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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소설을 '팩션'이라고 부릅니다. 팩션이 주는 한계점은 아마도 현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가 자칫 역사왜곡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일텐데요. 이런 우려를 말끔하게 날려버린 소설 《한복 입은 남자》는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장장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충분한 고증과 역사적인 자료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매끄러운 스토리로 만들어졌는데요. 5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한번 붙잡으면 좀처럼 손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드는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요? 국사 교과서에 자격루와 해시계 등을 만든 기술자로 ,단 몇줄로 평가되는 장영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작가의 애정과 집요함으로 재탄생되었는데요. 우리역사에 '장영실'이라는 천재 과학자가 재평가 받기를 기대해 봅니다.
미디어는 참으로 교활하고 영악해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치밀하게 세뇌를 시킵니다. 특히 분별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취약해서 티브이에서 나오는 것은 그대로 믿게되며, 모르는 사이에 의식의 작은 부분까지 그대로 습득해 버리게 됩니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미디어의 영향으로 동양의 것은 보수적인 것으로 치부, 우리것을 천대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렇듯 '서양 중심적 우월주의'에 빠져 헐리우드 영화, 팝, 미드에 빠져드는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서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서양의 것은 단물쓴물 다 빠져나가고 소재의 늪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미개하다고 느꼈던 동양의 것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음식문화, 비빔밥, 김치, 김장 등을 높이 사고 케이팝, 한류 드라마, 한국 배우들이 점점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현상으로 역전되게 됩니다. 문화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동양에 대한 관심과 문화의 결합은 이제 낯선 조짐이 아닌것이지요. 특히 천재적인 과학자였던 장영실을 우리나라에서는 하향평가 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한복 입은 남자》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찬사를 아끼지 않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은? 사실은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의 장영실이였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실껀가요? "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반색하는 사람도 있을테니지만, "무슨 근거로? "라며호기심을 갖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리라 짐작됩니다. 저는 후자쪽이였어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글자 '한글'과 태평성대'세종시대'이라면 가능할 꺼라 생각했죠. 마침 작가는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라는 그림을 접하게 되었고, 학계에서는 조선인 노예 소년이라고 추정하는 설이 대부분이였지만, 옷과 시대를 추정해 본 결과 많은 의문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 어른의 옷차림이고 그림 뒤에 자그맣게 그려져 있는 범선은 동양의 배와 닮아 있었다는군요. 또한 노비 출신인 장영실을 종3품의 승격까지 마다하지 않는 세종의 파격 등용은 일찍히 장영실의 천재성을 알아본 세종의 신의 한수였습니다. 그런데 아끼던 신하 장영실을 단지 가마를 잘못 설계했다는 이유로 세종의 주변에서 사라지게 만들다니요. (뭔가 수상해도 많이 수상합니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는 벼슬한 사람의 행적이 기록되기 마련인데요. 무엇때문인지 장영실의 죽음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마치, 도려낸 테두리 처럼 의뭉스러움 투성이라는 점을 착안 했지요.
여러 미스테리한 죽음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풍부한 작가의 상상력이 양념처럼 작용 해 '한복 입은 남자'는 '장영실'이 아닐까라는 주장이 가능한거지요. 당시 유럽에서는 스승 혹은 다른 사람의 스케치를 옮겨 그리는 작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고 다빈치의 제자인 루벤스도 스승의 그림 어딘가에서 그려져 있던 동양인을 보았다가 그렸을 수도 있다는 가설입니다. 얼굴 생김새는 모르겠지만 '망건'과 초기 조선의 의복 '철릭'을 입고 있고, 망건을 쓴 부분과 신발 부분이 흐릿하거나 그려지지 않은 사실은 뚜렿하게 보고 그린것이 아닐 수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해 줍니다. 이런저런 가설일 뿐이지만 상상력은 끝이 없는법이니, 상상하는 그이상을 상상해도 좋습니다.
어떤 소설은 '반할 수 밖에 없는 강력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때가 있어요. 작가의 대담한 필체, 10년간의 끈질긴 싸움과 고증을 통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설득력, 전혀 연결성은 찾기 힘들 사건을 하나로 잇게 만들어 주는 연결고리, 이 모든 것이 적절히 버물어져 훌륭한 팩션이 만들어진것은 아닐까요. 잊고 살고 있던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다시한번 상기 시켜주는 계기도 만들어 주어서 오히려 독자인 내가 고맙습니다.
▒ 밑줄 긋기
어떤 진리 처음에는 부정되기 쉽다. 하지만 진리 그 자체가 변화하진 않는다.
그것은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P.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