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달고나 만화동화 1
황선미 지음, 박정섭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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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이라고 얕볼 게 아니다. 성인이 읽어도 충분한 감동과 주제관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많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 작가가 쓰고 박정섭 작가가 그린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가 앞서 말한 예이다.

 

 

이야기는 드디어 1학년이 된 새봄이가 학교에서 같은 반 장갑순 할머니를 만나는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엉망이 된 일상이 반영되어 현실감이 크다. 새봄의 아빠는 여행작가인데 국내로 들어오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코로나로 멈춘 일상은 복구되지 못하고 새봄이네 집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이 오지 않아 미술 학원을 열었던 엄마도 형편이 어려워져 임대 표지판을 붙였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본다. 면접 때 준비한 비장의 카드 '달고나 커피'를 선보여 단번에 붙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도 드디어 학교에 간다는 설렘보다 지켜야 할 수칙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새봄이의 생활이 격하게 공감된다. 새봄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안타깝게도 '매일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급식을 먹는 것'. 코로나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당연한 일상이 갑자기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달고나'는 새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주전부리기도 하지만 엄마를 일으켜 주기도 했던 꿈의 원동력이다. 또한 60년 간극의 할머니와 새봄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기도 하다. "라떼는 말이야 달고나가 5원이었다"라고 말하는 할머니와 불량식품에서 이제는 고급 커피의 재료로 탈바꿈한 달고나의 변신도 재미있다.

 

며칠에 한 번 가는 학교지만 새봄이는 너무 좋다. 마음대로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수업 시간에 화분에 심어 놓은 강낭콩처럼 매일 조금씩 자라난다. 학교 교실에는 할머니 학생이 있는데,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러 학교에 온 만학도다. 장갑분 할머니의 꿈은 학교 공부를 마치는 것이고 나아가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란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던가.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할머니, 손녀뻘 되는 새봄과 친구가 되는 할머니와의 우정도 귀엽다.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이 소환되기도 했다. 동생과 국자에 달고나 만들어 먹겠다고 하다가 집 홀랑 태워먹을 뻔했던 기억, 까맣게 국자가 탔던 기억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나이를 먹어 그 달달한 맛과 부풀어 오르는 갈색의 설탕 덩어리를 그리워할 나이가 되었다. 새삼 학교와 친구, 가족의 소중함, 동심까지 달달하게 일깨워 주는 어린이 동화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고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염원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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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결혼생활 - 세상이 만든 대본을 바꾼 특별한 가족 이야기
샌드라 립시츠 벰 지음, 김은령.김호 옮김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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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평등한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 내용은 단순하지 않았다. 평등한 관계와 페미니스트적인 자녀 양육을 실천한 자전적인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아내와 남편에서 '파트너'가 되고, 아들과 딸이 '아이'가 되는 일과 가사 및 양육이 50:50인 결혼생활.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책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판타지가 현실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오로지 나를 위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위로를 얻었던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1960년대 여성성과 남성성의 새로운 척도를 제시한 '벰 성 역할 검사'를 개발했으며,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은 젠더 양극화 연구에 업적을 남긴 페미니즘 학자가 1998년 쓴 결혼 회고록이다.

 

저자 '샌드라 립시츠 벰'이 1965년 스무 살에 당시 카네기 공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여섯 살 연상 '대릴 벰'과 평등한 결혼 형태를 만들어 낸 뒤, 27년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법적으로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이내 헤어져 각각 동성 상대와 사귀기도 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단순히 사회가 정한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로 규정할 수 없음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길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있어 문화적 구분에 딱 맞출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는 2009년 알츠하이머를 알게 된 뒤 2014년 대릴이 보는 앞에서 독이 든 와인을 먹고 사망했다. 죽음마저도 오롯이 자신이 결정하는 삶, 가족을 위한 희생이나 눈치를 보지 않는 인생이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이라 생각했다.

 

부부간의 평등이 지켜지고 성 역할이 고정되지 않은 결혼생활, 그리고 젠더 고정관념 없이 키우는 양육방식,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체계화되지 않았을 무렵에 목숨처럼 지켜왔고, 1967년부터는 공동 강연을 통해 미국 전역에 전파했다.

 

특히 두 사람의 완전히 다른 가풍으로 만들어진 인격은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고, 사랑에 빠진다는 개념으로 상응할 수 없는 파트너십 관계를 만들어 냈다. 저자 샌드라는 엄격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며 부모님의 잦은 싸움으로 어린 시절 불안한 유년 시절을 겪었다. 그로 인한 성격은 사춘기를 지나며 악화되었고, 독립의 욕구를 크게 불태운다. 하지만 독립하기에는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선택한 학교에서 큰 마찰이 있었고, 따라서 대릴의 존재는 자신을 구해 줄 생명줄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가족들이 주지 못했던 안전한 토대를 제공해 주면서도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부분을 채워주었다는 것이다.

 

대릴은 남성의 성공 때문에 여성의 커리어가 망가지게 놔두지 않았다. 일주일에 3일씩 나눠 집안일을 하고 샌드라의 커리어를 위해 대릴이 직장을 옮기기도 하며, 샌드라와 일하기 위해 엄청난 제안을 거절하기도 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일들을 벌인다.

 

두 사람은 이론과 강연으로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일종의 실험이라 말해도 좋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꾸리면서 겪었던 감정과 주변 상황을 정리해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박 육아 및 가사, 시월드와의 갈등, 여성의 전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틀이 얼마나 견고한지 깨닫는 계기도 된다. 진정한 실천으로 완성했던 샌드라의 삶을 통해, 여러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긍정적 미래와 다수와 달라 배척당하는 소수가 생기지 않는 사회를 잠시나마 꿈꿔 볼 수 있었다.

 

어차피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는 일은 나의 인생이다. 이를 두고 누구도 강요하거나 참견할 수 없지만 어쩐지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의 말을 듣고 스스로 검열한다. 이것은 꼭 해야 한다, 결혼은 격식을 차려야 한다며 수백, 수천만 원 대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세태. 내 결혼식인지 부모님 결혼식이지 알 수 없는 보여주기 식 관행. 결혼 해서도 아내와 남편, 시가와 처가에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온전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아니기도 한 상황에서 이 부부의 실천기는 통쾌한 쾌감을 선사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결혼에 관한 다른 생각, 해보지 못한 관념들을 각성하며 다음 세대는 내 세대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길 고대하는 바이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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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고칸 메구미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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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죽음을 좀 더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지침서. 읽으면서 삶을 더 바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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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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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저자를 알게 된 계기는 《크로스 사이언스》를 통해서였다. 마침 메리 셸리를 다룬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을 본 직후라 흥분이 가지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때 저 책에 묘사된 메리 셸리 뿐만 아니라, 과학과 영화의 팩트와 상상력의 다양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뤄 술술 읽었던 책이었다.

 

그 저자의 다른 책을 우연히 만났다. 처음에는 모르고 책을 읽다가 재미와 속도가 붙길래 저자를 검색하다가 알게된 사실이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책 표지와 소재만 보고 골랐던 책에서 은근한 기쁨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실험실의 진화》 는 과학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실험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발전된 과학 문명에 어떠한 기여와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는 책이다. 실험실의 역사, 철학, 인문학, 사회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다. 거기에 귀엽고 독특한 삽화까지 더해지니, 실험실을 투어한 기분이다.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류의 문명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한 과학 발견이 이루어지는 장소지만 실험실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과학자와 이론만 있을 뿐이다. 책은 그 장소에 주목한다. 물리학자는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 최초의 실험실을 갖춘 사람들은 연금술사였을 거라는 것, 초기 실험실에 화로와 증류기가 있는 실험실이라기보다는 요리에 적합한 부엌 같은 개념이었다는 것. 꼭 지금이 랩실이라 일컫는 방의 형태가 아닌 자연, 텃밭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화학자의 모태가 되던 연금술사는 당시 신의 섭리에 도전한다고 믿어 천대받았다. 돌을 황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연금술사의 실험실을 마치 마법사의 방처럼 느껴지는 것도 실험실을 자연을 모방하는 장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신의 창조 과정, 그 이후 자연의 변화 과정을 모방해 재현하는 것은 금기처럼 여겨졌다.

 

 

계속해서 흥미로운 사실들이 대거 등장한다. 철학자 베이컨이 등장하며 실험이란 '잠자는 사자(자연)의 꼬리를 비틀어 깨우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 자연에 개입해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 철학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뉴턴 또한 연금술을 이해하기 위해 실험을 계속했고 14세기 연금술사 '니콜라 플라멜'의 저술을 읽으며 공부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이 연금술에 심취했다니, 과학은 어쩌면 소 뒷걸음치다 일내는 우연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훗날 연금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연금술에서 실험실이라는 공간과 이름을 화학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뉴턴은 이를 위해 반드시 실험실이 필요했을 것인데 뉴턴의 숙소 근처의 정원이었을 수도 있다는 둥, 실험실을 지었다가 훗날 허물었다는 둥. 다양한 추측이 난무한다. 그래서 당시 뉴턴이 실험을 했을 거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16세기 이해 200여 년 동안 실험실을 사용하는 사람은 연금술사, 화학자, 약학자, 약제학사 같은 분야에만 속한다고 단정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방에서만 국한하지 않는다. 실험은 자연을 실험실로 가져 오는 행위에서 시작되고, 여의치 않다면 자연으로 나갈 수도 있다. 오늘날 실험실이라는 특정 실험이 수행되는 장소로만 보지 않고 부엌도 텃밭도 실험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갈릴레오가 경사면 실험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다락방, 뉴튼이 프리즘 실험을 했을 서재를 실험실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며 실험실은 '브뤼노 라투르'의 《실험실 생활》,《프랑스의 파르퇴르화》를 통해 전개된다.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과 만들어진 과학을 볼 수 있는 장소의 실험실을 논한다. 백신을 개발한 파스퇴르가 과연 인류의 생명 연장을 근거로 순수한 실험을 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황우석 박사의 사례를 통해, 과학자는 연구뿐만 아닌, 정치와 연기, 쇼까지 담당해야 하는 엔터테이너여야 했음을 이야기한다.

 

"영웅적인 과학자가 새로운 인간-비인간 네트워크는 만들 때, 경쟁자의 명예나 의료 윤리는 네트워크의 변방으로 밀러 나간다. "

p101

 

우리가 알고 있는 파르퇴르의 신성화된 측면은 라투르가 만들어 준 게 아닐까? 현재 코로나19 백신을 통해 생각해 본 결과 무조건 백신을 빨리 맞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따라온다. 파스퇴르는 성공을 위해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거나 임상이 덜 된 백신을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확한 증명된 것을 사용했다라기 보다, 희생이 따르더라도 잘 작동만 하면 그것이 참이고 과학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과학의 야누스 얼굴을 분명 알고 있었을 라투르는 파스퇴르의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 밖에도 우리는 왜 과학자를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실험실을 거쳐갔던 살아있는 생물들에 대한 보고라든지, 다양한 실험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2004년에 완공된 MIT의 '레이 앤드 마리아 스테이타 센터'건물, 지금의 '스테이타 센터' 자리에 있었던 MIT의 20동 건물 등.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실험실을 소개한다.

 

 

 

이 책은 특징은 무엇보다도 삽화다. 옛 자료 사진보다 훨씬 상상력을 극대화하도록 돕는다. 디지털 기계가 아닌 손과 종이, 펜으로 그렸다는 그림들은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준다. 그림을 자세히 볼 수 있게 책등에 끈을 노출한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박한나 님의 다른 그림도 계속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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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펭귄클래식 136
이디스 워튼 지음, 김애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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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작가 '이디스 워튼'의 소설로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보기 전에 읽었다. 겉으로는 미국 상류층 한 남성과 두 여성과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의 오만의 위선에 대한 풍자를 보태고 있다. 남성 화자를 통해 빌려 하고 있는 여성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유럽에서 살며 이혼을 위해 본국으로 돌아온 올렌스카 백작 부인은 사랑 없는 결혼을 했던 워튼의 페르소나다.

 

실제 워튼은 1826년 미국 뉴욕의 존스 가문에 태어나 유럽 각지를 돌며 문학적 감수성을 익혔다.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1965년 테디와 결혼했지만 불안한 결혼 생활로 신경쇠약을 앓는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유럽을 여행했으며 이를 글쓰기로 옮겨왔다. 1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에서 전쟁 구호 활동을 벌였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21년 여성으로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27,28,30년 세 차례에 걸쳐 노벨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1913년 남편과 이혼 후 1937년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시민의 여신'이나 '그리스의 여신'을 위해 모델로 선택받은 인물처럼 보였다. 그녀의 흰 피부 아래 너무나 가까이 흐르는 피는 파괴적인 요소라기보다는 보존액같이 보였다. 그리고 파괴할 수 없는 젊음의 표정은 엄격함이나 바보스러움이라기보다는 원시적으로 순수한 느낌을 주었다."

P219

 

단아한 외모와 순수한 감성을 지닌 '메이 웰랜드'와 약혼한 변호사 '뉴랜드 아처'는 결혼을 앞두고 메이의 친척인 '올렌스카'백작부인을 만난다. 올렌스카 백작부인은 여성의 이혼이 허락되지 않는 시대 이를 위해 본가로 돌아온 예비 돌싱이었다. 포악한 남편을 피해 돌아왔지만 누구도 이유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주변의 수군거림과 가족마저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결혼해서 백작 부인까지 되었으면서 다시 엘런 밍곳이 되어 노처녀로 살아가려 든다며 바보 같은 선택이라고 나무란다.

 

뉴랜드는 올렌스카 백작 부인(엘렌 올렌스카)을 만나기 전까지 아처는 불편한 없는 부유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신부와 가문의 얻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면 되는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어쩐지 약혼을 했을 뿐인데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 형기를 곧 짊어져야 할 죄수처럼 답답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결혼 후 살게 된 이스트 29번가 집을 둘러보는 아처는 '남은 삶 동안, 매일 저녁 황록색 철제 난간 사이를 걸어 올라 폼페이식 현관을 통과해 니스칠이 된 노란색 징두리 벽판이 둘린 거실로 들어갈 것이다'라고 신혼집을 본 감상을 읊조린다. 화려하고 완벽한 결혼과 이들의 생활에 환멸의 징조가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메이의 부탁에 올렌스카 부인을 돕다가 독특한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녀를 만나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미국과 유럽의 두 문화를 경험한 그녀는 상류층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실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여성이었다. 그녀를 만나며 자신의 온전하고 안전한 세상은 그저 축복받은 운에 불과했고, 세상에는 더 많은 이야기와 어둠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간다. 뉴랜드가 '순수'하다고 느끼는 세상은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만든 위선임을 깨닫는다.

 

따라서 메이는 모든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뉴욕에서 가장 아름답고 명망 있는 가문의 여성을 독차지한다는 것, 뉴욕 사교계 중에서도 성격도 좋고 이성적인 여성과의 결혼은 한 치의 오차도 의심도 없는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단순히 결혼 전에 드는 일종의 심리적 압박이라, 잠시 불러온 바람이라 곧 식어버리고 지나갈 것이라 생각한 뉴랜드는 백작 부인과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마저도 사치라 느끼며 메이와 결혼한다.

 

때문에 백작 부인은 가장 애처롭고 가슴 시린 아픔을 주는 유령으로 남아야 했다. 가려진 세상에 눈을 떴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백작 부인과의 관계를 눈치챈 웰랜드 가문은 그를 압박하기에 이른다. 결국 백작 부인을 사교계에서 추방한다. 이를 알고 뉴랜드는 뒤따라 가려 했지만 메이의 임신 소식에 발목 잡히게 된다. 자신은 현실에 체념하며 과거를 고이 포장해 순수의 시대로 묻어 두었지만 훗날 아들을 통해서 다가올 희망의 세대를 예고한다.

 

어쩌면 '바람',' 불륜'이란 선정적인 단어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격상 시킨 문학이 《순수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따지고보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지만. 누구나 뉴랜드 같은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하기란 어리석은 일이기에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기 때문에, 자로 재고 따져보고 계산해 봐도 답이 뻔히 나오는 상황에 올인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뉴랜드, 메이, 엘렌 세 캐릭터 모두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며 공감할 수 있는 이입력이 크다. 아마도 이디스 워튼 스스로 사회의 모순과 아둔함을 질리도록 했던 경험을 토대로 썼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란 누구나 살면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영원히 가슴속에 박제해 두고, 가끔 꺼내볼 사치를 누리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우리는 '추억'이라 부른다지.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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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J 2021-12-1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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