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미학 기행 - 지중해의 태양에 시간을 맞추다
김진영 글.사진 / 이담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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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를 졸업하고 문화재를 전공하신 김진영님의 <그리스 미학기행>을 손에 넣고서도 선뜻 읽기 시작하지 못한 것은 책갈피에 적힌 “시작은 니체의 책 한 권 이었다”는 저자의 집필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 바로 그 책이었는데, 서구 예술의 뿌리가 바로 ‘그리스 비극’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자신있게 설파한 니체의 해석은 청춘의 열망을 들끓게 만들어 “그리로 가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가의 그리스 여행은 여러 차례 이어졌고, 그는 그곳에서 미노아, 미케네, 고전 시기, 비잔틴의 미술과 신화, 철학, 문학, 종교 등에서 예술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지 않고서는 저자를 따라나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고명섭기자님의 <니체극장;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70004>을 읽으면서 <비극의 탄생>을 먼저 읽어야 할 작품으로 점찍어두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고명섭기자가 인용한 박찬국님의 <니체극장> 해제를 다시 인용해보면, “<비극의 탄생>은 그리스 비극의 기원과 몰락에 대한 고전문헌학적 탐구를 넘어서, 음악과 비극이란 무엇이고,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예술철학적 탐구이고, 세계의 궁극적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이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탐구이고, 논리적인 지성에 입각한 학문을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로 내세우면서 비극적인 음악과 신화를 비하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의 서양 형이상학과 이러한 형이상학에 입각한 서양 역사와의 대결이기도 하다.(니체극장, 121쪽)”

 

<비극의 탄생>을 일독하면서 떠오른 느낌은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해부하고 그리스 비극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역할을 정리하고, 이어서 독일 음악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악정신으로부터 나온 비극의 탄생’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 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곽복록 옮김, 비극의 탄생 22쪽)” 그리스 예술의 하드웨어적인 면이 아폴론적이라고 하면 소프트웨어적인 면은 디오니소스적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스 비극에서 대사로 구성되는 부분을 아폴론적인 장치라고 한다면 디오니소스적인 장치는 바로 합창단을 통해서 구현되는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니체가 “그리스 비극의 아폴론적 대화부분에서 표현되는 것은 모두 단순하고 투명하며 아름답게 보인다.(곽복록 옮김, 비극의 탄생 58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그리스 비극이 비극다운 것은 바로 합창단의 음악을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사실 대학시절 활동했던 연극동아리에서 소포클레스 원작을 장 아누이가 각색한 <안티고네> 공연에 스태프로 참여했습니다. 장 아누이의 희곡에서는 합창단을 대신하여 ‘코러스’라는 등장인물이 무대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소포클레스가 담아내려했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비극의 탄생>을 읽고 난 다음에야 제대로 저자와 함께 <그리스 미학기행>에 나섰습니다. 여행이라 하면 ‘관광’ 혹은 ‘유람’이라고 번역하는 ‘sightseeing’에 머물지 않고, 그 장소에 얽혀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여행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그곳에 가서 꼭 보아야 할 것들을 빠트리지 않도록 준비를 많이 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지에서의 느낌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큰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진영님과 함께 하는 <그리tm 미학기행>은 좋은 여행의 참고서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와 함께 하는 그리스 여행길은 아름다웠던 그리스 고전미술, 영웅의 땅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종교, 니코스 카잔차키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문학을 주제로 한 4부로 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엄청난 양의 사진은 구구절절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구석구석까지 읽어낼 수 있어 좋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는 현재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코트라 현지 주재원은 그리스는 비효율적인 정부운용, 심각한 관료주의, 부정부패 등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 때문에 주변 채권국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채권국의 요구에 따라 공공부문 인력감축과 연금 등 복지지출 삭감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회불안이 심화되어 대규모 파업 등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코트라 지음, 2013 세계, 기회와 도전, 175~176쪽;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12239) 당장 그리스로 떠나기가 부답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과 부딪히게 됩니다. 따라서 그곳 사람들을 이해하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그리스 남자들의 특징을 소개하는 친절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리스 남자들은 능글맞으면서도 퉁명스러운데 호메로스의 서사사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영악한 오디세우스(Willy Odysseus)야 말로 그리스 남자를 설명하는데 가장 명쾌한 답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속임수를 써서라도 고난을 벗어나려는 영악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행지에서 묘지를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웰링턴 국립묘지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과 죽은 자를 경배하고 수호하는 근엄한 위병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 사람들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는 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듯했습니다. 갑자기 묘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자가 아테네에서 관광객이 별로 찾지 않은 케라메이코스로 독자를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죽은 자의 부활을 기원하는 종교행렬이 바로 케라메이코스에 있는 ‘히에라’문에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죽은 자의 땅 케라메이코스는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59쪽)”고 적었습니다. 우리를 케라메이코스로 안내한 이유를 알듯 말듯 사뭇 철학적이기도 합니다.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고집스럽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거나 걷게 됩니다. 지난해 보스턴에 갔을 적에 저도 시내에 흩어져 있는 볼거리를 걸어서 돌아보느라 무리한 탓인지 무릎에 부상을 입고 몇 개월째 고생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굳이 걷기를 선택하는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몸으로 생각하는 경험은 훨씬 직관적이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 몸으로 생각하는 경험은 걸으면 닿는 길의 감촉, 목덜미를 감싸게 하는 바람, 등을 데우는 태양까지도 기억한다.(150쪽)” 역시 철학하시는 분은 다르다 싶습니다.

 

앞서 인용한 그리스사람들의 성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 하겠습니다. 저 역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고, 혹시 그리스를 찾게 되는 경우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15분 전에 떠난 버스를 타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 뒤늦게 버스를 타려는 사람을 위하여 15분 이상 기다리는 차에 앉아 있었던 적은요? 메이데이날 올림피아로 가는 길에 막차를 놓친 작가에게 터미널의 티켓창구의 남자가 베풀어준 친절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떠난 버스의 운전사와 통화를 해서 기다리도록 한 다음에 택시를 타고서 버스를 따라가 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올라탔을 때 외국 여행자들은 수군거리는 듯했지만, 정작 그리스사람들은 그저 무심할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약간은 비아냥대는 투로 ‘적당히 무질서’한 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오히려 ‘모호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우리는 흔히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중적 생각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의 이러한 모호함은 남이 해도 그럴 수 있고 그러니 내가 해도 남들이 납득할 것이라 생각하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식 절충주의가 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내면의 목소리 즉, ‘다이몬(daimōn)의 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어에서 다이몬(δαμων)은 영혼이나 작은 정령으로 ‘초자연적 존재’를 의미하는데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수호령을 말합니다. 인간에게 갑작스럽게 찾아드는 불가사의한 운명적 사건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든 나쁜 결과를 가져오든 모두 다이몬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저자는 메테오라에 있는 그리스정교의 수도원으로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이들 수도원은 그리스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는 동안 그리스의 문화와 정신을 지켜온 보물창고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수도원들은 아슬아슬하게 솟은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있어 가느다란 밧줄에 의지하여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폐쇄적인 곳입니다.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습니다만, 달밤에 행글라이더로 바위 위에 있는 수도원으로 잠입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장소에서는 고독이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수도자들의 수행과 그 공간이 여전히 우리를 들뜨게 하는 것은 바로 고난과 고독 속에서 빛나는 정갈한 감동(288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와 함께 하는 그리스 미학여행은 어느 덧 마지막 기착지 크레타섬으로 가는 여객선이 떠나는 피레우스의 선착장에 이르게 됩니다. “항구도시 피레우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시작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http://blog.joinsmsn.com/yang412/12775771>에 나오는 바로 그곳입니다. 저자를 따라서 들어간 크레타 섬에서는 크노소스 궁전과 베네치아 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이클라리온의 부르치는 물론 묘소를 비롯한 카잔차키스의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토리니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테라섬에서는 카잔차키스가 “언덕 위로 올라 사위를 내려다보았다. 화강암과 단단한 석회암의 풍경이 펼쳐졌다. 짙은 콩나무, 올리브나무, 무화과와 포도넝쿨도 시야에 들어왔다. 어두운 계곡으로는 오렌지나무 숲, 레몬나무와 모과나무가 보였으며, 해변 가까이로는 채소밭도 보였다. 바다가 펼쳐지는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듯 한 파도가 크레타 섬의 해안을 물어뜯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모래섬들은 막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에 장밋빛으로 반짝거렸다.(그리스인 조르바, 49쪽)”고 묘사한 크레타섬의 풍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는 책읽기를 통하여 저자의 마음에 남은 울림을 얼마나 전해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에필로그에 그리스 여행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남기고 있습니다. 앞서 ‘케라메이코스의 오래된 묘비가 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근원적 묵상’만을 인용하였습니다만, 저자는 여행지마다 느낀 점을 한 줄로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종합하고 있습니다. “니체가 예술 탄생의 배경으로 지목한 그리스인의 이중성은 마치 기쁨과 슬픔 같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것이었다. 다만 그들의 일상에서 날것처럼 살아 있다는 점이 달랐다.(382쪽)”

 

니체가 <비극의 탄생>을 통하여 갈라놓은 것처럼 그리스인들은 아폴론적인 면과 디오니소스적인 면을 같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둘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모호함이 있는데, 이런 모호함은 예측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왼쪽과 오른쪽이 다른 표정인 야누스가 서로 반대쪽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비유하여 이러한 이중성의 파괴력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치 식물의 줄기나 잎이 태양을 향하는 향일성(向日性)을 보이는 것처럼 그리스인들의 이중성은 그 경계가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이상으로 연결되어 있어 빛나는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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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결정은 왜 세계에서 가장 빠른가 - 일본의 7대 기업을 따돌린 삼성전자의 성공 비결
요시카와 료조 지음, 엄예선 옮김 / 중앙경제평론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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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주자가 선두그룹을 쫓아가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미투(me too) 전략', 즉 따라하기가 있습니다. 선두주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따르다 보면 선두 아래까지 쫓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화 과정이 늦었던 우리나라의 대부분 기업들이 과거에 채택했던 전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따라하기의 한계는 절대로 선두를 앞지를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면서 전자업계에서는 글로벌 선두기업이기도 합니다. 전자관련업과는 관계가 없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언제 글로벌 선두에 올라서게 되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지 못합니다만 분명 전환점이 있었을 것이며, 삼성전자를 글로벌 선두로 치고나갈 수 있는 동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성의 결정은 왜 세계에서 제일 빠른가>는 바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선두로 치고나갈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일본인의 시각에서 말입니다. 이 책을 쓴 요시자와 료조씨는 삼성전자에서 CAD/CAM 시스템구축을 담당하기 위하여 이건희회장이 직접 나서 스카우트한 분으로 삼성전자의 상무까지 지냈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생소한 개념입니다만, CAD는 컴퓨터를 통해 설계 작업을 하는 것이고, CAM은 컴퓨터로 제조하는 것을 말하는데, CAD/CAM은 이 두 가지를 통합한 시스템의 총칭이라고 합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삼성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기업의 제품을 모방하는 전략을 취했는데, 이 방식으로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삼성그룹의 이건희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하여 삼성그룹의 체질을 바꾸는 대개혁에 착수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오늘날 글로벌 전자업계에서 삼성전자의 현주소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글로벌 선두를 달리던 일본의 전자업계들이 자기들끼리의 경쟁이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는 동안 삼성전자가 그들을 추월하게 된 강력한 동인(動因)을 ‘의사결정의 속도’로 보았습니다. 일본기업의 의사결정과정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기본적으로 신중함을 바탕으로 실패할 경우의 대책까지도 꼼꼼히 생각하는 경향이지만, 한국기업들은 일단 필요하다면 썩은 다리라도 건너고 건넌 뒤에는 그 다리를 부수는 적극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배수의 진을 치고 시작하는 경쟁은 혼신을 다할 수밖에 없어 없던 전력도 보태지기 마련이겠지요. 바로 글로벌 경쟁이 리그전에서 토너먼트전으로 전환하고 있는 시기에는 한판 한판이 그야말로 막판이라는 생각으로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이다.

 

저자는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기업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빠른 의사결정’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시대라는 점을 인식하고, 의사결정속도와 정보관리로 비즈니스를 제압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삼성이 바로 이런 시류에 정확하게 올라탈 수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건희회장의 모습에서 위기 시의 리더와 조직의 역할이 무엇인지 읽어내고 있습니다. 이어서 글로벌화 시대의 ‘제조업’의 현주소를 읽고 마지막으로 일본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조언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마무리부분에 정리하고 있는 일본인의 ‘세 가지 오만’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경영자의 오만’, ‘기술자의 오맘’ 그리고 ‘소비자의 오만’입니다. 경영자가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오만함과 기술자의 경직된 사고 때문에 일본의 기술이 답보를 면치 못하게 되었고, 신사에 몰입하는 일본 소비자의 경향이 일본기업이 국내용에 머물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 나라의 경제수준을 몇 개 기업의 활동으로 재단할 수만은 없겠습니다만, 우리기업의 변화된 모습과 위상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성원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족 같습니다만, 최근 출판계의 변화가 느껴지는 책이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내용을 콤팩트하게 요약하여 볼륨을 줄여 읽는데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곧 저의 책을 개정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 반영하도록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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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3 (보급판) - 두 개의 탑 1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외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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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루어 두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연결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전편에서 보로미르를 통하여 잠시 드러난 절대반지의 사악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성품에 숨어 있는 탐욕의 한 자락을 살짝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탐욕은 화를 부르는 법, 보로미르가 절대반지를 탐하는 동안 반지원정대는 오르크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흩어지게 되고, 오르크를 맞아 용감하게 싸우던 보로미르는 장렬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야기는 흩어진 반지원정대를 나누어 뒤쫓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프로도와 샘을 잃어버린 나머지 일행 가운데 호빗족 피핀과 메리는 오르크에 사로잡혀 어디론가 끌려가고 나머지 일행 아라고른, 레골라스, 그리고 김리는 호빗들을 구하기 위하여 오르크들의 뒤를 쫓지만, 흔적을 따라가기도 버겁기만 합니다.

 

반지의 제왕은 악의 세력이 새로운 족속들을 포섭하여 세력을 넓혀가는 가운데 이들에 합류하지 않고 대항하는 족속들 역시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오르크들을 움직이는 자는 아이센가드를 장악하고 있는 사루만입니다. 사루만은 호빗족이 절대반지를 가지고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오르크족을 파견하여 반지원정대를 습격한 것인데, 오르크들은 정작 프로도와 샘은 놓치고 피핀과 메리를 납치하여 로한의 땅을 지나 아이센가드로 돌아가는 도중에 로한의 기사들의 공격을 받고 전멸하게 됩니다.

 

납치되어 가면서도 틈을 엿보던 피핀과 메리는 오르크족들과 로한의 기사들이 싸우는 틈을 타서 도망쳐 만난 숲에서 엔트족을 만나게 됩니다. 엔트족은 등장인물들 가운데 고대의 종족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나무와 교감하는 엔트족들은 숲을 파괴한 오르크족들에 원한이 남아있고, 차제에 아이센가드로 진격하여 사루만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도 공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호빗들이 엔트족 나무수염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아, 이게 무슨 일이람! 이 텁수룩한 늙은 숲도 이 햇살에선 이렇게 달라보이는데. 지금 이 장소가 좋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122쪽)”라고 피핀이 말하는 순간 나무수염이 답합니다. “숲이 좋다는 느낌이 든다고? 좋은 일이야! 그렇게 잘 보아주니 고맙구나. 돌아서 봐. 너희들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구나. 느낌만으로도 너희들이 좋아질 것 같지만.(123쪽)”

 

한편 호빗들의 흔적을 뒤쫓던 아라고른 등은 로한의 기사들과 오르크가 맞붙은 싸움터에서 간달프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모리아동굴을 나서는 순간 악의 세력을 공격을 받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던 간달프가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간달프의 안내로 에도라스 궁성의 메두셀드 궁전을 방문하여 로한을 다스리는 셍겔의 아들이자 마크이 영주 세오덴을 알현하게 됩니다. 간달프는 사루만의 사주를 받고 잠입하여 세오덴의 총기를 흐리고 있던 뱀혓바닥의 간계를 밝혀내고 세오덴을 설득하여 아이센가드로 진격하게 됩니다. “현자는 오로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지. 갈모드의 아들 그리마! 너는 한 마리 분별없는 벌레가 되었구나. 이제 조용히 입을 다물고 갈라진 혀는 이빨 뒤에 감춰라!(231쪽)”

 

헬름협곡에 있는 나팔산성에서 오르크들의 강렬한 저항을 만나 고전하던 일행은 응원군이 적시에 나타나는 바람에 전세를 역전시키고 아이센가드로 진격을 하게 되는데, 아이센가드는 이미 엔트들의 공격을 받아 초토화되었고 사루만은 이미 고립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일행들은 호빗들과 재회를 하게 됩니다.

 

한편 사루만은 세오덴왕을 꼬득여 화해를 청하지만, 세오덴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합니다. “나느 평화를 누릴 것이오. 당신과 당신의 모든 협잡. 그리고 당신이 우릴 넘겨 버리려는 저 암흑의 지배자와의 협잡이 괴멸될 때, 우리는 평화를 누릴 것이오. 사루만. 당신은 거짓말쟁이고, 인간의 마음을 타락시키는 자요. 그리고 당신이 내미는 손은 내겐 단지 모르도르의 마수로 보일 뿐이오. 잔인하고 냉혹한 마수!(371쪽)” 불의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승전하고 다시 로한으로 돌아가는 일행은 피핀이 엉뚱한 짓을 하는 바람에 전리품으로 얻은 오르상트의 팔란티르가 사루만과 모르도르를 연결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헬름협곡에서 모르도르의 사자 나즈굴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4부로 연결됩니다.

 

3부는 악의 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맞붙어 싸우기 시작합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지는 종족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흥미가 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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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세계, 기회와 도전 - KOTRA 세계 전망
KOTRA(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 지음 / 알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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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새해 첫날입니다. 금년 한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제가 새해 첫날을 정리하는 리뷰로 고른 책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내놓은 <2013 세계, 기회와 도전>입니다. 책을 받으면서 코트라가 지난 해 내놓았던 <2012 한국을 뒤집을 14가지 트랜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75620>가 기억납니다.

 

코트라는 수출진흥을 목적으로 1962년 설립한 정부투자기관으로 수출입거래알선, 해외시장개척, 국내외 각종 전시회·박람회 참가, 북방시장개척 등의 업무를 담당해오고 있습니다. 1990년대가 시작하면서 대형기업 중심의 수출지원 전략을 수정하여 중소기업이 담당할 수출유망상품 발굴을 지원하는 등 사업방향을 전환하고 있다고 합니다.

 

<2012 한국을 뒤집을 14가지 트렌드>는 코트라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전략과 잘 부합하는 기획으로 보입니다. 즉 급변하는 세계의 트렌드를 국내에 소개하기 위하여 전 세계 76개국 111개 도시에 주재한 해외무역관을 총동원해서 2년간에 걸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를 담아낸 것입니다.

 

그 사이 코트라는 주재관을 확대하여 전 세계 81개국 119개 도시에 주재원을 내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내놓은 <2013 세계, 기회와 도전>은 글로벌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위기(危機)를 “어떤 일이 그 진행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악화된 상황, 또는 파국을 맞을 만큼 위험한 고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위기(危機)라는 단어를 풀어서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공존하는 시기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위기를 통하여 기회를 붙잡으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맨땅에서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구멍이 있다.’는 옛말처럼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야 그 틈에 숨어있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글로벌 세계의 비즈니스가 돌아가는 사정을 정리한 것이 바로 <2013 세계, 기회와 도전>입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2013년 세계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서는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를 막 벗어나는 듯한 상황에서 유로존의 경제위기가 이어지면서 휘청거리고 있는 글로벌 경제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2부 2013년 그 나라, 숨어 있는 이슈들’은 각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중국, 일본, 아시아와 대양주, 북미, 중남미, 유럽, 중동 아프리카, 독립국가연합 등 특별히 주목할 나라는 개별적으로 나머지 국가들은 구역별로 구분하여 각자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경제상황을 반영하여 투자를 하고 계신분들께서 주목할 부분일 것 같습니다. ‘3부 2013년 주목할 만한 기회와 글로벌 트렌드’는 지난해 다루었던 형식으로 각국에서 뜨고 있거나 주목받을 만한 트렌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소중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2부에서 다루고 있는 각국이 당면하고 있는 이슈는 경제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제 경우는 현재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하여 북미지역의 현안으로 다루고 있는 미국의 건강보험개혁에 관한 내용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올 하반기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정권이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되는 건강보험체계의 개혁은 우리도 참고할 점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2014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인도 정계의 동향분석에서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인도의 정치문화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실질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구상하고 상정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민심을 사로잡아 지지도를 높일 방법만 찾고 있는 것(107쪽)”이라는 분석은 얼마전 끝난 우리나라의 대선과정에서도 볼 수 있었던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정부를 구성하면서 대선과정에서 내걸었던 공약 가운데 실행효과가 분명치 않거나 국민부담이 큰 것들은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코트라에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신사업을 구상하는 기업, 개발한 기존 상품으로 해외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중소기업, 전 세계인을 열광시킨 비즈니스를 국내로 들여오고자 하는 사업가, 미래 국가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정부 당국자, 특정 국가로 출장, 유학 혹은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이 책에서 분명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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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의 위기
멜빈 코너 지음, 소의영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의 평균기대여명이 150세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의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게 된 것에 의학의 발전이 크게 기여해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현대의학의 빛나는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전염병과 각종 암질환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어 현대의학에 한계에 이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년전에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추적한 마이클 무어감독의 영화 <식코>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세계적인 의학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막상 보건의료제도는 체계적이지 못해 생긴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로부터 출발한 의학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문화적 제도의 틀 안에서 빠르게 발전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그 범위가 광범위해지고 파장도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대의학의 위기는 의학이라는 학문의 위기라고 하기보다는 과거와는 달라진 의학을 둘러싸고 있는 보건환경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사회구성원의 건강을 담보하는 의료제도의 지속발전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학이 발전하는 것처럼 사회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사회환경에 걸맞게 보건의료의 역할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의학과 의료의 위기에 대한 명쾌한 진단과 처방’이라고 요약하고 있는 멜빈 코너교수의 <현대의학의 위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원저가 1993년에 처음 독자를 만났고 우리나라에 번역소개된 것은 2001년입니다. 따라서 시대적 배경이라거나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저자가 다루고 있는 환자-의사관계, 현대의학의 발전의 근간이 된 과학적 방법론의 딜레마, 약물 유전자치료 그리고 수술 등을 적용하는데 있어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 정신질환자와 에이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그리고 건강한 노후생활과 품위있게 죽음에 이르는 방법 등의 문제는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목적이 ‘보건의료 정책에 관한 의제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의사와 보건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좋든 나쁘든 간에 다양한 의료정책을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미국, 유럽, 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서의 의료제도를 인용하여 문제해결방안을 고민하도록 하고 있는 점도 돋보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제도의 현황이 최근에서야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탓인지 우리나라의 보건의료환경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읽을 수 없는 점은 아쉽다 하겠습니다.

 

요즈음 환자들이 변했다는 생각하는 의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서적이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넘쳐나고 있는 의학정보로 무장하게 된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병에 대응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데, 어쩌면 ‘당신의 의사에게 화를 내라’고 충고하는 버니 시겔교수와 같은 의사들의 영향도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으로 무장하고, 사실을 열심히 알아내며, 포기를 거부하고, 의사에게 침묵의 규율을 깨도록 강요하고, 환자들에게 자신의 병에 대하여 되도록 많이 알고 있으라고 추종자들을 세뇌시켰습니다(48쪽).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자신의 질병에 대한 환자의 인식이 왜곡되는 경우 오히려 치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영국의 줄리안 튜터하트 박사가 제시한 ‘환자를 동료처럼’이라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 주목받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사실을 의논하고 치료와 예방책을 결정하는 상호협력관계입니다. 앞서 인용한 바니 시겔교수가 추천하는 환자-의사 관계와는 분명 차별점이 있다 하겠습니다. 근래 ‘환자를 가족처럼’ 치료하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의사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 관계에서는 의사의 지나친 감정이입이 객관적 판단을 왜곡할 위험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현대의학은 분명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면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옛날 의사들은 환자의 병세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뿐 온천이나 공기가 맑은 곳에서 휴양하는 것 말고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에테르를 사용하여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고, 이어서 발견한 질병세균설을 토대로 한 무균소독법, 이어서 20세기 들어서면서 방사선 진단법, 생화학검사법 등이 개발되면서 질병의 진단이 보다 정확해지게 되었고, 약물에 의한 화학요법이 가능해지면서 치료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환자의 진단과 치료가 과학적 방법론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게 되면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장에서 긴밀하던 환자와 의사의 교감이 점차로 비중을 잃어가게 되었으며 급성 질환 혹은 중증 질환에 의료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의 진료가) 점점 냉혹해지고 비인간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 의료는 병원에서보다는 지역 사회로, 가능하다면 가정으로까지 전달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107쪽)”

 

1921년에 벌써 이런 문제가 지적되었고, 1983년에 미국의 의학교육을 담당하고 유명 의과대학의 학장들은 ‘의학교육의 목표는 최적의 건강에 있지 않다’거나, ‘우리는 의사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조기 전문화와 과학을 너무 강조하는 경향을 바꾸어야 한다’거나, ‘환자와, 그 가족과, 환자의 생애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심장질환 병동의 3호실 두 번째 환자의 상태를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의학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성 질환인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진료행태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실시하고 있는 감기항생제 처방률 평가에 대한 의료계의 볼멘소리가 높았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감기상병에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 항생제내성 세균을 만들어내는 부작용을 키우는 꼴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항생제를 처방하는 의사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자들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내성 균주의 출현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1950~1960년대에는 바로 우리 일반인들이 의사들을 찾아가서, 항생제가 필요하지도 않은 바이러스성 질환인 감기 등에 항생제를 처방하도록 종용하였던 것이다.(130쪽)”

 

최근 일본의 후쿠오카의 병원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줄기세포 시술을 하여 한국과 일본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줄기세포관련 회사가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시술을 통하여 효과를 보았다고 하는 일부 환자와 가족들이 회사측을 옹호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약물 혹은 치료법은 엄정하게 관리되고 있는 사전 검증체계를 통과하여야 일반인을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의 입증절차가 까다로운 우리나라와 미국을 피하여 일본에서 일종의 임상시험을 하는 셈이라며 환자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치료제를 기다리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완벽하게 입증될 때까지 기다리느라 가능성마저도 시험해보지 못하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시술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문제라 하겠습니다.

 

저자들은 '수술의 적합성과 남용‘을 논하기 위하여 전두엽절제술의 문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전이 되었습니다만, 잭 니콜슨이 주연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전두엽절제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남들과 같지 않은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수용된 남자 주인공이 병원의 방침대로 순응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 위하여 대항하다가 전두엽절제술을 받고 나서 감정이 사라진 모습으로 등장하여 관객에게 충격을 주었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전두엽절제술은 1930년대 후반 대뇌의 전두엽과 감정을 조절하는 중추와의 연결을 절단하는 수술인데 정신질환 환자를 요술처럼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 들어 이 수술을 받은 환자의 삶이 정신적, 감정적으로 너무 심하게 손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전두엽절제술을 의료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고안되었을 당시에는 미처 고려되지 않았던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던 것입니다. 임상시험을 승인받아 조건부로 시술을 시작한 카바수술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술자와 당국 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에서도 참고할만 하겠습니다.

 

역시 제가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내용에 주목한 것입니다만, 미국의 경우 최근까지 제왕절개분만이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분만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제왕절개분만을 선호하는 경향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의료계에서는 신생아사망률이 감소하고 있는 사실을 들어 타당성을 옹호하고 있습니다만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제왕절개수술이 더 적게 시행되면서도 신생아사망률이 미국과 비슷한 정도로 감소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산모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임에도 제왕절개분만의 비율이 늘지 않고 있습니다만, 미국과 비교하면 다소 높은 편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왕절개분만이 높은 것은 외국과는 다른 이유로 수술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저자들이 알면 꼭 인용할 내용일 것입니다.

 

정신질환자의 고통을 다룬 부분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9772557>를 통하여 광인에 대한 서구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저자가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정신질환은 치료방법이 없어 정신병원에 수용하여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정신병원하면 “197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있어서 실존하는 지옥이었다. 수백명은 사슬에 묶여 있었고, 많은 환자들은 독방에 갇혀 있었다. 강압적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은 그들은 복종시키기 위하여 몸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공포와 고뇌, 줄지 않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251쪽)”라고 저자가 적고 있는 것처럼 끔찍한 환경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최근의 정신병원은 대부분 일반병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약을 먹고 있는지 돌볼 가족도 지지체계도 없었고, 그 결과 그들은 병이 재발하여 병원에 재입원하게 되었으며, 다시 안정되어 퇴원하고, 약은 더 이상 복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 ‘회전문 증후군’이 정신질환 환자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242쪽)”라는 존 맥빈 신부의 회상은 1970년대까지의 미국사회의 현상이었고,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문제를 지금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약물요법이나 정신요법 등이 발전하게 되면서 급성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해서 환자를 조기에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정신질환 치료의 최근 동향이기도합니다. 만성화된 환자들에게 안정된 치료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역시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노후생활과 품위를 갖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회에 다시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미루어 두겠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와 연관시켜 오늘날의 보건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민해보았습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우리 사회에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는, 그가 의학, 의술, 의료를 단순히 지식과 테크놀로지로 좁혀서 바라보지 않고 문화적 지평으로 인식하고 있어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는 옮긴이의 추천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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