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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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상실, 기억의 속임수에 대한 섬세한 탐구라는 설명에 눈길이 가서 읽게 된 책입니다. <오래된 빛>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맨부커상, 프란츠 카프카 상, 유럽문학상 수상자인 존 밴빌의 장편소설입니다. 화자인 주인공 앨릭스는 70세 가까이 된 은퇴한 연극배우입니다.(물론 뒤에 가서 밝혀지는 사실입니다)


이야기는 앨릭스가 열다섯 살 무렵 친하던 학교 친구 빌리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빌리의 어머니 미시즈 그레이의 당시 나이는 서른다섯, 무려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이와 사랑을 나누었다면 요즈음의 법으로는 아동에 대한 성범죄로 중한 처벌을 받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났던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꽤나 긴 시간을 두고 성관계를 이어가다가 우여곡절 끝에 헤어졌다고 하니 가중처벌을 받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와의 사랑의 행각을 계속 곱씹는 것을 보면, 미시즈 그레이와 사랑(그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했던 일은 앨릭스의 삶 전체를 관통하여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앨리스는 연극배우 일을 그만두고는 아내 리디아와의 관계가 데면데면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듯 변하게 된 것은 딸 캐스가 십년 전에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투신자살을 한 뒤부터입니다. 자살할 당시 캐스가 임신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지는데, 뒤에 가서 판더가 모종의 관련이 있는 듯한 분위기로 풀려갑니다.


그러던 가운데 팬터그램픽처스의 배역담당 빌리 스카우트가 앨리스를 찾아옵니다. 악셀 판더라는 사람의 삶에 관한 영화를 촬영하게 되었는데 앨리스가 판더역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연극무대에서 은퇴한 상태였던 앨리스는 요청을 수락하고 연습에 참가하는데, 돈 데번포트가 상대역으로 등장합니다.


촬영이 진행되는 가운데 돈 데번포트가 과민상태에 빠지면서 촬영이 중단되고 앨리스는 그녀에게 이탈리아 여행을 권합니다. 앨리스의 아내 리디아는 남편이 이런 결정에 반발을 하지만 영화를 찍기 위한 일이라고 둘러대고 말았습니다. 데번포트와 향한 장소는 딸 캐스가 자살한 장소와도 연관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앨리스와 데번포트 사이에도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특히 캐스의 죽음이 화제가 됩니다. 1부의 핵심인물은 미시즈 그레이였다면 2부의 학샘인물은 돈 데본포트입니다.


미시즈 그레이와의 사랑이야기는 50년도 넘은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작가는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해가는데 사실 기억이란 것이 그리 정확한 것이 아니라서인지 읽어도 쉽게 몰입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데본포트와 엮인 이야기는 비교적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는 마르셀 푸르스트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황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 놓아서 돌아가는 사정이 손바닥 보듯 분명한 느낌이었습니다.


읽어가다 보면 재치가 넘치는 구절이 적지 않습니다. 그 첫 번째로는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아니, 나는 걷는다, 고 말하고 거기서 끝내는 게 좋겠다. 그것은 캐스가 죽은 뒤 애도하던 처음 몇 달 동안 몸에 붙은 오랜 습관이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는 것의 리듬과 목적 없음에는 위로가 되는 뭔가가 있다.(126)” “이제 나와 은막, 나도 당신이 이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하리란 걸 안다. 물론 이제는 은막이 아니라 야하게 색을 입히는데 이건 개악에 불과하다.(134)” “악수를 하면 늘 그 전율, 그 근거 없는 끈끈한 친밀감, 뭔가가 뿜어져 나왔다는 그 끔찍한 느낌, 거기에 더해 정확히 언제 가엾게 움츠러던 손을 풀고 거두어들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찾아온다.(141)” “내가 평생 사랑했던 아우라 넘치는 모든 여자는, 지금 나는 사랑했다는 말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나에게 자신의 자국을 남겼다.(147)” “전면의 타원형 유리 패널 너머로 열심히 일하는 내부 장치가 보이는 커다란 괘종시켸가 구석에 보초처럼 꼿꼿하게 서서 깊은 숙고에 들어간 듯 똑딱거렸다. 똑 하고 딱 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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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작가들 -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음주열전
그렉 클라크.몬티 보챔프 지음, 이재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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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요즈음에는 술을 마실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만, 젊어서는 술을 좋아하던 적도 있었고, 술과 엮인 작가들의 사연을 소개할 것 같아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영감을 붙들어야 하는 작가들에게 술이란 중요한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음주열전이라는 부제가 달린 듯합니다.


공저자인 그렉 클라크는 이 책은 몬티 보챔프 덕에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술작가예술가에 대한 역사를 삽화를 곁들여 함께 선보이자고 내게 제안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술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읽은 기억은 있습니다만, 저명한 작가들과 술을 엮은 책은 처음이지 싶습니다.


이 책은 와인, 맥주, 위스키, , 보드카, 압생트, 메스칼데킬라, 럼 등 서구에서 보편적인 8종의 알코올 음료의 역사는 물론 이 종류의 알코올 음료와 특히 연을 맺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았습니다. 제 경우는 주로 소주를 마십니다만 이 책에서 다룬 8종의 술 가운데 압생트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맛을 볼 기회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와인은 종류도 많고 즐기는 방법도 많아서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선뜻 좋아하기 어려운 술입니다. 맥주 역시 종류가 다양하고 최근에는 외국의 다양한 맥주를 수입하고 있지만, 이미 국산 맥주에 고정된 탓인지 다양한 맥주를 마실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술들은 이러저런 이유로 쉽게 마실 기회가 없어서 깊이를 잘 모르는 편입니다.


<알코올과 작가들>에서는 8종의 술의 역사를 잘 요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와인의 경우 특히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에서 언급한 내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꼽은 대목은 <헨리8>14장에 나오는 좋은 일행, 좋은 와인, 좋은 환대가 좋은 사람을 만들지.”입니다. 맥주도 만만치가 않아서 찰스 디킨스는 그의 작품 속에 런던의 선술집에 대하여 언급을 했고, 그들 선술집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건너뛰어서 보드카는 2019년에 발트연안국을 여행하면서 어디에선가 좋은 보드카를 사와서 집에서 마셔보았고, 럼은 대학에 다닐 무렵에 나왔던 캪틴Q를 마셔본 적이 있었고, 제대로 된 럼은 쿠바를 여행하면서 아바나의 양조장에서 시음해본 적이 있습니다. 데킬라는 어느 해던가 미국의 산 안토니오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을 때 지인과 마르가리타라는 칵테일을 마셔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압생트는 프랑스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포도주를 우선적으로 마시게 되면서 맛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압생트는 그 유독성이 문제가 되면서 1910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더욱이 마셔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이나 미술 등의 영역에서 많이 회자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이어져왔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마셔볼 생각입니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 가운데는 물론 읽어본 책도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도 많고,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데킬라의 경우는 현재 작업 중인 <양기화의 BOOK소리-세계여행>편에 담을 책을 고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맬컴 라우리의 <화산 아래서>로 바꿀 생각입니다. 더하여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을 조금 언급하게 될 것 같습니다.


럼은 쿠바의 아바나와 함께 다룰 <노인과 바다>에서 다루면서 <알코올과 작가들>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가들의 재치가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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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치유의 도서관 ‘루차 리브로’ 사서가 건네는 돌봄과 회복의 이야기
아오키 미아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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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얻은 소감을 적는 방법도 정말 다양하다는 생을 하게 만든 책입니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는 일본 나라현 산촌에 있는, 70년 된 고택에 자리 잡은 인문계 사설 도서관 루차 리브로(LUCHA LIBRO)‘의 사설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서관의 이름 루차 리브로라는 이름에 담은 의미를 따로 설명해두지는 않았습니다만, 단어적인 의미만을 보면 책에 대해 고심하다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저의 과거에는 언제나 삶의 어려움이 자리해 있습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을 살아내기 위해 책을 끼고 지내왔다는 대목에서 유추해낸 것입니다.


바닷가 도시에 있는 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던 화자는 복합골절로 적지 않은 기간 병원 신세를 졌고, 정신과 병동에도 입원한 바가 있습니다.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신적 긴장감으로 생긴 정신질환이었습니다. 결국 대학 도서관의 사서직을 버리고 나라현의 산속 마을 히가시요시노무라에 있는 고택을 사서 사설 도서관을 꾸민 것입니다.

도서관에서는 독서모임도 운영하고, 도서관에 대하여 그리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누리망 통신을 내보내기도 하기 때문에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는 듯합니다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다른 점이 많은 도서관이기에 이런 책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문과 소제목의 이름을 보면 화자가 산촌에 루차 리브로를 개설한 이유를 알듯합니다.


화자는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제가 읽어온 책과 그 독서를 둘러싼 기억을 펼쳐놓을 것입니다. 그 궤적은 사막을 걷던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하여 물을 마시고 살아남은 지점을 표시한 선과 점 같아서, 하늘을 나는 새가 보면 땅을 기어가는 별자리처럼 보일디조 모릅니다. 이 별자리가 나중에 오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 물이 샘솟는 장소를 표시해주기 바랍니다.(8)” 그러니까 루차 리브로는 치유의 공간인 셈입니다.


도서관 안팎의 분위기,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도서관이 있는 산속 마을 히가시요시노무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책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책읽는 모임에서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독서모임의 이름도 살아가기 위한 판타지 모임입니다.


책의 앞부분에는 루차 리브로 안팎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실었는데 나무숲이 감싸고 있는 고택의 모습에서는 도서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나 집 안을 보면 도서관이 틀림이 없습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도서관 안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숲속에서, 개울가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치유의 책읽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의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양한 책들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아쉬운 점은 일본 작가 중심이고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책도 적지 않은 것 같아서 찾아 읽고 작가가 책에서 논의한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 그래도 원서에서도 포함되었는지 아니면 우리말 번역본에만 있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말미에 이 책에서 인용된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으로 절판되지 않은 책의 목록를 실어놓은 것은 좋은 의도였다는 생각입니다. 절판된 책도 도서관에서 찾아 읽을 수 있으니 목록에 포함되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가운데 읽어보면 좋을 듯한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을 꼽아보았더니 12군의 책을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책을 읽은 뒤에 바로 읽어본 책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라는 만화책이었습니다. 영국 작가 필리파 피어스의 작품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인용한 이유는 히로시마 교육위원회에서 초등학생 대상의 평화 학습교재에 실려 있던 <맨발의 겐>의 내용을 삭제한 것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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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보는 판타지 요재지이 한권으로 보는 시리즈 (큰방) 4
포송령 지음, 여설화 옮김 / 큰방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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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을 앞두고 중국 관련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의 책읽기였습니다. 이 책은 청나라 초의 극작가이며 소설가로 알려진 포송령(蒲松齡)이 쓴 문어체의 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를 평역한 책이라고 합니다. <요재지이>는 중국의 괴담이나 괴기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나 그런 작품을 쓰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72세에 과거 1차 시험이 동자시에 합격하고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창작에 전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요재이지>는 그가 75세에 죽은 51년 뒤에 간행되었다고 합니다.


<요재이지>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은 신선을 비롯하여 여우나 유령, 귀신, 도깨비, 그리고 이상한 인간들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제목도 <기묘한 이야기>가 된 모양입니다. 이야기들른 한결같이 작가가 민간에서 채취한 이야기들입니다. 사람들이 특히 흥미를 가지는 편인 요괴, 정령, 동물과 인간이 나눈 사랑이야기가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옮긴이 역시 <요재지이>의 특별한 위치를 고려한 까닭인지 환상문학을 지망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비법을 안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해제 다음에 곧바로 판타지 베스트셀러의 원칙 열 가지를 제시하고, 그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주요 작품의 말미에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나 괴물, 요정 등에 대하여 산해경 등을 인욘한 <판타지 Note>를 덧붙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사람을 알아보는 기술입니다. 이는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기담이나 괴담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36꼭지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황당무계하고, 혹세무민하는 것들이라서 가볍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육판관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수명에 관한 대목은 새겨둘만 했습니다. 육판관과 가깝게 지내던 주자명에게 여명이 닷새 남았다고 전하자 주자명은 판관의 힘으로 늘릴 수 없겠느냐고 묻는다. 육판관의 대답은 어려운 소리야. 생과 사는 천명이기 때문에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네. 이봐, 살아있는 건 즐겁고 죽는 것은 슬픈 거라고 생각을 말게.(97라고 달랩니다.


천자문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도 알아두면 쓸모가 있을만한 이야기입니다. 천자문은 위(, 220-265)나라의 종요(鍾繇)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조조, 유비, 손권이 나오는 삼국지에서 조조가 한나라의 헌제를 모셔다가 위나라를 열었는데, 조조의 아들 조승이 헌제로부터 양위를 받아 황제에 올라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많은 무리들이 헌제를 다시 옹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종요 역시 죽음을 각오하고 문제에게 헌제를 다시 모시고 강요하지 말고 진정을 양위를 받으라 청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노한 문제가 종요을 하옥시켰지만,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 섣불리 참하지 못하다가 계교를 꾸몄다고 합니다. 즉 하루의 말미를 주고 사언체 250구의 글을 짓되 중복되는 글자가 하나도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짓자니 명을 구걸하는 느낌이 들어 고민하던 종요는 결국 글을 지었다고 합니다.


천지와 우주로 움직일 수 없는 이치는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도와 법칙을 비롯하여 임금에 대한 충의, 어버이에 대한 효성, 그리고 인간사회에 대한 의리와 도덕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글짓기에 사력을 다한 까닭에 종요의 검은 머리가 하룻밤 사이에 하얗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종요를 방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두려워질 법도 합니다만, 개명한 요즘에는 이런 이야기는 그저 읽고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거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화젯거리로 써먹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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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루쉰문고 5
루쉰 지음, 한병곤 옮김 / 그린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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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트래블의 중국문학기행을 떠나기 전에 구해서 여행 중에 읽었습니다. 1924년부터 1926년 사이에 쓴 산문시 26편과 1927년에 쓴 제목에 붙여라는 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26편의 시 가운데 앞부분의 13편은 여사대 사건 전에, 나머지 10편은 여사대 사건 이후에 썼다고 합니다.


루쉰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의 정체성을 아직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서 중국문학기행의 기행문을 써가는데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루쉰은 1881년에 태어나서 1936년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기의 중국은 청나라가 몰락해가고 외세가 몰려드는 가운데 군벌들의 세력 다툼, 신해혁명, 국민당과 공산당의 충돌 등이 이어지던 격변기였습니다. 1937년 항일이라는 공통적 가치를 내세운 국공합작을 시작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게 1949년이니 루쉰은 국공합작도 보지 못한 셈입니다.


루숸이 중국근현대문학의 아버지로 꼽히게 된데는 마오쩌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1930 년 중국의 좌파 작가 연맹이 창설될 당시 루쉰 역시 힘을 보탰던데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오쩌뚱이 중국 공산당을 주도 하던 시절에는 기승전 마오쩌뚱이었으니 그럴만도 했겠습니다. 루쉰의 정체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루쉰이 문화혁명 이후까지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들풀>을 우리말로 옮긴 한병관교수는 들풀의 해제를 적지 못하고 첸리췬의 해제를 인용했습니다. 그만큼 <들풀>이 난해함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루쉰의 소설이나 수필도 어려운데 산문시를 읽고서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일 같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얻은 느낌을 첸리췬의 해설과 엮어 나름대로의 생각을 몇자 저어보려 합니다.


첸리췬 역시 26편의 산문시 전체를 다루지 못하였는데, 그림자의 고별을 이야기하면서 루쉰의 강력한 주체 정신과 의지가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몇 작품을 읽어오면서 루쉰에 대해 느꼈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나는 차라리 무지에서 방황하려 하오'라는 댕속을 존재에 대한 거부라고 해석한 점에 대하여 다른 관점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번역된 시를 읽을 때는 무지(無知)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주석을 보니 무지(無地)였습니다. 땅은 실체가 있는 것이니 시인이 무지(無地)를 헤맨다고 한 것은 공()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한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작가 시인이 불교의 개념을 많이 다루어 온 점을 고려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늙은이, 여자아이, 그리고 길손이 등장하여 앞길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갈건지 계속 갈건지를 이야기하는데, 첸리췬은 루쉰 자신의 생명철학을 총괄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길손이 앞을 향하여 나아가기로 한 것은 루쉰 생명의 마지노선 혹은 절대 명령으로 생명의 몸부림이라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거부한, 철저한 '()''()'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선택하고 견지한 것"이라면서 공()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무()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는 실체가 없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공()과는 개념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사라는 시에서는 편을 가르는 군벌의 어느 한 편에 가담한 지식인을 꼬집는 느낌인데, 그 결말이 무물(無物)의 진 속에 같혀 늙고 죽었다면서 결국은 무물(無物)의 물()이 승자였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국공 어느 편에 기댄 지식인도 결국은 무너질 것임을 암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은 뒤라는 시의 주석을 보면 쑨원이 죽은 뒤에 일부 언론이 그의 과오를 지적하자 쑨원을 전사(戰士)에 언론을 파리에 비유한 전사와 파리라는 글을 쓰기도 했답니다. 쑨원은 중화민국의 건국자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기피인물이 아닌 점을 고려하였을 때 루쉰의 철학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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