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 책과 마주쳤다. 정말 그랬다. 그저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책 제목에 있는 단어 하나에 눈길이 끌렸다.

스캔들. (국민 여동생 수지의 열애 기사를 접한 직후라서 더욱 끌렸을까… ^^;) 여하튼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책 표지에서, 제목의 `스캔들`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카사노바 연인 중 가장 유명한 여성 마농 발레티의 초상화, 장 마르크 나티에 그림)이 역시 눈길을 사로잡았고, 결정적인 한 마디가 결국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가르친다면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정글북`으로 유명한 작가 J. R. 키플링의 말이라고 한다.

출판사에 따르면, 역사를 뒤흔든 거대한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어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최적의 역사 입문서’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저자의 말을 빌면, 역사책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전쟁과 협정, 동맹과 침략 등 거창한 사건들 속에서 배경에 불과하기 일쑤인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고 한다.

일전에 TV 프로그램에서 철학자 탁석산 선생이 역사와 같이 거대담론이 놓치는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소설의 기능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스토리텔링을 부각시키면서, 유럽사를 동화보다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책이라면, 소설의 기능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책이 소설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통의 역사서도 아니다. 둘의 중간쯤에 있는 책이지 싶다.

책을 읽고나서 소감이지만, 출판사의 소개가 상당히 과장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저자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재미있는 역사책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눈숑눈숑 역사탐방`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역사 이야기를 시작했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호응도 얻고 하루 최대 27만 이상 방문하는 기록을 세움으로써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판사의 소개에 과장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상쇄되는 느낌을 받았다.

스캔들(scandal),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 뒷소문, 추문으로 순화. (표준국어대사전)

책은 중세 최악의 프로포즈부터 시작한다. 첫 번째 화제가 스캔들에 걸맞는다. 주인공은 정복왕 윌리엄 1세와 마틸다 왕비. 폭력적인 성향의 남자와 당찬 여성의 만남은 비상식적인 경우라고 생각되지만, 왕족을 견제하는 세력과 갈등을 해결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영국을 정복하는 결말을 보면서 운명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국 사회와 언어 습관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새로운 왕조의 뿌리를 내리게된다. 막내아들이 헨리 1세.

헨리 1세의 후계자가 탔던 배, 화이트쉽이 침몰한 사건은 음주가 빚은 참화로 역시 충격적이다. 이로 말미암아 왕위 쟁탈이 심화되지만, 헨리 2세가 즉위. 그래서 플랜태저넷 왕조가 시작되고, 나중에 요커 가문(하얀 장미 문장)과 랭커스터 가문(빨간 장미 문장)으로 나뉘지만 서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으로 장미전쟁을 치른다.

장미 전쟁 막바지. 랭커스터 가문 출신인 헨리 6세의 건강 이상이 불거진 후 요커 가문의 리처드가 섭정하다가, 왕자가 태어나면서 추방 당한다. 왕위 계승자였지만 어린 에드워드 5세는 런던탑에 갇혔다가 실종된다. 킹메이커가 등장하고, 왕족과 귀족 간 정략결혼, 삼촌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지만 전쟁에 지면서 헨리 7세가 즉위, 튜더 왕조로 이어진다.

책은 유명한 헨리 8세가 아들을 얻기 위해서 왕비를 6명이나 두게 되는 과정도 알려준다. 왕비는 순서대로 캐서린, 앤 불린, 제인 세이모어, 클리브스의 앤, 캐서린 하워드, 캐서린 파. 마음에 드는 여성과 결혼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면 왕비의 불륜, 역모 등을 빌미로 처형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아내를 살해하는 남자라고 별칭을 붙였다 싶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미 소설, 영화, 드라마로도 알려진 사건들이 많지만 선조의 폭력성을 빼닮은 후손의 폭악성에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간통죄가 폐지된 바가 있다. 이렇듯 현재 잣대로는 그리 낯설지도 않고,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는 사건일 수도 있을런지 모르지만, 발생 당시에는, 그러니까 중세와 근대의 시대는 현재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그렇게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를 굵직한 사건 위주로만 알고 있고, 그마저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다.

피츠로이 이름의 의미와, 영국 역사에서 마틸다, 제인, 헨리, 윌리엄, 앨리스 등의 이름이 자주 나오는 이유도 새로 알게됐다. 피의 백작 부인 바토리 에르제베트를 둘러싼 진실과 거짓말에 대해서는 저자의 의견에 대부분 공감한다. 중세 영주의 초야권에 대한 오해, 중세 여성과 남성의 삶, 유럽 궁정에서 시녀의 역할과 마구간 관리인의 지위,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가 재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익스피어의 정체 논란은 흥미진진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영원히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뽀얀 화장법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 위해서 죽음과 맞바꾸기까지 했던 근대의 패션 아이템(크리놀린,파딩게일,파니에,코르셋,퐁탕주,초핀,칼라)에 대한 지식이 늘어났음도 기대 이상의 재미를 더한 것 같다.

(1권 읽기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2권 열독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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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제목 오른쪽과 아래쪽으로 글자들이 어질러진 듯한 느낌이지만 강렬하게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 돋보인다. (회색 바탕에 글자가 흰색이라서 금방 눈에 띄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니까, )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읽어도
머릿속에 한
글자도
남지 않을
때였다.
책장을
갉아먹고
사는
책벌레에게
책이
맛없어진
때보다

끔찍한
순간은
없지
않겠는가.

과연, 촌철살인!

책을 손에 넣기도 전에 벌써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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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으로서의 잠 안 재우기는 수 세기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지만, 그것의 체계적 활용은 전기 조명과 지속적 음향 증폭 수단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시점과 역사적으로 일치한다. (중략) 그것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정신이상을 유발하며 몇 주 후에는 신경 손상을 초래하기 시작한다. 실험에 의하면, 2 주에서 3 주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쥐는 죽게 된다. 잠을 못 자면 극단적인 무기력증과 순응의 상태가 초래되는데 이 때 희생자에게서 의미있는 정보를 캐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는 그 무엇이라도 시인하거나 지어내게 되는 것이다. 잠 안 재우기는 외적 무력에 의한 폭력적인 자아 박탈, 계산된 개인 파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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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 물질적으로 만족스런 삶을 넘어 진정으로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제 3의 기준이 필요하다. 돈과 권력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넘어 성공을 평가하는 제 3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웰빙과 지혜, 경이로움과 베풂이라는 네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스트레스가 우리 삶에서 누적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한 삶이란 환상을 좇아 눈코 뜰새 없이 바삐 돌아다닌다. 그런 성공의 겉모습과 진정으로 충만한 삶의 차이가 항상 뚜렷이 들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 과거를 돌이켜보면 둘의 차이는 한층 명확해진다.

아는 것을 실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는 정말 어렵다. 몸에 밴 많은 습관이 문화적 규범의 산물이기 때문에 습관을 바꾸기가 더더욱 어렵다. 성공을 재정의할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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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드뎌 읽기를 끝냈다.
소설이라고 알고 책장을 펼쳤는데, 소설 같지 않은 느낌으로 읽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씌여있다는 돈과 인간 심리에 대한 촌철살인 문장이 끝까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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