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신 희곡선 프랑스 고전극 시리즈 2
장 라신 지음, 장성중 외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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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책읽기입니다. 예를 들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스완네 집쪽으로(김희영 옮김, 민음사 펴냄, 2012년 ;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을 보면, “사악한 자의 행복은 급류처럼 흘러가나니(194쪽)”라는 라신의 희곡 <아탈리> 2막 7장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기도 하고, “그때 나는 헛된 장식에 무겁게 짓눌리는 비극 속 여주인공처럼, 내 이마에 머리카락을 모으려고 온갖 매듭을 만들며 공을 들였던 그 성가신 손에게는 불경하게도, 파마하려고 붙인 종이를 떼고는 새 모자와 함께 발로 짓밟고 있었다.(254쪽)”라는 구절처럼 라신의 희곡 <파이드라>의 한 대사를 거의 문자 그대로 인용하는 것처럼 프루스트는 라신의 희곡 작품, 특히 <파이드라>, <아달랴>, <에스더> 등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의미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라신은 모두 열한편의 희곡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1999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낸 <라신 희곡선집>에서 다섯 편을 소개한 바 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에서 2008년에 중복되지 않는 다섯편의 희곡을 번역하여 <라신희곡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라신의 희곡작품 가운데 로마의 역사를 토대로 한 <베레네케>와 <미트리다테스>, 희랍신화를 토대로 한 <이피게네이아>와 <파이드라>, 그리고 구약성서를 토대로 한 <에스더> 등을 담고 있습니다. 다섯 편의 비극은 라신의 후기작품들로서 옮긴이들은 머리말에서 “라신의 비극에 일관해서 나타나는 주제는 사랑이다. 라신의 사랑은 코르네유의 비극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을 선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유도하려는 원동력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외부로부터 역습해오는 정념이다.(5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작품 <베레네케>는 팔레스타인의 여왕 베레네케를 사이에 두고 로마황제 티투스와 코마네케의 왕 안티오쿠스 사이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티투스가 황제에 오르기 전에 동방을 정벌하러 갔을 때 베레네케를 보고서 한눈에 사랑에 빠져 로마로 데려오지만 황제는 이국의 여성과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제한 때문에 베레네케를 추방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안티오쿠스가 사랑을 고백하면서 일이 꼬이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티투스와 베레네케는 역사적 실존인물이라고 하며, 라신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안티오쿠스라는 가공의 인물을 설정하여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비극이라고 하면 주요 등장인물이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 희곡에서는 세 사람이 죽음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고, 베레네케가 두 남성을 버리고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미트리다테스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4각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역시 폰투스 등을 포괄하는 방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미트리다테스왕이 동방에서 데려온 약혼녀 모니메를 두고 왕의 배다른 아들들, 파르나케스와 크리파레스가 동시에 모니메에게 연정을 품게 된 복잡한 상황입니다. 미트리다테스왕은 로마로부터 끊임없이 받고 있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로마로 진격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데, 크리파레스는 로마와 내통한 어머니의 죄 때문에 아버지 미트리다테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반면, 파르나케스는 로마와 내통하여 왕국을 안정화시키려고 합니다. 미트리다테스왕이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내어 로마를 교란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파르타케스와 크리파레스는 모니메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부왕이 생존해있다는 전갈을 받고서 황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라타케스의 모함으로 크리파레스와 모니메를 죽이려던 미트리다테스는 파르타케스가 끌어들인 로마군과 전투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숨을 거두지만, 크리파레스의 용전으로 로마군과 파르타케스를 패퇴시키는 것으로 극이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 역시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다른 결말을 짓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피게네이아>는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http://blog.joins.com/yang412/13137059>에서 잠깐 등장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에서 이피게네이아는 아버지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출정에 나서면서 신탁을 집행하기 위하여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고, 그 때문에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전쟁이 끝난 다음에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신은 아킬레우스와의 결혼을 빙자해서 끌어들인 이피게네이아를 살해하려는 오뒷세이아의 음모에 끌려들지 않은 아가멤논이 이피게네이아를 살리려 하는 등 상황을 엮어가다가 결국은 에리필레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결말을 선택합니다. 라신의 의도대로라면 <오레스테이아>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 셈이니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극은 극일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이드라>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재이기도 합니다. 아테나이의 왕 테세우스의 아내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와 아마존의 여왕 안티오페 사이에서 얻은 휩폴뤼토스를 처음 본 순간 생긴 사랑을 억누르기 위하여 휩폴뤼토스를 밖으로 나돌게 합니다만, 결국에는 휩폴리토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이 오고, 아리키아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휩폴리토스가 파이드라의 고백을 거절하게 되자 앙심을 품고 테세우스에게 휩폴뤼토스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자질하기에 이릅니다. 분노한 테세우스의 명령으로 휩폴뤼토스는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되고, 테세우스는 파이드라의 이간질 때문에 아들이 죽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파이드라 역시 곁에서 일을 꾸미던 오이노네가 죽은 다음에 자신이 꾸민일이라고 테세우스에게 고백하고 독약을 마시고 죽게 됩니다. 이 작품은 라신이 새로운 해석으로 탄생한 <이피게네이아>와는 달리 그리스 신화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희곡 <베레네케>의 첫머리에 당시 국무장관에 임명된 콜베르에 대한 라신의 헌정사가 나오는 점입니다. 궁정작가로 활동한 라신의 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 작품마다 작가가 쓴 머리말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베레네케>의 머리말에서 “스스로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제 주제가 매우 단순하다는 점입니다. (…) 물론 혹자는 제가 특히 정성을 기울인 앞서 언급한 단순성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줄거리가 이렇게 단순한 비극은 연극의 규칙상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 가장 중요한 규칙은 관객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14~15쪽)”라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하여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희곡의 일부를 수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연이 거듭되면서 희곡 자체가 진화하게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판본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무대에 올려진 극을 보는 것은 연출이 해석하고 배우에 의하여 표현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곡은 작가의 집필의도를 읽어가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에 따라 무대에서 극이 진행되도록 상상하면서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극의 줄거리를 요약하다보니 제 느낌을 적을 공간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하여 다시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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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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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9년 가족들의 요구로 진행된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할머니에게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연명치료의 중단은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파장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을 계기로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과거 진료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연명치료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법원이 김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도록 하는 판단을 내린 것이 판례가 되어 연명치료를 중단을 결정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법적 뒷받침이 없다면 의료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연명치료의 중단을 법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진료현장에서 의사결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의료계의 문제제기가 지속되었고, 결국은 의학, 법학, 윤리학 등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명치료에 관한 제도의 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노력의 성과로 지난 해 말에는 보라매사건이 일어난 지 16년 만에 ‘연명의료의 환자결정권 제도화를 위한 관련법안’의 초안이 마련되기에 이르렀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284045).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환자의 결심을 의료진이 뒤집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어, 보완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하여 전향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어울리는 소설작품을 읽었습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입니다. 영국에서는 허용이 되지 않은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해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책입니다. 작가는 2008년 12월 10일 스카이 리얼 라이브즈 채널을 통해 방영된 다큐멘터리 ‘죽을 권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서울신문 2008년 12월 10일자 기사. “영국에서 안락사 장면 TV방영 논란”; http://blog.joins.com/yang412/10315959).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운동신경세포병으로 투병하던 전직 대학교수 그레이그 유어트가 2006년 9월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안락사 지원병원 디그니타스를 방문하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합니다.

 

뉴스는 “그가 ‘온몸이 마비되고, 말할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고, 눈조차 움직이지 못할 때 어떻게 당신의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겠는가’라며 인생의 나머지를 ‘살아 있는 무덤’처럼 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위스행을 택했다”고 말했고, 남편이 죽음을 선택하는 현장에 참여한 아내는 “‘언젠가 당신을 만날 것’이라며 편안한 여행을 하기를 바란다고 기원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 <미 비포 유>로 돌아가서, 프롤로그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맹수들의 싸움터 같은 M&A의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던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가 애인과의 달콤한 밤을 보내는 사이에 밀린 사업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급히 사무실로 나가던 길에 오코바이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빨리 택시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과 동료와 사업상의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블랙베리에 정신이 팔린 윌과 쏟아지는 비에 시야를 빼앗긴 오토바이 운전자와의 불운이 겹치는 바람에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의 삶을 잿빛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는 2년 뒤로 훌쩍 뛰어 우리의 또 다른 주인공, 사랑스러운 루이자 클라크가 운명적으로 윌 트레이너와 만나게 되기까지를 짧게 설명합니다. 그리고서는 무려 500여 쪽이 넘어가도록 루이자와 윌 사이에 벌어지는 달콤 살벌한 로맨스 스토리를 깨알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은 이랬습니다. “우리가 방안에 들어가자, 휠체어를 탄 남자가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 밑에서 올려다보았다. 그 눈길이 내 시선과 마주쳤고, 잠시 무서운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피마저 얼어붙게 만들 듯 소름끼치는 신음소리가 났다. 그는 입가를 씰룩거리더니 한 번 더 이 세상 소리 같지 않은 비명을 질렀다. (…) 아 하나님, 나는 생각했다. 저 이 일 못 해요. 못 하겠어요. 꿀꺽, 세게 침을 삼켰다. 남자는 아직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뭐라도 하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저, 저는 루라고 해요.’ 어울리지 않게 부들부들 떨리는 내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손을 내밀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잡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나서 그냥 힘없이 흔들기만 했다. ‘루이자를 줄인 애칭이죠.’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머리도 어깨 위에 반듯이 자리를 잡았다.(45~46쪽)” 운명의 실타래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를 하나로 엮는 순간입니다.

 

사고로부터 두 사람이 만나는 2년의 시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조금씩 섞어 설명합니다만, 대체적으로 회복가능성이 떨어지는 불치의 병을 앓게 되는 환자가 겪는 심리적 변화를 고스란히 겪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한 퀴블러 로스박사도 69세에 생긴 뇌졸중으로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면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녀 역시 자신의 환자들처럼 분노와 용서와 화해과정을 경험하였고, 종국에는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난 진정한 삶을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인생수업, 이레 펴냄, 2006년; http://blog.joins.com/yang412/9228751)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의 자살시도 끝에 결국에는 유예기간을 둔 다음에 안락사를 받아드리기로 가족들과 합의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아, 윌은 자신의 미래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만한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질병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제롬 그루프먼박사와는 달리 윌을 치료한 의료진이 그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제롬 그루프먼 지음, 희망의 힘, 넥서스 펴냄, 2005년; http://blog.joins.com/yang412/4861986)

 

참고로 윌이 교통사로로 목 부위의 척수에 심각한 외상을 입고 사지마비에 빠졌고, 사고 이후로 1년 정도 받은 재활치료로 경과에 진전이 있었지만, 이후에 별 차도가 없자 치료를 포기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던 모양입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저도 잘 알고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신경과교수님은 디스크파열에 의한 척수외상으로 온 전신마비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부상이 추가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다루도록 요청하여 응급수술을 받았고, 이후 재활치료에 전념한 결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환자진료에 복귀했다는 점입니다.(전범석 지음, 나는 서있다. 예담, 2009년; http://blog.joins.com/yang412/11265830) 전교수님의 재활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수기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치료에 참여한 의료진과 환자 스스로의 간절한 소망이 하나가 된 결과일 것입니다.

 

윌의 어머니 카밀라 트레이너가 면담을 통하여 루이자를 간병인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간병을 넘어 윌의 결심을 번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루이자에게 윌의 간병을 부탁하면서 윌과 가족들 간에 6개월 뒤에 안락사 시술을 받기로 합의한 바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바람에 루이자가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6개월은 루이자와 윌 사이에 환자와 간병인 관계를 뛰어 넘는 감정이 생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내가 맡은 일은 사실상 자살을 못하게 감시하는 일이라고, 처음부터 말해주셨다면 공평했을 텐데요.(170쪽)”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루이자에게 “그 애가 뭔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려면 이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요. 그 애가 계획했던 삶은 아니더라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는 카밀라의 답변에서 가족들의 답답한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루이자는 사지마비환자를 간병하는 단순한 일에서 죽음을 꿈꾸는 한 젊은 남성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로 목표를 수정하기에 이릅니다.

 

루이자가 파악한 윌은 사고로 희망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이후 세워놓은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남자였는데, 윌이 파악한 루이자 역시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려고 애쓰는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많은 배려를 하게 됩니다. 루이자는 윌이 비록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삶이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담아주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그 희망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즉 윌을 사랑하게 된 자신을 깨닫고 자신의 사랑이 윌에게 희망이 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한편 윌은 루이자가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상처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자신의 울타리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그녀가 넓은 세상으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수 있도록 자신이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윌은 루이자에게 “인생은 한 번밖에 못하는 거요. 한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요.(277쪽)”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윌 역시도 자신의 삶에서 희망이라고 할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요?

 

루이자는 인터넷을 통하여 사지마비로 투병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처음 윌을 맡았을 때부터 시작했더라면 효율적인 대응방안을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지마비로 고통받는 환자 가운데 완전 기분이 축축 처진다는 이유로 <잠수종과 나비>를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하더라고 적은 것을 보고서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수종과 나비; http://blog.joins.com/yang412/11690966>는 갑자기 찾아온 잠김증후군으로 외부세계와 단절된 장-도가 처음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지내다가 눈깜박임을 통하여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오랜 훈련을 통하여 사고를 당하기 전에 기획하고 있던 책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영화를 통하여 윌이 힘든 삶에서도 희망을 둘만한 무엇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루이자는 삶에 대한 기대를 접은 이후로 거의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 윌을 집밖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나아가서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서 스카이다이빙과 번지점프, 그리고 승마와 수영까지도 시도하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출발을 앞두고 윌이 갑작스럽게 폐렴을 앓는 바람에 모든 잉ㄹ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폐렴을 치료하고 나서는 모리셔스 제도의 리조트에 가서 다양한 실외활동을 경험하고 종국에는 둘이서 같은 침대에서 잠들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날 루이자는 윌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온갖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보통 흔하게들 하는 사랑 얘기가 아니라는 건 알아요. 심지어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어서는 안될 이유들도 숱하게 많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 당신이 아무리 지독하게 못되게 굴어도, 나 당신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요. 당신은 자신이 초라하게 쭈그러들었다고 느낄지 몰라도, 난 세상 그 누구보다 그런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470~471쪽)”

 

하지만 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역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고, 자신이 겪어온 과정을 그대로 밟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통보받은 환자들이 겪게 되는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의 다섯 단계의 심리적 과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겪는 상실의 경험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건너뛰는 단계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상실수업, 이레 펴냄, 2007년; http://blog.joins.com/yang412/9264552). 윌은 자신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받을 고통의 크기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된 루이자의 사랑이 윌의 결심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내 곁에서 그냥 살아주면 안되나요?”라는 루이자의 간절한 소망에 대한 윌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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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1~2 세트 - 전2권 소설 조선왕조실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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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우리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두 개의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 하나는 [민음 한국사]입니다. 서기 전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우리민족의 역사를 정통 역사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먼저 근대에 해당하는 조선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100년 단위로 나누어 분석하며, 사안에 따라서 동 시대의 아시아 혹은 세계사를 대비시켜 세계의 역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치를 조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건국과 통치의 기틀을 다진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 http://blog.joins.com/yang412/13342028>에 이어, 조선 왕조 성립 이후 두 차례 씩이나 맞은 위기상황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었는가를 다룬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http://blog.joins.com/yang412/13345899>까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조선사부터 시작하는가’하는 의문에 대하여 21세기의 시점에서 보는 현실적 관심 때문이라는 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기획은 소설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김탁환작가의 집필로 소설로 다룰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역사가 그 움직임의 거대한 구조에 주목한다면, 소설은 그 움직임의 구체적 세부를 체감하려 든다.(‘소설 조선왕조실록을 펴내며’에서)”라고 들었습니다. 작가는 그 첫 번째 이야기, 즉 조선왕조의 건국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혁명>이라 한 것 같습니다. 조선건국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야 했을 것이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은 고려 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활한 인간 정도적’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것처럼 화자는 정도전입니다. 그러면 왜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아니고, 이성계가 여러 차례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도록 도운 이방원도 아니고, 정도전을 화자(話者)로 세웠을까요?

 

<혁명>은 정도전이 죽음을 맞게 되는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던 1398년 8월 25일 밤, 정도전이 쓴 자서(自序)로부터 시작되는데, 말미에 “사람이 새로워지지 않고는 나라도 새로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도(道)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 ‘조선’ 사람의 이치와 느낌을 분명히 남기는 것이, 미완일지언정 지금 꼭 필요하다.(19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정도전이 고려왕조의 역사를 접고 이성계를 태두로 하여 세운 조선왕조를 통하여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혁명>을 통하여 풀어내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작가는 <혁명>을 통하여 조선왕조의 성립에 있어 커다란 역할을 한 정도전을 주축으로 정몽주와 이성계 세 사람의 긴밀한 힘겨루기의 속살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척살한 이방원의 결정적 한 방이 혁명의 시발점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로서 이방원은 이성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는 ‘소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궁중사건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를 포괄하는 기록이 될 것이며, 정사와 야사, 침묵과 웅변, 파괴와 생성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생과 국가를 탐험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혁명>은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이 가미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고려사회를 주물러왔던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중원을 장악하면서 고려사회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핵심은 목은 이색 문하에서 공부한 정몽주와 정도전 등이 있었고, 이들은 동북면에서 힘을 키워온 이성계와 엮이면서 세 사람이 개혁의 중추세력으로 떠오르며 기울어가는 원나라에 빌붙어 이익을 지키려는 집단과 맞서 혁명을 꿈꾸게 된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에게 집중되어 있는 토지를 몰수하여 재분배하고 소작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는 사전개혁이 성공에 이르면서 혁명세력은 힘을 얻게 되는데, 정몽주는 역성혁명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보았으나, 정도전은 새로운 왕조의 성립이 혁명을 완성하는데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읽은 것 같습니다. “우리 셋은 안다. 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셋 중 하나도 숟가락 위에 서둘러 올라앉아서는 아니 된다. 고려, 이 썩어 문드러진 틀을 완전히 뒤바꿀 힘과 법과 철학은 셋이 만든 삼각형 속에 놓여 있다. (…) 셋 중에 둘, 둘 중에 하나만 남는 길로 가면 혁명은 실패하며, 셋이 경계하고 다투면서도 믿고 의지하여 끝까지 상생하면 혁명은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리라는 것을.(129쪽)” 하지만 인간사는 중심인물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내려는 세력들의 힘까지 더해져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정몽주를 둘러싸고 있던 반 이성계 세력들의 선공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지원세력이 이성계나 정도전의 의사와는 달리 정몽주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것이 역성혁명을 앞당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다만 이성계나 정도전이 역성혁명을 반대하는 정몽주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우연한 사건이 발단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조선의 건국을 둘러싸고 역성혁명을 꿈꾸는 세력들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들 사이에 벌어진 대립과 교감을 생생하게 그려보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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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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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기틀을 다진 15세기에 이어진 16세기에 조선왕조는 두 차례의 큰 위기를 맞게 된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위기는 16세기의 벽두를 흔든 연산군의 폭정(1494~1506 재위)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황제의 폭정은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인데, 조선왕조는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민음한국사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의 서에서는 명군 세종의 핏줄을 이었을 것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살육극을 펼친 연산군에 대항하여 사대부들이 선택한 길은 왕조의 철폐가 아니라 왕조는 유지하면서도 임금을 바꾸는 반정 카드를 선택한 것이 왕조가 위기를 넘기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말로 치면 직업관료라고 할 사대부들이 수명이 다했다고 볼 수도 있는 왕조를 연명하도 한 것은 조선왕조를 세운 철학적 배경이 된 성리학이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성리학은) 왕권을 뒷받침하는 도구인 동시에 사대부가 왕권을 제약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게 할 도구이기도 했다. 연산군을 쫓아낸 사대부들은 굳이 새로운 왕조나 귀족 공화국을 세울 필요 없이 조선 왕조를 이용해 그들의 세상을 열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사회의 특성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리학은 정작 처음 시작한 중국에서는 그 한계를 논하는 양명학이 등장하여 위기를 맞기도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든 권력이 황제에 집중되는 권력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이러한 군주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군주가 성리학의 이념을 바탕으로 권력을 사대부들과 공유함으로써 군주제의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리학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연구하는 기관으로 설립된 서원을 중심으로 입지를 확보하게 된 사림들이 성리학적 가치를 극대화하기에 이르렀고, 성리학은 우주의 원리를 논하기에 이르는 등, 중국에서 시작한 성리학은 조선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라 합니다.

 

조선 왕조가 16세기에 맞은 두 번째 위기는 세기말에 일어난 임진왜란입니다. 어쩌면 태풍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원나라 시절에 조선과 합동작전으로 벌였던 일본정벌 이후에 벌어진 동아시아지역에서 일어난 두 번째 국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국제전이라는 의미는 3개 국가 이상이 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친다면 말입니다. 그 전에는 삼국시대에 수나라와 고구려, 당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벌어진 국소전이나,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왜군이 백제를 도와 연합군에 대항한 것을 국제 전쟁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였는지는 분명치 않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왜군에 압록강까지 일방적으로 밀려났던 조성왕조가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이라고 하는 걸출한 무장이 왜군의 북상을 남해안에서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었던 것과 각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약으로 보급선이 늘어난 왜군을 곤경에 빠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년 시작한 전쟁이 정유년에 다시 불붙어 마무리되기까지 왜와 명나라 사이에 진행된 협상 테이블에 조선의 자리는 없었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었지만, 왜가 물러나면서 조선은 한 세기에 생긴 두 차례의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전말을 소상하게 분석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왜란의 경과와 의미를 다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색당쟁으로 조선의 정치구조가 무너져내렸다고만 알아왔던 부분에 대하여도 조선의 사대부들이 만들어낸 붕당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읽을 수 있습니다. “1583년을 즈음해 조성에는 학통, 학문적 입장, 그리고 지역적 기반에서 상반되는 두 개의 붕당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두 개의 붕당은 그 출현에서도 보았듯이 사림정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고, 사림 정치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면서 공론에 따라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며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되었다. (…) 중국에서 같은 시기에 붕당이 거의 기능하지 못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조선이 선택한 길은 왕정 체제에서 신하들의 참여를 극대화함으로써 왕정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었다.(187쪽)”

 

이처럼 민음한국사는 지금까지의 우리역사 해석방식과는 차별화된 관점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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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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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단테의 <신곡>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만, 고전작품을 읽다보면 전체 플롯을 따오거나, 아니면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신화를 인용하여 비유하는 경우를 자주 만나기 때문에 진즉 읽어뒀어야 하는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늦었다 싶을 때가 바로 해야 할 때라고 하던가요?

 

<지중해 신화; http://blog.joins.com/yang412/13181355>를 읽고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신화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구전으로 전해오면서 새롭게 해석되거나 새로이 보태지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민족의 이동과 접촉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단들이 유사한 신화를 가지기도 하고, 배경이 서로 다른 신화가 융합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흔히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부르기는 합니다만, 한 대균교수님 같은 분은 진정한 의미의 로마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리스 신화를 자신들에 맞게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을 읽다; http://blog.joins.com/yang412/12358459> 이와 같은 작업은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변신이야기>를 번역하신 이윤기교수님은 “오비디우스의 이 <메타모르포시스>는 한술 더 떠서 방대한 그리스 신화는 물론 당시에 떠돌던 소아시아의 설화, 트로이아 전사(戰史), 로마의 건국신화까지 한 줄에 꿰어 아우구스투스에게 신성(神性)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비디우스가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유배를 당하고서 <변신이야기>를 집필을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사랑의 기술>을 써서 유명해진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풍속을 새롭게 하려는 아우구스투스의 뜻과는 달리 방탕한 생활을 하던 딸 율리아를 찬양하였을 뿐 아니라 손녀딸 율리아의 애인 노릇까지 해서 아우구스투스의 분통을 터뜨렸다는 것입니다. 이윤기교수님은 <변신이야기>야말로 로마판 용비어천가라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변신이야기>는 카오스로부터 천지가 창조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거인족의 시대를 건너뛰면서 신들이 등장하고 인간과 요정이 만들어져 뒤섞여 살게 된 이야기를 설명하고, 순서대로 신들의 전성시대를 거쳐 인간의 무리가 커지면서 신들과 인간이 갈등을 빚는 시기의 이야기를 거쳐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를 거쳐 트로이 전쟁을 끝으로 그리스의 문명이 끝나고 트로이 유민이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하여 로마를 세우는 과정, 카에사르를 거쳐 아우구스투스가 등장하는 데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윤기 교수님께서는 변형(變形), 변신(變身) 혹은 변모(變貌)로 번역되는 <변신 이야기>의 원제목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는 사물이 비롯되는 정황을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만, 생물학적으로는 한자어 그대로 이전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다거나,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도 변태의 좋은 예가 됩니다. <변신 이야기>의 등장인물 가운데, 유독 신들이나 신성을 가진 존재들이 모습을 바꾸는 이야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신중의 신 유피테르(그리스식으로는 주피터신이죠)의 경우 신이나 인간이나를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여성만 보면 아내인 유노(그리스식으로는 헤라여신이죠)의 눈을 피해 관계를 가지곤 하는데, 상대를 속이기 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접근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특기입니다. 예를 들면, 에우로파를 유혹하기 위하여 흰 소로 변해서 에우로파를 태우고 바다를 헤엄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용이 나타나서 여인을 범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이런저런 사연으로 아이를 가졌을 때 이웃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지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만, 신이라는 존재가 신분이 귀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어찌됐거나, 아는 이야기도 있고, 잊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전체를 로마신화를 전체적으로 개관하였으니, 가끔은 인용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예를 들면 태양신 헬리오스의 마차를 몰아보겠다고 욕심을 냈다가 유피테르의 번개를 맞고 죽음을 맞은 파에톤의 이야기는 곧 시작할 여행기에서 꼭 인용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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