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살림지식총서 472
이강룡 지음 / 살림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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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개설해서 벌써 10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블로그를 자료를 스크랩해서 참고자료로 활용하기도 하고, 관심있는 분들과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반면, 저의 생각을 정리라는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네티즌들이 호응이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글쓰기를 전문으로하는 분이 아닌 대중이 종이매체에 쓴 글을 통하여 타인과 교감할 기회를 마련하기란 지금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블로그, 카페, 페이스북 혹은 트위터와 같은 인터넷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글쓰기을 통하여 타인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무한할 정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매체는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어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글이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디지털 매체에 글쓰기’에서 꼭 새겨두어야 할 내용을 담은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는 특히 디지털 매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쓴 이강룡님은 웹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강좌와 책을 써내셨습니다. 특히 디지털매체애서 글쓰기에 대하여 세밀한 부분까지 짚어주고 있습니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소통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를 전하는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살피고, 사용자들에게 그 특성을 감안해 특히 어떤 점들을 유의해야 하는지 짚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매체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 필요한 글쓰기 원칙을 제시하고, ‘글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처음 블로그를 개설하였을 때는 온라인이기 때문에 얼굴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활동에 이력이 붙어가다 보니, 온라인상에서 티격태격하다고 법정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등, 온라인 커뮤니티 역시 사람사는 동네더라는 것입니다. 즉 인터넷은 가상공간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연장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지켜야 할 에티켓도 있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작성한 글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디지털 매체에서 쓰는 글도 피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디지털 매체에 넘쳐나고 있는 정보들 가운데는 출처가 있음에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의도적이거나 의도치 않게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글을 쓸 때는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모아서 검증을 하고 이를 정리하게 됩니다. 저자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자료들 가운데 근거가 뚜렷하고 질도 높은 자료는 극히 일부다.(39쪽)’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들을 근거를 확인하고 추려내어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되면 유용한 정보로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평소에 근거를 확보하여 잘 요약하는 습관을 들여 두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을 갖추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요약된 자료들을 글로 옮길 때는 예시를 든다거나 비유를 통하여 글쓰기의 기본틀을 갖추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 원칙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처음 쓸 때 신중하게 생각하고,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쓰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자. 독자에게 설명하기보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근거를 충분히 주자(50쪽)” 그리고 지켜야 할 중요한 점으로는 원칙에 위배되는 불필요한 표현을 쓰거나 새로 만들지 않아야 하고, 쓸데없는 꾸밈말을 쓰지 말아야 하고, 쓸데없이 문장부호를 남용하면 안된다고 적었습니다. 저자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얻은 사례들을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매체별로 글쓰기 전략’과 ‘문서의 신뢰도 높이기’의 마지막 두 장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지식과 행동이 한결같이 서로 맞음”이라고 설명되는 사자성어입니다. 저자가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라는 화두에 대하여 제안하고 있는 지행합일의 길 두 가지는 ‘출처를 정확히 표기하자.’와 ‘그 일을 한결 같이 하자’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은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타인의 생각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 방법까지도 안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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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읽기 - 삶의 속도를 늦추는 독서의 기술
데이비드 미킥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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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천권의 책을 읽었다는 독서가께서 적어도 삼년에 천권의 책을 읽어내라고 권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권유가 마음 어디에 남아 있었던지 지난 한 해 동안 300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9년의 세월이 걸리기는 했지만 천권의 책을 읽고, 천개의 독후감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독서량을 이야기하면 주변에서는 속독하는 법을 익혔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빠르게 읽기 위하여 책을 대각선으로 읽어내면서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아직 따로 속독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대각선으로 책을 읽어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책을 빠르게 읽는 속독법도 꾸준하게 익혀 가능한 일종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습니다. 결국 제가 책을 읽는 속도는 조금 빠른 편입니다만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면 책읽는 시간을 더 내는 수밖에는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책을 느리게 읽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는 독서의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데이비드 미킥스의 <느리게 읽기>입니다. 문학을 전공하고 휴스턴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영화에서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하는 틀에 박힌 질문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역시 틀에 박힌 답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일 것입니다. 하지만 빠듯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낸다는 것이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시간은 넘쳐나면서도 말입니다. 저자는 ‘얼마나 많이 읽느냐보다는 어떻게 읽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7쪽)’고 말합니다. 온 마음을 쏟아서 책을 읽고, 거기에서 즐거움과 정신적 풍요를 얻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좋은 책뿐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인터넷이나 신문기사를 통하여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신문기사, 트위터, 블로그 같은 것들은 제대로 된 읽기를 가르쳐 주지 못한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그 근거로 사람들이 블로그, 페이스북, 뉴스 기사 등의 온라인 텍스트를 F 패턴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밝혀 낸 연구를 들었습니다. 앞서도 대각선으로 책읽는 법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저자가 말하는 F패턴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글의 첫줄 혹은 첫 몇 줄을 옆으로 쭉 읽는다(F의 맨 위쪽 가로획). 그런 다음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줄들은 앞부분만 훑어보는 식으로 읽는다(F의 더 짧은 가로획). 그러다가 부제(副題)나 중요 항목이 나오면 또 가로읽기를 하는데, F 패턴에 맞추기 위해 그런 부제들은 주 제목보다 짧은 경향이 있다. 결국 글의 중간쯤 이르면 독자의 시선은 페이지의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직선으로 내려가기 시작해서 F의 수직선 부분을 쭉 따라가, 글의 대부분을 읽지 않은 채 텍스트를 ‘끝내 버린다.’ 시간에 쫓기는 독자는 훨씬 더 빨리 글의 끝을 향해 시선을 뚝 떨어뜨린다.(31쪽)”

 

읽다보니 가슴이 뜨끔해지는 대목입니다. 제가 바로 그렇거든요. 그래서 저는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쓸때 아무리 길어도 A4용지 한 장 분량을 넘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포르시안에 연재하는 [양기화의 북소리]는 예외적으로 A4용지 석장 분량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북소리]에서 소개하는 책을 신중하게 고르다보니 리뷰에서 빠트리면 안 될 주제가 많더라는 것과, [북소리]를 즐겨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들은 믿을만 하다는 저의 근거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변명을 드립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구성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디지털 시대에 진지한 독자가 처할 수 있는 절박한 위험을 이야기해볼 생각이라고 합니다. 제1장 ‘무엇이 느리게 읽기를 방해하는가’에서는 인터넷이 몇몇 유익한 변화를 가져오는 동시에 책을 진지하게 천천히 제대로 읽는 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는 점을 논하고 있습니다. 제2장 ‘느리게 읽기에 필요한 것들’에서는 독서와 관련된 모든 측면을 급격하게 바꾸어 버린 디지털 혁명의 본모습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제3장 ‘느리게 읽기의 규칙’에서는 난해한 책을 읽을 때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네 가지의 규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익히게 되면 좀 더 요령 좋고 신중한 독자가 될 수 있고, 책을 펼칠 때 뭘 해야 할지 망설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합니다. 4장부터 8장까지는 단편 소설, 장편 소설, 시, 희곡, 에세이 등 문학의 다섯 가지 주요 장르별로 저자가 선별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하여 앞서 제시한 독서규칙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안내하고 있습니다.

 

머리말의 끝에는 저자가 모두(冒頭)에서 내놓았던 질문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영국의 문학 비평가 헤럴드 블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독서를 하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과 운명, 행복과 비애를 훨씬 더 강렬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작가들이 창조해 낸 우주는 통렬한 변주, 아름다움과 암흑, 찬탄할 만한 진기함을 추구하며, 글의 무한한 에너지를 통해 가장 귀한 선물인 놀라움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그리고 그 우주는 매 순간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13쪽)”

 

고등학교 다닐 때, 독후감쓰기를 과제로 낸 적이 있습니다. 2년 정도 하다가 입시준비 때문에 접은 뒤로는 책을 읽되 느낌을 따로 정리하지는 않았는데, 9년 전에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책을 읽은 느낌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쓴 글이 인터넷 공간에 공개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타인의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광우병파동 때 제가 쓴 글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쓴 거친 댓글홍수를 경험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516120). 저처럼 인터넷 독자들이 때로는 거친 반응도 불사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 아무래도 글쓰기가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오랜 시간을 힘들여 글을 쓰고 책으로 묶어 낸 작가를 생각하면 리뷰에서 날선 비판을 자제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의 독자 서평은 과격한 욕보다는 미지근한 칭찬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38쪽)”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제가 쓴 리뷰를 읽고서 책을 사게 되는 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나름대로 느낀 문제점을 행간에 심어두기도 합니다.

 

저 역시 몇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때마다 독자들의 반응에 신경이 쓰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저자가 책에 담은 생각이 오롯하게 독자에게 전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자들마다의 생각이 달라 나름대로 해석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독자들의 몫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작가와의 대화이다.(38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미킥스 교수는 독자들이 책을 통하여 저자와 교감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책에 담은 생각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독자는 작가의 가치관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좋은 책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는데 그 시각이 작가의 선입관이나 편견처럼 느껴져 신경에 거슬린다면, 작가의 의도를 깊이 파고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선은 책에 담겨 있는 견해에 공감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 가슴 설레면서 읽었던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 http://blog.joins.com/yang412/12832807>을 년전에 다시 읽었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소개를 드린 작품입니다만, 독일의 의사이자 작가인 한스 카로사가 의과대학을 입학할 무렵의 삶을 그린 작품이어서 더욱 가슴에 와 닿았을 것입니다. 무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읽었는데도 그때의 울림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믹키스교수는 이처럼 다시읽기를 최대한 많이 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간혹 실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책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내가 왜 그 책에 그토록 공감했는지 깨달을 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뭔가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패트리샤 스팩스의 <리리딩(On Rereading)>에서 “책을 다시 읽으면 과거의 나 또는 더 많은 나와 이어질 수 있다.”라는 대목과 소설가 로버트 데이비스가 “진정 위대한 책은 청년기에 한 번, 장년기에 또 한 번, 그리고 노년기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한다. 좋은 건물을 아침 빛에, 정오에, 그리고 달빛에 보아야 하듯이 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다시읽기의 의미를 분명하게 새기고 있습니다(67쪽). 저도 요즈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새로운 번역판으로 다시읽기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 마치 싸우듯 읽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느리게 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일이 있다고 주문합니다. 노트북, 텔레비전, 그리고 가능하면 전화까지 꺼두라는 것입니다. 녹초가 되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늦은 밤은 피하는 것이 좋고, 눈 내리는 날이나 비행기 여행과 같이 짬짬이 어렵게 훔친 시간이 가장 달콤하다고 합니다.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승객들 가운데 역사책을 읽는 분을 기억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미즈키 아키코 지음,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중앙북스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3219457) 비행기에 탑승하면 오롯하게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 경우 옛날에는 주로 영화보기로 시간을 보냈지만, 본격적으로 책읽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주로 인문교양서를 중심으로 한번 여행에 서너권 정도를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각자 선호하는 장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책읽기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 커피숍, 공원벤치와 같은 곳이 역시 좋겠지만, 버스나 지하철도 책읽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물론 책읽기에 몰입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익숙해지면 책을 꺼내들자마자 바로 책속에 풍덩 빠질 수 있습니다.

 

저자가 나름의 경험을 통하여 정리한 인내심을 가져라, 이정표를 찾아라, 작가의 기본 사상을 발견하라 등 ‘열네 가지의 느리게 읽기의 규칙’들은 독자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작품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인내심을 가져라’를 첫 번째 규칙으로 내세운 것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책을 읽는데 인내심이 필요한 이유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박경리의 <토지>와 같은 대하소설처럼 방대한 분량에 우선 압도되는 경우나 카프카처럼 난해한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가 될 것입니다. 제 경우는 책을 들었다가 끝을 보지 못하고 던져둔 유일한 책이 카프카의 <변신>이었습니다. 조만간 다시 도전해보려고 가까이 두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을 읽다가 난해한 부분을 만나면 주눅 들지 말고, 좀 더 고민할 것인가 그냥 넘어갈 것인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권합니다.

 

의학서적을 읽다보면 앞에 총론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고, 개별 분야를 다룬 각론이 이어지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총론부분에서는 책을 느리게 읽어야 하는 이유와 느리게 읽기의 규칙을 설명하고, 이어서 사례를 들어서 그 규칙을 활용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각론 부분이 이어집니다. 제가 특히 어려워하는 시와 단편소설을 어떻게 읽는가 하는 방법을 체득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말씀을 끝으로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총론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각론 역시 읽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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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7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처럼 2014-03-21 12: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드림님...
알라딘에서도 활동하시네요...
반갑습니다. ^^*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살림지식총서 476
박인철 지음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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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의 새로운 방법론이라 할 현상학을 창시한 것으로 알고 있는 에드문트 후설을 공부하러 선뜻 나서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후설의 철학은 난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설의 철학을 전공하신 박인철교수님께서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보다 객관적으로 후설의 철학을 이해시켜 보자는 취지로 ‘좀 더 쉽게 풀어보자’라고 시작한 <에드문트 후설>을 읽고 난 느낌은 역시 ‘후설의 철학은 어렵다’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살았던 독일에서도 후설은 그의 제자 하이데거보다도 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후설은 버트런드 러셀처럼 수학자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수학이 지니는 학문적 엄밀성과 정밀성의 영향을 받은 그의 철학적 사유는 이 책을 지은 저자가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이라는 부제로 잘 요약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수학자 후설이 철학자로 방향을 바꾼 것은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빈대학에서 브렌타노의 강의를 듣고, 철학도 수학처럼 하나의 엄밀한 학문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철학이 엄밀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편견이나 사심에 의해 이끌림 없이, 또한 확증되지 않은 어떠한 전제에도 기반을 두지 않는, 이른바 ‘무전제성의 원리’에 부합해야 한다(7쪽)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양철학의 오랜 전통이 되어온 객관주의가 일종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인데, 일상적으로 믿고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철학적 지식이 되려면 별도의 철학적 정당화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객관주의에 물든 전통철학은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철학의 진정한 방법은 자연과학의 방법에 다름 아니다.(15쪽)”라고 한 브렌타노의 영향과 당시에 막 등장한 심리학에 눈을 뜬 후설은 수학적 개념을 심리적인 작용에 근거해 심리학적으로 해명하고자 시도하였고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지만, 심리학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901년에 쓴 <논리연구 II>에서 자신의 철학을 현상학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기술적 심리학’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현상학이라는 용어는 이미 1764년 람베르트의 저서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후설은 현상학의 개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현상학은 기술심리학이다. 따라서 인식비판은 본질적으로 심리학이거나 최소한 오직 심리학의 토대위에 구축되어야만 한다.(…) 일체의 이론적-심리학적인 관심을 떠나 인식체험을 단지 순수하게 기술하면서 탐구한 것을 경험적 해명과 발생을 지향하는 본래적인 심리학적인 탐구와 구분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인식체험에 대한 순수 기술적 탐구를 기술적 심리학 대신 현상학이라고 말하면 좋을 것이다.(19~20쪽)”

 

<논리연구 II>를 통하여 후설은 현상학의 성격과 이념을 규정하게 될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현상학적 태도와 관련해 현상학은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열린 태도의 성격을 보여주고, 둘째는, 현상학의 출발점이자 주된 탐구대상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는데, 바로 의식체험의 현상학의 주된 탐구영역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후설의 현상학은 인식론적 탐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21~22쪽)

 

그런데 후설은 1913년에 출간된 <이념들 I>에서는 <논리연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의식개념, 즉 ‘절대적 초월론적 의식’개념을 등장시키면서 이 의식이 외적 세계에 대해 독립적임과 동시에 근원적이라는 주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의식의 우선성 주장을 바탕으로 초월론적 의식에 의해 세계가 규정된다는, 이른바 ‘관념론적’ 세계관이 모습을 드러내고, 점점 이를 강화해갔다는 것입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심리학적인 혹은 객관주의적 색채를 가지던 그의 사유가 극단화된 주관주의적 차원으로 전개된 것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관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상학에 대한 후설의 근본적 대도와 방향성은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후설의 관념론적 세계관을 자칫 존재론적, 실체적인 관점에서 의식을 신격화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의식이 세계의 창조자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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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 확실한 지식을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475
박병철 지음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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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의 책을 읽으면서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주제를 잘 요약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데 있어 특히 철학분야의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참이라서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분야의 책을 통해서 이해의 폭을 넓혀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을 먼저 고른 이유는 지난 해 <철학이란 무엇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3128465>를 통해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이 제기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논하면서 “철학적 지식은 본질적으로 과학적 지식과 다르지 않다. 철학에는 열려 있으나 과학에는 열려지지 않는 지혜의 특별한 원천은 없으며 철학에 의해 획득된 결과는 과학으로부터 획득된 결과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철학을 과학과 다른 학문으로 만드는 철학의 본질적 특징은 <비판>이다.(버트런드 러셀 지음, 철학이란 무엇인가, 176쪽)”라고 결론을 맺고 있었습니다.

 

‘확실한 지식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병철교수님의 <버트런드 러셀>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요,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정치인이면서 평화운동가라는 다양한 수식어로 설명되는 그의 다채로운 삶은 물론 그의 철학적 사유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러셀은 자서전에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지식에 대한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 등 세 가지의 열정이 자신의 삶을 지배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러셀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열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러셀의 삶은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색깔을 달리한다고 합니다. 열 한 살 되던 해에 형으로부터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웠던 것이 ‘첫사랑처럼 눈부신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였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수학은 그의 젊은 시절의 화두였다는 것입니다. 서른여덟 살이 되던 해 스승 화이트헤드와 공저로 <수학의 원리>라는 방대한 저술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수학의 원리>에 담은 그의 사상은 ‘수학의 기초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로 시작하여 모든 수학은 논리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을 기본틀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수학철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논리학의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면서 기존의 철학에서 사용하던 문장들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철학적 접근방식은 오늘날 철학의 흐름인 분석적 전통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러셀은 할아버지가 두 차례나 영국의 총리를 지낸, 명망있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까닭에 일찍부터 사회나 정치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20대에는 독일에 머물면서 사회민주주의를 연구하였고, 1907년에는 노동당 후보로 하원의원직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 러셀이 내면적으로 현실 사회문제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윤리학에 대하여 러셀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도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윤리학의 목표가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에 관한 참인 명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러셀은 윤리학에서 다루는 가치의 문제가 마치 과학이 그러하듯 사람에 따라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지닌 것(68쪽)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년에는 다시 윤리학에 객관성을 부여하려고 시도했다는데, 그만큼 윤리의 문제는 가늠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러셀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원자폭탄공격에 분노하였다고 합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여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나치의 경우와는 다른 측면, 즉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일본이 저지른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너뜨린 행동 역시 나치의 경우처럼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폭탄의 투하로 인하여 피해를 받은 국가라는 왜곡된 이미지로 일본의 전쟁범죄까지 덮으려는 것은 분명 잘 못된 일일 아닐 수 없습니다.

 

‘이성적 시각에서 본 종교’라는 제목의 글에는 종교에 대한 러셀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러셀이 생애를 통하여 꾸준하게 다루었던 주제였다고 합니다. 열다섯 살까지는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심을 지녔던 러셀이었지만, 수학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그의 의문의 대상은 기하학의 공리를 넘어 종교에 이르게 되어 열여덟에는 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성적으로 확실성을 지니지 않ㅅ은 것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러셀은 신의 존재와 같은 경우 이성적으로 확인 가능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결론내렸던 것입니다. 러셀은 자신을 무신론자가 아니라 불가지론자라고 주장했고, 역사적으로 교회에 의해 제도화된 기독교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수많은 해악을 끼쳤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과 무한성이라는 두 가지 본성이 서로 갈등관계에 있는데, 과거에는 종교가 안내하는 도그마적인 믿음을 통하여 가능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도그마적 믿음없이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림으로써 무한성의 본성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즉, 자기를 포기함으로써 무한성에 이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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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고 동남아시아 (2011~2012) :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 자유여행자를 위한 map&photo 가이드북 저스트 고 Just go 해외편 58
시공사 편집부 엮음 / 시공사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주말, 드디어 하롱베이와 앙코르와트를 묶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코스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보았지만, 대부분 사진 중심의 간략한 여행기들만 볼 수 있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여행사의 상품기획자의 시선으로 앙코르와트 투어를 정리한 <앙코르와트, 지금 이 순간; http://blog.joins.com/yang412/13356016>과 함께 고른 책이 <저스트고 동남아시아>였습니다. 이 책은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4개국의 주요 여행지에 대한 자료를 담고 있어, 일단은 제가 필요한 부분만 참고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고를 때는 출판사에서 요약한 서지정보와 함께 먼저 읽은 분들의 느낌도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마련입니다. 이 책은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이용하신 분들은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했던 저와는 달리, 모두 자유여행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제가 필요로 했던 하롱베이와 앙코로와트에 관한 설명자료로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여행사 상품을 통하여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상품설명과 함께 현지가이드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별도자료를 충분히 조사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여행이 되었든 여행사상품이 되었던 이용하는 분들의 눈높이에 따라서 여행안내서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현지 가이드의 이야기를 참고해보면, 동남아시아, 특히 베트남의 경우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여행안내서나 먼저 여행하신 분들의 말씀과 달라진 부분들이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현지가이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암시를 행간에 담고 있다고 해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2011년에 나온 이 책에서는 베트남 입국절차에는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만, 별도로 신고서식을 작성하는 것은 없었고, 무뚝뚝한 표정의 심사관에게 여권을 제시하는 것으로 입국심사가 종료되는 것으로 변한 것이 대표적인 변화였습니다.

 

여행사의 상품으로 다녀온 제 경우는 맛집이나 숙소 등에 관한 정보라던가 입출국 절차나 현지에서의 이동수단 등을 현지가이드가 대부분 맡아서 처리해주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현지에서 제가 보고 즐길 장소에 대한 역사적 유래라거나 놓치지 말아야 할 포토존, 타이밍 등에 관한 정보는 충분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현지 가이드가 짜놓은 일정과 코스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어서 볼 수 없는 명소도 많아서 안타깝기는 했습니다만, 이번 여행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자유여행으로 찾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때는 이 책이 보다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저도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일단은 동남아시아 4개국의 여행지를 하나로 묶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진이 너무 작고 종이도 얇아서 뒷면의 내용이 비쳐 보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4개국을 모두 돌아보는 여행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일부 국가들만 돌아볼 것으로 생각되어서 2권 정도로 나누고 지면을 좀 더 넉넉하게 구성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개 외국에 나가면 제일 아쉬운 것이 지도 구하기였던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파악해야 할 지도를 별도로 넣어두고 있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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