와 재결합을 원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무관심에 몸서리치며 떠났다. 직장에서는 위험한 임무에 1순위 추천서가 들어와 있는 상태다. 캘빈 또한 누구를 위로해줄 처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무력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 사브리나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뜻밖에도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말이다. 그들은 수상한 비디오를 보고 신고한 것이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잔인한 살해 과정이 담겨 있다. 그렇다. 사브리나는 잔혹하게 죽었다. 범인은 다른 곳에서 이 영상을 보냈고, 삽시간에 영상은 퍼진다. 

 

 

 

 

 

 

이 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조용히 잠식하는 분위기에 있다.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가짜 뉴스가 SNS를 통해 퍼진다.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한 언론은 최소한의 윤리조차 지키지 않는다. 왜곡된 사실, 루머, 음모론, 카더라 통신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타고 급속도로 커진다. 이러한 사건 하나하나가 켜켜이 쌓여 확증편향으로 번진다.

 

우리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되묻고 있다. 믿음을 빌미로 누군가를 상처 내고, 자신도 상처받고 있는지를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 정신병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이는 미국 내 뿌리 깊은 불신과 합세하여 마녀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집요하고 괴팍한 행동들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에게 발현될 수 있는지. 악의 평범성도 들여다보게 한다. 익명성이란 커다란 가면은 평범한 사람도 악마로 만들어주는 힘센 존재다.

 

 

 

 

 

《사브리나》는 등장인물들의 무표정, 말을 아끼는 적막, 단순한 그림체, 모노톤, 여백이 주는 무한함을 보여주며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단순히 사브리나를 해친 범인을 찾는 일차적인 방법보다 이를 통해 주변인인 사브리나의 동생 산드라, 애인 테디, 테디의 친구 캘빈까지. 그들의 삶이 서서히 파괴되고 있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과장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과장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서히 상대방의 잠식하는 가운데 고요한 불친절이 기분 나쁘다.

 

 

 

 

예술은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이 아니다. 불편한 일을 굳이 입에 올려 공론화하는 일이 예술이 가진 힘이요. 궁극적인 목적일 수 있다. 때문에 그래픽 노블 최초로 맨부커상 후보에 오를 정도의 통찰력을 그림이라는 매체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영상이나 텍스트가 주는 울림과도 또 다른 상태의 자극을 《사브리나》를 통해 느껴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아씨들 1 펭귄클래식 10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글 쓰는 여성은 아름답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꿈을 이루고 싶은 모든 여성들은 아름답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존경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에 앞선 원작 선택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감독 '그레타 거윅'이 리메이크한 영화 <작은 아씨들>에 대한 열기가 심상치 않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6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어 있기도 할 뿐만 아니라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감독과 여성 캐릭터들의 여성 서사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5년 작과 2020년 작은 분명 25년의 차이처럼 원작을 해치지 않으면서 진보한 여성 캐릭터를 만나볼 것으로 기대한다. 현 가장 주목받는 청춘 남녀의 캐스팅으로 개봉을 앞두고 원작을 읽어보았다.

영화는 시간 제약 안에 원작을 영상으로 압축해야 하기 때문에 생략하거나 새롭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이나 영화를 보고 난 후 풀리지 않는 의문, 캐릭터에 대한 충분한 공감이 필요하다면 원작을 꼭 읽어 볼 것은 권한다. 1권에서는 소녀들의 유년시절을 2권에서는 성인시절을 다루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다양한 출판사의 버전이 존재하지만 번역가, 출판사에 따라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펭귄클래식코리아의 《작은 아씨들》 을 선택했다.

이유는 첫째, 방대한 이야기를 한 권으로 만나보는 양장본도 좋지만 이동하며 읽기에 불편하기 때문에 1,2권으로 나뉘어 있는 책을 택했다. 현재 영화 개봉과 함께 띠지나 표지 갈이를 했거나 새롭게 일러스트 버전도 있다.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대략 출판사는 알에이치코리아, 윌북, 인디고,펭귄클래식코리아 등이 있다.

둘째, 무엇보다 펭귄클래식은 오리지널 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 명화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다. 클래식한 삽화 때문인지 소장 가치 또한 충분하다.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인 소설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은 실제로 19세기 미국 네 자매와 어머니와의 유대관계를 반영한 자전적인 소설이다. 아버지 '에이머스 브론슨 올컷'은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활동가의 역할이 자녀들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네 자매 중 둘째 '조'는 '루이자' 자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남북전쟁이 한창인 1862년에 입대, 야전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얻은 경험으로 《병원 스케치》를 쓴다.

성(性), 결혼, 사랑에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 루이자는 서른세 살에 본격적으로 프로 작가에 입문하게 된다. 직업 선택이 어려운 당시 상황에서 파격적인 행보다. 처음으로 성공을 안겨준 작품은 《병원 스케치》다. 가족들은 루이자를 착한 딸이면서도 반항적인 공상가였다고 말하는데 《작은 아씨들》에 묘사된 조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루이자는 결혼으로 여성의 삶이 결정되는 때에 태어나 작가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루이자가 글 쓰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경제적인 자립이었다. 여성의 집필을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도 일맥상통한다.

1868년 첫 발표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은 아씨들》 은 네 자매의 다양한 성격에 자신을 투영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소녀들을 위해 썼지만 다양한 분야와 세대에서 사랑받고 있다.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성공적인 작가로 안정적인 생활을 안겨주었다.

21세기에도 유효한 여성들의 워너비 모델

 

 

추측건대, 크리스마스 아침 이 도시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하고 돌아서던 이 네 명의 굶주린 소녀들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비록 자신들의 아침을 나눠주는 바람에 빵과 우유로 만족해야 했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아침을 열었으니 말이다.

P 69

 

 

《작은 아씨들》 은 여성 성장소설이다. 성평등이란 판타지를 이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인 부족함 없이 화목한 가정이지만 아버지의 군 복무로 가세가 기운 가정은 겨울, 크리스마스 풍경으로 시작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세상을 온 예수의 생일. 일 년 중 가장 풍족하고 즐거운 날이지만 청빈한 기독교 집안에서 사치란 없다.

네 자매와 어머니는 전쟁 중인 상황과 '너 자신보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한다. 작지만 먹을 빵을 나누고, 최소한의 선물로 마음을 전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소설 중에 가장 따뜻한 오프닝이다. 《작은 아씨들》 은 물질적인 풍요와 성공보다 마음의 풍요를 말하고 있다.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여성의 눈과 목소리를 투영한다는 점이 고전으로 불리는 이유라 하겠다. 네 자매의 뚜렷한 캐릭터성은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신 자체라 할 수 있다. 4인 4색의 인물들은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꾸려나가고 있다.

첫째 메그는 결혼을 통해 안락한 가정을 꿈꾸는 19세기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이다. 연기에 관심 있고 네 자매중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 둘째 조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진출이 허락되지 않아 자매들이 즐겨 하는 연극 시나리오를 쓰며 습작을 이어나간다. 다혈질에 말괄량이이며 연극에서는 늘 남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옆집에 이사 온 소년 로리와 친구가 된다.

셋째, 베스는 피아노 치길 좋아하고 집안일을 즐긴다. 조용하고 섬세하며 착한 성품을 지녔으며 희생적인 성격을 가졌다. 넷째 에이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 많은 부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가장 어리지만 자신의 의견이 분명하다. 돈이 가진 물질만능주의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훗날 부유한'마치' 숙모 할머니의 후원으로 그림을 공부한다.

어머니 마치 부인은 모두 자신만의 짐을 짊어지고 산다는 말을 한다. 남북전쟁의 종군목사로 복역 중인 남편의 대신해 집안의 가장이 된다.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고 솔선수범하는 선행은 네 자매를 올곧게 키워낸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등에 진 짐이 버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겠지만 모두 각자의 혜안으로 짊어지는 방법을 터득하길 바란다. 그야말로 밥상머리 교육의 산실이다.

 

 

 

원작으로 만나 본 《작은 아씨들》 은 19세기에 쓰인 시대상이지만 21세기에 읽어봐도 전율을 느낄 정도로 '조'에게 푹 빠져버렸다. 1995년 영화는 조를 아예 화자로 세워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네 자매와 주변 인물을 바라보고 있다. 조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것도 좋지만 어떤 사람은 베스의 관점으로 서술되길 바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원작에서는 영화에 다 담지 못한 자매들의 사소한 성격과 행동마저도 알 수 있어 각각의 매력이 뚜렷이 발산된다.

더욱 풍성하고 세밀한 인물 묘사 덕분에 조와 이탈리아 귀족 출신인 '로리'와 왜 이어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지날 날이 정리되었다. 세상을 알게 된 어른이 되고 보니 결혼을 선택한다면 꾸준히 쓸 수 없었던 조조에게 공감했다. 《작은 아씨들》 은 단순한 성장소설 이상이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향해 나가아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즘 소설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증언들》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발표한 《시녀 이야기》이후 34년 만에 내놓은 후속작이므로 2019 부커 상을 수상했다. 살아 있는 전설이자 여성 인권의 대모이기도 한 마거릿 애트우드는 전작 《시녀 이야기》를 통해 성과 권력의 어두운 상관관계를 드러냈었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도구나 하층 계급으로 전략한 디스토피아의 날섬이 언어적인 폭력으로 그려져 있다.

 

 

 

 

"거짓 증언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통상적인 관행이었어요. 미덕과 순수의 외면 밑에서 길리어드는 썩어 가고 있었지요. " p438

 

 

 

 

계급 사회인 '길리어드'에서 오로지 아이를 낳기 위한 씨받이 시녀들은 빨간 옷과 얼굴을 가진 챙이 큰 모자를 쓰고 파란 옷을 입은 아내들의 증오를 받으며 살아가야 했다. 인권이란 건 없다. 남성들에게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보일 테면 유혹의 원인 제공자가 된다. 오로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 사령관의 관계에만 이용되고 아이를 낳는다.

 

 

 

 

길리어드에서 여성들은 철저히 계급화되어 있고, 누구도 운명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이후 미드 '핸즈메이드 테일'로 만들어져 활자가 주었던 상상력을 멋지게 시각화하기에 이른다.

 

 

 

 

《증언들》은 길리어드 이후의 이야기로 30여 년간 독자들의 질문에서 탄생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는 세 여성의 화자가 등장하게 된다. 길리어드 최고의 권력자 '리디아 아주머니'와 길리어드에 사는 '아그네스', 길리어드와 반대되는 세력인 메이데이에 사는 '데이지'가 등장한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자신이 어떻게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와 길리어드의 다양한 인물은 기록하는 화자이다. 이는 '아르두아 홀 홀로그래프'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고. 증언 녹취록 369A, B로 나뉘어 두 소녀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 낸다.

 

초반에는 이 세 인물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되지만 중반부터는 한 시점으로 합쳐지며 드라마틱 한 구조가 완성된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 힘은 무엇보다도 상당한 분량의 촘촘한 이야기다.

 

 

판사 출신의 50세 여성 리디아 아주머니와 창설자들이라 불리는 아주머니들과의 알력, 길리아드에서 메이데이로 빼앗겼다는 신성화된 '아기 니콜', 종교를 빌미로 사람들의 두려움을 권력으로 이용하는 길리아드의 부패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길리어드의 체계를 만든 창설자 중 하나이며 여성들을 교육하는 계급 아주머니들의 최상, 길리어드의 최고 권력자로 올라선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빌어 보고 들을 것을 쓰기 시작한다. 독자는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재미와 하나씩 드러나는 관계의 스릴을 만끽하게 된다.

 

 

"네 시녀가 네 침대에서 죽으면

그녀의 피가 네 머리에 걸린다.

네 시녀의 아기가 죽으면

네 삶은 눈물과 한숨.

네 시녀가 출생 중에 죽으면

저주가 세상 끝까지 너를 따라다니리라."

p156

 

 

또한 길리어드의 소녀 아그네스는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며 헤쳐나갈 험한 여정과 친구들의 희생을 감내하는 성장을 겪게 된다. 아버지뻘 되는 저드 사령관과 조혼하게 될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진짜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그네스는 상황을 거부할 수 없지만 운명을 받아들이기 보다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드라마틱 한 인물인 데이지는 부모라고 믿었던 닐과 멜라니의 죽음으로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길리어드 난민단체 생추케어를 지나 진주 소녀 제이드로 위장해 길리어드에 위장 잠입하게 된다. 이로써 만나게 되는 뜻밖의 인연은 이 소설의 큰 반전 중 하나다. 이 관계의 시작도 여성 마지막도 여성이란 점이 페미니즘적으로 잘 구현되어 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 p147

 

 

 

 

《증언들》의 가장 큰 수확은 여성이 한낱 권력의 시종을 전락한 디스토피아에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희망으로 성장한다는 데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고무적인 성과이면서도 이들의 거친 생존 과정을 함께 하며 진정한 전우애를 느낄 수 있음이다.

 

 

 

 

아이들에게 성적 관심 있는 가진 남성, 조혼으로 아내들은 액세서리로 쓰다 버리는 잔혹한 남성들의 척결은 통쾌한 대리만족을 준다. 신의 대리자로 불리는 아주머니들이 권력의 상층부에 있다는 점 또한 현 권력 전복의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600P에 달하는 상상 속의 기록을 따라가는 동안 희열과 씁쓸함의 상반된 감정이 동반되는 독서였다. 무엇보다도 연대순으로 따지면 《시녀 이야기》를 먼저 읽고 최근 그래픽 노블로 발간된 《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를 보면 좋다. 그 사이에 텍스트로 상상했던 것들의 완벽한 시각화를 미드 '핸드메일즈 테일'로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물론 시간이 없다면 미드나 그래픽 노블을 보고 대충의 분위기를 파악한 후 최근작 《증언들》을 읽어봐도 좋겠다. 하지만 뭐든 상관없다고 본다. 시간은 완벽하게 빨리 흘러간다.

 

 

 

《증언들》에서는 《시녀 이야기》와 드라마에 담긴 기본 정보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무엇이 먼저이든 당신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적나라한 묘사와 상상력에 한 번, 혹시라도 이름을 달리하여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리어드의 변주된 형태에서 두 번! 아직도 바뀌지 않은 인식의 변화, 그리고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권력의 어두운 힘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