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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혼란 - 인생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당신을 위해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23년 1월
평점 :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온다. 무기력과 혼란, 우울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다. 저자는 원인 중 하나를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라고 설명한다. 과학자다운 발상이다. 뜨거운 물이 식고, 태어나고 죽는 모든 자연이 열역학 법칙에 의해 돌아가고 인간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다. 프로이트와 융도 마음적 에너지로 엔트로피를 봤다.
열역학에서 나온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고 '심리적 엔트로피'로 불린다. 엔트로피는 입자의 배열이나 질서의 정도 같은 물질의 상태 값의 하나다.
에너지와 희랍어 트로포스(tropos)의 합성어로 에너지 변화라는 의미를 띤다. 힌두교의 베다 경전에서는 인간 본성을 구나(Guna)라 불렀다. 타마스(무기력, 저항), 라자스(활동에너지), 사트바(기쁨, 평화, 행복)라는 삼덕 트리구나로 불렀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할 일이 쌓였는데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이유가 뭘까.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의식 수준은 일이 많으면 엔트로피 값이 커져 혼란스럽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집중하면 엔트로피가 감소하고 차분해진다. 질서가 잡히고 유용한 에너지가 많아지는 깨달음의 경지다.
그 반대도 힘들다. 극도로 일을 해야만 하는 혼란. 혼란을 만드는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불린다. 아무것도 못하는 블록과 정반대다. 미친 듯이 다작한 고흐는 매일 16시간씩 그리고 36시간마다 작품 하나를 완성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2년 동안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도 200통이 넘는다. 고흐가 뇌전증으로 하이퍼그라피아를 겪었을 거라고 신경의학자들은 말한다. 뇌에 문제가 있었지만 예술행위를 멈추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면 질서를 주는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수많은 천재들이 엔트로피 증가를 견디다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례만 봐도 그렇다. 삶의 엔트로피가 최대치로 차오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희망을 잃고 무너지고야 만다. 또한 수치심이나 무기력 같은 스트레스가 엔트로피를 증가하고 의식수준은 떨어진다. 높은 자유도가 엔트로피 값을 높인다. 그렇다면 걱정이다. 현대인이야말로 24시간이 모자란 인류 역사상 가장 바쁜 종이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은 특징이 있다.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만 만족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성취의 상징에만 집착하고 경쟁심도 강하다. 분노를 품고 있거나 한순간 폭발하기도 한다. 맛있는 것을 먹고 쉬는 일상에서도 성공의 흔적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아지려고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 사람이 없다. 늘 바쁘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해 종종거린다. 인격 완성에는 관심이 없고 타인의 삶에도 무관심하다.
그렇다면 이런 혼란은 어디서부터 출발할까. 심리학자들은 성격 성형이 유전자, 교육, 양육 배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어릴 때 부모와 떨어지지 않고 지내는 것, 그렇다고 맞벌이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가정에 맞게 다양하게 양육하면 되는 것. 여러 가지 쉽지 않은 문제지만 어릴 때 얼마나 사랑받고 살아갔는냐에 따라 기질은 바뀔 수 있다는 거다.
책은 과학자에서 인문학자가 된 저자가 글쓰기를 하지 못한 절망의 순간을 고백하면서 어떻게 도움받았는지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 낸다. 어떨 때는 자기 고백서 같기도 하고, 다양한 과학적 법칙을 내세운 논문 같기도 하며, 정신분석학이나 심리 상담 케이스를 옮겨 놓은 듯 사례집을 보는 것 같다.
또한 역사 속 천재의 일화나 개념을 알기 쉽게 풀어내 지식적인 도움도 받아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뇌와 마음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는 법은 '엔트로피 증가'가 만드는 혼란이며, 이를 길들이고 바로잡기 위해 의식의 자각적 통제,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