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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평점 :

홍성욱 저자를 알게 된 계기는 《크로스 사이언스》를 통해서였다. 마침 메리 셸리를 다룬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을 본 직후라 흥분이 가지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때 저 책에 묘사된 메리 셸리 뿐만 아니라, 과학과 영화의 팩트와 상상력의 다양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뤄 술술 읽었던 책이었다.
그 저자의 다른 책을 우연히 만났다. 처음에는 모르고 책을 읽다가 재미와 속도가 붙길래 저자를 검색하다가 알게된 사실이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책 표지와 소재만 보고 골랐던 책에서 은근한 기쁨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실험실의 진화》 는 과학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실험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발전된 과학 문명에 어떠한 기여와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는 책이다. 실험실의 역사, 철학, 인문학, 사회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다. 거기에 귀엽고 독특한 삽화까지 더해지니, 실험실을 투어한 기분이다.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류의 문명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한 과학 발견이 이루어지는 장소지만 실험실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과학자와 이론만 있을 뿐이다. 책은 그 장소에 주목한다. 물리학자는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 최초의 실험실을 갖춘 사람들은 연금술사였을 거라는 것, 초기 실험실에 화로와 증류기가 있는 실험실이라기보다는 요리에 적합한 부엌 같은 개념이었다는 것. 꼭 지금이 랩실이라 일컫는 방의 형태가 아닌 자연, 텃밭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화학자의 모태가 되던 연금술사는 당시 신의 섭리에 도전한다고 믿어 천대받았다. 돌을 황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연금술사의 실험실을 마치 마법사의 방처럼 느껴지는 것도 실험실을 자연을 모방하는 장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신의 창조 과정, 그 이후 자연의 변화 과정을 모방해 재현하는 것은 금기처럼 여겨졌다.
계속해서 흥미로운 사실들이 대거 등장한다. 철학자 베이컨이 등장하며 실험이란 '잠자는 사자(자연)의 꼬리를 비틀어 깨우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 자연에 개입해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 철학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뉴턴 또한 연금술을 이해하기 위해 실험을 계속했고 14세기 연금술사 '니콜라 플라멜'의 저술을 읽으며 공부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이 연금술에 심취했다니, 과학은 어쩌면 소 뒷걸음치다 일내는 우연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훗날 연금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연금술에서 실험실이라는 공간과 이름을 화학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뉴턴은 이를 위해 반드시 실험실이 필요했을 것인데 뉴턴의 숙소 근처의 정원이었을 수도 있다는 둥, 실험실을 지었다가 훗날 허물었다는 둥. 다양한 추측이 난무한다. 그래서 당시 뉴턴이 실험을 했을 거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16세기 이해 200여 년 동안 실험실을 사용하는 사람은 연금술사, 화학자, 약학자, 약제학사 같은 분야에만 속한다고 단정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방에서만 국한하지 않는다. 실험은 자연을 실험실로 가져 오는 행위에서 시작되고, 여의치 않다면 자연으로 나갈 수도 있다. 오늘날 실험실이라는 특정 실험이 수행되는 장소로만 보지 않고 부엌도 텃밭도 실험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갈릴레오가 경사면 실험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다락방, 뉴튼이 프리즘 실험을 했을 서재를 실험실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며 실험실은 '브뤼노 라투르'의 《실험실 생활》,《프랑스의 파르퇴르화》를 통해 전개된다.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과 만들어진 과학을 볼 수 있는 장소의 실험실을 논한다. 백신을 개발한 파스퇴르가 과연 인류의 생명 연장을 근거로 순수한 실험을 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황우석 박사의 사례를 통해, 과학자는 연구뿐만 아닌, 정치와 연기, 쇼까지 담당해야 하는 엔터테이너여야 했음을 이야기한다.
"영웅적인 과학자가 새로운 인간-비인간 네트워크는 만들 때, 경쟁자의 명예나 의료 윤리는 네트워크의 변방으로 밀러 나간다. "
p101
우리가 알고 있는 파르퇴르의 신성화된 측면은 라투르가 만들어 준 게 아닐까? 현재 코로나19 백신을 통해 생각해 본 결과 무조건 백신을 빨리 맞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따라온다. 파스퇴르는 성공을 위해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거나 임상이 덜 된 백신을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확한 증명된 것을 사용했다라기 보다, 희생이 따르더라도 잘 작동만 하면 그것이 참이고 과학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과학의 야누스 얼굴을 분명 알고 있었을 라투르는 파스퇴르의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 밖에도 우리는 왜 과학자를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실험실을 거쳐갔던 살아있는 생물들에 대한 보고라든지, 다양한 실험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2004년에 완공된 MIT의 '레이 앤드 마리아 스테이타 센터'건물, 지금의 '스테이타 센터' 자리에 있었던 MIT의 20동 건물 등.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실험실을 소개한다.
이 책은 특징은 무엇보다도 삽화다. 옛 자료 사진보다 훨씬 상상력을 극대화하도록 돕는다. 디지털 기계가 아닌 손과 종이, 펜으로 그렸다는 그림들은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준다. 그림을 자세히 볼 수 있게 책등에 끈을 노출한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박한나 님의 다른 그림도 계속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