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살아있는 생각 라 클래시크 시리즈
헨리 데이비드 소로.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김은영 옮김 / 윌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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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소로는 '나는 자연인이다'에 등장하는 여러 자연인의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가족과 단절된 채 콩코드의 숲속에서 보냈다. 1845년부터 2년간 보스톤 근처 월든 호수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과 인간을 탐구한 사람이다.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남편, 아빠, 가장이겠지만 그나 남긴 유산은 현대에 귀한 자료가 되었다. 


저자는 그가 23년 동안 쓴 글을 통해 좀 더 쉽게 소로의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소로는 1817년 7월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태어났고 31세가 되도록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버드를 졸업한 후 근근이 글을 쓰고 측량사로 일했다. 45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뜰 때까지 당대 저명한 저자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시적 감수성의 산문가였다. 후대에 이르러 조용한 사유적 목소리와 긍정적 질문들이 각광받고 있다.  다윈처럼 자연을 탐구했지만 과학적 실험과 연구를 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책이나 인물에 영향을 받기 보다 '자연' 그 자체에서 체득한 여러 지표를 삶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욕심을 버리고 금욕적이고 검소한 삶을 살며 그 대가를 기꺼이 감수하며 청빈하게 살았다. 수천 편의 글을 통해 자연의 모든 현상은 우주를 구성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위대한 창조 정신, 보편적이고 예술적이며 건설적인 지성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영화 <호퍼스>에서 연못 법을 제정한 조지왕의 말처럼 "먹을 때는 먹는다"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수많은 생명은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광경을 당연히 여기며 자연의 위대함을 논했다. 자연을 선악, 자비, 예술 같은 인간의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다. 노동을 신성한 일로 여겼으며, 우주의 영이 있어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인간을 우주 전체와 연결된 유기체로 보았다. '콩코드의 인간'이란 이름 아래 특정 지역 환경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는지 기록했다. 


따라서 철저히 혼자 고립을 원했으며 사회와 단절해야 정서적인 자립과 내면의 힘을 갖추게 된다고 생각했다. 의미 없는 대화나 파티, 사치를 경멸하며 쾌락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생각도 일치했지만. 좋은 동물이 되기 위해 번식과 가정을 돌보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사회적 제도 보다 자연의 섭리인 번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나 싶다 선행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누군가를 도와주었다는 무의식은 자신을 애초에 우월적인 존재로 여긴다고 경멸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사상을 집대성한 사람은 시어도어 드라이저다. 그는 자신이 작가가 된 배경 중 하나도 소로의 사상을 들었고, 프롤로그를 통해 소논문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구성을 그래서 의미 있고 독특하다. 우주, 지식, 도덕, 감정, 사회 (정부, 돈과 전쟁, 사회제도, 종교 제도), 우정, 잘 사는 삶, 예술과 아름다움, 발전, 죽음에 대해 소로를 잘 정리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괴짜가 아닐 수 없다. 19세기 사색가를 21세기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기계 문명이 발달한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다시 자연을 논해야 할 이유를 생각해 봤다. 요즘은 세상은 빨리 변해서 따라잡기 솔직히 버겁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겨우 붙잡고 있지만 언제든지 낙오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삶이다.


자연을 통해 우주의 섭리를 밝히는 과정은 SF 영화의 단골 문법이다. 이 책을 통해 자연과 인간, 우주 속 인간의 존재, 나아가 외계인, SF 소설이나 영화까지 확장해 본다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잠시 철학적 사색이 필요한 독자에게 권한다. AI가 판치고 욕심과 돈이 중요한 세상에서 동떨어진 무언가를 꿈꾼다면, 이런 몽상가를 위한 귀한 마중물이 되어 줄 것이다. 물건과 관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면 해답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변했지만 여전 시끄러운 세상과 단절하고 싶은 인간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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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닛
매기 오패럴 지음, 홍한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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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오패럴의 소설 <햄닛>은 영화 <햄넷>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를 본 후 원작 소설을 읽었고, 대략적인 차이점을 소개한다. 영화를 본지 좀 되어 기억이 희미해 정확하지 않음을 밝힌다.


영화 <햄넷>과 원작소설 <햄닛> 차이점


전지적 작가 시점을 중심으로 영화와 다르게 시점과 화자가 계속해서 바뀐다. 부드럽게 읽히기 보다, 뚝뚝 끊어지기 때문에 감정과 시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의도한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가독성이 높지는 않았다.

소설의 오프닝은 햄닛이 쌍둥이 동생 주디스가 아픈 걸 알아내고 분주하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햄닛의 어머니인 아그네스(아녜스)와 셰익스피어의 만남부터이며 시간 순으로 이어지지만 소설은 파편적인 구조를 취한다.


영화는 아그네스와 윌리엄이 호감으로 서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그네스는 마녀라 불리는 별명답게 숲에서 영험함을 뽐내며 황조롱이를 팔에 얹고 돌아온다. 윌리엄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라틴어 선생으로 아그네스 집에 와있다. 이걸 배워서 뭐하나 싶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 가르치는 중이며, 잠시 창밖을 보다 귀가하는 아그네스를 본다.


매기 오패럴이 영화 시나리오에도 참여했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존, 아그네스의 새어머니 조운, 아그네스의 이복동생들, 셰익스피어의 동생의 시점도 면밀히 소개된다. 이들의 전사와 속마음을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인물탐구가 가능하다.


조운이 이 집안에 들어와 아이 여섯을 더 낳고도 과부가 된 이야기, 존이 양털을 몰래 거래하다 신용을 잃고 가죽 길드에서 왕따 당하게 된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동생 일라이자가 죽은 언니의 이름을 물려받게 된 경위 등등. 몰라도 영화를 보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특히 영화에서는 주디스의 병이 어디서 왔는지 생략되었지만, 소설에서는 베네치아 무라노섬의 유리 장인에서 시작된 경위를 밝혀준다. 바다에서부터 시작된 원숭이, 벼룩, 고양이, 주 등으로 옮겨온 과정이 자세히 서술된다. 아마 흑사병(페스트)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손가락이 검은색과 보라색으로 물들고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멍울이 생긴다.


죽음을 속이는 장면이 소설 보다 극적으로 영화 속에서 표현되었다. 그런 단서는 햄닛과 주디스가 서로 옷을 바꿔 입은 적이 있다는 데서 유추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런던으로 떠나던 아버지 윌리엄이 햄닛에게 '용감하게 굴어'라며 누이와 어머니를 지키라는 말을 한다. 그게 어린아이에게 어떠한 무게로 커졌는지 윌리엄은 알까. 동생을 위해 죽음을 자초한 행동에 훨씬 책임감을 더한다.

소설은 죽는 순간, 염, 묘지 안장 등 햄닛의 장례 과정이 상세히 서술된다. 4년 뒤 윌리엄이 아들의 글 속에 영원히 숨 쉬게 만드는 연극 장면은 생각 보다 짧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눈물 콧물 쏙 빼놓는 명장면이니 영화로 또다시 즐겨보길 바란다.


영화 <햄넷>과 실제 <햄릿>이 다른 점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쓰기까지 자식의 상실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는다. 팩트가 아니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쓰인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를 영화로 만든 게 영화 <햄넷>이다.

소설은 1596년 여름 워릭셔 스트랫퍼드에서 죽은 한 소년의 삶에서 영감받은 허구. 실제 셰익스피어의 가족사도 비슷하지만 다르게 묘사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년의 어머니 이름이 앤이라고 알려졌으나 외할아버지 리처드 해서웨이 유언장에 애그니스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이름을 따랐다. 조운 해서웨이가 애그니스의 어머니라는 사람도 있고, 스텝맘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확인할 증거는 없다고 한다.


햄닛의 고모 이름이 일라이자가 아니라 조운이지만(언니의 이름을 물려받음) 작가가 바꾸었다. 당시 교구 기록에는 겹치는 이름이 많지만 혼란스러워할 독자를 위해 작가가 스텝맘 이름을 조운으로 정했다.

셰익스피어 생가 관리 위원회 안내인들은 햄닛과 주디스 수재나가 헨리 스트리트의 조부모 집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반면 이웃에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합가했든 같은 동네 살았든 생활을 공유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아들 햄닛 셰익스피어의 장례 기록은 있지만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글 속에는 16세기 만연했던 흑사병이나 역병이란 단어가 희곡, 시 어디에도 쓰이지 않은 것에 착안해.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쓴 상상의 결과물임을 밝힌다. 따라서 아들의 죽음을 겪고 이를 예술적 승화물로 만들어 낸 이야기는 잘만들어 낸 뻥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혼동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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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미술산책 2 - 미술의 부활과 끝없는 탐색 쉬엄쉬엄 미술산책 2
고지수 지음 / 휴앤스토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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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선 연휴 동안 《쉬엄쉬엄 미술산책》 1, 2부를 즐겁게 읽었다. 방대한 서양 미술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은 물론 그림까지 세세하게 배치해 이해도 쉽다. 어떤 책은 저작권 때문에 사진을 큐알코드로 접속해 직접 확인하도록 했는데, 이 책은 그런 수고로움이 덜하다. 일목요연하고 깔끔하게 편집되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오늘 점심 뭐 먹지 고민하기에 지쳤다면, 책만큼은 골라 먹기 하듯 부담 없이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어봐도 상관없다. 영화 스토리처럼 앞부분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용어, 역사를 설명하는 건 기본이다. 나아가서는 현대에 끼친 영향과 재해석까지 범용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특히 미술관, 박물관 관람을 즐긴다거나 서양 역사에 관심 있거나, 유럽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정말로 알고 가면 하나라도 더 보이는 게 있다. 이 책은 '쉬엄쉬엄'이란 단어처럼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흥미까지 유발하고 있어 추천한다.

역시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원하는 곳부터 읽어도 이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괜찮았다.



1부에서는 원시미술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게, 그리스, 로마 순으로 문명을 훑어 준다. 이후 기독교의 등장으로 갈라진 세상을 정리한다. 초기 기독교 미술, 서로마의 멸망과 수도원의 출현, 대성당의 시대로 끝난다.

이집트에 죽기 전에 가보고 싶어서 먼저 읽었다. 십여 년 전 대영박물관에서 미라나 이집트 조각상, 그림을 봤지만 피라미드는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초등학생 조카의 그림이 생각나서 이집트 그림이 관심 같다. 얼굴은 옆면인데 몸통은 앞면이고 하체는 옆면인 기이한 형태의 의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변치 않는 본질을 보존,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얼굴은 옆얼굴이지만 눈은 정면에서 본 모양이고, 상반신은 정면이다. 대부분이 정면성의 원리에 기초를 두며 각 부위의 비례 법칙이 적용된다. 머리, 몸통, 팔, 다리를 일정한 비율로 그렸다. 작품의 주인공이거나 신분 높은 사람만이 이 규칙에 따라 그렸다. 앉아있다면 두 손을 올렸고, 남성의 피부는 더 검었다. 하늘의 신이자 태양의 신인 호루스는 매의 머리 모양, 서기의 신인 토트는 따오기 머리, 염라대왕같이 사자의 심장을 저울에 다는 역할인 신 아비누스는 자칼의 머리다.

저자는 법칙을 파괴한 아크나톤 시대의 그림을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혼란에 빗대었는데 매우 이해가 빨랐다. 신 같은 권위와 위엄을 벗어던지고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투탕카멘이 2-3년 재위하고 18세에 죽었다고 한다. 단번에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이 떠올랐다. 사냥 중에 부상당해 회복되지 않고 죽었다는 설도 있으나, 세티1세와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가능성도 있단다. 그래서 무덤 위치가 좋지 않고 초라해 도굴되지 않고 최근에야 보존 형태로 발굴되었다고 전해진다.



2부에서는 미술의 부활과 끝없는 탐색을 논한다. 신중심과 인간 중심으로 나눠 미술사가 어떻게 발전하고 확장해갔는지를 다룬다. 13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역사와 연결된 미술 세계를 바라본다.

역시나 벨라스케 '시녀들'에 눈이 갔다. 최근에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 영화 <파반느>도 봤기 때문일 거다. 인간의 존엄을 단골 소재로 삼았고,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심안이 탁월하다. 절묘한 빛과 어둠의 조화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했으며 주제를 부각했다. 언제 봐도 레이어드 된 서사, 인물이 많아 그림이 이야기를 해준다고 생각했고, 해석의 여지도 달라진다고 느꼈다.


책은 저자의 적재적소에 맞는 예시와 친절한 풀이로 술술 읽힌다. 다만, 하필이면 처음 펴서 읽은 이집트 문명 편에서 저자의 실수를 제대로 검수 안한 교열 교열 짜와 편집자를 떠올렸다. 방대한 세계 역사와 미술을 두 권의 책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반말체로 쓰다가 느닷없이 존댓말이 튀어나오는 형식을 두 번이나 마주했고, 갑자기 '저는'이러면서 반말로 맺는 비문도 접했다. 꼼꼼하게 봤더라면 찾을 수 있을 텐데. 참 안타까웠다. 2쇄를 찍는다면 부디 다시 검수하였으면 좋겠다. 명품과 짝퉁은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명품에 가까운 좋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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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미술산책 1 - 역사에 무늬를 입히다 쉬엄쉬엄 미술산책 1
고지수 지음 / 휴앤스토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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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선 연휴 동안 《쉬엄쉬엄 미술산책》 1, 2부를 즐겁게 읽었다. 방대한 서양 미술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은 물론 그림까지 세세하게 배치해 이해도 쉽다. 어떤 책은 저작권 때문에 사진을 큐알코드로 접속해 직접 확인하도록 했는데, 이 책은 그런 수고로움이 덜하다. 일목요연하고 깔끔하게 편집되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오늘 점심 뭐 먹지 고민하기에 지쳤다면, 책만큼은 골라 먹기 하듯 부담 없이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어봐도 상관없다. 영화 스토리처럼 앞부분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용어, 역사를 설명하는 건 기본이다. 나아가서는 현대에 끼친 영향과 재해석까지 범용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특히 미술관, 박물관 관람을 즐긴다거나 서양 역사에 관심 있거나, 유럽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정말로 알고 가면 하나라도 더 보이는 게 있다. 이 책은 '쉬엄쉬엄'이란 단어처럼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흥미까지 유발하고 있어 추천한다. 


역시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원하는 곳부터 읽어도 이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괜찮았다.




1부에서는 원시미술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게, 그리스, 로마 순으로 문명을 훑어 준다. 이후 기독교의 등장으로 갈라진 세상을 정리한다. 초기 기독교 미술, 서로마의 멸망과 수도원의 출현, 대성당의 시대로 끝난다.

이집트에 죽기 전에 가보고 싶어서 먼저 읽었다. 십여 년 전 대영박물관에서 미라나 이집트 조각상, 그림을 봤지만 피라미드는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초등학생 조카의 그림이 생각나서 이집트 그림이 관심 같다. 얼굴은 옆면인데 몸통은 앞면이고 하체는 옆면인 기이한 형태의 의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변치 않는 본질을 보존,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얼굴은 옆얼굴이지만 눈은 정면에서 본 모양이고, 상반신은 정면이다. 대부분이 정면성의 원리에 기초를 두며 각 부위의 비례 법칙이 적용된다. 머리, 몸통, 팔, 다리를 일정한 비율로 그렸다. 작품의 주인공이거나 신분 높은 사람만이 이 규칙에 따라 그렸다. 앉아있다면 두 손을 올렸고, 남성의 피부는 더 검었다. 하늘의 신이자 태양의 신인 호루스는 매의 머리 모양, 서기의 신인 토트는 따오기 머리, 염라대왕같이 사자의 심장을 저울에 다는 역할인 신 아비누스는 자칼의 머리다.

저자는 법칙을 파괴한 아크나톤 시대의 그림을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혼란에 빗대었는데 매우 이해가 빨랐다. 신 같은 권위와 위엄을 벗어던지고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투탕카멘이 2-3년 재위하고 18세에 죽었다고 한다. 단번에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이 떠올랐다. 사냥 중에 부상당해 회복되지 않고 죽었다는 설도 있으나, 세티1세와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가능성도 있단다. 그래서 무덤 위치가 좋지 않고 초라해 도굴되지 않고 최근에야 보존 형태로 발굴되었다고 전해진다.




2부에서는 미술의 부활과 끝없는 탐색을 논한다. 신중심과 인간 중심으로 나눠 미술사가 어떻게 발전하고 확장해갔는지를 다룬다. 13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역사와 연결된 미술 세계를 바라본다.

역시나 벨라스케 '시녀들'에 눈이 갔다. 최근에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고, 영화 <파반느>도 봤기 때문일 거다. 인간의 존엄을 단골 소재로 삼았고,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심안이 탁월하다. 절묘한 빛과 어둠의 조화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했으며 주제를 부각했다. 언제 봐도 레이어드 된 서사, 인물이 많아 그림이 이야기를 해준다고 생각했고, 해석의 여지도 달라진다고 느꼈다.


책은 저자의 적재적소에 맞는 예시와 친절한 풀이로 술술 읽힌다. 다만, 하필이면 처음 펴서 읽은 이집트 문명 편에서 저자의 실수를 제대로 검수 안한 교열 교열 짜와 편집자를 떠올렸다. 방대한 세계 역사와 미술을 두 권의 책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반말체로 쓰다가 느닷없이 존댓말이 튀어나오는 형식을 두 번이나 마주했고, 갑자기 '저는'이러면서 반말로 맺는 비문도 접했다. 꼼꼼하게 봤더라면 찾을 수 있을 텐데. 참 안타까웠다. 2쇄를 찍는다면 부디 다시 검수하였으면 좋겠다. 명품과 짝퉁은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명품에 가까운 좋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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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
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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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가족의 투병을 겪은 저자의 수기와 취재로 얻는 이야기가 고통스럽게 다가 온다. 누구나 삶을 떠나지만 인간답게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나도 한 해 마다 나이 드는 게 느껴지고 부모님도 한 해 마다 다르다. 늙어가는 외모를 볼 때마다 걱정스럽고 뭘 어떻게 준비할까 고민된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죽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지 못하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거다. 사전연명의향서. 이 책은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이자, 실체가 없는 죽음의 공포에 대비하는 길이다.

책은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1장은 아버지가 난치성 근유계 질환이란 병마와 싸우며 겪는 모든 일을 담은 죽음의 모습, 2장과 3장은 기자로서 취재한 경험, 4장은 말기 환자를 통해 존엄함을 찾는 과정과 설계 준비다. 딱딱한 구성도 문체도 아니다. 부드러운 말투로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더욱 선명해진 실체가 드러난다.


읽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을까. 텍스트의 뾰족함이 피부를 찌른다. 누구나 죽음을 맞고 싶지 않을텐데 죽음 앞에서 의연해지지 않을텐데. 가족, 연인, 가까운 사람을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크다. 그럴수록 읽다보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남겨진 가족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지 오히려 생각해 보게 한다. 


<은중과 상연>의 마지막 장면처럼 고통을 스스로 내려 놓기 위한 조력사망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내 의지대로 죽을 선택권.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작성해 놓은 사전연명의향서의 문답을 읽어보니 현실로 다가온다. 불확실성 시대에 내가 죽는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안긴다면 어떨까. 생각조차 할 수 없을텐데 연명치료를 계속하고 있다면? 그걸 내가 모르고 있다면? 


오히려 죽음을 인식하면서 삶을 정의하게 된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늘을 즐기며 살자. 그리고 다가올 나의 죽음, 가족의 죽음을 알아보자.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아가면서 익숙해져 가자. 말만 쉽지 실천하기 어렵겠지만 이 책을 읽어 본 것 만으로도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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