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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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 이 책은 그가 무명시절에 쓴 초기 작품으로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재가 모두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등장하는 공통점이 있다. 각 작품마다 개성이 넘쳤고 기대에 부응하는 반전 드라마까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너무 안타까워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고 안하무인에 파렴치한 가해자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어 기가 막히기도 했더랬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위험천만한 도로 위에서 조금만 방심하고 부주의를 하게 되면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인데 일단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가증스러운 두 얼굴을 가진 이들의 추악한 민낯이 씁쓸했다. 인과응보를 자초한 결과였기에 그래서 더 짜릿하고 통쾌했던 것 같다. 

같은 차에 타고 있다 교통사고로 오빠를 잃은 시각장애인 여동생 나호가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사고 발생 시각을 밝히고 증명하는 방법이 독특했던 <천사의 귀>. 경차와 외제차가 충돌한 사고로 만약에 좀 더 튼튼한 중형차나 같은 외제차였다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예전에 비슷한 경우의 사고를 큰 교차로에서 지나가다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경차는 정말 흉측하게 절반이 넘게 납작 찌그러지고 상대차는 너무 멀쩡하게 보여 놀랐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시라이시 가도 트럭 사고가 나고 운전자는 사망한다.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가해자를 찾아 나서지만 도로교통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 운전자 부인의 선택이 이해가 되면서도 충격적이었던 <중앙분리대>. 
 

느릿느릿 운전을 하던 앞선 차를 장난으로 뒤에서 겁을 주며 무섭게 몰아세운 가해자를 치밀하고 완벽한 계획으로 소름 끼치게 복수를 가한 <위험한 초보운전>. 불법 노상주차로 소중한 아이를 잃은 한 남자와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는 뻔뻔한 가해자의 태도에 똑같이 공포감을 주며 경각심을 일깨워준 <건너가세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게 그렇게 어럽고 힘든 일은 아닐 텐데 꼭 자신이 당해봐야 정신을 번쩍 차리는지 모르겠다. 피해자의 남성은 정말 억하심정이 무너졌을 텐데 그 정도로 용서하고 끝낸 것만 봐도 정말 대인배였고 가장 울컥했기에 더 울림이 있던 단편소설이었다.

 

도로에서 무단투기를 한 앞 차, 날라온 캔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성이 한 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 가해자는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고 이 커플이 앞 차를 타고 있었다. 운전자 남성은 끔찍한 범행을 자신의 여자친구 몰래 준비하고 있었고 이 여성을 교묘하게 속여 곧장 실행에 옮긴다. 스릴러물로 심장이 바운스 했던 <버리지 말아 줘>. 마지막 운전자 바꿔치기가 등장했던 <거울 속으로>. 영화 <아저씨>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던 마지막 작품은 알면서 모른체하는 게 더 나쁘다고 하지 않나.. 누구 맘대로 걍 덮어주는 거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대라 블랙박스나 CCTV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목격자가 없으면 바큇자국이나 접촉 차량의 페인트 등으로 추리하는 정도라 다소 답답하긴 했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사건사고들이 현실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자나 깨나 불조심처럼 사고예방을 위해 다시 한번 안전운전에 대해 생각해보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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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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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그 여자는 내가 죽이지 않았어. 누명을 벗겨줘!" ​법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가케이 마사야는 교내를 걷던 중 동창생 가토 아카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녀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기에 반가워해야 정상이지만 마사야는 짜증과 신경질부터 났다.  그는 학창시절 우등생이었고 학급 반장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신경도 뛰어나 반의 영웅이었는데 명문고에 들어가면서 확연히 드러나는 실력 차이를 체감해야 했고 학교생활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했다. 외동아들로 아버지의 가장 큰 자랑이었던 그가 지금은 삼류대학에 겨우 들어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외톨이처럼 지내고 있다. 아카리를 보면 과거의 영광이 떠올라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지니 당연히 싫을 수밖에. 그는 의기소침해져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고 대화도 잘 나누지 않았다. 마사야는 우울한 현실을 부정하며 행복했던 과거에 빠져 사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자취방에 24명을 죽인 희대의 연쇄살인마 하이무라 야마토가 감옥에서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하이무라가 24건의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것은 5년 전 일로 경찰이 확실하게 입건할 수 있던 것은 그중 고작 9건뿐이었다. 범행 장소는 논과 밭만이 있던 농촌이었고 피해자는 대부분 10대 후반의 소년소녀였는데 딱 한 명만 스물세 살의 성인 여성이었다. 그는 이 여성이 살해된 마지막 범행은 자신이 끝까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며 마사야에게 그 누명을 벗겨달라고 부탁한다. 일면식도 없는 젊은 대학생에게 무슨 생뚱맞은 헛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 둘은 예전에 안면이 있는 아는 사이였다. 마샤야는 최근 수년간 뉴스나 주간지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가 체포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마사야는 면회를 가기 전에 미리 검색해서 다 뒤져보고 그를 만났다. 하이무라는 마사야가 어릴 때 들렀던 단골 제과점 로셀의 주인이었다. 그는 마사야가 열다섯 살까지의 모습밖에 모르기에 우등생으로 기억하고 있을 그의 눈이 보고 싶었다. 하이무라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주위 사람들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이무라는 자신의 자만심 때문에 체포됐으며 나머진 다 인정하지만 본인이 하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쓰는 건 싫다고 말한다.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어쩜 저리 뻔뻔하게 내뱉는지. 그렇다고 어차피 사형될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인데 뭐가 달라지지? 그냥 마사야가 학업에 몰입하고 하이무라랑 아무것도 엮이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런데 진짜 진범이 있다면 빨리 잡아야겠지. 하이무라의 누명을 벗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 어떤 끔찍한 범행을 또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이무라의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자기 자신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년소녀를 감금하고 고문한 끝에 죽여서 마당에 묻고는 자신의 컬렉션으로 삼아온 질서형 연쇄살인범 하이무라. 것도 모자라 손톱, 손가락... 헐! 마사야는 하이무라의 부탁을 거절하고 손 떼기로 마음을 먹지만 지금껏 드러난 그의 범행과 다른 스타일의 수법도 이상했고, 취향이 아닌 타깃이 희생된 점에 의문을 품고 결국 수락하고 만다. 하지만 그가 뭔가 감추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비밀이 있는지 알고 싶었던 마사야는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수업도 째고 그와 관련되거나 아는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일일이 증언을 듣고 책을 보며 그와 비슷한 살인범들의 성향과 심리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부모님이 아시면 등짝 스매싱각일세.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사실과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단서를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 마사야. 게다가 엄마가 지금껏 가족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으며 가슴속에 숨겨둔 비밀의 연결고리까지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우째 불안해서 조마조마했더랬다.

결국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을 느끼게 되는 마사야, 살인에 중독성이 있다고 하던데 전염병처럼 퍼져나가 돌발행동을 할까 봐 넘 긴장됐더랬다. 놀랍고도 충격적인 반전 스토리가 거듭되며 순간순간 한니발과 인천 여중생 살인범이 오버랩돼서 더 심장 쫄깃했다. 사람의 심리를 간파하며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쾌락을 느끼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표본이었다. 뛰어난 지능을 악마의 속사임과 함께 아주 교모하고 치졸하게 써먹으며 사람이 아닌 장난감 취급하듯 제멋대로 갖고 노는 소름 끼치는 악마 그 자체였다. 상상만 해도 무섭고 토 나오는 엽기적인 미치광이에 정상적인 사고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돌아이라 진심 깜놀했다. 일본문학 미스터리 범죄소설! <살인에 이르는병>. 감옥에 갇혀서도 그의 악행은 멈출 줄 몰랐으니 와 정말 대박이라는 말 밖에 안 나왔다. 어차피 지옥행 티켓 미리 예약해놨다고 죽기 전까지 물귀신 작전으로 마지막 순간에도 발악을 해대니 진짜 기가 찰 노릇. 혼자 뒤지기는 억울해서 넘 싫어나 봄! 같이 죽자고 저리 꼬드기니 참.. 귀신은 뭐하나 몰라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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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고르는 여자들 미드나잇 스릴러
레슬리 피어스 지음, 도현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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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이가 선망하는 중산층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부서진 팔다리로 뛰쳐나온 여자들! 법률사무소 비서로 일하는 케이티는 자신의 집 길 건너편에 있는 글로리아 레이놀즈의 집을 자주 엿봤다. 집주인 글로리아는 아기자기한 드레스 가게를 운영하는 매력 넘치는 이혼녀라는 것만으로도 케이티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그 집에 찾아오는 의문의 손님들이었다. 다른 이웃들도 이상한 방문객들의 존재를 눈치챘고 몇몇은 안 좋게 추측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유가 무엇이건 글로리아에게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독설가로 유명한 케이티의 엄마 힐다는 누군가를 좋게 얘기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괜히 트집을 잡으며 글로리아를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

 

케이티는 글로리아를 신뢰했고 고민에 대한 긍정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해서 그녀가 좋았다. 자신의 빨간 머리를 싫어하지 않게 된 것도 글로리아 덕분이었다. 최근에 그녀는 케이티에게 영국에서 가장 지루한 동네인 벡스힐을 떠나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런던으로 가서 재밌게 지내길 권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른 새벽 불이 났다는 엄마의 다급한 큰 소리에 잠을 깬 케이티는 깜짝 놀라고 만다. 글로리아 집에 큰불이 났고, 화재사건으로 그녀와 둘째 딸 엘시가 죽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는다. 한편, 매사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화가 많은 케이티의 엄마 힐다는 까칠하고 감정기복이 심해서 가족 모두가 힘들고 지쳐했다. 그래서 아빠 앨버트와 케이티, 남동생 로버트까지 집이 불편해 그녀에게서 다들 벗어나고 싶어 했다. 힐다를 이해할 수 없는 식구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녀에겐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케이티는 독립하기로 마음먹고 단짝친구 질리랑 런던에서 새직장과 이사 갈 집을 구하기로 한다. 질리는 동물원에 취직했고 케이티는 법학원의 변호사 사무실 법률비서직에 취직해 2주 뒤 출근하기로 한다. 일주일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빠가 방화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됐다는 소식에 또 한번 충격을 먹게 된 케이티. 엄마 힐다는 아빠 앨버트가 글로리아랑 바람피웠다고 오해했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의심을 접지 않고 끝까지 외도를 했다고 주장한다. 경찰서에 면회를 간 케이티는 아빠가 글로리아랑 좋은 친구사이로 친했고 엄마가 싫어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 했다는 아빠의 얘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왜 아빠가 누명을 쓰고 잡혀갔는지도 알게 된다. 아빠의 지문이 묻은 등유통이 글로리아 집에 있었고 불이 나게 한 것과 같은 소재의 천이 창고에서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앨버트는 휘발유가 떨어졌을 때 등유통을 샀으며 결코 등유를 넣은 적도 없고, 창고에는 걸레가 다였으며 커튼 같은 소재의 천은 지금껏 처음 봤다는 사실. 앨버트는 유명한 사업가였고 글로리아 집에 불을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더 속상했던 케이티는 아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맘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그녀와 반대로 걱정은커녕 남편의 무고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 힐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차갑고 냉정하기만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뒤늦게 글로리아가 자기처럼 가정폭력 학대를 받은 중산층 여자들을 도와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케이티도  낯선 여자들이 얼굴에 멍이 들거나 다친 상태로 그녀의 집에 오갔던걸 직접 눈으로 봤었다. 동네 사람들과 글로리아 가족들까지 모두 앨버트가 그랬을리 없다고 경찰이 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을 한다. 글로리아 집에 낯선 여자들을 데리고 갔던 에드나를 찾았고, 그녀는 고민 끝에 경찰은 믿을 수 없다며 케이티에게 한 권의 노트를 건네준다. 그러다 에드나도 의문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케이티는 노트에 적힌 주소를 추려 방화 살인범을 직접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 순간 범인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고 뒤쫓아와서 납치를 한다. 
 

어둡고 냄새나는 지하실에 갇힌 케이티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방화, 살인, 납치, 폭행, 정신적인 학대 등 여러 범죄 행위와 가정 문제들이 뒤섞여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 묘사를 흥미진진하고 쉽게 풀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심장 쫄깃하면서도 긴박하고 긴장감 넘치는 반전 스토리에, 엄마 힐다의 충격적인 비밀이 폭로되며 왜 납득할 수 없는 이상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껏 말 못할 고민들로 마음을 닫은 체 숨기고 참는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뒤늦게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마음먹은 대로 하나씩 실천할 줄 아는 당당하고 솔직한 케이티가 더 특별하고 대단하게 보였다. 미스터리한 스릴러에 끈끈하고 애틋한 가족애를 덤으로 즐긴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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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사람들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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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숫자가 '0'이 되는 날에 너는 자유로워질 거야! ​ 어둠이 내리고 빗줄기가 점점 거세진 항구도시 시장은 파장 분위기다. 차에서 내려 오늘의 표적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손엔 익숙한 듯 캐리어를 끌고 걸어간다. 복잡하게 얽힌 골목들을 지나 그가 도착한 목적지는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들이 무보증 단기임대로 살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 허름한 건물 3층이었다. 재에게 사채 빚을 지고 생명보험증에 서명을 한 오십 대 남자가 이곳에 있다. 그는 무섭게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종적을 감췄지만 재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능력도 배짱도 삶의 의지도 없는 세상 마지막까지 내몰린 사람들 중 하나겠지만 남의 돈을 빌리고 안 갚았음 죗값을 달게 치워야겠지. 안 됐지만 본인이 선택한 결과니 어쩌겠는가. 그 사람처럼 빚을 갚기 위해 재의 용역에서 일하던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시체와 다름없는 남자를 산속 깊은 저수지에 수장하는 것이다. 이 남자가 마지막이 표적이고 오늘이 지나면 재에게서 나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다. 하..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대박 핑계 보소. 잔인하고 흉악한 살인자라고 잔뜩 욕을 퍼부으며 경멸을 해야 되나? 아니면 지난 일은 다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길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지지를 해줘야 되나?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니 정신없다요.

 

그런데 들어선 집안에서 발견된 남자는 경찰에게 신고한 후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했고, 곧이어 예상치 못한 그들의 발소리에 그의 계획은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캐리어 속에 들어 있는 남자를 포기한 체 그곳을 급히 도망쳐 나와 몸을 숨겨야만 했다. 재를 처음 만난 건 열세 살이었고 그는 심부름을 잘할 때마다 숫자가 줄어든다고 했다. 그렇게 열아홉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11년 동안 아버지가 진 빚을 대신 갚기 위해 근면 성실하게 숱한 표적들을 처리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제동이 걸렸다. 나는 재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자유로운 삶은 어떨까? 이 끝은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의 삶이 정말 기구하고 사정이 참 딱하기도 했지만 꼭 그렇게 당하고 시키는 대로 살 수밖에 없었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과 가진 힘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미친 척 시도를 해서 발버둥 쳐볼 수는 있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죽기 밖에 더 하겠나..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만 되고 사람이 숫자와 돈으로 보이는 인생이라면 더 미치고 독해지기 전에 죽기 살기로 한번 덤벼보기나 하지. 내가 죽든 니가 죽든 둘 다 죽든 뭔 상관이랴. 연쇄살인범이 돼서 자유를 만끽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고 틀려진다고. 재의 새빨간 거짓말을 너무도 순진하게 믿은 죄, 그가 혼자 책임지고 감당할 몫이었다.

 

재의 용역이 되었던 그 순간부터 김진우라는 이름을 버린 체 새로운 이름으로 살았고 표적을 처리하고 나면 매번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재는 또다시 뜻밖의 지시를 한다. 버려지고 내쳐질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아무도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세상에서 버려진 B 구역으로 가라고. 결국 나의 끝은 여기가 되는 걸까? 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한 여자가 철거를 앞둔 달동네 그의 집 앞에 찾아와 그의 본명을 말한다. 그녀는 17살 때 재의 지시로 한 달간 감시를 했던 서유리였다. 아주 오랜만에 마주친 그녀는 예전과 너무 많이 분위기가 달라졌으며 놀라운 사실과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처음엔 그 말을 무시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혼란스럽고 생각이 복잡해진 진우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 그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살아 있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인생. 눈과 귀와 입을 닫은 체  딱 하나만 바라며 지금껏 살기 위해 모든 걸 버티며 달려왔다.

 

그의 삶은 재의 꼭두각시였고 노예나 마찬가지였기에 넘 안쓰럽고 불쌍했다. 부모가 진 빚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연대책임을 지도록 만든 어른들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심보도 기가 막혔지만 장단 맞춰 더 가혹하고 엽기적인 벌을 죄의식 없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더 끔찍하고 소름 끼쳤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잊혀진 사람들과 목숨을 담보로 돈을 거래하는 어둠의 유혹 앞에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그들의 민낯을 들추고 폭로한다. 자신도 모르게 올가미 덫에 씌여 서로를 이용하고 구속하면서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악행의 릴레이는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죽기 전에 숨어서라도 한 번쯤은 자유롭고 사람답게 살고픈 이들의 절실하고 애절한 몸부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다 연민이 느껴졌고 각자 처한 상황이 이해도 되면서 공감도 됐더랬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이름 없는 사람들. 행복하지 않았던 남은 그들이 살아야만 되는 이유를 찾아 새롭게 출발하고픈 희망이 생겨 천만다행이었다. 그게 끔찍했던 세상에 대한 최고의 복수가 아닐까 싶다. 결코 저지른 죄는 용서가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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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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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데 왜 이렇게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까?" ​변호사 남편 비외르나르와 결혼해 딸 셋을 둔 잉그리의 직업은 노르웨이 한 대학교 문학과 교수다.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남편과 사랑스럽고 귀여운 세 명의 아이들까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집안일과 육아에만 전념하는 전업주부가 아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살려 학생들을 가르치며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워킹맘이라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제목과 달리 불행과는 전혀 상관없이 행복한 조건을 다 갖춘 듯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 않나. 그녀의 삶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수박이나 아이스크림 튀김 같았다. 직접 만지고 자르고 보고 먹어봐야 진정한 그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그녀의 삶은 생각보다 더 치열하고 열정적인 반전 매력을 뽐내 한마디로 진짜 웃펐다. 대학에선 학부 개편과 구조조정 회의를 하게 되고 그녀는 해고나 이직을 고민해야 할지도 몰라 불안해한다. 그리고 집에선 미니멀리즘과 실용주의적 삶을 지향하며 살아왔지만 식구가 늘면서 집이 너무 좁아 보이고 몇 가지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중고시장에 올려진 부동산 매물을 수시로 찾아보면서 새로 이사 갈 큰 집을 알아보게 된다. 
 

그러다 드디어 운명의 집을 만나게 된 잉그리는 오퍼 경재 심리에 맘이 조급해져 남편과 상의한 금액을 훌쩍 뛰어넘어 홀린 듯 그 집을 구입하고 만다. 그 집은 밖에서 보면 꽤 근사해 보였지만 아주 오래된 건물이라 비외르나르는 곳곳에 수리할 곳도 많고, 관리가 힘들 거라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계속 지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에게 그 집을 뺏길까 봐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고 파산 직전에 이를 정도로 비싸게 구입했지만 가족들과 새로운 집에 가서 살 생각에 들뜬다. 문제는 지금 사는 집이 팔리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고,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로 가격을 더 낮춰서 매물로 내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욕심을 화를 부를 법! 결혼 생활도 예전 같지 않으니 우짜스까잉~
 

몸은 하난데 집과 직장 걱정에 학부모 모임 착석과 매주 집 보러 오는 이들 때문에 대청소까지 해야 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했던가. 반강제적으로 대학교에서 자매결연을 한 러시아 국립대학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약 일주일간 사절단으로 가게 된다. 거기에서 더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녀는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된다. 여러 사건들이 겹치면서 어떤 심경의 변화를 가져다주게 될까? 사실 잉그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앞서 필요 없는 생각과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부담스럽고 달갑지 않은 상대방의 일방적인 부탁이나 의논되지 않은 과도하고 부당한 지시 요구 사항들에 대해 솔직하고 과감하게 딱 잘라 거절하지를 못했다. 정말 답답할 정도로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고 똑 부러지게 전달하지 못한 체 이쪽 저쪽 눈치만 보기 바빴더랬다.

더 놀랐던 건 처리해야 할 일과 신경 쓸 일도 많은데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일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꾸만 나서서 안 해도 될 일을 괜히 벌여 사서 고생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미련하고 아무 대책 없이 남들에게 휘둘리고 이용만 당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밉상과 진상이 주위에 왤케 많은지...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보단 자신이 조금 더 힘들고 피해를 보더라도 모두의 행복을 위해 자의든 타의든 희생을 감수할 정도로 마음도 여리고 착했다. 그만큼 가족과 직장 동료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며 정의감 넘치는 의리까지 남달랐기 때문이다. 때론 투덜대고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다해주는 미워할 수 없는 츤데레 같은 앵그리. 참 피곤하게 사는 것 같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를 믿고 응원하며 지지하게 됐더랬다.

단지 그 적당한 기준을 몰랐고 센스 있게 치고 빠지는 법을 융통성 있게 못 해서 넘 안타까웠다. 그녀가 남들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길 내심 바랬으니 말이다. 황당하고 엉뚱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비빔밥 스토리! 중간중간 현실적으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해준 잉그리였다. 심각하게 고심하며 뽀뽀했다고 급 고백할 땐 빵 터졌더랬다. 버라이어티 하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하면서도 유쾌함을 담은 그녀의 삶과 속사정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북유럽 노르웨이 소설책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무엇보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머리 식히며 읽기 좋은 소재를 맛깔나게 풀어낸 장편소설이라 술술 읽혀서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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