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첼로 - 이응준 연작소설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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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보던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쓴 이응준작가의 신작소설 <밤의 첼로>를 읽었습니다. 표제가 되는 ‘밤의 첼로’를 포함하여 모두 여섯 편의 소설을 묶은 연작소설이라는 특이한 형식입니다. 여섯 편의 소설은 그대로 읽어도 무방하겠습니다만,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한 인물이 다른 소설에서는 주인공 역할을 하고, 한 소설에서는 중요한 에피소드가 다른 소설에서는 뉴스 한 꼭지로 간단하게 처리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집단을 구성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여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도식이 떠오릅니다.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모두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몇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작은 집단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들 작은 집단을 연결하는 사람이 있어 전체 집단이 끊어짐 없이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처럼 등장인물들이 서로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어 독립적인 스토리이면서도 서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를 연작소설이라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분위기는 하나같이 어둡고, 등장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어두운 분위기에 관계의 갈등을 수월하게 풀어가지 못하고 갈등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적 결말을 쉽게 예견할 수 있기도 합니다.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독일의 여류시인 안나 헨리케의 <밤의 첼로>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이 꼭 한 번은 찾아오고 그러면 그는 홀로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뜨거운 무쇠 난로를 끌어안듯이 신의 이름을 부른다. (…)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신의 얼굴을 보고자 기도하는 인간은 신이 연주하는 첼로소리를 듣게 된다. 단 한 번은, 꼭 한 번은, 듣게 된다. 신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아름다운 더 첼로소리를.(20쪽)” 마치 그 첼로소리를 듣게 되면 지난한 삶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의미로 읽히는 시입니다만, 다른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공연히 시빗거리를 찾으려는 속셈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절망의 극한에서 듣게 된다는 첼로소리에 이어서 바다에서 올라온 인간이 잃어버린 바다에 대한 기억 대신에 남겨진 ‘물고기 그림자’가 역시 주인이 극도의 고통에 처하게 되면 견디다 못해 떠나가 버린다는 설명 또한 인간이란 절망에 아주 취약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같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주어진 고난을 쉽게 이겨내는 입지전적인 인물보다는 고난에 쉽게 무너지는 안타까운 인물들에 대한 연민을 더 가지고 있어 그런 인물들을 주로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희망이란 애시 당초 존재하는 않은 특별한 무엇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무렵 작가가 던지는 한 마디에서 손에 잡힐 듯한 무엇이 느껴집니다. 바로 “사막 밑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어요. 녀석을 낚으려면 모래를 깊이깊이 파 내려가야 해요. 사막에도 100년에 몇 번은 폭우가 있거든요. 그때 빗물을 타고 지하 수맥으로 빠져 들어가 번식하게 된 거예요. 사막 아래 물리 출렁인다고 하면 안 믿기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막 한가운데 홀연히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거거든요.(72쪽)”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히 사막 아래에 지나는 수맥이 지표 가까이 지나기 때문인 점을 고려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기에 작가가 무력함에 좌절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여기에 더하여 한강변 버드나무 군락지가 불타사라지면서 누구에게는 죽음이 예고되지만 누구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이한 엇갈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숙제로 남는 것 같습니다.

 

짧은 소설들이면서도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고 할까요? 국내에서도 다양한 지역이 무대가 될 뿐 아니라 몽골, 인도까지 무대와 등장인물을 확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극늑대까지 등장시켜 신비로운 분위기로 이끌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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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할 사랑의 진실 42
고든 리빙스턴 지음, 공경희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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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리빙스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입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써오고 있는 저자가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주제는 사람들이 맺는 관계와 행복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 사람은 혼자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서 삶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행복한 관계를 위하여 새겨야 할 지혜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제1장에서는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가 삶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과 결혼에 관한 선택의 기로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2장에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유형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당신과 가까운 분이 떠오른다면 그 분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것과 만약 극단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관계를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제3장에서는 나 자신과 상대가 갖고 있으면 좋을 미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평범해보이지는 타인과의 관계를 행복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될 것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제4장은 우리가 맺은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좋은 관계로 발전시켜 행복하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효율성에 집착하여 여행을 가더라도 행군하듯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경향을 콕 짚어냈군요. 그 글의 말미에 붙여둔 저자의 요약문의 일부를 옮겨 해결할 수 있는 팁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의 진정한 기쁨은 ‘우연’과 ‘예상치 못한 일’에서 비롯됩니다. 여행지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나 일정이 달라지거나 일기예보에 없었던 폭설이 내려 발이 묶이게 되면서 여행은 더욱 다채로워집니다.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 심하게 투덜대거나 무리하게 일정을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93쪽)” 장거리여행을 떠나던 날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결국은 저녁 무렵 고속도로가 빙판이 되었는데도 무리하게 운전을 하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온 가족이 위험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일찍 숙소를 정하고 쉰 다음에 다음날 여행을 계속했어야 하는 것이었죠.

 

요즘 독서계의 한 켠에서 조그만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을 포함해서 현대의료에 대한 불신을 담은 책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점에 관한 저자의 생각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개의 글에서 요지를 연결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람들 중에는 꽉 막힌 사람이 있습니다. (…) 이런 사람들이 위험한 것은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현대의약품에 약초와 자연 치유법을 무시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과학적 방법을 거부합니다. 암 같은 중병에 걸렸는데도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천문학적 비용이 들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113쪽)”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는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세계에 들어설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권하는 메시지를 바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배운다는 것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을 익히는 것입니다. 실험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기 위해 과학적 사고체계가 생깁니다.(119쪽)” 음모론을 제기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방안이 과학적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제3장에서 소개되어 있는 행복을 키워가는 사랑의 미덕은 친절, 낙천주의, 용기, 성실성, 관용, 회복력, 아름다움, 유머, 정직, 지성 등 열 가지입니다. 저자는 삶이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인간의 조건이 불확실하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불합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 위로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How to Love>라는 원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랑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에 매여서 상황판단이 흐려지면 안 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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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신화 지중해 국가정보 시리즈 5
지중해지역원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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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국어사전에 따르면 신화(神話)란 “어떤 신격(神格)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설화로, 우주 및 세계의 창조, 신이나 영웅의 사적, 민족의 기원 같이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신화를 억압된 관념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고, 융은 한 걸음 나아가 신화에 집단의 무의식이 녹아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민족에는 전승되어오는 천지창조신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단군신화가 전해온다는 주장에 대하여 고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하여 신화로 포장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신화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구전으로 전해오면서 새롭게 해석되거나 새로이 보태지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민족의 이동과 접촉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단들이 유사한 신화를 가지기도 하고, 배경이 서로 다른 신화가 융합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에서 펴낸 <지중해의 신화>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 사이에서 전해내려온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부로 구성된 내용의 1부에는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소아시아의 터키의 신화를 다루었고, 2부에서는 유럽의 그리스, 로마,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의 신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화의 요약된 줄거리를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신화를 구성하는 요소라거나 민족들의 접촉에 따란 신화의 변화를 주로 다루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면, 이집트 신화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신들의 이름도 생소하고, 복잡해서 산만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혹은 지역에 따라서 등장하는 신들이 다른데 이는 인접한 민족의 신화가 녹아들면서 생긴 것으로 이해된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터키의 신화는 그 뿌리가 돌궐족에 닿고 있다고 합니다. 돌궐제국을 구성한 튀르크족이 멸망하여 흩어지면서 아제리족, 카자흐족, 키르기즈족, 투르크멘족, 알타이족, 투바족, 하카스족, 아쿠트족 등 유라시아대륙 전반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터키족은 중앙아시아에 건설된 셀축제국이 서진하여 아나돌루반도에 이주하여 성립한 오스만제국의 후예인 것입니다. 따라서 터키족의 신화는 튀르크족의 신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튀르크족의 천지창조신화는 ‘세상은 하늘도 땅도 없는 하나의 바다였다.’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바다를 날면서 쉴 곳을 찾던 탄르 윌겐은 바다에서 솟아오른 돌 하나에 머물게 되었고, “있어라 땅이여!”라고 외쳐 바다로부터 땅을  창조하였다. 이어서 “있어라 하늘이여!”라고 외쳐 땅을 창조하였으며, 이어서 생물을 창조하는데 6일이 걸렸고 7일째 잠들었다고 합니다. 튀르크족 가운데 최초로 기록을 남긴 돌궐족의 종족기원설화에는 몰살당한 마을에서 홀로 살아남은 소년이 이리와 합하여 이리가 잉태하고 열명의 아들을 낳은 것이 돌궐족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들이 튀르크족의 기원설화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거주지들이 한민족과 한국어의 기원과 형성에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알타이계 민족들의 무대라는 점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에게도 알려진 프랑스의 인기만화 아스테릭스는 고대 골(프랑스의 옛 명칭)에 거주한 갈리아 켈트인의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골신화에는 산, 나무, 강과 같이 특정한 곳에 머무는 정령이나 조상신들로 구성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서쪽이 만나는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신화 역시 다양한 문명이 교차한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토착 민간 신앙은 물론 그리스의 헤라클레서 신화,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족의 신화, 그밖에 이슬람이나 기독교 성서의 내용이 신화와 결합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그리스신화는 기원전 15세기로부터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기원후 4세기에 이르고 있는데, 등장하는 많은 신들 가운데 누구도 전지전능하거나 초월적이거나 세상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유일신을 믿는 종교와는 다른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는 새롭게 번안, 각색되며, 계속 반복되어 생동하고 있는데, 이는 같은 문화권 내부의 상이한 집단들 간의 독자성, 대립, 충돌을 반영하는 것이며, 고대 그리스국가들의 정치적 현실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신은 인간처럼 사물을 똑 같이 느끼고, 양자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협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은 인간과는 달리 불사의 행복과 권능을 가진 존재인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이야기 중심의 신화를 소개하기보다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신화를 민족들의 관계사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기 때문인지 다소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만, 신화의 성립과 변천과정을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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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 삶을 위한 죽음의 연구
허버트 허시 지음, 강성현 옮김 / 책세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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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라는 단어보다는 ‘기억’이라는 단어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만 ‘제노사이드’에 무게가 실린 책입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는 <제3의 침팬지; http://blog.joins.com/yang412/12920729>에서 확인된 집단학살의 사례들이 15세기 이래 아주 최근인 20세기 말까지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일어났고, 또 일어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설파한 바 있습니다.

 

[북소리]를 통해서 소개드린 다카노 가즈아키의 추리소설 <제노사이드>에서 이미 인용한 위키백과에서 설명한 ‘제노사이드(genocide)의 뜻을 다시 인용합니다. 제노사이드는 ‘집단학살(集團虐殺)’이라 번역되고 “그리스어로 민족, 종족, 인종을 뜻하는 ‘geno’와 살인을 뜻하는 ‘cide’를 합친 말이며, 고의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일컫는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단 학살의 정확한 정의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법적인 집단 학살의 정의는 1948년 국제 연합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에서 나온다. 이 협정 2조를 보면 집단 학살을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한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집단의 일원을 살해하거나 심각한 육체적ㆍ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고의적으로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것, 집단 내 출생을 막는 것,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가 저지른 대규모 학살이 재발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국제적인 공감이 만들어낸 성과이지만, 이 규정이 실효적으로 지켜지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드는 사건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에서는 ‘왜 인간은 서로를 죽이는가? 어떻게 하면 이 살육의 비극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관하여 오랫동안 연구해온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 정치학과 허버트 허시교수의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통하여 582만 여명이 생명을 잃었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국제협약도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50년이 지나도 제노사이드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 보스니아내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990년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것을 계기로 1992년 보스니아에서 문화적·종교적·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세 집단(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이슬람교도) 사이의 묵은 갈등이 표출되면서 대략 20만 명이 죽고 75만 명이 실종되었으며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나 보스니아 내전이 촉발된 배경에는 집단들 사이에 감추어진 묵은 증오의 기억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럽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반유대주의 정서는 그 뿌리가 로마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특히 탄압받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강화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예수의 죽음의 책임을 유대주의자들에게 미루려는 로마제국의 정치적 선택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는 남슬라브민족의 배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가톨릭신앙을 가지고 있는 크로아티아인과 그리스정교를 신앙으로 하는 세르비아인 그리고 보고밀파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집단들이 14세기 오스만튀르크의 침공에서부터 입장을 달리하던 것이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오스만튀르크에 대항하여 유고슬라비아를 창설하면서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량학살이 반복된 뿌리 깊은 원한관계가 성립되어왔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통하여 후세에 전해지는 것인데,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패자의 역사는 아무래도 살아남은 자의 기억에 의존되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가면서 잊혀지고 왜곡될 수 있고, 승자의 역사는 기록될 당시부터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 자신의 기억이 사실은 ‘소멸, 정신없음, 막힘, 오귀인(誤歸因),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과 같은 요인에 의하여 심각한 오류를 빚어내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습니다.(대니얼 샥터 지음,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http://blog.joins.com/yang412/12562617).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이 현재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집단의 기억을 왜곡하고 통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노력하는데,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기 위하여 “유대인과 집시에게 나치 독일이 행한 제노사이드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신화, 꾸며진 이야기이거나 날조로 여겨진다.(63쪽)”는 주장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시아 각국에 잔악한 범죄행위를 한 일본이 적절한 사과와 반성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옹색한 모습과 겹쳐지는 대목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보는 것처럼,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사회에서는 죽음의 빚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는 인식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기억이란 개인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특히 원한과 관련된 일이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라면 기억의 강도가 약해지거나, 다르게 기억하는 구성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 내에서 복수에 관한 기억이 면면히 이어져 내리는 것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리처드 도킨스교수가 <이기적 유전자; http://blog.joins.com/yang412/2583563>에서 제안한 밈(meme)이라는 문화적 요소로 설명하는 것이 쉬울 듯합니다. 개체 사이의 관계에서 발전하는 무형의 산물이라고 보는 문화도 모방되고 복제되어 전파되고 전달될 수 있다는 개념을 담은 단어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밈풀에서 펴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010년, 323쪽)”는 도킨스교수의 설명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기억’이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다고 믿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기억은 분명 정치현상이며, 가능한 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해의 측면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제노사이드의 정치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기 위해서도 기억, 역사, 그리고 기억의 역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32쪽)”

 

저자는 기억이 희미해지고 목격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역사가 재구성될 가능성을 설명하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베텔하임과 데 프레의 시각을 비교하고 있는데, 나치 친위대가 피해자들의 협력 없이는 기능할 수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나치의 화학실험실에서 일하면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와 같은 생존자의 경험을 정신분석 이론이라는 필터를 통하여 강도가 조절되는 베텔하임의 방식을 부정적으로 평가를 하는 반면, 오랜 위기의 압박 아래서 살아가는, 정신과 몸에 난 끔찍한 상처를 견디는, 아직도 거기에서 제정신으로 여전히 인간인 채 살아 있는 능력이라고 생존을 정의하는 데 프레의 방식은 인간주의적, 문학적 시각에서 생존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에 참여한 가해자들의 의식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앞서 리처드 도킨스가 제안한 문화적 유전자 밈개념을 인용하였습니다만, 사람은 기억이나 정치적 사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나 공식적으로는 교육과정을 통하여, 비공식적으로는 문화전파를 통하여 그러한 문화의 규범을 배우게 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 적은 “모든 교육은, 아이에게 자신의 피를 나눈 사람들과 인종이 모든 타자들보다 우수하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가져야 한다.(179쪽)”는 구절을 인용한 저자는 히틀러의 제3제국이 권위에 대한 복종과 인종적 증오를 양대 축으로 한 체제를 구축했다고 주장합니다. ‘복종 배우기’야 말로 제노사이드를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핵심요소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무방비한 민간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에 참여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권위화, 일상화, 비인간화라고 하는 세 가지의 사회적 과정을 거쳐 승인된 학살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답한 켈먼과 해밀턴의 이론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한 사회화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바로 ‘제노사이드의 고리를 끊어내는 길’ 역시 교육에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저자는 삶을 보존하기 위해 죽음에 대해 연구한다고 합니다. “죽음을 조장하는 데 있어서의 기억의 영향과 역할을 인정하는 것은 삶을 보존하는데 기억을 사용할 것을 고려하도록 이끈다. 삶을 보존하는 윤리는 죽음을 조장하는 데 있어서의 기억의 역할을 확실히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277쪽)”는 저자의 주장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악순환을 일으키는 근본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가정이기도 합니다. 교육을 통하여 집단의 나쁜 기억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과정이, 역시 용서와 화해를 교육하는 것으로 선순환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보건의료분야와 관련된 내용을 조금 언급하려 합니다. 독일의 아우슈비츠수용소나 일본의 731부대에서 의사들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질병을 치료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어야 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의사가 거꾸로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가능했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자아가 두 개의 기능적인 통합체로 분할되어 부분 자아가 완전한 자아로 행동하는 이중화를 통하여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 의사들은 시민사회에 재통합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당수는 의료업무로 돌아와 은퇴하거나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지만, 패전후 자살하거나, 전범재판결과에 따라 복역하거나 도망친 의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군진의료와 직접 관련이 없는 포로의 심문과 관련된 의료자문에 관한 논의(맥스웰 그렉 블록 지음,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 청년의사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2510155)나 사형집행에 의료인이 참여하고 있는 점에 관한 논의(아툴 가완디 지음,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한다, 동녘 사이언스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0272224)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사협회의 윤리강령에는 의사가 사형집행과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형수의 사망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의사의 역할이 독극물주입으로 사형방법이 바뀌면서 사형의 집행과정에 개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권력을 쥔 자의 정책적 결정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게 되는 비극적인 제노사이드는 광신적인 애국주의의 산물로서,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인류가 풀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노사이드라고 하는 맹목적인 집단폭력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제전쟁법과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함께 묶는 것, 인도주의적 개입의 도구를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학살을 부추기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 메커니즘을 공식화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국제적 합의를 통하여 민족이라는 틀에 갇혀있는 시각을 협력적 국제주의로의 전환시켰을 때 비로소 제노사이드가 종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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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이긴다
데이비드 호사저 지음, 방영호 옮김 / 알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모처럼 읽게 된 자기계발서입니다. 대리점과 본사 사이가 갑을관계라는 시니컬한 비유가 유행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안겼던 사건을 비롯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강조되는 분위기에다가, 정치분야 역시 불신이 극으로 달리고 있는 작금의 우리사회를 돌아볼 때 아주 시의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진정한 성공을 일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만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기업 역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랜 연구를 통하여 확인하고 그 내용을 <신뢰가 이긴다>를 통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 이해되지 않는 점은, 스스로의 신뢰를 강화시키는데 주력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보며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지 말라는 저자의 당부입니다.

 

저자 데이비드 호사저(David Horsager)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비즈니스 전략가라고 합니다. 조직문화 전환에 관한 연구조사와 컨설팅, 교육을 진행하는 ‘호사저 리더십(Horsager Leadership, Inc.)’의 대표로서, 신뢰가 삶과 비즈니스에 반드시 필요한 신용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정의하는 신뢰란, “어느 한 대상이나 일에 대해 가지게 되는 세 가지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둘째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확신, 셋째는 어떤 상황에서든 늘 한결같을 것이라는 확신(18쪽)”입니다. 그리고 신뢰우위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얻어내는 경쟁우위라고 주장합니다. 신뢰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넘어야 할 장벽으로는 이해충돌, 소송의 증가, 고객충성도, 언론이 쏟아내는 각종 스캔들, 정보가 순식간에 확산되는 소셜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 두려움, 나쁜 경험, 개인주의, 다양한 사고, 즉각적인 만족감,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태도 등 열두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먼저 책을 요약하면 제1부에서는 신뢰가 왜,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신뢰를 쌓는데 어떤 장벽이 있는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2부에서는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여덟 가지 요소들-명료함, 배려, 성품, 역량, 헌신, 관계성, 기여, 일관성 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신뢰가 가져올 수 있는 기대효과와 예기치않게 신뢰를 잃게 되었을 때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4부에서는 스웨덴의 가구업체 이케아, 아마존과 이랜드, 이베이 등의 사례를 통하여 신뢰가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부에서는 신뢰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읽으면서 기업이나 사람의 삶이다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갤럽조사연구소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와 감독자를 떠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직원들은 존중받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해서, 관심을 얻지 못해서 회사를 떠난다(94쪽)”는 구절에서 저의 경험과 비추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소한 불평불만 따위는 그만 늘어놓으라는 충고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새롭게 깨달은 점도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다양성이 혁신과 창조성 성공의 요체임에 틀림이 없지만,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의 다양성이 지나치게 크다면 신뢰수준이 낮아져 생산성과 사기가 저하된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역부근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에 들어가 보면 안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고 있지만 대부분 맛이 없다는 사실이 여기에 딱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한번 지나가고 다시 보지 않을 손님이니 맛이나 서비스와 같이 고급스러운 전략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서 나온 현상일 것입니다.

 

저자가 마침 제가 공부하던 미네소타출신이라서 가끔씩 튀어나오는 미네소타와 관련된 인용들이 반갑고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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