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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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집을 읽게 된 것은 어렸을 적 읽었던 ‘큰 바위 얼굴’을 다시 읽어보려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만, 열 두편의 단편을 담은 민음사 판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에서는 ‘큰 바위 얼굴’은 작품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 호손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작품해설에서는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에 실린 열 두편의 단편들을 “1830년대에 씌어진 일곱 작품(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로저 멜빈의 매장, 젊은 굿맨 브라운, 웨이크필드, 야망이 큰 손님,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 목사의 검은 베일)이 인간의 본성, 인간의 운명, 죄의식, 청교도 정신 등 호손의 일반적인 관심사를 대체로 개인의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는 반면, 1840년대에 발표한 다섯 작품(반점, 천국행 철도,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라파치니의 딸, 이선 브랜드)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들을 과학의 힘, 실용주의, 기계문명 등 당대의 변화하는 사회양상에 대한 관심에 연결지어 문명 비판적인 관점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330쪽)”라고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미국 동부의 북부지역을 무대로 구대륙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이 다양해지면서 드러나는 집단 간의 갈등이라거나, 이주민들이 많아지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의 경계와 부딪히면서 야기되는 갈등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과거와는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로저 맬빈의 매장’이 1725년 메인주 남서부 지역에서 피코킷 인디언들과의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전투에서 “적진지의 한 가운데에서 그들 병력의 두 배나 되는 적군에게 공격을 감행한 소수 부대의 영웅적 행동만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행동에서 존경할 만한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36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 굿맨 브라운’에서도 굿맨 브라운이 “저 나무들 마다 악마 같은 인디언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군.(68쪽)”이라고 독백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 역시 인디언들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세월이 흘러 생각이 다양해진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삶에 대한 인식이 다른 두 마을 주민들이 공존을 위한 대화보다는 폭력에 의지한 징벌적 문제해결방식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산사태로 불행한 사태를 맞는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야망이 큰 손님’에서 산사태를 묘사하는 장면이라든가 그런 상황을 강건너 불처럼 보는 시각에 놀라기도 합니다. 산사태를 “무거운 발걸음 같은 소리가 밖에서 들리더니 가파른 산자락을 따라서 길고 빠른 걸음걸이로 우르르 내달아 집을 훌쩍 건너뛰고는 반대편 절벽에 부딪히는 것 같았다.(106쪽)”라고 묘사하면서 이런 상황을 맞은 가족들은 “저 산이 우리가 자기의 존재를 잊어버릴까 봐 우리한테 돌을 던지는 거라오”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안전에 대한 무관심이 놀랍기만 합니다.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장소를 피해서 집을 짓는다거나, 산에서 머물 때도 그런 장소를 피하는 용의주도함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산사태로 흙더미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머물고 있던 집에서 튀어나가 안전지대를 찾던 가족들이 오히려 불행한 상황을 맞는 아이러니를 읽으면서 산사태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예방책을 배울 수 있었다면, 지나치게 건조한 책읽기가 되었을까요?

그런가 하면, 식물독성으로부터 의약품개발에 몰두하는 비뚤어진 의사를 그리고 있는 ‘라파치니의 딸’에서 학술적 성과를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의사, 라파치니에 대한 평가를 읽으면서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환자들은 오직 새로운 실험의 대상으로서만 그에게 흥미가 있는 거지. 엄청나게 쌓아올린 그의 축적된 시직에 겨자씨 한 알만큼의 지식을 더 첨가하기 위해서 그는 인간의 생명을, 자기 자신의 생명을, 아니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야.(261쪽)” 의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에 이런 모습의 의사는 볼 수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호손은 사물의 이치를 결코 단순하게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 재단으로 파악하지 않는다.(331쪽)”라는 작품 해설에서 지적처럼, 그의 단편들은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아 다시 읽어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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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 - 당신의 감정과 판단을 지배하는 뜻밖의 힘
애덤 알터 지음, 최호영 옮김 / 알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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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부딪치는 무수한 선택을 통하여 삶의 흔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선택 가운데는 점심때 무엇을 먹을 것인가 결정하는 소소한 것들도 있지만, 때로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과 같이 인생의 흐름을 바꾸는 중대한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마음을 정하는 방식이 다를 것입니다. 자신의 느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선택순간의 느낌에 따라 결정하고, 자신을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한 결과를 토대로 결정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초월적 존재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인간은 이미 예정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는 운명론자의 경우는 선택이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이 인간에게는 그릇된 선택까지도 허용하는 선물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의지를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라고 하는 자유의지론입니다. 즉,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신의 구속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가치있는 행동에는 반드시 신의 은총이 뒤따른다는 논리로 자유의지의 남용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뇌과학적 연구방법을 통하여 조사해보았더니 자유의지의 실재가 의심된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샘 해리스 박사는 <자유의지는 없다; http://blog.joins.com/yang412/13064786>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련의 행동을 상상하고, 그 행동들을 선택한 자기 나름의 논리를 심사숙고하며, 이러한 심사숙고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계획하고, 모순된 욕망들에 직면하여 행동을 통제하는 역량의 집합’자유의지라고 본다면(샘 해리스 지음, 자유의지는 없다, 53쪽, 2013년), 자유 의지의 관념을 전제하는 “1. 우리 모두는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것과 달리 행동할 수도 있었다. 2. 지금 우리가 하는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원천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13쪽)”라는 두 가지 가정이 틀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뇌파검사(EEG)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확인한 결과, 스스로 내린 결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뇌의 운동피질이 활동하고 있더라.”라는 데이터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자신의 환자가 자살한 사건을 두고 “그것은 하워드의 뇌에서 비자발적인 화학물질의 변화가 일어난 차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식적인 선택이었다.(스캇 펙 지음,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 122쪽; http://blog.joins.com/yang412/13065978)”라고 적은 스캇 펙 박사처럼, 저 역시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신경세포가 활동을 하더라는 뇌신경생리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저자가 ‘자유 의지는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 다소 성급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을 전공한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마케팅학과의 애덤 알터 교수가 쓴 <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원제; Drunk Tank Pink)>은 우리의 자유의지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색깔, 공간, 온도, 남의 시선, 편견, 문화, 상징, 이름, 그리고 명칭 등과 같이 전혀 의외의 힘들이 우리의 감정과 판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힘이 미약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이런 조건들이 놀랍게도 인간에게 미치는 힘이 강력하더라는 사실을 다양한 심리 실험과 자료 조사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시 미화를 개선하기 위하여 가로등을 푸른색으로 교체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시에서는 수개월이 지난 뒤 범죄행위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인용하여 색체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도 눈길을 끌었습니다만, 저는 물론 저의 리뷰를 읽는 분들은 펜실베니아의 작은 마을에 있는 파올리 기념병원의 사례에 관심이 더 갈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이 병원에서 담낭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던 병실이 회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았더니, 창문을 통하여 작은 낙엽수가 내다보이는 병실과 커다란 벽돌담을 마주하고 있는 병실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각각 입원기간에서도 차이를 보였을 뿐 아니라 통증이나 우울한 감정의 정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자연경치를 바라본 환자들은 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환자들보다 네 배나 더 빨리 회복된 셈이었다’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처럼 저자가 의료와 관련된 사례들을 자주 인용하고 있어서 참고할만한 것들을 많이 발견하실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대다수 동물들이 제한된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존해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반해, 인간은 때때로 의식적으로, 그리고 어떨 때는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인 끈을 이용해 자신의 동기를 충족시킨다.(158쪽)”라는 설명을 달아 편견이 우리의 생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왕따현상이나 유색인종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편견이 때로는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져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평소 사고가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앤서니 그린월드와 마자린 바나지는 이러한 편견, 즉 숨은 편향을 “사회 집단에 대한 ‘지식 조각들’이다. 이 지식 조각들은 뇌에 저장된다. (…) 숨은 편향은 일단 정신 속에 자리 잡으면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을 향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영향을 전혀 모른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앤서니 그린월드와 마자린 바나지 지음, 마인드 버그, 15쪽 ; http://blog.joins.com/yang412/13336059) 기억이 편향된 사고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평소에 편향된 지식을 기억에 담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생각의 지도; http://blog.joins.com/yang412/13258160>에서 리처드 니스벳교수는 공자로 대표되는 동양인의 사고방식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서양인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논하였던 것처럼, 저자 역시 같은 맥락에서 문화가 생각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문화가 생각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하고 있는 ‘생각을 만드는 문화’의 내용을 “현대 서양철학의 토대가 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사물을 맥락과 분리시켜 분석하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은 사물과 맥락의 관계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이런 차이는 서양인과 동아시아인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의 차이로 계속 나타나고 있다.(196쪽)”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국인과 접촉할 때는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감안하여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왕래가 잦아지고 인터넷이라고 하는 혁신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문화적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알터교수는 부정적 상징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례로 나치의 십자기장과 관련된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말, 미군은 샌디에이고만 실버해안에 위치한 해군의 코로나도 기지에 6동의 건물을 세웠는데, 지상에서 바라보면 별 특징이 없는 전형적인 병영건물에 불과한 이 건물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나치의 철십자 기장을 연상시키도록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샌디에이고 시민들이 크게 분노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존 모크는 공중에서 어떻게 보일지 잘 알고 있었다면서, 4개의 ‘L’자 모양을 이루도록 건물 여섯 채를 배치한 것에 불과하여 특별한 의미를 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지만, “어쨌든 이것이 그 불명예스러운 상징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240쪽)”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나치의 철십자 기장은 불교의 상징인 만(卍)자와 유사하지만 십자에서 굽어지는 쪽을 반대 방향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스와스티카(Swastika)라고 하는 만(卍)자는 ‘행운의’ 또는 ‘상서로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http://blog.naver.com/riverinkch/20033794523) 만(卍)자는 고대 아리안족의 종교적 상징이었는데, 유럽으로 흘러든 아리안족이 지금의 독일민족이며, 다른 일파는 인도 쪽으로 흘러들어 인도계 아리안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치가 세력을 키울 무렵 히틀러를 만나 영향력을 미치게 된, 뮌헨대학교 지리학과의 카를 하우스호퍼교수는 티베트어에 정통했고 라마교승려들과 깊은 교분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만(卍)자가 티베트 지방에서 주술기호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게르만민족과 고대 아시아의 신비한 힘을 결속시키려는 의도로 철십자 기장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반크리스트를 내세운 나치가 그리스도교의 십자가를 꺽은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나치의 철십자 기장과 유사한 문제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의 하나인 일본에서는 최근 아베 총리가 집권한 이후 일본 사회가 빠르게 우경화되고 있어,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시각이 국제적으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운동경기장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휘두르는 일본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일본 내에서 혐한 시위가 확산되고 있어 양심적인 시민사회가 위기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나라여자대학의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85) 명예교수는 전후 일본 정부가 왜곡된 역사교육을 해온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의 왜곡이 심했는데, 그 이유를 “한국이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면 일본의 제국주의 열강으로의 도약은 불가능했다. 45년 도쿄대 총장으로 임명된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1893∼1961)는 일본이 대만을 식민 지배한 과정은 책으로 남겼지만 조선을 지배한 과정은 쓰지 못했다.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일본의 모순을 너무 많이 드러낼 수밖에 없는 과제였기 때문이다”라고 들며, 한국 침략의 본질과 의미, 이런 것들을 은폐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던 것이라고 합니다(2014년 3월 1일자 중앙일보 기사, “아베,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너무 모른다”) 이웃의 일에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나몰라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방법이 없으니 예의 주시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요?

 

저자가 <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을 통하여 읽는 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아주 작은 차이가 엄청난 생각을 만든다’라는 마치는 글의 제목에 함축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생각은 흔히 ‘나비 날개짓’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이 비유는 1961년 미국의 저명한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년 전에 만든 일기예보 모형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지루하게 자료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소수점 6자리로 되어 있는 예측모형 입력자료들을 소수점 세 자리에서 끊어서 입력해본 것인데, 대단치 않아 보이는 차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기예보모형은 이전 것과는 아주 딴판인 결과를 예측하더라는 것입니다. 즉 기온이 1도의 100만분의 몇이 바뀌었을 뿐인데 쨍쨍한 햇살 대신에 비가 쏟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몇 년 후 로렌츠는 어느 강연에서 이때의 깨달음을 청중들에게 전했는데, 그 강연의 제목이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한다?”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수없이 많은 작은 나비효과들의 집합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사고와 느낌과 행동은 아주 복잡한 연쇄반응들의 산물이고, 이러한 연쇄반응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아홉 가지의 힘들에 의하여 심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거나 극복함으로써 더 건강하고 지혜로우며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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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인간
변현단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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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꿈꾸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선친께서도 은퇴를 앞두시고 시골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시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농사일을 해보신 어머니께서는 그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먹었다.’는 자기반성을 붙인 귀농안내서가 나왔습니다. ‘알맞게 욕구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자립인간>입니다.

 

이 책을 쓰신 변현단님은 ‘낮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 밤에는 글을 짓는 작가.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면 바로 실천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며, 사람이든 생활이든 틀에 박힌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대에는 평등하게 잘사는 사회를 꿈꾸며 정치사회운동을 하였다. 30대에는 신문 만드는 일을 하고, 해외 배낭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회문화를 접했다. 2000년대 민주노동당 환경정책을 만들고, 2002년 인도에서 생태운동가인 반다나 쉬바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40대 들어, 경기도 시흥에서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자활공동체인 <연두농장>을 꾸렸지만, 도시에서는 온전한 자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해체하였다고 하는데, 결국은 ‘개인의 자립’을 우선순위에 두고, 곡성 산골로 터를 옮겨 특별한 작위적 공동체가 아닌 ‘자립적 개인의 협력’으로 꾸려나가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농촌사회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 농사를 지어라. 자유롭고 싶거든 농사를 지어라. 농사를 짓되 시골에서 지어라.’고 하는 그녀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농사짓겠다고 시골로 몰려드는 상황이 되면, 그녀가 꿈꾸는 이상향이 이루어지게 될까요? 그녀는 돈과 소비의 순환에 볼모로 잡혀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탈출하려면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지으라는 것인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나 행복할까요?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은 없을까요? ‘결혼이란 서로 좋아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법적이고 공식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 억압적으로 강제되는 일(55쪽)“이라고 정의하는 그녀의 생각이 옳을까요? 그녀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필요한 것은 모두 제공하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녀의 생각은 간혹 아주 위험천만한 것도 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만, “갑자기 중풍 증상이 있으면 향유나 생강즙을 복용한다. 중풍으로 이미 쓰러졌을 때는 인중에 침을 놓거나 급히 엄지손가락과 인중혈을 세게 누르면 차도가 있다. 입이 돌아가는 구안와사의 경우, 석회를 섞어 붙이는데 왼쪽이 삐뚤어졌으면 오른쪽에 붙여서 치료하고 깨끗이 씻어준다.(234쪽)”라는 처방은 한의학적 상식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입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사지에 마비가 오는 증상으로 뇌졸중이 의심되는 경우는 만사를 제쳐두고 응급실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받아 적절하게 치료를 받아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도 중풍의 급성기에는 현대의학적 치료를 받도록 권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석회를 붙인다는 구안와사도 최근에는 바이러스에 의하여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초기에 항바이러스제제로 치료를 해야 빨리 회복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960년 이후부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이 먹고 육식하는 것이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2013년 들어 최근에는 ‘소식(小食)’이 건강에 좋다는 임상실험들이 발표되었다.(79쪽)”는 대목만 해도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20년 전에 이미 동물실험을 통하여 소식이 수명을 연장시킨다고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뭄과 흉년이라는 자연재해나 전쟁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이 얻은 벽곡방과 구황방이 검증된 식량체계이므로, 반문명, 저에너지, 적은 노동력을 들이고 자연적이라는 점에서 오늘에 재현할 가치가 높다는 주장입니다. 요약해보면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온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퇴행적 선택으로 행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피와 땀을 쏟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농사를 슬렁슬렁 지어도 되는 것인지도 말입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잘 못된 정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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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낫게 한다 - 깨우고, 바라보고, 두드리는 6단계 셀프 명상 치유법
정수지 지음 / 시공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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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와 명상으로 힐링을 얻는다는 요법을 안내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심신통합치유에 관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는 정수지씨의 <내가 나를 낫게 한다>입니다. 한때 보완대체의학의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암이나 만성질환을 치료하기에는 현대의학이 한계에 부딪혔다면서 해답은 보완대체의학에 있다고 주장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름그대로 보완대체의학은 현대의학의 치료과정은 보완하는 것이지 그들의 말대로 대체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제시되고 있는 보완대체의학요법 가운데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보완요법을 통하여 효과를 얻은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는 특별하게 그 요법에 잘 어울리는 요인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에서도 꼭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재현효과가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정수지씨가 주장하는 6단계 셀프 명상 치유법이 전혀 틀린 것이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방법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6단계 셀프 명상 치유법의 근본은 동양의학의 기철학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간단하게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1부 ‘명상이 당신을 낫게 한다’에서는 저자가 주장하는 힐링 명상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명상으로 치유가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였습니다. 2부 ‘치유가 시작되는 액티브 명상법’은 6단계로 되어 있는 힐링명상을 수행하는 과정을 그림을 곁들여 설명하고, 수행과정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방법도 곁들이고 있습니다. 3부 ‘또 하나의 힐링명상’은 힐링명상과 관련이 있거나, 힐링명상을 응용하여 발전시킨 요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신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어왔습니다만, 저자는 여기에 더하여 에너지라는 중간단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 즉 슬픔, 분노, 기쁨, 절망, 좌절 등을 두 번째 몸이라고 설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 영혼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병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신체와 에너지 그리고 영혼의 부조화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고 보고, 모두 여섯 단계에 걸쳐 의식과 에너지가 제대로 순환하도록 한다는 개념입니다. 1단계에서는 내 몸의 감각을 깨우는데, 여기에서는 몸을 두드리고, 요가자세를 응용한 스트레칭을 적용한다고 합니다. 2단계에서는 몸과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그대로 느끼며, 3단계에서는 그 느낌을 그대로 바라본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2단계와 3단계는 명상을 통하여 실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4단계는 소유하기입니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단계인데 이를 통해서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5단계는 가슴으로 선택하기인데, 자신감과 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무엇이 옳은지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떠오른 생각을 6단계에서 행동으로 옮기면 힐링명상의 여섯단계가 마무리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한 암을 과거에 대한 용서와 자연식, 심리치료, 마사지와 같은 다양한 방버으로 극복하고 영성과 자기계발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는 사례를 인용하기도 합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와 같은 치료법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치료의 적기를 놓치는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들어가는 말을 읽다보면, 중고등학교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는 저자의 특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3 무렵 폐결핵으로 진단받고 약물치료를 6개월동안 받았다고 하는데, 그리고 보니 저 역시 재수할 때 기침이 이어지는 바람에 찾아갔던 약국에서 결핵약을 권하는 바람에 정말 약을 한웅큼씩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고 약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기침이 재발하여 폐결핵이 재발하였다고 해서 조직배양검사를 권했다고 하는데, 그 검사가 꼭 필요했는지 저 역시도 의문입니다. 저자 역시 의심이 들어 명상요법을 찾게 되었다고 하는데 자신에 맞는 요법을 찾을 수 있었으니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의사, 약, 음식, 그 어느 것도 나를 낫게 할 수 없었다!”라는 카피를 두었습니다만, 어쩌면 이 카피가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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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발견 살림지식총서 138
김상근 지음 / 살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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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씬이 화려한 역사극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지도는 일국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전투에서 승리를 일구는데 핵심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는 국가의 기밀 중의 기밀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지도의 역사가 갑자기 화제에 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민음 한국사] 시리즈의 첫 번째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http://blog.joins.com/yang412/13342028>에서도 1402년(태종 2년)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인용하여 조선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나라에서 들여온 자료를 참고하여 동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세계관에 이슬람지역의 지식까지 담아낸 놀라운 작품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지도는 현존 지도 가운데 조선을 표현한 최초의 지도이고 아시아에서 만든 지도로는 처음으로 유럽을 표시한 지도였다는 점에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지도에 숨겨진 당대 제작자와 사용자의 욕망을 파헤치며 인류의 세계관을 풀어낸 제리 브로턴의 <욕망하는 지도>가 뽑은 열두 점의 세계지도에 당당히 올라 있다는데서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에서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연세대학교의 김상근교수님께서는 <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발견>에서 역시 지도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 궁금증에 답을 제시하였습니다. 먼저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는 지도의 역사를 보면,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방에 있는 동굴벽화에 지도라고 할 그림이 남아 있다고 하고, 기원전 6세기경,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에 의하여 실제로 지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사본이기는 하지만 기원후 150년경에 제작된 프톨레미의 <지리학>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최고(最古)의 지도로 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톨레미의 지도는 14세기 말에서야 그 존재가 유럽에 알려져 재발견되면서 여기에 당시에 알려져 있던 지리적 정보가 추가되는 형태로 복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1477년 발간된 프톨레미 <지리학>에는 중국와 인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대한 정보가 왜곡된 형태로나마 표시되어 있지만, 한반도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라시아대륙의 귀퉁이에 숨어있는 한반도이지만 가까이는 일본과 중국을 넘어 신라시대에는 인도에까지 알려져 있었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고려 말에 개경에는 동남아시아를 벗어나는 지역과도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존재가 유럽에까지 알려진 것은 교황 이노센트 4세의 지시로 1254년 원나라 헌종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선교단 소속 루브룩의 윌리엄이라고 합니다. 당시 그는 우연히 만난 유럽인 윌리엄으로부터 중국 국경 너머에 있는 ‘카울레(Caule)’라는 나라의 사신을 만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선교보고서에 기록했던 것이고, 이 기록이 한반도의 존재를 유럽에 알린 최초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단 그 나라로 들어가면 입국했을 때의 나이가 그대로 멈춰 서게 되고 더 이상 늙지 않는다는 것이었다.(17쪽)”라고 적어 신비한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발견>은 유럽에서 발전해온 지리학적 성과를 지도제작에 명확하게 반영하기에 이르는 지도제작의 발전과정을 요약하는 한편 유럽의 지도제작자들이 한반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즉 인식의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를 섬나라로 묘사했던 윌리엄과 달리 반도국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1602년판 <곤여만국전도>에 조선을 섬나라가 아닌 반도국으로 정확하게 그려넣은 마테오 리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사람들은 여전히 조선이 섬나라이거나 오이처럼 기름한 모습으로 알려졌는데, 1653년 오스트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비엔나에서 출간한 <신중국지도 총람>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미 8세기 무렵 아랍상인들은 신라의 존재를 알고 교역을 하고 있었으므로 한반도의 존재를 그들의 지도에 반영하고 있었을 것이나 이런 정보가 담긴 아랍의 지도가 유럽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한 것이 오랜 세월 동아시아 지역이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땅으로 남게 된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뛰어난 지도제작기술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앞서 소개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세계지도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의 옛 자료가 당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성과라 할 수 있겠고, 우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 책읽기였습니다. 쪽수가 많지 않은 것처럼 잘 요약하였을 뿐 아니라 쉽게 설명되어 있어 학생들에게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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