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권일영 옮김 / 검은숲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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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트래블이 마련한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쓰면서 참고한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에서 사촌의 구석 창문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그는 건물 고층에 있는 구석방에 앉아 있다. / 그는 자신이 누구를 닮았는지 모른다. / 그는 그렇게 높이 올라가는 걸 원치 않았지만 / 결국 올라갔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시의 소재는 E.T.A. 호프만의 소설 사촌의 구석 창문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는 작가의 사촌은 젊은 방문객인 화자를 건물 고층의 구석방에서 만나 창문을 통해 내다보며 작가의 기본 자질 중 하나인 보는 기술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다보니 호프만의 사촌의 구석 창문과 일본 작가 에도가와 란포의 지붕 속 산책자에 나타나는 도시산책자의 동기를 비교한 연구논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촌의 구석 창문에서는 정지된 도시산책자, 지붕 속 산책자에서는 도착적 도시산책자로 해석되는 특성을 도출해냈다는 것입니다. 두 작품을 직접 읽어보려 했습니다만, 사촌의 구석 창문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고, 지붕 속 산책자이라는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1에 실려 있어 읽어 보았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에도가와 란포는 본명이 히라이 타로(平井太郞)의 필명으로 에두거 앨런 포의 이름을 빌어온 것이라 합니다.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1에는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그리고 천장 위의 산책자등 세 편의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거미남이 실려 있습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애벌레는 일종의 기담을 소설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천장 위의 산책자와 장편소설 거미남는 일종의 탐정 추리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에서 화자는 혼슈의 중간쯤에서 동해로 열리는 우오즈(魚津)에서 신기루를 보았다고 합니다. 신기루(蜃氣樓)를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커다란 조개가 내뿜는 숨결 속에 있는 누각이라는 의미입니다. 화자는 신기루를 보고 돌아오는 열차에서 만난 노인이 가지고 있던 오시에 기법을 적용한 에마(絵馬)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됩니다. 에마는 일본의 신사 및 사원 등에서 소원을 담아 봉납하는 그림을 그린 목판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시에()기법은 꽃,,인물 등의 모양의 판지를 여러가지 빛깔의 헝겊으로 싸고  솜을 두어 높낮이를 나타나게 하여 널빤지 따위에 붙인 전통 기법을 말합니다노인의 형님이 83m가 더 되는 료운카쿠(凌雲閣)에 올랐을 때 보았던 아름다운 여성을 찾아다니다, 그녀가 그림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애벌레에서는 전쟁에 나갔다고 사지가 잘리고 얼굴도 망가진 남편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아내가 남편을 성적으로 학대하다가 눈을 찔러 실명케 하는데, 자신이 한 짓에 놀라 용서해달라고 말하는데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편이 용서한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우물을 향해 꿈틀거리는 물체를 발견합니다.


천장 위의 산책자는 살고 있는 하숙집의 천정으로 숨어들어 하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구경하다가 한 사람을 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범죄흉내를 내던 주인공이 천장 속을 누비다가 완전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완전범죄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 부각됩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특별한 감정이 없는데도 살인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 싶습니다.


천장 속을 누빈다는 생각은 새집인 경우에는 쉽게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시골에서 다니던 초등학교의마루는 나무판자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판자에 있는 옹이가 빠진 곳이 있으면 물건들이 바닥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건물에 있는 숨구멍을 통해 마루 아래로 들어가 떨어진 물건을 찾기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천정 속을 누빌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산책자>는 법의학을 전공하는 자가 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다는 구성이 놀라웠습니다. 살인자가 경시청의 사건수사를 자문하다보니 상황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막판에 범인이 특정되기까지 범인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흥미로운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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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 패닉룸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책세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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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네 번째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프루스트기 이야기 속에서 인용한 책을 찾아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 속에서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그 첫 번째 책이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 전쟁>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18쪽에 나오는 잠든 사람은 자기 주위에 시간의 실타래를, 세월과 우주의 질서를 둥글게 감고 있다.”라는 대목인데, 여기 나오는 우주는 프랑스어 ‘mondes’로 프루스트가 <우주 전쟁>에서 영감을 받은데서 연유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mondes’는 영어로 ‘worlds’로 번역됩니다. 1898년에 출간된 허버트 조지 오웰의 <The War of the Worlds>를 프랑스어로 옮기면 <La Guerre des Mondes>입니다. 그런데 1915년 일본의 아키타서원에서 일본어로 옮기면서 <宇宙戰爭>으로 옮긴 것을 우리말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주전쟁>은 어느 날 화성에서 발사된 우주선을 타고 화성인들이 영국에 도착해서 지구 점령을 시작하였지만, 지구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세균에 감염되어 전멸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화성인과 지구인 간의 벌어진 전쟁, 즉 지구의 세상과 화성의 세상이 전쟁을 벌인다는 의미를 담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우주전쟁이라고 확대 해석한 것이지만 사실을 지구와 화성의 행성 간 전쟁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주전쟁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것 같습니다.


소설 <우주전쟁>1953년과 2005년에 각각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1988년과 2019년에는 각각 TV연속극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정작 화제가 되는 것은 1938년에 생방송 머큐리 극단에서 방송한 라디오 연속극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감독 오슨 웰스가 제작, 연출, 각본을 담당한 연속극은 원작 소설이 처음으로 다른 매체로 각색된 것이었습니다. 전반부는 실제 뉴스처럼, 후반부는 극 형식으로 방송되었는데, 앞부분에서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지만 후반부에서 청취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피난하거나 총을 들고 나오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컸다고 합니다.


소설의 첫 부분은 십구 세기 말에는 인간보다 지능이 높고 위협적인 존재들이 이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라고 시작합니다. 유럽의 제국주의가 우월감에 싸여 제3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경고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행성간 전쟁의 발단은 화성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위기가 닥치면서 화성사람들은 지구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화성의 냉각화가 지구보다 일찍 시작하였기 때문에 지구인들보다 높은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일찍 등장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화성에서 출발한 우주선들은 영국의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멀지 않은 오터쇼 부근에 속속 도착하고, 우주선에서 나온 화성인들은 세발이 달린 기계를 조종하여 지구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초토화시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광선총과 독가스는 당시 지구를 지배하던 영국에서도 개발되지 않은 신무기였습니다. 화성인들의 지구공격이 시작되면서 동원된 영국군은 대포를 사용하여 화성인들의 세발이 달린 기계를 파괴하는데 성공하지만 화성인들을 이내 영국군의 대포를 무력화시켰습니다. 화성의 우주선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화성인들은 공격의 체계를 갖추어 런던으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파죽지세로 점령지역을 넓혀가던 화성인들의 진격을 막아낸 것은 영국군도 아니고 지구인들에게는 크게 피해를 주지 않은 세균이었습니다. 진화과정에서 미생물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된 화성인들은 지구의 세균에 감염되면서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화성에서는 지구로의 이주계획을 포기하고 금성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는 뒷이야기가 덧붙여집니다.


이 작품은 망원경을 통해서 화성을 관찰한 결과와 그 무렵 등장한 세균의 존재들을 엮어서 이야기를 구성한 것으로 독자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이야기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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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2 - 쿠스코의 황금
앙투안 B. 다니엘 지음, 진인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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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제국의 운명은 전편의 마지막 장면, 15321116일 카하마르카에 들어온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유일한 잉카의 자리를 두고 벌인 우아스카르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아타우알파와 면담을 청한다. 대군을 이끌고 카하마르카에 도착한 아타우알파는 피사로가 카하마르카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대에 응하기로 하였다. 게다가 우린 무기 없이 갈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스페인 사람들이 200여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방심한 탓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말과 쇠로 만든 칼, 더하여 대포까지도 가지고 있어 활과 창, 몽둥이나 투석기 등으로 무장한 잉카군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니, 화를 자초한 셈입니다.


아타우알파와의 첫 대면에서 그를 사로잡을 셈이었던 피사로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만남을 앞둔 아타우알파가 치차를 마시면서 스페인 사람들과 끝장을 볼 것이라고 호언한 것과는 달리 치밀하게 병력을 배치하는 등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프레이 비센터가 건넨 미사용 성서를 집어던진 것을 계기로 피사로는 전투개시를 명령하자, 포성이 울리고 화승총을 발사해 잉카의 전사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타우알파는 나는 태양신의 아들이다.”라고 소리쳤을 뿐 전사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타우알파는 피사로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잉카2-쿠스코의 황금>에서는 스페인 사람들이 아타우알파를 처형하고 쿠스코에 입성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피사로는 궁극적으로 금은보화를 거둬 스페인의 카를로스황제에게 보내고, 잉카를 통치하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황금에 눈이 어두운 자였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의 속성을 파악한 아타우알파는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방을 금과 은으로 채워주면 자신을 풀어달라고 협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잉카제국에서 거둬들인 금과 은으로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지만, 피사로의 수하들은 아타우알파가 동원한 군사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피사로를 속여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그리고는 황금으로 만든 우아이나 카팍의 분신형제를 비롯한 황금이 넘친다는 쿠스코로 향합니다. 그 사이에 잉카쪽에서는 아타우알파의 동생인 망코가 유일한 군주로 추대됩니다. 아나마야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망코는 평화주의 노선을 선택하고 스페인 침략자와 협력을 도모합니다. 물론 피사로 총독이 주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사로의 두 동생 곤살로와 후안은 막무가내입니다. 심지어 곤살로는 망코의 부인과 잠자리를 하겠다고 합니다. 망코의 씨족 여자 인구일이 나서서 왕비인척 하겠다고 제안해서 그 순간을 벗어나지만 결국 속인 것이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망코도 스페인의 침략에 저항하기로 하고 쿠스코를 탈출하지만 가마를 타고 도보로 이동하는 이들은 말을 타고 뒤쫓는 스페인인 사람들에게 금세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피사로의 스페인 병력이 200여명에 불과했지만, 이처럼 잉카제국의 심장부로 진격해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잉카제국이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짓밟았던 소수민족들이 스페인 쪽에 합류하여 선발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타우알파가 싸울 것을 천명하지 않은 탓에 침략자를 방어할 군사들이 소집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 줄거리가 되는 코야 카마겐인 아나마야와 피사로 총독의 수하인 가브리엘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카인들이 아나마야를 묵인해주는 이유도 분명치가 않기는 합니다. 아타우알파와 망코의 아버지로 유일한 군주였던 우아이나 카팍이 아나마야를 코야 카마겐으로 지목하면서 전했던 퓨마가 가브리엘이라고 설명합니다. 퓨마는 잉카를 지키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잉카 사람들은 전쟁을 통하여 제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합병하였음에도 이방인인 스페인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푼 이유가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잉카2-쿠스코의 황금>편은 스페인 사람들이 쿠스코에 입성하여 황금을 차지하면서 망코를 풀어주는데 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잉카 사람들의 저항을 소개할 것으로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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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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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도쿄에 있는 나쓰메 소세기 산방을 방문했습니다. 산방 가까이 거리는 물론 산방 곳곳에서도 고양이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05년에 발표된 그의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상징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세키의 영향 때문인지 일본 작가들 가운데 고양이가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를 읽은 것도 소세키의 영향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에 대하여>는 레싱이 1967년에 발표한 <고양이는 정말 별나>, 1993년에 발표된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 그리고 2000년에 발표한 <엘 마니피코의 노년>을 우리나라에서 한 권으로 묶은 책이라고 합니다.


저자 도리스 레싱은 1919년 이란의 케르만샤에서 출생하였고, 1925년부터 25년간 영국 식민지였던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주하여 옥수수 농장에 살았고, 1949년에는 런던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에 첫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를 발표한 그녀는 1992년에 발표한 <런던 스케치>20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역디 최고령 수상자였다고 합니다.


책장을 열면,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위해 써라. 남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하지 말고, 글쓰기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라는 도리스 레싱의 말을 만나게 됩니다. 글쓰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좋은 말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고양이는 별나>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농장을 할 때 만났던 고양이들을 서술하였습니다. 작가가 이 시절에 만나는 고양이, 특히 야생고양이는 전투의 대상이었습니다. 독수리, 올빼미와 더불어 농장의 닭은 먹어치우는 공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의 관계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햇빛이 밝을 때는 매긔 시간, 어스럼 녘은 올빼미의 시간, 하지만 밤은 고양이의 시간이었다. 야생 고양이의 시간.(20)” 그래서 야생고양이가 나타나면 총을 들고 가 쏘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기르던 집고양이도 있었습니다.


고양이에 적대적이었던 삶이 바뀐 것은 런던으로 이주한 다음이라고 합니다. ‘항상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생활에 고양이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런던에서 처음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암코양이였는데, ‘도시에서 고양이는 너무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시골농가의 고양이처럼 독립성을 터득하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고양이는 식성도 까다로워서 살짝 익힌 송아지 간과 살짝 데친 대구 살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식습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까닭이었던 모양입니다.


세 개의 고양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고양이들의 생태를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잘 관찰했구나 싶습니다. 작가는 친구한테서 고양이를 분양받기도 했지만 나쓰메 소세키처럼 야생고양이를 입양하기도 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집고양이와 야생고양이가 한 지붕 아래서 공존해나가는 과정을 적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요즈음에도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수월치가 않습니다만, 당시에는 엄청나게 불어나는 고양이를 분양만으로 관리할 수가 없어 일부러 죽이기도 하고, 불임수술을 시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없어 고양이의 특성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만, 병든 고양이가 어느 정도의 단계를 넘어서면 고양이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서늘한 장소에 들어가 웅크리고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고양이를 영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 것인가 봅니다.


어떻거나 저자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대단한 호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격적이고 놀라운 즐거움을 맛보고,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는 삶, 손바닥에 느껴지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털, 추운 밤에 자다가 깼을 때 느껴지는 온기,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고양이조차 갖고 있는 우아함과 매력, 고양이가 혼자 방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우리는 그 고독한 걸음에서 표범을 본다. 심지어 퓨마를 연상할 때도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까지도 고양이를 길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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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 2024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
리사 리드센 지음, 손화수 옮김 / 북파머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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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추천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리사 리드센의 등단작품인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2024년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을 받은 책이라고 합니다. 소설은 저자가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가 남긴 쪽지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인공 보가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벌어진 아들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대 간의 소통, 가족 간의 사랑, 오랜 우정, 뜨거운 화해와 온화한 작별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보가 518일에 적은 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들이 보와 함께 지내고 있는 개 식스텐을 데려가겠다고 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아내가 요양원에 들어가 있어서 보가 많이 의지하는 식스텐을 데려갈 뿐 아니라 거실에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장작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아들 한스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상속권을 박탈해 그가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하기를 바랐다.(11)”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스는 아버지가 신체적으로 많이 허약해졌기 때문에 식스텐으로 인하여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당하게 될까 걱정했기 때문에 식스텐을 아버지 보로부터 떼어놓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보와 아들 한스 사이의 갈등은 서로의 진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한스는 홀로 지내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 음식을 사들이고, 아버지의 간병인과도 긴밀하게 소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스의 문제는 아버지가 하시는 행동이 얼마나 유치한지 아세요?(67)”라면서 아버지의 의중을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매사를 독단적으로 결정하려는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북유럽 작가의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지만 북유럽 특유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보의 일기 중간에 보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들이 남긴 일지를 곁들였습니다. 독거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체계가 잘 갖춰져 있음을 알겠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은 일단 돌봄 대상과 잘 소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호자를 비롯하여 주변 인물들과도 긴밀한 연락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집에 찾아와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사실 보는 옷갈아 입기나 혼자서 식사하기 등과 같은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보가 잠을 자다가 속옷을 적시는 상황을 읽으면서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년전에 수술을 받은 뒤로 완전히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최근에 속옷을 적시는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주치의께 이야기를 하고 약을 처방받아 먹으면서 일단 속옷을 적시는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보는 잠을 잘 때 속옷을 적시는 문제 뿐 아니라 낮시간에도 속옷을 적시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는 기저귀를 입혀주었다고 하는데, 보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일기의 마지막은 1010일부터 1013일 사이에 일어난 일을 하나로 다루었습니다. 그 일기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렸고, 자신이 아버지의 죽음을 지키지 못한 것과는 달리 아들 한스가 여전히 죽어가는 자신을 지키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보는 아들 한스에게 너도 알다시피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449)”라고 말합니다.


한스는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식스텐을 다시 아버지 집에 데려왔던가 봅니다. 보의 일기 마지막은 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남쪽으로 날아가기 위해 두루미들이 모여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452)”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요양보호사 잉리드의 작업일지에는 “0330. 보는 조용히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음. 그는 옆에 누워있는 식스텐의 머리에 손을 얹고 고통 없이 매우 평화롭게 잠에 들었음. 촛불을 밝힌 후 한스에게 전화했음.(453)”이라고 적혀 있다.


서구에서는 두루미가 아기를 데려다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두루미는 보의 영혼을 따뜻한 남쪽으로 데려가려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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