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친해지고 싶은 곤충도감 의외로 도감
누마가사 와타리 지음, 양지연 옮김, 성기수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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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 곤충 쫄보. 작은 벌레도 무척이나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곤충도감이란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라는 힘든 일이기도 하다. 나 같은 곤충 포비아를 위한 곤충도감이 나왔다. 그림이기 때문에 조금은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다리 많고 털 많은 곤충은 힘겨움의 대상이긴 하다. 큰 맘먹고 봐야 하는 결심 중 하나다.

 

 

책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곤충에서부터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곤충, 그리고 인간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곤충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뉜다.

 

 

학교에서 배웠던 계문강목과속종, 머리가슴 배가 나타나자 반가웠다. 곤충이 지구에 처음 나타나게 된 시기는 4억 8천만 년 전이라고 한다. 이래 봬도 인류보다 오래된 조상님이시다. 벼룩은 1억 5천만 년 전에도 공룡에게 붙어 기생하기도 했다. 공룡이 멸종해도 벼룩은 살아남았다. 그 친구 바퀴벌레도 함께..

 

많은 콘텐츠에서 로맨틱, 맑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반딧불이의 실체(?)가 놀라웠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사실은 구애의 신호이자 적에게는 맛없다는 표시다. 사랑의 상징으로도 자주 등장하는데 사실은 암컷 반딧불이의 빛을 흉내 내 수컷을 유혹하는 포티누스 속 반딧불이가 있다.

 

 

포옹하는 척 수컷의 몸을 다리를 껴안아 단단한 턱으로 잽싸기 물어 상처를 내 잡아먹는다. 같은 종종을 잡아먹는 이유는 수컷에게 잇는 루시부파긴이란 독성 물질을 먹으면 포식자에게 잡혀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끔은 직접 구애인 척 다가가 잡아먹지 않고 포식자의 밥을 몰래 훔쳐 오기도 한단다. 정말이지 예쁜 반딧불이의 잔혹한 자연계의 속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이 하는 일에는 쓸데없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하물며 작고 하찮아 보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곤충들도 쓸모가 있고 자연 생태계의 중요한 존재다. 인간의 입장에서 '해충','벌레'란 말이 붙은 거지, 곤충 입장에서 자신을 죽여도 좋은 존재로 치부하는데 언짢아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곤충 1위는 아마 바퀴벌레일 거다. 보이지만 않았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사는 곤충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벌레가 바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바퀴를 반려동물로 키우기도 한단다.

 

조금은 무서웠지만(?) 우리 주변에 혹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살고 있을 곤충들과 오늘도 작은 지구에서 복작거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로 초대하는 만화라 의외로 재미있었고, 거부감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의외로 친해지고 싶은'이란 제목을 붙인 게 아닐까. 곤충의 세계는 오늘도 복잡하고 신비롭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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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서로 다른 인간도감 의외로 도감
이로하 편집부 지음, 마시바 유스케 그림, 박현미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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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약 77억 명이다. 이 사람들 중에 누구 하나 똑같은 사람이 없다. 책은 너와 나, 우리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몸, 생활, 의사소통, 감정, 생각의 차이를 담았다. 서로에 대해 조금만 알려고 노력하고, 이해했다면 전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아이가 있다면 같이 읽으며 생각해보면 좋다.

 

머리카락이나 눈의 색깔, 머리카락 굵기는 왜 다를까? 우리는 밥을 먹는데 빵이나 면, 또띠아를 먹는 나라는 왜일까? 좋은 뜻으로 한 손가락 표시가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 있을까? 고개 숙이거나 악수, 포옹, 뺨 키스 말고 침을 뱉은 인사법도 있다고? 누가 틀리고 맞는다는 2분 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와 생각을 나누며 알아가는 기회를 마련한다.

 

 

신체부터 문화, 감정까지 모두 다른 인간의 차이를 재미있는 그림과 깨알 같은 설명으로 알려준다. 간단하게 보고 싶다면 일러스트 위주로 훑어보고, 자세히 읽고 싶다면 그림 옆 깨알 같은 글씨를 읽으면 된다. 글씨 옆에 연령에 따라 모를 수 있는 단어는 주석을 달아 놓았다. 앞장에 '어려운 용어' 페이지로 돌아와 관련 설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뒷장에는 참고 사이트가 있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귀여운 그림과 친절한 설명으로 아이와 어른 모두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피부색을 더 이상 '살색'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 인종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 피부의 밝기로 표현한 사례가 인상적이다. 매우 어두운색, 어두운색, 약간 그을린 색, 중간 밝은 색으로 부른다거나. 복숭아, 캐러멜, 올리브 같은 사물의 이름으로 피부색을 나타낼 때로 있음을 배운다. 피부색과 인종을 지칭하는 말은 직간접적으로 차별과 혐오를 부축인다. 다양성에 기반한 설명은 후반부에 또다시 이어진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문화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때문에 미디어에서 주입한 미의 기준은 이 책의 기준이 아니다. 벌어진 이를 프랑스에서는 '행복의 치아'라고 부른단다. 적잖이 충격이었다. 유럽 배우나 모델 중에 벌어진 치아를 교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갑자기 레아 세이두가 생각났다. 호주에서는 풍요로움의 상징, 미국은 섹시함으로 여겨 매력 포인트라 한다.

 

 

동아시아에서 '동안'은 칭찬의 의미로 쓰인다. 어려 보이기 위한 각종 화장품, 의복, 머리 스타일, 시술까지 천차만별 동안 법이 있을 정도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 미의 기준은 다르다. 대세에 맞지 않는다고 자신과 타인을 비하하기 보다,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하거나 스스로 당당히 드러내는 자신감을 기를 수 있게 도와준다.

 

 

생각의 차이 '성(性)'편에서는 생물학적 성, 성 정체성(마음의 성), 젠더 (사회적인 성)에 대해 소개한다. 남자, 여자라는 성별 외에 다양한 성이 있고 답은 오로지 두 가지만 있지 않음도 말한다. LBGT와 퀴어, 미국 선주민(원주민) 중에는 신의 계시를 받아 믿는 독자적인 성을 가졌다는 베르다슈도 있다. 인간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과오를 뒤집어 주는 책이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일까? 다른 사람도 그럴까? 무한 호기심이 들 때 읽어보면 의외의 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를 책이다.

 

어른과 아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의외로 그림도감 시리즈' 중 《의외로 유쾌한 생물도감》을 추천한다. 어른인 나도 조카랑 같이 보면서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 단, 일본 작가의 책인 만큼 일본 위주로 소개되어 있지만 마이너스까지는 아니다. 한국에 관한 소개도 간혹 있고 되도록 차별, 혐오를 부추기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으로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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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 인간관계부터 식품.의료.건축.자동차 산업까지, 향기는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로베르트 뮐러 그뤼노브 지음, 송소민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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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냄새만 맡아도 어떤 추억이 소환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는 어릴 적 부모를 여읜 폴이 이웃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해 그녀가 내어 준 차와 마들렌을 먹고 상처와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냄새에 민감하기에 좋은 냄새, 불쾌한 냄새, 싫은 냄새 때문에 곤욕을 치러본 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냄새에 덜 민감해지길 바랄 때가 있었다. 어떨 때는 싫어하는 냄새가 편두통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날로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냄새를 잃는다는 것은 도태되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19 양성 반응 증상 중 '후각 상실'도 포함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후각 안테나를 풀가동하고 지내는 참이다.

 

 

향은 실로 많은 분야에서 마케팅 용도로 쓰인다. 향기는 그 사람, 그 물건, 그 음식의 첫인상이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부터 식품, 의료, 건축, 자동차 산업, 두려움 치료 등. "냄새로 이런 것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삶의 영역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향기 마케터인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가 말하는 냄새에 관한 A부터 Z까지다. 냄새에 관한 궁금증, 역사,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향기 활용 노하우뿐만 아니라 스스로 향기를 만들고 팔며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조향사의 삶과 향기에 관한 이야기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향수>를 기억하는가? 지독한 냄새가 가득한 파리의 생선 시장 한복판에서 태어난 주인공 그르누이는 향기를 쫓다 결국 살인마가 된다. 시청각 콘텐츠인 영화에서 도저히 맡을 수 없는 향기들을 영화 시사회장에 재현한 일화가 적혀있다. 강렬한 오프닝인 그루누이가 태어나는 파리 생선 시장의 냄새 '파리 1738'를 향수로 만들기도 했다. 과연 그 냄새는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향수를 얻기 위한 인간의 잔인한 행동은 끝도 없다. 사향고양이의 항문선에서 나오는 냄새를 얻기 위한 도축 행위나, 향유고래의 위에서 생성되어 소화되지 않고 남은 잔류물이 토하거나 항문으로 배출될 때 나오는 용연향은 희귀해서 값비싼 물질이라고 한다. 자연에 있을 때는 한없이 불쾌한 악취지만 적당한 비율로 섞거나 공기 중에 머물면 두 향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향기가 된다. 악취를 없애기 위해 다른 향으로 뒤덮는다는 말도 향기에서는 가능하다.

 

 

기분 전환으로 맡는 향기가 향유고래의 내장에서 꺼낸 것이라는 아이러니. 냄새와 향기는 생각보다 한 끗 차이다. 그 외에도 수사슴의 생식기에 딸린 사향선을 떼어 말린 머스크 향, 비버의 포피성에 나오는 영역 표시 물질인 해리향(최음 작용) 등. 동물계에서 얻어지는 향의 잔혹성과 기묘한 인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동물계의 최고의 코는 누구일까. 바로 '나방'이다. 나방은 더듬이로 냄새를 인지하는데 1초 동안 페로몬 분자 5개가 더듬이에 닿는 것만으로도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어쩐지, 여름철 내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나방의 정체가 밝혀지는 묘한 순간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이 남성보다 후각에 예민할까. 지구 최초 박테리아 형태의 생명체들의 생존은 아마도 짝이나 먹을 것을 찾는 후각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류가 발전하면서부터 음식을 향한 본능이 후각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이다. 미각과 후각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냄새는 친밀함을 드러내는 사회적 신호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때문에 아무 음식이나 줄 수 없고, 남성과 비교해 사회성이 뛰어나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후각은 천대받아왔다. 좋은 냄새보다 나쁜 냄새가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칸트는 "어떤 감각 기관이 가장 배은망덕한 데다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가? 그것은 바로 후각 기관이다."라고 콕 찍어 질적으로 낮은 감각이라 말했다.

 

냄새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사회적 조건, 경험, 교육이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는 영감을 주는 냄새도 누군가에게는 악취일 수 있다. 괴테가 쉴러의 집에 방문했을 때 서랍 속 썩은 사과의 냄새로 가득한 방 안에서 구토를 느꼈다는 일화가 이를 증명한다. 쉴러는 부패한 사과 냄새를 맡을 때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취향은 존중하되 무턱대로 따라 하지는 말자. 그러다가 큰코다친다.

 

 

지금까지 냄새, 악취, 향기를 혼용해서 썼다. 부디 이 세 단어를 개인의 차이에 맞게 가감해서 들었으면 좋겠다. 향기도 악취가 될 수 있는 향기의 힘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향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내 몸에서 나는 냄새에 대해 후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든지, 향을 통해 무언가를 팔거나, 큰 성과를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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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메릴 - 메릴 스트립의 연기와 삶, 그 전설 같은 이야기
에린 칼슨 지음, 홍정아 옮김 / 현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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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긴 매부리코, 도드라진 광대뼈, 예민하지만 확고한 성격, 호탕한 목소리, 거침없는 발언 그리고 부드러운 카리스마. 메릴 스트립을 가리키는 수식어를 다 열거하기도 벅차다. 지난 40여 년간 60편이 넘는 영화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가졌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뒷바라지하는 엄마, 남성 캐릭터의 들러리를 지나 당찬 여성, 주체적인 여성, 독립적인 여성, 악한 여성을 맡기까지. 수년의 노고와 과정이 책 속에 녹아있다.

 

현재 많은 후배 배우들의 찬사이자 롤 모델인 메릴은 어떤 사람일까?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조애나 크레이머의 독립성,<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프로페셔널함, <맘마미아>의 도나의 주체성 등. 겹치지 않는 캐릭터를 선보이며 메서드 연기의 교과서라 불리는 메릴 스트립을 탐구하는 시간이다.

 

 

본명은 메리 루이즈 스트립, 1949년 6월 22일에 태어나다. 아래로 해리 3세와 대니 두 남동생을 둔 누나였다. 아버지는 제약회사 임원 어머니는 상업미술가로 삽화를 그리는 프리랜서였다. 어머니의 예술적 기질과 당당함을 물려받은 메릴은 연극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한다.

 

 

어려서부터 "넌 할 수 있어. 넌 정말 멋져"라는 어머니의 응원은 지금까지도 메릴을 지켜주는 주문이다. 그렇게 사춘기가 왔고 고등학교 응원부의 들어가 본격적인 연기를 한다. 배역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십 대 또래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사랑받기 위한 "인싸(십대 시절 미의 여왕)"를 연기했던 것이다. 자신을 숨기기에 바빴던 가면은 메릴이 1967년 뉴욕시 여자 사립 명문대 배서 대학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항상 예뻐 보이지 않아도 되고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행복했고, 이어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시작한다.

 

 

그 후 예일 드라마 스쿨에 지원했고 예일 랩에서 활동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초인적인 힘을 쓴 탓에 위궤양을 얻는다. 힘들게 예일을 졸업하고, 스물 여성 뉴욕의 배고픈 예술가의 삶이 시작된다.

 

 

책 속에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조애나 크레이머를 연기할 때 상대역 더스틴 호픈만과의 악연이 등장한다. 지금으로 따지만 미투였을 구시대적 행동들이 이어졌고 둘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호프만은 메릴의 아픈 과거(커제일) 을 들먹이며 몰입하길 원했으나 메릴은 혼자서도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성이 쓴 원작을 토대로 여성의 입장을 반영해 써주길 희망했다. 조애나를 가정을 버린 나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연민을 품게 되는 호감 가는 페미니스트로 말이다. 그렇게<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탄생했고 메릴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소소히 연기를 해오던 때 남자친구 커제일의 죽음으로 깊은 상심에 빠진다. 하지만 예일 아트스쿨을 졸업한 동생의 조각가 친구 '돈 거머'와 사랑에 빠져 1978년 결혼한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히는 건가 보다. 상실의 아픔을 돈은 빠르게 치유해 주었고 연기 활동에 몰입할 수 있었다.

 

 

 

급성장한 신인배우 메릴은 영화 네 편을 찍고 더 이상 거물급 남성 배우를 받쳐주는 조연을 맡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는 외모를 잘 활용해, 마흔이 넘어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섭렵하게 된다. 늘 복잡한 내면의 까칠한 여성 역할에 끌렸다.

 

 

메릴은 누구처럼 보이기 보다 직감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길 좋아했다. <소피의 선택>을 통해 목소리를 쉽게 내지 못하는 여성들의 대변인이 되고자 했다. 모성신화를 깨고 신성시되는 엄마가 가진 슬픔을 낱낱이 드러냈다. 소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의 가톨릭 신자이자 고통의 가족사를 겪은 상처를 안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소피 역을 실감 나게 하기 위해 폴란드어를 배웠고, 폴란드 억양 섞인 영어를 사용했다. 강제수용소 촬영 장면을 위해 혹독히 살을 뺐고 미국으로 건너온 시기의 대비를 위해 보철치아를 사용해 확연히 다르게 만들었다. 캐릭터를 철저히 연구했고 결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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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의 책 - 독립출판의 왕도
김봉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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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드는 생각은 스스로 쓰레기 백수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였다. 30대까지 변변 찮은 직업 없이 백수로 지내오던 김봉철 씨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은근한 팬을 확보했다. 몸이 선천적으로 약하고 낯을 많이 가리며 소심한 편이라 아웃사이더로 지내며 인터넷으로나마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미드 자막이나 맛집 후기 등, 소소한 자신의 일기를 올리던 때.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만 하던 일을 누군가를 만나 해보고 싶었다. 블로그를 하면 자주 들어오는 맛집 리뷰에 함께 갈 사람을 모집했다. 그때 익명의 사람들을 모집하다 만난 사람이었다. 사정이 딱하니 자신이 했던 공무원 수험서를 헐값에 넘기겠단 소리였다. (여기서부터 냄새가 났다) 봉

철 씨는 용기 내 아버지에게 시험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했고, 선뜻 없는 형편에서 20만 원을 주시며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집으로 온 택배 상자에서 지나도 너무 지난 수험서가 빼곡한 낙서로 뒤덮여 있었다. 사기였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고 소라게처럼 집으로 숨어 들어갔던 봉철 씨는 근근이 막노동을 하던 차에 블로그에 댓글을 받는다.

"저랑 같이 책 한번 내보실래요?"

블로그에 주저리주저리 써 놓은 일기를 누가 책으로 봐줄지 놀랍고도 신기했다. 그러면서 독립출판을 소개하며 나와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 독립출판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견적서의 돈이 문제였다. 어쩌면 혼자서 수작업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정중히 제안을 거절하고 인디자인이 아닌 한글 2014를 통해 편집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작가란 신춘문예 당선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처럼 고졸에 보잘것없는 사람이 가당키나 한가라는 의문이 컸다. 하지만 하나의 댓글은 나비효과가 되어 봉철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책과 인터넷을 뒤져가면 독립출판물에 대한 정보를 섭렵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다,

자기가 자신의 객관화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자존감이 높은 것과 근자감이 높은 것은 다르듯. 못났다고 여기면서도 잘났다고 여기는 게 현대인의 심리다. 하지만 봉철 씨는 많은 억눌림 속에서 스스로 누름돌을 치우고 세상으로 걸어갔다. 스스로는 쓰레기라고 칭할 수 있는 용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세상의 나를 솔직하고 진솔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생각보다 드물다.

그래서 작가가 된 것 같다. 나도 작년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나만의 책 만들기'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현직 국어 교사의 강의를 듣고 다양한 성인들이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먼 일처럼 느껴졌으나 마감일이 닥치니 뭔가가 나왔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물론 저자처럼 독립출판으로 나온 건 아니었고, 몇 권 인쇄해 도서관에 기증하는 형태였지만 뿌듯하면서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원고는 아직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바뀐 일상이 원고에 반영되어 할 것 같다. 다시 들여다봐야지 봐야지 하던 것도 6개월이 지나 먼지만 쌓여 있다. 김봉철 씨의 책을 읽으면서 작년의 고군분투가 주마등처럼 느껴졌다. "나도 다시 시작해 볼까?"

《작은 나의 책》은 봉철씨가 맨땅에 헤딩해가며 만든 첫 책의 출판 과정과 독립서점 입고기, 강연 한 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또 다른 책을 만든 일,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책이 나오는 과정, 출판 마켓에 참여해 얻은 기쁨, 1인 출판사를 만들고, 짧지만 일다운 일을 해보기도 하고, 독립출판이 아닌 기존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기까지 등등. 독립출판에 대한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읽힐까?"란 막연한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 우연히도 봉철 씨가 참여한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를 읽은 적이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최근 본 <테넷>에서는 일어난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고, 무지가 무기가 된다는 말을 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알지 않으려고 하는 게 죄일 뿐. 두려워하지 말고, 귀찮아 말고 시작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는 책이다. 1인 출판, 독립출판, 편집 등이 궁금한 사람부터. 저자의 서슴없는 필체와 인생을 궁금한 사람에게 권한다. 많은 위로를 얻었기에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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