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의 <명량>을 관람했습니다. 누군가는 ‘흥행하는 영화를 쫓는 레밍근성이 또 하나의 천만 영화를 만들어냈다.’라고 비꼬는 듯했다지만,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한 기억은 별로 없는 저로서는 이례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어머님 49제의 초제를 지내기 위해서 고향에 내려갔는데 스님과 약속한 시간에 착오가 생겼던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문화평론가 모씨가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해석해야할 듯”이라고 말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최근 읽은 조정우 작가의 <이순신 불멸의 신화; http://blog.joins.com/yang412/13475791>도 큰 몫을 한 셈입니다. <이순신 불멸의 신화>의 경우는 이순신장군이 치른 해전을 전술과 전략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영화 <불멸>은 그 중 하나인 명량해전만을 다루고 있지만 <이순신 불멸의 신화>를 읽으면서 다소 아쉬웠던 시청각효과를 느껴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먼저 어머님 상중에 오락영화를 관람한 것에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기간 동안 돌아가신 어머님의 위패를 모시고 다니던 이순신장군께서 명량싸움에 출정하기 전에 절을 올리는 장면을 보면서 모친에 대한 장군의 지극한 마음을 보고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는 말씀으로 변명하고자 합니다. 모 평론가의 말씀대로 졸작이라고까지 할 수 없는 부분은 영화의 상당부분(나중에 듣자니 1시간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을 차지하는 해상전투씬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장군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음인지 대장선 홀로 왜적의 대선단에 맞서 홀로 전투를 치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장군의 전술 전략은 임진왜란을 통하여 충분히 부하장졸들에게 각인이 되었을 터인데도 참전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대장선이 외롭게 전투에 나서 적선으로 둘러싸여 백병전을 치른다거나, 왜가 보낸 자객들이 이순신장군의 숙소를 침범하는 장면들이 사실일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영화적 요소로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강토에서 벌어진 전투였을 뿐 더러 당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장군께 자발적으로 적의 동태를 알려온 민초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이순신 불멸의 신화>에서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명량해전을 앞두고 수군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민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조금 남습니다.

 

역시 풍전등화 같은 운명의 나라를 지키고 왕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보여준 장군이지만 전투를 앞두고 고뇌하는 장면은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투가 두려워 탈영한 병사의 목을 치는 단호한 장군이었지만, 그 역시 패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장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 군대의 운명을 불문가지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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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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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꼬리를 무는 책읽기’는 책읽기의 잔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내가 고른 이진숙님의 <위대한 미술책>을 읽고 있습니다. ‘곰브리치에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명저 62’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것처럼 미술에 관한 숱한 책들 가운데 저자가 고르고 고른 62권의 책 내용을 중심으로 저자의 생각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62권의 책들 가운데 제가 읽어본 책은 오직 한권 질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 http://blog.joins.com/yang412/13157096> 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술이나 음악에 관심은 있으나 접근방식을 잘 모르다보니 닥치는대로 책을 읽어왔습니다. 당연히 체계적이지 못한 지식이 뒤엉켜 오히려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위대한 미술책>은 미술에 관한 접근방법을 깨닫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고른 62권의 책 가운데 아내의 추천으로 몇 권의 책을 골랐습니다. 그 첫 번째가 고 오주석 교수님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공무원교육원에서 가졌던 강연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문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 특히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인 까닭,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빼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인․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습니다.”라고 서문에 적은 것처럼 세계만방에 우리 문화의 우수함이 널리 알려지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할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저자의 말씀대로 ‘조상들이 이룩해낸 문화와 예술이 참으로 훌륭하고 격조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저자가 희망한대로 월드컵이 끝나고서 거세진 한류의 열풍은 드라마를 거쳐 음악으로 옮겨갔으며, 드디어 외국인이 쓴 외국어로 된 한국관련 서적의 출판이 늘어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마도 지금 볼 수 있는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보다 보면 그 내면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우리 안에 숨어있는 한국의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강연을 통하여 옛 그림 감상의 원칙과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그리고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청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강연의 내용을 옮긴 까닭에 구어체로 되어 있어 읽어 내리다 보면 마치 저자가 마치 눈앞에 서서 어떤 때는 조곤조곤히 또 어떤 때는 강하게 강조하는 듯하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것 같습니다. 연자는 이렇게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옛 그림을 보여드리기 전에 우선 옛 그림 감상의 원칙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7쪽)”

 

옛 그림을 볼 수 있는 미술관 혹은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어떻게 접근하는가 하는 기본을 먼저 설명하고서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실려 있는 「씨름」이라는 소품을 놓고 옛 그림 감상법을 꼼꼼하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전체를 개괄하고 이어서 그림의 세부적 요소를 따로 들어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자는 그림의 미학적 요소 뿐 아니라 그림을 통하여 그 시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까지도 유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씨름의 승패까지고 예견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VTR자료로 된 강연내용을 바탕으로 원고를 만드신 듯, 행간에 연자의 행동이나 청중의 반응까지도 적고 있습니다. 연자께서 ‘김홍도의 풍속화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실제로는 옛 그림을 제대로 본 적이 없구나 싶지요?’라고 던진 질문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저자는 대부분의 우리가 지금까지 부끄러워하던 조선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제가 만들어낸 정체성 이론이라는 근거없는 왜곡에 휘둘려왔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이 난 다음에도 280년을 더 이어온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왕이 강압적으로 통치한 나라가 아니라 덕으로 보살핀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은 문화와 도덕이 튼실했기에 오백년이 넘게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옛그림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올곧은 정신을 배우는 좋은 안내서입니다. 이진숙님이 <위대한 미술책>으로 꼽은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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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발견 살림지식총서 81
우수근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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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은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사건을 두고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주방위군이 투입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해방 후 미국은 우리에게 가까운 나라로 인식되어왔습니다만, 역시 먼 나라인 만큼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점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미국에서 잠시 살아보았습니다만, 미국인들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수근교수님의 <미국인의 발견>은 어느 정도 한계는 있겠지만 그들의 삶과 생각을 뒤쫓고 있어 미국과 미국인들의 진면목을 엿볼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아직까지 미국의 일반적인 삶의 면면을 조망하는 미시적 시각에 대한 자료와 정보는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미국에 대한 동경과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막연한 기대 등이 그로 인해 야기된 결과일 것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일반 중산층 미국인의 부정적 모습과 미국 사회가 가진 부(負)의 모습을 적지 않게 다뤄보았다.(5쪽)” 필자는 친미나 반미 어느 편에 기울지 않은 편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나라, 미국’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일반현황을 소개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 책의 대부분은 미국의 부정적인 면모를 다루고 있는 느낌이 남는 것을 보면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 미국은 내전 중’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바로 총기사용에 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해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총기에 의해 살해당하며 총기와 관련해 미국 사회가 지불하는 국가비용이 무려 1천 3백만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건국초기 고립무원의 서부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인들은 총기를 내려놓는 것에 대하여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미국에서 살 때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대해준 집을 맞게 찾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마침 저자는 언제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제가 살던 미네소타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로즈 빌이라는 곳이었는데, 때때로 순찰차의 급박한 사이렌소리가 들리고, 야간에 총소리까지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 책이 2003년에 출간된 것을 고려하면 제가 살던 1990년대 초반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제가 그곳에서 살 무렵에는 한 밤중에도 걸어서 이웃 동네에 다녀올 정도로 치안이 안정되어 있었고, 총기사고라도 나면 신문에 대서특필이 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자는 굳이 미국을 동경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을 담아보려 한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착되고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가 미국에서는 아예 제도 자체가 없다는 식으로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알고 보면 쓰레기를 나누어 버리기 위하여 우리나라 주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과는 달리 분리해서 내놓은 쓰레기를 막상 수거업체는 뭉뚱그려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버려진 쓰레기는 처리업체에서 분리하여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우리나라와 지자체가 분리의 책임을 지는 미국과 어떤 정책이 국민의 편의를 위한 것인가 생각해볼 일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지구는 미국을 위해 돈다’라는 제목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미국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편향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전하는 정보가 왜곡된 바는 없는지 새겨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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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미술관 1
랄프 이자우 지음, 안상임 옮김 / 비룡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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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판타지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있다 보니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올 여름에는 독일 환상문학을 이끄는 랄프 이자우의 작품을 몇 편 읽었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지난달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http://blog.joins.com/yang412/13459421>으로 한번 만나 본 적 있는 작가입니다. 그때 소개를 드렸습니다만, 미하엘 엔데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랄프 이자우는 1992년 자신의 딸을 위하여 썼다는 <용 게르트루트 Der Drache Gertrud>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판타곤’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환상, 상상을 의미하는 판타지(Phantasie)와 다각형을 뜻하는 수학적 어미, -타곤(-tagon)을 조합한 단어입니다. 판타곤은 환상을 근간으로 하여 여러 문학 형태와 장르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거짓의 미술관>은 유명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예술작품의 도난사건과 살인을 다루는 스릴러소설로 그리스신화를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판타지적 요소는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다만 예술작품이 이야기의 주제를 풀어가는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면서도 아주 매력적인 조합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대치상황을 곁들인 점도 이야기의 전개를 촘촘하면서도 매끄럽게 하는 맛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에서는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읽을거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거짓의 미술관> 역시 인간복제라는 의학적 기술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장르소설의 리뷰가 어려운 점은 이야기 줄거리를 어느 정도까지 소개할 것인가 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출판사에서 요약하여 소개하는 수준까지는 무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책소개에 나오는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야기는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상 <잠든 헤르마프로디테>가 침입자에 의하여 폭발, 파괴되면서 시작됩니다. 이어서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르네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The Reckless Sleeper)」가 도난당하고, 그다음엔 오스트리아 빈의 예술사 박물관의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 낙원」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예술품이 사라진 현장에는 어김없이 르네 마그리트의「경솔한 수면자」에 그려진 물건들이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거울, 붉은색 담요, 황금 사과 ……. 미술관들이 도난당한 작품들은 보험을 계약한 곳이 모두 ‘아트케어’ 라는 보험회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스터리한 예술품 파괴, 도난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줄 주인공 알렉스 다니엘스는 꽤나 요란스럽게 등장합니다. 스물다섯 살된 과학기자 알렉스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유서깊은 칼리지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지적 설계 진흥상(Intelligent Design Encouragement Award)’, 약어로는 이데아 상을 받게 됩니다. 이 상은 ‘비평적 과학자 협회’의 열한 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수상자를 결정하게 되는데, 수상자는 지적 설계 사상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한 출간물의 저자들 중에서 선정합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생명체가 고등한 것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한다는 다윈의 사상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 추종자들과는 반대로, ‘지적 설계론’ 옹호자들은 모든 생명의 복잡성 뒤에 존재하는 창조적 지성에 대한 증거를 찾고 있다.(거짓의 미술관 1권, 38쪽)”라고 합니다. 창조과학에서 지적설계론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우리의 주인공 알렉스가 종교적 배경에서 지적설계론에 공감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수상직후에 루브르 미술관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또 다른 주인공은 아트케어의 보험수사관 다윈 매트 쇼우입니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다윈은 인간복제에 관한 기사에 주목합니다. 기사내용은 이렇습니다. 2000년 12월 영국하원은 인공수정법을 개혁하여 ‘치료용 복제’를 합법화했다고 합니다. 황우석교수 사건으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해진 바 있는 체세포를 이용하여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입니다. 즉, 시험관에서 인간의 난자에서 세포핵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의 일반 체세포의 핵을 이식한 다음 전기자극을 가하면 마치 수정난처럼 세포분열을 시작하여 세포덩어리를 만들게 되고, 여기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얻은 배아줄기세포를 목적에 맞는 특수세포로 발전하도록 하여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 줄기세포요법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배아청이 2004년 8월 뉴캐슬대학교 생명센터 연구팀에게 인간 배아의 복제를 허가했고, 다윈은 현대 단계에는 치료용복제가 일상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유전자 특허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과 영국이 인간유전학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인간복제기술을 통하여 세포덩어리 단계를 넘어 완벽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허락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적설계론 옹호자인 알렉스와 진화론 신봉자는 아닌 다윈의 관계는 일종의 저자의 현학적 장치에 불과한 듯하지만, 사실 알렉스가 내세운 지적설계론이라는 장치는 이 사건의 바탕이 되고 있는 인간복제에 대한 저자의 경고가 구체적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뜨거운 감자, 인간복제는 사건의 기둥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알렉스가 주장하는 현생인류를 이을 신인류가 다윈의 진화론이 아닌 과학자에 의하여 설계된 유전자조작으로 탄생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신인류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가정은 과학자들의 오만함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인간복제를 단순히 치료용으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아일랜드; http://blog.joins.com/yang412/5207437>나 불완전한 기술로 인간의 유전자와 동물의 유전자를 섞어 만들어낸 키메라가 등장하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 http://blog.joins.com/yang412/4679762>는 생각하기도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짓의 미술관>에는 인간복제라는 기술로 탄생한 인간들의 모습을 새긴 조각작품을 모아둔 곳이기도 한데, 결국은 이들의 탄생을 주도한 인물과 함께 사라지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노사이드; http://blog.joins.com/yang412/12853780>에서 신인류의 등장을 막으려는 미국정부의 음모는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출현. 이 생물이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제노사이드, 11쪽)”는 내용을 담은 정보보고를 토대로 현생인류의 멸망을 우려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고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였던 코로마뇽인의 삶을 추적한 <크로마뇽; http://blog.joins.com/yang412/13003445>을 읽으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의 미술관>에서 인간복제를 통하여 탄생하게 되는 신인류의 모델은 그리스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헤르마프로디테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헤르마프로디테는 남성과 여성의 외부적 특징은 물론 유전적 특징고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는 간성을 의미합니다. 헤르마프로디테가 현생인류를 이을 신인류가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미들섹스>에 등장하는 조라가 “우리가 다음번에 오게 될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이야(거짓의 미술관 1권, 159쪽)”라는 말에서 얻은 것 같습니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있는 세상이 갈등을 빚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 어떤 과학자가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세상에서는 갈등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유전자조작과 인간복제를 통하여 똑 같은 모습을 한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거짓의 미술관>의 이야기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 과학자가 바로 예술작품 도난사건의 핵심이 되는 ‘경솔한 수면자’가 되는 것이고, 그 경솔한 수면자에게 책임을 묻기로 결심한 ‘두뇌’가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복제인간들을 제거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경솔한 수면자와 대면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판타곤이라고 부르는 저자의 작품의 특징을 <거짓의 미술관>에서 찾아보면 헤르마프로디테에 관한 뿌리를 찾아가는 신화학, 알렉스와 다윈의 첫 만남을 장식하는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이론적 대립을 설명하는 진화생물학, 인간복제를 통하여 헤르마프로디테를 창조해낸 생물학, 이들을 창조해낸 ‘경솔한 수면자’를 시작으로 일곱 개의 예술작품의 의미를 연결하는 미학, 또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나타나는 픽토그램을 꿈의 상징으로 확대하는 프로이트 심리학 등이 있습니다.

<거짓의 미술관>에 등장하는 예술작품들을 따로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작품은 파리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잠자고 있는 헤마프로디테 (Sleeping Hermaphrodite)」입니다. 기원전 160년 에트루리아 조각품인데, 이탈리아 바로크시대 조각가인 베르니니(Bernini, 1598~1680)가 대리석으로 만든 매트 위에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라지는 작품은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입니다. 랄프 이자우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의 상징물, 즉 수면자가 덮고 있는 거울, 붉은 이불, 황금사과, 비둘기, 양초, 리본, 모자가 범행의 대상이 될 작품을 예고하는 메시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일곱 상징물인가에 대하여 알렉스는 창세기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여섯 날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일곱째날 쉬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가 이야기의 중심에 오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 사라지는 작품은 빈 예술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 낙원」입니다.

 

네 번째 작품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입니다.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Eris)가 던져놓고 간 황금 사과(불화의 사과:The Apple of Discord) 에 적혀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To the Fairest)'라는 문구대로 황금사과의 주인을 찾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파리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해준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에 넘어가서 황금사과를 아테네에게 건네게 되고, 결국은 트로이전쟁의 빌미가 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작품은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그가 소장하고 있는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디 코지모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입니다. 이 작품은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불을 통해 생명을 주기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뇌’는 신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행위가 기술 남용과 인류의 타락한 문화의 상징으로 이해하려 했을 것(거짓의 미술관 1권 420쪽)으로 알렉스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작품은 네덜란드 오테를로에 있는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헨드릭 반 클레버의 「바벨탑 건설」입니다. 신의 명령을 따르며 땅에 흩어져 살지 않고, 사람들을 한 장소에 묶어 두려는 목적으로 건설하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탑을 짓던 이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벌을 내리는 것으로 결국은 세상이 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의 상징인 인간복제를 부정하는 메시지인 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작품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다비드」입니다. 마지막 미션으로 「다비드」를 선택한 이유를 알렉스는 이렇게 추정합니다. 오늘날 발전한 과학과 기술덕분에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완벽함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만, 우리가 만든 것들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만큼이나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그 약점을 인정해야 우리는 이 행성 위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뇌’의 마지막 미션은 「다비드」를 폭파하는 것으로 예상한 알렉스와 다윈 그리고 아트케어와 이탈리아 정부는 과연 「다비드」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윈이 발견한 「경솔한 수면자」에서 아직까지 의미를 두지 않았던 어두운 하늘, 똑바로 서있는 비석, 그리고 나무상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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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화가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새로운 방법
유예진 지음, 유재길 감수 / 현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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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진교수님의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http://blog.joins.com/yang412/13111784>을 읽으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작했던 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문학작품들을 따로 읽어 인용구절을 포함해서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기 덧붙여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미술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프루스트의 화가들>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작에 비하여 뒤늦게 읽기에 나선 것은 아무래도 미술에 대한 저의 앎이 부족한 탓에 이유가 있습니다.

 

유예진교수님은 머리말에서 “이 책의 목적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화가들 중 비중의 중요도에 따라 선정된 15명과 그들의 특정한 그림들을 대하는 마르셀의 시선을 분석함으로써 프루스트의 소설을 새로운 방법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4쪽)”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소설 속의 마르셀의 성장과정에 따라 구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단순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온 미술작품에 대한 해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루스트의 작품세계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같이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모두 100여 명의 실제 예술가와 200여 점의 실제 작품이 언급된다는 것도 출판사의 소개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프루스트가 창조한 화가 엘스티르를 포함한 15명의 작품세계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화가와 그들의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음악, 문학, 건축, 연극 등의 나머지 예술분야에 비해 월등하게 크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화가 엘스티르를 주인공 마르셀을 예술의 세계로 안내하는 스승으로 선택한 것은 프루스트가 ‘보는 것’과 ‘시선’의 중요성을 일찍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나는 작가는 <나사의 회전>과 <여인의 초상>의 작가 헨리 제임스가 생각납니다. 오르한 파묵에 따르면 프루스트가 ‘나의 소설은 그림이다’라고 했다면 헨리 제임스는 ‘내 이야기를 본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프루스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20여권에 달하는 의학서적을 출간한 아버지가 프루스트에게 지적 자극을 주었다면 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어머니는 프루스트의 문학적 취향을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의 소년시절을 담은 「스완네 쪽으로」를 보면 어린 마르셀이 책읽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본 할머니가 밖에 나가 산책을 하도록 했던 것처럼 프루스트의 어머니 역시 오랜 시간 독서를 하는 아들을 억지로 방에서 내보내거나 서재의 램프 불을 끄곤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프루스트는 평생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전에 자전소설 <장 상퇴유>와 비평서 <생트 뵈브에 반박하여>를 쓰기 시작하였지만,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유예진교수님은 <프루스트의 화가들>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5명의 화가의 작품세계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해당 작품들을 컬러로 싣고 있어 설명한 내용을 작품과 비교해볼 수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해당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을 밝혀놓고 있어 뒷날 방문할 기회가 된다면 기억해두었다가 꼭 감상해보려 합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이나 <프루스트의 화가들>에서 인용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도 많고, 소개되었더라도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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