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버린 천재음악가 정추
구해우.송홍근 지음 / 시대정신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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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이코프스키의 4세대 제자 정추를 아십니까? 챠이코스프키의 작품은 익히 알아도 그의 음악적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나라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솔직하게 말씀드려 처음 알았습니다. 오랫동안 남북으로 나뉘어 지낸 탓인지 특히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북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반도를 떠나는 분들은 국내에 머물고 계셨던 분들과 비교하여 대체적으로 뜨거운 조국사랑을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적극적인 성향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식자층에 속한다는 분들 사이에는 사회주의에 내세우는 비전에 매혹되었던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는 해방후 북한에 사회주의국가가 들어선다고 해서 월북하여 새로운 세상만들기에 적극 참여하였지만, 북한에 들어선 정권의 실체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체제비판에 나섰거나 아니면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숙청되어 발자취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문제 전문가 구해우교수님과 송홍근기자님이 발굴하여 소개하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책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버렸다는 음악가 정추는 남한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궁금해집니다. 작가들이 전하는 정추는 광주에서 태어나 예술적 성향이 풍부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일찍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영화예술을 공부하였던 형님이 해방후 북한 정권의 요청으로 월북하게 되었는데, 평소 아끼던 동생 정추를 평양으로 불러 영화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북한 정권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면서 음악공부를 더 하겠다는 이유로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의 챠이코스프키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졸업할 때 작곡한 작품이 심사교수들로부터 만점을 받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들어선 후르시쵸프에 의하여 벌어진 스탈린 격하운동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사회주의자 정추는 독재는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북한에서 독재정치를 펼치는 김일성을 배척하는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으로 소환될 위기에 몰린 정추를 당시 북한과 미묘한 관계에 있던 소련이 정추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보내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자흐스탄은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스탈린의 소개정책에 따라서 강제이주되어, 정착과정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추는 이곳에 정착하여 고려인 사이에 전해오는 전통민요를 채록하여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가슴속에 뜨겁게 자리잡고 있는 조국애를 담은 음악을 작곡하는 일에 전념하여 소련 음악계가 인정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정추를 윤이상과 비교하시는 분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윤이상은 남한이 버린 음악가라고들 합니다. 경남 통영출신의 작곡가 윤이상은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남한에 돌아올 수 없게 된 다음 북한에 경도되었다고들 합니다만, 동백림사건에 적극 간여하였다면 그 전에 이미 스스로 남한을 버리고 북한을 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는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그녀의 남편 오길남씨의 북한행 등 남한쪽 사람들을 포섭하여 북으로 보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추는 1990년대 초에 구국전선을 만들어 북한의 민주화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윤이상을 변절자라고 잘라 말하면서, 카자흐스탕의 윤이상이라는 표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저도 윤이상이 박정희 독재정권에 투쟁하는 민주투사로만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북한 조직에 깊숙이 개입돼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북한 또한 독재정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어떻게 북한을 두둔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북한체제를 반대한 망명자이고 윤이상은 남한체제를 반대하고 사이비 사회주의 독재국가를 찬양한 사람입니다. 저를 그와 비교하지 말아주십시오.(166쪽)”

 

저자들은 알마티를 찾아 정추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정추가 살아온 삶의 족적을 찾아보고 그가 살아온 격동의 시대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요약하여 읽는 사람의 이해를 쉽게 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정추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의 힘으로 정추의 절절한 조국사랑이 담긴 ‘조국’,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스탈린’, ‘내조국’ 등이 서울과 평양의 무대에서 연주될 그날을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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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직관 - 유행의 탄생에서 열강의 몰락까지 미래를 예측하는 힘
존 L. 캐스티 지음, 이현주 옮김, 황상민 해제 / 반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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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왕권과 신권이 대립하는 가운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임금의 사랑을 그리고 있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건의 물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으로 관상감과 성수청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상감은 천문, 지리, 명과학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천문을 담당하는 관원들은 기후 관측과 책력제작을, 지리를 담당하는 관원들은 풍수지리학을 토대로 왕궁·왕릉 등의 터를 잡는 일을, 명과를 담당하는 관원들은 길흉화복을 점쳐 왕실의 합궁일이나 길일·태일을 정하는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수청은 조선 전기에 국가와 왕실의 복을 빌고 재앙을 비는 굿을 담당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드라마에서는 관상감이 성수청에서 할 일까지 넘나드는 것 아닌가 싶은 장면도 있었지만, 왕조에서 이러한 부서를 두었던 것은 결국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서양에서도 별점 혹은 유리구술점을 치는 점술가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미래의 일을 알고 싶은 것은 동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양의 점술가나 우리의 무속인에 대한 관심이 예전같지 못한 것은 아마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개인의 미래를 미리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쳐도 한 나라, 혹은 사회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일이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양자물리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정밀한 값을 갖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값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의 원리도 정규분포곡선과 일반적인 통계값으로 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보면, 사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회현상의 미래 역시 예측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존 캐스티 박사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한 미래탐구학회 케노스 서클(Kenos circle)에서는 복잡성 과학을 적용해 기존의 통계적 방식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데, 캐스티 박사가 쓴 <대중의 직관>을 통하여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록에서도 요약소개하고 있는 주가변동에 관한 엘리엇파동이론을 통하여 “어느 인구집단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앞으로 일어날 사회적 사건의 유형을 결정한다”는 것을 핵심이론으로 하는 로버트 프렉터의 사회경제학의 논리를 통해서 미래예측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프렉터가 제안한 사회적 인과성의 사회경제학적 가설은 “사회분위기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 사회분위기의 동향과 범위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행동을 포함한 사회적 행동의 특징을 결정짓는다. 달리 말하면, 분위기가 사건을 지배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사회분위기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리를 이루려는 인간의 충동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것인데, 최근 우리 사회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국내외 사회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데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분위기는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특정 시기에 어떤 집단의 사회적 분위기가 긍정적이면 이는 그 집단이 미래를 낙관하며 고대한다는 의미이며, 반대로 사회적 분위기가 부정적인 경우 집단은 미래를 비관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 형태 사이에는 당연히 분위기가 전환되는 이행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긍정적 분위기와 부정적 분위기라고 하는 회색지대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분위기는 ‘상승하는 긍정적 분위기’, ‘최고조에 달한 긍정적인 분위기’, ‘쇠퇴하는 부정적 분위기’, ‘바닥을 친 부정적인 분위기’의 네 가지 단계가 파동처럼 순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경제학에서는 도미니크 모이지가 <감정의 지정학>에서 다룬 희망, 두려움, 수치라는 세 가지 사회적 분위기에서 단서를 얻어 상승분위기를 ‘희망’으로, 최고조의 분위기는 ‘오만’으로, 쇠퇴하는 분위기는 ‘두려움’으로 그리고 바닥을 친 분위기는 ‘절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저자는 2001년 가을 일어난 엔론사의 파산을 비롯하여 과거의 대형 국제전쟁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지표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1914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의 암살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이라는 우연이론가의 주장에 대하여, 알자스 로렌지방에 대한 프랑스의 욕망, 유럽의 동맹체제, 발칸지역을 지배하려는 오스트리아의 야심, 심지어는 군수품 제조업자들과 국제은행가들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여 이미 전쟁의 위기가 차곡차곡 쌓아갔던 것이라고 설명하는 역사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점에 주목한 것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도발이 남북한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저자는 지각의 판구조론으로 지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각을 나누고 있는 몇 개의 판이 서로 부딪히면서 생기는 지진을 관찰해보면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응력을 덜어주는 조그만 떨림마저도 중단되는 알파국면이라고 부르는 침묵의 시기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그만 충격이 수없이 발생하는 베타국면이 시작되고 마침내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즉 판끼리의 부딪힘이 적절한 빈도로 일어나 응력이 해소되지 않고 쌓이다 보면 결국은 대형 지진이 일어나 쌓였던 응력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국가 간의 갈등 역시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6.25남침전쟁처럼 은밀한 가운데 전쟁준비를 진행해 오다가 선전포고도 없이 선제공격을 해야 전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치국면을 긴장으로 몰고 가는 도발을 반복하면 반대편에서는 수비태세를 강화하여 대응력을 높이게 됨으로, 막상 전면전으로 발전하였을 때는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역사적 흐름을 고찰한 열강의 몰락의 예를 들어, 유행의 탄생으로부터 몰락까지 부침이 심한 영화, 음악, 스포츠, 패션과 같은 문화는 물론, 한 국가의 통치세력의 변화와 국가 간의 전쟁과 같은 국내외의 정치적 위기에서 경기의 순환과 같은 경제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분위기를 분석해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기도 찜찜할 수도 있는 사례는 어떤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착공하였다면 그 나라의 주식시장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라는 마천루지수입니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 건설, 대만의 타이페이101 건설, 두바이의 부르즈 두바이 건설을 전후하여 해당국가의 증시지수를 살펴보면 저자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롯데월드타워123가 2009년에 착공되어 2015년에 완공예정에 있다는 저자의 인용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공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년 말에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대선의 향방에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정치동향은 주식시장의 회전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즉 투자자들은 후보의 성향에 따라서 시장이 상승할 것이라거나 하락할 것을 점칠 수 있다는 것인데, 정권의 정책방향이 주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꾸로 시장의 동향으로 정권의 향배를 판단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주식시장에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동향은 현직 대통령이나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할 가능성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한 인구집단이 미래를 낙관하는 긍정적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이 되는 경우 현직대통령이 유리하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단임제의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을 계기로 하여 가속되던 부정적 사회분위기가 참여정부 시절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의료계로서는 언제까지나 절망할 수밖에 없던 사회분위기가 다소 상승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는 판단이 들만도 한데, 사회나 정책당국에 대한 의료계의 대응은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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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3-05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4423
 
최강의 자기분석 - 당신의 천직을 찾아주는
우메다 사치코 지음, 박주영 옮김 / 알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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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할 수 있지만 지루하게 느껴진 적은 없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부탁받거나 칭찬을 듣지만 좋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까? 다른 사람이 좋아해 주는 것이 기쁘지만 일하는 것 그 자체로는 설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여섯 곳의 직장에서 일을 해오면서 아무래도 역마살이 센 탓이겠거니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냉정한 상황분석보다는 다분히 감성적 판단이 진로결정에 크게 작용했던 것이었지만, 나름대로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였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입영시기와 관련한 결정이 인생의 항로를 크게 비틀어서 결국은 여러 차례 이직하게 되는 요인이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 진로를 결정할 때는 평생 대학에서 진료와 교육을 하면서 지낼 것으로 믿었던 것인데 역시 사람사는 일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의 유명한 커리어 컨설턴트 우메다 사치코대표의 저서 <최강의 자기분석>을 읽게 되면서,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이런 책을 읽었더라면 진로결정에 크게 도움을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던 일본에서도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는 느낌도 얻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을 선택할 때, 혹은 직장을 옮기려 할 때 고려할 점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해놓고서 첫 번째 이직을 할 때 생각이 났습니다. 승진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면서 후배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 상황이 스스로도 힘들었고, 후배들에게도 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이직을 결심한 것인데, 원인을 제공했던 분들은 이직마저도 훼방을 놓은 정황을 알게 되었을 때 참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조언을 주셨던 선배님께서는 이직이 긍정적인 이유와 부정적인 이유를 각각 10개 정도 도출하고서 무게를 달아보라 하셨던 것도 기억납니다. 결국은 이직하는 쪽으로 결정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메다 사치코대표는 커리어 컨설턴트답게 자신의 장점을 살려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고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업무분석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사분표를 응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잘하는 일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로 각각 4분면을 만들어 잘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자기분석을 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장에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길을, 2장에서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자기분석법을, 3장에서는 일에서 살릴 수 있는 나만의 강점을 찾는 자기분석법을, 4장에서는 잘하지 못해서 참을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는 자기분석법을,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즐겁고 잘 할 수 있는 직업을 고르는 방법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확대해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에는 좋아하는 일을 고르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관심이 별로 없었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제가 졸업하고 처음 전공을 택할 때 범했던 실수가 바로 즐거움의 확대해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능력이나 기술보다는 특성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능력이나 기술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향상시킬 여지가 있는 부분이나 개인의 특성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 저자가 적어놓은 질문을 옮겨보겠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했으면 하는가?”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후회없는 삶을 살았는가?”하는 질문은 이따금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은 있습니다만, 삶을 마감했을 때 내가 아닌 3자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생각해본 적은 솔직하게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그는 언제나 누구라도 자기 자리에서 빛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지”라는 말을 듣고 싶노라고 했다고 하는데, 한 명이라도 그와 같은 애도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헛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1년만 버티면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008311). 하지만 저자는 “억지로 버티지 마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업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결국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분석을 통하여 필요하면 이직도 단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최강의 자기분석>에 담아내게 되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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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인재, 우리는 함께 간다
융합형인재사관학교.김영록 지음 / 티핑포인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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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세분화되어 학문적 깊이를 더하다보니 전공분야를 벗어나게 되면 일반인보다도 아는 바가 없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아무래도 학문의 발전속도가 빠르다 보니 전공분야의 기초를 세우기 위하여 공부해야 할 분량도 엄청나게 되었지만,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하루에도 쏟아져 나오는 연구성과들을 쫓아가기도 숨찰 지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학문에 세분화되기 전에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학문의 깊이를 더하여 시너지효과를 내던 학문의 경향을 되새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님의 <통섭; http://blog.joinsmsn.com/yang412/4895225>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은 생소한 ‘융합형 인재’의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학문의 벽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결합하여 성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개념처럼,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조직이 필요로 하는 바른 인성과 창의성이 뛰어난 인재, 즉 다재다능한 인재를 이르는 것이라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실 다재다능은 타고나는 재주라서 교육에 의해서도 달성할 수 있겠는가 의문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궁금증이 <융합형인재 우리는 함께 간다>를 통하여 어느 정도 답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재양성의 꿈을 세운 김영록님이 세운 융합형인재사관학교(융합사)를 통하여 “한 분야의 전문성은 물론 다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두루 갖추고 1인 3역을 해내며 특히 ‘인성이 올바른’ 사람”을 키워내는 실험을 시작하여 그 첫 번째 결실로 4명의 융합형인재를 배출하는 과정이 <융합형인재 우리는 함께 간다>에 담겨 있습니다.

 

융합사는 다양한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열두명의 대학생을 선발하여 2주에 1회씩 1년에 걸쳐 두 차례의 워크숍을 포함하여 24회의 교육을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지원자의 스펙은 선발의 고려대상이 되지 않으며, 프레젠테이션을 통하여 해내겠다고 하는 의지를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교육은 재능기부의 원칙에 따라서 융합사의 설립취지에 동의하신 여러 분야의 전문가 8명이 참여하여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매 2주마다 열리는 교육시간에는 미리 정해진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등록금은 물론 교육비를 내지 않는 대신, ‘사관학교’답게 엄격한 규율을 적용해 어기는 사람은 가차 없이 탈락되는데, 12명으로 시작한 1기는 4명만이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2기가 선발되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읽으면서 다양한 전공분야의 학생들이 선발되어 같이 토론하고 활동을 하게 되는 상황이 융합사의 설립취지에 잘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학문의 통섭을 인용하였습니다만, 요즘 대학생들은 공부해야 할 엄청난 분량의 전공서적에 압사당할 지경인지라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토론에 참여하는 동급생들을 통하여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에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토론의 대상이 되는 책을 보면 인문학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 인성을 개발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많은 학생들이 1년에 24권 분량의 독서가 부담스럽다고 한 점입니다. 물론 읽으면서 뜻을 새기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담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독서 역시 꾸준한 노력과 책읽는 시간을 내려는 의지를 세운다면 보다 많은 분량의 독서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한 번 교육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에서 발전하여 관련된 몇권의 책을 읽고 내용들을 종합하여 토론을 진행한다면 보다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화자(話者)가 내내 궁금했습니다. 중도탈락한 것으로 보이는 생도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4명의 생도 이름은 처음부터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읽어가면서 나름대로 추론을 해보았습니다만, 생도 각자의 시각으로 본 사건을 기술하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김영록님의 시각으로 본 사건도 있어 종잡기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융합사와 김영록님의 공저로 하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잡지의 편집장을 하고 있는 박송미님이 중심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어떻든 1기에서 33%가 살아남았지만, 2기에는 보다 많은 생도들이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신생의과대학에서 교육 및 실습 프로그램을 짜는 일의 책임을 맡았던 경험에 따르면, 첫 해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수월해지면서 레벨업이 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융합사에서 추구하는 인재양성프로그램이 머지않아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각자의 전공을 살리고 융합사에서 이를 조화시켜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그래서 리뷰의 제목도 “각자 이룬 성과를 융합하여 시너지를...”이라고 붙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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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힘 - 상처를 어루만지는 눈물 치유 심리학
강선영 지음 / 아우름(Aurum)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손수건을 지참하고 영화관을 향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컴컴한 극장 안에서는 여성은 물론 남성도 눈물을 흘려도 남의 눈치를 볼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때는 TV에서 하는 드라마도 눈물을 찔끔거리게 만드는 슬픈 장면이 꼭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영화에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역시 시청자의 분노를 끓게 만드는 막장드라마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야말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코미디가 한물가고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 웃음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사라지는 개그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눈물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눈물이 가지는 위대한 힘을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심리상담을 통하여 상처받은 이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고 이들을 위로해온 강선영박사가 심리상담을 통하여 경험한 눈물의 치유효과를 <눈물의 힘>에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 잘 웃는 사람이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얻은 경험을 한번씩은 하셨을 것입니다. 마음에 쌓이는 불안과 욕구 역시 울음을 통해서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울지 않는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눈물이 막히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눈물 그후, 빛나는 나를 만나다’라는 세 가지 제목으로 나누어 놓은 자신이 살면서 부딪힌 정신적 갈등을 울음을 통하여 풀어낸 이야기를 중심으로 상담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의 문제를 해결했던 사례들을 접목하여 눈물의 치유효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이 어린 시절 저자에게 정신적 상처가 되었고, 그 영향은 자신의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더라는 고백하기 어려운 자신의 성장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커오면서 눈물흘리는 행위가 죄악인 것처럼 강요받으면서 자랐던 기억 한 자락 정도는 마음 구석에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특히 야단을 맞을 적에 울면 당장 그치라는 다그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헷갈리기는 합니다만, 시끄럽거나 꼴보기 싫으니 우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지 눈물을 그치라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소리내어 우는 것은 자의적으로 멈출 수 있지만, 눈물을 감정적인 것이라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요?

 

돌아보니 저는 그나마 눈치를 보는 편이라서 거의 맞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형제들이 어렸을 적에 어머니한테 많이 맞으며 자랐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여쭈어보니 아들만 넷을 키우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만, 형제 중 누구라도 맞는 상황은 온 집안에 공포분위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도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들으면서 코를 훌쩍거리는 정도가지고 사내 녀석이 칠칠맞다고 핀잔을 주시지는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눈물이 흔한 편이었습니다.

 

저자는 상담심리치료센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게 형성되어 있어 정신과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심리치료센터를 찾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자들을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진단을 내리고 심리치료를 해오고 있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우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심리상담과 전문적인 정신과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계가 모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일단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환자는 정확한 진단과 상담치료 이외의 약물치료 등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신과전문의를 만나도록 해야 할 것이라 보입니다만, 그런 과정에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저자는 상담을 통하여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그 아픔을 눈물로 치유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억이 구조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최근에 읽고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대니얼 샥터 지음,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62617). 그 가운데 상담자의 유도질문이나 암시 등을 통하여 피상담자의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심각한 오류를 낳은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저자도 혹시 피상담자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이런 오류를 범한 사례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저자의 추론 가운데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부분도 있었다는 점도 적고자 합니다.

 

집안에 정신과를 전공하신 분이 계셔서 정신과질환의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 분으로부터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다는 말씀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눈물의 힘>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례들은 모두 눈물을 통해서 치유에 성공하고 있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일방적인 신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치유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에 관한 설명도 어떤 사례에서는 단기간에 효과를 보았다는 경우도 있었지만, 몇 년에 걸쳐 센터를 다니는 환자도 있어 치료비용은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신요양기관을 방문하는 경우는 건강보험이나 정부의 의료부조를 받아 비용부담을 대폭 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모두 울음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눈물이 정신을 맑고 건강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특히 상실의 아픔을 녹이는데 울음만큼 효과적인 치유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아픔을 마음 한켠에 꾹꾹 눌러두면 결국에는 마음의 병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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