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최유리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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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숫자, 더 좋은 스펙에 목매는 우리는 경쟁 시스템의 충실한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엘리트 코스'라는 무의미한 목표 지점을 향해 줄기차게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타인과 차별화시키는 정체성과 꿈은 당연히 무시된다. 경쟁 시스템의 일원이 되려 할수록, 완전 경쟁 시장의 참여자들이 그렇듯 우린 너무도 쉽게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어간다. " P61

 

저자는 어릴 때부터 옷이 좋았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란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스펙이 패션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다. 서울대 출신, 박사학위, 브랜드 아파트, 그리고 샤넬백을 가지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얻고도 그다지 행복하단 느낌은 없었고,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제목처럼 저자는 샤넬백(겉치레, 가면)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억지로 모범생과 트렌드에 구겨 넣지 않고 나다움을 그대로 분출하기도 한다. 잘 모르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고한다. '패션의 완성은 자존감이다'라는 것을. 옷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말이다.

 

시작은 '오드리 헵번'사진전에서 변한 가치관부터다. 오드리 헵번 스타일을 만들어 낼 정도로 전 세계적인 아이콘이었던 오드리는 당시 선호하는 예쁜 여성의 기준이 아니었다. 풍만하고 육감적인 금발의 여배우들이 각광받던 시기 큰 눈에 지나치게 말라 성적인 매력이 부족한 오드리는 대세에 따르기 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 후에도 유명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마릴린 먼로'나 '그레이스 켈리'와 달리 나만의 삶을 간직하길 바랐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향했고, 유명세를 이곳에 합리적으로 이용했다. 이는 가난으로 고통받았던 오드리의 유년시절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분명 작년 이맘때 벗고 돌아다닌 게 아닌데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이 없다. 쇼핑에 나선다. 옷을 산다. 옷장에 진열하려고 보니, 이미 있는 옷과 비슷한 옷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올해의 컬러, 올해 유행 스타일'이런 문구는 판매를 위한 마케팅이다. 매년 패션 업계에서 암묵적으로 협의된 사항이다. 상품을 팔아야 되기 때문에 사지 않으면 루저라는 의식을 교묘하게 숨긴 전략이다. 이런 문구에 혹해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거나 필요도 없는 아이템을 자꾸만 사들인다.

 

책은 자의식을 갖고 부족한 나를 스스로 사랑해줄 것을 말한다. 10대 때는 모범생처럼 살다 20대에 일류대에 들어갔고 교사의 삶의 살다. 30대에 학자의 삶을 살다가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에 내내 시달렸다. 우울증을 겪고 자살 충동까지 겪은 후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한다.

 

 

20대에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아 열심히 읽었던 남인숙 저자의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의 트랜디한 자기계발 버전 같다. 여기서 말하는 샤넬백은 값비싼 솜사탕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단단해 보여도 쉽게 뭉개지고, 사라져 버리는 우리 안의 허상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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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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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는 신고율이 낮다. 피해자 대부분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복이 두렵거나 2차 가해에 노출되기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이유다. 신고를 했다 해도 반복되는 진술은 끔찍한 기억이 아물기도 전에 들쑤시는 더 큰 폭력이다.

 

최근 할리우드에는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로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여파는 한국에까지 불어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페미니즘 역사 중 세 번째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예리한 시선으로 풀어낸 현대 여성의 서사를 소설 《여성의 설득》에서 만날 수 있다. 소설의 가능성과 반향을 알아본 배우 '니콜 키드먼'이 영화 제작을 발표하며 더욱 화제가 되었다.

 

 

"다음 경험을 향해서 뛰어들어요. 당신의 목소리를 써보려고 노력하는 게 어때요? 난 가끔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은 스스로 외향적이 되는 법을 익힌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P66

 

이 이야기는 예일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부모의 실수로 변두리 대학에 입학한 '그리어'를 다룬다. 학교 파티에서 성범죄가 '대런'에서 성추행을 당하게 된다. 알고 보니 그리어 말고도 이미 다수의 여학생이 피해를 받았지만 학교는 가만히, 조용히 있으라 한다. 이에 반박한 그리어는 징계위원회를 소집하도록 요구하지만 힘과 권력의 벽 앞에서 무력함을 감출 수 없다.

부당한 학교의 처사에 속만 앓고 있던 그리어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 간 강연에서 여순 세 살의 페미니스트 '페이스 프랭크'의 강연을 듣고 감복한다. 그녀는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고 권리를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지 알려준 진정한 어른이었다.

"어디서 일을 하든 나도 뛰어들어서 뭔가 진정한 일을 하고 싶어. 내가 정말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걸로" P185

 

 

시의적절한 소설은 마치 내가 겪은 이야기, 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성차별과 혐오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좋은 멘토를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하다. 숨겨야 미덕이었던 여성의 권력과 야망, 권력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시하는 눈을 길러준다. 지금 바다 건너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들에게도 통하는 보편적인 가치다.

 

 

소설 속 캐릭터들이 처한 사항은 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로 귀결된다. '행동하라!' 이는 비단 여성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 각계각층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를 열고 들어볼 것을 촉구한다.

 

 

페미니즘의 역사의 '제1물결'은 여성의 권리, 즉 참정권을 촉구한 운동 '서프러제트'였다. 1960-70년대의 여성운동은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이라고 불린다.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 제3물결 페미니즘은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유효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으로 제4의 물결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갖는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사정도 다르지 않기 때문일 거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사건에서 익히 들은 바 있다. 정부나 권력의 힘에 휘둘리지 말고 주관을 가지고 행동하란 것. 안전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도 밖에 나가 상황을 파악하고, 언제 올지 모를 구조대를 구하는 대신 직접 행동하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인가 읽고(보고) 침묵했다면 암묵적인 동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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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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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일단 영상미가 좋기 때문이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둘 다 여름밤의 냄새까지도, 실내의 무거운 공기까지도 여실히 보여주는 화면이 인상적인 영화다. 그래서 감독의 작품 세계와 일상이 궁금해졌다. 선뜻 책을 읽었던 계기기도 하다.

 

 

내 기억의 김종관 감독은 몇 해 전 읽었던 책 《라이카, 영감의 도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메라 프레임에 정지된 화면을 담기를 좋아하는 감독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가 찍은 듯한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몽환적이이면서도 슬픈, 그러나 따뜻한 사진들이 툭하니 읽다 보면 등장한다.

 

관객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더듬거리는 말솜씨와 허접하고 실없는 농담도 열심히 들어주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 소음의 와중에 눈은 마주치지 않아도 몸을 비스듬히 세워 귀를 기울이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친구들. P132

 

영화를 보러 기꺼이 와주는 관객을 향한 러브레터 같다. 영화와 함께한 10년의 기록을 나눈다. 에세이를 통해 더 가까이 알아갈 수 있었다. 제목처럼 당신과 가까운 곳에 서 있는 기분이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며 부잣집 아이를 동경했던 어린 시절. 짝사랑의 취향이 바뀌던 아이의 몸에 난 화상 자국.'아름다움을 보고, 부러진 날개를 보았을 때, 그때 비로소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진다'라는 말. 자꾸만 곱씹어 보아도 아련하고 잊히지 않는 말이다. 상대의 상처까지도 보듬어 줄 수 있을 때야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겉모습에 치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아가기 힘든 요즘, 참 와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책은 김종관 감독의 시나리오 씨앗들이 즐비하는 씨앗 컬렉션 같다. 왜냐면. 짧은 글이지만 길게 늘어트려 놓으면 한 편의 단편이 될 것 같은 묘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씨앗을 저장해 놓았다가 언제든지 물을 주고 볕을 보여 나무로 성장시킬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쩌면 에세이 속 일들이 영화화되어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마도 이후 김종관 감독의 신작을 볼 때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인 것 마냥. 영화라는 속성으로만 그 사람을 판단하고 있었다. 일종의 편견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이게 감독들의 에세이를 읽는 맛인가 보다.

 

 몇 해전 '데이빗 린치'감독의 에세이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도 그랬다. 이렇게 영화감독의 에세이를 하나 더 추가했다. 앞으로 더 감독의 사적인 생각이 궁금하다. 더 많은 감독의 사생활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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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혁명 - 행복한 삶을 위한 공간 심리학
세라 W. 골드헤이건 지음, 윤제원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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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환경은 우리의 자아정체성과 타인에 대한 개념을 구성하고, 우리 자신과 과거를 형성하고, 혼자 또는 남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도 '능동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건축 환경 디자인은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데는 물론이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나갈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P159

 

 

우리는 집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간다. 안정적인 공간이어야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업무도 가능하다. 그래서 집은 안식처란 말이 나오나 보다. 주거 지역과 공간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과도 진배없는데 몸에 밴 행동 시뮬레이션인 스키마(연상작용)가 건축환경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인간 중심으로 건축이 진행되는 사람을 위함이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대부분 건축 환경인 현대사회는 장소와 기억의 관계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건축환경을 바탕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간다. 즉, 당신이 사는 장소가 당신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 건축가 '루이스 칸'은 건축환경 디자인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했다. 카라칼라 목욕탕 천장의 높이가 45미터임을 비유하며 "45미터라는 높이는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높은 천장일 때 창조적으로 생각함을 밝히고 있다. 21세기 거의 모든 환경이 인공 건축물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인에게 건축의 필요성을 상기하는 대목이다.

 

 

디자인이 꼭 필요하지 않는 사치품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하는 이야기다. 건축 환경은 우리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인지 능력과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삶의 방식도 만든다. 도시를 계획할 때 허투루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슬럼 구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발달이 느리다. 사생활도 없이 밤낮으로 소음에 시달리고, 신선한 공기나 물도 없이 공동화장실을 쓴다. 인간 최소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 잔혹한 주거 공간이다.

 

 

인지과학은 건축과도 결합해 최근 활발히 연구 중이다. 인지가 모든 경험의 핵심에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마음과 신체는 철저히 결합되어 있다. 우리는 주변 공간에 포함되는 건축 환경 요소를 신체와 관련지어 판단한다. 때문에 물리적 무게는 사회 권력과 동일하다고 느낀다. 중요한 것은 크고, 튼튼한 것은 무겁다고 생각한다.

 

 

"좋은 건축 디자인은 일반벅인 건물에 예술을 덧붙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욕구와 권리를 보장하는 데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 P103

 

 

책은 과학과 기간을 둔 체화된 인지 패러다임을 말한다. 방과 건물, 도시 광장, 건축 환경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7장에 걸쳐 다룬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추천사처럼 건축과 공간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우리가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그곳에서 요구하는 행동이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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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전 -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하여
김버금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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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단어는 몇 개인가.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 감정은 지극히 사적이라 쉽게 동의하거나 동정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부정해서도 안된다. 그냥 그 사람의 마음이 이렇구나 하고 알뿐.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 《당신의 사전》은 47개 단어로 써 내려간 글귀 모음집이다. 책에 적힌 단어들이 낯설었으며, 따뜻하고, 몽그럽고, 그립게 다가왔다. 내가 알던 단어가 맞나. 의심해보거나 새롭게 떠올려봤다.

 

책 속에 속한 마음읽기는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 같다. 자전적인 이야기 같으면서도 도무지 특별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기적이 허구였으면 하기도 하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큰 에세이며 건조해진 마음을 부드러이 풀어주는 유연제 같은 에세이이다.

이 작가 참 글 잘 쓴다. 누군가의 잔잔한 마음에 작은 돌을 던진다. 가만가만, 조용히 나 여기 있다고 말이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말들에게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불안하고, 철렁했고, 먹먹하고, 쓸쓸한 마음들을. 그냥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입 아프고 무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글이다. 서론이 참 길었다. 그냥 읽어봤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답을 해주고 싶은 책이다. "요즘 뭐 읽으세요? 책 추천 부탁드려요."

 

+사랑하다

구골만큼 사랑해.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는 것.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는 것. 두 팔을 벌리면 뒤어와 내게 안긴다는 것. 온몸으로 안긴다는 것. 내가 지은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그 이름으로 살아갈 거라는 것. 그 아이가 온몸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P86

 

+쓸쓸하다

엄마에게는 어떤 시시콜콜한 비밀 이야기가 있을까. 콩닥거리는 마음을 누르고 읽어본 일기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나에게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옷에 김치 국물을 묻히고 가도 반겨주는 친구. 마른 손에서 고무장갑 냄새가 나도 흉을 보지 않는 친구. 아무 때고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더분한 친구.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

생각도 못 했던 내용에 화들짝 놀라 일기장을 덮었다. 원래 놓여 있던 모양이 어땠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아무렇게나 올려놓고 나오는데 얼굴이 다 붉어졌다. 무언가 봐서는 안 되는 걸 본 것처럼, 자꾸만 가슴이 쿵쿵거렸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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