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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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여행이라는 독특한 여행 프로그램을 다룬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 여행계획을 세워 가족들과 같이 여행을 해본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여행을 위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고, 여행사에서 기획한 여행상품을 이용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여행은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고은 작가님이 <밤의 여행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재난여행이라는 상품은 전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들이 다양해질 것임을 내다보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재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씽크홀 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미리 알 수 없는 자연재해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직접 관련이 있는 재난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만, 일본정부가 공허한 목소리로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물질의 누출을 유발시킨 쓰나미가 우선 떠오르고, 적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던 동남아 쓰나미 등이 떠오릅니다.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제가 일하던 대한의사협회에서 응급구호팀을 신속하게 현지에 파견하여 응급의료활동을 펼쳤던 적도 있습니다만, <밤의 여행자들>에서 다루는 재난여행은 재난이 발생한 지역을 구경하거나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여행상품이 아니라 재난현장을 돌아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재난으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는 현장학습의 기회라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고 정리하고 재난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밤의 여행자들>은 재난여행을 기획하는 여자 주인공이 기획능력이 한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 일종의 삶의 과정에서 발생한 재난을 수습하기 위하여 회사에서 판매중인 재난여행상품에 참가하여 여행상품으로서 유지 여부를 평가하는 마지막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재난여행상품을 파는 여행사가 ‘정글’이란 이름을 가진 것도 어쩌면 평범한 회사원이 동료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살아남는 정글과 같다는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난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 재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름대로의 느낌을 얻게 되는 여행이지만, 일단은 여행이 안전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인솔자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주인공이 철두철미하다면 이야기가 밋밋하게 흘러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장치하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주인공이 보여주는 대응과 타협과정을 읽는 사람이 기대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고요나과장은 남자 작가와 남자 대학생 그리고 여자 교사와 그녀의 딸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된 재난여행팀으로 베트남 해변에 있는 싱크홀 재난지 무이섬을 찾게 됩니다. 무이섬에 살던 운다족과 카누족의 거주지를 두고 끔찍한 살육이 있은 다음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그 결과 사막에 생긴 싱크홀이 재난여행의 주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일주일로 예정된 일정을 경험하면서 무언가 짜여진 각본에 따라서 돌아간다는 느낌이 남지만 일행들은 여행을 모두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이 다루는 재난여행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고요나과장의 귀국길에 시간의 틈새를 만들어 일행으로부터 이탈하도록 만들고 결국은 무이섬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되돌아간 무이섬은 상품으로 여행하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재난 여행지로서의 무이 역시 한계에 이르고 있는 상황, 이런 재난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이섬을 소유하게 된 폴의 숨겨진 계획이 등장하면서 고요나과장은 새로운 재난여행상품을 설계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상품을 기획하기 위하여 현지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무이섬에 사는 사람들의 아픈 과거와 무력한 현재가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윤고은 작가님의 <밤의 여행자들>을 저는 미스터리물로 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펼쳐놓은 다양한 장치가 담긴 이야기를 구구절절 소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위기상황과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노력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문학평론가 강유정님이 작품해설을 통하여 정글의 질서에서 이탈한 주인공 요나가 무이에서 만난 럭을 통하여 감수성을 회복하고 숭고한 세계를 완성했다고 보았습니다만, 정글이라는 일상에서 살아남는 것, 즉 질서에 순응하는 것 역시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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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함께한 여행 -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를 찾아서
존 스타인벡 지음, 이정우 옮김 / 궁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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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태양, 바람 그리고 사막; http://blog.joins.com/yang412/13242002>를 읽으면서 건조해질 수 있는 여행기에 다양한 읽을거리를 인용하여 심심할 겨를이 없도록 한 점이 특별하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영주님이 미국의 남서부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오래 전 읽었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였다고 해서 저도 그 책을 읽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르던 개 찰리와 함께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돌아본 존 스타인벡이 <찰리와 함께 한 여행>이란 기록을 남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자신이 직접 주거가 가능하게 설계한 차 ‘로시난테’에 애완견 ‘찰리’를 태우고 4개월에 걸쳐 34개주에 달하는 미국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보고 느낀 미국과 미국인의 모습을 <찰리와 함께 한 여행>에 담아냈습니다. 그가 이 여행을 한 것은 58세가 되던 해였으니 1960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미국의 모습이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인벡이 미국일주여행을 꿈꾸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내가 내 나라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관해서 글을 쓰는 미국 작가이지만 나는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왔다. 그런데 기억이란 기껏해야 결점과 왜곡투성이의 밑천일 뿐이다.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또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 간단히 말해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써왔던 셈이다. 이른바 작가라면 이것은 범죄에 해당될 일이다. (…) 그래서 나는 다시 내 눈으로 과연 이 거대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다시 발견해보리라 마음먹었다(13쪽).”

 

책을 펴면 먼저 저자의 여행경로를 표시한 미국지도를 만나게 됩니다. 저자가 롱아일랜드에 있는 자신의 별장이 있는 새그항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메인주를 빙돌아 미국의 북쪽에 위치한 주들을 지나 서해안의 시애틀에 도착한 다음, 남하해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고향인 설리너스에 머물렀다가 모하비사막-프래그스태프를 거쳐 텍사스에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이 부딪히는 현장을 지켜보고는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한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정에 관한 저자의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지도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자기 주위에 펼쳐지는 다채로운 자연 풍경보다는 채색된 지도에 더 많은 주의를 쏟는 것이 기쁨이다. (…) 또 다른 유형의 여행가들도 있다. 그들은 노상 지도상으로 자기네가 어떤 지점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든다. (…)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다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 물론 저자처럼 발 가는대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부럽기만 한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적, 재정적 고려가 불가피한 대부분의 여행가로서는 효율적으로 여정을 짤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명소를 돌아보는 일반 여행가와는 달리 스타인벡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을 재발견하기 위한 탐험여행이었기에 우연히 보통의 미국인을 만날 수 있도록 일부러 큰 도로를 피해 덜컹대는 시골길을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생각과 감정, 고민을 발견하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여러 가지 관습, 태도, 신화, 방향, 변화가 있으며, 이것들 하나하나가 미국이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 되어 있는 성싶다. 나는 이런 것들을 처음 나의 주의 속에 들어왔던 그대로 논하고자 한다.(83쪽)”

 

제가 참 좋아하던 장소, 배드랜드에 대한 스타인벡의 느낌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승 같은 그 고장을 벗어나려고 나는 줄행랑을 쳤다. 그러자 늦은 오후가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해가 기울어짐에 따라 가파른 산과 협곡, 벼랑과 풍화된 언덕 그리고 작은 골짜기들이 불에 탄 듯한 그 무시무시한 모습 대신 노란 빛과 짙은 갈색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또한 붉은 은회색이 끊없는 변화를 보이며 그 사이사이 새까만 줄무늬가 스며들었다.(219쪽)” 각각 다른 시간과 날씨에 세 차례 방문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었던 곳, 배드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조만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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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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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보면 소설 속의 장면을 마치 그림 그리듯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 이유를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 http://blog.joins.com/yang412/12935937>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술 특히 그림에 아주 관심이 많았던 프루스트는 평생을 바친 자신의 유명한 소설에 대해 “나의 소설은 그림이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파묵은 이러한 점에서 프루스트와 비교할 만한 작가로 헨리 제임스를 꼽았습니다. “헨리 제임스는 ‘내 이야기를 본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서술자를 ‘화가’로 부릅니다. 사건과 거리를 둔 채 그다지 관여하지 않고, 도덕적 고민에도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임스는 소설 창작은 항상 단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여기고, 자신의 서문과 비평에서 ‘파노라마’, ‘그림’, ‘화가’같은 표현을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또는 은유로 계속 사용한 작가입니다.(오르한 파묵 지음, 소설과 소설가, 109쪽)”

 

리얼리즘 소설의 정점을 보여주었으며 모더니즘 소설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되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영국의 한 저택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던 젊은 여성이 유령을 목격한다. 혼자 걷던 산책길의 오래된 탑 위에, 세차게 펄럭이던 촛불이 꺼진 어둠 속 계단 꼭대기에, 아무도 없는 주방의 창밖에, 한적한 오후 호수 건너편에, 누군가 나타난다. 가정교사는 그 집에 유령이 나온다고 확신하고 자신이 돌보는 순진무구하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아이들을 유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호러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다양한 문학작품들이 유령을 소재로 다루는 것은 읽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나사의 회전>은 대표적인 유령소설이자 최초의 심리소설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작가가 몇몇 사람들과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어 듣는 모임에서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화자가 젊은 시절 영국 시골의 고성에서 경험했던 유령에 관한 이야기를 사십년 넘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유는 너무 무서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라고 운을 떼는 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방과 후에 뒷산에 올라 이야기꾼인 친구로부터 귀신이야기를 듣는 과정과 아주 흡사합니다. 매일 오후 조금씩 끊어서 연속극처럼 듣던 무서운 이야기는 결국 수학여행갔던 날 밤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 친구는 자정을 치는 시계소리, 심야에 들리는 누군가의 무거운 발자국 소리 등, 효과음을 실감나게 추임새로 넣어가면서 우리들의 심장을 옥죄어가곤 했습니다.

 

어떻든 이 책의 제목이 나사의 회전인 이유를 저자는 “어린아이와 관련된 감칠 듯한 이야기치고 (…) 만약 어린아이 하나가 나사를 한 번 더 죄는 효과를 낸다면, 어린아이가 둘일 경우 (…) 두 번 죄는거죠!(8쪽)”라고 했는데, 나사를 죄는 만큼 감칠맛이 더 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화자가 유령을 처음 목격하던 순간은 긴 하루가 끝날 무렵이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알기에도 유령이 출몰하는 시간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떻든 작가는 화자가 유령을 목격한 순간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두 개의 탑은 (…) 번드레한 옛 모습으로 보건대 이미 상당한 과거가 되어버린 낭만주의 양식의 복고물이었다. (…) 내 기억으로 이 형상은 청명한 황혼 속에서 나의 내부에 다급하고 선명한 두 가지 감정을 유발했다. 그것은 처음의 놀라움에서 온 예리한 충격에 이어, 두 번째 놀라움에서 온 충격이었다.

 

화자는 마일스라는 남자아이와 플로라라는 여자아이를 맡았는데 화자가 만나는 유령은 이전에 아이들을 맡았던 가정교사 제셀양과 주인이 데리고 왔던 집사 피터 퀸트씨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마치 유령과 모종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화자 이외에 다른 사람들 역시 유령을 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화자의 시선을 따라 상황을 상상해가면서 읽어가다 보면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령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화자의 환상의 결과물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헷갈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해답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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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다시 쓴다
샘 파르니아 & 조쉬 영 지음, 박수철 옮김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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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제가 오랫동안 쥐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샘 파르니아교수의 <죽음을 다시 쓴다>는 제목만큼이나 매혹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죽음을 되돌리려는 의사들의 노력을 재조명하고 죽음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며 죽음 이후의 생명현상까지도 살피고 있습니다. 즉 ‘소생의학’과 ‘임사체험’에 관한 연구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소생의학은 익사(溺死) 혹은 급성 심기능장애로 심장이 멎은 사람의 심장기능를 되돌리려는 의학적 노력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일반에는 심폐소생술로 알려진 의학적 술기를 발전시키는 분야입니다.

 

올해 초에 같이 일하는 분들과 함께 대한심폐소생협회에서 주관하는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088893). 35년 전, 인턴 때 응급실에서 해본 이후로는 처음이었는데, 세월이 오래 흐른 탓인지 이론도 많이 바뀌고 장비도 간편해져 실생활 공간에서도 응급상황을 맞게 되면 누구나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학드라마를 보면 할 만큼 했다고 하면서 중단할 것으로 권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만, 그 할 만큼 했다고 하는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심정지로 인하여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심폐소생술을 중단해도 좋다는 권고가 마련되어 있는 정도로,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다시 쓰다>에서는 놀라운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뉴욕 장로교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였을 때 심장이 멎은 운전기사 조 티랄로시를 살리기 위하여 의료진은 40분이 넘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뇌손상없이 가족들 곁에 돌아갈 수 있었던 사례를 비롯하여 추운 날 길에 쓰러져 저체온증에 빠진 이룬 베이슨이 병원에 도착해서 심정지가 일어났는데, 무려 3시간 반에 걸친 심폐소생술 끝에 역시 인지장애 없이 사회에 복귀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의 공통점은 자연상태에서 혹은 심정지 발생 이후에 저체온을 유도하여 뇌세포의 대사를 떨어뜨려 손상을 억제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최근에 개정된 심폐소생에 관한 기준에서는 저체온의 효과에 대한 근거가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심장박동이 정지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던 심장사에서 인공적으로 심장을 뛰도록 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신체기능을 총괄하는 뇌의 기능이 중단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뇌사로 바뀐 사망의 정의에 대하여도 뇌사의 기준을 적용하는데 있어 한계가 드러나는 사례들이 간혹 발표되고 있다는 사실과 산소공급이 차단되면 빠르게 사멸한다고 알려진 뇌세포 가운데 일정 시간이 경과된 다음에 적절한 상태에서 배양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뇌세포의 생존만으로 뇌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죽음의 정의를 뇌사에서 뇌세포사의 수준으로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두 번째 핵심주제는 ‘임사체험’에 관한 의학적 연구 수준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실 임사체험을 다룬 책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제프리 롱과 폴 페리가 같이 쓴 <죽음, 그 후; http://blog.joins.com/yang412/12832081>에서는 임사체험의 사례연구를 통하여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임사체험은 그것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진짜인 것처럼 보였겠지만, 죽음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심리학적, 화학적 변화가 그런 환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고 하면서 임사체험을 영혼의 존재 가능성을 연계하는 듯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장정지 이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 중에 대략 10~20퍼센트는 실제사망체험의 여러 가지 특징을 기억해내는 반면 나머지 80~90퍼센트는 아무런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점,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유체이탈을 입증하는 실험적 데이터가 없다는 점 등이 아직 임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죽음, 인간의 정신과 뇌 사이의 관계, 임사체험 등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선도하는 전문가로, 어웨어 연구(AWARE Study, AWAreness during REsuscitation)를 이끌고 있는 저자의 독특한 점이 잘 녹아 있어 다루고 있는 주제에 관하여 의학적 인문학적 접근이 돋보인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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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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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기를 마친 오르한 파묵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서양문명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유입된 서양문명이 터키의 전통으로 대표되는 동양문명과 충돌하는 현상을 다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얀성;  http://blog.joins.com/yang412/12975968>에서 쌍둥이처럼 닮은 주인공들인 베네치아에서 노예로 잡혀온 학자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학자가 서로의 고향에서 살게 된다는 마무리를 통하여 동서양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6년 스웨덴 한림원이 파묵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블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216쪽)”고 말한 배경이 이해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실 터키는 지중해를 두고 마주하고 있어 그리스 시대로부터 끊임없이 교류해왔다고 볼 수 있어 문명 간의 충돌이라기보다는 교류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철학, 의학, 천문학 등 다양한 학문의 영역에서 두 지역의 학자들의 연구성과들이 서로 영향을 주어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충돌을 말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태동하여 유럽으로 건너가 꽃을 피운 기독교문화와 이 지역을 지켜온 이슬람문화라는 종교적 배경이 충돌을 빚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양과 서양문명의 차이를 가늠한다고 한다면 근대에 이르기까지 교류의 양이 많지 않았던 동아시아 문화와 유럽문화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지역의 경계가 희미해질 정도로 세계는 뒤섞이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의 리처드 니스벳교수님의 <생각의 지도>는 좋은 기획이라 생각합니다. 서론에서 저자는 동양에서도 지역적으로 그 문화에서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은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유교문화권의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과 유럽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생각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 것인지를 찾으려고 했다고 적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의 사고를 이해함으로써 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20쪽)”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가 요약한 이 책의 내용은 1장에서는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동서양 사고의 전형적인 예로 들면서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의 차이를 살피고, 2장에서는 사회적 행위, 특히 자기 개념에서 두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소개하였습니다. 3장에서 6장까지가 이 책의 핵심인데 현대의 동양인과 서양인이 지각하고, 사고하고, 추론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차이들을 비교하였습니다. 7장은 그러한 문화적 차이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살피고 8장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의 차이가 심리학, 철학, 그리고 일상생활의 분야에서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다루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최인철교수님께서 니스벳교수님을 사사하면서 공동연구를 진행한 때문인지 한국, 한국인에 대한 연구도 적지 않게 인용되어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선물로 주는 볼펜을 고르게 하는 실험에서 미국인들은 대체로 희귀한 색의 볼펜을 고르는 반면 한국인들은 가장 흔한 색의 볼펜을 고르는 경향을 두고, 미국인들은 항상 남의 눈에 띄고 싶어하나 한국인들은 늘 남들 정도만 되고 싶어한다고 해석했다고 하는데, 현재의 시점에서 같은 실험을 한다면 저를 포함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희귀한 색깔의 볼펜을 고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즈음 우리사회현상과 관련하여 주목할 대목을 인용합니다. “한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북한은 전적으로 실패한 체제를 고수해온 나라이다. 따라서 한국과 북한을 비교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논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면 모두가 한국의 우월성을 인정할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전통이 없는 한국인에게는 옳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77쪽)”

 

고대 그리스와는 달리 고대 중국이 문화적 동질성이 강했고, 오늘날 중국인의 95%가 한족출신이고 50여개가 넘는 소수민족들의 대부분이 중국의 서부에 한정되어 거주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기는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동아시아 문화와 서양의 문화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잘 짚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에필로그의 질문에 대하여 저는 서로 융합되어 진일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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