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도 쾌변 - 생계형 변호사의 서초동 활극 에세이
박준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표지와 제목만 봐서는 좀처럼 쉽게 무슨 내용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저자는 82년 생, 9년째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생계형 변호사다. 서초동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생계형 변호사'로 연재하기 시작했고 브런치북 7회 대상을 수상했다.
무슨 변호사가 마음의 소리를 이리도 잘 글로 옮겨 놨는지. 텍스트를 읽는 건지 오디오북을 듣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특히 맞춤법에 민감해 한 소리 듣는 부분에서 "정말 나잖아!"라며 낄낄거렸다. 나도 직업병 때문에 맞춤법에 초민감하지만 인간인지라 완전체 글쟁이는 아니라는 것. 점 하나 잘못 찍어서 서류가 달라리는 법에서 그 깐깐함은 극치를 달린다. 아무래도 이렇게 깐깐하게 해야 하는 것 같다.
처음 들어보는 말도 많았다. 내 어휘 실력에 뒤통수를 맞으며 하나하나 검색해서 행간을 이해하기도 했다. 법조인이라 그런가 사자성어나 문어체 단어도 많았다. 아무튼 신선한 충격이었고, 영화처럼 그려지는 말투가 중독성 있게 읽혔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페이지터너처럼 에세이가 소설처럼 펼쳐졌다.
복대리인이라는 변호사 알바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복대리를 위임받은 사람이라는데 복어야? 복 씨 성을 가진 대리야? 한참 고민했다. 즉 대리인을 선임한 대리인, 그러니까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그 업무 중 일부를 다시 위임한 변호사란 뜻. 법률용어가 어려워서 생겨난 오해다. 복대리인이란 본인이 못 가니까 알바를 보내 대신 앉아만 있다가 대충 얼버무리고 미루고 오란 이야기였다. 갑자기 선임된 저자의 멘탈이 탈탈 털리는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이 나라 법조 1번지인 서초동에는 모순인지 필연인지 "법대로 하자"를 외치는 사람이 넘쳐난다. 법원 앞을 지나다 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에 피켓을 두르고 억울해 죽겠으니 법대로 해결해 달라 외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꼭 있다. (중략) 그렇지만 과연 그렇게 법대로 해서 최선의 결과를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법대로 한 결과 정답이 나왔다고 할 수 있을까. 법대로 하였더니 우리 모두의 이익이 증진되었을까 아니면 모두가 손해를 보았을까." p220-221
그리고 9년째 서초동 밥 먹고 있지만 막내(?)인지라 인류 최대의 고민 점심 문제로 골머리 앓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늘 승소할 수 없는 재판을 모은 에피소드도 기억나는데, 재중동포분의 귀화 신청이 불허 된 일화다. 한국에서 십 년 넘게 살며 3D 업종이라 불리는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히 일했는데, 불법체류자로 있던 기록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간 것을 보며, 단일민족의 허상에 대해 느꼈다.
박준형 저자의 글발을 듣고 아니 읽고 있으면 혼자 피식거리거나 킥킥(깔깔 보다) 거리게 일쑤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변호사의 이미지와 너무나 달라 친근하게 느껴졌다. 변호사라 함은 대략 말발로 천리를 가고 딱딱하고 정갈한 프로 엘리트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변호인>의 송강호나 <재심>의 정우 <증인>의 정우성 같은 변호사도 있기 때문에 대략, 적당히 짬뽕해 상황을 그려보기도 했다.
얼마 전 국선전담 변호사가 쓴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와 너무나 다른 분위기 때문에 두 번 놀랐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딱딱한 법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정의감의 책이었다. 반면 《오늘도 쾌변》은 서초동에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의 일상 에세이다. 가볍게 시작했다가도 묵직한 감동과 생각할거리를 가득 안고 책장을 덮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