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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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민음사판을 기준으로 전4권의 분량이 2988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여 읽기를 주저한 것도 사실입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1805년부터 1820년에 이르고, 모스코바, 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지역과 러시아가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투가 벌어진 지역을 아우릅니다. 등장인물도 559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일일이 헤아려볼 수도 없습니다. 제목 그대로 치열한 전투현장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헛되고도 헛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1권은 1부에서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는 모스크바의 사교계를 그려냈습니다. 주인공들을 서로 엮기 위하여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셈입니다. 또한 당대의 풍운아 나폴레옹에 대한 러시아 사람들의 인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귀족들이 주로 참석하는 러시아 사교계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려내고 있는 프랑스 사교계와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물론 등장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점은 별도로 하더라고 프랑스 사교계에서는 문학, 음악, 미술 등이 화제가 되고 관련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도 참석하여 화제를 풍성하게 하는 반면, 러시아 사교계에서는 이런 점이 부족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혼담이나 인사청탁이 오가는 분위기입니다. “이곳 모스크바 사람들은 정치보다는 만찬과 험담으로 바쁩니다.(138)”라는 보리스의 설명이 정확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2부는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 분위기를 다루었습니다. 초반에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패배로 러시아 군이 밀리는 분위기이지만 밀리면서도 반전을 꾀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3부는 전투장면과 후방의 사교계의 분위기가 섞입니다. 하지만 동맹국이라는 오스트리아가 러시아를 대하는 것을 보면 러시아가 왜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나섰는지 그 이유가 실감되지 않습니다. 결국 3부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러시아의 대패로 마무리가 되고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안드레이 공작도 부상을 입고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2권은 1부에서 5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로 러시아군은 보급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제가 노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프랑스와 러시아는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전장에 나섰던 청년들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안드레이 공작도 나폴레옹의 배려로 살아 돌아오지만 아내는 산후 합병증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정전이 된 다음부터는 돌아온 청년들이 짝을 찾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그 과정에서 사냥이나 가면놀음가 같은 러시아 귀족들의 놀이문화가 소개됩니다. 그런가하면 일부 젊은이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피에르의 아내 엘레나는 염문을 뿌린 결과 피에르가 결투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남동생 아나톨 역시 방탕하고 난잡한 생활을 벌이다가 안드레이 공작의 약혼녀 나타샤를 유혹하여 납치하려 들었다가 발각나서 모스크바에서 추방되기도 합니다. 물론 안드레이 공작과 나타샤와의 결혼에 부친이 반대하는 바람에 외국으로 요양을 떠나 소식이 끊어진 것이 원인이 된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사랑은 현실적인 것만큼은 어디에서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3권은 1부에서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편을 통해 전투장면이 긴박하게 펼쳐집니다. 앞서 강화조약을 맺었던 나폴레옹이 서유럽의 군사를 규합하여 1812612일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모스크바로 진격하기 시작하고 1부에서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황제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입대를 자원하는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알렉산드르 황제의 러시아 역시 대응하기 위하여 동원령을 내려 편성한 군대를 서쪽으로 보내지만 전투마다 패하면서 밀리고 밀려 모스크바까지 내주게 됩니다.


마지막 4권은 1부에서 4부에 이르러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에필로그1부와 에필로그2부가 더해집니다1부에서는 프랑스군에게 점령된 모스크바에서 탈출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황망한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그러는 와중에 전쟁을 수행해야 할 러시아 군대는 파벌을 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피에르는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혔고, 안드레이 공작은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결국은 나타샤와 마리아 공작영애의 돌봄 속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2부와 3부에서는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군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철군을 시작하고 퇴각하기 시작합니다. 러시아군은 퇴각하는 프랑스군과 싸워야 한다는 측과 쿠투조프처럼 전투 없이 추격하는 측으로 나뉩니다. 쿠투조프는 파멸해가는 프랑스군과 충돌하여 남는 것은 병력의 손실이라는 계산입니다. 프랑스 측의 강화조약을 맺자는 요청도 거절합니다. 4부에서는 러시아군이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추격하여 파리에 이르는 한편, 러시아 내부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수습하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가운데 안드레이 공작은 죽음을 맞았고, 피에르와 나타샤, 니콜라이와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맺어질 것을 예감합니다.


에필로그1부와 2부는 <전쟁과 평화>를 쓰게 된 작가의 역사철학을 소개합니다. 역사의 흐름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4명의 주인공의 결혼과 전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여기까지 이야기의 전반을 따라가다 보면 전투현장과 후방에서 전쟁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길게 이어지는 반면,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있는 듯 없는 듯합니다. 작가가 고려했다는 제목, ‘세 시기’, ‘끝이 좋으면 다 좋다등도 좋아 보이는데 굳이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을 선택한 깊은 뜻이 와 닿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전쟁과 평화>에 덧붙이는 말이라는 부록을 달은 듯합니다. 작가로서 이 작품에 대한 견해를 간략하게 소개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설명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역사 사건들에 대한 나의 기술과 역사가들의 해석 사이에 놓인 차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4677)’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근간을 이루는 사료가 과연 정확한 것인가에 의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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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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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표지에 적힌 수백 명의 변사자를 마주하며 아로새긴 있었는데 사라진 존재들에 대하여라는 한 줄의 글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걸려온 원고 청탁 전화에 하던 근력운동을 중단했다는 대목에서 공감을 한 것은 인기가 많은 운동기구를 점령하고 앉아서 운동은 안하면서 딴 짓을 하는 사람 때문에 속절없이 기다려본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분이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근력운동을 하면서 자주 느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경찰공무원인 저자는 첫 번 째 책으로 <경찰관 속으로>라는 책을 낸 뒤로 경찰관의 삶을 다룬 책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접고 22개월에 걸쳐 23꼭지의 수필을 썼고 이를 모아 이 책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기>에 아예 서문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서문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 분도 있습니다. <있었던 존재들>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던 점은 서문에서부터 느낀 것인데 단락들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갈피를 잡기 힘든 대목이 있었습니다.


두 번 째는 각각의 이야기에 붙여놓은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를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녹여지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획의도는 충분히 독창적이고 참신했지만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느낌입니다. 기획의도 가운데 하나인 작가가 매일 경험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결코 일개 경찰관의 사사로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다는데 , 공식적으로 규정된 경찰관 업무는 당연히 사사로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데 특별시 강조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과학수사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변사자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출동하여 사인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업무라 할 것입니다. 사실 저 역시 30여 년 전에 법의부검을 4년 동안 맡아서 하면서 변사자의 사인을 규명하고 가해자가 있는 경우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경찰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소개하는 정황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리산 부근 어느 경찰서에서 일한 적이 있다하셨는데, 저 역시 지리산 부근에서  해당업무를 했기에 더욱  실감이 났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교통범죄수사팀(TCI)의 활약을 다룬 연속극 <크래시> 재방송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참 때부터 과학수사업무를 해왔다는 작가께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를 적발하는 업무를 했다는 이야기는 기획의도와는 다른 것으로 보였습니다.

흔히는 사건을 다루는 글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경향입니다만, 작가의 경우 유사 사례를 여러 건 가지고 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런 일이 적지 않구나 하는 생각은 할 수도 있겠으나 한 사건 만으로 설명을 해도 독자들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않을까 싶네요.


앞서 단락의 연결이 튄다는 느낌은 이운진 시인의 <슬픈 환생>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라는 시를 공동묘지 부근에서 불법적으로 매장된 사체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나오는데, 정작 강아지의 유골함이 발견되 이야기는 인용된 시 다음에 따로 소개를 한다는 것도 이상하네요.


경찰서마다 과학수사 전담부서가 있는 줄 알았더니 과학수사대 하나가 여러 개의 경찰서를 지원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과학수사대가 행정적으로는 시청에 해당한다는 설명은 따로 확인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때는 있었던 존재였으나 지금은 삶이 끝난 변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다루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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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마지막 그림의 비밀
알렉산드라 구겐하임 지음, 모명숙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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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베네룩스 삼국을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여행을 통하여 15세기 무렵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이 지역의 화가들에 대하여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기대를 만족시켜줄만한 여행사 상품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마지막 비밀>도 그런 까닭에 읽게 되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일찍이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는 아마도 직업 의식이 작동한 까닭에 좋아하는 작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렘브란트 마지막 비밀>을 쓴 알렉산드라 구겐하임은 대학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고 4년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와 그가 활동했던 시대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쓴 첫 번째 소설이 <렘브란트 마지막 비밀>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렘브란트의 예술철학을 정리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가 연구한 렘브란트에 관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성하다보니 허구의 내용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가늠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마도 렘브란트의 생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제자 사무엘 봄이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가 보는 렘브란트는 작가 서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은 주변을 대단히 통찰력 있기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결코 거울에 비친 상처럼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렘브란트의 작품들은 섬세한 심리학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렘브란트는 그 이전에 활동했던 어떤 화가보다도 감정의 깊이를 잘 표현했다. 그는 인간의 가장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영혼을 묘사할 줄 알았다.(6)”


작가는 렘브란트의 제자였다고 하는 사무엘 볼이 남긴 일기장을 바탕으로 하여 렘브란트의 생애 마지막 순간을 재구성한 것 같습니다. 꽃을 그리는 화가 사무엘 볼은 72세가 되던 해에 렘브란트와 관련된 일을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열여섯 살이 되던 1668년에 조이데르 해 남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을 떠나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제자가 되었을 때로부터 렘브란트가 죽음을 맞은 1670년까지 렘브란트와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성실한 사무엘은 스승을 속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열심히 도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화실을 정리하고, 그림을 그릴 아마포를 만드는 일이며 원료를 빻아 물감을 만들어 렘브란트가 제때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행하였습니다. 스승이 건강을 잃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대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당대의 네덜란드 미술계에서는 그림을 주문받으면 기본 틀을 화가가 만들어내지만 색칠이라거나 하는 등의 부분은 제가가 나누어 맡아 진행하는 공방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렘브란트가 외과 길드의 수석 외과의사 아드리안 반 캄펜 교수의 주문에 따라 그의 해부학 강연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작가는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에서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부학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해부 대상이 될 신선한 사체를 구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사체 해부는 사형을 받은 범죄자에 한한다는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주문받은 그림이 거의 완성되기 직전에 해부에 사용된 사체가 적접하게 사형이 집행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그 충격으로 렘브란트가 죽음에 이르고 사무엘은 거의 완성된 그림을 칼로 찢고 불태운다는 이야기의 전개가 인위적으로 추가한 내용으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렘브란트의 유명한 미술작품에 대한 화가의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서 렘브란트의 예술철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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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유령
크리스토프 보르트베르크, 만프레트 타이젠 지음, 이광일 옮김 / 느림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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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백경 등과 같은 고전문학의 주인공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줄거리와는 전혀 딴판의 내용이 되겠지요? 줄거리가 달라지면 책을 읽어 얻는 감동도 달라질 듯합니다.


<책들의 유령>은 색다른 시간과 공간여행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흔히 시간여행이라 함은 과거와 미래의 세계로 순간 이동하여 그 세계를 경험하는 일을 다루기 마련인데, <책들의 유령>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계로 이동한다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가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끌어온 셈입니다.


시간여행을 하려면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키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유명한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경우는 자동차와 기차가 그와 같은 장치입니다. <책들의 유령>에서는 <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가 만들었다는 팔각형 아물렛에 들어있는 신비한 힘이 그와 같은 장치입니다.


위대한 작가들에게 대물림되어 전해진다는 아물렛은 훈장과 같은 명예의 상징이자 의무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문학을 수호하고 아물렛을 훔치려는 악인 곤다르로부터 책들의 세계를 수호하는 사명(131)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물렛은 시간의 고향과 같은 장치로 그것을 가진 사람은 시간을 손에 넣을뿐더러 생명과 역사를 손에 쥐는 셈(143)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예를 들면 허먼 멜빌의 <백경>에 등장하는 인디언 퀴퀘그를 비롯하여 조나단 스위프트의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프라이데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천공의 성>에 나오는 구두장이도 아물렛을 알아보는 것을 보면 위대한 작가들에게만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나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면 모두 아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들의 유령>은 아물렛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공 벤의 이모가 누군가에게 납치되면서 반쪽의 아물렛을 남기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모가 남긴 반쪽의 아물렛의 힘으로 소설의 세계로 들어간 벤은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떨어지는데 현실의 과거가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쓴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주인공 로미오가 회색 옷을 입은 자들에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벤은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와 함께 줄리엣을 구출하여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 머큐시오 그리고 줄리엣과 함께 시작하는 여행은 <백경>, <로빈슨 크루소>, <암흑의 핵심>, <돈키호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걸리버 여행기>, <유희의 끝>, <전쟁과 평화>, <올리버 트위스트>,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 <마드무아젤 드 스퀴데리>, <몽테크리스토 백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함정과 진자>, <신곡> 등을 비롯하여 영화 <천공의 성>까지 모두 20개의 작품의 세계를 넘나들게 됩니다. 대부분 읽어보았습니다만, <암흑의 핵심>, <유희의 끝>, <마드무아젤 드 스퀴데리>, <함정과 진자> 4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세 사람은 신곡에 이르러 단테를 만나게 되는데 단테는 줄리엣에게 아물렛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문학의 세계에 평형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는 늘 새로운 세계에 빠지는 법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세계는 작가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반면에 현실은 점점 흐릿해지고 생기를 잃으며 공허해진다.(230)”


이야기의 끝에서 벤은 악의 축인 곤다르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가 곤다르의 하수인이었다는 반전이 일어나지만 머큐시오도 결국 곤다르에게 반기를 들어 아물렛을 지키는 사람들의 승리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곤다르의 수하들이 회색옷을 입은 것이나 아물렛이 시간의 고향이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독일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와 닮은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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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여행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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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라스콜리니코프를 21세기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는 설명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고전독서회에서 <죄와 벌>을 읽고 토론하면서 저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범행동기는 물론, 범행과정, 범행 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야간 비행>의 주인공 마크 크라머가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는 물론 범행과정, 수습하는 과정 등은 죄와 벌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금전적 동기에서 출발하여 노파를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데, 수사과정에서 노파를 사회악으로 규정하여 그의 범행에 타당성을 성립시키려는 해석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마크 크라머는 먼 친척이면서 자신의 책을 출판해주고 자서전 집필 건을 연결해준 후원자라할 수도 있는 야콥 뢰더를 자신이 쓴 소설의 원고가 형편없다고 평가했다는 이유로 때려죽입니다. 독일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뢰더가 소개해준 자서전 집필 의뢰자 카를 프라이킨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이유는 프라이킨의 젊은 아내 사라를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마크가 사라를 유혹하는 장면도 독일인답지 않아서 어색합니다. 프랑스 남자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뢰더가 충동적 살인이었다면 프라이킨의 경우는 치밀한 장치를 마련하여 자살을 위장하였습니다. 게다가 독일에서 남프랑스로 가는 도중에 만난 남자를 살해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보면, 야간 여행의 주인공 마크 크라머는 소위 신념에 의하여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석되는 라스콜리니코프와는 달리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해야  한 것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에서도 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나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진의 대응이 미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야간 여행의 살인자 마크 크라머는 완전범죄를 노린다면서 살인 현장의 정리가 미숙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가가 완전범죄에 대한 자료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데서 오는 미숙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양동이로 내려 쳐서 뢰더를 살해했다면 당연히 현장에 많은 피가 흩뿌려졌을 것이며 범인인 마크의 옷가지나 손 역시 피범벅이 됐을 것인데 어떻게 정리를 했다는 서술이 없습니다. 또한 양동이를 들어 가격을 하는 것으로 절명하지 않은 경우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신체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프랑스까지 찾아온 독일경찰은 마크의 진술만 청취하고는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독일경찰을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 째 살인의 경우도 마크가 권총을 들어 카를의 관자놀이를 쏜 다음에 권총을 닦아 카를의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자살이 성립되었다고 보기가 어렵겠습니다. 과학수사대에서 카를과 마크의 손이나 윗옷의 팔부위에서 화약흔을 검사해보면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카를을 직접 사살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서 총알에 맞는 순간 튀는 핏방울이 옷에도 튀었을 것이고 뒤처리에 관한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고 찾아온 경찰이 현장을 보존하고 증거를 수집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은 것은 작가가 프랑스 경찰을 우습게 안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소설이 끝날 때까지 수사가 종료됐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추후에 마크의 범행을 인지하고 압박해 들어올 여지는 남았다 싶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범행과 수사당국의 수사진행이 미흡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뢰더가 마크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은 어떤 장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듯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의 심리변화 역시 라스콜리니코프의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간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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