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1 펭귄클래식 46
브램 스토커 지음, 박종윤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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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1987년 초반 발매 이후 21세기까지 20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는 고딕소설 고전이다. 그는 1847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극복하고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해 운동선수로 활약, 역사 학회 및 철학 학회장으로 활약한다. 그야말로 인싸중의 인싸였던 것.

 

그 후 더블린 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는데 틈틈이 써 내려간 연극 평론으로 작가의 꿈을 키운다. 사무직으로 답답하고 억눌렸던 무엇을 소설 쓰기로 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대 유명했던 연극배우 헨리 어빙의 찬사를 담은 글을 '더블린 메일'에 기고했고, 이를 계기로 헨리와 친분을 쌓고 런던 라이시엄 극장의 비즈니스 매니저로 새로운 직업을 갖는다.

 

 

공무원에서 극장 매니저라는 획기적인 경력 전환은 헨리와 함께 상류사회 인입을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중 《드라큘라》는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지금까지도 공포의 원형으로 남아 연극, 영화, 소설,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재해석 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즉, 드라큘라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란 소리다.

 

개인적으로는 드라큘라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로 초등학생 때 접한 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얻었다. 에로틱하며 사악하고 공포스러운 미장센과 분위기를 초딩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최근 재관람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했었지만 여전히 '드라큘라'는 나의 최고의 무섭고 섹시한 괴물이다. (나의 목을 깨물어 줘)

 

 

하지만 당시에는 불순하고, 천박하며, 매우 저속하다는 평단의 엇갈린 평가를 받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카리스마 넘치고 섹시한 마성의 드라큘라 백작과는 거리가 먼 괴물의 이미지가 강해서였으리라 싶다. 또한 (드라큘라를 제외 한) 등장인물의 편지나 일기, 신문 스크랩, 타자기로 활자 화환 축음기 녹음 내용을 주된 형식으로 하는 탓에 구성과 내러티브가 엉망이란 평가를 받는다. 지금이야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쓰는 형식이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이면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형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무의식, 어떤 금기를 건드린 퇴폐적이고 에로틱한 소설의 분위기는 악마, 퇴마, 괴물, 성교 난장판, 피 탐닉, 근친상간, 부관참시 등의 온갖 해괴하고 괴상망측한 짓의 교본을 대중들은 즐긴 듯하다. (역시 센 게 통한다)

 

 

원작을 읽어보면 영화에서 많이 각색된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을 읽는 행위는 각색되고 편집된 원작을 통해 영화와 비교하며, 숨겨진 정보로 풍성하게 탐닉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영화에 다 넣을 수 없던 사소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체득할 수 있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루마니아 귀족께서 영국에 땅을 사 이사하고자 한다. 이는 서구권에 대한 동구권의 복수로 종종 읽힌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이때 조너선 하커가 백작 집에 찾아온다. 그를 포로로 잡아두어 이것저것 도움을 얻는다. 아마도 조너선 하커는 브램 스토커의 분신일 것이다. 그를 통하여 백작의 기괴한 행동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캐릭터인 동시에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된 이야기꾼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으로 따져보니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에서 영국 휫비로 이동해온 부동산 재벌의 이야기로 해석해 봤을 때 꽤 흥미로웠다. 이때 동네의 흙을 끌고 오는 것은 필수다. 은신처 흙에 파묻혀 낮에는 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코로나19처럼 직접 접촉을 피해야 했다. 아무리 절친 루시라도 미나는 거리두기를 했어야 화를 면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백작은 조너선(키아누 리브스)의 아내가 되는 미나(위노나 라이더), 미나의 친구 루시를 공격해 종족을 퍼트린다. 이 소식을 듣고 반 헬싱 교수는 흡혈귀 사냥꾼을 대동하고 응징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일단 1권 밖에 안 읽어봤기 때문에 영화로 본 결말과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영화에서는 백작의 전생에 미나와 얽혀 있는 것을 각색되었다. 좀 더 드라마틱 한 캐릭터 구성이다. 드라큘라 백작은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를 두고 교회를 위해 십자군 전쟁에 나서 싸웠다. 무자비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한 그는 승전보를 들고 돌아왔으나 터키군의 오보 계략으로 아내를 잃는다. 돌아와 깊은 슬픔에 잠긴 드라큘라는 분노해 교회를 파괴하고, 스스로 피를 탐하는 악의 화신으로 거듭난다.

 

 

때문에 영국으로 오려는 이유가 확고해진다. 사랑하는 여인이 환생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당시 19세기 영국은 과학이 태동하던 시기라 매우 혼란스러웠다. 퇴마사인 반 헬싱(안소니 홉킨스)이 나타나 시체의 목을 자르는 등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들도 용납하기 어려웠던 시대로 묘사된다.

 

 

1권에서는 반 헬싱 교수가 이미 드라큘라의 하수인이 된 루시의 시신을 꺼내 목을잘라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끝난다. 빨리 2권을 읽어보고 싶다.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천천히 즐기면서 변태처럼 야금야금 읽을 것이다. 흡혈귀의 음탕하고 서늘한 습성처럼 말이다.

 

 

참고로 드라큘라가 더 궁금하다면 '루크 에반스' 주연의 영화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이나 '휴 재맨' 주연의 <반헬싱>을 추천한다. 드라큘라 하면 떠오르는 '게리 올드먼'을 넘어서긴 힘들지만 그냥저냥 즐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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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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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허지웅 작가 글을 처음 접했던 건 씨네 21 이었다. 평론가, 작가, 방송인 등 그 밖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던 그가 돌연 병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었다. 그래서 더욱 예전의 칼칼하던 청양고추의 매운맛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아직도 까칠하고 날카로운 필체의 허지웅이 반가웠다. 과연 악성림프종으로 힘들었던 그 시간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책은 그 궁금증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전반부는 병을 그야말로 '견디며' 보낸 시간을 써낸 힘든 고백서다. 읽는 사람도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이었으며, 온전히 아픔을 나눌 수 없지만 한 스푼의 공감이 잠시나마 삶과 죽음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현재는 병을 이겨냈지만 재발하면 다시는 치료를 받지 않을 거란 말이나, 오기로 버틴 요가 수업, 같은 병을 앓는 환자의 병문안 (이 에피소드는 두번에 걸쳐 자세히 다룬다) 등. 허지웅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에피소드를 읽는 것도 즐거웠다.

 

가장 좋았던 것은 다시 영화와 소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언급된 작품을 보고 읽지 않아도 궁금함을 유발한다고나 할까. 존 허트와 김영애 배우에 관한 애도문을 읽고 영화가 무척 궁금해졌다. 영화제목은 데이빗 린치의 《엘리펀트 맨》과 고영남의 《깊은 밤 갑자기》다. 얼굴에 종양을 달고 있어 코끼리 맨이라 불리는 기구한 사연의 한 남성을 연기한 존 허트와 김기영 감독의 《충녀》 만큼이나 섬뜩한 모습의 김영애를 만나보고 싶다. 영상자료원에서 봐야지 하고 체크해 두었다.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은 남자와 점점 미쳐가는 여자가 궁금해졌다.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실존에 환멸을 느낀 두 사람이 선택한 극단은 충격적이기도 하고 일본 특유의 고립감이기도 했다.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허지웅에게 이 두 죽음은 비슷한 점을 찾아보는 계기기도 했을거다. 슬픔과 예민함을 가진 쪽으로 기우는 어쩔 수 없는 일. 다자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 했던 미시마의 고백이 허지웅에게도 잘 어울린다 생각 들었다.

 

그 밖에도 <라라랜드>, <쓰리 빌보드>, <공동정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은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떠올려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무엇보다 제노모프를 중심으로 <에이리언> 가계도를 정해준 통찰, 자신의 최애 영화인 <스타워즈> 정리도 무척 감사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인용해 구세대와 현세대의 반복되는 충돌과 지금 세대에 대한 연민과 충고도 적절히 버무려 준다. 속이 다 후련해 진다.

 

그리고 젊은 세대를 걱정하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꼰대가 청년의 무모함과 젊음을 속박해도 아나킨 스카이워커에서 다스 베이더로 타락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제다이가 말하는 마음의 평정 포스를 회복하고 객관성을 유지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버틴다면 반드시 당신의 날이 찾아올 거라 응원하다. 역시 허지웅 다운 위로다.

 

잠시 허지웅처럼 니체를 옆에 끼고 사는 것도 퍽 괜찮을 거라 상상했다. 죽음의 가까이에 가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종교를 초월한 소중한 무엇. 허지웅은 크게 아픈 후 그 무엇을 발견한 것 같다. 유년 시절부터 괴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나도 퍽 좋아함) 지금 돌아보니 그들에게 끌렸던 건 연민이었는지 압도였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 백작처럼 사람과 섞이고 싶어 했던 과한 행동들과 영웅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반드시 세상에 필요함을 충분히 설득한다. 악당이 있어 영웅도 대접받고 빛나는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괴물 덕후로서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경외도 빠트리지 않는다.

 

누가 성덕 아니랄까 봐 영화에 대한 TMI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가 던지는 살고 싶다는 농담이 마음에 와닿는다. 농담을 가장한 진담인지, 정말 농담인지 모를 글들이 진솔하게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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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철학 수업 - 세상을 바꾸기엔 벅차지만 자신을 바꾸기엔 충분한 나에게
전진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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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인간이 되라!" 새빠지게 일해 도 명품백 갖기도 어려운데 명품인간이 되라니. 교장선생님 참 너무하셨다. 그래서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 오로지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서다. 학교를 입학한 건 그 후. 2년 어학 코스를 밟고 파리 제1대학 철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책은 3년 여간의 에피소드와 철학을 공부하며 들었던 생각을 녹여낸 철학 에세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다른 점과 비슷한 점이 기록되어 있다. 재미있는 주제는 아니니만 관심 있는 주제라 읽게 되었다. 참 대단하다 느낀 것이 나도 처음 듣는 프랑스 고전 영화들이 줄줄이 나온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자기만의 인생>, <내 미국 삼촌> 등등. 나중에 영자원 가서 찾아봐야겠다고 메모하기도 했다.

 

무모함, 객기를 청춘이라 부른다. 그때 아니면 해보지 못할 것들이 있다. 지나고 나면 부끄럽기도 하고 다시 되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나의 스무 살은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저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나의 스무 살을 생각해 봤다. 참 턱도 없을 나의 스무 살이었다.

 

저자는 제2외국어를 배우며 모국어처럼 정체성을 갖는다. 한국인의 프랑스 자아. 빵 오헤장이 좋고, 철학을 공부한다. 참 어색하고 독특한 두 자아를 갖고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익혔다. 프랑스는 68혁명 이후 누구나 평등한 교육을 받기 위해 등록금을 낮추었다. 하지만 저자가 학교를 다닐 때 등록금 인상 앞에서 외국인 학생에게 16퍼센트나 인상에 항의할 권리가 있다며 투쟁한다. 한국 같았으면 개인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도 프랑스에서는 가능하다.

 

교육받을 권리마저 부와 가정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평등을 고민하는 사회가 프랑스다. 강남에 살지 못하고 학원을 다닐 수 없는데 수능을 치러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한국의 입시 제도는 부당하다고 느낀다. 비록 결과는 같다고 해도 시도조차 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른 것이다. 한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며 내가 믿어왔던 관점과 신념, 가치가 다가 아님을 깨닫는다.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은 없고 우물 안 개구리는 밖을 뛰쳐나가야 함을 깨닫는다.

 

철학을 배우는 기쁨을 사실 공감하긴 어려웠다. 내가 개념 정리가 잘 안되었기에 반복해서 읽고 곱씹으며 몇 번씩 되돌아가 읽기도 했다. 하지만 도덕, 윤리, 철학은 인간이기에 갖추어야 할 것들, 알아두어야 할 가치다. 이것들이 무너지는 순간 공동체는 파괴되고 인류 문명은 종말을 맞는다.

 

요즘 미드 [굿플레이스]를 봐서인지, 우유부단한 윤리학 교수 치디가 생각났다. 치디에게 윤리학을 배우는 세 학생들이 된 기분이 이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타인과 섞이며 사는 것은 무엇인지 곱씹어 봤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이 말이 인상적이라 인용한다. "타인을 돕는 태도, 편견 없는 시선 등 선한 행동이란 그것이 '좋음'이라는 앎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좋은 삶을 배움으로써 앎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할 것 같다. 선한 의지를 당할 자는 없다. 세상은 서로를 돕고 도와 만들어지는 공동체의 운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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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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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이 주는 위로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안정, 평온, 희망의 상징이 된 초록의 것들. 여름을 맞아 산책길, 둘레길 등 지천에 들풀이 자라난다.

 

 

책은 매일 산책하듯 별것 아닌 것들이 보내는 심심한 위로에 관한 에세이다. 저자와 함께 이름 몰랐을 들꽃, 들풀과 함께 삶도 잠시 쉬어 간다.

 

 

마흔. 요즘 마흔에 대한 책들을 많이 접한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제목에 마흔이란 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이 책도 식물 에세이로 접했지만 사실은 소통이 잘 안되는 중학생 딸과 마흔의 엄마가 고군분투하는 삶이었다.

 

 

저자는 몇 년에 걸친 긴 슬럼프란 터널을 지나 가평으로 이사 왔고, 비로소 지천에 있는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시에서 악다구니 쓰던 습관을 버리고 자연의 곁에서 적당히 부족함을 느끼며 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산책길에서 만난 식물들은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며 말을 걸어오고 있는 중이다.

 

 

 

길가의 잡풀들도 예쁜 이름이 있었고, 고유의 색깔이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두리번두리번 많은 들풀들을 관찰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거기에 피어나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초록의 것들에게 힘을 얻는다.

 

 

책방 '북유럽'을 운영하며 프리랜서 작가로 글을 쓰고, 사춘기 딸과 오늘도 티격태격이다. 책이 어지간히 팔리지 않기게 통장 잔고에 욕심을 내지 않고 그냥 그렇게 운영 중이다.

 

 

"산다는 건 별게 없지 않나. 산다는 건, 좀 더 구체적으로 '잘'산다는 건 나아지는 것. 생산과 소비와 별개로 조금씩 하나라도 더 나아지는 것. 그렇게 불완전한 한 인간을 죽는 날까지 차근차근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겠다." P241

 

 

삼십 대 초반 돌연 찾아온 결핵성 척추염으로 아프기도 무던히 아팠었다. 그때의 글에는 클로버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클로버의 잎이 행복에서 행운으로 변하는 것, 세잎에서 네 잎이 되는 것은 짓밟혀서라고 한다. 그래서 네 잎 클로버는 시골보다 도시에서 발견할 확률이 크다. 원래 세장이 정상이나 짓밟혀 생장점이 손상돼 기형적으로 자란 결과라고 하니 약간은 안타깝다. 짓밟힌 행운을 찾아 오늘도 시골길을 헤맬 걸 생각하니 조금은 황당하고 어쩐지 서글프다.

 

 

그렇게 밟힘과 연관된 풀이 또 있다. 바로 질경이다. 질경이는 물에 닿으면 불어나는 젤리 같은 물질이 씨앗이 되는데 사람들에게 밟히면서 번식한다. 그래서 꽃말은 발자취다. 독일에서는 사람 발길이 잦은 등산로를 따라 핀다고 해 길가의 파수꾼이란 별명도 있단다. 삶도 질경이처럼 밟혀서 살아가는 거란 생각이 선명해졌다.

 

 

저자는 코로나19로 벌어진 팬데믹에 자발적 거리두기를 강아지 하이와 산책으로 함께 실천했다.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자신 있게 프로 산책가라고 말할 기세다. 조금 더 자연과 가까워졌고, 길가의 꽃, 풀, 나무와 말하기가 수월해졌다. 어쩌면 이번 바이러스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쉼 같다. 나도 의도치 않았지만 이번을 기회로 밀린 책, 영화 보기와 나를 돌아보기를 했다. 바쁜 일정 중에 짬을 내서 하기에 미루고 미뤘던 것들이다. 그래서 좀 더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잘 안되더라도 평온을 얻었다. 아픈 것보다, 죽는 것보다 지금 짜증 나고 우울한 게 행복이라고.. 전염병의 역풍은 부정적인 것만 있지 않다. 생각을 바꿔 긍정적인 상황으로 바꿔보자. 그 곁에는 한결같은 자연이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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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시그널 - 돈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10가지 신호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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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팟캐스트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을 책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경제문제를 쉽게 풀어 알기 쉽게 전하는 경제 전문 기자 출신 두 피디가 쓴 세 번째 책이다. 부동산, 세금, 통계, 금리, 투자, 인공지능, 인구, 일코노미, 중고 시장 등 일상에서 궁금해할 알짜배기 10대 경제 시그널을 전해준다. 최근 코로나19로 신음하고 있는 세계 경제 문제도 빠르게 담겨있다.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다.

 

예전 같았으면 목차만 훑어보다 처음부터 읽었을거다. 하지만 목차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궁금한 부분부터 읽었다. 바로 제7장 '정부가 빚을 지면 정말 큰일이 날까'. 세계 경제가 멈춘 날들이 이어지며 대한민국이 또 망하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정부가 뿌린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시도별 지원금을 줘도 망하지 않냐는 걱정이 들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퍼줄수록 샘솟는다'라는 말처럼 퍼주기 복지 경제가 경제를 살아나게 한다는 거다. 미디어에서 심심할 때마다 떠드는 '혈세로 갚아야 할 국가 채무..'이런 말은 생각만큼 걱정 안 해도 된단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책 참조) 대한민국 국고는 생각하는 것보다 튼튼했다.

 

경제하면 역시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속 '보이지 않는 손'이 떠오른다. 이 말은 신자유주의의 폐단이 드러난 얼마 전까지도 불문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을 책 속에 딱 한 번 언급했을 뿐이고, 오히려 부작용을 경고했다. 이 책의 오독과 오해는 지금까지도 논란거리다. 예전부터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중재하고 판매해 순환한다는 만고불변을 믿어 왔다. 그러나 부작용이 커졌고, 보이지 않는 손은 존 케인스를 만나 '보이는 손' 정부의 역할 강조로 변화했다. 급기야 2020년에는 만능 손이라던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 전 세계를 휘저었다. 최근 다시 나타난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코로나19였다.

 

비슷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의 치아가 남성보다 적으며 열등하다 주장한 터무니없는 오래된 거짓말처럼 계속 이어져 왔다. 아무런 의심 없이 계속 이어져오던 것이 결국 터지게 된 계기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이 이슬람 사회 보다 뒤떨어졌단 사실을 알게 된 후다. 이때 르네상스가 꽃 피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생각해 봐야 한다. 천동설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에 비견될만한 칸트의 지구 자전론. 즉, 스스로 변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행동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칸트가 언급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운명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사람이 되라는 경고이자 충고다.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한국판 뉴딜 정책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코로나19는 그동안 절대불변의 가치, 제도를 한 번에 무너뜨리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도 빠르게 변화할 용기와 상황을 불어넣었다. 위기를 도약의 기회를 삼는 나라가 현 경제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될 거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데 마치 팟캐스트를 듣는 것처럼 음성지원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렇게 돈 벌었다!'라는 식의 재테크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이론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돈에는 관심 없다, 속물이 아니라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없이 살 수 없고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끝도 없음을 되새긴다.

 

또한 전 세계의 경제가 뒤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나라밖 일이라고 수수방관할 수만도 없다. 어쩌면 단 24달러에 뉴욕을 산 네덜란드인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나? 경제는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하고 눈과 귀를 쫑긋 세우고 매일 업데이트되는 소식도 간과하지 말자. 무엇보다 잘못된 통계치, 폭스 팩터(대중의 의심을 잠재우는 힘)로 속이는 언론으로 눈이 멀지 않기 위해 꼭 읽어봐야 책이다. 우리가 늘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일들은 사실 겉보기와 다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이유가 책 속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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