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열정
제임스 마커스 바크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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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 같습니다만, 동아리에서 책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끔 가졌던 것 같습니다. 봉사동아리라서 특별하게 논의할 사항이 없으면 모임을 끌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같이 읽었던 책 가운데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있습니다. 해변가에서 먹이나 찾는 보통의 갈매기와는 달리 혼자서 비행술을 연마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라는 이름의 괴짜(갈매기 세계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죠) 갈매기가 결국은 승화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경구는 특히 봉사활동을 중심으로 모인 젊은 의학도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하계진료봉사활동을 마치고서 영화관에 같이 가서 본 동명의 영화는 난생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잠에 빠져드는 바람에 입장료를 손해본 영화로 기록된 바 있습니다.

 

괴짜도 내림인가 봅니다. 바로 그 리차드 바크의 아들 제임스 마커스 바크가 제안하는 독특한 자기관리비법을 담은 <공부와 열정>을 읽게 되었습니다. 열여섯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는 정규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젊은이가 스무살에는 애플에서 최연소 팀장으로 발탁된 이유를 설명한 책입니다. 맨사클럽 회원자격을 얻을 정도의 지적능력을 갖춘 저자는 막상 학교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체계에 자신을 맞출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학교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내게는 학교가 필요치 않다’는 제목의 첫 번째 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특수학교에 초대되어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배움은 중요하다. 그러나 학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게는 학교가 필요 없었다. 너희들에게도 필요 없을 것이다. 학교가 배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또 학교가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학교생활이 좋다면 학교에 남아라. (…) 나는 공부한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지는 않는다. 학교는 잠깐 다니고 졸업하면 그만이지만 배움은 그렇지 않다. 인생을 꽃피우고 싶다면 확 끌리는 분야를 찾아서 미친 듯이 파고들어라.(12쪽)” 저자를 초청한 교사는 바크가 아이들에게 위험한 메시지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후회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꼭 같지 않은 것이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어떤 사람의 삶이 모든 사람들이 따라할만하다고 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자와 같은 특별한 사람이 성공에 이르는 길도 있지만, 보통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성공에 이르는 길은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 오랫동안 교육학분야의 연구를 통하여 정착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교는 마치지 못했지만, 저자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성공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1)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고 열정을 바쳤다. 2) 내 기질과 리듬에 맞는 공부 방법을 개발했다. 3) 활자로 된 증명서보다 실력과 괜찮은 발상을 높이 사는 분야에서 일했다. 4) 내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도록 자신감을 키워 준 스승과 동료들을 만났다.(28쪽)”는 점이 성공요인이었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위하여 개발한 열한 가지의 독학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이가 저자와 같을 수 없기 때문이 그의 독학비결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의 책읽는 방법은 나름대로 참고할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빨리 읽는 게 느리게 읽는 것보다 나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전제 아래 자신이 도전한 속독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천천히 읽는 완독의 매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탐색하며 읽기와 사색하며 읽는 두 가지 독서방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색하며 읽을 때는 분당 300단어까지의 다양한 속도로 읽지만 탐색하면서 읽을 때는 사진이나 제목을 찾는 속도로 1초에 2쪽 정도까지도 넘긴다는 것입니다.(178쪽)

 

저자는 자신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17세기 카리브해를 무대로 하여 스페인선박들을 약탈하던 버커니어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이 지역에 뿌리를 내렸던 프랑스, 영국 등에서 온 사냥꾼과 농부들이 고기를 저장하는 방식을 뜻하는 ‘부카닝(boucanning)’에서 유래한 버커니어는 형식에 매이지 않는 점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원전이 기억나지 않는 “우리의 운명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혹시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파리떼>에 나오는 구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의 삶의 방식이나 버커니어의 특징을 뜯어보면 저도 버커니어학자 그룹에 속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정규교과과정을 제대로 마친 탓에 저자와 같은 성공을 일구지 못했나 싶습니다만, 그래도 현재의 방식이 제게 맞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틀에 자신을 맞추는 게 힘든 경우에는 새로운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정규교과과정이나 이를 포기하더라도 열성을 다하여 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기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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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스테이아 열린책들 세계문학 197
아이스킬로스 지음, 두행숙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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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의 주인공들은 신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신탁을 통해서 신의 뜻을 미리 알고 피하려는 것이 오히려 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결말을 맞는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혹시 신의 뜻을 거스른 사람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던 참에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28005>에서 작은 힌트를 발견했습니다. ‘자유로운 인간은 정말 행복한가?’라는 제목으로 된 장 폴 사르트르의 <파리떼>에 대한 리뷰입니다. 아르고스의 오레스테스 가문의 비극을 다룬 신화를 재해석한 것입니다.

 

트로이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전쟁이 끝나고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다음 아이기토스와 정분이 났던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정부와 함께 남편을 살해합니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정부를 살해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지만, 신의 계시를 밝혀달라는 오레스테스의 요청에 제우스신의 계시는 “젊은이, 신들을 심판해서는 안 돼, 신들은 그들만의 비밀과 슬픔을 가지고 있다네.”였습니다. 하지만 오레스테스는 번개와 함께 내려진 제우스신의 계시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번개가 큰 돌을 쳤어.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이야? 이 번개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아. 사람의 명령도, 신의 명령도 듣지 않아.(김의기 지음,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301쪽)”라고 신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서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토스를 살해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오레스테스가 제우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 배경을  사르트르는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자유죠. 당신이 나를 창조한 순간, 나는 이미 소유가 아니게 되는거죠. 당신은 신이고 나는 자유로운 존재죠. 우리는 각자 혼자예요.” 오레스테스의 이런 생각에 대하여 제우스 역시 “일단 자유가 인간의 마음에 횃불을 당기면, 신은 그 앞에서 무력해지는거야. 이제 모든 문제는 인간과 신의 문제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문제가 되고 말아”라면서 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고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이런 해석에 관심이 끌려서 읽게 된 것이 아이스킬로스의 <오르테이아>입니다. 호메로스가 전하는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오르테우스 가문에 얽힌 가족구성원들 간의 상쟁을 다룬 비극 3부작입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국하는 시점에서부터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토스에 의하여 살해당하는 시점까지를 다루는 제1부 아가멤논에서는 이들의 살해동기가 드러나게 됩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떠나기 전에 역풍을 만나고 역질로 군대가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때, 제우스신이 거느리는 독수리들이 새끼 밴 토끼를 잡아먹은데 대하여 아르테미스 여신이 분노한 때문이며, 아가멤논의 딸을 제물로 바쳐야 분노가 풀릴 것이라는 신탁을 받게 됩니다. 결국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고서야 출항하게 된 것이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의 이런 처사에 분노하여 복수를 꿈꾸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살아남은 딸 엘렉트라를 방치하고 또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가멤논의 복수를 할까 두려워 국외로 추방했다고 하는 이야기의 진행을 보면 그녀의 주장은 그저 부정한 자신을 감추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히려 아가멤논의 아버지 오르테우스와 그 동생 플레이스테네스 사이에 얽힌 피의 저주를 이어받은 플레이스테네스의 아들 아이기토스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유혹하여 아가멤논을 살해함으로써 오르테우스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를 대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는 아르고스로 돌아온 오르테이아가 엘렉트라를 만나고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토스를 살해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는 사르트르가 재해석한 것처럼 오르테이아의 복수극을 제우스가 거부한 것이 아니라 아폴론의 적극적인 신탁이 있었고, 제우스 역시 우회적으로 찬성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르테이아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저주에 따라 복수의 여신들의 추적을 받게 되는 3부 자비로운 여신들에서는 오르테이아의 죄를 추궁하는 저주의 여신들과 무죄를 주장하는 오르테이아가 아테나여신의 판결을 구하는 장면입니다. 오르테이아에게 복수를 신탁했던 아폴론도 등장하여 변호하고 배심원단의 동수 판결에 대하여 아테나여신이 오르테이아를 지지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는데, 이에 반발하여 아테네를 저주하는 복수의 여신들을 달래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그리스 신화는 시대가 흐르면서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앞으로 관심을 두고 공부를 더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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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털리티 - 나이가 사라진 시대의 등장
캐서린 메이어 지음, 황덕창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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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늙어가기’와 ‘품위있게 죽기’에 관한 책을 즐겨 읽습니다만, ‘어모털리티’라는 용어는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의학을 전공하다보니 저는 ‘모털리티(mortality)’하면 먼저 사망률이 떠오릅니다만, 일반적으로 ‘죽을 운명’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모털리티(amortality)는 타임지가 커버스토리로 다룬 ‘지금 당장 세상을 바꿀 10가지 아이디어’의 하나로 꼽은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단어로 새로 만든 단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바꿀만한 단어가 없었던지 원제목을 그대로 따왔습니다만, 이 책 <어모털리티>를 쓴 타임지의 유럽 총괄편집장 캐서린 메이어가 새로 만들었다는 어모털리티는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파생된 어모털족(amortals)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한 탓도 있겠습니다만, 예전 같으면 이런 사람들을 보면 ‘곱게 늙을 일이지, 주책바가지로구먼, 쯧쯧.’하는 뒷담화 깨나 들을 일입니다.

 

그리고 보니 책장을 열자마자 볼 수 있는 ‘당신은 어모털족입니까?’라는 제목의 테스트에 정색을 하고 답을 달아보면 저도 어모털족에 가깝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어모털족이 늘고 있는 이유는 유전적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요소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바로 의학의 발전으로 나이를 잊게 해주는 다양한 기술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불로초를 찾았던 진시황이 알면 당장 타임머신이라도 타려 들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노화와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상에 관계되는 점들을 여덟 항목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당연히 첫 번째는 나이의 의미가 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나이의 의미를 따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하버드대학의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앨렌 랭어교수의 실험결과를 인용하고 있는데, 랭어교수의 실험은 <마음의 시계; http://blog.joinsmsn.com/yang412/12248281>에서 상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저자는 나이를 잊는 것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2장 ‘가족의 재구성’에서 다루고 있는 가정에 대한 어모털족의 인식입니다. 최근 들어 출산률이 감소되고 있는 글로벌한 현상은 선진국의 경우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면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개인중심의 사회현상으로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육아에 드는 비용이 버겁다는 이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출산율의 저하에 대한 저자의 생태학적 설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보통 몸집이 큰 동물을 작은 동물보다 오래 사는 경향이 있는데 시베리아 삼림지역에 서식하는 ‘해그리드’라는 별명의 박쥐는 예외하고 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해그리드박쥐가 오래 사는 동물의 특징인 낮은 번식력을 나타내더라는 것입니다. 즉 종족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명이 짧은 동물은 높은 번식력을 가진다는 설명인데, 인간의 현대들이 인간의 수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출산률의 저하와 관련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죽어가고 있다는 공포심을 피하기 위하여 출산을 늘린다는 주장도 인용하면서 어모털족의 출산율이 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늙어가고 있다는 공포심을 잊기 위하여 아이를 많이 갖게 되는 경향이 어모털족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발기부전 치료제의 개발 역시 어모털족의 확산에 기여한 바 크다는 것인데, 수명이 길어진 만큼 섹스기간도 늘어나기 마련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죽음 혹은 노화에 대한 공포심의 저하는 종교의 영향력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한 점입니다.

 

대체적으로 책읽는 중반까지는 노화를 잊은 사람들의 특징을 다양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중반이 넘어가면서 치유, 일과 직업, 소비 그리고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된 이야기들은 저자가 어모털족이라 할 만한 사람들로부터 얻은 인터뷰자료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방만하고 집중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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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2
박지원 지음, 길진숙.고미숙.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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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산해관에서 연경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과, 열하에 있는 피서 행재소에 거처하고 있다는 황제의 부름에 따라 열하에 다녀오는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황제의 탄일이 되는 만수절은 8월 13일이었는데,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넌 사신일행이 연경에 도착한 것은 8월 1일이어서 여유있는 일정이었음에도 정작 다시 열하까지 다녀오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했으니 스트레스를 엄청받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책문을 떠나면서 자주 비를 만나고 강물이 넘쳐 발이 묶이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사신단을 몰아세우는 정사 박명원의 독촉에 대하여 몇 차례 연경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 지독한 더위에 이렇게 쉴 참을 거르다니,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불만을 쏟아냈지만, 죽기살기로 달려서 마침내 8월 초하룻날 연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연암의 여행기를 보면 중간 기착지마다 볼거리를 챙겨 돌아보고 느낌을 적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하지만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일정은 험난한 경로임에도 일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모양입니다.

 

백하를 지난 다음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넌 연암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이제야 도(道)를 알았다. 명심(冥心-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 한 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넜지만 아무 근심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175쪽)” 낮에는 시각으로 보는 위험이 캄캄한 밤에는 청각으로 듣는 위험으로 바뀌더라는 점에서 근심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이 태평해졌다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서 뚜렷해지자 눈앞에 크고 작은 것에 개의치 않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깊은 산속에 있는 자신의 거처 앞을 흐르는 시내물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에 대한 연암의 생각은 꽤나 깜찍하다고 하겠습니다. “깊은 소나무 숲이 퉁소 소리를 내는 듯한 건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듯한 건 교만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다. 거문고가 우조(羽調)로 울리는 듯한 건 슬픈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한지를 바른 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건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탓이다. 이는 모두 바른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이미 가슴속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소리를 가지고 귀로 들은 것일 뿐이다.(174쪽)” 외부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자극도 마음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뇌과학적 견해를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연암을 비롯한 당시 우리 선비들의 자연철학의 경지는 꽤 놀랄만했던 것 같습니다. 열하에서 태학에서 공부하는 사람들과 나눈 필담을 정리한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전설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창하여 그때까지 천체운동의 원리로 확고하던 프톨레마이우스의 천동설을 뒤집는 변환을 이루었던 것이니 연암이 연경을 방문하던 때와 벌써 200년 이상 차이가 있고, 당시 연경에는 서양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던 터라서 그들을 통해 전해진 서양의 천문학 지식을 접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연암의 친구 홍대용의 스승이라고 하는 김석문이라는 사람이 이미 당시보다 100여년 전에 삼환부공설을 제창하는 등 천동설을 부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대사상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연암은 목축을 비롯한 실용부문에서의 개혁이 필요한 이유를 적고 있습니다. 청나라의 말들이 대체로 날랜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의 사정을 한탄하면서 적은 것들입니다. “우리나라가 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대체로 목축이 자리 잡지 못한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목장으로 가장 큰 곳은 탐라 한 곳뿐이다. 그곳의 말들은 모두 원 세조때 방목한 종자로, 사오백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종자를 한 번도 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용매나 악와에서 나는 준마들이 과하나 관단 같은 조랑말이 되고 말았다.(282쪽)” 공맹을 국치의 근간으로 삼으면서 문약해진 조선이 왜란과 호란과 같은 커다란 국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평소 군비를 철저하게 챙기지 못한 탓 아니었을까요?

 

좁은 우리 땅을 떠나 넓은 청국에서 만나는 문물이 신기하면서도 그들의 근본이 중화가 아님에 대한 은근한 무엇도 느껴지는 여행기에 담은 연암의 다양한 정신세계를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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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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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 <라쇼몽>을 읽게 된 이유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어떤 책에서 ㆍ<라쇼몽>에 담긴 ‘덤불 속’을 인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덤불속에서 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된 남자의 주검과 관련된 사람들 - 죽은 남자를 처음 발견한 나무꾼, 죽은 남자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탁발승, 살해 용의자를 체포한 수색꾼, 죽은 남자의 장모, 죽은 남자를 살해한 용의자, 죽은 남자의 아내 그리고 무녀의 입을 빌린 죽은 남자 등 7명 - 의 진술 가운데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건의 목격자들의 경우 기억의 불확실성을 그리고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범인과 죽은 남자 그리고 아내의 경우는 처한 상황에 따라서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정황인데, 이 부분에 대하여 작품해설에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거짓과 과장이 없다 하더라도, 정물 하나도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보는 이의 시력과 관념 때문에 달리 보인다. 그러니 정물이 아닌, 스토리가 사람들과 얽힌 사건에 대한 통일된 증언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사건은 ‘덤불’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269쪽)” 이 단편의 제목이 ‘덤불’인 것도 작가의 심려를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열입곱 편의 단편들 가운데 주체 못할 정도로 긴 코를 가진 스님의 마음고생을 코믹하게 묘사한 <코>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기묘한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작가가 죽던 해 발표된 <세 개의 창>에서는 세 사람의 군인이 맞는 죽음을 그리고 있어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가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여기 수록된 열입곱편의 단편을 통하여 다양한 군상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라쇼몽>이라는 이름의 단편이 가장 앞에 온 것은 여기 수록된 단편들에 담긴 에피소드가 동명의 영화에 담겼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지진과 화재 등 온갖 재해로 황폐해져 사람들 발길이 끊긴 라쇼몽은 연고없는 시체가 버려지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인데, 비를 말린 뱀고기를 건어라고 팔다가 전염병으로 죽은 여인의 머리털을 뽑아 가발을 만들어 팔려는 노파와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나는 하인의 모습에서 더 이상 무너져 내릴데가 없어 보이는 인간상을 보여주고, 흔들리는 관솔불이 미치지 못하는 누각 밖은 ‘오로지 깊은 동굴처럼 새카만 밤이 보일 뿐’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세상살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난감할 따름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흔히 예술하는 사람의 생각을 일반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도 합니다만, <지옥변>에 등장하는 당대 제일의 화공 요시히데야 말로 그런 예술인의 전형이라고 하겠는데, 정말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지옥변상도를 그리라는 호리카와 대신의 영을 받아 그림을 그려나가던 요시히데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장면을 보아야 하겠다고 청을 넣게 됩니다. “대체로 본 것이 아니면 그릴 수가 없고, 잘 그려도 마음에 들지 않아 그리지 못한 것과 같다.(78쪽)”고 하는데 완성단계에 이른 작품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레에 탄 귀족부인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화룡첨정으로 하고자 하니 수레에 귀족부인복장을 한 여인을 태워 불태워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대신은 그 수레에 요시히데의 딸을 태웠고, 불타는 수레에 탄 여인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난 화가는 불을 끄러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붓을 들어 그림을 완성하더라는 범인(凡人)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에서 유난히 귀기(鬼氣)가 느껴져 공연히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요시히데의 그림에 대한 집요한 욕망을 다룬 <지옥변>도 그렇고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린 아내의 고통을 거두어주려 살해한 남편의 이야기를 다룬 <의혹>도 그렇고, 마음에 구김이 가는 이야기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것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요?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고 그런 삶에 대한 가치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특징이라고 보았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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