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은 때로 더 깊은 성찰을 남긴다. 그 시간은 결코 낭비되지 않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던 빅터 프랭클을 떠올려보라. 그는 매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그의 글 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배운다.
결국 중요한 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가가 아니라
"이 일 덕분에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다. 관점을 한 걸음만 비틀면 삶의 깊이와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 - P199

세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타고난 낙관주의가 아니라 언어 선택의 결과다.
노홍철은 "나는 럭키가이"라고 외치며 고통 속에서도 기회를 찾는다. 그의 언어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순간을 성장의 서사로 바꿔놓는다. 그리고 그 서사가 그를 진짜
‘운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 - P203

"언어는 곧 태도다. 태도는 결국 운명이 된다.
생산적인 언어는 생산적인 인생을 만든다.
말이 바뀌면 생각의 결도 달라지고,
생각이 바뀌면 삶의 톤도 바뀐다" - P213

타인의 기쁨을 나의 기쁨처럼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런 이가 진짜 지성인이다. 그러니 타인의 성공 앞에서 진심으로 웃고 축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남의 고통을 보고 위안을 얻는건 동물의 본능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고하는 인간이며 품격 있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기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더욱 확장해 나간다. 그러한 태도는 결국 더 많은 기회와 운을 끌어당긴다. 질투는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진심어린 축하는 삶의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 P220

말은 그렇게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때로는 삶을 포기하려는 누군가에게 다시 걸어갈 용기를 주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내가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는 곧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말은 나를 위한 것이면서도 타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무심코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좋은 언어를 소유하자. 따뜻하고 단단한 말을 훈련하자.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나에겐 다시 일어설 힘이 된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면 먼저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언어를 선택하자. 대단한 기부나 봉사가 아니어도 괜찮다. 일상의 언어부터 바꾸면 된다. 그 작은 변화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두가 자신의 언어를 단정히 다듬는다면 이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다. - P223

물질적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신의 가난이다. 경멸은 나를 해치고 주변을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감정을 통찰로 바꿔 낼 수 있을 때 삶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질투보다 값진건 배움이고, 시기보다 중요한 건 겸손이다. 성장의 태도는 의식의 성장에서 비롯된다. - P226

다정함은 타고나는 성향이 아니다. 반복된 훈련과 깊은 성찰의 결과다. 보기에 부드러워 보여도 그 안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깊은 인식과 인내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 P232

한다. 그래서 다정한 사람은 삶의 여러 층위를 통과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흔히 IQ를 중시하지만, 사회에서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EQ다. IQ가 나를 위한 지능이라면, EQ는 타인을 위한지능이다. 그리고 그 EQ는 친절, 배려, 공감에서 비롯된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다정함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 그런 태도는 수많은 상처와 경험을 통과하며 길러진 깊은 이해의 결과일 수 있다. 타인과 자신을 동시에 존중할 줄 아는 균형 잡힌 지성이다. - P233

"시간이 흐를수록 인성의 가치는 더 커진다.
지식은 쌓을 수 있고 기술은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인성은 흉내낼 수 없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엔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회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됨‘이다. 인성이 곧 실력이다" - P237

삶을 반추해보면 정말 나 혼자 해낸 건 거의 없다.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나홀로 축적을 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의 이해와 응원, 침묵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나 혼 - P244

자다 해냈다‘는 말은 오만일지 모른다.
진정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사람은 겸손해지고 깊어진다. 진짜 교양인은 자기 힘만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스며든 수많은 도움과 기회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실패의 시작은 대개 자기 과신이다.
"나정도면 충분하지"라는 착각은 어느순간 큰 틈을 만든다.
냉정하게 자신을 보는 ‘메타인지‘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내가 잘해왔다면 그건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언제나 유능해진다. - P245

마지막으로, 내 삶에 깊은 울림을 준
니체의 말을 다시 전하며 이 글을 맺는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내면에 혼돈을 품어야 한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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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없어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나아가라. 그 태도가 결국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무너지지 마라. 버틴 그 시간만큼
어떤 형태로든 다시 되돌아온다?" - P169

삶은 고통이다. 고통스럽지 않은 날은 드물다. 그런데도 고통 속에서 끈기 있게 성장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만약 내가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글쓰기를 통해 만들어 낸대부분의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생각을 지속시키는 힘, 몰입을 유지하는 힘,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 이 모든 것은 체력에서 비롯된다. 체력은 곧 생존력이다. 그리고 생존을 넘어 성장의 발판이 된다. - P172

누구에게나 무명 시절은 있다. 의심과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임계점을 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갈린다. 지금은 무의미해 보이는 하루일지라도 그 하루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단 하나의 성공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빛나게 만들어줄것이다. - P176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려할 때 언어는 흐려지고 세계도 왜곡된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때로 침묵하는 것이 더 깊은 표현이 된다. 그래서 말하고 싶어도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면 침묵을 택하는 편이 낫다. 그침묵은 언어를 가볍게 쓰지 않겠다는 태도이고, 삶을 함부로 흔들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핵심이며, 언어에 대한 건전하고 실천적인 가르침이다. - P190

같은 상황도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감정과 기억이 달라진다. 그날의 사이다 사건은 내가 어떤 언어를 쓰며 살아가고있는지를 되짚게 해준 순간이었다.
어쩌면 글쓰기는 이런 식으로 새로운 시선을 훈련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짜증만 남을 수 있었던 사건도 ‘관점‘을 바꾸면 콘텐츠가 되고 교훈이 되며 나를 성장시킨다.
세상에 단점만 존재하는 일은 없다. 단점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만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간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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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찾아가더라도 늘 융숭한 대접으로 당신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환대는 당신의 기분을 들뜨게 하고,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이러한 환대는 아직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적신호일지 모른다. 무조건적인 환대란 상대편의 적의를 마비시키기 위한 경계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당신을 진심으로 신뢰한다면 과장된 환대는 필요치 않다. 완전한 친구로 받아들이고 안심함으로써 경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 P63

자선이나 도덕적 행동만이 헌신은 아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옮기는 모든 행동을 헌신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 P69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 재능만으로는 평탄한 길에 비쭉 튀어나온 바윗돌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과 인간으로서의 순수성이다. - P79

은연중에 스스로를 마치 단단한 돌처럼 형태가 굳은 존재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은 이미 형성되었고 이제부터는 외모만 어느 정도 변하겠지.‘ 하며 각오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처럼 생각하면 정말 그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몇 살이든 사람은 무한히 변할 수 있다. 그릇을 빚듯이 자신이 꿈꾸는 모습 그대로 스스로를 빚어나갈 수 있다. 진정 바란다면, 그렇게 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변모하여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 P89

책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다. 독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통해 자기를 극복했다는 일종의 증거다. 낡은 자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인간으로 탈피했다는 증거다. 나아가 같은 인간으로서 자기 극복을 이룬 본보기를 제시함으로써 누군가를 격려하고자 함이요, 겸허히 독자의 인생에 보탬이 되려는 봉사이기도 하다. - P116

음악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이유는, 혼탁한 현실 속에서 아등바등하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영혼을 이끌어내어 위로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현실의 테두리 밖으로 영혼을 가만히 옮겨다 놓고, 현실 속 나를 저만치서 바라보게 한다. 고요하고 평온한 공기 속에서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 침묵에 나를 맡길뿐이다. 그럼으로써 영혼은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속삭임, 노래라 믿으며 영혼은 위로받는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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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로 상처받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스스로를 지키며산다. 방어막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방어기제가 누군가의 기준을 바꾸어 놓는 공격 수단이되어선 안 된다. 사랑 앞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각자의영토에 세운 표지판을 받아들이는 용기. 이것이야말로사랑을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유일한 용기라 믿고 있다.

용기 있는 사람은 적당히 사랑할 줄 안다. - P188

나는 아직도 내성적인 사람이다. 낯선 이와 만날 때면 어김없이 입술이 바짝 마르고 식은땀이 흐른다. 사회생활을 한 덕분에 영업용 미소를 장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새로운 만남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태도로 관계를 시작하려 애쓴다.
먼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다. 이런 베풂이 닿는 순간을 좋아한다.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 뭐라도 되돌려주려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마음에 열기를 더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고 믿는다.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으며

먼저 줄 때, 관계의 한 걸음이 쌓인다. - P207

사람은 욕심이 많다.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만약 비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내가 무대 위에 올라설 수 있는 건, 다른 이가 그 무대를 양보했기 때문이라는 것. 무대 위에 올라가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양보한 이들이 열렬히 박수 쳐주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 관계는 끊임없이 돌고 돈다.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갑인 동시에 을이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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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건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는 것이지
온 시간을 바쳐서 자신들의 잘잘못을 가려달라는 게 아니다

빌 아이어스Bill Ayers - P4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모르는 시기‘가 있다. 아이 스스로 지식을 습득해 그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싶고, 아이가 배워나가는 과정에 참견하고 싶은 부모의 욕심을 버리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는 상상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아이 스스로 성취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주어야 한다. - P7

추상적으로 설명하자면 메타인지는 자기가 자신을 아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메타인지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말은 ‘자기거울areflection of the self‘ 이다. 자기의 모든 인지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 바로 메타인지인 셈이다. 한마디로 메타인지는 ‘자신의 기억, 느낌, 지각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할 수 있다. - P18

요약하자면 메타인지는 현재 나의 인지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능력이다. 모니터링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아야 함과 동시에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무언가를 모를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면 모니터링과 컨트롤 능력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 P21

부모와 아이를 혼란으로 빠뜨리는 학습화된 세 가지 착각은 다음과 같다.

착각 1. 빠른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착각 2. 쉬운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착각 3. 실패 없는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착각을 바로잡으면 아이와 부모의 자신감이 커짐은 물론 아이에 대한 부모의 믿음도 생겨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는 것 learning‘보다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것 learning to learn‘
arm‘이 바로 메타인지의 기술이다. 흔히 메타인지를 단순히 - P24

‘공부 잘하는 방법‘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큰 오해다. 메타인지는 평생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며 학생보다 성인에게 더 필요한 능력이다. - P25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다해서 메타인지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힘을 지나치게 신뢰하면 자신의 행동을 검토하는 과정이 줄어든다. 때문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수록 이 점을 염두에 두며 자기과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이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경험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 P35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이가 처음 음계를 외우고 건반을 배울 때는 ‘도대체 몇 년이나 배워야 제대로 한 곡을 칠 수 있을까?‘ 싶다. 배움이 느린 아이일수록 부모의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3개월이나 배웠는데도 도통 실력이 늘지를 않네? 우리 아이는 피아노에 소질이 없나봐‘ 하는 식으로 아이의 학습 능력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린다.
실망을 느낀 부모는 아이에게 필요한 학습의 시간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아이의 학습 속도를 무시하고 배움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모습 역시 사후과잉확신의 전형적인 예다. 더불어 이런 부모는 학습 속도를 기준으로 아이의 성취감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 P39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수학에 대한 불안이 높은 부모가 적극적으로 아이의 학습을 지도할 경우 아이의 불안도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공부했던 아이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보이지 않았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학습되는 것이다. - P48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자신의 불안 요소가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의 어떤 불안을 아이들이 보고 있는지, 혹시 아이들이 그것을 학습하고 있지는 않은지 유심히 관찰해야한다. 그리고 자신을 잠식하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는 아이뿐 아니라 부모 자신의 불안과 긴장을 해소하는 데 아주좋은 방법이다. 남들보다 자신의 불안도가 높다고 생각된다면 지금이라도 그 불안 요소를 파악해보자. - P50

앞의 연구 결과를 본 후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추천서를 써주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작성한 학생들의 추천서를 살펴봤다. 나도 노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쓰는 편이었지만, 도입부에서는 해당 학생의 ‘노력‘보다는 ‘타고난 특성‘과 관련된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추천서를 읽는 이들이 ‘타고난 학생‘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그런 단어들을 첫 단락에 쓴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속상한 것도 사실이다. 노력하는 거북이보다는 타고난 특성을 가진 토끼 같은 사람을 세상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말이다. - P53

일례로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보라. 몇 번이고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아이는 저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이때 부모가 뒤에 서서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라고 했잖아!" "땅만 보면 어떡해! 앞을 봐야지, 앞을!" 하고 소리쳐도 아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부모는 곧 쓰러질 것 같아 보이는 위태위태한 자전거를 탄아이가 걱정스러워하는 말이겠지만 아이 귀에는 호통이자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페달을 굴리는 아이의 모습이 부모의 눈에도 곱게 보일 리 없다. 부모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슬그머니 자전거에서 내려 버린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잘못된 점만 지적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목적은 어느새 사라지고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 P61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어른 앞에서 자신의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무조건 정답만을 요구하는 어른에게 자신의 노력을 보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에게 느린 아이, 이해력이 부족한 아이, 또래보다 뒤처지는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때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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