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학 - 세계의 고전 사상 7-004 (구) 문지 스펙트럼 4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상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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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리스 비극의 해석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할 때, 소포클레스 원작을 장 아누이가 해석한 <안티고네>를 공연할 무렵에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던지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 선 크레온왕보다는 인륜을 표방한 안티고네의 편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역시 소포클레스 원작의 <오이디푸스왕>과 연결하여 생각을 해보니 신의 의지에 따라서 인간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해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고명섭님의 <니체극장; http://blog.joins.com/yang412/12970004>이 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세계관에 입각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해명하고, 이어 바그너 예술을 그리스 비극의 부활로 해석하고 찬양하는 것이 핵심 내용(121쪽)”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 http://blog.joins.com/yang412/13023753>에서는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 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22쪽)”라고 시작하는 ‘음악정신으로부터 나온 비극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본문에는 “결국 우리는 그리스 비극의 근원과 본질은 서로 얽혀 있는 두 개의 예술 충동, 즉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이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을 발견(74쪽)”했다는 설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스비극을 논한 책들을 읽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그리스 비극을 논한 바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비극이 무대에 올려지던 당시에는 어떤 시각에서 비극을 보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게 만들었습니다. 이상섭교수님께서 옮긴 텍스트를 선택한 것은 별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30번 이상을 읽어온 <시학>을 다시 옮기는 과정에서 새롭게 느끼는 점이 많았다는 옮긴이의 설명이 있었습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근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학이론의 고전으로 여기는 책이라고 합니다.

 

“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시 창작 기술, 시의 여러 종류, 그들 각각의 본질적 기능들을 논의하고, 시 창작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플롯 구성의 방법을 설명하고, 시를 이루는 부분들의 수와 성질을 가려내고, 기타 이 연구에 관련된 여러 문제를 취급하려고 한다.(15쪽)”고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술 활동 전반이 인간의 모방 본능에 뿌리박고 있다는 유명한 모방설로부터 논술을 전개하는데, 모방의 수단·대상·방법에 의하여 예술의 장르가 나누어지는 것을 설명하고, 여기에 따라서 연극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비극은 플롯, 성격, 언어표현, 사고력, 시각적 장치 그리고 노래 등, 여섯 가지의 요소로 구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 요소 가운데 플롯이 비극의 구성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플롯에 대하여 접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11장에서는 ‘뒤바뀜과 깨달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어떤 사람이 오이디푸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시켜주려고 오지만 그는 본의 아니게 오이디푸스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42쪽)”는 설명은 뒤바뀜의 역할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러한 뒤바뀜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점을 이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작가들의 특징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우리피데스의 인물들은 일상적 현실을 반영하는 데 반하여, 소포클레스는 자기 인물들을 당위성에 따라, 즉 있어야 할 모습대로 그렸다고 했다.(87쪽)”

 

이상섭교수님은 본문보다 더 많은 분량의 주석을 달아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의문 왜 그리스시대의 작가들은 인간은 신의 의지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만 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리스비극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더 찾아 읽어봐야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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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 적게 써도 행복해지는 소비의 비밀
엘리자베스 던, 마이클 노튼 지음, 방영호 옮김 / 알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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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사는 3선에 성공한 메르켈 독일총리의 고민을 전하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은 한 나라의 성과를 재는 척도로선 문제가 많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메르켈 행복 독트린’의 근거가 되었던 “‘돈=행복’이란 등식이 꼭 성립하는 것만은 아니다”는 ‘레이어드 가설’이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238737). 인간의 물질적 욕망엔 이른바 ‘만족점(satiation point)’이 있어,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 가설의 핵심인데, 레이어드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 기준 1만5000달러(약 1650만원)를 만족점으로 제시했다가 몇 년 전에는 2만 달러로 상향 조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미시간대학 경제학과의 저스틴 울퍼스교수와 베시 스티븐슨교수는 실제 조사해보니 만족점은 존재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감은 커진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던교수와 마이클 노튼교수의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역시 돈과 행복의 관련성을 소재로 한 17,000건의 논문을 조사했더니 대부분 소득이 늘어나도 의외로 행복은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과연 행복을 돈으로 사는 일이 불가능할까?’하는 의문을 두고 연구를 해본 결과 돈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좀 더 행복한 방식으로 지출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행복한 지출’에 관한 연구를 벨기에부터 동부 아프리카에 이르는 세계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확대하여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를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돈만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 주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행복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소득보다는 지출습관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행복을 담보하는 지출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체험을 구매하라, 2. 특별하게 만들어라, 3. 시간을 구매하라, 4. 먼저 돈을 내고 나중에 소비하라, 5. 다른 사람에게 투자하라. 원칙만을 보면 알쏭달쏭하게 보입니다.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예쁜 볼펜, 근사한 주택 등)보다 체험적인 것(여행, 콘서트 관람, 특별한 저녁식사)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2달러를 쓰던 20만 달러를 지출하던, 물질적 구매보다는 체험적 구매를 하는 경우에 구매자가 후회하는 경우가 적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그 체험이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나는 체험이라 고 하더라도 언제든 가능한 조건이라면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특별한 체험으로 바꾸게 된다면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아닌 시간에 초점을 맞춰야 행복을 증진시키는 활동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과중한 업무로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보상하는 것보다는 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보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소비가 일어나기 전에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데, 더하여 당장 돈을 내는데 따른 고통 때문에 과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추가적인 이익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하여 지출을 하는 경우보다 타인을 위하여 지출하는 경우에 행복감을 훨씬 더 느낀다고 하는데 이런 베풂의 혜택은 두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에필로그에서 시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지출을 통해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우선시되는 방법은 먼저 시민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소득을 벌어들이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소득의 분배가 개선될수록 시민들의 행복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부유하든 빈곤하든 시민들의 행복수준은 상대적 소득격차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국가의 정책도 앞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는 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감 이외에도 다양한 조언을 참고하면서도 돈을 쓰는 일은 직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을 잘 써서 보다 행복해지는 길 역시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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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바람 그리고 사막 - 미국 서부 횡단 김영주의 '길 위의' 여행 1
김영주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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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횡단’이라는 막연한 부제를 보고서 선뜻 읽기로 한 책입니다. 서부라 하면 시애틀에서 샌디에고까지? 아니면 조금 더 써서 요세미티 국립공원 정도일까 싶었습니다만, 의외로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주에 흩어져 있는 볼거리를 잇는, 그러니까 미국의 남서부를 꿰는 여행이었습니다. 사실 이 곳은 여름에 여행하기에 쉽지 않은 코스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코스를 결정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에 볼거리를 모두 이어붙이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은 버릴 것은 버리고 볼 것은 확실하게 챙긴다는 전략으로 가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여행기를 읽어도 새로운 구석은 있기 마련입니다.

 

여행작가 김영주의 서부여행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유타-네바다-캘리포니아의 6개 주를 관통하는 코스는 위험하다고 힘들다고 모두가 말렸다고 하는데, 그리고 보니 이 지역은 1993년에 저도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로 달렸던 코스와 많이 겹치는 것 같습니다. 당시는 여행코스에 대한 자문해주는 미국 친구들이 많지 않았지만 누구도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여성 혼자서 가는 길이라서 걱정하는 마음이 얹혀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제가 미국을 여행할 때는 코스와 하루 이동거리만 정하고 숙소는 현지에서 결정하는 식이었습니다만, 저자는 사전에 전체 코스를, 숙소는 물론 볼거리까지 미리 예약하는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 것이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약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당일 그곳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에 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긴 제가 여행하던 1990년대에는 인터넷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 트리플A에서 나온 여행정보와 지도를 바탕으로 볼 곳을 고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놓친 볼거리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정보가 넘치기 때문에 오히려 코스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어 미리 목적지를 입력하면 교통상황까지 고려하여 운전을 유도해주지만 그때는 누군가 지도를 읽으면 코스를 확인해주지 않으면 엉뚱한 길로 빠져서 헤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도를 읽어주는 사람과 미리 코스를 확인하고 이동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녀의 여행 이야기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계기가 되었지만 여행길에는 다양한 가수의 노래들이 함께 하고, 그 내용을 이야기에 녹여내고, 뿐만 아니라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읽을거리에서 뽑아낸 이야기 거리가 여행지와 잘 엮어서 작가의 여행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주로 미국 가수들의 CD를 들고 가셨던 모양입니다만, 제 경우는 양수경씨, 노영심씨, 노사연씨, 심신씨(작은 아이가 좋아하던) 등의 CD도 아니고 테이프를 주로 틀면서 “계속 근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저자는 크루즈운전에 익숙하지 않아 고생한 모양입니다만, 지평선으로 빨려가는 것처럼 변화가 없는 미국의 주간국도를 운전할 때 크루즈기능을 활용하면 액셀을 계속 밟고 있어야 하는 오른쪽 다리를 편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차량에 따라서는 언덕을 올라갈 때 부스터기능이 작동하면서 RPM이 갑자기 상승하기 때문에 언덕길에서는 크루즈 세팅을 풀지 않고서도 액셀을 지긋하게 밟아 속도를 높여 부스터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센스를 더하면 지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여행코스 가운데 제가 가보았던 곳은 화이트 샌드, 그랜드캐년, 모뉴먼트 벨리 정도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진들을 곁들여 그녀와 같이 하는 여행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여행기에 다양한 색깔을 입혀준 읽을거리를 발견한 것도 좋았습니다. 사실 1990년대에 돌아보았던 미국여행기를 회고해보려고 준비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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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황승식.전현우 옮김 / 살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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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제롬 그루프먼과 패멀라 하츠밴드 교수의 <듣지 않는 의사 믿지 않는 환자; http://blog.joins.com/yang412/13235169>를 소개하면서 안젤리나 졸리처럼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는 여성들의 심리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들이 단순히 느낌 말고 분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게 도와줄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통계자료를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을 다룬 게르트 기거렌처소장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골랐습니다. 먼저 간단한 문제를 같이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증상이 없는 40대 여성에게 유방암 조기검진을 받도록 권장하는 사업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여성들 가운데 유방암이 있을 확률은 0.8퍼센트다. 만일 어떤 여성이 유방암에 걸렸을 경우 유방촬영술 양성이 나올 확률은 90퍼센트다. 만일 어떤 여성이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유방촬영술 양성이 나올 확률은 7퍼센트다. 이제 한 여성이 유방촬영술 양성이 나왔다고 가정하자. 실제로 유방암에 걸렸을 확률은 얼마인가?(61쪽)” 많은 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될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으실 것 같아 조금 쉽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1,000명 중 8명의 여성이 유방암에 걸린다. 이 8명 중 7명은 유방촬영술 양성이 나올 것이다.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992명의 여성 중 70명에서도 유방촬영술 양성이 나올 것이다. 이젠 검진 결과 유방촬영술 양성이 나온 여성만 고려해보자. 이중, 실제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유방암에 걸렸는가?” 많이 쉬워졌죠? 그렇습니다. 1,000명의 유방촬영술에서 양성이 나온 환자는 70+7명이고 이 가운데 유방암에 걸린 여성은 7명이니 9퍼센트의 정도의 비율입니다. 이 문제는 검사의 민감도와 특이도를 고려하여 검사결과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제를 하나 더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미시간 주의 유방암 전문 외과의사는 “전체 여성 인구의 57퍼센트가 유방암 고위험군이며 유방암의 92퍼센트가 이들 집단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체 여성인구의 13명 중 1명은 40~59세 사이에 유방암에 걸린다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그는 고위험군 여성 2명 또는 3명 중 1명은 40~59세 사이에 유방암에 걸린다.”는 결론을 내리고 고위험군에 속해 있으면서 유방암이 없는 여성, 즉 여성의 절반 이상에게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권했다는 것입니다. 이 의사의 주장을 빈도표기법으로 재구성해보면, 1,000명의 여성 가운데 570명이 고위험군에 속하는데, 전체 여성 1,000명 가운데 77명(13명 중 1명)이 40~59세 사이에 유방암에 걸리고, 이들 가운데 71명(77명의 92퍼센트)이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570명의 고위험군 여성 가운데 71명에게서 유방암이 생긴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외과의사가 주장하는 고위험군 2명 또는 3명 중 1명이 40~59세 사이에 유방암에 걸린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은 연령에 따른 유방암 발생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결과 1,000명의 여성 중 36명이 40~59세에서 유방암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는 고위험군 17명 중 1명의 비율입니다. 그 외과의사가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시행한 90명의 여성 가운데 85명 정도는 어찌됐든 유방암이 발생하기 않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메이요병원에서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639명을 조사했더니 예방적 유방절제술이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절대적 확실성을 주지는 못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7명에서 유방암에 걸렸고, 이 수술을 받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뚜렷한 수명연장효과도 없이 삶의 질만 떨어졌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의료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검진 혹은 치료방향을 결정하기 위하여 제공되는 정보들은 통계와 확률자료 표시되기 때문에 자료를 설명하는 의사들조차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 혼란스러울 때가 많고, 이를 듣는 환자 역시 질병에 대한 위험이 지나치게 심각한 인상을 받거나, 치료효과를 과대평가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습니다. 현대의학이 사례를 중심으로 한 전통의학의 감각적인 치료행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례들에서 추출해낸 공통점을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치료결과를 보다 분명하게 추론할 수 있게 된 데 힘입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생각의 오류; http://blog.joins.com/yang412/12081937>에서 토머스 키다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통계수치보다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천성을 가지고 있어 오류를 빚어내기도 합니다. 전문가들 역시 명쾌함, 확실성, 보편성, 낙관성, 실행 가능성, 호감도, 파격적인 주장, 이야기, 숫자, 회고적 관심 등을 기대하는 비전문가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노력하다 보면 중요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측정, 잘못된 자료의 측정, 잘못된 동물시험 연구, 원하지 않는 자료의 폐기, 골대 이동, 교란변수, 숫자조작,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오류 등과 같은 비의도적 혹은 의도적으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데이비드 프리드먼 지음,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지식갤러리, 2011; http://blog.joins.com/yang412/12252515).

 

통계를 전공한 최제호박사는 <통계의 미학; http://blog.joins.com/yang412/10041937>의 서론에서 “동일한 출처의 통계자료가 각기 다른 해석과정을 거쳐 서로 상반된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 통계자료를 근거로 한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는 ’통계자료 이해‘능력은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적었습니다. 통계자료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불필요한 걱정을 덜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거렌처소장은 프로작의 부작용, 유방암촬영술의 양성 결과,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DNA흔적에 대한 검사, HIV검사의 악몽 등과 같은 현대의학을 대표할 수 있는 검사법의 한계를 인용하여 불확실성을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알아야 될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세금 말고 확실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벤저민 플랭클린의 말을 참고하여, 기술은 심리학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적 기술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저자가 ‘프랭클린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우리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이 세계의 불확실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독자들에게 ‘무엇이 진실인가?’라고 묻습니다. HIV 검사에서 양성결과가 나왔다는 통지를 받고 절망에 빠진 20대 여성이 에이즈 환자들과 콘돔 없이 섹스를 했는데 몇 달 후에 다른 질병으로 검사를 다시 했더니 첫 번째 검사결과가 틀렸더라는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진실은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에 저자는 ‘확실한 것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유방암 검진, 에이즈, 폭력, 재판, DNA 지문,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 등에 관하여 꼼꼼하게 분석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안젤리나 졸리의 예방적 유방암절제술의 사례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계산맹’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용어를 써서 ‘수치’, ‘통계’, ‘확률’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혼란 속으로 몰고 들어가는 ‘확률’로 표현하는 방식을 ‘자연 빈도’로 바꾸게 되면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 시술을 통하여 예측할 수 있는 생존가능성이나 특정 시술이 가지는 위험성을 확률로 표시해왔고, 환자들 역시 이런 표현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범죄현장에 남아 있는 생물학적 증거물을 바탕으로 한 DNA검사가 범죄자를 밝혀주는 거의 확실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즉, 피고인의 DNA가 범죄 현장에서 찾아낸 DNA와 일치한다면 피고인이 그 흔적의 원천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일치가 피고인이 유죄인지, 심지어는 흔적의 원천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HIV검사처럼 인적 혹은 기술적인 문제로 실험실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매우 드물게는 또 다른 사람이 같은 DNA패턴을 가질 수 있다는 점과 그 흔적이 피고인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일부러 피고인의 흔적을 범죄현장에 가져다 두었을 가능성, 그리고 피고인이 범죄와 무관하게 사건 전후에 현장에 등장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미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OJ심슨사건을 인용하여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생물학적 증거물에 대한 DNA검사의 한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고위공직자의 혼외아들 여부와 관련하여 유전자검사가 화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친자관계를 밝혀주는 DNA검사를 하면 모든 정황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최근 수행된 DNA분석결과 서방국가의 전 인구 가운데 대략적으로 5~10퍼센트 정도는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남성과는 다른 인물을 생물학적 아버지로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친자관계 검사 시장이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미국의 경우 1997년에 24만 건의 친자확인검사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시류를 나타내는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가장 붐비는 고속도로 위에 설치된 광고판에는 ‘누가 아버지일까?’라는 분홍색 네온사인 광고가 있다. 아이의 어머니, 아이, 그리고 추정상의 아버지에게서 채취한 표본을 가지고 광고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500달러만 내면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244쪽)” 우리나라에서 처럼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조건은 없는 모양입니다. 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태어나는 아이 100명 중 2명 수준인 혼외자녀에 대해 어떠한 사생활 폭로와 인권침해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는 대조된다고 하겠습니다(중앙일보 10월 6일자 기사, “‘혼외자녀’ 출생 급증세…지난해 만 명 넘어”; http://blog.joins.com/yang412/13239391).

 

“나는 DNA 지문검사를 할 수 있다는 단순한 가능성만으로도 친자관계를 부인하는 행동을 끝낼 수 있고, 어머니의 성생활을 들춰보는 행동을 막을 수 있으며,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지원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242쪽)”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DNA검사가 친자관계를 밝히는데 결정적 단서가 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DNA분석검사 역시 불확실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DNA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데 한계를 가지는 것처럼, 인적 혹은 기술적인 문제로 실험실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점, 매우 드물게는 또 다른 사람이 같은 DNA패턴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누군가 일부러 검사표본을 바꿔치기 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이 DNA검사의 한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고위공직자와 관련된 사건에서 DNA검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새로운 논란이 시작되는 전환점이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과정에서 보인 해당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두고 어떤 신경정신과 의사는 “법조 최고의 엘리트 중 한 사람 아닌가. 법적 사유체계(legal mind)에 기초해 신중하고 냉정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본다. (중략) 현재 상황에서 유전자 검사는 쉽지 않기 때문에 최종적인 진실 규명이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중앙일보 10월 6일자 기사, ‘모른다고 일단 부인 상황 봐가며 수위조절’; http://blog.joins.com/yang412/13239278)”라고 했을 것입니다.

 

읽다보니 저자의 주장에 의문이 가는 대목도 있습니다. 자동차를 탈 수 있는 게임쇼 몬티홀 문제입니다. 세 개의 문을 열면 두 개의 문 뒤에는 염소가 있고, 하나의 문 뒤에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의 문을 골랐을 때,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진행자가 다른 하나의 문을 열어 염소를 보여주었을 때 당신은 고른 문을 버리고 다른 문을 열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저자는 선택을 바꾸는 것이 확률을 2분의 1에서 3분의 2로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확률은 여전히 2분의 1인 것 같습니다. 당신이 자동차가 있는 문을 골랐을 때, 진행자가 열 수 있는 문이 두 가지라는 것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묶은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틀렸을까요?

 

‘계산된 위험(Calculated risk)’라는 원제처럼 골치 아픈 통계에 관한 책입니다. 골치 아프다고 피하기만 하다가는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꼭 읽어보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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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0-07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처럼님.
제가 첨언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셔서.
몬피홀 문제에서 문door의 갯수가 3개면 혼돈을 줄 수 있지만, 문이 100개로 가정하고 98개의 문을 여는 것으로 상상하시면 보다 이해가 쉬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처음처럼 2013-10-09 12:45   좋아요 0 | URL
문을 100개로 늘리면 경우의 수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문3개가 간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수학적 개념이 부족한 수학맹의 짧은 생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주시면...
 
나는 고발한다 - 해제ㅣ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7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사라진 알베르틴; http://blog.joins.com/yang412/12927835>에서 프루스트는 드레퓌스 사건을 두고 파리의 살롱가의 분위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참모본부에서 일어났던 간첩사건의 범인으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드레퓌스가 지목되어 군사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과정에서 진짜 범인이 드러나면서 프랑스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던 반유대주의에 편승하여 진보와 보수가 갈려 오랫동안 대립하게 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당대의 문인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격문 ‘나는 고발한다’를 로로르〈L'Aurore〉지에 게재한 것이 반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린 로로르지는 몇 시간 만에 30만부 이상 팔리면서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학생, 작가, 예술가, 과학자, 교수들의 대대적 지지가 이어져 여론의 향방을 돌려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1897년 12월부터 1900년 12월까지 3년 동안 모두 13편의 글을 썼고, 1901년 이글들을 묶어 <멈추지 않는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는데, 이 가운데 ‘브리송씨에게 보내는 편지’와 ‘상원에 보내는 편지’를 뺀 11편을 옮겨 담은 것이 <나는 고발한다>라고 합니다. 구조적 폭력이 진실을 억누를 때마다 드레퓌스 사건이 인용되는 것은 좌파와 우파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현대 프랑스 사회의 지식인 지도 및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라는 명제로 요약되는 프랑스 사회의 지적 전통이 바로 드레퓌스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난 것은 1894년임에도 불구하고 졸라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 11월 25일 르 피가로지에 사건을 본격적으로 이슈화했던 쉐레르 케스트네르 당시 국회부의장에 대한 글을 실으면서입니다. 이어서 유태인의 ‘조합’이 드레퓌스 사건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보수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 그리고 대중을 오도하고 있는 언론의 행태와 모든 시민이 동등하다는 관용의 정신을 배신하는 반유태주의에 대한 졸라의 신랄한 비판의식을 담은 조서가 이어집니다. 르 피가로지가 보수측의 압박을 받아 졸라의 글을 더 이상 실을 수 없게 되면서 졸라는 ‘청년에게 보내는 편지’와 ‘프랑스에 보내는 편지’를 팜플렛형태로 제작하여 판매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가다가 로로르지가 나서면서 앞서 말씀드린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으로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게 되고 끓어오르던 분위기가 폭발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편지가 계기가 되어 의회는 찬성 312표 대 반대 122표로 졸라를 기소하기로 의결하였는데, 표결결과를 보면 드레퓌스사건을 보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즉 보수적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은 “죄없는 한 인간이 악마도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한 인간의 이익 때문에 온 나라가 이 같은 혼란에 빠져도 좋다는 말인가?(117쪽)”라는 분위기를 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프랑스는 언제나 정의롭고 아름다운 대의를 위해 스스로 불타올랐기 때문에, 우리는 전 프랑스 앞에서 우리가 군대의 영예, 국가의 영광을 원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사법적 오판이 저질러졌다. 그리고 그 오판이 수정되지 않는 한, 프랑스는 마치 암에 걸린 것처럼 자기도 모르는 새 조금씩 썩어가리라. 만일 프랑스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도려내야 할 환부가 있다면, 반드시 그 환부를 도려내기를!(42쪽)”를 명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졸라는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고발한다>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기념비적 작품에 머물지 않고 오늘 날까지 진실을 가리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행동하는 양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옮긴이께서는 한국 사회에서,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지난날, 보안사령부,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등 서슬 퍼런 국가 안보기관들에 의하여 자행된 일들을 기억하자는 말씀을 하였습니다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구 차례에 걸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민주화된 국가임을 볼 때, 진보가 옳고 보수는 그르다는 전제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던지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양심세력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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