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문장들 - 걷기 좋은 유럽, 읽기 좋은 도시, 그곳에서의 낭만적 독서
강병융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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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유럽, 읽기 좋은 도시, 그곳에서의 낭만적인 독서라는 부제가 <도시를 걷는 문장들>을 읽어보기로 한 이유였습니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강병융 작가의 여행수필 모음입니다. 슬로베니아를 두 번 여행하면서 류블랴나를 세 번 지나치면서 정작 한 번도 머물러보지 못한 도시입니다.


저는 주로 여행사에서 기획한 상품을 통해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만 필자는 주로 자유여행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자유여행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기 마련입니다만, 작가는 행복한 여행을 위해선 그 중심에 , 자신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일상스러운여행을 통하여 내가 중심인 여행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여행지에서 읽은 책은 최고의 책이고, 그 책을 다시 읽으면 머물렀던 곳이 떠오르게 만드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시를 걷는 문장들>은 그 문장, 그 느낌, 그 장소를 기록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지난해 그동안 다녀온 유럽여행과 책읽기를 연결한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을 출간했습니다만, 여행과 책읽기를 새롭게 연결한 책으로 읽었습니다. <도시를 걷는 문장들>에서는 슬로바키아의 브라키슬라바와 정혜윤의 <마술라디오>를 시작으로 유럽 20개국의 22개 도시에서 읽은 22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작가가 여행한 22곳 가운데 12곳에는 저도 가보았습니다만, 작가가 소개한 22권의 책 가운데 읽어본 책은 단 3권이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10곳은 여행사의 상품에는 포함되지 않는 곳이며, 작가와 저의 독서 취향이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19개 국ㅏ에서 각각 하나의 도시를 소개하는데, 이탈리아만큼은 3곳의 도시가 소개됩니다. 도시들은 위치에 따라 유럽의 중부, 동부, 서부, 남부, 그리고 북부로 나누어놓았는데, 유럽의 남부의 도시들 가운데 페루의 리마가 포함된 사연이 무엇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만약에 저라면 리마와 이탈리아의 도시 2곳을 제외하고 동서남북 그리고 중부에 각각 5개 도시를 선정하여 모두 24개 도시로 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도시의 말미에 있는 한 장소는 나름 그 도시를 대표하는 곳을 골랐다는 생각을 했지만, 부다페스트에서 부다페스트 아이를 고른 것 이유가 분명치 않았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부다페스트 아이를 본 사람은 많겠지만, ‘부다페스트 아이에서 부다페스트를 본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는데, 부다페스트에 두 번 갔지만 부다페스트 아이를 본 기억은 없습니다. 당연히 부다페스트 아이에서 부다페스트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부다페스트 국립미술관의 노대에서 그리고 겔레르트 언덕에서 부다페스트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을 읽고는 이 도시와 그 소설이 비슷한 몇 가지라는 제목의 글을 적었습니다.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리가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고령화 가족>과 연결하는 것을 보면, “리가와 <고령화 가족>의 가장 큰 공통점은 역시 내가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보고 느꼈다는 것일테니라고 마무리한 대목의 의미를 알듯합니다. 그리고 리마편에서 소개한 한 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똑같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라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야기 꼭지마다 고른 한 장소는 그곳에 있는 장소인 듯하나, ‘한 문장은 딱히 그곳에서 읽은 책에서 고른 것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정형적인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책읽기를 마치고는 든 생각은 이 책에서 소개된 장소들 가운데 가본 적이 있는 12곳에서 저자가 읽었다는 책들을 저도 읽어보려 합니다. 작가의 생각에 얼마나 동조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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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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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다녀온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로쟈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시마자키 도손의 첫 번째 소설 <파계>를 읽었습니다. 시마자키 도손은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에밀 졸라가 이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자연주의문학은 자연의 사실을 관찰하고 진실을 묘사하기 위해 모든 미화를 거부하라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 이상이나 관념을 버리고 철저하게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려했고, 자연과 자연의 법칙, 유전과 사회 환경의 인과 법칙의 영향 아래 있는 인간을 뻔뻔하게 묘사하고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파계>는 메이지유신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메이지유신을 통하여 신평민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된 백정[워낙이는 부락민(部落民)이나 우리말로 옮기면서 우리나라에도 존재했던 백정으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에도 시대 때부터 최하층 대접을 받으며 특별지역에 거주하던 천민 계층을 말합니다.


에도시대의 신분제도는 병농공상(兵農工商)4단계로 구분되어 세습되었는데, 이들보다 낮은 불가촉천민으로 가축의 도살, 형장의 사형 집행인, 피혁 가공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에타(穢多, 예다)’와 사형 집행 보조인 및 그 관할하의 걸인, 육류 납품·판매업, 죄인 및 시체 매장, 도로 청소, 사찰의 종자, 광대 등 히닌(非人, 비인)’이 있어 히사베츠부라쿠(被差別部落, 피차별부락)’라고 하는 제한된 장소에 거주해야 했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세수확대를 위해 신분제도를 폐지하고 부락쿠민을 일반국민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부라쿠민에 대한 일본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의식 때문에 평민과 동등한 지위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여 해방령 반대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이들에게 신평민(新平民)이란 호칭을 붙여 배척하였다고 합니다.


소설 <파계>에서는 신평민에 대한 일본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세가와 우시마쓰의 아버지는 부락을 떠나 목장에서 목부로 일하면서 신분을 속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세가와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공부에 매진하여 사범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끝에 보통학교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세가와는 절대 신분을 밝히지 마라는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각별하게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하숙집에 부라쿠민이 들었다가 쫓겨나는 일이 있자 곧바로 하숙을 옮긴다거나 하는 주변에서 보면 오해를 살만한 일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신평민으로 지목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사회활동을 하는 이노코 렌타로의 사상에 동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에게만은 자신도 부락쿠민이라는 사실을 고백할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입니다. 목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씨소에 받혀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러 고향에 가면서 일이 꼬이게 됩니다.


렌타로가 지지하는 이치무라 변호사와 맞붙게 된 다카야기 리사부로가 고향이 같은 부라쿠민의 딸과 결혼을 해서 처가의 지원을 받을 속셈이었는데, 그 부인이 우시마쓰의 신분을 남편에게 알리고 다카야기는 이를 우시마쓰가 근무하는 학교의 가쓰노 분페이라는 신참선생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장학관의 조카라는 이유로 교장이 각별하게 챙기면서 우시마쓰를 제거하려 획책하는 교장과 분페이는 은밀하게 이 사실을 확대하면서 우시마쓰 제거 작업을 시작합니다.


고향에서 만난 렌타로에게 자신 역시 부락쿠민이라는 신분을 밝히려다가 아버지의 계명이 마음에 걸려 결행하지 못했던 우시마쓰는 다카야기의 사주를 받은 폭력배가 렌타로를 습격하여 살해하는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지금까지 신분을 속여 왔음을 주위사람들은 물론 자신이 지도하던 학생들에게도 알리면서 사죄하고 학교를 사직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시마쓰의 신분을 알게되면서 흥분을 하는 쪽이 많은데 반하여 학생들은 평소 존경하던 우시마쓰가 부라쿠민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메이지 정부가 주도한 신분제도 폐지 문제는 결국은 세대교체가 되어서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우시마쓰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부라쿠민임을 스스로 알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가, 세상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 뒤에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했다는 것이니, 이야기의 제목처럼 아버지의 계명을 파기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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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제국의 역사 - 점토판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철의 제국. 3000년 만에 그 역사적 봉인이 풀리다! 더숲히스토리
쓰모토 히데토시 지음, 노경아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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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제국하면 인류 최초의 철기문명을 열었다고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근동 혹은 중동지역(유럽인의 시각에서 본)은 인류 4대문명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데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문명이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생긴 4대문명에 대한 관심은 이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는 그런 관심에서 나온 책읽기였습니다.


제국(帝國)이라하면 국가, 즉 왕국을 휘하에 둔 상위국가의 개념입니다. 즉 문화와 민족이 전혀 다른 영역과 구성원에게까지 통치권을 행사하는 국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시황제의 진나라, 서양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로마를 최초의 제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국의 정의에 따라 주나라와 페르시아와 같이 이들보다 앞선 국가들도 제국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제국은 어느 나라인가. 지금의 바그다드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카드를 중심으로 한 아카드제국을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제국이라 인류 최초의 제국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6천년에서 5천년 사이에 수메르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등장하여 동기시대와 초기 청동기 시대의 문명을 열었는데, 아카드의 사르곤왕이 기원전 2334년 무렵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통일국가를 형성하여 제국의 위치에 오른 것입니다. 아카드제국은 약 200년 정도 지속이 되었지만 피지배국을 강압 통치하여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 기원전 2150년 무렵 이란고원에서 온 구티족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나일강 유역에 등장한 이집트는 대략 기원전 3600년 무렵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왕국이 성립했으며, 두 왕국이 통합된 기원전 3200년부터 왕국이 혼란에 빠지는 기원전 22세기까지를 고왕국 시대, 이어서 힉소스인에게 정복당한 기원전 1800년까지를 중왕국 시대라고 하고, 독립된 뒤 기원전 16세기로부터 기원전 11세기까지를 신왕조라고 구분하는데 신왕조시대에 이르러 이집트가 제국의 정체를 갖추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히타이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헷족을 이르는데 기원전 18세기 무렵 아나톨리아 북중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왕국을 이루었고, 기원전 14세기 무렵 아나톨리아의 대부분과 시리아 북서부을 거쳐 레바논까지 그리고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하면서 제국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의 히타이트 제국은 이집트, 아시리아제국과 함께 근동지역의 3대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은 기원전 1180년경 와해되면서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나뉘어 8세기 무렵까지 존속하였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에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히타이트 제국에 관하여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소개하였습니다. 히타이트 왕국의 등장으로부터 제국의 형성 그리고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를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이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에서 발흥하였다고했는데, 10년전에 튀르키예를 여행할 때는 히타이트 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의 주요 유적이 주로 튀르키예의 중, 동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여행은 주로 중부에서 서부 해안을 갔기 때문입니다.


히타이트제국이 붕괴하게 된 원인으로 해양민족의 내습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집트의 사료를 바탕으로 한 가설이라고 합니다. 언급된 해양민족으로는 루카(Lukka), 카르키야(Karkiya), 펠레셋(Peleset), 세켈레쉬(Shekelesh), 셰르든(Sherden), 웨셰쉬(Weshesh), 에크웨쉬(Ekwesh)와 데이엔(Denyen), 테르커(Tjerker)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혹은 에게해 심지어는 시칠리아에 근거들 둔 부족들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들 부족의 내습만으로 막강했던 히타이트제국이 무너졌을 것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고 가뭄과 같은 기상재해와 함께 역내 부족들 사이의 갈등으로 제국이 피폐해졌기 때문이 으들의 내습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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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불길한 말 문지 스펙트럼
루쉰 지음, 성민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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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트래블에서 기획한 중국근대문학기행에 함께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경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라오서, 곽말약, 마오둔과 상해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루쉰의 발자취를 따라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본근대문학기행의 경우는 떠날 무렵에서야 관련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꼭 읽어야 할 책들을 모두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중국근대문학기행은 미리 준비해보기로 했습니다. 루쉰의 <부엉이의 불길한 말>은 그와 같은 준비작업의 시작입니다. <부엉이의 불길한 말>에는 루쉰이 쓴 산문 10편과 산문시 24편을 담았습니다. 산문은 1907년부터 1936년까지 30년에 걸쳐 쓴 산문 가운데 1920년대 중반의 것을 주로 골랐다고 합니다. 산문시는 1927년에 출간된 <야초>에 실린 24편의 산문시를 모두 실었다고 했습니다.


루쉰(鲁迅, 1881~1936)은 중국의 소설가로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입니다. 아큐정전(Q正伝)과 광인일기(狂人日記) 등 그의 대표작은 중국문학의 고전이라 할 만 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 중국작가들이 가장 존경한다고 합니다.


저장 성(浙江省) 사오싱 시(紹興市)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지만, 10대 중반에 가세가 기울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국비지원을 받아 공부를 한 뒤 22세에는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기초지식을 배운 뒤에 1904년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 사상적으로 혁명파에 속하는 반만주족 혁명단체인 광복회에 가입했다. 하지만 간첩혐의를 받던 동포가 처형되는 모습을 보고는 17개월만에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9년에 귀국하여 향리에서 교원으로 일하면서 외국 소설을 반역하는 한편 중국 고전을 연구하다가, 1912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중화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루쉰은 구체제를 부정하고 민중정신을 고양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거쳐 스탈린주의로 이행하던 중에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을 읽다보면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서양 사상의 변천과정을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중국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아비판이 심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세계를 돌아보면 새로운 소리가 다투어 일어나고 있는데, 특수하고 웅장 화려한 말로써 그 정신을 진작시키고 그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소개하지 않는 것이 없다. 침묵에 잠겨 움직이지 않는 민족이 있다면, 오직 앞에서 든 천국 이하 몇몇 오래된 나라들뿐일 것이다.(15)”


영국에서는 철학자 로크와 시인 로버트 번스가, 러시아에서는 푸쉬긴이, 폴란드에서는 시인 미츠키에비치가, 헝가리에서는 시인 페퇴피 등이 정치와 종교에 누적된 폐단을 배격하고 사상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는데, 과연 중국에서는 정신계의 전사라할 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원의 처방을 받아 치료를 받았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훗날 서양의학을 공부하고서는 한의는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사기당한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51)”라고 했습니다. 광인일기와 아Q정전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두 작품을 읽은 뒤에 다시 챙겨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 <부엉이의 불길한 말(貓頭鷹的不詳之言)>은 산문시 희망의 한 대목입니다. “내 어찌 몰랐겠소. 내 청춘 이미 가버렸음을? 허나 몸 밖의 청춘은 그대론지 알았지. , 달빛, 뻣뻣해져 추락하는 나비, 어둠 속의 꽃, 부엉이의 불길한 말, 두견의 피울음, 웃음의 아득함, 서랑의 너울대는 춤……. 슬프고 막막한 청춘이라도, 그래도 필경 청춘인 것을.(166-167)” 이 대목은 헝가리의 시인 페퇴피가 이야기한 절망이 허멍한 것은, 희망과 똑 같다라는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부엉이의 불길한 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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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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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는 국립 레지온 도뇌르 고등학교와 파리정치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샤를 페팽교수가 쓴 책입니다. 페팽교수는 방송과 강의를 통하여 철학을 알리고 있어 프랑스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제의 빛이 없으면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어제가 과거에만 속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거는 가버리지 않는다. 우리를 이루는 것은 현재보다 과거의 지분이 더 크다.(9)”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살아갈수록 경험이 풍부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잘 지내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과거 속에서살지 않고 과거와 더불어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1, 과거의 현존들, 2부 과거와 마주하기, 3부 과거와 나아가기 등,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과거라는 것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재구성된 기억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뇌과학에서 밝혀낸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기억 현상에 관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인용하고 있는데, 기억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인간이 행동하기 위해 행동에 요긴한 기억들을 끊임없이 선별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인용했습니다. 철학에서 이야기한 기억에 관한 내뇽을 뇌과학에서 이야기하는 기억과 연결하기도 합니다.


2부는 우리가 순수하게 현재의 순간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 현재를 살아가는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잠재되어 있는 기억이 현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작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대목을 인용하여 과거라는 기억을 되살려내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합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인용하여 일화기억을 잃은 여주인공 리타의 사례를 보면서 일화기억을 잃은 내가 진짜 나인지를 생각해봅니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파스칼의 유명한 명제를 가져와 나는 기억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억은 곧 나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과거를 곱씹지 말자라고 하는 새로운 제안을 가져옵니다. 아픈 과거에 매달리다 보면 현재의 삶이 발목 잡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대목도 있습니다. “술꾼은 과거에서 도망치려고 술을 마시곤 한다. 이별이나 실패, 굴욕이나 사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 그는 삶의 비극을 감추려고 술을 마신다. 이 방법도 처음에는 통한다.(113)”라는 대목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 술에 의지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실감할 수 있던 대목입니다.


아픈 과거에 매달린다거나 잊기 위해 무언가에 의지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과거라는 기억과 싸우기를 멈추고 수용할 수 있을 때 과거의 나쁜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어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과거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작업을 기억의 재공고화라고 말합니다.


흔히 기억은 절대로 틀림이 없는 것이라고 믿는 경향입니다만, 사실 기억도 주체의 의도에 따라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3부에서는 과거라는 기억을 재공고화하여 삶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있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되찾은 시간>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171)”라는 대목을 인용합니다. 저자는 과거와 함께 사는 묘를 터득한 사람은 어제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가 그 세계에서 얻은 것, 그 세계에 두고 온 것으로 인해 자못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236)”라고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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