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발견에서 재생의학까지 미래과학 로드맵 1
샐리 모건 지음, 최강열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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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8월의 청소년 권장도서 가운데 과학부문의 도서인 <줄기세포 발견에서 재생의학까지>를 독서인 파워북로거 활동대상 도서로 골라보았습니다. 편역대표이신 최강열교수님의 서문에, “이 책은 샐리 모건의 원저 <현미경부터 줄기세포 연구까지>를 바탕으로 줄기세포의 발견과 중요성은 물론 줄기세포를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재생의학까지 다루면서, 청소년과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썼다.”라고 적으신 것으로 보아 원저를 축약하여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만, 64쪽 밖에 되지 않는 원저의 분량보다 많은 127쪽으로 편집한 것으로 보아 적지 않은 분량의 원고를 추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 책이 일반인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전문 용어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 쓰다 보니 혹시 원래의 뜻이 잘 전달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양해해 주기 바란다.”고 우려하신 것처럼 상당한 부분에서 오류 혹은 보완이 필요한 점들이 보여 특히 학생들에게 읽히는데 있어 문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물론 원저의 편성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원저관련입니다. 첫 번째 장은 ‘현미경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현미경이 발달되어온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포를 관찰하는 장비로 현미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을 합니다만, 그 대상이 줄기세포라고 한다면 광학현미경에서 투과전자현미경, 주사전자현미경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줄기세포를 추출해내는데 필요한 세포배양기술과 배양과정에 있는 줄기세포를 관찰하는데 필요한 저배율의 도립현미경이나 형광현미경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원서에서부터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만 “찻숟가락 하나에 담긴 바닷물 속에 사는 SAR11 박테리아의 크기도 예시하지 않고 10만 마리가 살고 있다.(19쪽)”고 적은 것도 오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의 예도 있습니다.44쪽의 유사분열을 설명하는그림을 보면 염색체들이 세포의 적도면에 배열되는 장면에서 염색체들이 마치 연결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49쪽의 백혈병환자의 치료과정에서도 골수이식을 받는 환자는 전신방사선 조사나 화학요법과 같은 전처치를 받아 혈액암세포를 죽이는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말 번역과 원음을 음차하여 우리말로 적은 용어 등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로버트 훅이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는 “cell"이지 ”세포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는 처음으로 ‘cell(세포라고 번역됨)’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15쪽)”으로 소개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31쪽에 나오는 혈장단백질 피브리노겐은 통상 섬유소원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혈액이 응고되는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36쪽의 ‘테라토마’ 역시 기형종으로 옮기는 것이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테라토마는 양성으로부터 악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암세포와 유사한 세포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이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88쪽의 ‘심장마비’라는 일반적인 용어보다는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심근경색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옳습니다.

세 번째는 개념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의 예가 되겠습니다. 12쪽 알츠하이머병의 설명에서도 뇌조직이 기능을 잃어서 생긴다고 하였는데, 알츠하이머병은 신경세포에 비정상 단백질이 축적되어 죽어버리는 병인데 신경세포들이 많이 죽어 뇌기능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아야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9쪽의 조직과 장기의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우리 몸의 장기는 한 가지 세포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간(肝)이라고 하는 장기는 간세포로 구성이 되지만, 그밖에도 간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이라는 조직과 간에서 분해되는 물질을 장으로 내보내는 관조직이 있고 이런 기능을 조화롭게 하는 신경조직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세포들의 조직이 모여 간을 이루게 되는 것인데 너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50쪽의 골수은행에 대한 설명에서도, 골수이식은 환자와 기증자의 조직형이 맞아야 가능하기 때문에 기증자의 혈액검사를 통하여 조직형검사를 실시하고 그 자료를 축적하여 필요할 때 대조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53쪽의 탯줄에 대한 설명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탯줄은 관이 아닙니다. 탯줄은 모체와 태아를 연결하는 동맥과 정맥을 담고 있는 구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57쪽에 나오는 체세포복제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배아를 수정란이라고 표현한 것이 맞는지 헷갈립니다. 말 그대로 수정란이란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85쪽의 그림도 피부를 제거하여 근육이 부착된 상태의 그림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는 부위를 기록하고 있어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문맥도 더러 눈에 띕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크기를 잴 때 밀리미터, 센티미터, 미터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단위는 너무 커서 세포를 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17쪽)”에서 보면, 크기는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키를 표현하는 것을 밀리미터 단위로 표현한다면 너무 작은 단위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것을 크기를 잴 때 밀리미터, 센티미터, 미터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단위는 세포를 제기에는 너무 커서 적합하지 않다.(17쪽)”가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저자가 배아줄기세포 이용을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 그리고 탯줄줄기세포의 이용에 대하여 각각의 문제점들을 중립적으로 전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61쪽에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보다 과학자들에게 덜 유용하다.”라고 표현하거나, 65쪽에 성체줄기세포는 사람이 살아오는 동안에 축적된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적 결함위험성이 높다는 주장, 시험관시술에서 사용하고 남은 난자를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식의 표현도 잘못된 것입니다.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윤리적 문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위하여 난자를 수집하는 것 뿐 아니라 발생중인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은 다음에 수정란을 폐기하는 과정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줄기세포치료가 가지고 있는 잠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현재의 의료수준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83쪽 “현대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파킨슨병, 당뇨병처럼 아직도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줄기세포만이 희망인 것처럼 소개하여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줄기세포치료법만이 최고의 치료가 될 것이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치료법은 마치 가짜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은 명백한 잘 못입니다. 당뇨병환자는 초기에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조절할 수 있는 단계로부터 먹는 약으로 혈당을 조절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주사제를 사용하게 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당뇨병환자는 날마다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84쪽)”는 저자의 주장은 당뇨병치료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라면 아이들이 줄기세포에 관하여 궁금해 한다고 이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서적을 쉽게 풀어쓰는 일이 참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축약하다보면 꼭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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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 대하여 - 진화론과 동물 행동학으로 풀어 본 개의 진실 자연과 인간 7
스티븐 부디안스키 지음, 이상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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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적에는 집에서 개를 키웠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부터 개는 물론 다른 애완동물을 집에 들이지 않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하서도 애완동물을 집에 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처가에서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내는 산책길에 만나는 강아지도 피해가는 상황입니다. 혹여 개줄을 매지 않고 풀어둔 채 산책하시는 분이라도 만나면 불평을 하곤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처벌을 받게 되는 법이 통과되었다는 소문은 들은 것도 같은데 실행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가끔은 개주인이 개한테 끌려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만, 그런 경우 속으로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를 읽게 된 것은, 최근에 지인이 개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다고 해서 참고할만한 자료가 될까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입니다.

저자가 독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개하고 있어 분명 개를 엄청 사랑하는 저자가 개에 관한 사랑스러운 시각에서 글을 썼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목차에서 보는 것처럼 1장_도무시 알 수 없는 동물, 6장_똑똑한 걸까, 멍청한 걸까?, 8장_문제 개, 문제 주인, 9장_ 개는 개일 뿐 이라고 적은 제목처럼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개라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수수께끼에 대하여 진화론, 분자생물학, 유전학, 동물 심리학 등 과학적 자료들을 총망라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디안스키의 설명을 듣다보면 우리는 개에 대하여 참 바보였구나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입니다.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첫 번째, “개는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야생 늑대를 훈련시켜 가축화한 것이다.”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개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야생 늑대가 필요에 의하여 인간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사이에 인간들의 삶에 스며든 것이라는 것을 자료를 통하여 증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폭풍우나 화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주인을 구하는 개에 대한 감동실화도 전해지고 있지만, “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개들은 아주 충성스러운 동물이다”라는 명제 역시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개가 주인을 지키는 것은 개의 입장에서는 극히 일상적인 일에 불과한 것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본능에서 나온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개에 물려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었다는 기사를 보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에 심부름을 시키면 모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친척집이 있었습니다. (꼭 하루 예외는 세배를 가는 설날은 예외입니다. 세뱃돈을 푸짐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집을 지키는 사냥개가 엄청나게 사나워서 문앞에 서기만 하면 벌써 난리법석을 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500만명이 개에 물리는 사고를 당하는데 100만명 정도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 심각한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10명 정도는 현장에서 사망한다고 하니 개라는 동물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고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애완견이 덜 공격적일 것이라고 믿는다고 하는데, 오히려 떠돌이개가 사람을 더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가구를 못쓰게 만드는 일부터 손님은 물론 주인까지 공격하는 개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것은 개라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했습니다만 개는 스스로 선택하여 인간의 영역으로 침입한 종입니다. 그 이유는 야생에서 먹이를 얻는 것보다 인간에 기대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점을 일찍 깨달은 영악한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개를 키울 때 일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개가 아프면 개밥에 고깃국물이라도 얹어주시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버릇을 잘 못 들이면 귀찮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보아서, 특히 강아지 때 이런 경우가 생기면 아픈 것이 나아도 개가 밥을 먹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개가 꾀병을 앓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놀랐습니다. 주인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욕구가 강한 개일수록 그렇다고 하는데요. 꾀병의 정도는 토할 듯이 꺽꺽거리거나, 다리를 절룩이기, 마비된 듯이 꼼짝 않고 누워있기 뿐이 아니라 심지어는 근육경련 콧물까지 흘린다니 학교가기 싫어서 꾀병핑계를 대는 아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연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가 이런 증상을 보이면 개주인은 어쩔 줄 모르고 개에 끌려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개들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주인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외출하는 척하고 나와서 개를 혼자 있게 하면 아픈 척하던 개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름 사례를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자녀가 없는 젊은 부부가 18개월 된 수컷 아이리시 세터를 키우고 있었다. 개는 걸핏하면 으르렁거리며 남편을 위협했고, 몇 차례 물어뜩기까지 했다. 특히 아내와 함께 방안에 있을 때 남편이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지면 개는 반드시 화를 냈다.(11쪽)” 왜 이럴까요 개는 아내가 자신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을 강하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개에 관하여 “어떤 개는 마치 자기가 사람인 듯 착각하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오로지 인간하고만 어울리며 성장한 개는 인간을 개와 똑같은 존재로 보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 인간과 교미를 시도하는 난처한 상황도 벌어진다. 다리 위에 올라타 성기를 비벼 대는 것이다.(217쪽)”는 구절을 읽고 그런 경험이 기억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개는 주인가족들을 상대로 위계질서를 세우려 드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치매환자를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동물요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자들이 훈련된 동물과 같이 생활함으로써 증상을 개선시켜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효과를 볼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애완동물로서 개는 이 책의 결론부분의 제목처럼 “개는 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사람을 사람을 배신하지만 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보다도 더 귀한 존재로 대하는 분들은 개라는 동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보실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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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본심 - 승진, 해고, 보너스의 은밀한 함수관계를 결정짓는
윤용인 지음 / 알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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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서 지금까지 대학, 병원, 정부기관 그리고 공기업에서 일했기 때문에 일반 회사의 사무실 분위기는 잘 모른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잠시 일했던 규모가 큰 개인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일반 회사의 사무실 분위기 맛을 조금 보았다고 하면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거나 경험이 없으면 시각장애인이 코끼리 만지는 격(구전을 그대로 적지 않는 이유는 사회가 변했기 때문입니다)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직 조직의 중간간부까지는 해보았지만, 대표를 해보지 못했으니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현직 사장이 계급장을 떼고 털어놓은 진짜 속마음’이라는 카피를 붙인 <사장의 본심>은 기자라는 전직을 말해주듯이 일단 재미있습니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사장이 주로 내뱉는 말 한마디 이면에 숨겨진 본심이 무엇인지 알려주며 2장에서는 사장에 대해 직원들이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3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사장에게 사랑받는 직원이 되기 위한 방법을, 4장에서는 사장심리에 더 깊숙이 파고들며 마지막 5장에서는 저자가 잠시 사장의 본분을 잊고 사회생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백만 불짜리 조언들을 담았다."는 출판사의 요약 이상으로 핵심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요? 사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직장생활이 편해지고 제때 승진도 여반장이겠지요. 하지만 사장님이 조직과 부하직원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일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의 직장이 여섯 번째 직장인데다가 군대생활 3년 하면서 지휘관을 네 분을 모셨으니 유랑극단같은 직장생활이었기 때문에 모신 대표도 적지 않았는데 대표의 개성도 모두 달라서 모시는 방법도 통일된 기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장의 본심>을 적은 윤용인님의 속마음은 역시 그분의 독특한 속마음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입사원 모집공고에서 입사자격을 ‘학력 불문’, ‘나이 불문’, ‘성별 불문’이라고 적어놓고 마지막으로 ‘단 ’빤스 색깔만 봄‘이라고 한다니 일반 사장님들과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회사원 입장에서 ’귀담아 들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될‘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나이에 지금까지 버텨온 직장생활하는 방식을 이제와서 바꾼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혹시 바꾼다면 누군가가 “사람이 변한 것을 보면 이 세상을 하직할 때가 되었나보네”라고 할 것 같아 초지일관할 생각임을 밝힙니다. 다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만약에 내가 한 단체의 장(CEO)가 된다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저자가 가진 직원에 대한 생각, 그리고 직원을 대하는 행동들을 눈여겨보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잠시 흉이라고 본다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다는 말은 주제를 모르고 설쳐댈 때 쓰는 고상한 의학적 표현’(20쪽)이란 말은 전혀 고상하지 않고 의학적이지 않은 표현이라는 반박을 감히 드리고 싶습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를 보다가 순간 찾아온 복통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다음 급성간염의 진단을 받았다는 말씀(24쪽)도 급성간염이 대개는 식욕부진, 오심, 구토와 같은 가벼운 증상이 먼저 나타나고 요즈음 ‘간때문이야~~!“같은 광고문에서 보는 것처럼 간건강을 챙기게 하는 겁주는 건강뉴스들이 폭주하고 있는 세상에 자신의 간에 무신경하셨던 저자가 다시 보여진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탈리아의 응급의료체계가 참 잘되어있나 보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공무원생활에 회의감이 든 후배를 말리시지 않고 민간기업에 용감하게 소개해주셨는데 그 기업의 사장의 인품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시지 않아 끝이 좋지 않았던 사례(28쪽)를 인용하신 이유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퇴근과 관해서는 저는 전혀 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업무는 근무시간에 처리하고 퇴근시간이 되면 사무실을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과부하된 업무량에 쓰러지기 직전이거나 업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직원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조직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거죠. 초과근무를 통해서 야근수당이 나간다거나, 전기, 수도, 냉난방 등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점도 있습니다.

믿었던 부하에게 뒷통수맞았다는 사연에 크게 공감하는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같이 근무하면서 두 번 정도는 용서를 하지만 세 번은 용서할 수 없다는 철학을 세우고 있습니다만, 꼭 세 번씩 뒤통수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철저한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과 한번 믿음을 주면 끝까지 함께 한다는 신뢰를 같이 주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직원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사례의 경우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부서의 직원이 명령계통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야단을 치는 것이 가능한지 말입니다(61쪽). 직원의 이직과 관련한 다양한 사례들을 읽으면서 깊은 공감을 한 것은 다섯 번의 이직을 겪는 동안 정말 다양한 상황을 직접 경험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떠나는 사람 역시 조직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얽힐 일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대개는 그렇지 못해서 떠나는 사람이 조직에 앙심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퇴직과 관련하여 법에 호소하는 문제를 고민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은 참은 적이 있습니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많이 보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 생각합니다.

“사장은 사장 입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고 직원은 직원 입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고단한 사람이다.”라는 저자의 마무리말이 귀에 쏙 들어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장님이 세상에서 가장 고단한 직원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서길 바라는 메시지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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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전염된다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 제임스 파울러 지음, 이충호 옮김 / 김영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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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의 니컬러스 크리스태키느교수와 제임스 파울러교수가 같이 쓴 <행복은 전염된다>는 원제 <connected>만큼이나 제목에서 책내용을 유추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버드대가 의학과 과학으로 증명해낸 인간관계의 비밀!”이라고 요약된 문장을 읽고서야 조금은 가늠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들은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사회연결망)는 아름답고 미묘하다.”고 머리말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번역하신 이충호님은 사회연결망이라는 단어가 독자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하셨는지 전편을 통하여 ‘소셜 네트워크’라고 원문을 우리말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소셜 네트워크’라고 하니까 요즘 한창 주목받고 있는 트윗이나 페이스북 그리고 조금 이전에 인기를 끌었던 블로그 등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어옵니다. 하지만 앞서 인용한 ‘인간관계’라는 용어가 보다 땀냄새 나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포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소셜 네트워크 중 가장 단순한 형태는 양자관계’라는 저자들의 설명을 읽으면서 확인되었습니다.

책을 쓴 두 사람의 저자들은 전공분야가 서로 다른 탓이었는지,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서 몇 년을 지냈으면서도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지적 관심에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고 짐작한 친구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이 공통관심사를 접목하여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룬 성과가 바로 <행복은 전염된다>였다고 하니 옛날같으면 기이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마치 고등동물의 신경계를 닮았습니다. 고등동물의 신경계는 신경세포들이 서로를 연결해주는 신경섬유를 통하여 복잡하게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신경연결망도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을 수용하거나 외부로 반응을 내보내거나 사고를 하는 등의 같은 기능을 하는 세포들의 집단들끼리의 연결은 더욱 밀접하다는 것입니다. 생물의 신경계는 단순한 구조와 기능을 하등동물로부터 고등동물로 갈수록 숫자나 연결도 많고 기능도 복잡하게 진화되어 왔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인간관계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사회 안에서 한 인간은 하나의 신경세포처럼 ‘노드’(개인적으로는 그물을 엮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매듭’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용어라 생각합니다.)가 되고 사람사이의 관계는 바로 신경섬유의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소셜 네트워크가 가지는 기본적은 두 가지 사항은 매듭의 ‘연결’과 이를 통한 ‘전염’(전염이란 미생물의 전달로 인하여 생기는 감염증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기 때문에 ‘전달’ 혹은 ‘전파’가 좋다는 생각입니다)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여기서 전염의 범주에는 병균, 돈, 폭력, 패션, 신장, 행복, 비만 등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저자들은 이들이 어떻게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인문과학적 연구방법 등을 통하여 증명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기본사항을 바탕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규칙은, “1. 우리 네트워크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다. 2. 네트워크가 우리를 빚어낸다. 3. 친구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4. 침구의 친구의 친구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5. 네트워크는 자체 생명력이 있다.(39-52쪽)”로 요약됩니다.

지구상의 어떤 사람이더라도 6단계만 거치면 연결될 수 있다고 하는 케빈 베이컨 게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자들은 이처럼 가까울 수도 있는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 일까를 연구하기 위하여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총 1만 2067명을 연구 추적해 보았더니, 친구(1단계)가 행복할 경우 당사자가 행복할 확률은 15% 상승했으며, 2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친구의 친구)에 대한 행복 확산 효과는 10%, 3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친구의 친구의 친구)에 대한 행복 확산 효과는 6%였다. 그리고 4단계에서는 그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3단계 영향규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영향력의 전파가 제약을 받는 것을 고유감쇠, 네트워크 불안정성, 진화목적 등의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하였습니다.(55-56쪽)

저자들은 1962년 탄자니아의 부코바에서 일어난 웃음병이 전파된 사례를 인용하여 집단심인성 질환으로 설명하면서 감정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하여 확산될 수 있는 것처럼 행복 역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하여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행복은 전염된다>는 제목이 정해진 배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들은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주 의도적이고 식별 가능한 종류의 사회적 유대이기 때문에 성 네트워크를 연구하면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자살의 전염성 역시 소셜 네트워크의 파괴적 위력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인데, 우리는 유명인의 자살이 불러일으키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하여 이미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유명인의 자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언론은 유명인의 자살을 매우 감정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저자들이 인용하고 있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자살의 전염성을 높일 잠재력이 작은’ 것으로 평가하는 유형의 뉴스기사(193쪽)을 참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자들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선거기간 중에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방식을 인용하여 인터넷의 소셜 네트워크가 현실세계의 소셜 네트워크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분들은 참고하실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에서 지나친 이기심이 단기간의 승리를 얻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타심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2000년 미국 CBS방송국이 방영하여 큰 인기를 모았던 <서바이버>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하여 일었던 제2차 광우병파동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던 뱅크런 사태가 영국의 노던록은행에서 발생하여 수습되는 과정(211쪽)이나 앞서 든 탄자니아의 부코바에서 일어난 웃음병의 전파 사례로 집단심인성 질환과 남을 따라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심리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단심인성질환과 마찬가지로 뱅크런도 자체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에서는 불과 몇 사람의 비정상적 행동만으로도 그 파급효과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들불처럼 번져나갈 수 있다.(214쪽)”고 저자들은 뱅크런 사태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과정은 뉴욕 도심에서 미리 투입된 요원이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는 행동으로 주변인물들이 따라서 올려다보도록 유도하는 행동유도실험에서 유도요원의 숫자가 많을 때 파급효과가 크더라는 결론 등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유도요원의 사회적 위치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당시 모든 지표들이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이 통제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가르키고 있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으며, 광우병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EU국가들이 공식적으로 광우병이 소멸단계에 이르렀다는 선언을 한 지금, 당시 위험을 강조하던 분들은 여전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2008년 광우병사태에 대한 상세한 분석결과가 나와있었더라면 저자들이 이 책에서 인용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인터넷 등을 통하여 확산되던 잘못된 정보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던 분들, 특히 젊은이들이 보내온 질문에 성심을 다해 답변을 드렸던 적이 있고, 최근에 그 가운데 한 분이 “1년 전에 제가 너무 광우병관련한일 때문에 귀찮게 한거 같습니다. 지금확인해보니까 쪽지를 엄청보냇네요 ㅎ 당시에는 광우병 공포에 사로잡혀 도가 지나친 걸 모르고 질문한거 같아요. 하지만 친철하게  답변해주신 덕분에 저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에게도 올바른 지식을 알려준 거 같아 좋습니다. 그땐 정말 어떻게 하나 하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혓는데 답변해주신 덕분에 마음도 편해진 거 같아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쪽지를 보내주셔서 큰 보람을 느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무리를 하면, “우리가 만들어낸 네트워크는 자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네트워크는 성장하고, 변하고, 번식하고, 살아남고, 죽는다. 그 안에서 많은 것이 흘러다니고 움직인다.(437쪽)”라고 정의한 것은 “단세포 생물이 합쳐저 다세포 생물이 되고, 개체들이 모여 초생물체가 된 것(439쪽)”이라는 진화생물학의 개면을 소셜 네트워크에 적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소셜 네트워크는 개인과 사회의 소중한 공공자원으로 혜택을 제공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442쪽). 이러한 소셜 네트워크의 불평등은 우리 사회에서 관심이 점증하고 있는 인종, 소득, 성별, 지역에 따른 불평등과는 일치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소셜 네트워크는 앞서 언급한 개인적인 특성보다는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네트워크의 중심에 위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공자원인 소셜 네트워크를 건강하게 자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개성은 어느 정도 잃게 되는 것처럼 자신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점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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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최수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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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교수님의 장편소설 <침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침대다. 아니, 나는 침대가 아니다. 내가 처음부터 인간들을 위한 침대였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그루 나무였다. 하얀 나무줄기와 곧은 자태로, 숲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자작나무였다.(9쪽)” 침대를 잠자리로 삼은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떠돌던 1년간 그리고 미국에서 연수를 하던 2년여가 전부였기 때문에 침대가 주는 깊은 맛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만, 침대를 둘러싸고 다양한 군상들이 벌이는 삶을 침대가 화자가 되어 독자들에게 전하는 소설은 참으로 독특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삶과는 멀리 떨어진 동토 시베리아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자작나무가 억센 인연의 고리를 타고 났는지 베어져 침대가 되고 시베리아를 떠나 리에파야 항구에서는 노일전쟁에 출전하는 발틱함대의 병원선을 타고서 대한해협까지 왔다가는 일본 해군의 기습으로 함대는 무너지고 침대는 일본 군대의 전리품으로 노획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한일병탄을 전후해서는 다시 대한해협을 건너 한국 땅에 이르게 되는데, 그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소용돌이의 현장을 지켜본 역사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작가는 침대를 통하여 급변하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축약하고 그 이면에 엮여 있는 인간 군상들의 면목을 발가벗기고 있습니다.

화자인 내가 침대로 살아온 세월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보다 앞서 시작되었으며, 그 전에 자작나무로 살아온 생애까지 합하면 실로 장구한 세월을 인간과 자연을 통하면서 살아온 셈일 뿐 아니라 침대에 피를 뿌린 인간들의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으니 그 인간들의 피에 실린 혼까지 덧붙여져 영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나는 전쟁에 의한 무차별적 살육에서부터 사랑을 통한 숭고한 희생에 이르기까지, 인간사와 관련된 모든 일들을 내 온몸으로 겪어냈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었다.(10쪽)”고 서두에서 자신의 삶을 요약하여 전하는 침대의 말처럼 정말 다양한 인간들이 화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죽어갔습니다.

작가가 “처음 침대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정한 후로, 내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일화들이 쉬지 않고 만들어졌다. 게다가 그 일화들이 서로 엮이면서 어찌나 다양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오는지, 그것들을 어떻게 한자리에 쓸어 담아야 할지 몰라 행복에 겨운 고민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58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에는 신화로부터 설화, 고대역사로부터 근현대역사는 물론 문학과 예술 등 다방면에서 이야기 거리를 끌어다 상황을 엮어내고 있습니다. 읽다보면 언젠가 읽거나 보았다는 기시감이 드는 것은 상황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거리를 짧게 요약하여 버무려내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이야기의 진행을 잠시 떠나 유영하던 정신은 곧바로 이야기의 흐름에 복귀하게 됩니다. 가끔은 침대를 쟁취하기 위하여 신이 인간들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기는 장면처럼 오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장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침대를 사이에 둔 남녀들의 삼각관계는 영화 <은행나무침대>를 연상케 합니다만, 스토리의 앞과 뒤에서 잠깐 언급되는 정도이기 때문에 잠깐 스쳐지나가는 느낌일 따름입니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은 마지막 에피소드로 접어들면서 진면목이 드러나게 됩니다. 시베리아에서 자작나무로 살면서 만나게 되는 샤먼 미누는 우그리아라는 여인을 두고 몽마 칼리우과 혼신의 힘을 다한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은 자작나무를 베어 침대를 만들고 그 침대에 세 사람의 혼을 봉인하는 것으로 칼리우를 인간세계로부터 격리시키게 되는데, 이야기의 끝에서 우여곡절 끝에 봉인이 풀리게 되었는지 이 세사람이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다는 구조를 담아낸 것입니다. 마치 케쿨레가 꼬리를 물고 맴도는 뱀의 모습을 보고 벤젠고리를 형상화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침대가 자신에게 머무는 사람과 교감한다거나 심지어는 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설정은 어떻게 생각하면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침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엇엔가 홀린 듯 침대에 이끌리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저라면 이런 침대에 몸을 눕히는 상황은 피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침대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작가는 “사람이 침대 위에서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하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는 까닭은, 침대라는 것이 애초에 천사와 악마, 구름과 진흙의 성질이 합쳐진 때문이며, 인간이 침대에서 태어나고 침대 위에서 죽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보면 침대란 인간에게 인큐베이터인 동시에 관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38쪽)”고 정의하고 있는 것은 장구한 세월에 걸친 스토리를 무리없이 진행하려는 장치라 싶습니다. 워낙이 방대한 분량을 담은 소설로서 화자인 침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세세한 부분보다는 화자인 침대 혹은 침대와 함께하는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의 흐름을 면밀하게 따라가는 점도 관심을 둘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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