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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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풀코스 완주했어요
29키로부터 무릎통증 다리부상으로 걷기도 힘들어서 겨우 완주했어요
훈련 열심히 해서 다음 풀코스는 달려서 완주할게요
힘들지만 보람찬 하루
뛸 수 있다는 감사함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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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박 2024-11-05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네요

루피닷 2024-11-05 16: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봄비 오던 날

(최옥)

혼잣말을 합니다
그대가 나를 조금만 자유롭게 하기를
그렇게 하기를
가두었던 말들을
빗물 속에 흘려 보냅니다

구름처럼 먼 데 둘 수밖에 없는 사랑
수평선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대

한때 당신을 향했던
불같은 몸살도
이제는 편안해진 그리움이길

재울 것은 재우고
깨울 것은 깨우며
봄비 속에 연신 혼잣말을 합니다
가두었던 말들을 풀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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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을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이름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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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위하여

(안도현)

그대를 만난 엊그제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 쓸쓸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울물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던 까닭은
세상에 지은 죄가 많은 탓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속 죄는
잊어버릴수록 깊이 스며들고
떠올릴수록 멀어져 간다는 것을
그대를 만나고 나서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그대를 위하여
내가 가진 것 중
숨길 것은 영원히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하여
아픈 가슴을 겪지 못한 사람은
아픈 세상을 어루만질 수 없음을 배웠기에
내 가진 부끄러움도 슬픔도
그대를 위한 일이라면
모두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가 나를 생각하는 그리움의 한 두 배쯤
마음속에 바람이 불고
가슴이 아팠지만
그대를 위하여
내가 주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내내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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