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린저 평전 - 영원한 청춘의 상징,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케니스 슬라웬스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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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 http://blog.joins.com/yang412/13330946>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추천되는 필독서로 꼽히는 책입니다. 1951년 출간되어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책이 꾸준하게 주목을 받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나온 책에는 작가의 이름과 책 제목만 적혀있을 뿐이며, 띠지에 젊은 시절의 작가의 사진이 곁들여져 있고, ‘1951년 출간된 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정신을 뒤흔들고 있는 문제작’이라는 카피가 눈에 띌 뿐 뒷표지에 나열되는 추천의 글이나 옮긴이의 해설, 심지어는 작가의 연보마저도 생략되어 있는, 읽는 이를 위한 서비스정신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불친절한 편집입니다. 아무리 문학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전적으로 읽는 이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된다고 해도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안내는 필요한 것 아닐까요?

 

위키백과사전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크리스마스 휴가 바로 전에 펜시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홀든의 72시간, 3일의 생활을 다룬다. 이미 여러 학교에서 쫓겨났고 부모님을 마주 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홀든은 학교를 일찍 떠나고 뉴욕 시에서 홀로 며칠을 보내기로 하지만, 뉴욕에서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채 서서히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다. 끝에서 독자는 홀든이 자신의 심리학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텍스트의 서두부분에서 “이건 전부 형인 D. B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이다. 형은 할리우드에서 살고 있다. 그곳은 이 지저분한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고, 형은 주말마다 나를 만나러 오곤 했다.(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호밀밭의 파수꾼, 10쪽, 민음사, 2001년판)”라고 하였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병원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많은 것을 묻고 있다’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홀든은 지난해부터 형이 살고 있는 할리우드 부근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아왔음을 유추하게 됩니다.

 

물론 제가 정신과를 전공하지 않아서 놓쳤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2박 3일 동안 홀든의 행적에서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퇴학사실이 집으로 알려지게 되면 아버지로부터 야단을 맞을 것으로 두려워하는 점이라거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퇴학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등 때문에 홀든이 정신과치료를 받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반 질병으로 치료받은 사실도 개인의 이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하물며 정신과진료 이력은 피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에 1년 이상 입원치료를 받게 된 배경이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는 점이 저에게는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남았던 많은 의문은 결국 <샐린저 평전>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1919년 1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난 샐린저는 2010년 1월 27일 오랫동안 은거하던 뉴햄프셔주 코니시에서 타계했습니다. 92세에 이르도록 장수하였음에도 1948년부터 1959년 사이에 발표된 1편의 장편소설과 13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그는 1965년 이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세인의 눈을 피해 코니시에 은거하여 살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삶이나 작품에 대한 관심을 극단적으로 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샐린저 평전>의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샐린저가 타계하기 이전부터 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해왔다고 합니다. 샐린저가 데뷔할 무렵에는 신문과 잡지, 그리고 책이 정보의 흐름을 주도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세인의 관심을 벗어나기 위한 샐린저의 노력이 어느 정도는 통할 수 있었겠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이런 노력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하겠습니다. 슬라웬스키가 샐린저에 관한 웹사이트를 7년 동안 유지하고, 그 노력의 결실로 <샐린저 평전>을 낼 수 있게 된 것도 인터넷의 확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샐린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처럼 샐린저의 학창생활은 홀든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합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와중에서도 샐린저 가족은 부를 쌓아 사회적 지위를 높여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제롬은 웨스트사이드의 공립학교에서 YMCA가 운영하는 맥버니학교로 전학하였고, 여기에서 연극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을 뿐 아니라 펜싱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고 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지하철에서 펜싱장비를 잃어버리는 일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은 퇴학처분을 받게 되면서 벨리 포지라는 사관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이 곳은 홀든이 다니는 기숙학교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홀든과는 달리 제롬은 벨리 포지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어시너스 대학교를 거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특히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스토리>의 편집자인 휘트 버넷이 가르치는 단편소설 작법 수업과 시인이지 극작가였던 찰스 핸슨 타운의 시 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버넷은 샐린저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였고, 샐린저는 휘트 버넷을 정신적 지주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버넷이 샐린저의 재능을 키워가는 과정도 주목할 만합니다. “휘트 버넷은 샐린저를 응석받이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월요일 수업 때 매번 뒷줄에 앉아 있던 청년에게서 문학적 천재성을 발견하고, 곧장 명성을 안겨 준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버넷은 샐린저 스스로 성공을 찾아가도록 안내했다. 정신적 지주로서 버넷은 자기 제자의 글을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스승으로서는 자기 제자가 먼저 다른 방법들을 모두 시도해 보기를 바라고 있었다.(53쪽)” 멘토가 멘티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범을 보는 것 같습니다. 버넷의 뒷받침으로 샐린저는 1940년 1월 잡지 <스토리>에 ‘젊은 친구들“이라는 단편이 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9월에는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에 ’부서진 이야기의 핵심‘이 실렸고, 10월에는 그가 목표로 삼았던 <뉴요커>에 ’매디슨에서 시작한 작은 반란‘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작품은 홀든 모리시 콜필드라는 뉴욕출신의 불만 가득한 청소년이 등장하는 자전적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입니다.

 

이 무렵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면서, 샐린저도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이 무렵만 해도 자신의 작품이 잡지에 실릴 수 있도록 다양한 궁리를 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의 작품을 할리우드에 팔아볼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 관심을 두고 있던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의 관심을 끌어서 좀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무렵 샐린저는 어느 정도 상업주의에 경도되고 있었는데, 군복무와 글쓰기를 병행하기에 가벼운 작품을 쓰는 것이 더 쉽고 고료도 좋았다는 것입니다. 1944년 1월 29일 조시워싱턴호를 타고 영국의 리버풀에 도착한 미군부대에는 샐린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샐린저의 독일어와 프랑스어 구사능력은 그를 방첩부대에 배속하게 하였고, 전투 중 첩보활동, 사병대상 안보교육, 점령지 수색, 적군 및 민간인 탐문 등의 활동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투가 치열해지다 보면 전장 한 가운데 서있게 되고,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참전경험은 그를 변하게 했는데, 어렸을 때보다 더 거칠어졌고, 덜 섬세해졌다고 합니다.

 

전투의 사이사이에 작품쓰기를 계속했는데, 그 배경에는 대학시절부터 그의 글을 보아온 휘트 버넷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단편만 쓰고 있는 샐린저에게 장편소설을 써보라는 버넷의 격려에 힘입어 샐린저는 조각조각 나누어서 글을 쓰는 방법을 택하여 길이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체를 엮으면 하나의 장편이 될 수 있는 단편을 쓰는 방식입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 많은 참전용사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는데, 샐린저는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모든 참전 용사들을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했습니다. 특히 1950년 4월 <뉴요커>에 실린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과 누추함을 담아’라는 작품은, 2차 세계대전 후 참전 용사들이 겪고 있던 트라우마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참전 당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이 고통스럽게 견뎌낸 일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전쟁 경험이 던진 질문들, 삶과 죽음의 문제, 신의 문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그 깨달음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문장, “누구에게든, 무슨 이야기든 하지 말기를. 그러면 모든 이들이 그리워지지 시작할 테니까”에 녹아 있다고 했습니다.

 

잡지 <뉴요커>는 샐린저의 글에서 문장의 정확함, 특히 자연스럽게 흐르며 소리 내 읽었을 때도 듣기에 좋은 대사를 써내는 능력을 알아보았다고 합니다만, 샐린저가 써낸 많은 단편들은 <뉴요커>를 비롯한 다른 잡지들에서도 거절되기 일쑤였고, 이렇게 거절된 작품을 손을 보아 다른 잡지사에 보내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1944년 휘트 버넷의 격려로부터 영감을 얻은 <호밀밭의 파수꾼>은 1년여의 작업 끝에 1950년 가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르너 풀트가 쓴 <금서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273020>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1951년 런던에서만 출간될 수 있었고, 미국에 수입된 책이 더 이상 압수당하지 않게 되자 1958SYS에 뉴욕출판사가 미국판 출간을 감행했다고 하였는데, <샐린저 평전>에서는 1951년 7월 16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동시에 출간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하더라도 미국내 도덕주의자들의 잣대는 피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특히 열여섯살 소년이 지나치게 음란한 언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우연히 만난 창녀에게 동정을 잃었다는 부분이나, 술집을 전전하면서 꽤 많은 술을 마시는 등의 행위는 청소년이 본받을 만한 모범이 아닐 뿐 아니라 금지된 사항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중학교 학생들의 필독도서로 읽도록 권장되고 있는 현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샐린저가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홀든은 어른들 뿐 아니라 또래의 젊은이들 역시 속물이라고 경멸하고 스스로를 소외시키려 할 뿐 아니라 미래에 자신과 같은 위기를 맞게 될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역할, 즉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줄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뉴욕에 도착한 홀든은 자신이 비난하는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가고 있어, 얼핏 보면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겪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작품을 통하여 이중적 구조들, 예를 들면 위선과 환상을 상징하는 상류층 기숙학교와 부유한 이스트사이드 아파트와 대비되는 허름한 에드먼드 호텔과 홀든이 하루 밤을 보내는 그랜드센트럴역 대합실, 기숙학교를 떠나면서 찾는 스펜서 선생님 댁의 조촐하고 검소한 집과 동성애적 접근으로 홀든을 놀라게 하는 앤톨리니 선생님의 화려한 아파트 등입니다. 이렇듯 대조적인 상황이 교차되는 것은 아직 성장기에 있는 젊은이가 어디를 택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작가로 자리 잡은 샐린저는 작품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유난히 자신의 견해를 앞세워 편집자를 곤혹스럽게 하곤 했다고 하는데, ‘프래니와 주니’의 표지에 적은 “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익명성을 유지하고 세상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에게 두 번째로 소중한 가치일 것 같습니다. 이게 저의 불온한 생각입니다.”라는 글을 보면 샐린저가 뉴햄프셔주의 코니시에 은둔하게 된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샐린저 평전>의 후반부는 어떻게 하면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볼까 애를 쓰는 작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감추려는 샐린저의 극단적인 노력을 적고 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여전히 젊은 세대들에게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의심의 눈초리로 부모세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홀든이 더 이상 기이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구세대를 가르는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는 것이 좋은지를 안내하는 작품은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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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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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한국사 시리즈로 내놓은 첫 번째 책입니다. 책표지에 실린 기획의도를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가 혼란에 빠져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고개 돌려 뒤를 돌아보고자 하는 것은 과거가 단지 슬러간 시간만이 아니라 사람살이의 온축된 지혜이자 훌륭한 경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역사는 과거를 반복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의 문제를 담아 새로운 과거로서 쓰여야 한다.” 모두 열여섯 권으로 기획된 민음 한국사는 다섯 권의 고대편에 서기전부터 9세기, 즉 통일신라 이전의 시기를 정리하고, 이어서 다섯 권으로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고려편을 그리고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편을 그리고 마지막 현대편에서 20세기를 다루게 된다고 합니다. 역사책을 100년 단위로 끊어서 기록하는 것도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시리즈 가운데 조선사를 먼저 보면서 6부작 시리즈를 4부에서 시작한 스타워즈 시리즈 생각을 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후반부에서 시작한 것은 제작을 시작한 1977년 당시에는 에피소드1,2,3편에 등장하는 대규모 전투씬을 실감나게 할 수 있는 기술이 충분하지 못한 것과,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는 4편부터 시작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민음 한국사 시리즈를 조선조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료와 연구성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21세기 오늘의 현실적 관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학생 때 국사와 세계사를 따로 배우면서 느꼈던 점은 서로 연결되지 않아 세계사 속의 한국사, 심지어는 이웃한 아시아 역사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던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음 한국사는 세기를 새로운 서술 단위로 삼으면서 한국사의 큰 주제와 흐름을 종합적으로 조감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세계사의 흐름을 같이 짚어가면서 한민족만의 일국사적 성격을 넘어 tpraP사적 시각 위에서 한국사를 조망함으로써 사상과 문화의 교류, 산업과 전쟁 등 세계와 주고받으며 우리를 만들어온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하였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15세기의 한국사를 열면서 저자들은 정화의 대항해로부터 이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화포와 인쇄술, 나침반과 대항해시대로 이어가면 지구적 변화를 같이 짚어보고 있는데, 이 시기를 “15세기의 세계는 몽골 세계 제국의 유산 위에서 전개되었다. 14세기 후반부터 세계 제국이 쇠퇴하자, 제국의 일부였거나 제국의 영향 아래 있던 각 민족은 저마다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했다.(27쪽)”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원나라가 멸명하고,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가, 중앙아시아에서는 티무르 제국이, 그리고 서아시아에서는 오스만튀르크가 세력을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서 15세기 유라아시아 대륙에서 어떤 사건들이 진행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별도의 지면을 나누어 15세기에 일어난 나라들을 지역별로 소개하기도 하는데, 말레이 반도에 믈라카 왕국(1402~1511), 유구왕국(1429~1879), 남아메리카지역의 잉카제국(1438~1533), 이베리아반도의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Z(1476~ ) 등입니다. 이어서 조선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1402년(태종 2년)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나라에서 들여온 자료를 참고하여 동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세계관에 이슬람지역의 지식까지 담아낸 놀라운 작품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1392년 개국을 한 이래 권력의 안정화를 꾀하면서 영토의 경계를 확장하고, 이어서 통치체계를 구축하는 과정, 농업, 천문, 예악의 정비하고 특히 한글이라는 독창적인 문자를 창제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정 이론을 주장하기보다는 다양한 학설을 검토하고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설로 이끌고 있어 읽는 사람 역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할 여지를 두고 있습니다.

 

태조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시기에 조선왕조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특히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대한 저자들의 냉정한 판단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15세기 중반 조선의 상황은 멀리 중국 고대 국가 주의 초기와 매우 비슷했다. 그때 주공(周公-주 무왕의 동생)은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해 나라의 기틀을 잡은 뒤 깨끗이 물러남으로써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단종의 숙부는 끝내 윤리나 이성으로 정치적 야심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조선 시대 유일한 찬탈 군주가 되고 말았다.(184쪽)”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의 근원을 요즘말로 하면 보수와 진보라고 할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라고도 하는데, 그와 같은 관점을 바꾸어야 할 점이 있을 듯도 합니다.

 

요약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세계사와 연계하여 세계사 안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를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특히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는 각종 자료들은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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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면으로 읽는 세계 명작선 2
알퐁스 도데 외 지음, 박정임 옮김 / 부광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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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이라서 이 책을 읽으려고 한 이유를 잊어버렸습니다. 어쩌면 프루스트 읽기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아무리 목차를 들여다보아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프루스트를 다시 읽다보면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인 까닭에 일부분이라도 읽어볼 요량이었을 것입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인 이 책에서는 모두 9명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생소한 작품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분량이 제한되어 있는 탓에 각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오랜 기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목을 중심으로 발췌 번역을 했기 때문에 한 권의 가벼운 분량으로 다양한 작품들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옮긴이가 마지막 작품 <한 줌의 흙>을 소개하면서 작가 헨리 반 다이크가 뭔가 이야기가 머리에 떠오르면 노트에 적어두고 식탁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 대목은 이 책을 읽는 독자층이 바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될 것을 상정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년이 가지고 있는 천재성을 어떻게 키워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작곡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지만, 그의 삼촌은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쓴 거야. (…) 음악의 세계에서는 교만해져서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아. 음악은 겸손하고 성실해야만 돼. 그렇지 않다면 음악이란 신에 대한 불신이고 신을 모독하는 거야.(46쪽)‘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발췌한 내용이 지나치게 축약되어 이야기의 핵심파악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소설가 비센테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다랑어 낚시>는 어느 해 다랑어 잡이가 호황을 이루자 배를 산 어부가 뒤이어온 흉어기를 버티기 위하여 아홉 살짜리 아들을 배에 태우고 먼 바다에 나갔다가 만난 커다란 다랑어를 잡아올리는 과정에서 아들을 잃고 만다는 이야기인데, 돌아온 배에서 아들을 발견하지 못한 어머니가 발작하듯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죽었어.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갔어. 나도 머지않아 그곳으로 가겠지. 바다로 먹고사는 우리들은 어차피 바다에 먹힐 운명이지. 어쩔 수 없는 거야. 태어난 사람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잖아.(72쪽)“라고 체념한 듯 한 모습을 그리고 있어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절절한 아픔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겠지요.

 

학교에서 친구의 나이프와 은화를 훔쳤다는 오해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게 된 슈라의 억울한 사정을 그린 미하일 숄로호프의 <신체검사>에서도 엄마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구나. 좀 더 크면,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는 더 지독한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단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으니까(90쪽)”라고 위로 같지도 않은 말로 아들을 달래야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외지로 떠난 페르디난트 삼촌이 돈을 많이 벌어올 것이라고 믿는 크누트의 이야기를 담은 크리스찬 엘스터의 <페르디난트 아저씨>도 결말 부분이 쉽게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에 찾아온 페르디난트는 2천 크로넬을 맡기고는 다시 고향을 등지고 마는데, 고향에 찾아온 이유도, 다시 고향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벤저민 플랭클린의 <나의 소년시절>은 그의 <자서전>의 일부이며, 아나톨 프랑스의 <어머니 이야기>는 그의 소설 <피에르 노젤>의 일부라고 합니다. 전체 이야기를 발췌하여 요약한 것이 아니라 일부만 골라서 제목도 다르게 소개하고 있어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전체가 아닌 일부의 이야기를 통하여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위한 책읽기에 경험이 별로 없는 탓이지 싶으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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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이강훈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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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이 되어 아직까지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고양이 요람>의 저자로 알고 있는 커트 보네거트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7년 4월 11일 생을 마감한 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라고 소개되어 큰 기대를 품고 책을 읽었습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은 저자가 1999년에 내놓은 에세이집인데 2011년에 번역이 되었으니 소개가 늦은 셈입니다. 별도 설명은 없습니다만, 닐 게이먼(아마도 영국의 소설가일 듯합니다만)이 2010년 9월에 쓴 서문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보네거트 사후에 나온 것을 저본으로 번역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 <고양이 요람>, <제5도살장> 등을 어렸을 적에 읽고 사랑하게 되었고, 나아가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힌 그는 기자로 일할 때 보네거트를 인터뷰하려고 했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바람에 생전에 보네거트를 만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그가   책의 서문을 쓰기 위하여 저자의 방식대로 사후의 만남을 통하여 대화하는 형식을 취하는 독특한 발상을 해낸 것 같습니다. “커트 보네거트는 천국의 황금아치 밖으로 나와 완벽하게 다듬어진 잔디밭에서 풀을 깍고 있었다. ‘사후의 만남을 다룬 선생님의 책에 대해 인터뷰하러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 ‘솔직히 별로 내키지 않는군’ 그는 말하며 내 표정을 살폈다. ‘이보게, 자네 좋을 대로 쓰게나. 난 죽었으니 상관하지 않겠네.’(6~7쪽)”

 

닐 게이먼이 서문에 썼듯이 보네거트는 임사체험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사후의 세계로 들어가 이미 죽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써냈습니다. 그 가운데는 셰익스피어와 아돌프 히틀러, 아이작 뉴턴과 같은 유명인사들도 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들도 적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사후세계로 들어가는 작업이 텍사스 헌츠빌에 있는 주립교도소의 독극물주사 사형실이라는 점과  시술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하여 잭 키보키언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는 독자 가운데 임사체험을 따라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서문에 적은 “천국의 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내가 어렵사리 깨달은 것처럼, 그쪽에 있는 인터뷰 대상자가 아무리 매혹적이라도 변덕스러운 성 베드로가 기분에 따라 다시 내보내주지 않을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나폴레옹과 애기를 나누기 위해 천국의 문을 넘으면 당신의 친구와 친척이 얼마나 비통해할지 생각해보라. 사실상 그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니까.(13쪽)라는 구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잭 키보키언은 알츠하이머병 등과 같이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환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가 발명한 자살장치를 제공하여 죽음의 의사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1990년 최초 시술 이후에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무죄판결을 받아낸 이래 1998년까지 무려 130여명의 환자를 죽음의 세계로 안내했습니다. 결국 1999년 2급 살인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키보키언은 이 책의 무대가 된 헌츠빌 주립교도소가 아닌 미시간 주 콜드워터 레이크랜드 교도소에 수감되어 8년 6개월간 복역한 다음에 2007년 더 이상 안락사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가 2011년 6월 3일 숨을 거두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2239880).

 

보네거트는 뉴욕의 라디오방송국 WNYC에서 방송하기 위하여 녹음한 것이라고 전제하긴 했습니다만, 사후의 세계에 만난 사람과 나눈 이야기들을 녹음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헷갈리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때로는 가슴을 울리는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요즘말로 돌직구같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를 만나서는 그에게 사람들이 그의 작품으로 생각하는 모든 희곡과 시를 직접 썼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성 베드로에게 물어봐!(80쪽)”라고 답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사후세계에서 이루어진 죽은 이들과의 짤막한 인터뷰들은 다시 현세의 삶을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형식이지만 닐 게이먼이 서문을 마무리하면서 던진 “인생의 목적은, 누가 그것을 지배하든 주변의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7쪽)”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05쪽의 짧은 이야기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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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 - 국회 기자들이 들려주는 대한민국 국회 정치의 모든 것
양윤선.이소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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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있는 국회에서 무슨 일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에는 일가견이 있다고들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많은 우리나라 국민, 아니 모든 국민들이 정치라고 하면 고개를 내젓는다.(5쪽)”고 하신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신율교수님 말씀에 무조건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하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에 있는 연구소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는 저는 의료분야에 대한 자문도 하고, 국회의원실과 현안에 대한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조금은 이해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것, 아니면 굴절된 시각을 가진 누군가를 통해서 듣는 것으로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기 그들처럼 정치를 하는 분들은 아니지만 국회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3자적 시각으로 지켜보아온 분들이 대한민국 정치1번지 국회의 진면목을 가감없이 정리한 책이 나왔습니다. 국회방송의 양윤선, 이소영기자님들입니다. 두 분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처럼 적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정치도 재미있는 것이고, 생각처럼 쉽게 욕할 수만은 없는 거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접하는 정치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공유하고 싶었고, 머나먼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정치가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17쪽)”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크게 국회가 하는 일과 해온 일을 정리한 ‘국회, 대한민국 정치의 시작’과 국회의원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확대경을 들이댄 ‘국회 들여다보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저자들이 하는 일을 소개하는 ‘국회방송 기자로 사는 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국회의원은 할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세금을 축내는 부류로 치부해왔다.(25쪽)”라는 저자들의 말씀에 대부분 공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도 말합니다만, 그래도 그 분들은 바로 우리를 대표하는 분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고 우리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주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해임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님의 인사청문회 장면을 인용하여 국회에서 하는 일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장관 내정자는 해당부처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엄청나게 공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기자분들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공부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여당과 야당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근래 들어서는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저자들 역시 그 대목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싸움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인 집단이다. 따라서 정당끼리 싸움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싸우지 않는 정당은 정당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된다.(93쪽)”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싸움에도 기술이 있고 예의가 있다. 싸움의 목적이 정당을 지지해준 국민들을 수긍케 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생산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에는 금도를 깨는 발언으로 주목받으려고 혈안이 된 분들이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발언은 극단적 추종세력의 카타르시스를 해결해줄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작 얻어야 할 국민들의 마음은 멀리 떠나간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일조했으면 하는 거대한 꿈을 꾸지는 않는다.”라고 하면서도 “다만 나와 같은 정치 무관심 세대가 조금만 더 똘똘해지기를 바랄 뿐이다.(297쪽)”라고 적고 있어, 특히 우리의 젊은이들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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