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산책자 - 파리, 베를린, 도쿄, 경성을 거닐다
이창남 지음 / 사월의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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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서울과 근교의 산책길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외여행길에서도 방문한 도시를 산책하기도해서 도시산책이라는 개념에 눈을 뜨게 된 셈입니다. 최근에 윤미래의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를 읽은 데 이어 이창남의 <도시 산책자>를 읽게 된 이유입니다.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일방통행로> 등 발터 벤야민의 저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는데, <도시 산책자>의 경우는 도시산책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발터 벤야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이상, 박태원 등의 시선을 통해 근대 파리, 베를린, 도쿄와 경성에서의 도시산책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근대 이전에는 거북이를 끌면서 한가롭게 도시를 산책하던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도시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됨에 따라 도심의 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한가롭게 산책을 할 상황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는 근대 대도시에서의 산책과 현대 대도시에서의 산책의 의미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창남은 산책자라는 주제를 장 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만, 비슷한 시기의 임마누엘 칸트 역시 도시산책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입니다. 도시산책이라는 주제로 쓴 글이 없어 주목받지 못한 것 아닐까요?


현대에 들어서도 벤야민이나 크라카우어의 도시산책의 전통을 잇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의 크리스틴 페레플뢰리와 <바깥 일기>의 아니 에르노, <도시 탐구기>의 로버트 파우저는 물론 최근에 읽은 우리나라의 작가로는 <지하철 독서 여행자>의 박시하, <교토의 밤산책자>의 이다혜, <도쿄적 일상>의 이주호 등이 생각납니다. 도시산책이라는 주제를 정리해볼 생각에서 읽어본 책들입니다.


20세기에 활동한 발터 벤야민이 18세기의 산책자와 구분되는 산책자의 유형을 제시했다면 오늘날의 도시산책자들은 21세기의 도시산책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18세기의 도시산책자들이 철학적 몽상가였다고 하면,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20세기의 산책자는 사회적 야생성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알 수 없는 익명의 인간으로 애드거 앨런 포의 군중 속의 남자와 같은 존재로 재탄생하였다는 것입니다.


벤야민은 도시산책자의 행동특성을 두 가지로 파악하였는데, 하나는 찻집에 자리 잡고 앉아 무형의 대중을 관찰하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의 고독에서 벗어나 대중 속에 섞여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군중 속의 개인을 산책자와 구경꾼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산책자가 자아에 몰입하는 사람이라면 구경꾼은 자아를 벗어나 외부대상에 몰입하고 몸을 맡기는 탈자아적 행태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20세기에는 이동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전지구적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어 지구촌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저가항공의 발달과 이용객의 증가, 그리고 인터넷 사용의 보편화와 정주민이 가졌던 삶의 경계들을 유동화하는 매체의 발달은 도시산책자들의 유목을 일국적 현상이 아닌 초국적 현상으로 만들고 있다.(44)” 21세기의 유목적 대중은 국경을 넘는 여행자이거나 인터넷을 배회하는 전자적 산책자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경을 넘는 트랜스내셔널 산책의 개념은 단순한 여행의 의미를 넘어 문화적 전이와 개념적 재위치의 자기 성찰적 과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45)”라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살고 있는 서울의 산책에서 국내 도시는 건너 뛰고 지구촌의 다양한 도시를 찾고 있는 저는 돌연변이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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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도쿄적 일상 : 추억은 쇼와에 모인다
이주호 / 브릭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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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적 일상>은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을 벗어나 도쿄로 간 한 일상 여행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제가 본 도쿄는 서울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습니다만, 여행자라는 이유로 여유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여행잡지 브릭스를 만들고 있는 저자는 2009년에 <도쿄스토리>를 시작으로 여행 관련 책을 이어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행보다는 동네 산책이 좋아 어떻게 하면 서울에서 화내지 않고 산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도쿄적 일상>은 서울에서 즐기던 산책의 무대를 도쿄로 옮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쿄 스토리>에는 우에노에서 시작하여 도쿄디즈니랜드, 아사쿠사, 오다이바, 진보초, 시부야, 시모기타자와와 키치조지, 다이칸야마와 지유가오카, 도쿄 타워, 에도 성, 그리고 닛포리와 네즈 등 도쿄의 몇곳을 다니면서 겪은 혹은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야기 속에는 도쿄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도 섞여들고, 작가가 조사한 듯한 사실, 직접 겪은 일들이 뒤섞이고 있어 매끄럽게 읽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애매한 점도 없지 않았는데, 창경궁 벚나무는 해방되면서 잘라냈고, 대신 여의도에 벚나무를 심었다는 내용이 대표적일 듯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 중반에도 창경원에 동물원이 있었고, 밤벚꽃 놀이를 즐겼던 기억이 여전합니다.


그런가 하면 음반에서 바늘이 튀듯이 이야기의 흐름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사쿠사에서 오다이바로 가려던 길에 갑자기 비키니 섬과 고지라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방사능 문제가 다루어집니다. 어쩌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뒷이야기로 이어가려던 것이 방향전환이 되고 말았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제목에서 발견한 진보초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묘가 있는 조시가야 묘원을 이야기하면서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서 선생님의 죽은 친구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짚었습니다.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조시가야역을 거쳐 와세다역까지 가는 전철이 지하철이 아니고 지상으로 다닌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작가는 악L DKSLFKSMS보를 사러 진보초에 갔던 것인데, 악보다 아니고 그렇다고 책도 아닌 막연한 걸음이었던가 봅니다.


와세다 대학에서 하루키 도서관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만, 하루키는 진지하게 다룰 대상아니라는 평단의 입장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이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 숲>에 열광하는 현상을 두고, “고급문학의 죽음을 재촉ㅎ는 허드레 대중문학이라면서 약삭빠른 글장수의 책이지 결코 예술가의 책이 아니며, 생활의 귀족이 되기는 어려워도 마음의 귀족이 되기는 쉬운 듯하다는 이효석의 말이 인용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루키의 소설에서 진한 무엇이 남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모리미술관, 산토리 미술관 그리고 신미술관에는 들어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오타기념 미술관과 일본민예관에 관심을 보인 것도 특이했습니다. 우노 공원 부근에 있다는 모리 오가이 기념관에는 그에 대해 잘 모르고, 읽어본 작품도 없다는 이유 들어가지 않는 것도 묘했습니다. 작가의 아내는 센다기가 마음에 들어 다음에는 이곳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작가는 내가 사는 동네가 더 좋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싶으면서,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결국 낭만 도쿄를 이야기하려다가 우리 동네가 더 좋더라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전작들을 보면, 오사카, 규슈 등 일본의 도시에서의 경험을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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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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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양기화의 BOOK소리-세계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페스의 집>2014년에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모로코의 페스를 구경한 이야기에 더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읽어보았습니다. 절판에 되어 어렵게 구했습니다.


<페스의 집>은 호주의 유력 신문사에서 일하느나 수전나 클라크와 국영방송국에서 일하는 남편 샌디 매커천이 모로코 페스 메디나에서 다 쓰러져가는 집을 샀고, 모로코의 전통건축방식에 따라 복원하는 과정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그곳도 겨우 두 번 방문하고서는 집을 사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영주목적으로 산 것이 아니라 집필 작업을 한다거나 휴가 때 사용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부부가 구입한 집은 페 메디나의 미로 같은 골목길에 있는 리아드였습니다. 페스에는 다르와 리아드라는 두 종류의 집이 있다고 합니다. 안뜰이 있는 것은 닮았지만 리아드가 훨씬 커서 레몬이나 오렌지 나무 한 그루 정도는 심을 정도로 넓다고 합니다. 페스의 메디나 안에는 14천 채의 집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가운데 미로 같은 메디나의 입구에서 가까운 리아드가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저자 부부가 페스에 꽂힌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페스의 거리와 비교했을 때 서구의 거리는 개성과 생명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자동차와 집이라는 거품 속에 존재하며 텔레비전의 유리벽을 톻해 세상을 본다. 사람과 당나귀, 굽지 않은 빵 접시를 들고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암표장사, 암거래 상인,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나는 페스처럼 생기로 역동하는 곳을 본 적이 없다.(176)”


물론 부부가 구입한 리아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어려움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덤으로 페스의 역사와 페스에 살고 있는 모로코 사람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적고 있습니다. 페스는 79년 예언자 무하마드의 자손인 물라 이드리스2세가 건설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페스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오래된 메디나는 옛 페스라는 뜻의 페스 알 발리(Fez-alBali)이고, 두 번째 구역은 1276년에 건설된 페스 제디드(Fez Jedid), 새로운 페스라 메디나의 언덕 위에 위치합니다. 이곳에는 유대인의 오래된 거주지인 멜라(Mellah)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인 빌 누벨(Ville Nouvelle)이 있다고 합니다. 20세기들어 프랑스 식민 통치자들이 메디나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세웠다고 합니다. 넓은 도로와 카페가 어우러진 이 시가지인 하우스만의 파리를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페스의 메디나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인 카라위인 대학(Karaouiyine University)가 있습니다. 튀니지의 카이루오나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망명한 부자 상인의 딸 파티마 알 피르리야(Fatima al-Fibria)가 설립했다고 합니다.


페스의 전통적인 주택은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려는 국토회복 운동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성립된 후기 우마이야 왕국이 세월이 흐르면서 20여 개의 공국들로 쪼개졌는데, 각 공국들은 가장 유능한 예술가, 시인 학자를 모시기 위해 다투었고, 덕분에 예술과 과학이 번성했고, 빈사상태의 유럽에 유출되는 효과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국가들의 국토회복운동의 결과 무너진 공국들의 난민들이 모로코로 유입되었고, 그 가운데 뛰어난 장인들이 모로코에 새로운 건축문화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 문화적 유산이 메디나에 있는 유서 깊은 아타린(Attarine)과 사흐리즈 (Sahrij) 신학교의 화려한 미장, 목공, 젤리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로코 행정기관의 비효율성은 물론 공무원들의 부조리, 공사관계자들의 느려터진 공사진행 등, 부부의 메디나 리아드 재건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만난 인연들의 도움으로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과정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이 된 것은 수잔나 클라크의 저돌적인 추진력에 힙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더하여 20세기 초까지 조화롭게 성장하던 페스의 메디나는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는 변화의 물결이 거세진 것에 반하여 저자 부부는 모로코의 전통 건축양식을 살려서 리아드를 재건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여기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14세기처럼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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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방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3
다니자키 준이치로 외 지음, 김효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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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大正) 시대(1912~1926)들어 메이지(明治)시대(1868~1912) 말 유행하던 자연주의 문학이 쇠퇴하고 탐미주의 문학이 대두되면서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 사토 하루오(佐藤春夫), 사토미 돈(里見惇), 기쿠치 칸(菊池寬) 등 순문학 작가들이 주도하여 예술적 경향의 탐정소설이 창작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추리소설이 활발하게 창작된 것은 신청년이 창간되고 에도가와 란포(江戸川 乱歩) 등이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살인의 방>은 다이쇼 시대에 활동한 다니자키 준이치로, 아쿠타가와류노스케, 기쿠치 칸 등 탐미주의 문학가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문학계열의 히라바야시 하쓰노스케(平林初之輔)가 발표한 9편의 탐정, 추리소설을 담았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에드거 앨런 포나 코난 도일의 작품들을 읽고 괴기, 환상, 신비적 분위기의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훗날 추리소설의 대표작가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지(横溝 正史)등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살인의 방>에는 표제작인 살인의 방’, ‘길 위에서’, ‘도둑과 나등 세 편이 실려있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추리소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기념비적 작품집 <봄날의 밤>을 냈습니다. 이 책에는 표제작 봄날의 밤을 비롯하여 11편의 추리, 탐정, 괴기소설을 담았습니다. <살인의 방>에는 개화의 살인’, ‘의혹’, ‘덤불 속등 세 편이 실려있습니다. ‘살인의 방은 평범한 도락에는 싫증이 난 친구가 살인이 예고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현장에서 지켜보자는 제안을 받은 화자가 친구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현장에 갔다가 살인사건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런데 친구는 살인을 저지른 여성에게 매혹되더니 그녀의 손에 살해당하게 되었다면서 그 장면을 지켜봐 달라는 부탁을 해옵니다. 결국 친구의 살해장면을 지켜보게 되고, 범인들로부터 친구의 유언장을 전달받게 된 화자가 친구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 탐정소설적인 요소가 풍부하고, 에드거 앨런 포, 코난 도일, 오스카 와일드 등 서구작가의 기법을 다양하게 녹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덤불 속라쇼몬과 함께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감독이 영화 라쇼몬(羅生問)의 원작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내용은 헤이안 시대에 무사 부부가 산길을 가다 도적을 만나 남편이 덤불 속에서 살해당한 사건을 둘러싸고 나무꾼, 스님, 포졸, 노파, 도적 다조마루, 아내 마사고, 그리고 죽은 무사의 영혼이 서로 엇갈리는 진술을 내놓고 있습니다. 결국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고 범인이 누구인지 미궁에 빠진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내 마사고가 기요미즈테라(淸水寺)를 찾아 참회하는 형식으로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참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쿠치 칸은 문예춘추사를 설립하였고,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여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소개하거나 창작하였는데, 이 책에는 어떤 항의서가 살려 있습니다. 강도가 들어 누나 부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뒤따라 죽음을 맞게 되었는데, 사건이 발생하고 1년이 지난 뒤에서야 범인 사카시타 쓰루키치가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의 추적 끝에 잡힌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범행 가운데 부부 살해사건도 저질렀다고 실토하는 바람에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옥중에서 기독교에 귀의하여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로 사형을 당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화자가 법무부 장관에게 항의서를 보내 유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범인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을 받아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히라바야시 하쓰노스케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이론가로 알려졌지만 실은 신청년에 참여하여 많은 추리소설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예심조서’, ‘인조인간등 두 편이 실려있습니다. ‘예심조서에는 과실에 의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수한 아들을 구하려고 예심판사를 찾아간 노교수가 아들의 정신이상을 주장하다가 받아들이지 않자 사실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하는 반전이 있고, 결국은 노교수와 그의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반전이 거듭되는 본격 추리소설의 형식을 볼 수 있습니다. ‘예심조서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고리키의 세 명등이 인용되는 것을 보면 당시 일본의 추리소설작가들은 해외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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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밤 산책자 - 나만 알고 싶은 이 비밀한 장소들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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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3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만, 교토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교토 밤 산책자>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전문지 시네21의 이다혜기자가 쓴 책인데, 영국에 갔을 때, 입국 심사관이 여권을 보더니 한국에 살아, 일본에 살아?”라고 물었을 정도로 일본을 자주 가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영국의 입국 심사관이 그런 질문을 했을까?’싶었습니다. 일본 입국 필증이 붙어있다는 것은 일본에 자주 간다는 것이지 일본에 산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요.


어떻든 그렇게 일본을 자주 가보았다고 하면서도 교토를 가장 많이 가보았다고 했습니다. 하기는 본문을 읽다보면 굳이 교토에 가게 된 이유는 분명치 않은 듯합니다. “교토는 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이지만, 교토에 가서 뭘 하느냐고 하면 하는 게 거의 없다. 가던 곳에서 식사를 하고, 좋아하는 정원에 다시 가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좋아하는 커피숍을 다니고 빵을 고른다. 그릇을 사고, 또 사고, …… 또 그릇을.(183)”이라고 적은 것과 심심하기 위해 여행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하게는 정리되지 않지만 알 듯하기도 합니다.


나만 알고 싶은 이 비밀한 장소라는 부제는 책을 통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장소를 대공개하는 것을 보면 나는 이런 장소도 알고 있어라고 자랑하는 듯하기도 합니다.

교토만의 특징적인 장소와 무엇은 무려 34곳이나 됩니다. 그것들을 꽃, 정원, 특색 있는 장소와 먹거리 등 네 가지의 주제별로 묶어 놓았습니다. 사실 저는 먹는 것에 대하여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네 번째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만, 꽃과 정원 그리고 특별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글이 참 매끄럽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30년 전에 오사카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가 함께 일했던 친구와 교토를 당일치기로 다녀왔기 때문에 킨가쿠지(金閣寺)와 기요미즈데라(淸水寺)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교토 밤 산책자>에 긴가쿠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기요미즈데라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철학의 길이 있습니다. 긴가쿠지에서 시작하여 난젠지(南禪寺)에서 끝난다는 철학의 길은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즐겨 산책했다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고는 합니다만, 사실은 하이델베르크의 네카 강 북쪽의 산비탈에 있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에서 왔다고 합니다.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 유학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습니다만, 정지용시인의 <향수>가 일본 유학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면 썼다는 것과 교토를 남북으로 흐르는 가모가와(鴨川)에서 압천이라는 시를 지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기요미즈데라에 있는 오토와(音羽)라는 폭포에 관한 이야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아마도 맑은 물의 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폭포인데 세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물줄기는 각각 장수, 사랑, 학업의 운을 상승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도 왼쪽부터인지 오른쪽부터인지 헷갈려서 세 줄기 물을 모두 조금씩 받아서 마시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 물줄기를 모두 탐내면 효험이 없다는 도시전설도 있다고 합니다. 본당 뒤편에 있는 기슈진자(地主神社)에 있는 두 개의 돌이 3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데, 하나의 돌에서 다른 돌까지 눈을 감고 걸어서 똑바로 도착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다양한 문학적 소재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각각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붙여놓은 짧은 인용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본 문학에 대한 작가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요미즈데라의 말사인 죠주인(成就院)을 소개하는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죠주인은 사진촬영이 금지된 죠주인에는 달의 정원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마스다 미리의 <영원한 외출>고요했다. 바람도 없고 나무도 흔들리지 않고, 그림 앞에 있는 것 같았다.”라는 구절을 인용해놓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이 아쉬웠다고 했는데, 이 책을 화보집으로 보았던 모양입니다. 사진을 곁들인 수필집이라고 해야 할 책인데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사진도 충분히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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