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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ㅣ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평점 :

최근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몇 년 전 여행지에서 본 그림과 조각상을 감상하면서, 가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 있다. 신화, 미술, 천문이 하나로 얽혀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 세 가지를 충족시켜주고 지경을 넓혀주고 있다.
쉽게 말하면 1타 3피를 알 수 있는 기회다. 출판사의 제안으로 시작했지만 은근히 즐겼을 것 같다. 독자가 이렇게 재미있는데 쓰는 사람도 신나지 않았을까.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이란 부제로 미술과 역사를 전공한 김선지 씨와 천문학자 남편 김현구 씨가 합심해 만든 즐거운 이야기다.
같은 주제도 시대와 화가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당대 미술 사조와 사회상도 한몫한다. 인간의 가치관은 고정되지 않고 변화함을 경험했다. 전반부의 미술과 역사 후반부의 천문학은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 충분했고, 옛날 사람들의 천문학적 호기심을 표현한 그림을 보며 우주의 신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신과 인간은 닮았다

"신화는 동서고금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원형을 갖고 있다."
p120
그리스 로마신화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으로 쓰여 있다. 때문에 이를 토대로 한 미술과 조각상도 마찬가지다. 미술 역시 그 시대와 사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이유다. 하지만 저자가 여성학자기 때문에 페미니즘 관점에서 풀어내는 시도가 신선했다.
우주의 기원, 지구의 탄생을 신화적으로 풀어 내면 하늘의 신과 땅의 신 가이아가 생각날 것이다. 어머니의 대지, 생명의 근원, 여신 정도로 치부되었던 가이아는 B.C 4,500년쯤 북쪽의 인도-유럽어족이 모계사회를 정복한 후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B.C 5,000년 모계 중심 농경, 해양 문화인 고대 유럽은 가부장적 문화 종교로 바뀐다.
그리고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아들을 살해하는 아버지 신과 이에 대항하는 아들 신의 투쟁 이야기다. 우라노스의 성기를 거새한 크로노스, 크로노스는 훗날 아들 제우스에 의해 살해된다. 아버지의 생식기를 제거해 우주를 이루는 공기, 흙, 물, 불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하늘과 땅, 남성과 여성신의 확연한 대립구도를 만들어 냈다.
남성 중심의 서사가 주를 이유와 페미니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신화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여신, 인간, 님프, 미소년에 이르기까지 사리지 않고 성애를 탐닉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당시 동성애가 육체적 기쁨만이 아니라 정신적 숭고함까지 가졌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는 어른 남성과 어린 남성의 사랑이 가장 고귀한 사랑의 형태였다. 다음이 남성과 여성의 사랑이고 여성과 여성의 사랑은 가장 천한 것으로 여겨 처벌까지 받았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여성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중심에 서지 못했다. 가부장제 문화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여신들의 이야기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아르테미스(디아나), 아테나(미네르바), 헤스티아는 처녀신으로 자율적이고 활동적인 현대 여성과 가장 닮은 여신이다. 달의 여신 디아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페미니스트로 사슴과 사냥통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남성이야말로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여성은 불완전환 존재로 다루었다. 완벽한 비율의 남성 나체를 많이 그리고 조각했으며, 여성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옷을 입고 있다. 샤냥의 여신 디아나도 뭔가를 걸치고 있다.
광활한 우주에 지구인들만 살고 있을까. 지금도 밝히지 못한 외계인의 옛날 사람들은 명화 속에 은근히 숨겨 놓았다. 과연 그 사람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UFO 명화들은 신기하게도 돔, 원반, 구, 막대기, 삼각, 구름, 모자형의 UFO가 그려져 있다. 이를 두고 흔하게 종교화에서 보이는 신성함의 도상으로 볼지, UFO로 볼 것인지는 아직도 뜨거운 감자다. 하지만 공상, 망상, 상상력은 충분히 발휘해 볼 수 있다. 간혹 성직자의 모자를 UFO로 착각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고대 그림에 보이는 UFO에 대한 오해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는 오류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관점으로 필터링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눈에 보이는 유사성만으로 작품 속의 형태들의 모두 UFO로 연결하는 것은 그 시대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으로 볼 수 있다. 교회나 후원자의 철저한 감독하에 그려진 그림들은 지금처럼 자유로운 사고로 창작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창의적인 직업이 아니었다는 이유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엉뚱한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지금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예술가와 많이 달랐다. 절대로 종교 도상에 어긋나는 개인적인 생각을 그림에 넣을 수 없었다. 교회가 규정한대로 그림을 그리는 숙련된 직업인에 불과했다. 그림을 볼 때뿐만 아니라, 시대극, 문학 등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이해하는 것이 예술을 바라보는 대중의 가장 큰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

특히 현대화가 호크니가 페르메이르, 얀 반 아이크, 뒤러, 벨라스케스, 앵그르 등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충격적인 주장으로도 대변된다. 그들은 단지 광학 렌즈를 통한 영상을 반대편 벽에 비추어 그대로 모사했다고 주장했다. 미술계의 격렬한 반발을 샀지만 흥미로운 주장이다. 광학 도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이미지를 제공했고 렌즈의 이미지를 예술로 승화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들의 칭송은 시대가 만들어 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절대적 진리는 내일의 허상이 될 수 있다. "
p304
이처럼 책은 명화를 천천히 추적하고 세세하게 분석하며 '다르게 보기'와 '다르게 생각하기'를 제공한다. 주류와 비주류는 세상의 권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손가락질을 받던 작품이 예술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하는데, 인류 역사를 그만큼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바뀐다. 코로나19로 사회 및 생활 전반이 바뀐 뉴노멀을 생각해 보자.
따라서 누군가가 정해주는 고정된 사고보다 자신만의 생각을 글로 쓰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신화, 미술, 천문학적인 관점에 쓴 이 책 한권이 이성과 감성, 지성과 상상의 보고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