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비법과 명인의 술
조정형.조윤주 지음 / 다온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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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대한민국식품명인홍보관에서 글을 써오고 있다. 그 인연으로 만난 조윤주 관장과 대한민국식품명인 제9호 조정형 명인과 책을 냈다고 해 읽어봤다.

 

 

 

 

평소 카리스마와 넉넉한 인심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조윤주 관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몇 번 취재 때문에 배웠던 술 빚는 방법, 우리나라 술의 역사 등을 체계적으로 복습할 수 있어 좋았다. 늘 똑 부러지는 설명과 강의로 기초 개론과 자료를 전달하고 매끄러운 체험을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전통식품 대중화의 숨은 공로자다.

 
 

 

현재는 코로나 시국이라 예전의 바글바글하고 활기 띠던 전통식품 체험 행사를 못해서 아쉽다. 온라인 키트를 개발해 집에서도 쉽게 명인의 비법과 맛을 전수받을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빨리 상황이 좋아져서 다시 만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식품명인'이란 말은 아무에게나 붙일 수 없다.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명인이며 집안 대대로 기록 문서에 남아 있는 방법을 고수하며 지키고 있는 까다로운 몇몇 절차를 통과해야지만 가능하다. 우리나라 음식과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고유의 술과 명인을 알리고 지키며, 후학 양성을 위한 방법 모두가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술이 기원은 고구려 주몽의 탄생 신화에 깃들어 있다. 『제왕운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하백의 딸 유화가 해모수를 꾀어 술에 잔뜩 취하게 한 후 아이를 잉태했는데 바로 '주몽'이다. 고구려의 제천 행사에서 음주 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따라서 전통주란 대대로 이어온 전통의 역사와 국내산 원료로 빚은 술을 말한다. 크게 곰팡이 균을 이용해 빚는 누룩술을 말한다.
 

우리나라 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술의 기원과 종류도 재미있게 소개되어 있어 참고하기 좋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필자는 전통주의 좋은 재료와 정성을 보고 듣는데 그쳐 아쉽다. 하지만 좋은 술은 약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전통주의 효과도 알고 있어 주면에 전파 중이다. 조정형 명인과 조윤주 관장은 이번 기회에 전통주 역사를 토대로 술 빚는 기초 개론, 명인들의 비법, 전통주의 미래, 전통주 홍보에 적극적으로 힘쓰고자 책을 펼쳐 낸 것이다. 전통주, 전통식품을 공부 혹은 관심 갖는 모든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정리해 놓은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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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 유해한 것들 속에서 나를 가꾸는 셀프가드닝 프로젝트
김은주 지음, 워리 라인스 그림 / 허밍버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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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작가의 전작 '1cm'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다. 오랜만에 신작이 나와 주말 동안 나를 돌아보고 요즘은 신경 쓰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번 책도 마음을 몽글거리게 만드는 글귀와 일러스트가 결합되어 있다. '워리 라인스'와 콜라보로 작업했다. 전작 보다 훨씬 성숙해지고 깔끔해진 것 같아 대체로 마음에 든다. 나를 스스로 키워 보자는 말이 콕 하고 박혀버렸다.

 

"오늘은 나를 가드닝 합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테리어와 식물 테라피가 인기를 끌었다. 외롭지만 함부로 반려동물을 키울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돌, 식물 키우기가 대세다. 식물로 힐링, 테라피를 얻는 것처럼 나를 셀프 가드닝 하면서 지친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어떤가? 밖에 잘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다고 우울해하지 말고 나를 잘 돌보고 관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 몸을 사랑하자. 비타민 챙겨 먹기, 물 자주 마시기, 짜고 맵고 단 음식 적당히 먹기, 요가 꾸준히 하기, 규칙적인 시간에 잠들고 깨어나기, 알지도 못하는 SNS 상 계정 그만 보고 오프라인의 친구나 지인 만나 수다떨기. 또한 그들에게 감정이 상하지 말고 툭툭 털어내기. 어려운 일이나 계획한 일을 해냈다면 적당한 보상도 잊지 말자. 그리고 진짜 식물을 집 안에 들이는 것도 몸과 마음의 가드닝 중 하나일 것이다.

 

 

 

"언젠가 끊어질 관계에 에너지를 속지 말라. 시간은 정리를 잘한다. 시간에게 맡겨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와 나에게 중요한 일,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그런 곳에 쓰는 것이다. 관계는 숫자가 아닌 깊이다 "

 
 

SNS의 팔로워 수, 좋아요 수에 연연하기 보다 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살뜰히 챙기고 싶게 알아가는 게 윤택해지는 관계임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나도 최근 대면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는 어떤 사람 때문에 골치가 꽤 아팠다. 물론 지금도 신경 쓰고 있다.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지만 2주 전보다는 나아졌다.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신경 쓰며 일상이 무너지는 게 나만 손해임을 깨달았고, 나를 저격한다기 보다, 자기 살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다르게 생각해 봤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편안해지더라. 컵에 우유가 반 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반이나 남았다고 역으로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전에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것들은 지금은 너무 많이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모르는 사람까지 신경 써야 하니 할 일도 태산 같구먼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그럴수록 하늘을 보고, 로그아웃하고 밖으로 나오고, 친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 보자. 물론 팬데믹으로 쉽게 허락되지 않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분명 내일 아침은 오늘 보다 조금은 자라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팔로잉 하지 말고 나를 그로잉 하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는 셀프 처방전이다. 작지만 큰 위로를 책 한 권에 오롯이 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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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 유발 하라리부터 조던 피터슨까지 이 시대 대표 지성 134인과의 가장 지적인 대화
비카스 샤 지음, 임경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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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호기심이 많았던 저자가 긴 글을 쓰는 대신 '생각 경제학'이라는 블로그를 2007년 개설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본업을 즐기면서 취미로 즐기려고 했었다. 자신의 생각과 주변에 알고 지낸 사람이나 인터뷰 콘텐츠를 원문 그대로 게시하는 정도였다. 2008년이 되면서 다뤄주었으면 하는 주제와 인터뷰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독자가 늘어나면서 수익성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 시대에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나 영향력을 준 인물을 직정 인터뷰하는 개인 블로거가 된 것이다.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가 하면 초창기 인터뷰는 위키피디아 창립자인 '지미 웨일스'였고,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리 보낸 질문지의 회신에서 "전부 이미 대답한 적이 있는 질문입니다. 다른 질문을 해주세요."라는 말이 트리거가 되어 인터뷰를 할 때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함을 한 수 배운다. 그 후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을 인터뷰했며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생각 경제학'프로젝트는 끈기와 회복탄력성이 있다면 황당하리만치 야심찬 일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P20

그가 처음부터 거물급 인사를 인터뷰하게 된 것은 아니다. 나도 인터뷰 거절 경험이나 인터뷰이 앞에서 실수했던 것, 기타 등등 손발이 오그라들고 자다가 이불킥 하는 일들을 겪었다. 저자는 숱한 거절과 허락받기 위한 끈기, 인터뷰가 가짜가 아니냐는 모욕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를 모아 책으로 펴내자는 제의를 받았고 공동 주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었다.

특히 예술, 음악, 문학 등의 모든 장르는 인간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하고 생각의 방식을 좌우하는 큰 가치라고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이에게서 배울 수 있었고 공통된 사실은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고 협업해 불가능을 성취하게 만드는 능력'임을 알아낸다.

책은 그가 인터뷰했던 명사의 말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곁들이는 형태다. 정체성, 문화, 리더십, 기업가정신, 차별, 갈등, 민주주의에 대해 질문하고 답했다. 다 거기서 거기인 자기개발서의 뻔한 형식이라 생각했는데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나에게 많은 용기를 선사했다. 맨땅에 헤딩하던 저자를 지금의 위치로 이끌어 준 결과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이다.

특히 '문화' 부분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인간과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인만큼 뉴노멀 시대에 문화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수고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문화생활을 즐기려고 하는데, 문화가 없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건조해질지. 아름다움의 추구와 내면의 단단함, 여가 시간을 보내고 휴식을 이끄는 문화야말로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고유한 성질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불완전함, 불안정함을 딛고 나의 생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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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 - 어설픔조차 능력이 되는 시대가 왔다
윤상훈 지음 / 와이즈베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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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애가 왜 그러니? 잘하는 게 어떻게 하나도 없어?"라는 말을 듣고 살아야 했다면 어떨까.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애매한 사람은 평생 성공이나 승리의 기쁨은 누리지 못하고 산다는 말일까.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대사가 생각났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물론 웃자고 한 유행어지만, 그 말은 우리 사회 뿌리 깊은 1등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말이었다. 거들자면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선수가 동메달을 확정짓자 ".. 우리가 원했던 색은 아닙니다만.."이라던 해설자의 말도 일맥상통한다. 2, 하물며 3등도 아닌 4등은 소외감은 물론 자괴감까지 들게 하는 숫자였다.

그래서일까. 일류가 아닌 이류, 아니 삼류. 아니 어설픈 능력이 무기가 된다는 제목을 들으니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린다. "부족한 나도 괜찮은 걸까?"라는 용기가 들었다. 물론 저자는 자신을 한껏 낮춰 지방대 경영학과를 나와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애매한 관심과 어설픈 재능으로 지금은 설치미술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는 자신은 직티스트(직장인 아티스트의 줄임말)라며 본캐는 회사원, 부캐는 아티스트기에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털어놨다. 책 내용이 무척 궁금해졌다.

 

이번 기회에 딴짓해 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부족한 재능을 엄청난 노력으로 끌어올려 탁월한 재능으로 바꿔 성공하지 않았다. 설치 미술에 대한 어설픈 관심, 직장 생활이란 평범한 환경을 활용해 작가로서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애매함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활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법, 그리고 애매한 재능을 기회로 만드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P38

 

저자는 예술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다 우연한 기회에 미술작품을 접했다. 그냥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는 이런 설치 미술을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 씨가 된 경우다.

 

평범한 대학생이 개인 여행을 하겠다고 선언, 대기업이 천만 원을 지원해 주었다. 갑자기 삼성전자 부회장, 부산시장 등을 유명 인사, 셀럽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에는 대학 때 C+ 받은 과제로 특허 출원을 하게 되었다. 토익점수도 없는데 대기업 공채 입사해 잘 다니고 있다. 결국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해외 전시를 한 경험까지 추가되었다. 본인 스스로 내세울 스펙, 배경, 재능 하나 없다지만 이룬 일이 극적이다.

"해보고 안 되면 말고"의 관점과 태도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삶을 바꾸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영화로 치면 모으고 조합한다는 뜻의 '몽타주'가 무대 위에 완벽하게 배치된 '미장센'보다 강점이라 설명한다. 몽타주를 만들기 위해 본인 데이터를 최대한 찾아 이어 붙일 조각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방법은 의외로 쉬웠다. 일단 애매한 재능을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요즘 대세는 뭐니 뭐니 해도 유튜브니까. 유튜브는 시청 기록, 구독, 좋아요를 토대로 통계치를 얻을 수 있다. 산출한 통계로 채널명, 카테고리, 대표 키워드, 재미있게 본 영상을 표로 만들어 보는 거다. 자신만의 대주제를 정하고, 세부 주제를 뽑아 본다. 그리고 부사로 구성을 방향을 잡아간다. 마지막으로 콘셉트를 정하면 된다. 내가 무엇에 관심 있고 즐기는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완벽한 미장센보다 얼기설기 이어 붙인 몽타주가 낫다는 말처럼 평범한 것평범한 것을 연결하면 의외의 재미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에서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단다. 직장인과 설치예술가라는 낯선 조합처럼 그 사람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종합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독창성이 생긴다는 결론이다.

 

묻고 따지지 말고 일단 해봐!

요즘 100세 시대라고들 떠든다. 길어도 너무 긴 인생이다. 긴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일하고 잘 놀고(휴식, 취미), 한 우물 파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어느 정도 흥미와 재능이 있는 것을 계속해서 찾아 나서야만 한다. 피곤한 21세기 호모사피엔스는 죽을 때까지 갈고닦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슬픈 인류다.

 

책에는 어떤 환경에서라도 애매함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활용법이 가득하다. 그럭저럭 쓸만한 재주를 발견하고, 1%로 재능으로 활용해 자신의 강점으로 만들 수 있는 사소한 무기 소개한다. 어쩌면 요즘 갖추어야 할 무기는 전문화가 아닌 최소화, 꾸준한 노력 보다 어설픈 시도다. 대충 시도라도 해봤기 때문에 잘 안되더라도 실망감이 덜하다. 툭툭 털고 또 다른 재능에 도전해 보는 거다.

 

최근 지인과 대화하다가 슬럼프가 왔다고 고백했는데 이런 대답이 날아왔다.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요." 맞다. 매사에 완벽해지려 열심히만 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퓨즈가 나간 거다. 세상은 변했다. 열심히 일한다고 비례하는 결과로 화답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전문성보다는 쉽고 대중적이며 독특하고 꼭 필요한 콘텐츠인가가 중요하다. 애매한 재능, 어설픈 관심, 한 번의 시도가 필요하기도 하다. 대충이라도,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일단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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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독서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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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고급스러운 양장에 비비드한 컬러가 눈에 띄는 디자인이다. 두께감이 상당하지만 안쪽을 펴보니 명언집처럼 한두 줄의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고 술술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문구는 다이어리에 옮겨 적어 보았다. 끄적이다 보니 글은 늘어났고 혼잡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책은 198427살에 금서로 지정된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쓴 박노해 시인의 책이다.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1991년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사형을 받고서도 웃음을 감추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 단단한 느낌이다. 그는 감옥소 독방에 갇혀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침묵의 시간을 보낼 때 독서와 집필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7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무기수에서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지만 국가보상금은 거부했다. 그 후에도 20년간 평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했고, 만년필로 써 내려가는 글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고난의 길을 여러 번, 오래도록 겪었던 그는 인생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 중 하나를 '걷는 독서'에서 찾게 된다. 한 평짜리 어두운 감옥에서 두 걸음 반이면 벽이지만 걷는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두 걸음의 독서지만 책 속을 걷는 걸음의 보폭은 광활했고 현장 곳곳을 누비며 탐험했다.

    

지금도 가난, 노동, 고난으로 점철된 청년 시기를 생각하며 걷는 독서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인류 탄생 최대의 가장 많은 교육과 물건과 음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누리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더 크게 얻고자 하는 욕망 또한 꺼질 줄 모르고 팽창하고 있다.

미디어의 콘텐츠와 환경오염은 폭발하고 있고, , 물건, 음식은 풍부하다 못해 과잉되고 버려지고 있다. 너무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조차 선택할 수 없는 장애를 갖는 우매한 인류기도 하다. 집단으로 바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 현 인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사유와 독서다.

 

따라서 다시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갖길 바란다. 남이 제시해 주는 정보, 요약, 심지어 생각까지 가지려 하지 말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삶을 박노해 시인이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박노해 시인은 진정한 독서란 지식을 축적하는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진리의 불길에 나를 살라내는 '자기 소멸'의 독서라고 말했다. 책을 '읽었다'와 책을 '읽어버렸다'의 차이를 아는 독서를 해보라고 권장한다. 이를 통해 저마다 한 권의 삶이란 책을 완성해 보라는 말. 일과 삶의 고민이 커지는 요즘 한 줄기 빛처럼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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